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329)
낙향문사전-329화(329/494)
329화. 뜻밖의 여정
대륙의 남쪽 끝에 위치한 광동성은 더운 지역이다. 바다를 마주한 탓에 습하기까지 한 이곳에서, 사계절의 구분이란 그저 흐릿한 관습일 뿐이다.
광동성에서 남는 것은 오직 여름의 더위와 겨울의 추위다. 사실 따지자면 겨울에도 얼음조차 얼지 않지만, 늘 불어오는 바람 탓에 사람들은 온몸에 추위를 두르고 살게 된다.
그러므로 해가 짧아지는 겨울이 오면, 한층 게을러진 사람들은 바깥나들이 대신 친지들과 함께 광동 요리를 맛보며 온기를 피워 올리는 것이다.
광동의 소도시 청원에 위치한 손빈의 서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깊은 밤에도 불구하고 서원은 환히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온기를 나누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타닥, 타닥.
정원에 놓은 커다란 화로에서 나무가 소리를 냈다. 갑작스레 설치한 것이었지만 화로의 열기는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충분한 온기를 전해 주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화로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외사’라 일컫는, 천외천의 경지에 속한 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음.”
찻잔을 들고 차를 음미하던 사자혁이 나지막이 소리를 흘렸다.
명실공히 외사의 정점에 선 자, 그리고 설산에서 전대 옥룡과 함께 사라졌던 ‘무제’의 목소리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를 향한다.
“괜찮군.”
그건 평범한 소감일 뿐이었지만, 그 육중한 목소리는 마치 중대한 선언이라도 듣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흥, 그야 당연히 괜찮겠지.”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미남자, 전대 옥룡이 가볍게 조소를 흘리며 말했다.
“죽었다 살아났으니 뭐든 안 괜찮을 리가 있겠어? 하지만 손님을 대접하는 거라면.”
전대 옥룡은 자신의 차를 내려다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찻잎은 좀 좋은 걸 내놓지그래?”
전대 옥룡은 운남 혈룡문의 문주이기도 했다. 차의 원산지라 할 수 있는 운남에서, 그것도 가장 좋은 것만 접해 왔던 그로서는 당연한 감상이라 할 수 있었다.
“찻잎이 뭐가 어때서?”
하얀 수염이 인상적인 노인, 노군이 흰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이래 봬도 비싼 거다. 그리고 손님이면 주는 대로 마셔. 죄 없는 찻잎에 트집 잡지 말고.”
노군과 전대 옥룡의 시선이 날카롭게 얽힌다. 단숨에 팽팽한 긴장이 주변에 내려앉았지만, 외사의 고수들 중 감히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따뜻한 탕을 좀 더 드릴까요?”
문득 단아한 분위기의 젊은 여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청원에 있는 호연무관의 딸이자 혁련세가의 양녀인 혁련세화였다.
무공은 그리 대단할 것이 없지만 무림에서 손꼽히는 오대세가 중 하나인 혁련세가의 양녀이며, 항렬로만 따지면 혁련세가의 그 누구도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은 부드럽고 수수하기까지 했다.
이 밤중에 따뜻한 탕과 향긋한 차를 누릴 수 있는 것도 실은 그녀 덕분이었다. 그녀의 친가인 호연무관의 숙수가, 어릴 때부터 돌보아 온 그녀의 부탁에 흔쾌히 탕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저, 좀 더 먹을 수 있을까요?”
혁련세화의 제안에 응한 사람은 혈봉련의 혈봉, 금사련이었다. 작고 연약해 보이는 그녀는 최근 강남 최대 문파 연합으로 부상한 혈봉련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손빈에 의해 목숨을 건졌으나 걸을 수 없게 된 그녀는, 지금도 묵묵히 그녀의 곁을 지키는 귀견수라와 함께 앉아 있었다.
“물론이에요, 금 소저.”
혁련세화는 손수 혈봉 금사련에게 맑은 탕이 담긴 그릇을 건네주었다.
따뜻한 탕에서 오르는 고소한 냄새에 혈봉 금사련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내력이라곤 전혀 없는 그녀에게 탕의 온기는 참으로 고마운 것이다.
“문주께서도 드시겠어요?”
혁련세화가 권한 대상은 운남 혈룡문의 새 문주이자 옥룡의 이름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옥룡이었다.
그 역시 조각처럼 빼어난 미남자였지만, 전대 옥룡이 보여 주는 압도적인 기운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필요 없어.”
젊은 옥룡은 혁련세화를 돌아보지 않은 채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찻잔에 손조차 대지 않고 전대 옥룡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실 이 서원까지 그를 추격해 온, 아니 몰아 온 사람이 바로 전대 옥룡이다.
쫓기는 와중에 그의 수하, 한월이 큰 부상을 입고 탈진하기까지 했다. 그 한월은 다행히도 이 서원에 있던 신의가 돌보아 주고 있었다.
“저 주세요.”
“저도요!”
뒤쪽에 앉아 있던 북해십이비 중 몇 사람이 손을 든다. 북해의 외사 고수, 섬옥수 오르한과 함께 얼마 전 찾아온 이들이다.
외사의 고수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지만 북해에선 손에 꼽을 정도의 고수들이며, 북해의 소궁주이기도 한 사수연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는 이들이다.
“여기요!”
홍아와 청아가 얼른 두 손에 탕을 들고 북해십이비에게 전해주었다. 색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이 다섯 아이들은 손빈과 당월아가 구한 아이들이다.
인성을 파괴당하고 끔찍한 독인으로 자라야 했던 이 아이들은 손빈과 당월아에 의해 새로운 삶을 얻었다.
당문에서는 당월아와 함께 가히 최고의 무력 집단인 ‘월인대’라고 칭해지지만, 이곳 서원에선 그저 어른들의 사랑을 받고 자라나는 평범한 아이들일 뿐이다.
지금도 다섯 아이들은 도움이 되는 것이 그저 기쁘다는 듯 쾌활한 모습으로 혁련세화를 돕고 있었다.
“쯧, 다 큰 처자들이 아이들한테 받아먹고 있으니…….”
노군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투덜댄다. 이 밤중에 다섯 아이들이 고생하는 것이 내심 안쓰러워서 하는 불평이다.
“괜찮아요, 순랑. 아이들도 좋아하잖아요.”
노군 옆에 앉아 있던 우아한 노부인, 당운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는 당문의 전전 대 문주 당백호의 여동생이자 당문 최대 계파를 이끄는 여인이다.
평생 노군을 사랑했으나 당백호의 간계로 헤어져야만 했고, 이곳 서원에서 재회한 이후 혼례를 올렸다.
그녀가 노군을 부르는 애칭이 바로 ‘순랑’이다. 비록 노군은 들을 때마다 쑥스러워하지만.
혁련세화는 노군과 당부인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공주께서는 어떠신가요?”
그녀가 공주라 칭한 대상은 고색창연하면서도 멋스러운 복식을 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고귀한 신분임을 짐작할 수 있는 그녀는 황실의 경희 공주다.
경희 공주는 대답하지 않은 채 차가운 눈빛으로 ‘무제’ 사자혁과 그 옆에서 싱글싱글 웃고 있는 손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 때문에 크게 운명이 바뀐 그녀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리라.
곁에 있던 시녀 항아가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부탁드려요.”
“네.”
혁련세화는 경희 공주 몫은 물론이고 시녀 항아와 그 곁을 지키는 청년 무사 청랑검 위가진, 그리고 아미파의 외사 고수인 청혜 사태의 것도 같이 건네주었다.
청혜 사태는 경희 공주를 여전히 자신의 사매라 여기고 돌보아 주고 있었다.
한때 정략적인 목적에서 아미파의 재가신자가 되었던 경희 공주도, 이제는 어느 정도 청혜 사태를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나도 주게.”
묵묵히 앉아 있던 탈혼도가 문득 말했다. 아무렇게나 넘긴 긴 머리와 이리저리 자란 수염이 마치 산적처럼 보였지만, 그는 강북 최대 사파 연합인 흑사련의 외사 고수이자 실질적인 주인이다.
“더 먹게? 맛있어?”
옆에 앉아 있던 화사가 얼른 묻는다. 사랑하는 남자가 좋아하는 음식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그녀는 같은 흑사련의 외사 고수, 화사다.
본래 소수와 흡정공으로 유명한, 그러나 한기에 침식당하면 이성을 잃고 폭주하던 그녀도 손빈의 도움으로 자신의 지독한 운명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오래도록 바라보던 탈혼도와 얼마 전 혼례를 올렸다.
“으음, 이거 어떻게 만드는 거지?”
화사가 탕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혁련세화가 웃으며 답했다.
“요령만 알면 간단해요. 나중에 알려 줄게요.”
단박에 화사의 얼굴이 밝아지고, 탈혼도는 따뜻한 시선으로 그런 화사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노군이 혀를 찼지만 그도 뭐라 말할 처지가 아니다.
그 역시 사랑하는 당운영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알려 줄래요?”
사수연이 탕 그릇을 들고 혁련세화에게 묻는다. ‘무제’ 사자혁의 딸이자 북해의 소궁주인 그녀는, 어머니를 닮아 빼어난 미모를 빛내고 있었다.
‘파검신녀’, ‘강호제일검화’라 불리는 그녀의 무공 역시 외사의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지만, 손빈이 아니었다면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그녀의 눈가가 촉촉한 것은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 사자혁이 돌아온 것에 대한 벅찬 감정이 아직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옆에 앉아 있던 당월아가 나지막이 말했다. 면사로 얼굴을 가린 그녀는 당문의 숨은 칼날이자, 살아 있는 독의 정화라 할 수 있는 독인(毒刃)이었다. 그녀 역시 손빈으로 인해 새 삶을 얻고 손빈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 그래요.”
혁련세화가 조금 주저한 것은 당월아가 과연 음식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독인으로서 평생 격리되어 살아왔던 당월아가 직접 만든다면 따뜻한 탕 대신 무언가 위험한 것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월아 누나가 만들면 난 안 먹을래.”
그런 걱정은 혁련세화만이 아니었는지, 손빈 옆에 붙어 있던 서린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벌써 빈 그릇 셋을 쌓아 두고 있는 서린은 무당의 대사조라 불리는 황학 진인의 마지막 제자다.
젊은 소년이지만 배분으로 따지자면 현 무당 장문인의 사숙이 되는 데다, 황학 진인의 모든 것을 물려받은 그 잠재력은 노군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지금은 그저 형 손빈에게 어리광이나 부리는 어린 동생 같은 모습이지만 말이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뼛속까지 정파라는 평을 듣는 외사의 고수 장강어옹도 한구석에서 묵묵히 차를 마시고 있었고, 북해에서 온 외사의 고수 오르한도 있다.
작은 소도시 청원의 이름 없는 서원에 이들이 모여 있는 이유는 단 한 사람, 손빈 덕분이다.
그리고 그 손빈은, 지금 사자혁 옆에 앉아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겉으로 보아서는 그저 사람 좋은 청년 문사처럼 보일 뿐이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이곳에 있는 모두가 똑똑히 알고 있다.
“크흠.”
문득 노군이 헛기침을 했다. 정원에 가득한 사람들이 일제히 노군을 돌아본다.
“그래서, 아닌 밤중에 이게 무슨 일이냐?”
노군의 지적은 지극히 당연했다. 그리고 그건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검희의 경고 뒤에 탈진한 젊은 옥룡이 나타나고, 죽은 줄 알았던 전대 옥룡과 사자혁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혈봉과 귀견수라까지 나타났으니까.
“천마가.”
대답한 사람은 사자혁이었다. 전대 옥룡은 귀찮다는 듯 아예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나락의 문을 열었다.”
묵직한 사자혁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노군은 눈살을 찌푸렸다.
“천마? 마교의 그 천마 말인가?”
천마는 마교의 절대자이자 숭배의 대상이다. 지금도 마교는 천마의 재림을 기다리며 세상 어딘가에 숨어 있다.
그러나 역사상 천마의 강림이 기록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마교가 주장하는 천마의 강림조차 아득한 신화시대의 이야기였을 뿐, 실제로는 환마라 불리는 태상호법이 대대로 마교를 이끌어 왔다.
“그럼 자네들은 지금까지 천마와 맞서고 있었단 말인가?”
노군이 다시 묻는다. 그러나 사자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깨어난 것은 얼마 전 일이다. 지금까지 나는 설산 깊은 곳에 잠들어 있었지.”
그건 정말로 믿기 힘든 말이었다. 청혜 사태 같은 경우엔 노골적으로 눈살을 찌푸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외사의 대부분, 특히 사자혁과 전대 옥룡을 아는 이들은 그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무제’와 ‘옥룡’이니까.
“하지만 대법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아니, 지금도 분명하게 느낀다.”
사자혁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가 어두운 밤하늘을 향한다.
“천마가 나락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음을.”
노군은 사자혁의 시선이 향한 곳을 힐끗 바라보았다.
느껴지는 것은 당연히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방향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서쪽이라면, 운남이나 사천인가?”
운남이나 사천은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하고 지세가 험하다. 그 탓에 예로부터 온갖 집단이 그곳에 둥지를 틀곤 했다.
노군이 눈살을 찌푸리는데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니.”
목소리의 주인은 전대 옥룡이었다. 비웃듯 말한 그는 고개를 들어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매혹적인 그의 눈동자 역시 서쪽을 향한다.
“장족의 땅, 아니 적어도 천축이야. 어쩌면 파사나 그 너머에까지 이를지도 모르지.”
“뭐?”
노군은 어이가 없었다.
장족의 땅은 서장 밀교로 잘 알려진 새외무림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밀교승들이 가끔 무림으로 흘러 들어와 알려졌을 뿐, 실제로는 거의 교류가 없는 오지다.
천축 역시 마찬가지다. 불가의 발상지로 익숙한 이름이긴 하지만 일반인들에겐 아예 딴 세상이나 다름없다. 심지어 파사나 그 너머라면 세계의 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지역이다.
“장족의 땅이나 천축이라니, 그런 데를 어떻게 가? 아니, 그렇게 먼 곳이라면…….”
노군이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는 딱히 신경 안 써도 되지 않나?”
노군의 말은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천축에서 제아무리 큰 변고가 난다 한들 이곳과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래도 돼.”
파락.
전대 옥룡은 옥빛 부채를 펴 입을 가리고 가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느긋하게 있다간, 세상은 더 이상 네가 아는 곳이 아니게 될걸? 나는 그래도 별 상관 없지만 말이야.”
낭랑한 그 목소리에 노군은 섬뜩함을 느꼈다. 노군만이 아니었다.
전대 옥룡의 말은 결코 허세도, 과장도 아닌 문자 그대로의 의미라는 것을 모두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나락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는 건 무슨 의미죠?”
문득 작고 조용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면사 아가씨, 당월아에게 향한다.
“천마의 존재를 인식한 것은 이해해요. 천기를 살피고 천문을 보는 이들에게도 그러한 일이 있으니까요.”
하늘의 기운을 살펴 세상에 닥칠 일을 예견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심지어 황궁에는 이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관리들까지 있다.
“하지만 나락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는 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요?”
전대 옥룡의 날카로운 시선이 당월아를 향한다. 옆에 있던 외사 고수들조차 움찔할 정도의 강렬한 기세였지만 당월아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호오, 독기공이라……. 당문에선 맹호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제법인걸?”
옥빛 부채 뒤에서 쏟아지는 그 날카로운 그 시선을 마주하며 당월아가 말했다.
“맹호 독기공과는 달라요. 나는…….”
“보면 알아.”
전대 옥룡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진다.
“그리고 누가 널 그렇게 만들어 줬는지도. 그러니 자랑스럽다는 눈빛 같은 건 치워. 짜증 나니까.”
불쾌한 빛이 역력한 목소리였지만 당월아는 자신의 뜻이 전달된 것에 만족했다.
“나락의 문이라는 건 내가 그렇게 일컬은 것이다.”
묵직한 사자혁의 목소리가 당월아에게 답했다.
“어쩌면 심연이라 해야 할지도 모르지. 다만 분명히 알 수 있는 건, 그곳과 연결되는 무엇인가가 생겨났다는 점뿐이다.”
당월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천마가 무엇인가 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이런 의미인가요?”
“또 있지. 그대로 두면 이 세상은 반드시 끝장난다는 것.”
전대 옥룡이 기쁘다는 듯 웃으며 말한다. 그것이 어쩌면 그의 진심인 것 같아서 노군이 쓴웃음을 지었다.
노군이 아는 전대 옥룡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음이 있다.
그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구름 속에서 노니는 자’이니까.
그가 지금처럼 조용히 타인을, 그리고 그들의 존재를 참아 주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놀랍고 이례적인 일이다. 전대 옥룡을 아는 외사의 누구라도 자신의 눈을 의심할 만큼.
물론 그의 이런 태도에는 분명한 이유와 원인이 있다.
노군은 고개를 돌려 그 ‘이유와 원인’을 바라보았다.
찻잔을 쥔 채 묵묵히 앉아 있는 사자혁과, 그저 기쁜 듯 옆에서 웃고 있는 손빈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후우.”
자신도 모르게 노군은 한숨을 쉬었다.
노년을 편히 보내는 것도,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작가의 말)
낙향문사 손빈의 새로운 여정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또다시 함께하게 되어 기쁘고 두근두근합니다.
그리고 1부 1화 일러스트가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꼭 한번 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