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344)
낙향문사전-344화(344/494)
344화. 마물의 배후
당월아는 홀로 마물들 앞에 나섰다. 작고 연약해 보이던 그녀였지만, 곧이어 쏟아져 나온 폭풍 같은 기세에 그녀의 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파바바박.
하늘하늘하던 옷자락이 세차게 휘날리고 늘 미동도 없던 당월아의 면사도 일렁이기 시작한다.
뒤에 서 있는 서장의 무사들마저 움찔할 정도의 기세에도 불구하고 마물들은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흉포한 기세를 더하며 당월아를 향한 적의를 불태웠다.
크르르륵.
“독의 효과는, 크지 않네.”
혼잣말인 듯 나지막이 당월아가 말했다.
카악!
그 순간, 마물 셋이 당월아를 향해 각기 다른 방향에서 짓쳐 들었다. 쩍 벌린 흉측한 아가리들이 당월아를 향해 덮쳐드는 순간, 그녀의 검, 소월은 이미 짙푸른 옥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쉭.
소월이 허공에 옥색 궤적을 그렸다. 그리고 당월아를 향해 짓쳐 들던 마물들은 여지없이 반으로 잘려 나갔다.
퍼억.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허공에 비산했다. 그러나 마물들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신호인 양 기회를 노리던 다른 마물들이 일제히 당월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시야를 가리는 핏방울들과 그 사이로 짓쳐 드는 마물들의 아가리들. 그러나 당월아는 그들을 향해 마치 휘장 걷듯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후웅.
부드러운 기운이 허공을 휩쓸고 사방으로 비산하던 핏방울은 오히려 달려들던 마물들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핏방울이 마물들의 시야를 가리고 당월아가 펼쳐 낸 기세가 그들의 균형을 뒤흔들었다.
물론 그 정도로 마물들이 물러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뒤를 당월아의 소월이 뿜어내는 옥색 검기가 휩쓸어 갔다.
퍼퍽.
마물들은 속절없이 잘려 나갔다. 그 모습에 노군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방금 전에 그거 뭐였냐? 독기공으로 그런 수법도 써?”
조금 전 부드럽게 주위를 휩쓴 당월아의 수법은 당문보다는 오히려 무당의 무공에 가깝다. 당월아가 천하의 비급을 섭렵했다지만 그런 수법을 펼쳐 내는 건 확실히 놀라운 일이었다.
“어, 하지만 아닌데요? 결과는 비슷하지만 홍진만리랑은 달라요.”
서린이 노군에게 말했다. 그 대화를 들었는지 나지막이 말했다.
“단순한 응용일 뿐.”
피핑.
말하는 중에도 그녀의 하얀 손이 허공에 철전을 뿌린다. 공중으로 날아간 철전은 단숨에 마물들의 머리를 꿰뚫었다.
퍽, 퍼퍼퍽.
“아직 완벽하지는 않아요.”
휘이이잉.
철전들은 허공을 돌며 독수리처럼 다음 먹이를 노리고 있었다. 마물들도 그 위협은 무시할 수 없었는지, 허공에 뜬 철전들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린다.
“허어.”
노군은 혀를 내둘렀다. 방금 전 당월아는 독기공을 바탕으로 분명 무당의 수법을 펼쳐 냈다.
독기공이 가지는 파괴적인 본질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대단한 응용력이라 아니 할 수 없었다.
“황학 진인께서 이걸 보셨다면 절대 널 놓아주지 않으셨을 게다.”
혀를 내두르며 노군이 말했다. 사실 황학 진인은 그 드높은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무공에 관해서라면 그 누구보다 호기심이 강했다.
“싫어요.”
당월아는 여전히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난 손 공자님 거예요.”
“누가 뭐라냐?”
피피핑.
노군이 투덜거리는 사이 공중에 떠 있던 철전들이 마물들을 향해 내리꽂혔다. 속절없이 터져 나가는 마물들의 모습에, 황 방주가 반쯤은 사색이 된 표정으로 손빈을 돌아본다.
그 시선의 의미를 모를 손빈이 아닌지라, 손빈은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위험해요!”
손빈의 말을 끊은 것은 가녀린 혈봉 금사련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다급한 그녀의 목소리는 뒤이은 포효에 묻히고 말았다.
크와아앙.
“윽.”
황 방주가 반사적으로 귀를 막고 손빈도 안색이 굳었다. 그 괴성은 피부를 저릿저릿하게 할 정도로 날카로운 기세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늑대 형태의 마물들 너머로, 단번에 모두를 오싹하게 만든 괴성의 주인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크아앙.
쩌렁쩌렁 울리는 괴성의 주인은 바로 곰의 형상을 한 마물이었다. 그러나 절대 평범한 곰은 아니었다. 곰이 저렇게 온몸 가득 날카로운 가시를 달고 있지는 못할 테니까. 그리고 피처럼 붉은 눈동자도.
피피핑.
당월아의 철전이 즉시 곰 형상의 마물에게 쏘아져 갔다. 그러나 곰 형상의 마물은 그 육중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은 빠르기로 앞발을 강하게 내리쳤다.
카캉.
발톱과 철전이 부딪혀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다른 방향으로 쏘아졌던 철전들도 곰 마물의 온몸에 돋아난 가시를 부러뜨렸을 뿐, 직접적인 타격을 주지 못했다.
“저, 저거…….”
황 방주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곰 마물은 앞발을 땅에 내리더니 당월아를 향해 곧장 달려오기 시작했다.
쿵쿵쿵쿵.
마물의 돌진은 대단히 빨랐다. 거대한 마물은 순식간에 당월아와의 거리를 좁히며 달려들었다.
기이하게 벌어진 마물의 아가리와 날카로운 발톱이 가녀린 당월아를 단숨에 찢어 버릴 것 같던 바로 그때였다.
“……수연 언니.”
“그래, 월아야.”
쉬익.
낭랑한 여인의 목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백색 빛줄기가 곰 마물의 정수리로 떨어져 내렸다. 사수연의 검, 미명이 백색 검기를 두르고 아래로 내리꽂힌 것이다.
쩌정.
크아앙.
곰 마물은 본능적으로 몸을 뒤틀며 크게 앞발을 휘둘러 사수연의 검을 막아 내려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짐승이라기엔 놀라운 반응이었지만 사수연의 현천한빙결 앞에선 무의미한 저항에 불과했다.
다음 순간, 사수연의 검은 곰 마물을 그대로 반으로 갈라 버렸다. 철전마저 막아 냈던 마물의 앞발과 함께.
쩌적.
곰 마물은 둘로 갈라졌다. 그러나 피는 튀지 않았다. 곰 마물은 이미 몸 전체가 얼어 있었기 때문이다.
쿵.
두 조각이 난 곰 마물이 땅으로 무너져 내렸다. 놀랍게도 사수연은 허공에 뜬 채로 곰 마물을 둘로 갈라 버린 것이다.
사락.
마치 눈송이가 내려앉듯 사수연이 가볍게 땅에 내려섰다. 그녀가 일순간 뿜어낸 현천한빙결의 한기로 인해 차가운 기운이 주위로 번져 가고, 대기 중의 수분이 얼어붙어 사방에 반짝이는 가루들이 흩날린다.
그야말로 설원에 핀 한 송이 눈꽃 같은 아름다운 자태였다. 뒤에 마물들의 잔해가 흩어져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역시.”
눈앞에 부스러진 곰 마물의 잔해를 바라보며 당월아가 나지막이 말했다.
“아주 다른 존재가 된 건 아니네요.”
그건 마치 학자처럼 담담한 분석이었다. 그러나 쳐다보던 이들은, 특히 황 방주는 부르르 어깨를 떨 수밖에 없었다.
이 가녀린 여인들이 고수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무신이 사자혁뿐이라 생각한 건, 물론 그는 여전히 대단하긴 하지만, 어림도 없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허어어…….”
한숨처럼 탄식을 흘린 황 방주가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두, 두 분이 자, 자매였나요?”
자기가 생각해도 엉뚱한 물음인 것은, 그 정도로 놀랍고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손빈은 얼른 대답해 주었다.
“아닙니다.”
때는 지금이다. 손빈은 그의 오해를 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부르는 건 자매처럼 가까운 사이라는 의미지요. 사실 당월아 소저가 아까 한 말도, 제가 목숨을 구해 준 인연이 있어 그리 표현하는 것뿐입니다.”
황 방주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손빈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당월아 소저의 친언니는 당화련 소저니까요.”
“켁?”
괴상한 소리를 내뱉으며 황 방주가 손빈을 돌아본다. 당문의 여인인 건 알았지만 설마 그 무서운 총괄군사 당화련의 친동생이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니냐는 듯한 그 눈빛에 손빈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맞는데요? 친자매 사이입니다. 당문의 당화련 총괄군사와 당월아 소저요.”
손빈의 확인 사살에 황 방주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그건 그동안 자신이 당월아 소저에게 혹시 무례한 적은 없었나 필사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눈빛이었다.
“응? 저놈들 보게?”
노군의 말에 손빈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늑대 형상의 마물들이 슬금슬금 물러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거 수상한걸?”
마물들을 노려보며 노군이 중얼거렸다. 서린이 고개를 갸웃하며 노군의 말을 받았다.
“저 곰 마물이 이놈들 대장이었을까요?”
“그럴 리가 있나. 설령 그렇다 해도 이놈들이 이 정도에 꼬리를 뺀다고?”
노군의 의심은 정당했다. 전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적의를 불태우던 마물들이다. 지금도 슬금슬금 물러나는 마물들의 눈빛엔 감출 수 없는 흉포함이 번득이고 있었다.
그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치 여인의 그것과도 같은 낭랑한 목소리.
“어떡할까? 잡을까?”
그건 바로 전대 옥룡의 목소리였다. 옥빛 부채를 든 그가 사자혁에게 묻고 있었다.
“이 마물들을 조종하던 놈 말이야. 아, 벌써 사라졌네?”
그건 놀라운 말이었다. 마물들을 조종하던 자가 있었단 말인가? 서장의 무사들조차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한다. 이 설원에는 그들 외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노군 역시 눈살을 찌푸렸다. 그도 특별한 기척은 느끼지 못했다. 마물들의 기운이 제법 흉포하긴 했지만 그 뒤에 누군가 숨어 있었다면 그걸 놓칠 노군이 아니다.
그러나 사자혁이 전대 옥룡의 말에 대답했다.
“뒤쫓지 않아도 된다.”
무덤덤한 목소리로 그가 말을 이었다.
“어차피 천마는 아직 멀리 있으니까.”
사자혁의 시선은 서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처럼 무덤덤할 수가 없었다.
“정말이냐?”
노군이 전대 옥룡에게 물었다.
“정말 이놈들을 조종하던 놈이 있었다고?”
“훗.”
전대 옥룡은 웃으며 옥빛 부채를 펴 입을 가렸다. 그의 눈동자에는 혼란에 빠진 이들을 향한 조롱이 역력했다.
사자혁 역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이 곧 긍정을 의미한다는 것을 모를 사람은 없었다.
손빈은 힐끗 혈봉 금사련을 돌아보았다. 다들 잠시 잊은 듯하지만 그녀는 곰 마물의 출현을 그 누구보다도 먼저 경고했었다.
혈봉 금사련 역시 손빈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 역시 ‘마물을 조종하던 자’의 존재를 알아차렸던 것이다.
손빈은 잠시 생각했다. 무공을 전혀 모르는 그녀가 노군이 알아차리지 못한 기색을 눈치챌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건 무공이 아니라 ‘특별한 무엇’이 작용한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무공이 아니라면…….’
과거 혈봉 금사련이 지녔던 독특한 능력을 손빈은 떠올렸다. 손빈이 그녀를 치료할 때 그 능력이 다른 형태로 변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전대 옥룡이 그녀의 동행을 강압적으로 요구한 것도, 어쩌면 이것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리라.
“으음.”
노군이 신음을 흘렸다. 늑대 마물들이 물러나고 있었지만 그들을 잡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자혁과 전대 옥룡이 던진 말이 모든 사람들을 뒤흔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릉.
당월아와 사수연이 검을 거두었다. 그리고 손빈은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곳에 번져 가는 마물들의 준동이 천마가 열었다는 나락의 문과 연관이 있음은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처음 사자혁이 나선 것 역시 그것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그리고 이제는 마물 뒤에 숨은 누군가라…….’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마교’, 즉 천마를 추종한다는 무리들이다. 어쩌면 마물로 변이한 ‘예전에 사람이었던 어떤 것’인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만일 마교라면.’
그러면 이것은 전혀 다른 상황이 된다. 마물의 준동 뒤에 마교가 존재한다는 것은 조직적이면서도 분명한 의도를 가진 ‘침략’이 되기 때문이다.
손빈은 고개를 돌려 포탈라 공주의 마차를 보았다.
마차를 호위하는 무사들은 아직도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러나 금빛 문양이 새겨진 붉은 휘장의 마차는 여전히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 * *
여러 날이 지나 일행은 포탈라궁이 위치한 라싸에서 가까운 작은 도시에 이르렀다.
포탈라궁이 가까운 때문인지 오가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는데, 도시 입구에 자리한 커다란 흰 탑 앞에서 승려들과 순례자들, 그리고 길을 가는 이들이 오체투지하며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이곳 역시 도시 크기에 비해 큰 서장밀교의 사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공주와 손빈 일행은 여느 때처럼 고위 승려들의 정중한 초청으로 사원에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손빈은 포탈라 공주의 초대를 받았다. 다른 사람은 없이 오직 손빈만 대상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초청이었다.
“잘 다녀와라. 말 잘하고.”
노군이 손빈을 향해 말했다. 어차피 사자혁이 손빈을 지목한 이상 한 번쯤 부르리라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생각보다 더 늦었다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잘 갔다 와요, 형. 밥 맛없는 거 알고 있으니까 안 챙겨 와도 돼요.”
서린이 손을 팔락팔락 흔들며 말한다. 손빈은 쓴웃음을 지었다. 일행은 도시로 나가서 먹을 예정이라고 했다. 사원에서 주는 식사가 별로 기대할 것이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주가 뭐라고 하면 그냥 ‘나만 믿으시오. 다 알아서 하겠소’ 그렇게 말해.”
노군이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건 포탈라 공주에 대한 경의로 한 말이 아니었다.
“공주들은 다 귀하게 자란 탓에 머리가 달리거든. 그렇게 분명하게 말 안 하면 못 알아먹는다.”
손빈은 쓴웃음을 지었다. 당장 경희 공주만 봐도 그럴 리가 없잖은가? 알고 보면 사수연도 북해의 소궁주이고.
게다가 포탈라의 공주는 문성 공주의 환생으로 어려서부터 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통역은 걱정 마시오. 아마 공주님께서 역관을 준비하실 테니까.”
황 방주가 말했다. 그는 손빈과 동행하지 않는다. 초청을 받은 사람은 오직 손빈뿐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다른 일행은 황 방주와 함께 시내로 나갈 수 있었다.
“혹시 당문이나 서원에 소식을 전할 수 있는지 잘 알아봐 주십시오.”
손빈은 황 방주에게 부탁했다. 차마고도를 통해 서찰을 전하는 것은, 역시 겨울엔 불가능했다.
어쩌면 대도시 라싸에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곤륜산맥의 비단길로 다니는 길이 겨울에 열리기 때문이다.
결국 일행은 차마고도가 열리는 것을 대비해서 리탕 마방에 서찰을 맡겨 놓았고, 혹 라싸에서 방법을 찾으면 그편으로도 보내기로 한 것이다.
“조심하세요. 손 공자님.”
사수연이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말한다. 손빈은 미소 지었다.
“괜찮습니다. 공주님이 초청하신 것이니까요.”
그건 위험할 리가 없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사수연의 불안한 기색은 가시지 않는다.
“괜찮아요.”
당월아가 사수연을 위로하듯 말했다.
“그래 봤자 우리 아래예요.”
하지만 사수연에겐 그다지 큰 위로가 되지 않는 듯했다. 손빈은 왜 당연한 말을 하나 싶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어차피 포탈라의 공주가 사수연이나 당월아보다 고수일 리는 없을 테니까.
“조심하세요.”
문득 혈봉 금사련이 손빈에게 말했다. 어쩐지 의미심장한 말이라 손빈이 쳐다보자 그녀가 오히려 당황했다.
“아, 저기 그 공주님이 나쁜 사람이라는 게 아니라…….”
머뭇거리던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분은 이 땅을 구하고자 하는 선한 뜻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라면 아무 상관없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도 주저하지 않지요. 부디 선의에 희생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사실은 저도…….”
혈봉 금사련은 고개를 숙였다. 그렇지 않아도 작던 그녀의 목소리가 더욱 가늘어졌다.
“……그랬거든요.”
손빈은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정중하게 감사의 예를 표하며 손빈이 말했다.
“고맙습니다, 금사련 소저. 각별히 조심하지요.”
혈봉 금사련은 여전히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진심이 전달된 것이 기쁜지 살짝 미소를 짓는다.
“잘 갔다 와, 형!”
서린의 인사를 미소로 받으며 손빈은 숙소로 쓰는 승방을 나섰다. 공주의 처소까지 긴 시간이 걸릴 것이 분명했으니 서둘러야 했다.
(작가의 말)
문성 공주는 실제 인물이지만 ‘포탈라의 공주’는 창작입니다. 이 글에 나오는 모든 인물, 단체, 지리, 사건은 허구이며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