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360)
낙향문사전-360화(360/494)
360화. 활불의 예언
포탈라 승군의 마물 토벌은 착실하게 진행되어 갔다. 비록 지금은 라싸에서 뻗어 나가는 주요 도로뿐이었지만, 대신장이 직접 포탈라 승군을 이끌고 나선 사실은 모두에게 희망과 격려를 주기에 충분했다.
마물에 대한 보고나 이야기들도 폭증했다. 그동안 무시되던 마물 관련 소식들이 고스란히 각 지역의 사원들로 모여들었고, 사원의 승려들 역시 이 내용을 대신장에게 전하는 데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그중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공포심에서 우러나온 괴담에 가까운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살펴볼 때, 한 가지 변화의 양상만은 분명히 파악할 수 있었다.
“강해지고 있군요.”
대신장의 위세를 과시하듯 커다랗게 세워 올린 군막(軍幕) 안에서 손빈이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의 앞에 놓인, 마물들의 변화를 분석한 포탈라 학승들의 보고서를 보며 한 말이었다.
포탈라궁에서는 손빈이 알아볼 수 있는 문자로 적어 보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물론 대부분의 소식은 긴급을 요하는 터라 서장의 글로 전해져 왔지만.
“그래. 저것들도 무언가 틀이 잡혀 간다는 느낌이다.”
노군이 인상을 찌푸린 채 말했다.
포탈라궁의 학승들이 분석한 결과는 심각했다. 늑대와 곰 마물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마물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무리의 규모도 이전보다 커진 것은 물론, 훨씬 공격적이고 조직적으로 변해 가고 있다. 확실히 심각한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천마가 열었다는 ‘나락의 문’ 때문일까요?”
“모르지. 하지만 마교 놈들의 힘이 강해지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마물들의 변화가 알려 주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 배후에 있는, 아마도 ‘마교’의 힘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변이의 원인에 대해서 들어온 소식은 없습니까?”
마물들은 변이한 것이다. 즉 본래 멀쩡한 짐승들이 무언가의 영향으로 마물화한다는 이야기다. 이대로라면 포탈라 공주의 경고처럼 사람이 변이하는 것도 머지않으리라.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언뜻 무작위로 보이던 마물화의 뒤에 배후가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그것은 곧 이 마물화를 막을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마물화의 원인이나 계기에 대한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음, 번개를 맞아 마물이 되었다거나, 검은 안개 속에서 마물이 나왔다는 소식은 있네. 대부분은 저주받은 땅에서 마물이 나왔다고 하는데…….”
황 방주가 탁자 위에 펼쳐 놓은 두루마리들을 살펴보며 말했다. 그는 손빈 일행과 있을 때는 예전처럼 편하게 이야기를 했다.
물론 그리 해 달라고 손빈이 말하기도 했지만, 상인 특유의 친화력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어느 쪽이건 예전처럼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으니 손빈으로서도 만족스럽다.
“결국 나중에 확인해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일세. 아직 제대로 된 건 없……. 어?”
말하던 황 방주가 서찰 하나를 들어 올렸다. 그러곤 손빈에게 건넸다.
“이건 직접 보는 게 낫겠네.”
손빈은 서찰을 받아 들었다. 그건 포탈라 공주에게서 온 것이었다.
바스락.
서찰을 펴자 작고 단정하게 쓰인 글자들이 손빈의 눈에 들어왔다.
‘글씨가 참 단아하네.’
그리 뛰어난 필체도 아니었고 문장도 매끄럽지 않았다. 하지만 글자 하나하나에 정성을 담아 적은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서찰은 정중하고도 예의 바른 감사의 인사와 격려로 시작하고 있었다. 어쩐지 포탈라 공주가 눈앞에 앉아 있는 것 같아서 손빈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내용에 손빈은 곧 얼굴을 굳혔다.
“뭐라는데?”
노군의 말에 손빈이 답했다.
“마물의 변이를 목격한 소녀가 있다는군요.”
포탈라궁에 전해지는 소식은 지역 사원의 고위 승려들이 보낸다. 포탈라 승군의 대신장에게 아무나 서찰을 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어린아이들이나 여인들의 말은 간혹 무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포탈라 공주는 다르다. 그녀는 모든 고통받는 중생의 반려다. 그런 그녀에게 한 소녀의 서찰이, 물론 그 지역 승려의 대필이긴 했지만, 직접 날아온 것이다.
“시커먼 옷을 입은 사람이 향로를 피우자, 검은 안개가 퍼지면서 늑대들이 마물로 변했다고 합니다.”
노군의 안색이 굳었다. 마물의 배후에 마교가 있다는 사실은 아직까지는 오대명왕 외에는 모른다. 즉 이 소녀의 목격은 충분히 신빙성이 있는 것이다.
“검은 안개에서는 토할 것 같은 썩은 냄새가 났다는군요. 소녀는 즉시 입을 막고 몰래 그 자리를 피했는데, 나중에 다시 가 보니 주변의 땅이 온통 검게 변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향로라……. 역시 그랬군. 무언가 기물(奇物)이 있었어.”
노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마교들은 기물의 힘, 혹은 그 기물을 매개로 하여 변이를 일으킨다는 이야기였다.
“그놈들의 거점을 찾는 건 어찌 됐냐?”
“아직입니다.”
손빈의 제안에 따라 동방명왕은 마교의 근거지로 예상되는 지역에 대해 탐색을 실시했다. 그러나 아직 발견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두 곳이 남았는데, 워낙 먼 지역이라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고 합니다. 추가로 다른 지역에 대한 탐색도 시작했다더군요.”
“마교는 본래 매우 은밀한 놈들이다. 단번에 머리를 부수지 않으면 아주 골치 아파져.”
모습을 감추려는 자들을 찾아내는 건 쉽지 않다. 게다가 서장은 대단히 넓고 광활하다.
아직 사람이 변이된 경우는 없다지만, 만일 그들이 도시 한복판에서 마물화를 일으킨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빨리 찾아야 할 텐데…….’
손빈은 마교의 거점을 추정한 자신의 판단이 맞기를 바랐다. 만일 그곳에서 마교의 근거지가 발견되지 않으면 그야말로 온 서장을 뒤져야 할 판이니까.
“서찰 내용은 그게 다냐?”
손빈이 들고 있는 서찰은 아직도 몇 장 더 남아 있었다. 노군의 말에 손빈은 다음 장을 펼쳤다.
“포탈라 승군에 들어오려는 지원자들이 많아졌다는군요. 남방명왕이 곤란을 겪을 정도라고 합니다.”
본래 존경받던 포탈라 승군이다. 대신장이 이끄는 마물 토벌군에 힘을 보태려 수많은 사람이 자원했고, 남방명왕은 이들을 선별하고 훈련 계획을 짜느라 고생을 해야 했다.
“어, 그리고…….”
서찰을 읽던 손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서원에 예물을 보내고 싶다는데요?”
“예물? 왜?”
노군의 반문은 당연했다. 이제 막 승군을 이끌고 토벌에 나선 사람에게 무슨 예물이란 말인가?
“글쎄요? 무슨 소린지 저도 잘…….”
서찰의 나머지는 예물이란 것들의 목록인 듯싶었다. 하지만 이곳의 글로 적혀 있어서 손빈으로선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좀 봐도 되겠나?”
황 방주의 말에 손빈이 서찰의 나머지 부분을 건네주었다. 서찰을 받아 든 황 방주는 감탄을 내뱉었다.
“대단하군. 서장 전역에서 들어왔는데?”
그 목록에는 각 지역의 유력자들과 거대 사원들은 물론이고 작은 마을의 주민들이 바친 예물을 지역 사원에서 모아 보낸 것까지 적혀 있었다.
말 그대로 서장 전역에서 손빈에게 예물을 보낸 것이다.
황 방주는 눈을 반짝이며 목록을 살폈다.
“사대 종파의 고승들과 대학승께서도 보냈고, 보리심의 주인과 포탈라 공주님께서도……. 오, 이런 것도 들어왔어?”
신나 보이는 황 방주와 달리 손빈은 어리둥절했다.
“아직 토벌도 끝나지 않았는데 왜 예물을 보낸다는 거죠?”
“이건 포탈라 승군의 대신장이자 팔부신중의 화신께 드리는 예물일세.”
황 방주가 설명했다.
“말하자면 손 공자를 진심으로 인정한다는 뜻이지. 그만큼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이런 식이라면 마물 토벌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엔 얼마나 들어올지 짐작도 안 되는군.”
손빈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엄청난 환영으로도 모자라 예물까지 보낸단 말인가?
“미리 말해 두지만 거절하는 건 대단한 무례일세. 네놈들의 인사 같은 건 필요 없다는 뜻이 되니까. 그야말로 철천지원수가 되어도 할 말이 없는 모욕이야.”
사양하려던 손빈이 멈칫했다. 황 방주가 여전히 목록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하라고 할까? 서원으로 보내라고 할까? 청원은 멀기도 하지만 이거 다 두려면 서원이 꽤 커야 할 텐데…….”
“커야 한다고요? 그렇게 많습니까?”
설마 하는 손빈의 물음에 황 방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많기도 하지만 그게, 거의 다 말이라서…….”
“말요? 타는 말?”
손빈의 반문에 황 방주가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차마고도란 말이 왜 생겼겠나? 이곳의 말들은 매우 훌륭해서 어디서든 좋은 값을 받을 수 있다네. 고지대에서만 나는 약초들도 제법 비싸고. 물론 천축에서 들어온 보물이나 경전 같은 것들은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고가의 것들이지만 그건 여기서도 워낙 귀한 데다 임자 만나기도 힘들어.”
기다렸다는 듯 흘러나오는 황 방주의 설명을 들으며 손빈은 노군을 돌아보았다.
“혹시 이곳에 예원이…….”
“있겠냐?”
말을 끝내기도 전에 노군이 눈살을 찌푸리며 반문한다. 하긴 이곳에 예원이 있을 리가 없다.
“당문으로 보내는 게 어떨까?”
문득 황 방주가 말했다.
“서장에서 제일 가깝기도 하지만, 이 정도의 물량이라면 처분하든 관리하든 당문 정도는 나서야 할 걸세. 하는 김에 우리 마방에도 조금 맡겨 주면 더 좋고.”
그의 말이 옳았다. 손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문으로 보내 주십시오. 일부는 황 방주님 마방에 넘기셔도 좋습니다.”
황 방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고맙네. 이 정도면 내 보수는 아예 안 받아도 될 정도군.”
옆에서 보기에도 알 정도로 황 방주는 싱글거리며 좋아했다. 아예 두루마리에 코를 박고 열심히 목록을 탐독 중이다.
“아, 여기 아까 말한 보물이나 밀교의 경전, 탱화 같은 것도 있는데? 이것도 당문으로 보낼까?”
말이 씨가 되었는지 입 벌어지게 비싸고 임자 만나기 힘들다는 것들이 튀어나왔다. 사실 손빈이 몰라서 그렇지, 이런 경전이나 보물 들은 가히 그 가치를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것들이었다.
“그건 예원으로 보내는 편이 낫겠군요.”
이런 분야에선 제법 큰손이라던 예원 원주 화월의 말이 떠올랐다. 그녀라면 이것들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관리해 줄 것이다.
“일단 당문으로 같이 보내도록 하고, 당화련 소저에게 서찰을 써서 부탁하도록 하지요.”
황 방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방의 방주인 그에게 이런 엄청난 품목은 어차피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보다는 서장의 훌륭한 말들이 그에겐 더욱 매력적이었다.
“역시 높은 사람을 알고 지내니 돈이 굴러 들어오는군. 그냥 여기서 해마다 말들만 보내도 오대상단 안 부럽겠는데?”
어차피 대설산의 눈이 녹아야 예물이건 서찰이건 가겠지만, 어쨌거나 황 방주는 대단히 즐거운 듯했다.
반면 손빈은 쓴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을 이렇듯 존중해준다니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론 점점 빠져나오기 힘들어지는 느낌이기도 하다.
손빈은 문득 손에 쥔 포탈라 공주의 서찰을 내려다보았다. 마지막에 쓰인 문장이 손빈의 시선을 붙들었다.
“뭔데?”
문득 노군이 묻는다. 손빈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활불’께서 ‘용의 자취를 따르라’고 조언하셨다는군요.”
“침푸 계곡에 있던 그 활불?”
“네.”
손빈은 가만히 서찰을 내려다보았다. 포탈라 공주의 단아한 글씨를 바라보며, 손빈은 그녀와 함께 방문했던 라싸 침푸 계곡의 ‘활불’을 떠올렸다.
“이분이 제가 말씀드렸던 ‘활불’이십니다.”
어두컴컴한 토굴 속에서, 포탈라 공주는 공손한 어조로 손빈에게 말했다. ‘활불’은 주름 가득한 얼굴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빈에게 말했다.
“이런 누추한 곳에 찾아와 줘서 고맙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손빈이라 합니다.”
손빈은 정중한 태도로 예를 표했다.
라싸 인근 침푸 계곡에서 수도를 하고 있는 이 ‘활불’은, 한때 포탈라의 최고위 승려 중 한 명이었다고 했다.
선대 보리심의 궁주를 가르쳤고, 포탈라 공주의 스승이었던 그는 어느 순간 모든 지위와 권력을 포기하고 이름조차 버린 채 침푸 계곡에 은거했다.
현재 그의 거처는 어두운 토굴이었고, 낡은 가사 밖으로 드러난 그의 앙상한 팔다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측은지심을 일으키게 했다.
하지만 그 깊고 청명한 눈동자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맑고 깨끗해서 절로 고개가 숙여질 정도였다.
“자네도 오랜만이군.”
활불이 황 방주에게 말했다. 황 방주는 감격한 눈빛으로 합장하며 말했다.
“네,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감정이 치솟은 탓인지 황 방주는 목이 멘다. 활불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옳은 길을 택했네. 비록 고통스러웠겠으나 그 인과가 오늘날 자네를 큰길로 인도하였으니 기쁘기 그지없네.”
황 방주는 첫 상행을 실패하고 사천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신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의 마방은 사실상 무너지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사천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활불이 말한 대로 ‘기회’가 황 방주를 찾아왔다.
“너도 수고했구나.”
활불은 포탈라 공주를 보며 말했다. 포탈라 공주의 눈동자에도 눈물이 글썽인다.
“너는 중생들을 위해 기꺼이 죽음의 길을 택했다. 오늘 이 땅의 사람들이 살길을 찾은 것은 오로지 너의 공이다.”
“모든 것이 활불님의 말씀 덕분입니다.”
눈물 젖은 눈으로 포탈라 공주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손빈을 바라보았다.
“활불님 덕분에 저는 손 공자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알아보지 못했으나, 손 공자님이야말로 고통받는 중생들의 살길이었습니다.”
그건 포탈라 공주의 진심이었지만 손빈이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과분한 찬사였다. 얼굴이 붉어진 손빈이 헛기침을 하며 그녀의 시선을 피하는데 문득 활불이 말했다.
“대일여래의 빛을 가진 자여.”
활불의 목소리는 마치 먼 곳에서 울려오는 종소리처럼 은은했지만 마음을 흔드는 울림이 있었다.
“머지않아 그대는 세상의 끝으로 가게 될 것이네. 그리고 그곳에서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의 진실을 마주하게 되겠지.”
마치 푸른 하늘처럼 투명한 눈동자로 활불은 말을 이었다.
“그대는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일세. 그리고 그대의 선택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바뀌게 될 것이네. 아주, 아주 많은 사람들의 삶이 말일세.”
손빈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이 대단히 중요한 말이라는, 무언가 막연한 느낌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제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합니까?”
자신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음을 손빈은 느낄 수 있었다.
활불은 빙긋 웃었다. 그리고 앙상한 손가락을 들어 손빈의 가슴을 가리켰다.
“그대의 마음이 가는 대로, 그리고 그대의 빛이 이끄는 대로.”
온화한 미소를 지은 채로 활불은 말했다.
“그것이면 족하네.”
손빈은 혼란스러운 눈동자로 활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활불은 그저 미소를 머금을 뿐,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았다.
“용의 자취를 따르라고?”
노군의 목소리에 손빈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처음 ‘활불’에 대해 전해들은 노군은 ‘마음이 가는 대로 하라고? 그런 말은 나도 하겠다’며 투덜거렸지만 더 이상 무어라 하지는 않았다.
지금도 노군은 활불이 했다는 조언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용의 자취라면 어딘가의 지명인가? 아니면 서장밀교에서 쓰는 단어일 수도 있겠지. 하여간 도사건 땡중이건 다들 애매하게 돌려 말하는 데는 도가 터서…….”
투덜거리던 노군이 문득 말했다.
“무제와 옥룡은 어디로 갔지?”
먼저 떠난 사자혁과 옥룡의 행방은 혈봉을 호위하는 귀견수라가 표식이나 서찰을 남기기로 했다.
당장은 포탈라 승군의 일이 먼저라 아직 찾아보진 않았다. 그저 라싸에서 서쪽으로 향한 것만 알 뿐이다.
“찾아보도록 하지요.”
노군은 귀견수라가 남겼을 법한 표식들을 적어 손빈에게 건네주었다.
그 내용은 라싸에 전달되었고, 준마를 탄 날랜 전령들이 즉시 라싸 서쪽의 도시들을 향해 질주해 나갔다.
그리고 며칠 후, 서장 고원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달의 성[月城] 계곡’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발견되었다는 보고와, 인근 소도시에서 귀견수라의 표식을 찾았다는 소식이 동시에 손빈에게 도착했다.
드넓은 서장 고원에도 어느새 파릇파릇 풀들이 돋아나기 시작하던, 어느 추운 봄날의 일이었다.
(작가의 말)
손빈: 어째서 모든 것을 내려놓으셨습니까?
활불: 나는 장막을 들추고 미래를 엿보았지만, 거기엔 오직… 야근뿐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