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365)
낙향문사전-365화(365/494)
365화. 대마정(大魔鼎)
죽음에서 다시 일어난 괴인들은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천천히 다가왔다. 그 모습은 마치 살아 있는 시체를 보는 것같이 섬뜩하고 혐오스러운 광경이었다.
“으악.”
서린이 질겁하는 사이, 사수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괴인들을 향해 미명을 겨누었다.
당월아의 표정은 면사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 역시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는 건 검희 정도다.
“칫.”
노군은 혀를 찼다. 그는 소령을 빼어 들고 손빈 앞에 있는 마인(魔人)을 경계했다. 하지만 마인은 오히려 천천히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헛되이 발버둥 쳐 보아라.”
폐허가 된 궁전의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추며, 쇳소리 같은 음성으로 마인이 말했다.
“이 땅은, 그리고 하늘 아래 모든 것은 그분의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서야 너는…….”
마인의 붉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오늘의 선택을 후회하게 되리라.”
그것은 마치 저주와도 같았다. 그 말을 끝으로 마인은 완전히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어, 어떻게 해요?”
당황한 서린의 목소리. 이런 경험은 난생처음인 서린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사수연이나 당월아는 물론이고 검희도 마찬가지다.
아니, 세상에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 있기는 할까 싶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노군 역시 처음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노군은 눈살을 찌푸리며 주저 없이 외쳤다.
“일단 날려 버려!”
쩌렁쩌렁한 노군의 외침은 동요하던 일행을 단숨에 일깨웠다. 사수연과 당월아, 검희와 서린은 즉시 검은 괴인들을 향해 짓쳐 들었다.
파파팟.
사수연은 눈앞의 괴인을 향해 날았다. 푸른 기세가 일렁이는 미명의 칼날을 앞에 두고서도 괴인은 오히려 조소를 흘렸다.
“크크큭.”
쉭.
창백한 괴인의 손이 허공을 그었다. 아무것도 없는 맨손이었지만 사수연은 그 손끝에서 터져 나오는 위험을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휘릭.
사수연의 날씬한 몸이 공중에서 유연하게 뒤틀리는 것과 동시에 엄청난 기세가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콰아앙.
그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창처럼 폐허를 직격했다. 단번에 흙벽이 바스러지고 그나마 남아 있던 지붕이 무너져 내린다.
쉬익.
그사이 사수연의 검, 미명이 푸른 기세를 내뿜으며 괴인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무시무시한 미명의 검기 앞에서도 괴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대로 괴인이 둘로 갈라지는가 싶던 바로 그 순간.
훙.
괴인의 모습이 사라졌다. 빠르게 움직인 것도, 눈을 속인 것도 아니었다. 사수연의 눈앞에서 말 그대로 없어진 것이다.
‘웃!’
사수연은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자신의 뒤로 덮쳐드는 섬뜩한 감각을 느꼈다.
상황을 파악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사수연은 즉시 몸을 틀며 허공에 검을 흩뿌렸다.
카카캉.
괴인의 창백한 맨손과 사수연의 미명이 부딪치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놀랍게도 괴인은 맨손으로 사수연의 미명을 받아 낸 것이다.
게다가 미명의 칼날을 통해 전해 오는 반발력은 묵직하기 이를 데 없어 가히 절정고수의 그것에 버금간다.
하지만 놀랄 여유조차 없었다. 괴인이 이미 다른 손을 들어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예비 동작도, 내력을 모으는 느낌조차도 없었다.
콰과광.
가벼운 손짓만으로도 여지없이 터져 나오는 엄청난 파괴력.
사수연이 서 있던 자리가 단숨에 박살 나고 흙먼지가 사방을 가린다. 하지만 사수연은 그곳에 있지 않았다.
“크크, 큭.”
괴인이 거친 쇳소리 같은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 웃음을 끝맺지는 못했다. 어느새 괴인의 가슴에 미명의 칼날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서걱.
미명은 그대로 괴인을 둘로 갈랐다. 조금 전, 사수연은 괴인의 기세를 피하는 대신 오히려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퍼석.
피도, 비명도 없었다. 괴인은 그대로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비록 괴인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외사의 경지에 든 사수연을 이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검은 마기가 슬금슬금 괴인을 향해 모여들더니 다시 괴인의 몸을 수복하기 시작한다.
스륵, 스륵.
끈적한 마기가 꿈틀대는 그 괴기한 모습은 사수연으로 하여금 본능적인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당월아나 검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월과 빙검은 괴인들을 둘로 갈라 버렸지만, 역시나 검은 안개 같은 마기가 다시금 괴인들을 향해 모여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괴인들이 다시 일어나는 건 금방이다. 괴인의 조소는 아마도 이 끝나지 않는 싸움을 의미한 것이리라.
“비켜 봐!”
그때였다. 노군이 사수연에게, 정확히는 사수연이 베어 버린 괴인을 향해 날아왔다.
퍼억.
노군은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잘려나간 괴인의 반쪽을 발로 차 버렸다.
그야말로 끔찍한 광경이었지만, 상대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 탓인지 사수연도 그저 살짝 눈살을 찌푸릴 뿐이다.
후웅.
괴인의 잔해는 엄청난 속도로 허공을 날았다. 그리고 봉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는 검은 안개의 경계를 통과할 즈음이 되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훅.
괴인의 모습이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입고 있던 외투는 물론이고 괴인의 몸 자체가 검은 안개 사이로 녹아들 듯 없어진 것이다.
“이런 젠장.”
노군이 인상을 쓰며 중얼거리더니 남아 있던 괴인의 또 다른 반쪽을 바라보았다.
후우우우웅.
끈적한 검은 마기가 꿈틀거리며 괴인의 몸을 구성해 나가고 있었다. 아예 사라진 부분을 새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음, 그나마 아까보다는 좀 느린가?”
노군의 말처럼 확실히 느려졌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괴인을 쓰러뜨린다 해도 의미가 없다. 계속 다시 일어날 테니 말이다.
“제가 해 보겠습니다.”
손빈이 나섰다. 그의 백로는 나락의 마기를 베었다. 분명 이 괴인들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지금은 이것들보다 사라진 그 마인이 문제다.”
노군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죽여도 되살아나는 끔찍한 괴인들조차 노군에겐 ‘이것들’ 정도에 불과했다.
“그놈, 갑자기 모습을 감춘 것이 수상해. 게다가 뿌리를 자르지 않으면 어차피 이 일은 끝나지 않아.”
“뿌리라면…….”
손빈의 반문에 노군이 눈썹을 씰룩였다.
“이 빌어먹을 마기가 흘러나오는 곳이지. 마인 놈이 사라진 방향이기도 하고.”
노군은 마인이 사라진 궁궐의 폐허 안쪽을 노려보았다. 그곳에서 검은 마기가 안개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자!”
그 말과 동시에 노군은 남아 있는 괴인의 잔해를 발로 뻥 차버렸다. 그리고 즉시 궁궐의 폐허로 몸을 날리려 했다.
“자, 잠깐만요. 저는요?”
노군의 발을 붙든 목소리는 울상이 된 서린의 것이었다.
서린의 홍진만리는 도가 기공의 특성상 다른 사람들보다 효과적으로 괴인을 압도하고 있었지만, 정작 마무리를 짓지는 못하고 있었다.
일단 괴인을 절단할 수단이 없는 것이다.
“그냥 손으로 찢으면 되잖아?”
노군의 말은 가차 없었다.
사실 서린의 조공(爪功)이라면 괴인을 둘로 찢는 것 정도는 간단하다. 무당의 정통 내가 기공을 익힌 데다가 황학 진인의 진전을 이은 서린이 아닌가?
“안 돼요! 건드리기도 싫단 말이에요.”
후웅, 콰아앙.
울상이 된 서린은 괴인의 공세를 유연한 몸짓으로 피하며 홍진만리를 휘둘렀다. 홍진만리의 기세에 휩쓸린 괴인이 균형을 잃고 바닥에 거꾸러진다.
마치 어린아이 팔 비틀듯 괴인을 농락하고 있으면서도 마지막 결정타는 날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으이구.”
노군이 이마를 짚는데 문득 한 줄기 백색 검기가 피어올라 괴인을 반으로 가르고 지나갔다.
쉭.
단 일검으로 괴인은 간단히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어 버렸다. 몸을 일으키던 괴인은 비명도, 신음도 없이 그대로 무너졌다.
“어…….”
서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검기는 바로 검희의 것이었다. 단번에 괴인을 갈라버린 검희는 특유의 차가운 표정으로 서린을 보며 말했다.
“놀 시간, 없어.”
그건 분명 날카로운 꾸중이었지만 서린은 오히려 감동했다.
“고, 고마워. 누나.”
자신의 곤란을 구해 준 검희가 어찌 고맙지 않을까? 서린은 두 손을 모으고 눈물까지 글썽이며 검희를 올려다보았다.
“누나, 좋은 사람이었구나…….”
덩치만 큰 순한 강아지가 눈물을 글썽이며 올려다보는 것 같은 그 모습에 검희는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어? 당황해하네?’
손빈은 지금 검희가 보인 표정 변화를 어쩐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수연도 마찬가지인지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뭐하냐? 빨리 가자!”
퍼억.
노군이 괴인의 잔해를 발로 찼다. 서린도 몸서리를 치며 홍진만리를 휘둘러 괴인의 남은 부분을 멀리 날려 버렸다.
후우우우웅.
사방에서 몰려드는 끈적한 검은 마기는 빠른 속도로 괴인들의 몸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손빈 일행은 이미 궁궐 폐허로 나는 듯이 달려가고 있었다. 특히나 서린은 아예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탁.
“어디로 가지요?”
제일 먼저 폐허 안으로 들어온 사수연이 주위를 돌아보며 묻는다.
궁궐의 폐허는 생각보다 좁았다. 아무래도 황토산 봉우리 정상에 세워진 것이니만큼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사방이 온통 무너진 잔해들로 뒤덮여 있어서 금방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래다!”
손빈을 안고 달려온 노군이 외쳤다. 사수연은 노군이 가리킨 방향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커다란 계단을 발견했다.
‘웃.’
사수연이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지 않아도 섬뜩한 검은 안개가 자욱한데, 지하로 내려가기까지 해야 한다면 누구라도 주저할 수밖에 없으리라.
타닥.
그러나 노군은 바로 지하 계단을 향해 몸을 날렸다. 사수연은 입술을 깨물고 노군의 뒤를 따랐다.
검희와 당월아, 서린 역시 주저하지 않았다. 특히나 서린은, 뒤에서 괴인들이 따라올 거라는 생각 때문인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렸다.
파팍.
지하 계단은 생각보다 더 깊고 어두웠다. 평범한 어둠이라면 이들의 눈을 가릴 수 없겠지만 이 어둠은 마기다.
제아무리 고수라도 이런 곳에서 제대로 방향을 찾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일행은 엄청난 반사 신경으로 아슬아슬하게 벽에 부딪히는 것을 피해 가며 지하 계단을 질주해 내려갔다.
지하 계단은 다른 많은 층들을 지나며 땅 밑 깊숙한 곳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일행은 다른 층엔 눈도 돌리지 않았다. 마기는 저 아래, 가장 깊은 밑바닥에서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탁.
얼마나 깊이 내려왔을까? 어느 순간 갑자기 계단이 끝났다. 그리고 일행은 넓은 지하 공간 한가운데 자신들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놈이 어디로 갔지?”
노군은 그렇게 말하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사람의 움직임 같은 건 없었다. 그저 희미하게 주위를 밝히는 등불만이 띄엄띄엄 켜져 있을 뿐이다.
손빈도 노군의 팔에서 벗어나 주변을 돌아보았다. 서린이 얼른 다가와 손빈 옆에서 마기를 밀어낸다.
‘여긴 왕실의 내전……. 아니, 연회장 같은 곳인가?’
희미한 등불이 밝힌 사방 벽에는 이곳의 옛 영화를 말해 주는 벽화가 가득했다.
서장밀교 특유의 낯 뜨거운 탱화는 물론이고, 왕국의 귀족들과 타국의 사절들,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들의 춤추는 모습이 금색과 은빛의 화려한 색채로 펼쳐져 있었다.
채색이며 화풍이 엄숙하기보다는 화려하고 현란한 것을 보아 아마 왕가의 내전이거나 연회장 같은 곳이 아닌가 싶었다.
‘이건 정말 대단하네.’
손빈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황량하게만 보이던 달의 성 계곡에 이런 엄청난 부와 영화를 누리던 왕궁이 있었던 것이다.
벽화 속에 그려진 사절들 중에는, 천축은 물론이고 파사의 복식을 입은 사람들마저 있었다. 포탈라궁도 대단한 건축물이었지만 이 궁전은 그야말로 비경(秘景)이 아닐 수 없다.
손빈이 눈을 빛내며 벽화를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옆에 붙어 있던 서린이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린다.
“으으, 진짜 끔찍한 냄새네요.”
그건 이곳의 마기가 무척이나 강하기 때문이리라. 더 이상 마기가 짙은 곳을 찾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사방이 온통 끈적한 마기로 가득하다.
노군이 금방 방향을 찾지 못한 것도 그 탓이다. 거기에 마기를 밀어내기 위해 모두가 기세를 뿜어내고 있으니, 제아무리 노군이라도 감각이 혼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크아아아
“저기다!”
섬뜩한 괴성이 주위를 울리는 것과 함께 노군이 몸을 날렸다.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같은 건 아예 없는 듯했다.
“서린아, 손 공자님을!”
사수연이 노군을 뒤따르며 외쳤다. 서린은 즉시 손빈을 안고 바닥을 박찼다.
노군이 향한 곳은 둥근 회랑 같은 곳이었다. 기묘한 장식과 화려한 벽화가 가득한 짧은 복도를 지나자 곧 커다란 지하 공간이 나타났다.
어째서 깊은 땅속에 이런 커다란 방이 있는지, 그리고 이곳이 본래 무엇을 위한 곳인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뭉클.
지하 공간 정중앙에 자리한 거대한 검은 향로에서 마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거…….”
눈살을 찌푸린 노군의 말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 검은 향로가 바로 마기를 뿜어내고 있는 근원이라는 것을.
“이곳은.”
음산한 쇳소리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웅.
노군은 즉시 소령을 꺼내 들었다. 소령이 푸른 기운을 피워 올리며 소리를 낸다.
사수연과 당월아, 검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린은 홍진만리를 꺼내 들고 손빈 앞을 지키고 섰다.
“잊혀진 왕국을 다스리던 옛 왕의 법당(法堂)이다.”
검은 향로 뒤에서 마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검은 외투를 눌러 쓴 모습이었지만, 그의 붉은 눈동자는 섬뜩할 정도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가장 깊고 비밀한 이 법당에 왕은 자신만을 위한 불상을 세웠다. 그리고 이곳을 이 땅의 중심이자, 지극히 정결한 땅[淨土]이라 선포했지.”
왕이 이곳에 불상을 세웠다는 말에 손빈은 힐끗 위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짙은 마기 탓인지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불상의 흔적 같은 건 물론이고 천장조차 확인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끝이 있는 건 분명하리라. 이곳은 지하이고 천장은 반드시 있어야 할 테니까.
“왕은 이 법당을 떠나지 않았다. 머나먼 변경까지 쫓겨 와야 했던 자신의 두려움을 달래 줄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
말을 잇던 마인이 문득 웃음을 흘렸다. 어둠보다 짙고, 텅 빈 허공보다 허탈한 웃음을.
“우습지 않나? 수많은 사람들의 피로 만들어진 이곳에, 자신을 두려움에서 구해 줄 불상을 세우다니 말이다.”
손빈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백성들을 가혹한 노역에 동원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비일비재했다. 그리고 그들의 피 위에 건설된 건축물에 가당치 않은 권위를 부여하는 일도.
“결국 대마정(大魔鼎)이 이곳에 자리했으니, 그는 자신이 그리도 두려워하던 것을 끝내 피하지 못한 셈이지.”
불타오르는 마인의 붉은 눈동자가 손빈을 똑바로 향했다.
“욕계에 매여 영원히 고통받는 끝없는 윤회의 운명을.”
“잡설은 그만하고.”
의미심장한 마인의 말을 단숨에 잡설로 치부한 노군이 툭 던지듯 말했다.
“그러니까 결국 대마정인가 뭔가 하는 이놈이 바로 마물들을 설치게 만든 원흉이라는 것 아냐? 그렇지?”
화르륵.
마인의 눈동자가 내뿜는 붉은 빛이 강렬하게 일렁인다. 그 모습에 노군은 피식 웃었다.
“말 좀 잘랐다고 성질은……. 그보다 내가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
노군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을 이었다.
“왜 이런 곳으로 도망 온 거냐? 너희들 다섯으로도 우리 빈이를 당해 내지 못했는데 혼자서 어쩌려고? 설마 저 대마정 따위가 우리 빈이를 어찌할 수 있다고…….”
말하던 노군은 아차 싶은 표정이 되었다. 다른 한 가지 가능성, 아니 이곳에 들어서기 전에 이미 보았던 광경이 머릿속을 스쳤기 때문이다.
검은 안개가 마물을 또 한 번 변이시키던 그 끔찍한 광경이.
“……대마정은 그저 그릇에 불과하다.”
아니나 다를까? 마인의 붉은 눈빛은 완연한 조소를 머금은 채 노군을 바라보았다.
“이 세상에서 나락의 마기를 견뎌 낼 수 있는 아주 드문, 그러나 그저 그뿐인 물건이지. 허나 이 대마정이 나락의 마기를 충만히 머금게 되면.”
―끼이이이이잉.
대마정이 울기 시작했다. 그 음산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노군은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큭.”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귀곡성(鬼哭聲).
어쩌면 무수한 비명 같기도 하고, 수많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도 같은 귀곡성이 법당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귀곡성 속에서 마인은 말했다. 비틀리고 일그러진, 더 이상 사람의 것이 아닌 미소로.
“마천(魔天)의 힘이 이 땅에 강림한다.”
순간, 대마정에서 터져 나온 검은 마기의 폭풍이 잊혀진 왕의 법당을 가득 메워 버렸다.
(작가의 말)
마인: 크크크, 이것이 2차 진화다!
노군: (짜증)빨리 마이크 안 치워? 하울링 나잖아!
마인: 아, 죄송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