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380)
낙향문사전-380화(380/494)
380화. 다가오는 암운
손빈 일행은 무사를 따라 성채로 들어섰다. 하지만 예상했던 살벌한 기세 같은 건 하나도 없고, 머리에 두툼한 붉은 천을 두른 무사들이 이곳저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나누거나 무언가를 먹거나 하고 있었다.
“여긴 뭐랄까요…….”
사수연이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참 자유분방하네요.”
손빈도 쓴웃음을 지었다. 시장 바닥 같은 거리에서도, 길에서 사는 것 같은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그리고 이곳 성채의 분위기에서도 풍겨나는 것은 단 한 가지다.
여긴 모든 게 느슨하다. 절로 축축 늘어지게 하는 이곳의 더운 날씨처럼 말이다.
성채 건물 앞에 도착한 무사는 말에서 내렸다. 손빈 일행도 일단 말에서 내렸다.
저벅, 저벅.
손빈 일행을 데려온 무사는 자신의 상관에게 다가가 임무를 완수했음을 보고했다.
“말씀하신 이방인들을 데려왔습니다.”
“그래?”
그의 상관은 힐끔 손빈 일행을 쳐다보고는 말했다.
“옥에 처넣어.”
저들은 이방인이다. 뇌물을 바친 것도 아니고 유력자와 아는 사이도 아니다. 아직 죄는 정해지지 않았다지만 존중해 줄 이유도 없는 것이다.
상관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고개를 숙여 하던 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무사는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었다.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
“회교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상관도 다시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상관은 면사를 쓴 당월아를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귀에 무사의 말이 이어졌다.
“죄가 정해지지 않았는데 회교도를 구금하면 영주님이 질책하지 않으실까요? 그렇지 않아도 오늘 중앙에서 무타시브가 오지 않았습니까?”
독실한 회교도인 선대 황제는 무타시브라 불리는 종교 검열관을 두었다. 무타시브는 타 종교인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징수할 뿐만 아니라 회교의 법을 강제했으며 사안에 따라서는 생사여탈권마저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어느 곳에서는 천축교의 옛 사원조차 허물어 버렸다고 하니, 이곳의 무사들처럼 명목상 회교로 개종은 했으나 천축교의 관습을 따라 사는 이들에게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젠장.”
상관은 나지막이 욕을 했다. 만일 이 이방인들이 영주나 무타시브 앞에서 회교도임을 호소하면 자신들의 처지가 매우 곤란해지리라.
“회교도인 거 확실해?”
“말은 안 통하던데요. 그래도 혹시 타국의 회교도일 수도 있고…….”
확실히 맞는 말이다. 이곳 천축은 파사 사람들은 물론이고 저 멀리 땅끝에서도 상선이 오는 대제국이니까.
상관은 잠시 갈등했다. 하지만 그리 길지는 않았다. 회교도를 옥에 구금했을 때 발생할 문제보다는, 뇌물도 받지 않은 채 저들을 잘 대해 주는 편이 훨씬 낫다.
“‘기다리는 곳’으로 데려가.”
‘기다리는 곳’은 영주의 재판을 받을 이들이 머무는 일종의 임시 구금 시설이다. 재판이 열릴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하지만 적어도 옥(獄)은 아니다.
그 차이는 대단히 커서, 감옥에 비하면 ‘기다리는 곳’은 거의 천국이라 할 수 있었다. 적어도 그곳에선 사람대접을 받을 테니까.
이 정도면 타국의 회교도에 대한 배려로는 충분하리라 생각하며 상관은 다시 자신의 일로 돌아갔다.
“알겠습니다.”
“무기는 빼앗아 두고.”
무심히 던지는 상관의 말에 무사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슬쩍 기울였다.
저벅, 저벅.
손빈 일행에게 돌아온 무사는 오만한 표정으로 턱짓을 했다.
“저쪽이다.”
손빈은 그가 지시한 방향을 돌아보았다. 허름하고 지저분하지만 경계가 유독 삼엄한, 사람을 구금하는 곳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는 건물이 그곳에 서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사수연이 나지막이 묻는다. 손빈은 허름한 건물을 쳐다보고 나서 무사를 보았다.
“영주님이 너희를 심문하실 것이다. 죄가 없다면 풀려날 것이니, 순순히 명에 따라라.”
허리에 손을 얹은 무사가 사뭇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을 당월아가 나지막이 통역해 주었다.
“죄가 없다면 풀려날 거래요. 그리고 우리는 영주를 만나게 되나 봐요.”
영문도 모른 채 구금되는 건 바라지 않는 일이지만 마을과 아이들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 순리대로 해결할 수 있다면, 조금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그렇게 하는 편이 낫다.
“그럼 우선 이 무사의 말대로 하고, 황 방주가 오는 것을 기다리기로 하지요.”
서린은 금방 노군과 황 방주를 찾을 것이다. 그리고 황 방주가 오면 이들의 오해도 풀 수 있으리라. 어차피 손빈 일행은 지나가는 여행자가 아닌가? 그저 이곳을 떠나 버리면 그만인.
“그래요.”
사수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는 건 언제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손빈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제아무리 성채 한복판이라지만 사수연과 당월아가 진심을 내면 여길 벗어나는 건 일도 아니다. 그러니 구금이니 뭐니 해도 그녀들의 입장에선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물론 기분은 나쁘겠지만.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무사를 돌아보며 손빈은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네. 그렇게 할게요.”
여전히 여자아이 같은 그 어투에 무사는 사뭇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자신이 얼마나 신중하고 지혜롭게 처신했는지 이 운 좋은 이방인들은 아무것도 모르리라 생각하면서.
‘기다리는 곳’에 들어가기 전에 손빈은 백로를 풀어 놓아야 했다. 검을 압수한 천축 무사는 백로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화려한 장식의 천축 검에 비하면 백로의 겉모습은 거의 나무 막대기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만일 백로를 뽑아 봤다면 상황은 아주 달라졌겠지만 말이다.
간단한 몸수색 외에는 별다른 검사도 없었다. 심지어 먼저 들어와 있던 사람들이 창문 너머로 가족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먹을 것을 받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둡고 더러운 것도 분명해서,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은 곳임은 분명했다.
‘수연 소저나 월아 소저는 괜찮을까?’
사수연과 당월아는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아마도 남녀 구분을 한 것 같은데, 조금 걱정이 들었지만 지금 상황으로 보면 별다른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서성거리고 있었을까?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갈 무렵 문득 작은 소리가 손빈의 귓가에 들려왔다.
―형.
그건 분명 서린의 전음이었다.
―우리 왔어요.
“서린아.”
놀랍고 반가운 마음에 손빈이 말했다. 서린이 벌써 노군과 황 방주를 찾아서 데려온 것이다. 헤어진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해 보면 서린이 얼마나 다급하게 움직였는지 알 만했다.
―지금 들어갈 거예요.
잠시 후, 입구 부근에서 황 방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곳을 지키는 무사와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 듯하더니, 곧 황 방주가 홀로 안으로 들어선다.
“아이쿠, 이거 고생했네.”
황 방주가 너스레를 떨며 웃는 표정으로 말한다. 손빈도 마주 웃으며 답했다.
“괜찮습니다. 고생이야 황 방주께서 하셨지요.”
그 말에 황 방주는 헛기침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노군과 함께 날아오듯 한지라 고생을 하긴 했다.
“알아보니 그리 큰일은 아니더군. 요즘 시국이 수상해서 일단 잡아 온 모양인데, 곧 영주가 심문할 것이라고 하니 잠시만 기다리면 될 걸세.”
그사이에 상황을 파악한 황 방주의 능력에 손빈이 놀라는데 황 방주가 씨익 웃으며 손가락으로 원을 만들어 보였다.
“뭐, 사람 사는 데가 다 비슷하지. 그리고 영주가 심문할 때는 나도 같이 있을 것이니 걱정 말게. 배가 고프진 않나?”
“저는 괜찮습니다. 수연 소저나 월아 소저 쪽은 어떻습니까?”
“그쪽도 괜찮을 걸세. 이곳의 여인을 고용해서 수발을 들도록 했거든. 남자는 갈 수 없는 곳이라서.”
손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황 방주의 빈틈없는 일처리에 새삼 감탄했다.
“노군 어르신은요?”
“부근에 계시네. 서린 소협도 있고.”
손빈 일행이 잡혔으니 노군과 서린도 조심해야 한다. 황 방주 홀로 들어온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일 것이다.
“자네가 잡혀갔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불같이 화를 내시더군. 아예 이곳을 뒤집어 버리시겠다는 걸 말리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손빈은 쓴웃음을 지었다. 노군의 성격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리라.
“아, 저기.”
손빈은 힐끔 입구의 무사를 바라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천축 무사가 손빈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할 테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표식은 찾았습니까?”
귀견수라가 남긴 표식이나 서찰을 찾았느냐는 물음이다. 황 방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일세. 노군 어르신께서도 이상하게 여기시던데? 어쨌든 당장은 자네들이 나오는 것이 먼저이니 나중에 이야기하세.”
“네. 수고하셨습니다.”
손빈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로써 잠깐 동안의 우발적인 사건은 끝나리라고, 손빈은 그렇게 생각했다.
* * *
지역 영주를 뜻하는 호칭인 ‘라자’는 본래 왕이라는 의미다. 제국을 건설한 초대 ‘샤’들이 토착 중소 왕국들을 하나하나 정벌하는 대신 포용하는 정책을 택했기 때문이다.
손빈이 머물던 지역의 영주, ‘마하라자’ 역시 그런 ‘라자’ 중 한 명이었다. 대대로 이 지역을 다스려오던 그는, 지금 자신의 소박하고 오래된 궁에서 매우 불편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야, 황제 폐하께서 마하라자의 충성심을 얼마나 높게 평가하시던지 말이지요.”
중앙에서 온 장군, 바하두르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장군이라는 직책과는 사뭇 거리가 먼 것 같은, 가는 눈매에 염소수염을 가진 그는 화려한 자리에 기대 앉아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저 마땅히 할 바를 했을 따름이오.”
온화한 분위기를 지닌 노년의 마하라자는 정중하게 대답했다. 그러곤 장군 옆에 앉아 있는 흰 수염의 노인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는 마하라자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반쯤 눈을 감은 채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셰흐라고 했던가?’
장군은 그 노인을 ‘셰흐’라 소개했다. 사실 ‘셰흐’는 부족의 수장이나 원로를 지칭하는 일반적인 호칭이다. 그러니 결국 이 노인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셈이다.
“크허, 과연 대대로 이 땅을 지켜 오신 마하라자십니다. 충성심이 아주 남달라요.”
사뭇 가벼운 장군의 목소리에 마하라자는 고개를 돌렸다. 바하두르 장군은 만면에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그러니 칠 황자 전하께서도 기대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하라자께서 이번 반란군 토벌에 큰 역할을 해 주실 것을 말입니다. 하하하하.”
마하라자는 대답 대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바하두르 장군이 말하는 ‘큰 역할’이 곧 막대한 재정과 군사를 보내라는 의미임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주 좋은 궁입니다. 오오, 저건 파사에서 가져온 예술품 아닙니까? 저런 건 아주 비싸지요?”
궁에 장식된 조각을 보며 장군이 짐짓 과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한순간 그의 시선이 탐욕스럽게 빛나는 것을 마하라자는 놓치지 않았다.
‘쯧.’
마하라자는 속으로 혀를 찼다. 어쩌다 이런 소인배 같은 인물이 중앙의 장군직에 올랐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다. 그런 내심을 감추고 마하라자는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장군께서도 아시겠지만 올해 우리 영지의 상황이 매우 좋지 못하오. 잦은 분쟁으로 통상로가 막히면서 상인들도 줄었고, 게다가 작황마저 예년에 크게 미치지 못하니…….”
“어이쿠, 저런. 영지가 어려우시군요.”
마하라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하두르 장군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곧 그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 번져 간다.
“허나 걱정 마십시오. 본래 용병은 흉년일 때 더 많이 모이는 법이지요. 밥만 준다고 하면 아주 개떼처럼 모여든다니까요? 크하하하.”
영지민의 불행 따윈 아랑곳 않는 그 웃음은 마하라자의 귀에 매우 거슬렸다. 그러나 화를 낼 수는 없었다. 바하두르의 한마디에 이 영지가 치러야 할 출혈의 규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아, 그리고 이건 딴 이야기입니다만.”
문득 바하두르 장군이 목소리를 낮추며 사뭇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전하듯 말했다.
“함께 온 무타시브들의 염려가 크더군요. 이 지역의 개종 상황이 유독 지지부진한 것이, 혹시 영지 내에 불손한 움직임이라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건 이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선대 황제는 종교세와 무타시브를 통해 대대적인 개종을 밀어붙였으나 그 성과는 미미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천축교는 이미 논리나 이해타산의 범주를 넘어 삶의 형태 그 자체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대 황제의 회교 중심 정책은 그저 제국만 갈라놓았을 뿐이다. 당장 지금의 혼란이 그 결과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허허.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소? 영주인 나부터가 회교의 법에 어긋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고 있소이다.”
그러나 마하라자는 통렬한 비판 대신 어색한 웃음으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큰 영주’라는 의미의 ‘마하라자’라는 호칭이 말해 주듯 그의 가문 역시 대대로 천축교도였기 때문이다.
과거 위대한 관용과 자유의 시대는 지나고, 이제 제국은 억압과 분열의 시기로 접어든 지 오래다. 그러니 비록 마하라자라 하더라도 종교적인 문제에 얽힌다면 헤어날 길은 없다. 황제에 대한 충성심 또한 의심받는 것은 물론이다.
“당연히 그러시겠지요. 마하라자의 충성을 의심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장군은 과장된 몸짓으로 무릎을 치며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을 믿을 수는 없었다.
홀짝.
들고 있던 화려한 잔을 살짝 맛보고 장군은 감탄했다.
“이거 참 좋은 술이군요. 역시 마하라자께서 드시는 술이라 그런지 고급 아닌 것이 없습니다. 하하하.”
맛만 보는 것은 취하지 말라는 회교의 율법 때문이다. 독실한 회교도는 아예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장군의 태도는 확실히 허술한 면이 있었다. 종교 검열관 무타시브들을 대동한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그리 고급은 아니오. 어쨌거나 먼 길을 오셨으니 오늘은 편히 쉬도록 하시오. 나는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마하라자에게 장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벌써 일어나십니까?”
“영지의 일이 있소.”
사실 그건 핑계였다. 어차피 돈 내라는 소리밖엔 안 할 것이 뻔한데, 굳이 여기서 장군의 비위를 맞춰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요? 일이라면 어떤?”
추궁하듯 물어보는 그에게 마하라자는 짐짓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수상한 이방인들이 있다 하기에 잠깐 심문을 하려 하오. 장군도 아시겠지만 요즘은 사방에서 난리와 분쟁이 끊이질 않는 터라…….”
그건 중앙 정부에서 제대로 일 좀 하라는 은근한 핀잔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핀잔은 장군에겐 먹히지 않았다.
“수상한 이방인요? 그거 매우 흥미로운 일이군요.”
바하두르는 수염을 매만지다가 문득 말했다.
“저도 같이 가도 되겠습니까?”
“장군께서 말이오?”
마하라자가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는 얼굴에 주름을 잡으며 웃었다.
“제가 가면 혹시 곤란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그건 분명한 무례였다. 그러나 마하라자는 화를 낼 수 없었다. 자칫 잘못하여 그에게 시빗거리라도 잡히면 상황은 심각해질 테니까.
“……아니오.”
“곧 준비하지요.”
장군은 씩 웃더니 벌떡 일어났다. 이제껏 한마디도 없던 ‘셰흐’ 역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바하두르의 뒤를 따랐다. 마하라자에겐 인사조차 없었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노년의 마하라자는 모욕감에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더 이상의 문제가 없기만을 바랄 뿐.
저벅, 저벅.
노인 ‘셰흐’와 함께 오래된 대리석 복도를 지나던 장군 바하두르는 안쪽 정원 앞에서 문득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가볍게 손짓을 했다.
쉭.
작은 바람 소리와 함께 세 사람의 무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온몸을 검은 외투로 가린 그들은 허리에 천축 특유의 휘어진 장검을 차고 있었다.
“결과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하두르가 말했다.
“뭔가 좀 찾았나? 이 이교도 영주 놈의 목줄을 움켜쥘 만한 치명적인 약점 같은 거 말이야.”
말하는 바하두르의 얼굴은 싸늘했다. 조금 전까지 보이던 가벼운 웃음은 흔적조차 없었다.
(작가의 말)
알고 보면 매우 열심히 일하는 바하두르 장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