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382)
낙향문사전-382화(382/494)
382화. 투옥(投獄)
노인, 셰흐의 갑작스러운 말에 영주 마하라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정작 바하두르 장군은 의아한 표정을 지을 뿐, 셰흐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손빈이 셰흐를 보며 물었다. 조금 전 셰흐가 말한, ‘결백을 증명할 방법’을 묻는 것이다.
셰흐는 손빈을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이 자리를 지켜보고 있는 ‘숨은 자’를 나오게 하라.”
영주 마하라자는 물론 바하두르 장군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손빈의 눈동자에는 이채가 스쳤다.
조금 전 손빈이 마음을 굳혔을 때 노군의 기세는 한순간 거칠게 솟아올랐다. 언제라도 말만 하라는 듯이.
그 찰나간의 기세를 저 노인, 셰흐가 감지한 것이다.
“너와 그자가 스스로 쇠사슬에 매인다면 너희의 선의를 믿겠다. 사악한 의도를 지닌 자라면 결코 스스로의 힘을 포기하면서까지 법을 존중할 리 없을 테니까.”
셰흐가 ‘숨은 자’를 지목한 것은 그의 기세가 가장 강하기 때문이다. 반면 손빈 역시 매여야 한다는 것은 그가 일행의 중심인 것이 명백히 보이기 때문이었다.
셰흐는 강렬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이 너희의 행적에 사악함이 없었음을 증언한다면 너희는 풀려나게 될 것이다. 허나 너희의 악행이 증명된다면, 너희는 법에 따라 처벌될 것이다.”
황 방주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셰흐의 말을 통역했다.
“어찌하겠느냐?”
셰흐가 말했다. 손빈은 바하두르 장군과 영주 마하라자를 보았다. 마하라자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바하두르 장군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아무래도 이 자리의 권한은 저 노인이 쥐고 있음이 분명했다.
손빈은 잠시 고민했다. 법을 지키라는 그의 말은 옳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그리하는 편이 낫다.
그러나 노군을 쇠사슬에 묶이게 하면서까지 그리해야 하는가?
그럴 수는 없다. 손빈이 아는 한, 법은 결코 사람 위에 있는 것이 아니니까.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손빈이 말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탁.
어둠 속에서 누군가 뜰에 내려섰다. 긴 수염과 흰 눈썹을 휘날리며 나타난 그는 바로 노군이었다.
“흘.”
헛웃음을 흘린 노군은 뒷짐을 지고 서서 셰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제법 감이 좋은 놈이군.”
노군의 말을 황 방주는 통역하지 않았다. 그리고 노군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좋다. 네 말대로 하지.”
“어르신!”
손빈이 놀란 표정으로 외쳤다.
“신경 쓰지 마라.”
노군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까짓것, 별거 아니다. 한 줌 먹을 것을 위해 그보다 더 험한 일도 겪어 봤는데, 사람들을 돕기 위해 쇠사슬에 묶이는 것 정도야 무슨 대수겠냐?”
그 말에 손빈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자 뒤에서 사수연이 나지막이 말했다.
“나도 괜찮아요. 그러니 받아들이세요.”
손빈은 고개를 돌려 사수연을 보았다. 사수연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뒤에 선 당월아 역시 가만히 고개를 숙여 같은 뜻을 표시했다. 황 방주는 잠시 당황한 듯 보였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손빈은 다시 노군을 보았다. 노군은 ‘그까짓 거’라는 듯 콧바람을 내뿜었다. 하지만 쇠사슬에 매이는 것이 어찌 가벼운 일이랴? 더구나 아무런 잘못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게다가 노군은 비록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라고 말했지만 결국은 손빈 자신 탓이다. 자신이 마을 사람들을, 그리고 아이들을 염려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기꺼이 묶이려는 것이다.
손빈은 눈을 감았다. 그렇지 않으면 이 끓어오르는 마음을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부디.”
눈을 뜬 손빈은 이를 악물고 바하두르 장군과 노인, 셰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대들의 말이 진실이기를, 간절히 바라오.”
그건 탄원도, 호소도 아니었다. 강렬하게 빛나는 손빈의 눈동자는 그것이 협박에 가까운 말임을 분명히 알려 주고 있었다.
셰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바하두르 장군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명했다.
“저들을 묶어라.”
무사들이 즉시 노군과 손빈을 묶었다. 그리고 지하 감옥 가장 깊은 곳에 감금되었다. ‘기다리는 곳’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햇빛도 바람도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다.
철컹.
감금된 두 사람의 양 손목과 발목에 굵은 쇠사슬과 철로 된 족쇄가 채워졌다. 차가운 그 감촉은, 마치 흉악한 짐승의 이빨 같았다.
* * *
노군과 손빈이 성채의 지하 감옥에 구금되고, 사수연과 당월아, 그리고 황 방주는 평범한 옥에 갇혔다.
평범하다지만 그건 지하 감옥에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다. 본래 죄인들을 가두기 위한 옥(獄)이 좋을 리가 없어서, 평범한 여인들이라면 벌써 혼절했을 정도로 상황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더럽고 불결한 것은 물론이고 벌써 악취가 코를 찌르는데, 더운 한낮이 되면 어떨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철컹.
바하두르 장군의 명에 따라 무사들은 당월아와 사수연의 발목에도 쇠로 만든 족쇄를 채웠다. 황 방주도 마찬가지였다.
차락.
자신의 발목에 걸린 족쇄를 보며 사수연이 한숨을 쉬었다.
“이런 걸 차게 될 줄은 몰랐네.”
족쇄는 누군가의 피 얼룩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마음 같아선 깨끗이 닦아 내고 싶었지만 닦을 것이 있을 리가 없다.
“계속 서 있으면.”
옆 옥에 갇혀 있는 당월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족쇄의 무게로 발이 다쳐요. 가능하면 눌리는 부분이 없도록 앉아 있는 것이 좋아요.”
어쩐지 익숙한 듯한 그 말에 사수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언제…….”
묻던 사수연은 아차 싶었다. 당월아는 당문의 ‘독인’으로 평생을 갇혀 살았다. 어쩌면 지금의 조언은 그때의 경험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아, 저기…….”
“괜찮아요.”
당황한 사수연에게 당월아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유독 부드럽고 편안했다. 마치 사수연을 위로하려는 듯이.
“나는 괜찮아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사수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사수연처럼 당월아도 스스로 옥에 갇히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나 치러야 할 대가는 결코 같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당월아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는 것을, 사수연은 알 수 있었다.
“나쁜 기억이 나긴 하네요.”
순간 사수연은 가슴속에서 무언가 울컥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가자.”
사수연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즉시 손을 들어 내력을 일으켰다.
“넌 여기에 있어선 안 돼. 지금 바로……”
웅.
현천결의 기운이 사수연의 하얀 손에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내리치면 족쇄 따위는 단번에 부서지리라.
“하지 마세요.”
그러나 사수연은 손을 내리치지 못했다. 당월아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나는 괜찮아요. 그리고 나 때문에 어르신과 손 공자님의 결심을 헛된 것으로 만들 순 없어요.”
“이해할 거야.”
사수연은 고개를 저으며 강하게 말했다.
“아니, 네가 이런 상황인 걸 알면 오히려 손 공자님이 제일 먼저…….”
“알아요.”
당월아는 말했다.
“그래서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결코 멈추지 않았다.
“참아 내고 싶어요.”
사수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당월아가 원한다면 족쇄 따위 언제라도 박살 낼 수 있다. 이 더럽고 악취 나는 옥을 벗어나는 것도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월아는 이 자리에 있기를 선택했다. 자신이 무엇을 마주하게 될지 알면서도.
“……어렸을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당월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갇혀 있는 건, 내가 나쁜 아이라서 그런 걸까? 내가 이런 몸으로 태어난 것도, 부모님이 나를 포기한 것도, 그래서 독인의 운명을 피할 수 없는 것도 모두 내가……”
“아니야!”
사수연이 급히 말했다.
“그렇지 않아! 너는……”
“알아요.”
작은, 그러나 분명한 목소리로 당월아는 말했다.
“화련 언니가 아니라고 말해 줬으니까요. 내 탓이 아니라고, 오히려 날 그곳에 가둔 사람들이 잘못된 거라고, 그렇게 말해 줬으니까요. 비록 그걸 알았어도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잠시 말을 멈췄던 당월아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이젠 나도 알아요. 이것이 누구 탓인지. 내가 어디까지 참아야 하고, 무엇을 용납해선 안 되는지 말이에요. 손 공자님의 말씀처럼 그들의 말이 진실이 아니라면.”
그건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였다.
“가만히 있지 않겠어요.”
사수연은 그 말을 들으며 새삼 깨달았다.
당월아는 강한 여인이다. 무공이나 독기공 때문이 아니라, 그 가녀린 몸속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진 강한 여인.
“그래.”
사수연 역시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어.”
철컹.
족쇄가 발을 잡아당겼지만 사수연은 당월아가 있는 쪽 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벽에 기대앉았다.
바닥이 더럽고 지저분한 것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조금이라도 더 당월아에게 가까이 가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녀가 자신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느끼도록.
“여기 있는 것도 심심한데 이야기라도 할까?”
사수연의 말에 저편에서도 작은 쇳소리가 들렸다. 당월아가 벽 건너편에 마찬가지로 기대앉은 것이다.
“……좋아요.”
“음, 무슨 이야기를 할까?”
짐짓 가벼운 목소리로 사수연이 말했다. 그건 당월아의 나쁜 기억을 조금이라도 몰아내 주고 싶어서였다.
“아, 내가 처음 아빠한테 혼났던 이야기를 해 줄까?”
“아빠면, 무제…… 말인가요?”
당월아의 말에 사수연은 웃었다.
“응. 그러니까 말야…….”
사수연은 짐짓 낭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당월아는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감옥 안에는 두 여인의 나지막한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건너편 옥에 있던 황 방주는, 혹여 방해가 될까 하여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 * *
바하두르 장군과 노인, 셰흐는 영주 마하라자의 궁으로 돌아왔다. 셰흐의 표정은 여전히 변화가 없었지만 바하두르의 얼굴엔 만족스러운 미소가 가득했다.
손빈 일행이 평범한 이방인이 아님이 밝혀지자, 당장 영주 마하라자의 판단력과 통치력이 의심을 받았다.
바하두르 장군의 비꼬는 말에도 마하라자는 아무 말도 못 했고, 동석했던 종교 검열관 무타시브들 역시 의심의 눈길로 마하라자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이번 종교 검열은 유례없이 강하게 이루어질 것이 분명했다.
“허나 영주가 이방인을 후대한 것만으로는 그리 큰 과오라 할 수 없다.”
“물론 그렇습니다.”
노인, 셰흐의 지적에 바하두르 장군은 씩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영지민들이 역심(逆心)을 품고 있었다면 문제는 달라지지요.”
셰흐는 눈살을 찌푸렸다. 역심이라는 말은 샤에 대한 반역을 뜻한다. 혹은 그보다 더 큰, 위대한 신의 뜻을 거스르는 배교를 뜻하거나.
어느 것이든 절대로 쉽게 입에 담을 수 없는 문제다.
“누명을 씌울 셈인가?”
“누명이라니요? 그저 관점의 차이입니다.”
바하두르는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말했다.
“천민들은 그 이방인들이 마을에 머무르도록 허락했습니다. 호의, 혹은 모종의 유대가 없었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실제로 이방인들의 존재에 대해 관에 고한 자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건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다. 불가촉천민은 다른 계층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만으로도 죽임을 당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이방인은 분명히 천민들을 감싸려 들었지요. 그렇다면 과연 그 천민들이 결백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진실을 증언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요?”
바하두르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영지 내의 한 마을이 수상한 이방인과 내통하였음에도 영주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그 이방인을 제 눈앞에서 풀어 주려고까지 했지요. 이 정도면 충분히 영주의 실정이라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상상만으로도 즐겁다는 듯 바하두르는 눈을 반짝였다.
“아니면 아예 저 이방인들이 반란군의 밀정이었다고 해도……. 아, 그건 무리군요. 저들은 천축교도가 아니니까요. 그러면 차라리 마교 같은 것들은 어떨까요? 감히 위대한 신과 그분의 선지자를 거스르는, 극악한 이교도의 무리들 말입니다.”
“나는 이방인에게 약속했다.”
노인, 셰흐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을 사람들이 그들의 행적에 사악함이 없었음을 증언한다면 그들을 풀어 주겠다고.”
“물론 그러셨지요. 허나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바하두르는 어깨를 으쓱했다.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증언하지 못할 테니까요. 그들은 오늘 밤에 전부 다 죽습니다. 감히 제국의 군대에 반항한 죄로 말입니다.”
살기가 번득이는 눈동자로 바하두르는 말했다. 셰흐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게 다였다.
“그래서 자네가 데려온 군사들을 천민들의 마을로 보낸 것인가?”
“그렇습니다. 멍청한 마하라자의 무사들 따위를 어떻게 믿겠습니까? 불가촉천민을 칼로 죽이면 자신들까지 부정하게 된다고 말하는 놈들인데 말입니다.”
셰흐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는 ‘증언이 있다면 놓아주겠다’고 약속했을 뿐이다. 바하두르 장군의 돌발적인 행동까지 책임질 이유는 없다.
“그 이방인들을 가벼이 여겨선 안 된다. 특히 그 노인은 나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자이니까.”
한순간 뿜어져 나온 노군의 기세는 셰흐조차 대경실색할 정도였다. 만일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살아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었으리라.
“이미 조치해 두었습니다.”
그러나 바하두르 장군에게 셰흐의 충고는 필요없었다.
“지하 감옥에 족쇄를 채우고 셰흐께서 주신 향을 피웠으니, 내일 아침이면 그들은 아마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테지요.”
노인, 셰흐는 무공의 고수이자 회교의 수많은 은밀 교단 중 하나를 이끄는 수장이었다.
그에게는 사람을 무력화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수많은 비약이 존재했다. 노군을 가둔 지하 감옥에 피워 둔 ‘향’ 역시 그중 하나다.
“이로써 황명도 무사히 완수하게 되었으니 매우 기쁘군요. 함께 술이라도 한잔하시겠습니까?”
사뭇 가벼운 어조로 바하두르가 물었다. 그러나 셰흐는 대답조차 하지 않고 몸을 돌려 걸어갔다.
은밀 교단의 수장으로서 한평생 금욕으로 살아온 그에겐 대답할 가치조차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바하두르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칠 황자의 기대를 뛰어넘는 성과를 가지고 돌아갈 생각에 그의 얼굴엔 만족스러운 미소가 가득했다.
덕분에 작은 그림자가 그들의 대화를 전부 듣고 있었다는 사실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 * *
콰앙.
한밤중에 울려 퍼진 굉음은 성채를 진동시켰다. 그 굉음은 성채 안쪽, 마하라자의 궁에 있던 모든 사람을 단숨에 깨울 정도였다.
“헉!”
“무, 무슨 소리냐?”
성채의 무사들은 물론이고 궁을 지키던 무사들까지 영문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또 다른 굉음이 울려 퍼졌다.
콰아앙.
이번엔 마하라자의 궁마저 흔들렸다. 영주 마하라자는 급히 겉옷을 걸치고 나왔다.
“이게 무슨 일이더냐?”
그렇지 않아도 이미 바하두르 장군과 무타시브들에게 추궁을 받은 터다. 마하라자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한 것도 당연했다.
잠시 후, 성채로부터 전령이 다급히 달려와 마하라자 앞에 엎드렸다.
“이, 이방인들이 탈옥했습니다!”
“뭐라고?”
전령의 다급한 보고에 영주 마하라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옥에 가둔 이방인들이라면 손빈 일행뿐이다.
“여인들이 탈옥했단 말이냐? 대체 어떻게…….”
“아닙니다. 전부 탈옥했습니다!”
전령의 말을 순간 마하라자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곧 그것이 지하 감옥을 의미하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지하 감옥에 가둔 자들도 탈옥했단 말이냐?”
이방인들을 가둔 지하 감옥은 사방이 거대한 돌로 만들어진 곳이다. 무거운 철문으로 막힌 것은 물론, 무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키는 곳이니 탈옥이란 상상도 못 한다.
그러니 마하라자가 ‘설마’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전령은 영주의 말을 부정하지 못하고 절망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어찌 된 일입니까?”
뒤에서 들려오는 바하두르 장군의 불편한 목소리에 마하라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숨길 수는 없었다.
“이방인들이 탈옥을 했다 하오.”
“뭐라고?”
한순간 바하두르 장군은 예의조차 잊고 소리쳤다.
“허나 걱정 마시오. 우리 군사들이 곧 그들을 잡아들일…….”
쿵.
말하던 마하라자는 흠칫했다. 바하두르 장군이 인상을 쓰며 옆의 기둥을 손으로 친 것이다.
굵은 대리석 기둥이 장군의 맨주먹에 나지막이 진동했다. 그 모습에 마하라자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
바하두르 장군은 이를 악물었다. 그러곤 가볍게 손짓했다.
휘릭.
세 사람의 검은 인영이 모습을 나타냈다. 마하라자 영주는 흠칫하고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바하두르 장군은 싸늘한 시선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이방인들의 뒤를 쫓아라. 나도 곧 셰흐와 함께 가겠다.”
손빈 일행을 놓치면 모든 계획이 어그러진다. 아무런 증거도, 증인도 남지 않은 일에 무슨 혐의를 더 말하랴?
게다가 천민 마을을 쓸어버리기 위한 군사는 이미 출발한 지 오래다. 이대로라면 마하라자를 압박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이 마하라자에게 추궁당할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바하두르 장군의 말에 검은 옷을 입은 세 무사는 고개를 숙여 명을 받들었다. 그리고 즉시 자리에서 사라졌다.
“저, 저들은 대체 누구…….”
마하라자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바하두르 장군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건 저 노회한 영주 마하라자의 계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바하두르는 영주를 한번 쏘아본 후 몸을 돌려 셰흐의 거처로 걸어갔다.
“어떻게 된 게.”
이를 갈며 바하두르는 중얼거렸다.
“제대로 일을 하는 놈이 하나도 없어. 하나도!”
저벅, 저벅.
거칠게 걸음을 옮기는 바하두르 장군의 앞에, 이미 노인 셰흐가 무표정한 얼굴로 기다리고 서 있었다.
(작가의 말)
빠른 투옥, 빠른 탈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