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387)
낙향문사전-387화(387/494)
387화. 마수들의 왕
숲 속에서 튀어나온 짐승은 거대한 검은 호랑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몸집과 찢어진 아가리, 그리고 붉게 빛나는 눈동자는 이 짐승이 마물임을 분명히 알려 주고 있었다.
콰직.
마물의 아가리에 물려 있던 셰흐가 마른 나뭇가지처럼 부서져 나갔다. 피가 터져 나오고 살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지만 그 잔인한 광경에서 아무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아니, 돌릴 수 없었다.
크르르.
순식간에 셰흐를 부숴 버린 마물은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거대한 마물의 형체가 달빛 아래 남김없이 드러났다. 그 모습만으로도 바하두르가 흠칫할 정도였다.
크륵.
그 반응이 문제였을까? 커다란 마물의 눈동자가 바하두르를 향했다.
‘헉.’
말 위에 타고 있던 바하두르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뒤로 젖혔다.
붉게 일렁이는 마물의 눈동자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굳을 정도였다. 게다가 그 숨김없는 적의는 수많은 전장을 헤쳐 온 바하두르 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크엉.
마물의 그것은 마치 장난 같은 행동이었다. 먹잇감을 희롱하듯 놀리는 고양이과 짐승 특유의 버릇으로 바하두르를 향해 위협적인 모습을 취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바하두르의 안색은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그가 타고 있던 말은 단번에 발작을 일으켰다.
히히히힝.
“으억!”
말이 크게 울부짖으며 앞발을 높이 들었다.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노련한 바하두르조차 균형을 잃고 땅으로 떨어졌다.
털썩.
바하두르가 떨어지자 말은 발작적으로 숲 바깥쪽으로 달려갔다. 다른 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바하두르 역시 낙마의 충격이나 도망간 말보다는 마물의 습격을 더 두려워했다.
팍.
즉시 몸을 일으키며 바하두르는 단검을 뽑았다. 그리고 그 순간, 바하두르는 자신을 바라보는 마물의 붉은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바하두르를 쳐다보는 노골적인 경멸의 시선을.
“큭.”
바하두르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었다.
“형!”
“빈아.”
서린의 다급한 목소리와 노군의 침통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바하두르는 보았다.
크륵, 크르륵.
어두운 숲 속에서 두 마리의 또 다른 짐승이, 아니 거대한 마수(魔獸)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저벅.
그것은 눈처럼 새하얀 털을 가진 백호의 형상을, 그리고 피처럼 붉은 호랑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이하게 찢어진 아가리와 번들거리는 핏빛 눈동자는 그것들 또한 마수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저벅, 저벅.
두 마리의 마수는 천천히 공터로 들어섰다. 마수들의 날카로운 적의와 기세가 삽시간에 공터를 뒤덮었다.
꿀꺽.
바하두르는 입술이 타들어 가는 것을 느꼈다. 새로 나타난 두 마리의 마수를 절망적인 심정으로 곁눈질하며, 바하두르는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슥.
바하두르를 쳐다보던 검은 마수가 고개를 돌렸다. 바하두르에겐 관심조차 없다는 듯한 그 모습이 사뭇 치욕적이었지만, 마수의 시선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바하두르에겐 더 컸다.
크르륵.
거대한 마수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손빈 일행을 향했다.
크륵.
“이거 상황이 좀 안 좋은 것 같은데?”
노군이 자신을 노려보는 마수를 바라보며 짐짓 너스레를 떤다. 그러나 그의 검, 소령은 한 치도 흔들림 없이 빛나고 있었다.
“좀 안 좋은 게 아니고 많이 안 좋다구요.”
서린이 울상이 되어 말했다. 그건 무서워서가 아니라 기분이 나쁜 탓이다. 유독 서린은 마물의 기세를 질겁하며 싫어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서린은 자신을 향한 마수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손에 쥐고 있는 불진, 홍진만리 역시 언제라도 힘을 쏟아 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괘, 괜찮겠죠? 네?”
황 방주는 자신을 쳐다보는 마수의 시선을 피하며 울상으로 말했다. 덕분에 잘생긴 그의 얼굴이 매우 우스꽝스럽게 되어 버렸다.
크아아앙.
순간, 나지막이 으르렁거리던 검은 마수가 크게 짖었다. 황 방주가 움찔하며 사색이 되었지만 노군도, 서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백로를 들고 서 있던 손빈 역시 마찬가지였다. 손빈은 굳은 표정으로 백로를 들어 마수를 향했다.
슥.
달빛 아래 도도하게 빛나던 백로의 칼끝이 마수에게 겨누어졌다. 사실 그건 단지 경계의 의미였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러나 그 결과는 놀라웠다.
크륵.
검은 호랑이 모습의 마수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수가 슬그머니 몸을 낮춘 것이다.
“뭐, 뭐야? 이놈들.”
노군이 눈살을 찌푸렸다. 서린도 의아한 표정으로 다른 마수들을 돌아보았다.
“어?”
몸을 낮춘 것은 검은 마수만이 아니었다. 여전히 눈빛을 번득이고 있었지만, 새하얀 백호 형상의 마수도, 피처럼 붉은 마수도 입을 다물고 몸을 낮췄다.
그것은 결코 덤벼들기 위한 준비 자세가 아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마수들의 기세가 한풀 꺾인 것이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황 방주도 놀란 얼굴로 마수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마수와 시선이 마주치차 얼른 눈을 돌렸다.
그 붉은 눈동자에 여전히 이글거리는 적의를 분명히 보았기 때문이다.
“모르겠군. 적의는 여전한 것 같은데 어째서…….”
노군이 마수들을 노려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황 방주가 느낀 것을 그가 모를 리 없다. 마수들의 적의는 여전했다. 그 붉은 눈동자에 일렁이는 살기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 전 그들은 분명 물러섰다. 마치 자신들보다 거대한 그 어떤 것에 굴복하듯이.
“혹시 이놈들……. 음!”
중얼거리던 노군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즉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가 느낀 것을 서린과 손빈 역시 알아차렸다.
저벅.
어리둥절하던 황 방주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제야 보았다.
숲의 어둠 사이로, 사람의 형상을 한 커다란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황 방주와 비교하면 거의 두 배에 달하는, 말 그대로 거인이 말이다.
저벅, 저벅.
크륵.
거인이 다가오자 세 마리의 마수들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즉시 땅을 박차고 거인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탓.
마수들은 그 커다란 체구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뿐하게 허공을 날았다. 그러곤 유연하게 몸을 틀며 소리도 없이 가볍게 내려앉았다.
저벅.
그사이, 마수들 사이로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사자의 갈기처럼 솟은 금빛 머리카락과 수염, 그리고 굵은 눈썹과 커다란 눈동자.
폭력이라는 단어 그 자체를 형상화한 듯 강렬한 인상의 그 거인은 웃통을 완전히 벗은 채 하의만을 입고 있었다. 허리에 두른 철갑을 제외하면 방어 능력이라곤 전혀 없는 풍성한 바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라도 그 거인을 경시할 수는 없었다.
회색빛으로 번들거리는 그의 온몸에는 균열 같은 검붉은 선이 이리저리 내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그의 살갗 자체가 절대의 갑옷인 것처럼.
쿵.
거대한 도낏자루의 끝이 땅을 울렸다. 그 거인이 들고 있던 긴 도끼를 땅에 세운 것뿐이지만 그 여파가 숲 전체를 울리는 듯했다.
크릉.
그 공포스럽던 세 마리의 마수들이 거인 앞에 고개를 조아리고 그르릉거렸다. 덩치 큰 고양이 같은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었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아니, 신경조차 쓰지 못했다.
새하얀 거인의 눈동자가 뿜어내는 위압감이 주위를 온통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묵직한 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그는 온통 흰자위뿐인 눈으로 손빈 일행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 귀여운 새끼들이 무례를 범했군.”
그는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는커녕 더욱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허나 어쩔 수 없지. 저런 것을 보면…….”
슥.
슬쩍 찌푸린 거인의 눈이 바스라진 셰흐의 잔해를 향했다. 가벼운 조소를 머금으며 그가 말을 이었다.
“일단 물어뜯고 싶어질 테니까 말이야.”
스륵.
커다란 검은 호랑이 모습의 마수가 거인의 손 아래에 머리를 가져다 댄다. 거인은 그 큰 손으로 검은 마수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가르릉.
검은 마수가 목을 울린다. 그 괴이한 모습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황 방주 역시 통역은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그러나 노군은 예외였다.
“넌 누구냐?”
노군이 말했다. 마수를 쓰다듬던 거인은 살짝 눈살을 찌푸려 노군을 향했다. 그러나 침묵은 길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직 내 소개를 하지 않았군. 이렇게 마주칠 줄은 나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그건 유창한 중원의 언어였다. 게다가 그 대답은 노군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검은자위가 없는 거인의 새하얀 눈은 바로 손빈을 향하고 있었다.
“마천의 지배자이시자 모든 욕계(欲界)의 왕이시며 여섯 하늘을 다스리는 제육천의 마왕.”
그것은 바로 서장의 마인이 천마(天魔)를 일컬었던 바로 그 표현이었다. 손빈을 똑바로 바라보며 거인은 말했다.
“그분의 육대마신 중 하나이자 모든 마수들의 왕, 수마신(獸魔神)이 바로 나다.”
‘마신(魔神).’
손빈은 그 단어를 이미 황 방주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마신이라는 자가 지금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흘, 자기소개 하곤……. 그러고도 안 부끄럽냐?”
툭 튀어나온 노군의 목소리에 수마신이 시선을 옮겼다. 노군은 노골적으로 빈정거리듯 말했다.
“내가 한창 제정신이 아닐 때에도 그따위 유치한 자기소개는 안 했다. 대체 누구 맘대로 왕이고…….”
으득.
노군이 이를 갈았다.
“누구 마음대로 신이냐? 이 되다 만 놈아.”
듣고 있던 황 방주의 안색은 창백하다 못해 새파래졌다. 이건 두말할 여지없는 도발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마신은 웃었다.
“되다 만 놈이라……. 하긴 서장의 그놈을 보았다면 그리 말할 만도 하지.”
느긋한 표정으로 그는 가볍게 자신의 턱을 만졌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놈은 감히 능력도 없는 주제에 대마정을 제어하려 했으니까.”
노군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눈앞의 거인이, 아마도 마인(魔人)이 분명한 그는 서장에서 보았던 마인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그건 손빈 일행에겐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위험한 상대가 더 위험해졌다는 뜻이니까.
“허나 그렇다 하여.”
후욱.
압도적인 기세가 순간적으로 수마신에게서 쏟아져 나왔다. 아무런 기척도, 예고도 없었다.
“함부로 무례를 행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콰콰과곽.
흰자위밖에 없는 그의 눈동자가 새하얗게 빛나고, 그의 온 몸을 내달리는 균열들이 붉게 빛을 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수마신의 기세 앞에 나무들이, 풀이, 아니 숲이 떨고 있었다. 세 마수들이 날카롭게 일으키는 적의도 그 기세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때였다.
웅.
작은 울림과 함께 손빈의 백로가 빛을 발했다. 그것은 눈이 멀 듯 눈부시지도, 귀를 멀게 할 정도로 큰 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무엇으로도 그 청명한 소리를 덮어 버리지 못했다. 마치 폭풍 속에 우연히 나타난 별빛처럼, 백로는 더없이 아름답고 고고하게 빛나고 있었다.
쉭.
백로의 칼날이 허공중에 궤적을 그렸다. 그리고 수마신의 기세가 한순간에 씻은 듯 사라졌다.
크륵.
세 마리의 마수가 낮게 으르릉거렸다. 그러나 감히 이빨을 내보이지는 못했다. 마수들은 조금 전처럼 입을 다물고 손빈을 향해 몸을 낮추고 있었다.
여전히 적의로 일렁이는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면서.
“이런.”
묵직한 수마신의 음성이 주위를 울렸다. 수마신은 손빈을 보며 말했다.
“내가 잠시 흥분한 것 같군. 나의 무례를 용서하라.”
그 새하얀 눈동자가 이전보다 은은히 빛나고 있음을 노군은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수마신의 입가에 뜻 모를 미소가 머물러 있는 것도.
“허나 너는.”
슥.
수마신의 눈이 다시금 노군을 향했다. 노군은 킁 하고 콧바람을 내뿜으며 수마신을 노려보았다.
“말을 조심하는 것이 좋다. 이곳이 이런 자리가 아니고, 또한 내 기분이 이렇게 좋지 않았다면 너는 낭패를 면하지 못했을 테니까.”
즉시 반박하려던 노군은 말을 꺼내지 못했다. 수마신이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향했기 때문이다.
콰직.
“크억!”
섬뜩한 소리와 함께 신음이 새어 나왔다. 붉은 털을 가진 마수의 아가리에, 어느새 바하두르 장군이 물려 있었던 것이다.
수마신이 붉은 털의 마수에게 가볍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마수가 바하두르를 입에 문 채로 훌쩍 땅을 박차 수마신에게로 날아갔다.
사락.
소리도 없이 내려앉은 붉은 털의 마수는 수마신에게 자신의 아가리에 물고 온 바하두르를 보였다. 수마신은 마수의 머리를 슬쩍 쓰다듬은 후, 그 커다란 손으로 바하두르의 품을 가볍게 쓸었다.
후두둑.
바하두르의 옷이 찢어지며 그가 숨기고 있던 것들이 땅으로 쏟아져 내렸다.
“제국의 장군은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그리고 이런 놈들은…….”
땅에 흩어진 것들 중에서, 수마신은 작은 원통 같은 것을 집어 들었다. 커다란 손에 쥐어진 그 원통은 무척 작아 보였지만, 사실은 성인의 팔뚝 정도의 크기였다.
“반드시 이런 걸 가지고 있더군.”
‘저건?’
콰직.
손빈이 의아해 하는 사이 수마신의 손에서 원통이 부서졌다. 그리고 서린이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윽, 화약 냄새.”
아마도 그건 화통(火筒)의 일종이었을 것이리라. 신호를 위한 것이거나, 혹은 파괴력을 갖춘 것이거나.
“별것 아니지만 여기서 터지면 곤란하지. 제국군이 주둔하는 영채가 가까이 있거든. 그리고 나는 오늘밤 그곳을 박살 낼 예정이니까.”
마수의 입에 물린 바하두르를 내려다보며 수마신이 웃었다.
“제국의 장군을 창끝에 매어 달면, 선전포고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 않겠나?”
그것은 천축의 언어였다. 그러나 바하두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것이 공포 때문인지, 아니면 출혈로 인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이만 물러나겠다.”
마수의 머리를 슥 쓰다듬으며 수마신이 말했다. 그의 새하얀 눈이 손빈을 똑바로 향한다.
“그리고 정중히 충고하건대 오늘 밤 제국군의 영채는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슥.
수마신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또 한 걸음, 수마신의 몸이 숲의 어둠 속으로 잠겨 들었다.
그와 함께 세 마리의 커다란 마수들도 나지막이 으르렁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잠깐.”
그건 손빈의 목소리였다. 이제껏 한마디도 없던 손빈의 말에 수마신의 하얀 눈이 반짝 빛을 발한다.
“천마는.”
수마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손빈이 물었다.
“어디에 있습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노군은 또렷이 알 수 있었다. 어둠 속에 있는 수마신의 눈동자가 알 수 없는 열기로 번들거리고 있다는 것을.
“……안타깝군. 차라리…….”
수마신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숲의 어둠 속에서 그의 하얀 눈이 번들거리며 손빈을 바라보았다.
“……나를 죽이면, 그때 알게 될 것이다.”
손빈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수마신은 자신을 죽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의 투지는 노골적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수마신은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스스로는 움직일 수 없다는 듯이.
저벅.
수마신이 다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하여 수마신과 마수들의 모습이 완전히 숲 속으로 모습을 감추어 갈 무렵, 나지막한 수마신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흘러나왔다.
“다시 볼 날을 기대하마. ‘라자’여.”
나지막한 그 목소리는 곧 허공중에 흩어져 사라졌다. 그리고 수마신과 마수들의 기세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쏴아아아.
바람이 불었다. 달빛이 비추는 숲 속 공터에 남은 사람은 일그러진 표정의 노군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서린, 여전히 겁먹은 황 방주뿐이었다.
한때 셰흐와 바하두르의 수하였던 잔해들이, 역한 피비린내와 함께 조금 전 일들이 꿈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었다.
스륵.
손빈은 천천히 백로를 거뒀다. 그리고 수마신이 사라진 어둠 속을 바라보며 손빈은 이를 악물었다.
(작가의 말)
당월아: (왜 약속을 안 지켰는지) 물어보셨나요?
손빈: 아, 그게. 제가 아니라 마수가 물었….
당월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