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39)
낙향문사전-39화(39/494)
제39화. 옥룡역린참2014.01.14.
쿠르릉.
까마득한 낭떠러지로 눈 더미가 떨어져 내렸다. 눈부시도록 파란 하늘 아래 손빈의 숨결이 하얀 자취를 남긴다.
“후, 후후후.”
옥룡이 웃었다.
“그 아이의 대역이라…….”
팔락.
그의 푸른색 부채가 가볍게 흔들렸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는 건가? 게다가 너.”
옥룡의 가는 눈썹이 살짝 일그러진다.
“지금 그 자세는 뭐야? 그 검이 무슨 나무 막대기라도 되는 줄 알아? 파지법도 엉망이군. 대체 검을 잡아 본 적은 있는 건가?”
“어쩔 수 없죠.”
손빈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의 손에 들린 백로가 은빛으로 반짝인다.
“제대로 검을 쥐어 본 건, 이제 두 번째니까요.”
“뭐?”
옥룡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곧 그의 얼굴에 불쾌감이 번져 간다.
“그런 주제에, 그 아이의 대역을 한다고?”
“제 능력이 사 소저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거야 알고 있습니다만…….”
손빈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당신이 사 소저를 퇴장시켰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남아 있는 저라도 어떻게든 할 수밖에.”
“퇴장이라……. 후후후.”
옥룡이 웃었다.
“맞아. 내가 퇴장시켰지. 그런데 넌, 그리 슬퍼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군.”
“사 소저는.”
손빈이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살아 있을 겁니다.”
빛나는 손빈의 눈동자가 옥룡을 똑바로 향한다. 옥룡의 붉은 입술이 가늘게 미소 지었다.
“소용없어.”
옥룡의 차가운 눈동자가 경멸하듯 손빈을 향했다.
“그런 말을 한다고 해도, 그가 내 속박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네가 이곳에서 살아날 수 있는 것도 아니야.”
낭랑한 목소리로 옥룡이 말했다.
“자 그럼, 이제 다시 말해 볼까? 그래서 네가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그런…….”
피식, 하고 옥룡이 웃음을 흘렸다.
“엉터리 자세로? 아마 그 검에게도 꽤나 모욕적일걸? 느껴지지 않나? 선검 백로의 차가운 경멸이?”
‘차가운?’
손빈은 의아했다. 지금 손빈의 손에 쥐어진 백로는 따뜻했다. 은은한 온기마저 느껴질 정도로.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일이 아니다. 손빈은 각오를 다졌다.
“무엇을 할지는 이미 알고 있을 텐데요?”
옥룡을 똑바로 쳐다보며 손빈은 말했다.
“옥룡역린참입니다.”
침묵이 흘렀다.
옥룡은 차가운 시선으로 손빈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그의 옷자락을 가볍게 흔들고 지나갈 때까지, 옥룡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옥룡이 말했다.
“정말로 모욕적이군. 너 같은 쓰레기의 입에서조차 그 말을 들어야 한다니.”
으득.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분노를 참는 듯, 그의 입술 사이로 섬뜩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정말이지 이렇게 되면, 진심으로 널 뭉개 버려야 속이 풀릴 것 같아.”
찌를 듯한 날카로운 눈빛으로 손빈을 노려보며 옥룡이 말했다. 그의 시선에 가슴이 더욱 서늘해진다.
“너는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럴까요?”
스윽.
손빈이 두 손으로 부드럽게 선검 백로를 쥐었다. 백로의 손잡이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서늘한 손빈의 가슴까지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듯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박.
손빈은 자연스럽게 자세를 잡았다. 손빈에게 있어서 가장 편안한 자세. 그건 그저 두 손으로 검을 쥐고 적당한 너비로 발을 벌렸을 뿐이다.
그렇게 선 손빈은 등을 펴고 고개를 들어 옥룡을 똑바로 향했다. 두려움도, 주저함도 없었다.
“지금 이 결정을 저는 평생 자랑스러워할 것입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상관없이.”
손빈은 말했다. 그리고, 그런 손빈을 쳐다보던 옥룡의 시선이 변했다.
“너…….”
차가운 분노로 얼어붙어 있던 그의 눈동자에 이채가 돈다. 마치 손빈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누구야?”
이번에는 손빈이 의아한 눈빛을 했다. 왜 새삼 그가 그런 것을 묻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손빈입니다. 저 사람의 길벗이자…….”
손빈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사자혁을 향했다. 자신도 모르게 희미한 미소가 손빈의 입가에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켜보고 기록하는 사람이죠.”
그건 이미 옥룡도 알고 있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말은 어쩐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와 무게를 지닌 것같이 들렸다.
그것은 바로 손빈의 검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기이한 느낌 때문이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이 백로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이 본래 황학의 것이라는 것도, 선검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인가 옥룡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었다.
‘지켜보고 기록하는 자.’
옥룡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모욕감에 맹렬하게 끓어오르는 분노 대신 차가운 이성이 그를 지배했다.
그가 아는 사자혁이 누군가의 동행을 그렇게 쉽게 허락하는 사람이던가? 자신을 지켜보고 기록하는 일을, 아무에게나 허락하는 사람이던가?
절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옥룡은 눈살을 찌푸렸다. 눈앞의 그는 의심할 여지 없는 엉터리다. 자세는 빈틈투성이에다가, 검을 쥔 것도 어정쩡하게만 보인다.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다 할 수도 있겠지만 다르게 말하면 정말 별 볼 일 없는 자세이기도 하다.
게다가 무엇보다 그에게서는 아무런 기세도 느껴지지 않는다. 백로가 뿜어내는 기운 뒤로 호아와 사자혁의 기운이 희미하게 느껴진다는 것 정도다.
하지만 그의 날카로운 육감은 그에게 끊임없이 경고하고 있었다. 눈앞의 상대를, 손빈을 다시 보라고.
“흐음.”
옥룡은 한 순간 갈등했다. 상대에 대한 판단이 명확하게 서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저 순간일 뿐이었다.
옥룡에게는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었다. 사자혁이 없는 이상, 자신을 당할 사람은 천하에 아무도 없다.
“좋아.”
옥룡은 말했다.
“두 번의 초식을 허락하지.”
어쩌면 옥룡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손빈이 옥룡역린참이라는 말을 입에 올린 그 순간부터.
“무엇이든 마음대로 해 봐. 하지만 그다음 세 번째 초식에서.”
옥룡의 눈동자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너는 죽는다. 확실하게.”
“글쎄요.”
손빈이 말했다.
“미래는 누구도 모르는 것입니다.”
옥룡은 코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다만 푸른색 부채로 입을 가린 채 손빈을 쳐다볼 뿐이다. 그의 눈빛에서 싸늘한 냉기가 흐른다.
‘후우우.’
손빈은 차분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눈앞에 선 옥룡의 시선이 마치 비수처럼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지만, 손빈의 의식은 현천대강결을 떠올리고 있었다.
보아야 할 것은 눈앞의 옥룡이 아니었다. 자신이 쥐고 있는 백로도, 심지어 펼쳐야 할 옥룡역린참도 아니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손빈의 호흡은 깊어지기 시작했다.
“흥.”
차가운 눈빛으로 손빈을 주시하던 옥룡이 조소를 머금었다.
“지금 뭘 하는 거지? 옥룡역린참을 펼쳐 내겠다 하지 않았나?”
손빈은 분명 옥룡역린참을 펼쳐 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취한 자세는 옥룡역린참의 자세가 아니다.
초식의 형과 식을 뛰어넘는 경지가 분명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건 옥룡이나 사자혁처럼 천외천의 경지에 도달한 무인이나 가능한 일이다.
우우웅.
옥룡의 푸른색 부채에 은은하게 기세가 어리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날 실망시킨다면…….”
그 순간 백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린 듯 매끄러운 옥룡의 눈썹이 경련하듯 일그러졌다. 옥룡의 감각이 날카로운 경고를 보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탓.
자신의 감각이 반응하는 것과 동시에, 옥룡은 거의 본능적으로 손빈을 향해 쇄도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죽여야 한다. 바로 지금!’
두 번의 초식을 허락하겠다는 약속 같은 건 더 이상 생각나지도 않았다. 그가 펼쳐내겠다던 옥룡역린참을 확인하고자 하는 생각도 없었다.
그가 더 이상의 움직임을 보이기 전에 죽여야 한다, 그의 날카로운 육감이 그렇게 요구하고 있었다.
어쩌면 빙혼지를 날리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몰랐다. 그러나 옥룡은 처음부터 빙혼지는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백로의 그 가냘픈 칼날이, 마치 손빈을 모두 가려 버린 것처럼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박.
자신을 향해 짓쳐드는 옥룡을 향해 손빈이 발을 내디디며 백로를 위에서 아래로 그어 내렸다.
무인으로서 본다면 기본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움직임이었지만 옥룡은 손빈의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니,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 그의 신경은 움직이기 시작한 백로의 궤적에 전부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쉬익.
백로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건 아무런 기세도 담기지 않은, 그저 담담하게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릴 뿐인 검로였다.
그러나 그 앞에 선 모든 것을 확실하게 둘로 가르는 절대적인 검로이기도 했다.
‘큭.’
순간 옥룡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려 했다. 그러나 물러설 수가 없었다.
자신이라면 단 한 번의 동작으로 설원 끝까지 움직여 갈 수도 있겠지만, 뒤로 물러나는 것을 선택하는 순간 백로의 칼날이 자신을 둘로 갈라 버릴 것만 같았다.
아니, 그것은 느낌이 아니라 이미 진실이었다.
훅.
마치 촛불이 꺼지듯 옥룡의 모습이 사라지며 옆으로 이동했다. 사람의 눈으로는 좇을 수조차 없는 빠르기였다.
그러나 어느새 백로의 칼날이 옥룡의 아래에서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우우우웅.
옥룡의 푸른빛 부채가 강렬한 기세를 뿜어냈다.
짙게 물든 그의 옥선(玉扇)이 날카로운 기운을 뿜어내며 백로를 부숴 버릴 듯 짓쳐 들었지만, 아무런 기세도 없는 백로는 이미 그 예리한 칼날을 옥룡의 바로 눈앞에 들이대고 있었다.
‘헉.’
분명히 자신의 옥선이 더 빨랐다.
그러나 먼저 도달한 것은 백로였다. 지금이라도 손을 뻗으면 막아 낼 수 있을 것 같은 그 단순한 움직임을, 옥룡은 멈추지 못했다.
사락.
백로가 그 도도한 자태를 빛내며 하늘로 솟아올라 자신의 궤적을 허공에 그려 냈다.
후웅.
그건 지극히 단순한 검로였지만, 그 한번의 검로에 마치 온 하늘과 땅이 좌우로 구분되어 버린 듯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옥룡은 다시 한 번 선택해야 했다.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절대적인 선택을 단 한 자루의 검이 옥룡에게 강제하고 있었다.
‘큭.’
옥룡은 선택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 선택을 비웃기라도 하듯 백로의 칼날이 옥룡을 향해 다시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 검로를 눈앞에 둔 순간 옥룡의 얼굴은 하얗게 변했다.
‘피할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것도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기세가 담긴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담담하고 평온하기까지 한 검로에 옥룡은 전혀 항거할 수 없었다.
자신의 손이 아무리 빠르다 해도 자신의 부채보다 저 검이 먼저 자신을 가르고 지나갈 것이었다. 그의 옥선에 담긴 기세가 제아무리 거대하다 해도 저 검로를 막아서지 못할 것이다.
세상을 뒤엎을 폭풍이 몰아쳐도 달의 움직임을 막지 못하듯이, 백로는 절대 그 움직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옥룡이기에, 그는 그것을 너무나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옥룡은 입술을 깨물었다.
키이이잉.
마치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옥룡의 부채가 기이한 소리를 내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기세를 당장이라도 터트릴 것 같은 옥선은 떨어져 내리는 백로를 향해 치솟아 올랐다. 마치 하늘을 가를 것처럼 짙푸른 궤적을 선명하게 허공에 남기며.
그리고 다음 순간, 희미한 소리가 설원을 울렸다.
슥.
폭음도, 충격도 없었다. 아무런 움직임도, 숨소리조차 없었다. 마치 모든 것이 그 순간 정지한 것 같았다.
그러나 새하얀 설원 위에 점점이 떨어지기 시작한 선혈이, 그 결과를 말해 주고 있었다.
툭, 툭.
붉은 색 원이 새하얀 설원을 천천히 물들이며 번져 나간다.
“하.”
옥룡의 붉은 입술 사이로 나지막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떨리는 그의 눈동자가 눈앞에 있는 손빈을 똑바로 쳐다본다.
“네가 정말로…….”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분명했다.
옥룡의 시선이 옆으로 움직였다. 그곳에 백로가 멈춰 있었다. 옥룡의 오른쪽 어깨에 그 날카로운 칼날을 박은 채로.
“옥룡역린참을 펼쳐 낼 줄이야.”
붉은 입술에 가느다란 미소가 번지는 것과 동시에 그의 왼손이 손빈의 가슴을 쳤다.
퍼엉.
아직도 여운에서 깨어나지 못한 듯 서 있던 손빈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충격과 함께 뒤로 날아가 마치 돌멩이처럼 설원에 나뒹굴었다.
퍽.
쌓인 눈은 마치 부드러운 솜처럼 손빈을 받아 주었다. 그러나 가슴의 충격까지 없애 주지는 못했다.
“큭.”
몸을 일으키던 손빈은 순간 휘청하며 다시 주저앉았다. 옥룡의 손이 닿았던 가슴이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싸늘하다.
손을 들어 가슴을 눌러 보지만, 옷자락만이 마치 얼음조각처럼 부서져 내린다.
그사이, 옥룡은 손을 들어 자신의 어깨를 꿰뚫고 있던 백로를 꺼내 허공에 던졌다.
휘릭, 푹.
허공을 돌던 백로는 손빈의 앞에 떨어져 내리며 설원에 반쯤 박혀 들어갔다. 예리한 백로의 칼날이 손빈의 눈앞에서 반짝인다.
손빈이 눈을 들자, 옥룡은 한 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지긋이 누르고 있었다. 붉은 피로 물들었던 그의 어깨가 마치 서리가 내린 것처럼 하얗게 변해 간다.
“잘했다.”
옥룡의 차가운 시선이 손빈을 향했다.
“칭찬해 주지. 솔직히 감탄했어.”
하지만 말과는 달리 옥룡의 눈빛은 완연한 살의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너 따위가 옥룡역린참을 펼쳐 낼 줄이야. 아니, 이제 너 따위라고 해서는 안 되겠군. 이 검법을 펼쳐 낸 건 천하에 오직 한 사람뿐이었으니까 말이야.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아. 대체 네가 어떻게 이 검을 펼쳐 낼 수 있었지?”
사박.
손빈을 향해 옥룡은 한걸음 내디뎠다. 어깨를 다친 것 정도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얗게 얼어붙은 핏자국을 제외하면.
“미치도록 궁금하지만, 지금은 참기로 하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말이야. 내가 말했었지?”
옥룡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손빈을 똑바로 노려보며 옥룡은 한 발 한 발 다가왔다.
“세 번째 초식으로, 넌 확실히 죽는다고.”
사박, 사박.
“손빈이라고 했었나? 손빈, 네 옥룡역린참은 훌륭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야. 네게는 그다음을 이어갈 능력이 없다. 그러니 네가 한 일은.”
옥룡이 미소 지었다.
“결국 나를 즐겁게 한 작은 유희였을 뿐이다.”
“아니.”
묵직한 음성이 설원 위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짧은 음성에, 옥룡의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그렇지 않다.”
옥룡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손빈의 시선 역시 옥룡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 거대한 체격을 가진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한 손에 들린 흑색 대도가 빛을 받아 반짝인다.
“그는 용을 낚아 올렸다. 그것도…….”
불꽃처럼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그는 바로 사자혁이었다.
“단 한 자루의 검으로.”
옥룡을 똑바로 쳐다보며 사자혁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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