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423)
낙향문사전-423화(423/494)
423화. 어쩌다가 해적
남궁탁은 그의 말처럼 다다음 정박지에서 내렸다. 항구에 내린 그들은 뱃전에 있는 손빈 일행을 향해 몇 번이고 감사의 예를 표했다. 그간 손빈 일행에게 깍듯이 대한 것과, 사수연에게 사과한 것을 보면 본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세가에서 좋은 교육을 받았고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자랐다는 것을 누구나 알 정도였다.
“뭐, 그래서 자기네밖엔 모르지만.”
노군이 입술을 비쭉이며 말했다. 배에서 내린 남궁탁은 떠나지도 않고 손빈 일행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확실히 남궁탁의 말은 남궁세가의 편으로 심하게 치우쳐 있는 데다 매우 피상적이었다.
“하지만 없는 이야기를 한 건 아니잖아요.”
서린이 남궁탁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누가 봐도 미소년인 서린이 웃으며 손을 젓자, 부두에 있던 천축 여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몰려든다.
“그야 그렇지. 하지만 같은 사실이라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법이다.”
말하던 노군은 초로의 부총관이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가볍게 손을 들어 답례했다. 저들은 남궁세가와 따로 서신을 주고받지 않고 있다. 저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좋으리라.
“예컨대 남궁세가가 운남 혈룡문 탓에 혈봉련을 봐주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예전에 한 자신들의 서약을 아직 지키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
노군이 말한 서약이란 ‘남궁세가는 혈봉의 기를 든 자들을 먼저 적대하지 않는다’는 가주의 선언을 말한다.
“당문도 마찬가지야.”
당월아를 보며 노군이 말했다.
“사방에서 일이 터져 정신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버티고 있다는 뜻도 된다. 항상 말이란 ‘아’ 다르고 ‘어’ 다르니까.”
노군은 눈살을 찌푸렸다.
“물론 영 마음에 안 드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확실하지만.”
상선은 천천히 항구를 떠났다. 보통 한 번 정박하면 며칠 정도는 머무르는데, 이곳에선 사람을 내리는 것이 전부라서 바로 떠나는 것이다. 배가 점차 속력을 내고 뱃머리에서 파도가 부서지기 시작했지만 일행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남궁탁이 남긴 말이 아직도 그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군요.”
문득 황 방주가 말했다. 일행이 돌아보자 그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포탈라 궁이야 대답을 거부했다 쳐도, 분명히 우리가 서찰을 보냈는데 어째서 그런 얼토당토않은 소문이 돌았을까요?”
“오해거나, 사고겠지.”
노군이 툭 던지듯 말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보낸 서찰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거나, 아니면 무슨 이유에서건 오해를 불러왔던 모양이다.”
말하는 노군의 표정도 그리 밝지 못했다.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
“……어느 쪽이건 간에 난 영매에게 죽게 생겼어. 아니, 소문으론 벌써 죽었나.”
노군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것이 슬퍼하고 있을 당운영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의 표현이라는 걸, 일행 중에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손빈 역시 나지막이 한숨을 쉬고 고개를 들어 바람이 가득한 돛을 바라보았다. 배는 거침없이 파도를 가르며 나아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너무나 느리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한동안 손빈 일행의 분위기는 제법 무거웠다. 하지만 며칠이 지난 후에는 다들 어느 정도 평상심을 회복했다. 걱정된다고 당장 서원으로 날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배가 광주에 도착하려면 수십 일도 넘게 남았기 때문이다.
한편 노군은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할 수도 있다’며 예원에 사실관계를 확인할 것을 제안했다. 손빈 역시 같은 마음이어서, 서원의 아이들과 사람들이 무사한지 확인한 후에는 함께 항주의 예원에 가기로 했다. 굳이 먼 항주까지 가기로 한 것은 원주 화월이 가장 신뢰할 수 있다는 노군의 충고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분위기는 한결 나아졌다. 하지만 가끔 먼 바다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게 된 것은, 귀향에 대한 기쁨 대신 염려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배가 하루라도 빨리 중원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던 어느 날이었다.
촤아아.
사흘간 정박했던 항구를 떠나는 상선 옆으로 못 보던 두 척의 배가 따라오는 것이 손빈의 눈길을 끌었다. 제법 날렵하게 생긴 데다 여러 문의 화포로 무장한 배였다.
“저건 뭐냐?”
노군이 묻자 황 방주가 설명했다.
“호위함입니다.”
“호위함?”
눈살을 찌푸리며 노군이 배들을 쳐다보았다. 서린은 이미 몸을 반쯤 내밀고 생소한 호위함들을 바라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며칠 후에 긴 해협을 지나게 됩니다. 섬들이 많고 수심이 얕아서 좌초할 위험이 큰 곳이지요. 당연히 천천히 지나갈 수밖에 없는데, 그걸 노리고 해적들이 종종 습격한다고 하더군요.”
황 방주 역시 호위함들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문제는 이 항구를 끝으로 천축을 벗어나게 된다는 겁니다. 제국의 군사적 보호를 기대할 수 없으니, 상선을 호위할 배들을 고용해서 함께 가는 거지요.”
노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중원에도 수채가 있으니 바다에 해적이 있는 것도 당연하겠지. 어쨌든 이로써 천축을 벗어나게 되는 건가?”
방금 떠난 항구가 천축의 마지막 정박지다. 천축을 빙 둘러서 오느라 여러 날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육로보다는 빠르고 편리하다.
“어르신은 해적이 와도 별 걱정이 없으시겠군요.”
황 방주가 말을 건 상대는 바로 노군이었다. 노군은 킁 하고 코웃음을 쳤다.
“왜 걱정이 없어?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배가 난파당하면 제아무리 고수라도 손 쓸 도리가 없다.”
말하던 노군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 보면 고수라는 게 참 쓸모가 없어. 화포보다 센 것도 아니고, 칼침 한번 잘못 맞으면 끝이고……. 그렇다고 바다 위를 달릴 수가 있나, 아니면 하늘을 날 수가 있나?”
“어차피 화포보다 센 것도 없잖아요. 그리고 칼 맞으면 코끼리도 죽어요.”
서린이 옆에서 종알거렸다. 노군이 째려보았지만 서린은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황 방주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그 고수들이 강호 무림에서 위세를 떨치지 않습니까? 당장 저 같은 사람들은 칼 든 무림인 앞에선 꼼짝도 못 하니까요.”
“그러니 웃기지. 별것도 아닌 힘으로 다른 사람을 멋대로 하려는 것들이 있으니 말이다.”
노군이 탄식처럼 말했다.
“가끔은 칼이나 무공이 문제가 아니라, 무엇으로든 위세를 부리려는 사람의 본성이 글러먹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 뭔가 갑자기 우울한 이야기네요.”
황 방주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노군은 어깨를 으쓱했다.
“사는 게 본래 우울해. 나이 들면 더 그렇고.”
“아, 그러고 보니까.”
화제를 전환하려는 듯 황 방주가 얼른 다른 말을 꺼냈다.
“검 여협이 도통 보이지 않는데 괜찮습니까? 뱃삯을 치르라고 하셔서 내긴 했습니다만…….”
검희는 천축의 항구 카라치 이후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노군은 툭 던지듯 답했다.
“걱정 마라. 이 배에 있으니까.”
“이 배에요? 아니, 그동안 한 번도 못 봤는데……”
벌써 항해를 시작한 지 여러 날이다. 그러나 그동안 단 한 번도 검희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여자들 선실엔 가끔 나타나는 모양이던데? 지난번엔 바다에 빠졌었는지 완전히 다 젖어서 왔다고 하더군.”
노군의 말에 황 방주는 놀란 표정을 했다.
“아니, 검 여협 같은 고수도 바다에 빠집니까?”
“몰라. 실족 같은 건 아닐 거고, 갑자기 바닷속이 궁금해지기라도 했나 보지. 아니면 지나가는 고래라도 봤거나.”
황 방주는 쓴웃음을 지었다. 바닷속이 궁금하다거나 고래를 보겠다고 항해하는 배에서 뛰어내리다니? 고수들의 머릿속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이군요. 뱃삯도 적은 돈이 아니라서 괜히 헛돈을 썼나 하고 속이 쓰려 오던 참이었으니까요.”
“어차피 네 돈도 아니잖아?”
노군의 말에 황 방주가 정색을 했다.
“누구 돈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차라리 그냥 줬다면 모를까 헛돈 쓰는 건 절대 눈 뜨고 못 봅니다.”
단호한 그 말에 노군은 어깨를 으쓱했다.
“자기 돈도 아닌데 말이냐? 상인들 머릿속은 알다가도 모르겠군.”
‘누가 할 말인데요’라고 황 방주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렇게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도, 일행이 탄 상선은 호위함과 함께 파도를 가르며 쉼 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
화포로 무장한 호위함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황 방주의 말처럼 상선이 해협에 들어서자 수상쩍은 배들이 나타났다. 작고 날렵한 그 배들은 멀리서 상선을 확인하고 한동안 따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화포로 무장한 호위함을 확인하고는 별다른 움직임 없이 그대로 사라졌다. 만일 호위함이 없었다면 저들은 본색을 드러냈을 것이다. 그렇게 무사히 해협을 지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쿠웅.
묵직한 화포 소리가 선실을 뒤흔들었다. 선실에서 쉬고 있던 일행은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이게 뭔 소리야?”
노군이 즉시 밖으로 튀어나갔다. 서린과 귀견수라가 그 뒤를 따르고, 손빈도 황 방주와 함께 나갔다. 갑판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 불안한 표정으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사수연과 당월아, 혈봉 금사련의 모습도 보였다.
“무슨 일…….”
무심코 물어보려던 황 방주가 말을 멈췄다. 그러곤 놀란 표정으로 눈앞에 보이는 커다란 배를 바라보았다.
“마, 맙소사.”
그 배는 일행이 탄 상선보다 더 컸다. 게다가 좌우에는 화포들이 빽빽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건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전함(戰艦)이었다. 호위함 한두 척으로는 상대도 되지 않는 본격적인 전함 말이다. 한순간 제국 해군의 전함인가 싶었지만 아무런 표식이나 기를 올리지 않은 것을 보면 소속이 없는, 다시 말하면 해적선이라는 것이 분명했다. 멍한 표정으로 해적들의 전함을 바라보던 황 방주는 그제야 자신이 탄 상선이 돛을 접으며 천천히 속력을 줄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저런 배를 상대로 도망치지 않고 있다면 그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급히 고개를 돌린 황 방주의 시야에, 뒤쪽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두 척의 전함이 보였다. 크기는 앞의 전함보다 작았지만 이쪽의 호위함보다는 훨씬 크다.
“포, 포위…….”
이미 퇴로가 막혔다. 완전히 포위된 것이다. 호위함의 화포들이 침묵하고 있는 이유도 분명했다. 이 상황에서 전투를 시작하면 결과는 전멸뿐이다. 사실상 호위함들이 백기를 올린 것이다.
“아니, 어떻게 해적들이 저런 배를…….”
저런 본격적인 전함을 해적들이 가지고 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황 방주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사이 노군이 혀를 차며 말했다.
“저 정도면 통행세도 장난 아니겠는데?”
“네?”
황 방주의 반문에 노군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차피 이놈들도 생업이잖냐. 산채나 수채처럼 적당히 통행세만 내면 보내주긴 할 텐데, 튀어나온 것들을 보아하니 웬만큼 받아서는 경비도 안 나오겠어.”
말하던 노군은 커다란 배를 흘끔 보고는 혀를 찼다.
“뭐, 너무 심하게 약탈하면 토벌 대상이 될 테니 어지간하면 목숨은 안 건드리겠지만……. 여긴 천축에서도 제법 멀어서 어떨지 모르겠군.”
본격적인 전함까지 갖춘 해적들이라면 그 존재만으로도 주변국의 안위를 위협하는 요소다. 평소라면 당장 천축 제국의 해군이 출동하겠지만 이 주변엔 이렇다 할 군사력을 갖춘 나라가 없다. 한마디로 해적들의 천국이라는 뜻이다. 무법지대에선 폭력이 모든 것에 우선하기 마련이니, 이 정도의 화력을 지닌 해적이라면 적어도 이 바다에선 왕, 아니 황제와 같이 군림할 수 있으리라. 황 방주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큰일이군요. 간신히 돈 좀 벌어 가나 했더니 다 털리게 생겼는데요.”
울상이 된 황 방주의 모습에 노군이 피식 웃었다.
“어떻게 할까?”
“네?”
황 방주의 반문에 노군은 뒷짐을 지며 고개를 들었다. 해적 전함이 압도적인 위용을 드러내며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노군의 눈동자에 두려움은 전혀 없었다.
“이쪽도 갈 길이 바쁘니까 얌전히 통행세만 걷어 간다면야 별 상관 않겠지만, 사람을 건드린다거나 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거든. 수틀리면 해적이고 전함이고 간에 깡그리 엎어 버리는 수도 있고…….”
“엎어 버리다니요?”
황 방주가 반문했다.
“아니, 고수도 화포보다는 세지 않다면서요? 그런데 어떻게 저 큰 전함을…….”
“당연히 화포나 전함보다야 세지 않지.”
씨익 웃으며 노군이 답했다.
“하지만 그 화포도, 전함도 사람이 움직이는 거잖냐. 사람이 상대라면 숫자가 몇이건 무슨 문제겠냐? 도망갈 곳도 없는 바다 한가운데서 말이다. 흘흘흘.”
그 절대적인 자신감에 황 방주는 할 말을 잃었다. 화포건 전함이건 움직이는 건 사람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사람이 없다면 제아무리 강력한 전함이라도 그저 물 위를 떠다니는 커다란 상자에 불과하다. 노군은 고개를 돌려 손빈을 바라보았다.
“빈아. 어찌하는 게 좋겠냐?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주마.”
손빈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일단은 좀 더 지켜보도록 하지요. 어쩐지…….”
그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가까이 다가온 해적의 전함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해역을 다스리는 위대한 영주님의 함대다!”
그 유창한 천축어는 갑판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황 방주는 놀랐지만 곧 쓴웃음을 지었다. 이 해역을 다스리는 영주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군은 그 음성을 들으며 사뭇 감탄하고 있었다.
“오, 내력이 제법인데? 저 정도면……. 어라?”
갑자기 노군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천축어로 울려 퍼진 그 말을 알아들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저항을 포기하고 검문에 응하라! 그리하면 너희들의 목숨은 보장할 것이다!”
해적들의 전함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해적선 뱃머리에 누군가 서 있었는데, 잘 보이지도 않는 그의 목소리가 상선 위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노군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어디서 들어 본 목소리 같은데?”
그 말에 황 방주도 깨달았다. 저 해적의 목소리에선 왠지 친숙한 느낌이 든다.
“어? 저 사람…….”
눈 좋은 서린이 해적의 전함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말했다.
“라흐만 형인데요?”
황 방주는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옆에 있던 노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그놈 목소리네.”
어이가 없다는 듯 황 방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라흐만은 황실 수호 위사란 말입니다.”
“그러게.”
노군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런 놈이 왜 저기서 저러고 있지? 그사이에 잘렸나?”
황 방주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믿거나 말거나, 해적의 전함은 점점 더 상선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잠시 후 해적 전함에서 작은 배가 내려지고, 그곳에 탄 한 무리의 해적들이 상선에 올랐다. 시커먼 외투를 두른 그 해적들의 선두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황실 수호 위사 라흐만이었다.
“쯧쯧.”
불쌍하다는 듯 노군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쟤, 어쩌다가 저렇게 됐냐?”
해적이 어쩌다가 되는 건 아니라고 손빈은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는 못했다. 다만 눈앞에 위용을 드러낸 해적 전함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될 것 같다는 느낌만이 더욱 짙어질 뿐이었다.
(작가의 말)
‘형이 왜 거기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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