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465)
낙향문사전-465화(465/494)
465화. 풍월루의 손님들
남경은 과거 여섯 왕조의 수도였다 하여 ‘육조의 도시’라 불리는 고도(古都)다. 여섯 왕조라지만 실제 크고 작은 국가의 수도가 되었던 적은 더 많았다. 이런 역사적 사실은 곧 남경이 과거부터 대륙에서 손꼽히는 대도시였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비록 북경이 정치와 권력의 중심지라지만, 지금도 남경은 대륙의 온갖 부와 문화, 그리고 향락과 사치가 모여드는 거대 도시로 그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하하하.”
“호호.”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화려하게 차려입은 남녀들이 각자의 자리에 앉아 웃음을 꽃피웠다. 남경에서도 누구나 인정하는 가장 화려하고 번화한 곳, 그것이 바로 이곳 풍월루였다.
고급스러운 술과 귀한 요리도 여기에선 가볍게 맛볼 수 있는 것에 불과했고, 이곳 예인들의 연주와 노래, 춤, 그리고 시와 그림은 하나같이 대단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때문에 풍월루는, 강북에서 풍류를 아는 자들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물론 이곳에서 한때를 즐기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부와 여유가 넘쳐나는 이들에게 그런 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못했다.
저벅, 저벅.
중후한 분위기를 지닌 노년의 사내가 풍월루로 들어섰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학자 같은 중년인과 제법 화려한 복식을 한 젊은 청년이 노년의 사내를 뒤따른다.
“어서 오십시오, 어르신.”
고풍스러우면서도 세련된 옷을 입은 중년인이 그들을 맞이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바로 이곳 풍월루의 총관이었다.
“잘 있었나?”
어르신이라 불린 노년의 사내는 부드러운 웃음으로 답했다. 단순하면서도 멋스러운 옷을 입은 노년의 그는 바로 회양상단의 상단주 호금흔이었다. 언뜻 수수해 보이지만 그가 걸친 외투만으로도 남경의 어지간한 집 한 채는 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풍월루의 총관도 재산으로는 남부럽지 않다. 그러나 회양상단의 상단주라는 직책이 가진 힘은 그저 소유한 부의 크기만으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리로 오시지요.”
“고맙네.”
약간 살이 찐, 그러나 비대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체격을 지닌 노년의 호금흔은 총관에게 가볍게 감사를 표했다. 그 예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는 걸 총관도 알지만, 그 모습이 사뭇 온화한 인품을 지닌 인격자처럼 보인다는 건 부인할 수 없었다. 총관은 호금흔에게 정중하게 예를 표한 후 앞서 걸었다.
저벅, 저벅.
회양상단의 상단주 호금흔은 총관을 따라 걸음을 옮기며 화려한 풍월루의 내부를 돌아보았다. 높이 솟은 풍월루의 일 층부터 삼 층까지는 일반 사람들에게도 열려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좋을 때로군.”
풍월루 일 층에 앉아 있는 젊은 남녀들을 바라보며 호금흔이 말했다.
“정말이지, 아주 부러워.”
앞서 걷던 풍월루의 총관이 입가에 웃음을 피워 올렸다.
“어르신께서도 부러운 사람이 있습니까?”
“후후.”
호금흔은 걸음을 옮기며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왜 없겠나? 아주 많지. 하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부러운 건 바로 젊음이라네.”
나지막이 한숨을 쉬며 그가 말을 이었다.
“젊음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대가라도 기꺼이 치를 수 있네. 설령 내가 가진 모든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야.”
“하하, 설마요.”
총관이 웃었다. 회양상단은 천하오대상단의 하나로 손꼽히는 거대 상단이다. 대륙 전역에 그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고, 얼마 전부터는 북해빙궁과의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쓸어 담고 있다. 중앙 조정과 각 지역 지방관청에 연줄이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강호 오대세가의 하나인 남궁세가와 깊은 유대를 맺고 있으니 그야말로 천하의 부를 그 손에 쥐었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회양상단의 상단주가 가진 모든 것을 내주겠다는 말을 누가 믿을 수 있으랴?
“허어, 이 사람. 정말이라니까?”
회양상단의 상단주 호금흔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디 나뿐인가? 다른 상단의 누구라도 같은 말을 할 걸세. 젊음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내주겠다고 말일세.”
“글쎄요? 아무리 어르신의 말씀이라지만 저는 좀 믿기 힘들군요.”
총관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결국 젊음 말고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으시니 그런 말씀도 하실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호금흔은 큰 소리로 유쾌하게 웃었다. 총관의 말은 비록 무례한 것 같으나 ‘천하의 모든 것을 가졌다’는 찬사와 다름이 없다.
“물론 그렇긴 하지.”
총관의 말을 그는 부인하지 않았다.
“허나 말일세. 본래 나는 아무것도 없이 지금의 자리를 손에 넣었다네. 아니, 오히려 형제와 친척들의 지독한 방해와 도전을 물리쳐 가며 이 자리에 올랐지.”
호금흔의 눈은 자신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나는 언제든 다시 쌓아 올릴 자신이 있다네. 재물이든 권력이든, 그리고 거대 상단의 주인 자리든 말이야. 그러니 내가 어찌 모든 것을 내어 주더라도 젊음을 사지 않을 수 있겠나?”
총관은 부드럽게 웃었다. 자신의 능력을 자신하는 그의 말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실제로 호금흔은 탁월한 능력을 통해 회양상단을 크게 일으킨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아무것도 없이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다. 만일 그가 전 상단주의 핏줄이 아니었더라도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슥.
총관은 흘깃 뒤를 따르는 젊은 청년을 바라보았다. 호금흔의 여러 아들 중 하나인 그의 표정은 사뭇 일그러져 있었다. 지금 호금흔의 말은 그에게 ‘왜 너는 젊은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느냐?’라는 책망에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언제라도 내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불편한 속내를 이토록 금방 드러낸다는 건, 그가 아직 미숙한 젊은이일 뿐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저벅, 저벅.
어느새 총관과 회양상단의 일행은 아담한 정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높다란 누각조차 겉모습일 뿐 풍월루의 진정한 모습은 바로 이곳, 후원에 감추어져 있다. 대륙의 부와 수많은 상단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선계(仙界)와도 같은 곳으로서 말이다.
사박.
후원으로 통하는 둥근 문 앞에 화려한 색조의 비단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서 있었다. 목과 어깨를 거의 드러내는 복식인 데다가 화장도 색이 짙고 화사했지만, 천박하기보다는 오히려 고풍스러운 느낌마저 드는 대단한 미녀였다.
“오, 루주.”
노년의 호금흔이 밝은 표정으로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 미녀는 바로 풍월루의 루주인 효설이었다. 효설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어르신.”
그녀가 고개를 숙이자 머리에 비스듬히 꽂은 기다란 비녀와, 끝에 달린 붉고 커다란 보옥이 인상적으로 반짝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렇잖아도 노출이 심한 옷에 고개까지 숙이니 속살마저 보일 듯 말 듯 한다. 뒤에 서 있던 젊은 청년은 눈을 반짝이며 노골적인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그 시선을 효설 역시 모르지 않았다.
“어머. 이 젊고 늠름한 분은 누구시지요?”
사뭇 교태스러운 음성으로 효설이 말했다. 젊은 청년의 눈동자에 열기가 피어오르는 순간, 회양상단의 상단주인 호금흔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 못난 아들일세.”
호금흔은 자신의 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곳의 루주시다. 예를 올려라.”
누군가를 소개하며 호금흔이 존칭을 사용하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그러나 효설의 드러난 살결에 시선을 빼앗긴 젊은 청년은 그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호, 호계위입니다. 반갑습니다.”
“효설이라 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호 도련님.”
가볍게 예를 표한 효설은 학자처럼 차려입은 중년인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총사께서도 오랜만이에요.”
총사라 불린 중년인은 말없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효설은 웃는 표정으로 상단주 호금흔에게 말했다.
“들어가시지요, 어르신. 안에서 기다리고 계시답니다.”
“공공께서 벌써 오셨단 말인가?”
노년의 호금흔은 눈을 크게 떴다.
‘공공’은 내관의 존칭이다. 그가 오늘 만날 상대가 황상을 보필하는 태감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직책은 높지 않으나 황상을 보필하는 태감은 누구라도 연을 대고 싶어 하는 요직 중의 요직이다. 그 누구의 부름에도, 그 어떤 선물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던 태감이 자신을 부른다 하니 어찌 만사를 제쳐 두고 달려오지 않을 수 있을까? 효설은 대답 대신 빙긋 웃었다. 그리고 호금흔도 그것엔 신경 쓰지 않았다. 상대보다 늦었다는 엄청난 실책이 그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가세.”
호금흔은 급히 발을 옮겼다. 효설은 머리카락을 살짝 넘기며 그 뒤를 따랐다. 여성적인 매력을 아낌없이 드러내는 효설의 뒷모습에 젊은 청년 호계위가 넋을 잃고 있는데, 문득 총사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르신의 말씀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도련님?”
난데없는 그 말에 호계위는 와락 인상을 구겼다.
“그게 무슨…….”
“그녀는 풍월루의 루주입니다.”
총사는 효설의 뒷모습을 보며 날카롭게 눈을 번득였다.
“손짓 한 번으로 대륙의 물류를 뒤흔들고, 말 한마디로 오대상단의 단주조차 움직인다는 그 풍월루의 루주 말입니다.”
호계위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자신이 탐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저 여인이 누구인지 그제야 새삼 깨달은 것이다.
―예를 올려라.
조금 전 부친은 그렇게 말했다. 그건 부친 호금흔 자신조차 효설의 위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녀는…….”
상단주 호금흔에게 무엇인가 웃으며 이야기하는 효설을 보며 총사는 조용히 말했다.
“결코 도련님이 넘볼 상대가 아닙니다.”
그것은 참으로 모욕적인 말이었다. 그러나 호계위는 이를 악물었다. 총사의 말이 전적으로 옳기 때문이다. 풍월루의 루주가 적의를 품으면 자신 따위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날려 가리라. 아무리 자신이 상단주의 핏줄이라지만, 풍월루의 분노를 감수하면서까지 부친이 자신을 지켜 줄 리는 없을 테니까.
“……고맙네.”
“천만에요.”
총사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의 충고는 호계위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상단주 호금흔의 실망과 분노를 적절한 수준에서 예방하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총사의 충고로 호계위가 도움을 얻은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저벅, 저벅.
두 사람은 묵묵히 상단주 호금흔과 효설의 뒤를 따랐다. 어느새 풍월루의 총관이 누각으로 돌아간 뒤였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
풍월루의 후원에 지어진 건물은 넓고 화려했다. 천하오대상단이라는 회양상단의 저택조차 이 정도는 아니어서, 젊은 청년 호계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박, 사박.
지금 그들이 지나는 복도에는 유명한 문인들의 시와 글씨, 그리고 그림이 걸려 있었다. 하나같이 호사가라면 저절로 발길을 멈출 법한 것들이었다.
탁.
문득 효설이 발을 멈췄다. 그녀가 선 곳은 제법 커다란 방문 앞이었다.
“이곳입니다.”
효설의 말에 회양상단의 상단주 호금흔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루주께서 애써 준 것은 결코 잊지 않겠네.”
“천만에요.”
별일 아니라는 듯 효설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노년의 호금흔 역시 그녀의 예에 답한 후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스륵.
호금흔의 손이 닿기 직전, 커다란 문이 소리도 없이 열렸다. 그리고 문사 차림의 한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 오십시오.”
청년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가 안에서 문을 연 것이다.
“고맙네.”
노년의 호금흔 역시 웃음을 머금으며 습관적으로 답했다. 눈빛이 제법 총명해 보이는 청년이었지만 궁금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안에 있는 태감을 만나는 것이 먼저였으니까.
저벅.
호금흔과 그의 아들 호계위, 그리고 총사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호금흔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것은 방이 생각보다 넓어서도, 그리고 방 안에 이미 누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바로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양원조!’
자신을 보며 똑같이 눈살을 찌푸리는 뚱뚱한 노년의 사내는 바로 화남상단의 상단주 양원조였다. 자신의 회양상단과 치열하게 경쟁해 온, 천하오대상단의 하나이자 혁련세가를 등에 업은 그 화남상단 말이다.
‘설마.’
호금흔의 얼굴이 단숨에 굳었다. 어쩌면 태감이 부른 사람은 자신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리 앉으시지요.”
문득 들려온 목소리에 호금흔은 고개를 돌렸다. 문을 열어 주었던 문사 청년이 자리를 권하고 있었다.
“음.”
호금흔은 방 안에 태감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짐짓 태연한 표정으로 자리로 향했다. 화남상단의 상단주 앞에서 당황한 꼴을 보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지만, 그를 지나칠 때 얼굴이 굳은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달칵.
회양상단의 호금흔 일행은 자리에 앉았다. 문사 청년은 손님을 맞이하는 예에 따라 세 사람에게 차를 따라 주었다.
또르륵.
찻잔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며 호금흔은 방 안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방 좌우편에 모두 다섯 곳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으음.’
불길한 예감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신들의 자리가 말석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제일 상석도 아니었지만. 방의 전면에 위치한, 아마도 태감의 자리임이 분명한 곳은 비어 있었다. 효설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으니, 아마도 다른 방에서 손님들이 모두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리라.
“후우.”
호금흔은 나지막이 숨을 쉬며 찻잔을 쥐었다. 향기로운 차향이 코끝을 간질였지만 지금은 향을 음미할 여유조차 없었다.
“놀라운 일이군.”
문득 들려온 목소리에 호금흔은 눈살을 찌푸렸다. 말을 건 사람은 바로 화남상단의 상단주 양원조였다.
“뭐가 말인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호금흔이 물었다. 비대한 양원조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옆에는 화사하게 차려입은 화남상단의 젊은 아가씨와 총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모르는 척할 셈인가? 쯧쯧.”
화남상단의 상단주 양원조가 혀를 찼다. 그 소리가 회양상단의 호금흔에겐 대단히 거슬렸다.
“자네가 북해의 칠궁주에게 연이 닿아 있을 줄은 몰랐네. 게다가 보아하니 우리만 초청한 것도 아닌 것 같…….”
“뭐라고?”
달칵. 노년의 호금흔은 자신도 모르게 찻잔을 내렸다. 문득 방문 옆에 서 있는 문사 청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지만, 호금흔은 눈살을 찌푸린 채 화남상단의 양원조에게 물었다.
“북해의 칠궁주라니?”
비대한 양원조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보기와 달리 대단히 눈치가 빠르다. 그 천부적인 감과 놀랄 만한 심계가 그를 오늘날 화남상단의 주인 자리에 오르게 한 것이니 말이다.
“나는 북해 칠궁주의 초청으로 왔네. 자네는 누구의 부름을 받았나?”
화남상단의 상단주 양원조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회양상단주 호금흔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양원조는 싫지만 이 거래는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황상을 보필하는 공공께서 부르셨네.”
비대한 양원조가 작은 눈을 부릅떴다. 그러곤 인상을 구겼다.
“……이럴 수가. 이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그의 머리는 이미 답을 내놓고 있었다. 그건 회양상단의 호금흔에게도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이 내놓은 답을 받아들일 수가 없을 뿐이었다.
“……그래도 믿을 수밖에 없겠지. 우리를 이곳으로 부른 사람은.”
내려놓은 찻잔을 조용히 다시 들어 올리며 회양상단의 상단주 호금흔이 말했다. 태감을 사칭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가 받은 서찰은 황상을 보필하는 태감이 직접 쓴 친서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화남상단의 상단주 양원조가 받은 초청 역시 그와 비슷하리라. 출처가 확실한, 절대로 의심할 수 없는 초청 말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분명하다.
“황실 태감과 북해 칠궁주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일세.”
침묵이 넓은 방 안에 내려앉았다. 회양상단의 호금흔 일행은 물론이고, 화남상단의 양원조 일행 역시 굳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살아 있는 절대 권력인 황상을 보필하는 태감과, 북해의 여제라고까지 불리는 칠궁주가 자신의 이름을 기꺼이 내어 주었다. 그런 존재가 자신들을 만나려 한다는 게, 대체 어떤 의미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 무거운 침묵 속에서, 방문 옆에 조용히 서 있는 문사 청년만이 온화한 얼굴로 조용히 다음 손님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작가의 말)
직접 열어 주고, 먼저 인사하고, 자리에 안내하고, 차까지 손수 따라 주었으니 손님을 맞이하는 예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