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49)
낙향문사전-49화(49/494)
제49화. 찻잔 속의 태풍 22014.02.18.
중오는 팔짱을 낀 채 턱을 치켜들고 거만한 태도로 꼬마들을 쳐다보았다.
“이씨, 대답 안 해? 어디 가냐고!”
“서, 서원에 가는데…….”
겁이 많은 호두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중오나 아이들이나 다 고만고만한 꼬마에 불과했지만, 자우보다 조금 큰 키에다 체격이 좋고 힘도 센 중오는 꼬마들에겐 제법 위협적인 존재였다.
벌써 앵앵이는 소소 뒤에 숨어 있고, 다른 꼬마들도 호두와 견자 뒤에 숨어 있었다.
그래도 나름 대장이랍시고 자우는 앞에 나서서 중오와 눈싸움이라도 할 듯 노려보고 있었다.
“서원? 또?”
중오가 눈살을 찌푸렸다.
“쟤네 맨날 가잖아.”
옆에 서 있던 계구가 말했다.
언제나 중오랑 붙어 다니는 계구는 중오만 믿고 꼬마들을 괴롭히곤 했지만 사실은 자우보다 키도 작고 힘도 약했다.
“하늘 천 따 지 가마솥에 누룽지, 뭐 그런 거나 배울걸?”
계구가 아이들을 놀리듯 말했다.
“아니야!”
소소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글도 배우고, 글씨도 배워. 그리고 이젠 무공 수련도 한단 말이야!”
“마, 맞아.”
소소 뒤에 숨은 앵앵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중오나 계구에겐 들리지 않았지만.
“뭐?”
무공 수련이라는 말에 중오가 눈살을 찌푸린다.
“거짓말!”
계구가 바로 소리치듯 말했다.
“너희가 다니는 서원은 글 배우는 데라고 우리 아빠가 그랬어!”
“거짓말 아니야! 지난번에는 난싫어쌍장도 배웠어!”
소소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반론했다. 그 기세에 계구는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갑자기 익숙하지 않은 복잡한 단어가 나온 것도 한몫 했다.
“난싫…… 뭐? 그, 그런 무공이 어디 있어?”
“진짜야!”
소소가 대차게 주장했다.
늘 방관자처럼 따로 있던 여자애들이 이렇게 나서는 것은 처음이어서, 계구도 제법 당황했다.
“그, 그래도 중오의 천하제일권보다는 약할걸? 그렇지?”
계구가 중오에게 동의를 구하듯 물었다.
“당연하지. 천하제일권은 천하제일이야.”
제법 당당한 목소리로 중오가 말했다.
하지만 중오의 시선은 자우를 향해 있었다. 아까부터 두 사람은 마치 눈싸움이라도 하듯 노려보고 있었다.
저벅.
중오는 자우를 향해 한 걸음을 땠다. 그러자 꼬마들이 동시에 움찔한다.
그 모습에 자신감을 얻은 중오가 건들거리는 듯한 태도로 자우에게 다가왔다.
가까이 서자 중오의 큰 키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어른이 보기엔 그저 고만고만한 꼬마들이었지만.
“흥.”
계구도 자신감을 얻었는지 코웃음을 치고는 쪼르르 따라오다가 문득 호두의 풀피리를 보고는 바로 빼앗았다.
탁.
“앗!”
무어라 말할 틈도 없이 호두는 풀피리를 뺏겼다. 자우는 계구를 향해 소리쳤다.
“야! 너 그거 안 내놔?”
자우가 소리치자 소소도 바로 한마디 했다.
“남의 것을 빼앗는 건 안 된다고 선생님도 그랬어!”
하지만 계구나 중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럼, 도로 뺏어 가든가.”
중오가 자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자우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꼼짝할 수가 없었다.
“이, 이…….”
지난번에도 이런 상황이었다. 그때도 화가 치민 자우가 덤벼 봤지만 중오에겐 통하지 않았다.
가볍게 피한 중오가 날린 주먹 한방에 땅바닥에 나뒹굴었던 것이다.
자우는 흘깃 호두를 보았다.
호두는 당황하고 낭패한 표정으로 풀피리를 향해 손을 뻗지만, 계구는 그런 호두를 놀리듯 풀피리를 들고 이리저리 피하며 메롱거리고 있었다.
“왜, 또 혼나 볼래?”
중오가 자우에게 말했다. 중오의 목소리와 함께 지난번에 넘어져 나뒹군 기억이 떠오른다.
자우의 손발에 힘이 빠졌다. 자기보다 키도 크고 힘도 강한 중오에게는,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이익.’
분한 마음에 눈물까지 나려고 한다. 하지만 자우의 고개는 자기도 모르게 아래로 숙여지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싫어!”
퍽.
갑작스런 소리에 자우는 고개를 돌렸다. 다른 꼬마들은 물론 중오까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풀피리를 들고 호두를 놀리던 계구가,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있었던 것이다.
“어, 어.”
계구도 이 상황이 당황스러운지,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놀림을 받던 호두가 눈을 질끈 감고 두 손으로 계구를 갑자기 밀어낸 것이다.
힘은 별로 실려 있지 않았지만 갑작스런 행동에 계구가 속절없이 뒤로 밀려 버렸다.
‘눈을 떠.’
그 순간, 자우의 머릿속에 손빈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심호흡을 해.’
호두는 눈도 감았고 심호흡을 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발을 내딛는 동작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얼결에 나간, 한마디로 엉터리 쌍장이다. 그러나 자우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데는 충분했다.
“후우우.”
자우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몇 번이나 반복했던 동작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두 손을 가슴에 모았다. 그리고 번쩍 눈을 떴다.
“나안…….”
넘어진 계구를 쳐다보던 중오는 문득 들린 자우의 낮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자우의 시선을 맞닥뜨렸다.
‘어?’
“싫어어…….”
자우의 눈동자는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느낀 순간, 자우의 모습이 크게 커지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은 자우가 한 발을 내디디며 다가온 것이었지만 그것을 알아차릴 겨를이 없었다. 엄청난 기합소리가 중오의 귀를 가득 메워 버렸기 때문이다.
“쌍장!”
팍!
순간 자신이 붕 떠서 날아간다고, 중오는 느꼈다. 그리고 곧 엄청난 충격과 함께 중오는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쿠당탕.
아파서 소리도 지르지 못할 정도였다.
땅바닥에 넘어진 것뿐인데, 온몸이 크게 요동치며 뒤흔들리는 것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중오를 날려 버린 자우도 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어.’
온 힘을 다해 내지르긴 했지만, 설마 자신보다 큰 중오가 저렇게 나뒹굴 줄은 생각도 못했다. 게다가 그렇게 힘들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땅이 날 밀어 줬어.’
앞으로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자우는 분명히 느꼈다. 자신이 내디딘 대지가 자신을 굳건히 받쳐 주는 것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마치 대지가 자신을 도와주는 것 같았다. 그 힘이 자신의 팔을 통해 전달되어 저 중오를 밀어낸 것이다.
“이, 이 자식이…….”
자우가 스스로에게 놀라고 있는 동안, 중오도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수치와 함께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 분노가 고통을 잊게 했다. 중오는 벌떡 일어서서 자우를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자우도 그저 쳐다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도도도.
자신을 향해 덤벼드는 중오를 똑바로 바라보며 자우는 다시 한발을 내디뎠다.
탁!
그리고 중오를 향해 힘껏 두 팔을 내질렀다. 아까보다 더욱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자세까지 낮춘 데다가 제대로 적시에 내지른, 아주 정확한 동작이기도 했다.
“난싫어쌍장!”
팍!
막무가내로 달려오던 중오는 자우의 쌍장을 맞고 다시 한 번 뒤로 날아갔다.
쿠당탕.
중오는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꼬마들은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주저앉아 있던 계구도 눈을 둥그렇게 뜨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보았다.
“큭.”
중오는 일어나지 않았다. 짧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싶더니, 그 소리는 곧 울음소리로 변했다.
“으아앙.”
땅바닥에 넘어진 채로 중오는 울기 시작했다. 두 번이나 나뒹굴었으니 아프기도 한 데다가 이런 꼴을 당하니 서럽기도 하다.
그 북받치는 감정에 그만 울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건, 싸움이 끝났음을 알려 주는 것이기도 했다. 자우가 이긴 것이다.
“우와아!”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얌전하던 앵앵이까지 펄쩍펄쩍 뛰고, 평소엔 상관없는 척하던 소소도 두 손을 번쩍 들고 좋아했다.
사실 어른이 보았다면 그저 고만고만한 꼬마들이 툭탁거리는 정도로 보였겠지만, 꼬마들에게는 가슴 벅찬 승리였다.
“우에엥.”
중오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울고 있었다. 계구가 얼른 일어나 중오를 다독였지만 중오의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우와! 대단해!”
“잘했어! 잘했어!”
꼬마들은 그런 중오와 계구를 내버려두고 신나게 떠들어 댔다.
풀피리를 뺏겼던 호두도 웃고 있었다. 계구가 내팽개친 풀피리가 바닥에 뒹굴고 있었지만 꼬마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꼬마들은 의기양양하게 서원을 향해 승리의 귀환을 시작했고, 중오와 계구는 콧물을 훌쩍이며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집으로 돌아갔다.
*
*
*
호연무관은 청원에 그 기반을 둔 중소 무관이었다.
제법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데다, 무림오대세가 중 하나로 꼽히는 혁련세가와 관계도 좋아서 강남 무림에서는 나름대로 존재감이 있는 무가였다.
다만 지리적으로 혁련세가가 위치한 광주가 너무 가까운 탓에 세력 확장에 한계가 있었고, 결국은 혁련세가의 협력 혹은 휘하 무가 정도로 취급받는 것이 호연무관의 한계이기도 했다.
그래도 호연무관이 자리한 청원 인근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무가가 바로 호연무관이었다.
“다녀오셨습니까?”
호연무관의 총관은 관주 적철관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음.”
건장한 체격의 관주 적철관은 조금은 피곤한 기색으로 집무실에 앉았다.
향이 피어오르는 따뜻한 차가 그의 기분을 달래 주기는 했지만, 적철관의 안색은 쉽게 밝아지지 않았다.
“가신 일은 잘되셨는지요?”
“좋지 않네.”
찻잔을 들어 올리며 적철관이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혁련세가에 막 다녀온 참이었다. 명목상으론 가볍게 인사나 나누자는 모임이라지만, 사실상의 호출에 다름없다.
“소은표국이 당문의 일을 맡기로 한 모양일세.”
소은표국은 청원에 기반을 둔 표국이다. 호연무관과는 제법 좋은 관계였는데, 최근 표행을 연달아 실패하면서 궁지에 몰려 있었다.
“당문이 아니라, 사량표국의 일을 맡기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어차피 마찬가지지. 사량표국의 주인은 사실상 당문이니까.”
적철관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쳤다. 그가 생각을 가다듬을 때 늘 하는 버릇이다.
“혁련세가에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더군. 아무래도 당문이 슬금슬금 강남 무림으로 진출하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는 모양이야.”
적철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그도 그렇겠지. 요즘 당문의 세력 확장이 꽤나 적극적이라고 하니. 새로운 총괄 군사인 설검 당화련은 젊은 데다 제법 야망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고.”
설검 당화련에 대한 이야기는 총관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현 무림에서 당문의 새 별이자 젊은 신진고수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설검 당화련에 대한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은표국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야 그렇겠지만…….”
총관의 말에 적철관은 턱을 괴고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혈룡문의 일이 좀 잠잠해진다 싶더니 이제는 당문이라. 혁련세가로서도 껄끄러운 상대이긴 하겠지.”
다름 아닌 무림오대세가 중 하나인 당문이다. 혁련세가로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다.
“남궁세가에서는 어찌한다고 합니까?”
장강 바로 이남에 자리 잡은 남궁세가는 혁련세가와 함께 강남 무림의 양대 맹주를 자처해 왔다.
사실 이제까지 혁련세가의 가장 큰 경쟁 상대는 바로 남궁세가였다.
“남궁세가 말인가? 무한에 진출한 이후 강북 무림에 자리를 잡느라 정신이 없다더군.”
“허면 소은표국에 대해서는…….”
“이제까지의 정리를 생각하면 어떻게든 돕고 싶지만, 혁련세가가 저렇게 나오니 어쩌겠나? 잠시 두고 보는 수밖에…….”
잠시 두고 본다고 했지만 그건 사실상 방관하겠다는 말과 마찬가지였다. 그 잠시 동안 소은표국이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혁련세가를 거스를 수는 없다. 그간 소은표국과는 친밀한 관계를 이어 왔던 터라, 적철관으로서는 입맛이 쓰다.
“알겠습니다. 그리 알고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총관이 고개를 숙여 관주의 뜻을 받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물러가려 했다.
“내가 없는 동안 별일은 없었나?”
적철관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무심한 듯 묻는다.
총관은 긴장했다. 관주가 저렇게 묻는 것은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잠시 침묵하던 총관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막내 도련님이 친구들과 다툰 것 같습니다.”
“울고 들어왔다고 하던데?”
적철관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네.”
총관은 대답했다. 적철관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쳤다.
“애들이야 놀다 보면 싸울 수도 있고, 울 때도 있지. 하지만 말이야.”
적철관의 날카로운 눈빛이 총관에게 가 닿는다.
“그걸 이용해서 누군가 수작을 부리려고 한다면, 그건 절대로 그냥 넘길 수 없어.”
“무슨…….”
“둘째에게 들었다.”
둘째라면 세화 아가씨다. 막내 도련님이 유독 따르는, 나이 차이가 좀 나는 누나다.
“어떤 제자들이 막내에게 복수를 부추기고 있다고 하더군. 심지어 자신들이 나서서 아이들을 혼내 주겠다고 하면서 말이야. 그게, 우리 호연무관의 제자가 할 짓인가?”
총관의 안색이 굳었다.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적철관은 늦게 얻은 어린 막내를 매우 아낀다.
아마 그걸 알고 제자들도 그런 행동을 한 것이겠지만, 그건 적철관을 몰라도 한참 모르고 하는 짓이다.
적철관은 그 무엇보다도 무인으로서 자존심과 자부심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막내에게 접근했다는 건, 그들이 감히 이 호연무관의 앞날에 간섭할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총관은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너무 과한 생각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막내 도련님에게 접근한 제자들에게 과연 그런 생각이 하나도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
“같은 문하의 일을 돌아본 것이라 할 수도 있으니 파문까지는 하지 않겠다.”
적철관의 명은 가을 서리처럼 싸늘했다.
“허나, 이 일에 연루된 자들은 모두 엄히 징계하여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있지 않도록 하라. 이런 일에 신경 쓸 시간이 있으면 한번이라도 더 수련에 힘써야 할 것이 아닌가?”
총관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적철관의 얼굴에서는 한동안 노기가 가시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적철관이 물었다.
“그런데, 막내가 누구와 싸웠다던가?”
“얼마 전 새로 시작한 작은 서원의 아이들입니다.”
“서원?”
적철관은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했다.
“네. 듣기로는 아이들에게 수련을 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수련이라?”
적철관은 흥미를 보였다.
“재미있군. 요즘 서원이라면 무조건 글이나 읽게 하고 답답한 생원들만 만드는 곳인 줄 알았는데.”
“얼마 전 낙향한 손빈이라는 젊은 거인(擧人)이 시작한 서원입니다.”
“호오.”
적철관은 미소를 지었다.
“과연 젊은 사람이라 그런지 생각이 열려 있군. 맞아, 그래야지. 본래 무가의 장수란 당대의 뛰어난 학자이기도 했다. 요즘은 기개를 가진 무인보다 정치를 잘하는 무인이 출세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지만 말이지.”
고개를 끄덕이던 적철관은 말했다.
그의 머릿속에 본 적도 없는 손빈이라는 사람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젊고 기개를 가진 호쾌한 인상의 호랑이 선생님이.
“마침 잘됐군. 이제 막내도 글을 배울 때가 됐으니, 그 서원으로 보내도록 하게.”
총관은 잠시 멈칫했지만 곧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총관은 내심 관주의 결정에 감탄했다.
이로써 관주의 뜻이 어디 있는지 모든 제자들이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시간이 나면 그 서원에 한번 인사라도 하러 가 봐야겠군.”
그렇게 말은 했지만 시간은 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강남 무림의 정세가 요동치고 있는 상황에서는.
총관은 고개를 조아려 예를 표하고는 조용히 집무실에서 물러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