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79)
낙향문사전-79화(79/494)
제79화. 용은 구름 속에 노닐고2014.06.03.
사수연의 상태는 심각했다. 손빈이 감싸 안은 덕에 다친 곳은 없어 보였지만, 문제는 그녀의 내기가 강한 충격으로 온통 뒤흔들렸다는 것이다.
“사 소저!”
손빈이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눈을 뜨지 못했다. 한번 피를 토한 후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손빈의 품 안에 안긴 그녀의 안색에서 핏기가 사라져 간다.
“사 소…….”
“움직이면 안 된다.”
사수연의 얼굴을 만지려는 순간 신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궁훈을 살피고 있던 신의가 어느새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고 사수연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음.”
잠시 맥을 짚어 보던 신의가 사수연의 혈도 몇 곳을 가볍게 두드렸다. 사수연은 나지막이 신음을 흘렸지만 여전히 의식을 잃은 채였다.
신의는 손빈이 품에 안고 있던 사수연을 천천히 바닥에 눕히도록 했다.
눈을 감은 그녀의 핏기 없는 얼굴이 손빈의 눈에 아프도록 박혀 온다.
“사 소저는…… 어떻습니까?”
손빈이 물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사수연을 향한 채였다. 굳은 표정으로 신의가 말했다.
“이미 한기가 뼛속까지 침투한 상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위태로운 상태였는데 강한 충격으로 인해 내기가 온통 진탕되어 버렸어. 이대로라면…….”
신의는 입술을 깨물었다.
“방법이 없다.”
손빈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 손빈이 물었다.
“정말 아무런 방도가 없겠습니까?”
신의는 눈살을 찌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없다. 그저 이대로 안정을 되찾기를 바라는 수밖에는. 하지만…….”
신의는 고개를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신의를, 정확하게는 사수연과 신의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붉은 용의 무복을 입은 사내들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그럴 수 있을지도 의문이군.”
그는 아마도 사수연이 안정을 취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한월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우우웅.
섬뜩한 붉은 기운을 두른 그의 검이 나지막이 울음을 운다. 그리고 그가 사수연을 향해 한 발을 내디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멈춰라!”
화려한 의복을 입은 한 청년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수려한 외모를 가진 그 청년은 한월을 향해 주저 없이 검을 들었다.
“나는 제갈세가의 제갈휘다. 사 소저께 위해를 가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치잉!
또 다른 청년이 나섰다. 그 역시 검을 들고 한월과 마주 섰다.
“나는 혁련세가의 혁련후다. 나 또한 파검신녀를 지키겠다.”
“공손세가의 공손각. 함께하겠다.”
“모용세가의 모용린이에요.”
칭.
옅은 분홍빛 옷을 입은 꽃다운 아가씨가 검을 뽑았다.
“파검신녀께 위해를 가한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어요.”
채채챙.
다른 청년과 아가씨 들의 손에도 검과 도가 빛나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 있던 모든 후기지수가 무기를 뽑아 든 것이다.
“이것들이 감히 대인께!”
사파의 후기지수들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 역시 일제히 무기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채채챙.
검과 도에서 빛나는 예기가 연회장 안에 가득했다.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감 속에 사태는 그야말로 일촉즉발. 등왕각에 피가 흐르는 것은 이제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훗.”
한월이 웃었다. 검과 도의 한가운데 서 있는 그는 이 상황을 즐기듯 느긋한 표정이었다.
“신월.”
“네.”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정파 후기지수들을 노려보고 있던 신월이 대답했다.
“나를 위해 검을 든 이 용감한 젊은 친구들과 함께 바깥 형제들의 상황을 살펴라. 나는 이곳을 마저 정리하고 가겠다.”
그의 뜻을 정확히 이해한 사람은 신월뿐이다. 하지만 그의 의도만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허나, 대인! 우리도…….”
사파 후기지수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이렇게 시간을 끌다가 남궁가에게 붙잡혀 치욕을 당하고 싶은가?”
한월의 어조는 단호했다.
“너희에겐 할 일이 아주 많다. 그리고 기억해라. 너희가 남궁가를 꺾었다는 것을. 누가 무엇이라 모함한다 해도 그것은 사실이다. 너희가 스스로의 눈으로 직접 확인한 분명한 사실.”
기세가 담긴 한월의 말에 사파 후기지수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수연이 암기라고 말하긴 했지만 본 사람도, 증거도 없다. 위선적인 정파들이 사용하는 전형적인 억지일 가능성 역시 없지는 않다.
“그, 그래도 대인을 홀로 남겨 둘 수는…….”
한월은 웃었다. 잠시 웃음을 머금던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 정도는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 신월, 가라.”
“네.”
신월이 그의 명을 받들었다.
한월의 뜻이 단호하자 사파의 후기지수들 역시 신월을 따라 연회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회장에 혈룡문 무사는 오직 한월만이 남게 되었다.
“이제 나 혼자가 되었으니 너희에게는 훨씬 유리한 상황이 되었군.”
한월이 정파의 후기지수들을 보며 비웃음을 지었다.
“덤벼라.”
“타앗!”
제갈휘가 기합과 함께 한월에게 덤벼들었다. 제갈세가의 명성답게 예리하고 현란한 검로가 한월을 향해 똑바로 날아든다.
부웅.
그 뒤를 혁련세가의 혁련후가 떨치는 강맹한 도격이 짓쳐 들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합격을 수련한 적은 없었을 텐데도, 제갈휘의 공격을 절묘하게 보완하는 공격이었다.
명문세가의 제자로서 오랜 시간 갈고닦아 온 그의 전투 감각이 매우 뛰어남을 짐작케 했다.
“좋군.”
한월이 가벼운 웃음을 입가에 떠올리는 것과 동시에 그의 검이 붉은 기운을 더욱 거세게 내뿜기 시작했다.
“아주 좋아.”
콰앙!
그의 검이 붉은 궤적을 그리며 허공을 가르자 강한 폭음과 함께 두 사람의 신음이 뒤이어 튀어나왔다.
“큭.”
“우욱.”
“하지만, 그저 좋은 정도일 뿐이로군.”
“타아!”
공손세가의 공손각이 지체 없이 검을 찔러 갔다. 공손세가 특유의 만만치 않은 내력이 담긴 그의 검이 한월의 허점을 노리고 거칠게 이를 드러낸다.
그러나 한월은 그저 한 번 검을 휘두르는 것으로 공손각의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쾅.
“악!”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공손각의 뒤를 이은 것은 모용린의 검이었다.
카앙!
“호오, 아가씨의 검이 제법 묵직하군.”
모용린의 검과 맞선 채 한월이 말했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콰앙!
“욱.”
모용린이 검과 함께 뒤로 튕겨 났다. 단 한 번의 격돌로 그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한월은 한 점 흐트러짐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마치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태산처럼 태연하고 당당하게.
“이것뿐인가? 날 놀라게 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나?”
명문세가의 자제들이 단번에 무력화되어 버리자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한월이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한 말을, 그들은 그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설령 이 자리에 있는 후기지수 전부가 덤빈다 해도 그를 쓰러트릴 수는 없다. 일대다수의 난전이 되면 다른 이들을 피신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허망하게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아무도 없나?”
한월은 피식 웃었다.
“용봉지회라더니, 용봉(龍鳳)은 없고 오직 미꾸라지와 참새 들뿐이군.”
그건 지독한 모욕이었지만 아무도 그에게 반박하지 못했다.
그의 검에서 일렁이는 붉은 검기와,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는 명문세가 자제들의 모습이, 서로의 차이를 너무나도 명백하게 보여 주고 있는 까닭이다.
한월은 천천히 연회장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 눈동자에 어린 살기에 보통 사람들은 시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겁에 질리고, 검을 든 후기지수들조차 이를 악문다.
모두가, 죽음을 직감했다.
“이제, 나와야 하지 않나?”
문득 한월이 사수연 쪽을 보며 말했다. 사람들은 잠시 의아해했다. 파검신녀 사수연은 아직도 의식을 잃은 상태였으니까.
슥.
그리고 일어난 사람은 문사 차림의 한 청년이었다. 파검신녀의 연인으로 알려진 바로 그 청년 문사.
사람들은 그가 무엇인가 착각한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한월은 웃음을 지었다.
“그래, 바로 너 말이다.”
한월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분명히 그 청년 문사였다. 한월의 살벌한 기세와 그 눈에 어린 살기에도 불구하고 청년 문사는 한월의 눈동자를 똑바로 직시하고 있었다.
‘응?’
한월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기대했던 타오르는 분노가 청년 문사의 눈동자에서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노는 물론이고 혼란도 두려움도, 심지어 날카로운 긴장조차 없었다.
그 문사의 눈동자에 가득한 것은 바로 단호한 결의였다.
“훗. 적어도 눈빛만은, 네놈이 최고로군.”
비웃음을 흘리며 한월이 말했다. 그러나 자신의 비웃음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그는 인식하지 못했다.
“그 눈빛만큼이나 실력 또한 대단한지, 어디 한번 볼까?”
무사로서의 본능적인 감일까? 빈정거리듯 말했지만 한월의 눈빛은 세차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손빈은 고개를 돌려 사수연을 내려다보았다. 의식을 잃은 그녀의 창백한 얼굴이 가슴에 박힌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손빈이 그녀에게 말했다. 대답은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당신을 지킬 테니까.”
저벅, 저벅.
청년 후기지수들 사이로 손빈은 천천히 걸어 나갔다. 후기지수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손빈이 지나도록 비켜 주었다.
손빈의 허리에 걸린 백로가 나지막이 울고 있었다.
*
*
*
슥.
그 노인은 마치 유령처럼 나타났다.
아무런 기척조차 없어서, 혈룡문의 무사는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닌가 싶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잘못 본 것일 리는 없었다. 지금 이곳은 자신들 외에는 아무도 없어야 하는 곳이니까.
칭.
노인을 발견한 혈룡문 무사는 주저 없이 검을 빼 들었다. 그리고 노인의 존재를 알아차린 다른 혈룡문 무사들 역시 검을 뽑았다.
눈 아래로 얼굴을 가린, 수십에 달하는 무사들이 어둠 속에서 일제히 검을 뽑자, 적막하기까지 하던 공기가 순식간에 팽팽하게 당겨졌다.
살기 어린 시선들과 날카로운 칼날이 어둠 속에서 차갑게 빛난다.
“흘.”
노인이 나지막이 웃었다. 뒷짐을 지고 서 있는 그 모습은 마치 야경이라도 구경하는 듯 유유자적했다
“얼굴은 죄다 가린 주제에 보란듯이 문파의 무복이라니, 이 무슨 이율배반이냐. 요즘은 무식이 유행인가?”
혈룡문 무사의 눈썹이 꿈틀했다.
“넌 누구냐?”
낮은, 그러나 날카로운 기세가 담긴 그 목소리는 듣는 이들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상대가 남악노군이 아니었다면.
“쯧. 젊은 놈이 목소리에 힘주는 못된 버릇부터 배웠군. 게다가 어른을 대하는 기본적인 예의가 없어. 그러니까 어렸을 때 좋은 선생님을 만났어야지. 귀찮은 꼬마라도 같이 놀아 주는 걸 마다하지 않는, 아주 좋은 선생님 말이야. 흘흘흘흘.”
무언가 웃긴 말이라도 한 것처럼 노군은 웃었다. 그러나 혈룡문 무사들은 아무도 웃지 않았다.
노군의 정체를 물었던 무사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흘깃 수하를 쳐다보았다.
“요주의 대상인가?”
수하는 남악노군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남궁세가의 고수급 인물은 물론 오대세가와 사대정파의 참관인 중에도 해당되는 자는 없습니다.”
“해당되는 자가 없다?”
혈룡문 무사는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좋지 않군.’
한눈에 보기에도 저 노인은 결코 범상한 자가 아니다.
칼을 들고 살기를 뿜어내는 수십 명의 무사들을 어둠 속에서 마주치고도 저렇게 너스레를 떨 수 있는 사람이 어찌 범상할 수가 있을까?
그런 자가 요주의 대상에 없다는 것은 단 하나를 의미했다.
‘흉(凶)이다.’
그는 물러나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러나 물러날 수는 없다.
슥.
혈룡문 무사는 한 손을 옆으로 뻗었다. 혹 모를 수하들의 성급한 행동을 저지하는 것이다.
수하들이 의외의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는데, 혈룡문 무사는 노군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나겠다면 길을 열겠다. 당신이 우리를 적대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당신을 적대할 생각은 없다.”
“호오.”
노군의 눈빛에 이채가 돌았다.
“제법 상황 판단이 빠른 놈이군. 하긴 칼날 위에서 살아가려면 그 정도 눈치는 있어야겠지. 하지만.”
후우우웅.
바람도 없는데 노군의 소맷자락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노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무인으로서 뜻이 있다면 검으로 말하면 그뿐. 그래서 난, 영악한 놈을 싫어한다.”
우우웅.
노군에게서 엄청난 기세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들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기세. 혈룡문 무사들의 안색이 일제히 굳는다.
‘큭.’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으득.
혈룡문 무사는 이를 악물었다. 폐부를 쥐어짜듯이 그는 명령했다.
“쳐라!”
“타아아!”
강렬한 기합과 함께 혈룡문 무사들이 노군을 향해 일제히 짓쳐 들었다. 기본적인 방어조차 도외시한, 몸을 사리지 않는 맹목적인 공격.
눈앞의 모든 것을 단숨에 부숴 버릴 것 같은 그 공격은, 그러나 마치 공포에 못 이긴 인간이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것 같은 절망적인 몸짓이었다.
“그래. 그게 너희들의 최선이겠지. 그저 부나방처럼 죽음을 향해 목숨을 던지는 것.”
노군이 읊조리듯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너희 같은 놈들이 싫다는 것이다.”
노군의 손이 슬쩍 움직였다.
번쩍.
강렬한 빛의 궤적이 짙은 어둠을 갈랐다.
*
*
*
사박.
옷깃을 스치는 듯한 작은 소리에 혈룡문 무사는 고개를 돌렸다. 면사로 얼굴을 가린 소녀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작고 가녀리기까지 한 그녀의 모습은, 언뜻 보면 불행한 소녀가 길을 잃고 사지로 들어온 것 같아 보였다.
칭.
혈룡문의 무사는 검을 빼 들었다. 소녀의 존재를 눈치챈 다른 무사들도 있었지만 굳이 검을 뽑지는 않았다.
어차피 금방 끝날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설령 소녀가 이제야 눈치를 채고 도망한다 해도, 비도 한 자루를 날리면 그만이니까.
사박, 사박.
그러나 소녀는 이쪽을 향해 똑바로 걸어오고 있었다. 두리번거리지도, 주춤거리지도 않았다.
흉흉한 기운을 뿜어내는 혈룡문 수십 명의 무사들을 향해서, 마치 산책하듯 그녀는 조용히 걸음을 옮긴다.
“미안하지만.”
조금은 거친 소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독기공의 운용은 아직 능숙하지 못해요.”
소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혈룡문 무사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소녀에게서 끔찍할 정도로 섬뜩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혈룡문의 단련된 무사들조차 눈을 찌푸리고 신음을 흘릴 정도의 기운이.
치치칭.
혈룡문 무사들은 일제히 검과 도를 뽑아 들었다. 그들이 뿜어내는 날카로운 기세가 소녀의 피부를 당장이라도 가를 듯 팽팽하다.
그러나 소녀는 그들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독기공만이 아니죠. 무공을 직접 익히기 시작한 건, 사실상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머릿속으로는 언제라도 무공을 펼쳐 낼 수 있을 듯 명확했다. 온갖 비급과 무공 서적들이야말로 지금까지 유일하게 그녀와 함께한 벗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무공을 자신의 몸으로 펼친다는 것은 정말 신선하고, 놀랄 정도로 생소한 경험이었다. 자신의 몸이 이런 식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놀라 눈물을 흘린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여겼다. 손빈의 검무, 아름다움을 넘어 경외스럽기까지 한 그 검로를 보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부족함을 통감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사박.
소녀가 멈춰 섰다. 그리고 혈룡문 무사들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소매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작고 하얀 그녀의 손가락이 짙푸른 옥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우우웅.
“피하지 않으면, 죽을지도 몰라요.”
소녀, 당월아의 눈동자가 면사 아래에서 초록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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