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90)
낙향문사전-90화(90/494)
제90화.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의 대수(大樹)2014.07.12.
남궁향의 방문에 호연무관은 술렁였다. 남궁세가의 사람이 찾아온 것 자체가 유례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무관엔 잠시 긴장이 감돌았지만, 전후 사정을 알게 되자 분위기는 바로 호전되었다.
평소 기개 있는 무인이라는 말을 들었다 했으니 기분이 나쁠 리가 없고, 함께 동행한 혁련세가의 무사가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했으니 주저할 것도 없었다.
혹시라도 전대 뇌검 남궁천이 찾아올 경우 바로 알려 줄 것을 약속하고 관주 적철관은 남궁향을 배웅했다. 적세호와 적세화 역시, 귀한 손님에 대한 예를 갖추어 미소로 남궁향을 배웅했다.
“남궁세가가 혁련세가와의 협력에 이토록 적극적인 것을 보니, 아무래도 혈봉련에 대해 단단히 벼르는 듯싶구나. 전대 뇌검이 올 정도라면…….”
남궁향을 배웅한 적세호 공자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적세화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평소 이런 화제에 적극적이던 그녀를 생각하면 의외의 일이었다.
“뭐, 그러네요.”
“왜 그러느냐? 뭐 걱정되는 것이라도 있느냐?”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적세화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에요. 저 좀 나갔다 올게요.”
적세화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휙 자리를 떴다.
여동생의 돌발적인 행동이 그리 낯선 것도 아니어서, 적세호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
허름한 서원의 정문으로 발을 옮기던 적세화는 문득 문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발을 멈췄다.
“그거 내 거다. 자꾸 집어먹지 좀 마라.”
“당과 하나 가지고 너무 그러지 맙시다, 선배님.”
“너 같은 후배 둔 적 없다.”
“사해형제(四海兄弟)라는데 먼저 검을 쥐었으면 다 선배지 무슨…… 아, 이거 맛있네.”
적세화는 문 옆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 조심스러운 행동도 무색하게, 들려오던 대화는 순식간에 끊어지고 적세화는 자신을 향한 모든 사람들의 시선과 마주쳐야 했다.
익숙한 사람들 사이로 처음 보는 낯선 노인이 적세화를 보며 멀뚱거리는 눈으로 말한다.
“저 아이는 누구냐?”
“아, 소저!”
그나마 손빈이 웃는 얼굴로 적세화를 반긴다.
“아, 안녕하세요.”
적세화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들어오십시오.”
손빈의 말에 적세화는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집주인 손빈과 이제는 손님이라기보단 거의 주인 같은 노군과 신의, 그리고 면사 소녀 당월아에 더하여 낯선 노인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당월아의 분위기가 꽤나 변한 것이 신경 쓰였지만, 지금은 낯선 노인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다.
“호연무관의 적세화 소저입니다. 그리고 이분은 노군의 후배신데…….”
“저런 후배 없다니까!”
손빈의 소개에 노군이 발끈한다. 흰머리의 낯선 노인은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헌데 선배는 형산에 있지 않고 여기에 웬일입니까? 남악노군이면 남악을 지켜야지 이렇게 아무데나 있으면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지 않습니까?”
신의 곁에 있는 덕에 그다지 티가 나지 않지만 그는 웬만한 장정들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건장한 체구다. 그런 사람이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마치 여자아이처럼 떠들어 댄다.
“내 맘이다. 게다가 두 발 달린 짐승이 어딜 못 가랴. 쓸데없는 참견 마라.”
노군은 투덜거리듯 말했다. 낯선 노인이 씨익 웃었다.
“뭐, 어쨌든 잘됐습니다. 패검이 선배를 찾으러 갔다던데, 그놈 헛걸음만 하게 생겼습니다.”
“패검이?”
“네. 아, 이제 전대 패검이던가? 그놈도 이젠 늙어서……. 여하튼 그 녀석이 혼자 재미 볼 것을 생각하니 배가 아팠는데, 이젠 속이 시원하군요. 헌데 선배는 어떻게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까?”
“왜, 부럽냐?”
“아니죠. 이왕이면 젊은 청년 모습으로 똑같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해서요.”
“뭐가 좋냐? 이리저리 여자나 꼬이고 더 귀찮지.”
낯선 노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나간 일이라고 거짓말하면 안 됩니다. 늘그막까지 안 생겨요.”
“크흠. 뭐 꼬일 정도로 많은 적은 없었다만…….”
“그렇죠? 그럼 제가 참한 할머니 한 명 소개해 드릴 테니 저하고 비무 좀…….”
“안 한다.”
“아, 왜요!”
“네가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안 해 줬을 거다. 그땐 제법 멀쩡하더니 왜 이렇게 질척거리는 놈이 됐어?”
“원래 이랬습니다.”
“뭐?”
낯선 노인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당과 하나를 집어 먹으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제 특기가 주변 사람들 들들 볶는 겁니다. 저 혼자 죽어라고 고생하는데 그것들은 태평하게 있는 꼴이 여간 눈꼴시어야죠. 뭐, 덕분에 전대 외청주와 내청주는 요즘도 저만 보면 도망 다니지요. 큭큭큭.”
정말로 즐겁다는 듯 노인은 웃었다.
“그러니 비무 좀…….”
“안 한다니까!”
“그럼 해 줄 때까지 올 겁니다. 아, 그러고 보니 패검에게 연락해서 이리로 오라고 해야겠군요. 아무도 없는 형산 뒤지고 다니느라 열 좀 받았을 겁니다. 제 딴엔 제법 기대가 컸을 텐데 말입니다.”
“끙.”
노군은 신음을 흘렸다. 왜 주변 사람들이 도망 다니는지 그 심정을 알 것 같았다.
“한 번.”
“세 번요.”
“안 돼.”
“그럼 두 번. 더 이상은 못 깎습니다.”
“네가 주인이냐? 어쨌든 좋다. 이따가 밤에 와라.”
“정말이죠?”
“그래.”
노인은 씨익 웃었다.
“감사합니다. 향아가 절 찾으려고 사람을 보낸 것 같으니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어 노군이 눈살을 찌푸리는데, 낯선 노인은 적세화를 돌아보며 말했다.
“내 말이 맞지? 호연무관의 아가씨.”
“비슷해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적세화는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정중하게 예를 표한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남궁천 대협. 저는 호연무관의 적세화입니다.”
낯선 노인, 전대 뇌검 남궁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답례했다.
“혹시 향아도 여길 알고 있나? 아니, 모르고 있겠군. 알고 있다면 그 애 성격에 이곳으로 직접 왔을 테니까.”
“네. 남궁향 소저는 대협께서 호연무관에 오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더군요.”
“그 아이는 이상하게 촉이 좋단 말이야. 정작 무공 같은 건 하나도 모르면서…….”
남궁천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호연무관을 찾아가던 참이었다. 그러다 발견한 노군의 모습에 즉시 예정을 바꿔 버렸지만.
“향아에겐 당분간 말하지 말아 주게. 그리고 부친께는 언젠가 한번 찾아갈 터이니 열심히 검을 갈고닦으라 전해 드리고.”
말하는 남궁천의 모습에는 위엄이 넘쳤다. 방금 전까지 남악노군과 장난처럼 말을 주고받던 노인이라고는 생각도 못 할 정도였다.
“그리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적세화가 단아한 모습으로 말했다.
“으챠. 그럼 밤에 오겠습니다, 선배님.”
남궁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득 손빈을 쳐다보더니 은근슬쩍 가까이 다가온다.
“자네도 열심히 해 보게.”
나지막한 목소리. 남궁천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양손의 꽃이라는 게, 남자에게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거든. 나라면 저 은발의 아가씨 옆에는 얼씬도 않겠다만……. 뭐, 자네의 취향이라면야.”
“네?”
“젊을 때 함부로 몸을 굴리면, 늙어서 고생해.”
남궁천은 손빈의 어깨를 툭툭 치며 안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손빈이 어리둥절하고 있는 사이 남궁천은 휘적휘적 걸어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남은 사람들은 마치 태풍이 한차례 지나간 듯한 느낌에 잠시 말을 꺼내지 못하고 서 있었다.
“재미있는 분이네요.”
말한 사람은 호연무관의 적세화였다.
“재미있는 놈 아니다.”
툭 던지듯 남악노군이 말했다.
“알려진 바로야 성품도 호탕하고 무공도 출중하며 처세 또한 흠잡을 곳 없다지만, 가문을 위해서라면 시산혈해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지날 놈이다.”
‘호탕……은 아닌 것 같은데?’
적세화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남악노군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세가의 가주라는 놈들치고 안 이상한 놈들 없다만, 저놈은 그중에서도 최고다. 말하자면 남궁세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지. 가장 사람 같지만, 그래서 제일 최악인 놈이다. 만일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몰랐다면 벌써 천하를 피로 물들이려 했을 놈이야. 천하가 피로 물들건 말건 나야 상관없다만.”
“그런 분이라면, 어째서 비무를 허락하셨습니까?”
손빈의 물음에 노군은 씨익 웃었다.
“저런 놈을 보면, 어쩐지 콧대를 콱 꺾어 주고 싶지 않냐?”
“글쎄요. 저는 그다지…….”
“흘흘, 과연 그럴까?”
노군은 웃었다.
*
*
*
저벅, 저벅.
한쪽 옆이 정원으로 트인 긴 낭하를 걸어오는 남궁천의 모습을 발견한 남궁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할아…….”
남궁천을 부르려던 그녀는 말을 멈췄다. 그리고 조용히 옷깃을 여미고 서서 남궁천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저벅, 저벅.
고급스러운 나무로 만든, 높고 화려한 낭하를 가득 메울 듯 위압감이 넘치는 남궁천이 다가왔다. 마치 태산이라도 움직이는 것 같은 압도적인 기세였다.
사락.
남궁향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이곳이 낭하라는 것도 그녀에겐 상관없었다.
“다녀오셨습니까?”
“음.”
남궁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문에 우리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외사급 고수가 있던가?”
고개 숙인 남궁향을 내려다보며 그가 물었다.
“없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러하다 단언하지는 못합니다. 다름 아닌 당문이니까요.”
“그렇겠지. 당문이니까.”
잠시 먼 곳을 쳐다보던 남궁천이 다시 묻는다.
“일전에 당문에서 손님이 온 적이 있었지?”
“네. 당문의 숨겨진 칼날이라 하는 독인(毒刃)입니다. 그 존재를 우리에게 공개한 것은, 이번 밀약에 대한 당문의 신뢰를 보여 주는 것이라 해석되고 있습니다.”
그 방문은 남궁세가 내에서도 극히 일부에게만 알려졌다. 남궁천이 아니었다면 남궁향 역시 알지 못했을 것이다. 정작 남궁천은 그런 것엔 관심도 없다며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 아이가 강하던가?”
“아닙니다.”
남궁향은 답했다.
“무공과 비급에 관한 지식은 실로 천재적이나, 가진바 역량은 자신의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극독의 살아 있는 총화와 같은 존재라, 그 수명 또한 올해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 전해졌습니다.”
남궁천은 턱을 쓰다듬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동일 인물일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하지만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다.
“당문의 고수가 이곳에 있었습니까?”
남궁향이 나지막이 묻는다.
“그래.”
남궁천이 말했다.
“확인은 못 했지만 분명하다. 그런 맹렬한 독기를 품은 괴물을 만들어 낼 만한 곳은, 천하에 단 한 곳밖에는 없으니까. 맹호가 그리 순순히 사라질 리 없다고 생각하긴 했었다만…….”
쓴웃음을 지으며 남궁천이 말했다.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두려운 아이였다.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리는 것이 후환을 없앨 수 있었겠다만 노인네가 버티고 있으니……. 쯧.”
“노인네라 하시면…….”
“남악노군이 있었다.”
남궁향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이곳 혁련세가에 말인가요?”
“아니.”
짧게 답한 남궁천은 남궁향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당문의 외사급 고수, 남악노군, 그리고 신의가 함께 있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겠느냐?”
남궁향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나 길지는 않았다.
“당문은 결코 손해 보지 않습니다. 강자가 아니면 남악노군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신의는 오직 살리는 법에만 매이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세 사람을 동시에 묶어 둘 만한 것은 없습니다.”
남궁향은 조용히 입술을 달싹였다.
“허나 큰 나무의 그늘 아래 천하의 모든 것이 깃들이는 법. 손익(損益)도, 강유(剛柔)도, 생사(生死)도 초월하여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의 대수(大樹)뿐입니다.”
무하유지향이란 어떠한 이해관계도 존재하지 못하는 광막한 빈 들판을 뜻한다.
완벽한 이상향이자 때로는 철저한 무(無)의 세계로 표현되는 곳.
이 세상을 초월한, 있는지 없는지 조차 알 수 없는 그 어딘가를 표현하는 단어가 바로 무하유지향이다.
“광막한 빈 들판의 커다란 나무인가…….”
그 나무는 참으로 거대하되, 목수가 돌아보지 아니할 정도로 정작 목재로서는 쓸모가 없다 한다.
쓸모가 없으니 베이지 아니하고, 그래서 남을 해치는 일도 없이 다만 모든 것의 쉴 그늘이 되어 주는 존재.
그것이 무하유지향에 있다고 하는 거대한 나무, 대수(大樹)다.
“네 말은 가끔 너무도 심오해서 나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남궁천은 잔잔한 눈빛으로 남궁향을 내려다보았다.
“송구합니다.”
“허나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겠다. 즉, 그곳에 세 사람을 모두 아우를 만한 큰 인물이 있다는 뜻이 아니냐?”
“그러합니다.”
“하지만 그럴 법한 사람은 없던데?”
고개를 갸웃하며 남궁천이 말했다.
“청년 문사는 그 내기가 제법 정순하긴 했다만 딱히 쓸 만해 보이지는 않았다. 꼬마들이야 어디서나 있는 그런 아이들이었고. 차라리 남악노군이 당문의 여아를 제자로 키우고 있다는 것이 더 그럴듯하지 않을까? 그 노인네 성격상 그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만.”
“허나…….”
탁탁탁.
누군가 급히 낭하를 뛰어오는 소리가 남궁향의 말을 끊었다. 남궁천은 고개를 돌렸다. 혁련세가의 시녀 하나가 다급한 발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훗. 혁련세가 놈들이 발등에 불이 떨어졌군. 하긴 그렇겠지.”
남궁향에게 찡긋 눈짓을 하며 남궁천이 말했다.
“자기 집 안방이랍시고 대놓고 엿듣던 놈들이 어찌 그리 많은지……. 오랜만에 힘 좀 써서 깜짝 놀라게 만들어 버렸다. 귀가 먹먹할 테니 아마 한동안은 아무것도 못 들을 게다.”
한동안 아무것도 못 들을 정도가 아니다.
남궁천이 순간적으로 그들을 향해 뿜어낸 그 엄청난 기세는, 약한 자들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할 정도로 큰 충격이었다.
그러나 남궁천은 그저 조금 장난을 쳤다는 듯 씨익 웃을 뿐이다.
“일어나라.”
사락.
남궁천의 말에 남궁향이 조용히 일어섰다.
“어차피 오늘 밤이면 알게 될 일이다. 누구의 말이 옳을지, 기다려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일 테지.”
탁탁탁.
파랗게 질린 얼굴로 다가온 시녀가 남궁천에게 급히 예를 올린다.
“저, 괜찮으신가요?”
“괜찮은데? 안 괜찮을 이유가 있나?”
“아니, 저기 그것이…… 어디선가 엄청나게 큰 소리가 났다고…….”
“못 들었는데? 어디서 마른천둥이라도 친 것 아닐까?”
“그, 그래도…….”
“그보다 오늘 가주가 주최하는 환영 만찬 말인데, 혹시 예쁜 가희라도 나오나? 이왕이면 예쁜 아가씨들이 떼로 몰려나와서 춤추고 그러는 게 좋던데. 요즘 그게 최신 유행이라고.”
남궁천이 짐짓 추근대듯 말을 걸자 시녀는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당황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남궁향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무하유지향의 대수는, 본래 쓸모가 없답니다.’
문득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나뭇잎들이 작게 속삭이는 곳.
하지만 그것은 꿈이다. 너무나 달콤하고, 너무나 먼 꿈.
‘덥네.’
남궁향은 고개를 돌려 정원을 바라보았다.
강남의 뜨거운 햇살이 강렬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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