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ree that lives for many years RAW novel - Chapter 1
01. 이름 없는 아이
나는 내 이름으로 불려본 기억이 없다. 떡갈나무 아랫집 외딸. 어부 댁네 계집아이. 그마저도 까먹는 아낙은 있었다. ‘그 솜씨 좋은 어멈한테 딸이 하나 있잖아.’ 하면서 말을 트고, 상대방은 대개 놀라서 묻는다.
‘아. 소쿠리 짜서 파는 아주매? 딸이 있었나.’
나로서는 콧방귀 뀌는 것이다. 부르라고 붙여준 이름은 뒷산에 묻어둔 듯, 저들끼리 수군수군 좋을 대로 부르고 앉아 있으니. 일일이 따지고 나섰다. 나는 자경이오, 해봤다. 이틀째는 자갱이, 사흘째는 독종, 아흐레면 다시 떡갈나무가 되었다.
어찌 됐건 어부의 딸 맞고 대로 소쿠리 짜서 파는 어멈의 딸 맞고. 보아하니 마을에서 이름 잃은 사람이 나 하나도 아닌 것 같고, 옆집 귀순이는 소작농의 딸이라서 가난뱅이라 불리고. 서리하다가 들키기 일쑤인 열둘 형제네는 아예 서이 너이 이런 식으로 불리곤 했으니까. 세월이 지나자 다들 그렇게 사는 거구나 짐작했다.
한데 머리가 커서 달리 보이는 것인지, 분수 모르는 눈이 처마 밑에 달린 것인지. 치마 끝이 종아리에 간당간당해도 겨우내 옷 한 벌 안 지어 입는 나는 모르는 이 땅의 한편. 졸졸 쫓아다니는 시동을 대여섯 거느리고 다니는 부잣집 도령을 우연히 딱 마주한 것이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고 여럿을. 별생각 없이 아버지를 따라간 장날에 마주친 것인데, 사람으로 바글바글한 그곳에서, 그 치들이 입은 화사한 비단이 닳을까 노심초사하는 건 나뿐이었다.
나는 감히 만져보지도 못할 비단을 칭칭 휘감은 그들은 뻣뻣한 서책을 가슴에 고이 품고 다녔다. 어린 눈에도 퍽 탐이 나는 자태였다. 비단은 언감생심 침 흘려 보지도 못할 것이고, 만에 하나 내 손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아까워서 장롱 깊이 숨겨두기만 할 게 뻔했다.
나는 도령의 것 중에 비단 옷보다 만만한 것, 갖기에 그럴듯한 것이 탐났다. 건넛마을에 어촌 얼뜨기를 모아다가 가르치는 글방. 거기라면 나도 두툼한 서책 하나 얻을까 해서. 비록 어촌이고 가난한 살림이지만, 좌우지간 글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어른은 있었으니까.
아무쪼록 내 어미가 그런 쪽이기를 물 떠 놓고 비는 수밖에 없었다. 사내처럼 장차 큰일을 하려고 들진 않아도 만일을 대비해서 계집이라도 가르치는 부모도 있지 않은가. 소쿠리를 짜느라 부르튼 어미의 손은 가련하고 생선 비린내를 달고 다니는 아비는 염려스러우나, 이제나저제나 서책에 대한 내 갈망은 대감댁 화롯불 같았다.
“그을?”
“응.”
“왜.”
사내처럼 배운다고 써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궁색한 어촌 딸내미에, 대궐 같은 집으로 시집갈 팔자도 아니고. 그럭저럭 비슷한 짝 만나 애 낳고 밭일하다 보면 글줄 읽을 시간도 없을 터인데? 쉬지 않고 소쿠리를 짜는 어미의 눈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아이, 내 생각이 다 있지 않겠어?”
“무슨 생각.”
“매번 저기 손바닥만 한 밭뙈기 가진 아저씨한테 글 읽어달라고 하는 거 싫다고. 나한테 안 그랬어?”
간혹 나라에서 벽서를 붙일 때마다 건넛집 아저씨에게 아쉬운 소리 하는 어머니였다. 그 아저씨가 글 안다고 오죽 거들먹거리는지. 입에 곶감이고 계피 떡이고, 뭐든 물려줘야 뜸 들이며 한 줄씩 읽어나기 시작하는데. 괜히 어려운 말로 돌리고 돌려 말해 주고선, 두 번만 물어도 역정을 내는 이상한 놈이었다. 나중 알고 보면 어떤 도령의 생신 잔치가 있으니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으라, 하는 별 쓸데없는 내용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하나 옹졸하다고 피해가면 좀 좋을까. 감정이 상하는 건 상하는 것이고, 생선 내장을 바르느라 바쁜 아버지는 신경조차 못 쓰는 일이니, 아무래도 이쪽은 아쉬운 소리 할 처지인 것이다.
“응? 벽서든 이름 쓰는 일이든 내가 다 해 주게.”
소쿠리를 짜는 손이 잠깐 느려지는가 하더니, 곧 어머니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됐다. 여자가 글줄 알아봤자 팔자만 사나워진다.”
어머니는 씨알도 안 먹힐 만큼 단호했다. 글방 다니려면 소쿠리를 몇 개나 짜야 하고, 아비는 바다 위에서 얼마 동안 씨름해야 하는 줄 아냐며. 네 팔자가 그뿐이려니 하라고. 간간이 입에 풀칠하는 처지에, 귀빠진 날도 시루떡 쪄먹기 힘든 처지에, 시집가면 그만인 딸에게 글방이 가당키나 하냐고 묻는 것이다.
“밥은 왜 먹여.”
“뭐?”
“시집가면 그만인데 밥은 왜 먹여.”
“하이고.”
“풀죽 끓일 쌀은 아깝지 않고?”
어머니 고집도 고집이지만, 마을에서 독종으로 불린 나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과거에서 수십 번 떨어진 어벙한 사내가 차린 글방이라도 가고 싶어 몸부림을 치는데, 아무리 엄한 어머니라도 눈길 한번 안 주고는 배길 수가 없을 터였다.
“안 먹어.”
“아야.”
보기보다 물렁물렁한 아버지는 그새 글방 값을 알아보고 온 모양이지만, 내가 더 난장을 피울수록 어머니의 고집은 쇠심줄처럼 질겨져 갔다. 안 먹겠다고 하면 밥상을 치워버리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말리느라 바쁘고. 마을 어귀, 얌전한 축에 속하던 우리 집이 바람 잘 날 없었다.
밤새 두 분이서 내 처우를 두고 실랑이하는 소리가 담장을 넘었다. 나는 잠 든 척하면서 엿듣고 있었는데 의외로 아버지가 대쪽같이 강경한 것 아닌가. 저러다가 아이 잡겠다면서, 사내만큼은 아니어도 글을 배우면 집안에 보탬이 되지 않겠냐면서. 나는 그쯤이면 어머니도 맞장구를 치거나 수그러들 줄 알았건만. 아버지에게 맞선 목소리는 말린 북어처럼 딱딱했다.
‘서방님. 정신 차리소. 아이 앞날은 생각 안 해서 이러오? 쟤가 시집가봤자 저기 푸성귀 심어 먹는 집 아들이고 잘 가봐야 생선 토막만 한 밭뙈기 있는 집 아들이라오. 한데 글 배우면 그것들이 눈에나 차겠소? 유유자적 서책 붙들고 있을 수도 없는 제 팔자 원망하다가 몸살 나 죽은 연우 언니 꼴이나 나지.’
‘이보시오. 죽은 처형이랑은 사정이 다르지 않나. 우리 아는 벽서만 읽으면 그만이라는데. 그것도 마음이 고와 자네 생각해서 그런 것 아니야.’
‘애 눈에 허영 끼인 것 안 봤소? 내가 저리 조를 때마다 연우 언니 보는 것 같아서 일이 손에 안 잡히는데. 그러게 장날에 데리고 가지 말라니까 그래…….’
나한테 외숙부는 셋이고 이모는 죽은 연우 이모까지 합하면 다섯이었다. 연우 이모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가장 아끼던 딸로,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임에도 글방에를 보내주셨다고 들었다. 어려운 한자를 웬만한 사내애보다 잘 써서 부러움을 많이 샀다고 했는데, 그것도 말 기르는 집에 시집가서는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
진종일 콩 농사에, 시부모 부양에, 말 먹일 건초를 어깨 빠져라 나르고 나면 해가 지고 마는데, 도대체 마당에 늘어져 앉아 서책 들여다볼 여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것도 이모부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고 말아, 집안의 대소사는 모두 연우 이모의 책임이었다고 했다. 병약한 남편이 죽고, 얼마 뒤에 연우 이모까지 줄초상을 치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하여 어머니의 눈에는 나나 연우 이모나, 별다를 게 없어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연우 이모처럼 딸린 형제가 많은 것도 아니고, 외딸에다가, 배우려면 충분히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인심은 열다섯 여자애에게 녹록지 않은 것이다.
글을 배우고 싶은 이유는 별거 없었다. 글줄 안다는 이유로 잘난 체하는 아저씨의 콧대를 팍 눌러버리고 싶기도 했고, 글방 다닌다고 자랑하는 사내애에게 뒤처지고 싶지 않기도 했고, 비단옷 휘감은 도령처럼 서책을 품어보고 싶었다. 서책을 안고 다닌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짜라는 소쿠리는 안 짜고 그것만 생각하다가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하나, 포기해야겠지. 갈수록 그 마음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글방 다니려면 생선을 몇 마리 잡아야 하는지, 소쿠리를 몇 개를 짜야 하는지, 안 생각하려야 안 생각할 수도 없고. 어머니 말대로 내 신랑감은 거기서 거기인데, 글 배웠다고 구박이나 안 당하면 용하지 않은가.
이럴 때면 시집 안 가고 싶으면서도, 늙어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아야 하는 외딸 처지인지라 두렵긴 두려운 것이다. 자매라도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하다못해 떡이나 찧어줄 조카만 있었어도 시집갈 생각은 하지 않을 터인데.
글에 대한 미련은 남았으나 다음 날부턴 배짱 튕기지 않고 숟가락을 들었다. 어머니는 웬일이냐며 눈이 휘둥그레져서 밥상을 치우려다가 말았고, 나는 간만에 쌀을 꼭꼭 씹으면서 종알거렸다.
“안 하려고.”
하면 잘했다고 엉덩이는 쳐주지 않더라도 철들었다고는 해 줄 줄 알았다. 한데 어머니는 웬일인지 밥상 끄트머리만 만지작거리며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이다. 입에 맨밥을 욱여넣고 있던 나는 겸연쩍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어머니는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옆집 아주머니가 찾는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일어서면서도 내 머리통을 쏘아보는 게 느껴지는데. 나는 어머니가 혼을 내시려는 건지, 것도 아니면 잘했다고 칭찬을 하시려는 건지 도통 가늠할 수가 없었다.
입이 닳도록 내 팔자 얘기하던 사람은 어머니 아니던가. 한데 작금의 상황은 마치 내가 글방 가기 싫다고 떼를 쓴 아이라도 된 것 마냥 아주 우스워져 버렸다. 아마 고집이라고 하면 이 마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내가 말끔히 물러선 게 의심쩍을 수도 있었다.
그건 어머니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아버지가 고생고생해서 잡은 생선값을 한 푼도 안 깎아주던 일, 어머니가 짠 소쿠리를 후려쳐서 싼값에 얻으려는 아낙들과 싸우는 것은, 내 고집이 황소만치 세서가 아니라 효심이 깊은 까닭이다.
나라님의 명이라고 쌀 두 가마니를 뺏어 가면 열불이 터지지만, 어머니가 저녁밥을 반 공기로 줄이는 것은 납득할 수가 있었다. 제아무리 날뛰어봤자 나는 어머니 손바닥이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내가 가진 전부인 것을. 내가 부릴 생떼도 길어야 이틀이었다. 계집애는 시집가면 그만이라지만, 나는 떡두꺼비 같은 자식 열둘을 낳아도 아침밥 먹듯이 문안드리러 올 작정이었다.
“아야.”
이튿날 밤. 어머니가 일러바친 것인가. 바다에 나가려던 아버지가 집으로 왔다. 나는 때마침 점순이네 일거리를 도와주고 떡 한 마지기를 얻어온 차였다. 양손 가득 기름 냄새나는 음식을 들고 들어오다가,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서성이는 아버지를 보고 웃었다.
“됐어.”
실속 없는 욕심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한데 아버지가 더 아쉬운 듯 말했다.
“더 버텨보지.”
“됐어.”
마을 유지인 점순이네 잔칫날이라고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일을 한 덕에 별로 힘들 것도 없었건만. 아버지의 구슬픈 눈은 괜히 가져온 잔치 떡이나 지짐을 꼴 보기도 싫게 만들었다. 새 치마를 달마다 얻어 입는 점순이도 못 배우는 글인데 내 처지야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냐고. 부드러운 물살을 만난 나룻배 마냥 순응하고 있는 것을, 도리어 아버지는 못마땅하게 보는 것이었다.
“고 먼저 글방 다니는 녀석한테 물어 값도 다 알아놨는데.”
“차라리 그걸로 내 치마 하나만 지어주든가. 발목이 시원하게 보이니 각다귀가 거기만 죽어라 노리는 거 아니야.”
“치마는 따로 하고 글방도 다님 되지.”
“아버지 용왕한테 알랑방귀 뀌어서 만선이라도 끌고 온 거 아님, 그런 낯모르는 소리 하지도 말아.”
말재주가 변변치 않은 아버지는 입술만 오물거리다가 마당 비를 만지작거렸다. 더 주고받을 말이 무언가. 말할수록 입 안만 텁텁해질 뿐이었다. 나는 지짐 몇 가지를 골라서 주방 깊숙이 넣어둔 술과 함께 차려냈다. 어차피 아버지도 일은 공친 것 같고, 같이 너부러져 앉아 가져온 잔치 음식이나 동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어머니 몫으로 따로 가지누름적을 빼서 둔 다음, 이가 다 빠진 상다리가 나름 부러지도록 차려냈다.
“무슨 술까지 냈어.”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 입이 귀에 걸렸다. 아침마다 바닷바람 쐬는 아버지인지라, 평상시는 술독 근처에 가기도 힘든 터였다. 근래 술병은 구경도 못하셨을 테니. 이것이야말로 아버지 앞에 횡재가 몸소 굴러들어오는 격이었다. 어차피 어머니는 내가 점순이 집서 일한 것도 깜깜할 터였고. 저녁때야 한 소리를 들을 테지만 이것이고 저것이고 오늘은 배 터지게 먹고 싶었다.
“약방 어른이 내일은 필히 비가 올 것 같대. 어차피 배도 못 뜰 것 같으니까 염려 말고 드셔.”
“그러냐.”
약방 영감은 그나마 이 마을에서 배운 것 많고 인심 후한 양반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제집처럼 드나드는 약방 주인이기도 해서, 어지간한 선비는 이름도 대지 못할 만큼 영감의 위세가 하늘을 찔렀다. 마을의 대소사나 갓 태어난 아이의 이름까지 영감에게 물어볼 때가 있으니, 과연 명문세가 부럽지 않은 마을의 실세였다.
그런 영감의 말이면 하늘에서 우박이 떨어져도 화창하다고 믿을 사람이 널려 있고. 생선과 눈 마주치는 게 업인 나의 아버지도 그런 부류 중 한 사람이거니와, 나 또한 광인처럼 믿고 따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영감이 무릎이 쑤셔 비가 올 것 같다고 하는 말은 믿는 사람이었다.
영감의 무릎은 이름난 무녀보다 신통한지라, 비가 올 때를 딱딱 맞춰 쑤셔오곤 했었다. 배를 몰고 사는 아버지를 둔 나의 입장에서야 억만금을 바쳐도 만나기 힘든 무녀보다 영감의 무릎에 의지하는 것이 당연했다.
“아야.”
술맛이 기똥찬가 보다.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린 아버지가 혀를 꼬부라트렸다. 나는 구석에서 손가락으로 지짐을 날름날름 주워다 먹느라 바빴다. 이리 보면 삶이 우중충할 거 있나 싶었다. 잔칫날이 오면 배 터져라 먹을 수 있었고, 또 배 터져라 먹고 드러누우면 스멀스멀 웃음도 나는 것이, 구태여 머리 아프게 글을 배울 것까지 있나 싶은 것이다.
머리 위로 바람은 솔솔 불고, 인정 넘치는 아버지도 있고, 이렇게 살다가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그런 안일한 마음에 손들고 만다.
“아야.”
나올 말이 뻔해, 부러 무시하고 있었다. 한데 아버지는 술기운 덕인지 끈질겼다. 발가락으로 내 옆구리를 콕콕 찍으면서 신호를 보낸다.
“안 들을래.”
“칼을 뽑았으면 무어라도 썰어야지. 으이?”
본디 자식 사랑이 지극하신 아버지야 내 글공부를 말리지 않을 거라고 짐작한 바였지만, 이렇게까지 뒷받침해줄 줄은 꿈에도 모른 것이었다.
것도 그럴 것이 아버지는 의견을 강요하는 법이 없고, 수더분한 어부로, 묵묵한 가장으로, 여하간 맹맹하게 살아오셨기 때문이었다. 몇 푼이라도 뜯어내려는 글방 훈장도 아니고 다름 아닌 아버지가 내 글공부에 목매달 일이던가. 평생 바닷바람만 쐬며 살아온 분이었으니 더욱 ‘놀랄 노’자였다.
“아니, 아부지. 내가 안 한다고 하면 열댓 냥은 아꼈다고 손뼉 쳐야 하는 거 아니야?”
“자경아.”
‘아야.’, ‘아가야.’ 그리 부르지 않았다. 자경이라고, 내 이름을 불렀다. 슬쩍 돌아보니 아버지는 저문 하늘을 보고 있었다. 점순이, 귀순이. 낳자마자 대강 지으면 될 것을. 아버지는 내 이름을 오래간 고심 했다고 한다.
하마터면 주변 사람들이 그거 그냥 종달이라고 부르라는 것을 따를 뻔했으나, 우연히 마을을 지나가는 도인에게 사정사정하여 받아낸 이름이었다. 그 대단한 사정 때문일까. 아버지는 내 이름을 부르기도 아까운 양 입에 잘 담으려 하지 않았으나, 지금처럼 긴히 할 말이 있을 때는 꼭 자경이라고 불렀다.
“우리 자경이, 글 배웠으면 하는데.”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일생을 바다에 붙들린 아버지. 실은 글방에 다니고 싶으셨던 것일까. 비린내 나는 생선을 어루만지기보다 고운 붓을 잡고 싶으셨던 것일까. 내가 글을 배운다고 법석거리던 당시. 못내 들뜬 아버지의 얼굴은 잘 잊히지 않는 것이었다.
“야야!”
노을을 먹어 치운 하늘 아래, 머리카락 풀어 헤친 아낙이 뛰어오고 있었다. 겨우 허리께까지 쌓은 돌담장 위로, 달려오는 아낙의 허둥대는 발이라든가 툭 불거진 광대뼈가 보였다.
좁다란 툇마루에 누워있던 나는 악취처럼 몰려오는 불길한 발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여자는 아들 둘을 데리고 미역을 캐서 먹고사는, 속칭 미역 어멈으로 통하는 아낙이었다. 드센 아들 둘을 키우면서도 항시 가지런한 아낙이었는데, 달려온 지금은 가을 밤송이처럼 가시 돋친 머리를 하고 있었다.
“아이, 무슨 일이기에…….”
엉거주춤 일어난 아버지가 채 묻기도 전, 담장에 기대어 헉헉거리던 아낙이 성가신 파리 내쫓듯 팔을 휘둘렀다.
“큰일 났다… 큰일!”
미역 어멈의 몰골이 아니더라도 멀리서부터 질겁하며 달려오는 마을 사람이나 어린애들이나, 일이 벌어졌어도 크게 벌어졌음을 알리고 있었다. 일순간 점순이네 잔칫날이 가져온 한가로운 오후가 수선스러운 바람에 휩싸였다. 아버지는 급히 신을 끼워 넣고 미역 어멈에게 달려갔다. 미역 어멈은 바닷가가 있는 방향으로 팔을 크게 휘둘렀고, 술병을 놓지도 버리지도 못한 채, 아버지는 얼결에 바다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기름으로 미끄러운 손을 치마에 벅벅 닦고 나서야 신을 신었다. 미역 어멈은 진즉에 자리를 떠난 후였고, 부산스럽게 뛰는 이들의 뒤통수는 나를 등지고 있었다. 그때, 뒤가 닳아빠진 신을 신고서 마당을 나서는데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구더기가 들끓는 시체를 본 것처럼 속도 메슥메슥하다.
흉한 소식이 기다릴 것 같은 예감. 나는 죄 얼이 빠져서 바다로 달려가는 무리 속에서, 아까부터 소식 전하듯 돌아다니던 코흘리개를 붙들었다.
“얘.”
주눅이 든 코흘리개는 더듬더듬 답했다.
“아, 어부… 어부.”
“헛소리 말고. 저기 바다에서 뭔 일이라던.”
혼이 나는 줄 아는지, 창백해진 코흘리개가 바다를 가리켰다.
“요수, 요수가 나타났다고…….”
요수. 물에 탄 듯 술에 탄 듯, 어리벙벙하던 정신이 깨어났다. ‘어이구머니나.’ 하면서 달음박질한 사람들이 이해 가는 바였다.
칠흑의 시대였다. 몇 년에 한 번. 불청객처럼 나타난 요수는 사람을 물어뜯으며, 까딱하면 제삿밥 차려줄 식구 하나 남기지 않고 잡아먹는 일도 다반사였다. 생김새도 가지각색인 데다가 힘은 소 너덧 마리를 합친 것만큼 드세서 처치를 위해 도인이나 무녀, 혹은 값비싼 퇴치사를 필히 불러야만 했다.
이처럼 마을 근방에 나타난 경우, 합심하여 한푼 두푼 모아서 퇴치사를 부르겠으나, 당장 먹고 죽을 쌀도 없는 가난뱅이가 널린 이곳에서 과연 그럴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어찌어찌 퇴치사를 부른다고 치자. 그간 요수가 얌전하게나 있으면 모르련만. 소식만 듣고도 아연실색한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가. 피해는 어림짐작하고도 남았다.
“아부지!”
잇새에 가시가 낀 것처럼, 웅성거리는 말소리가 걸리적거리고 불편했다. 요수라니. 소문으로는 사람으로 둔갑해 간을 파먹는다는 요수, 손바닥을 비비는 것만으로 초가삼간을 태워 먹는 요수도 있다고 들었다.
바닷가에 나타난 빌어먹을 요수의 종은 모르겠으나, 기껏해야 호미를 든 어른들이 요수의 상대가 될 수 없음은 명확했다. 더군다나 바다에 업을 둔 아버지의 경악은 알고도 남음이지만, 부디 요수의 심경은 건드리지 않고, 고대로 걸음을 물러주기를 나는 빌었다.
“아부지!”
흙으로 이루어진 길바닥이 돌로 변했다. 신이 벗겨질 듯 뒤꿈치에서 꺼떡거렸다. 옹기종기 모인 어른들은 바다를 향해 삿대질을 하고 있었는데, 이 끓여 먹어도 시원치 않을 신 때문에 나만 뒤처지고 있었다.
“아부지!”
나는 허망하게 선 아버지의 등에 대고 소리쳤다. 아버지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분한 듯 발을 구르는 마을 사람들은 바다가 요수라도 되는 양 지켜보고 앉아 있었다. 애도의 분위기였다. 나는 걸리적거리는 신을 벗어던진 후에야 달려갔다.
“아부지.”
말이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술기운에 취한, 낙엽보다 빨개진 얼굴로 울고 있었다. 젖은 눈으로 간신히 나를 알아본 아버지의 입에서 비탄이 흘러나왔다. 아버지는 고개를 떨궜다. 소상히 말하라고 다그칠 새도 없었다. 내 어깨를 부여잡은 아낙의 입에서 실상이 걸어 나왔다.
“마을 아낙들을 죄 잡아가면 어떡하누…….”
“아이고……! 몹쓸 것! 영이는 어떻게 하라고……!”
마을 아낙들을 죄 잡아갔다는 소리에 귀가 뚫렸다. 아버지가 술병을 놓치고, 무릎 꿇고, 가슴을 쥐어뜯지 않아도. 나는 가늠할 수 있었다. 상황을 따질 머리는 있었으니까. 아내나 어미를 잃은 이들이 바다를 원망했다. 나도 두 다리가 풀렸다. 젖은 모래 위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외출을 성가셔하던 어머니였다. 근래 들어 이상하게 나다니는가 싶더니, 하필 바다에서 요수가 기어 나오고 난리였다. 하늘이 무심해도 설마하니 어머니를 데려갈까 싶었다. 성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통탄에 빠진 이들만 빼곡했다.
어머니는 딱히 바다와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다. 바다 위로 떠오른 요수가 잡아갈 리 없을 터. 나는 초라한 아버지의 등을 끌어안고 기다렸다. 어머니가 나를 나긋나긋하게 불러줄 때까지.
온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저마다의 사정으로 바다에 살림을 차렸다. 옻빛 바다는 대답 없이 파도를 보내올 뿐이었다. 나는 길이 엇갈릴까 싶어, 늦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들려보고, 자주 어머니와 수다를 일삼는 감나무 댁 아주머니도 찾아가 뵈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만나는 이마다 죽상이었다. 네 어머니도 간 것이냐며. 아니라는 말을 일일이 답하기도 지쳤고, 무엇보다 콩나물만한 마을에서 어머니의 행방이 묘연하니, 불안에 넘어간 나는 오한이 다 났다.
“얘야.”
어머니가 갈 만한 곳은 죄 들러 물어대는 내가 가여운 건지, 자식 넷을 홀로 건사하기로 유명한 아주머니 한 분이 말을 걸어왔다. 나는 탈진한 걸음걸이를 뒤로 물려, 갓난애에게 젖을 주고 있는 아주머니를 돌아봤다.
“네 어머니는 영 소식이 없고?”
네 딱한 사정을 다 안다는 얼굴이었다. 불쾌한 감정을 숨길 기운도 바닥 난 참이었다. 나는 퉁명스럽게 답했다.
“예.”
그대로 걸음을 돌리려고 했으나, 저쪽은 볼일이 남은 모양이었다. 불퉁한 내 뒤통수에 대고 탐탁지 않게 중얼거렸다.
“그러게 왜 글공부 같은 건 한다고 해서…….”
헤엄치던 발목에 미역이 휘감긴 것처럼 몸이 얼었다. 귀는 열이 올라 뜨끈뜨끈해지고 눈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뿔난 황소처럼 눈에 뵈는 게 없어졌다. 내가 노려보자, 아주머니는 ‘이것 봐라.’ 하는 얼굴로 저고리 앞섶을 여몄다.
“그게 뭔 소린데요.”
“뭐?”
“글공부가 거기서 왜 나오는데?”
“허…….”
아주머니는 기막히다는 듯 혀를 찬 뒤, 부엌으로 걸어가며 나를 돌아보았다.
“네 어머니.”
아주머니 얼굴 위에 한심하다는 표정이 우세했다.
“네 글방 보낸다고 바닷가서 잡일 시작한 건 몰랐나.”
사람이 참 모질었다. 그걸 알면 내가 이 난리를 칠까. 나도 독하게 쏘아 붙어야 하는데. 꿀을 받아먹은 잉어처럼 눈만 끔뻑끔뻑하다가 적기를 놓쳤다. 부엌으로 사라진 아주머니는 한 마디만 남겼다. ‘네 어머니가 참 애석하다.’라고. 앞뒤 사정도 모르면서 함부로 지껄이지 말라고, 저 나무 비녀라도 휘어잡았어야 옳았던 것일까. 나는 멍하니 있다가, 갓난아이가 징처럼 울어대는 그 집 앞마당을 도망치듯 벗어났다.
안 그래도 바닷가에서 죽을 퍼 나르던 아주머니 한 분도 나를 고깝게 보는 얼굴이었다. 나이도 어린 게 어른 사이에 껴서 못마땅한 것인가 싶었는데.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고 볼 수밖에. 한겨울 서리처럼 단칼에 거절한 어머니가 뒤에서 벌인 일을 어찌 안단 말인가. 물질하고 온 여자들 뒤치다꺼리하다가 요절했다니. 내 글방 값을 벌어보자고. 마치 나를 어미를 죽인, 몹쓸 떼쟁이처럼 보는 어른들만치 나도 어처구니없었다.
“아부지.”
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까 모를까. 혓바늘 돋도록 고민했는데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바닷가 근처, 다 쓰러져가는 주막에서 얼굴이 새빨개진 아버지가 영수네 아저씨와 대거리를 하고 있었다. 물 탄 동동주 한 사발을 앞에 둔 아버지는 내가 가까이 온 것조차 모르는 눈치였다.
“내 마누라 글케 된 게 왜 자경이 탓이야!”
아버지 반대편에 앉은 영수 아저씨는 ‘내 말은 그런 게 아니었다.’면서 펄펄 뛰었다. 그러다가 영수 아저씨는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나를 보았다. 오갈 데 없는 가축처럼 담장에 오도카니 기대 있던 내게 손을 저었다. 들어오라는 건지 나가라는 건지. 의도를 모를 손짓이었지만 영수 아저씨의 눈빛은 그것이었다. 어쨌거나 내가 이 자리에 없었음 하는 눈치였다.
하나뿐인 손님이 안줏거리 없이 먹는 게 퍽 안쓰러웠는지. 허리가 굽어진 주모가 마른미역을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그걸 삐걱대는 반상에 올려두었다. 연거푸 술을 넘기는 아버지에게 나긋이 말도 걸었다.
“걱정 붙들어 매. 약방 어른께서 벌써 솜씨 좋은 퇴치사를 알아봤다고 하지 않던가. 다들 멀끔하게 돌아올 터이니 그간 마음 단단히 잡고 있기만 해.”
영양 없는 위로였는지 아버지는 아예 병째로 술을 들이켜고 있었다. 나는 영수 아저씨 눈치는 눈치대로 보다가, 주모가 뒤를 돌자마자 뒷걸음질 쳤다. 그대로 기울어진 주막을 벗어났다. 그리고 떡갈나무 아래까지 숨차게 달렸다.
홀로 집으로 돌아오면서, 요사이 어머니께 데면데면하게 군 자신에게 환멸이 일었다. 글방 안 다닌다고 했을 적부터 눈치 보던 어머니였는데. 어색하다며 야속하게 대했다. 속으로만 궁금해하다, 둔하게 신경을 접고 말았던 나였다.
얼굴에 비가 내렸다. 길바닥에서 몸속으로 누르던, 식은땀처럼 새 나오던 눈물을, 문짝을 닫자마자 목 놓아 보냈다. 집 안에서는 쉰내가 났다. 어머니에게 주려고 따로 둔 가지누름적에서 나는 냄새였다. 나는 그걸 치우지 못했다. 다 쉬어빠진 가지누름적이라도 보고 있어야지 어머니를 잊지 않을 것 같았다.
***
아낙 열둘을 잡아먹은 바다는 푸르렀다. 요수는 물갈퀴가 달린 놈으로, 한입에 사람을 삼키고 바다로 뛰어든 다음, 그 뒤로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 깜깜무소식이랬다. 그때 주모의 말은 군소리가 아니었다.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약방 어른이 부른 퇴치사가 마을에 도착하기는 하였다.
얼굴이 누렇게 뜬 마을 사람들이 아흐레를 기다린 만남이었다. 그 아흐레 동안 죽지 못해 산 나도 있고, 손이 떨려 그물 한번 못 친 아버지도 있었는데, 거드름 피우면서 당도한 그 퇴치사는 얼마를 낼 수 있느냐고, 처음에 묻는 말이 그것이었다.
“못해도 이백 냥은 낼 수 있겠지?”
퇴치사는 흑색 비단에 홍화를 수놓은 도포를 차려입고서, 땟국 묻은 저고리를 아흐레째 입고 입는 우리에게 이백 냥을 말했다. 사라진 아낙은 열둘이었고, 개중에서 먹고살 만하다고 자부할 만한 집은 한 집도 없었다. 이백 냥은커녕 그날 번 것으로 제 입에 풀칠하면 다행인 사람들이었다.
“약방 어르신. 이건…….”
얘기가 다르지 않느냐고. 돌다리 건넛집 주정뱅이 아저씨가 말했다. 약방 어른은 열두 집을 모아놓은 뒤, 생계에 부담 없는 선에서 값을 정하겠다고 이야기한 바가 있었다. 약방 어른의 곤란해하는 얼굴을 보아하니, 이 족제비 같은 퇴치사와 이야기가 틀어진 것이 분명하리라. 퇴치사는 제 앞에 모인 가난뱅이를 둘러보다가 말했다.
“싫은가?”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판에, 이백 냥을 구하러 발바닥에 불이 나게 뛰어다녀야 했다. 퇴치사는 아쉬운 것 없다며, 당장에라도 떠나겠다고 하는 것을 약방 어른이 오십 냥을 내주어 간신히 붙잡았고, 나머지 오십 냥은 지주에게 놀고 있는 땅을 판 점순이네가 도의적으로 빌려주었고, 모자란 백 냥은 강 건너 지주의 땅에서 모두가 겨우내 일하기로 약속을 한 후에야 치를 수 있었다.
욕심 많은 지주에게 빌려주십사 한 것은 후회되지만, 그래도 어머니를 곧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아깝지는 않았다. 다들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없는 형편에 참외를 따다가 퇴치사에게 바친 이도 있었고, 아버지도 겨울에 먹으려고 아껴둔 과메기를 퇴치사의 점심상에 올리기도 했다.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나도 할 수만 있으면 퇴치사의 신이라도 닦을 작정이었으나, 부쩍 심해진 어지럼증 때문에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했다. 대수롭지 않은 어지럼증에 그치겠거니 했건만, 그제 밤에는 뱃가죽에 열꽃까지 펴 아버지가 기함했다. 다행히도 약방 어른이 지어준 약을 먹고 걸어 다니긴 다녔으나, 조금만 무리해도 어지럼증이 심해져 땅바닥에 얼굴을 박았다.
한데 삼 일이 쏜살같이 지나고. 생선 굽는 냄새만 팔 듯, 늑장 부리던 퇴치사가 재촉에 못 이겨 바다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퇴치를 구경한답시고 먹을거리를 싸는 파렴치한도 제법 있었다. 제 가족을 잃지 않은 자에게는 구경거리일지 모르겠으나, 그 퇴치사에게 사활을 건 내게는 조롱으로 느껴졌다.
나는 어지럼증이고 나발이고 어머니를 보겠다는 일념 하나에 바다로 나갔다. 마을 사람들 무릎이 죄 닳도록 빌어서 얻어낸 이백 냥이었으므로, 설령 퇴치사의 성품이 영 의심쩍어도 다들 값은 하겠거니 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약방 어른이 손수 구해온 퇴치사 아니겠는가. 퇴치사가 그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바닷가로 갔다는 소식에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덩실거린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나도 퇴치사가 썩 미더운 건 아니었으나, 공연히 일을 그르칠까 싶어 말을 삼킨 적이 여러 번이었다. 대체 얼마나 눌러앉아 있으려고 저러나 싶을 때 즈음 나선 게 아니꼽지만. 그래. 어머니만 무사히 돌아온다면야. 그 잘난 발치에 엎드려 절이라도 할 수 있었다.
“자경아!”
건초 뜯는 소 떼처럼 몰려든 무리에는 아버지도 있었다. 아버지는 가냘픈 막대기에 몸을 의지한 내가 염려스러운 듯 서 계셨다. 나는 일부러 당차게 웃었다. 그리고 일은 어떻게 되고 있느냐고 물었다.
“아. 아직 시작을 안 한 것인지… 아님 저것이 하고 있는 것인지…….”
아버지가 말끝을 흐리자, 나는 인파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구경꾼은 방해된다며 바닷가 한구석에 밀어 넣고, 퇴치사는 목 좋은 곳에 앉아 붓질을 하고 앉아 있었다. 나는 칼부림을 하며 잡는 것은 아니어도, 으레 무녀들이 그러는 것처럼 요수를 물리칠 춤이라도 추리라 생각했다. 어른들도 나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았나 보다. 퇴치사를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옆 사람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피식 웃고 마는 것이었다.
“저기서 뭔 지랄이랴.”
“요수가 나타나면 붓으로 찌르려 그러나. 나는 모르겠네.”
제 일이 아니라고 신나서 떠드는 사람들은 죄가 없었다. 요수의 멱살을 잡아서 아낙들을 토해내게 할 것을 기대한 나를 비롯한 사람들, 그들만 담금질 된 철 마냥 딱딱하게 굳어갔다.
“점심때 다 지나겠네.”
구경꾼들은 갈수록 하품이나 쩍쩍하고 앉아 있었다. 차라리 나라에서 군졸을 보내올 때까지 넉넉히 기다리는 게 낫겠다는 농담을 누군가 했다. 이런 촌구석에서 요수 잡을 관군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면 몇 년 뒤가 돼서야 어물쩍어물쩍 삐쩍 곯은 군졸 하나를 보내올 터였다. 세수를 걷어갈 때는 빠릿빠릿하던 윗분들은 이상하리만치 요수가 나타났다고 하면 발길을 뚝 끊으니.
그만큼 각지에서 요수는 해충처럼 들끓는 중이었고, 지주나 귀족은 사병을 사다가 제집에 담장처럼 두르거나, 이름이 알려진 무녀를 알고 지내는 게 보통이었다. 평생 가야 무녀 치마 끝자락도 보기 힘든 우리네 인생이야 저 그림쟁이가 고작인 것이다.
“내가 가서 함 말해 볼까?”
요수에게 잡혀간 과부의 여동생이었다. 핏덩이 같은 조카만 두고 떠나가면 어쩌냐며 대성통곡하던 얼굴이 떠올랐다. 초조한 얼굴로 퇴치사의 뒤통수만 뚫어져라 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팔을 걷어붙인 것이었다.
“아서라 아서. 그러다가 이백 냥짜리 퇴치를 망치면 어쩌려 그러나.”
“아침 댓바람부터 나와서 붓질만 하는데 망칠 게 어디에 있다고.”
기다리다 못해 짜증이 붙은 사람들끼리 말이 날카로워졌다. 짜디짠 바닷바람을 콧속으로 들이쉰 나는 입 안이 말랐다. 여긴 궁중이 아니었다. 한가하게 놀음이나 할 때가 아니란 말이다. 이백 냥이나 받아먹었으면서 유유자적한 저 퇴치사 놈도 얄미워 죽겠고, 제 일 아니라고 입이 터진 마을 사람들도 꼴 보기가 싫고, 이참에 노비로 만들고자 안달복달하는 지주도 역겹기는 매한가지고. 여러모로 꼴불견들만 아득바득 내 앞에 꿇어 앉힌 것 같았다.
“난 이만 가보련다. 온종일 저 뒤통수만 보고 앉아 뭐하게…….”
“이제 보니 요수 퇴치도 참 별거 없고만.”
바리바리 먹을 거를 싸서 와 앉아 있던 다섯 식구가 떠나가자 전염된 듯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제대로 사기를 당한 것 같다면서 손을 털고 떠나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팠다. 복잡한 심경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답 없는 퇴치사의 뒤통수만 바라보며, 점심을 건너뛰고 기다리는 모두가 앉아 한 마디도 주고받지 아니했다.
퇴치사는 그리다가 말고. 그러다가 불현듯 다시 그리고. 멀리서 얼추 완성이 된 것같이 보일 때 즈음, 퇴치사는 모래를 털고 일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미 저녁을 먹기에는 애매하고 점심을 먹기에는 한참 늦은 때였다. 여기에 떼처럼 모인 인중은 보이지도 않는지. 손에 든 족자만 돌돌돌 말아서 챙기고 지나가려 하는데, 우리 중에 가장 불같은, 개울가 돌다리 건넛집 아저씨가 소리쳤다.
“이보시오!”
술은 물 마시듯 마셔도 아내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고 소문 자자한 아저씨였다. 맨발로 뛰쳐나가 퇴치사의 앞길을 선두로 가로막는데, 그제야 하나둘씩 뛰쳐나가 아저씨의 뒤에 서서 힘을 보탰다.
“어떻게 된 거요.”
“무엇이 말이냐.”
“무엇이? 우리한테 이백 냥이나 받은 연유를 까먹기라도 한 거요?”
나도 아버지의 부축을 받아 퇴치사에게 한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 즈음, 혀를 찬 퇴치사가 들고 있던 족자를 풀었다.
“이것 봐라.”
모두가 눈가를 비비며 그걸 들여다보았다. 나 또한 자세히 보았거늘, 일자로 그어진 선 밑에 물고기 하나, 그것이 그림의 전부였다. 모두의 입이 멋쩍게 다물렸다. 한참을 암말 않고 있자, 퇴치사는 갑갑한 듯 물고기를 검지로 가리켰다.
“이게 요수다.”
나는 남의 변소를 보듯 눈살을 찌푸렸다. 퇴치사의 부리부리한 눈과 마주쳤다. 퇴치사는 눈을 돌리지 않고 가만히 나를 보더니, 이내 말을 차근차근 뱉어냈다.
“물고기처럼 생겼으나 밑으로는 사람의 다리가 나 있고, 크기가 어지간한 배 한 척은 씹어 삼킬 만큼 큰 놈이고. 머리는 그다지 좋지 못하고 능력도 별 볼 일 없으나, 문제는 물속에 한 번 들어가면 꺼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지.”
보아하니 그려진 물고기에게는 쭉 뻗은 다리가 두 개가 있었다. 나는 그게 어쨌냐는 생각이 불쑥 들었으나, 주변은 실마리를 잡은 것처럼 탄식하기도 하고 웃기도 하였다. 아까부터 퇴치사를 의심하느라 골머리 앓았던 사람들은 ‘그럼 그렇지.’라는 얼굴이 되었고, 이제 아낙들의 행방을 들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물오르고 있었다.
“그럼 제 마누라는 어디에…….”
퇴치사의 뼈를 으스러뜨릴 듯 사납던 돌다리 아저씨가 두 손을 공손하게 모았다. 퇴치사가 허튼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다시 막 대할 수 없는 입장이 된 것이었다. 나도 가장 궁금하던 것은 그것이었다. 물고기 요수의 다리가 두 개니 네 개니 하는 것은 쓸데없고, 사라진 우리 어머니의 행방만 속히 알았음 싶었다.
“안 보이나?”
“예?”
“여기.”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모호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요수의 배가 비어 있지 않은가.”
“예?”
퇴치사는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족자를 다시 돌돌 말아 제 겨드랑이에 끼웠다.
“구태여 요수를 불러낼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
어리벙벙한 얼굴들을 둘러보던 퇴치사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이 바닷가를 떠나고 싶은 낯바대기였다.
“요수가 잡아먹은 걸 소화를 다 했다, 이 말이야.”
봄철 볕처럼 훈훈하던 분위기가 거꾸로 처박혔다. 올라갔던 입매는 내려가고, 눈썹은 축 처지고, 얼굴은 핏기가 빠진 듯 하얘지고, 손은 달달 떨리고. 거기 멍청이처럼 선 모두가 겪고 있는 증상이었다.
나는 피가 역류하는 느낌이었다. 나를 부축한 아버지는 좌절하며 울고 있었다. 파도가 쓸려오는 사이, 그 잘난 퇴치사는 얼빠진 군중을 지나쳐갔다. 막아서서 윽박지를 기운도 죽고 없었다. 다만 나는 떠나가는 그를 찌르듯 흘겨보았다. 그때 퇴치사가 등골에 박힌 시선을 아는 것 마냥 돌아보았다.
“아. 맞다, 맞다. 내 요즘 정신이 없어서…….”
어질어질하니 눈앞이 흐릿했다. 위태위태한 아버지에게 의탁해 버티는 와중, 퇴치사가 걸음을 돌려 내 앞으로 왔다. 비참한 부고를 들은 이들의 눈에 희망이 엿보였지만, 그는 오로지 나만을 쳐다볼 뿐이었다.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
나는 퇴치사가 아랫사람이라도 되는 양 하대하는 게 싫었다. 그러게 요수가 어머니를 해치기 전에, 구해낼 수 있을 때 오지 무얼 하고 자빠졌느냐고 쏘아붙이려 했다. 이백 냥을 토해놓고 가라고 말하려는 그때, 퇴치사는 눈길을 아버지 쪽으로 돌렸다.
“자네 딸에게 신이 깃들었어.”
“예?”
“조만간 많이 아플 터인데. 하필 계집이라 퇴치사는 할 수가 없을 터고…….”
비탄에 빠진 마을 사람이나 아버지나 나나, 이 해충보다 해로운 인간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것인가 하고 쳐다보자, 퇴치사는 되었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안타깝구나. 네 팔자도.”
이익만을 꾀하던 퇴치사가 처음으로 남을 위했다. 하나 사람 열댓이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그가 해 준 위로는 내게 닿지 않았다.
퇴치사는 그 길로 미련 없이 발을 돌려 약방 영감의 집에서 며칠 더 머무른다는 소식을 전했다. 사람들은 이게 끝이냐며 퇴치사에게 따져 물었다가 그럼 요수를 불러낼 테니 알아서 처리하라는, 본전도 못 건진 말만 듣고 왔다.
저승길로 간 어머니가 고작 퇴치사의 그림으로 소식을 알려온 건, 수천 번을 생각해도 하늘의 농간 같았다. 마치 누군가 벌이는 인형극같이. 어머니는 사지가 멀쩡하고, 나는 그 옆에 앉아 소쿠리 짜는 것을 도와주는 예전처럼. 내일이라도 그리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은 퇴치사의 말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팡질팡하다가, 더 늦기 전에 제사상이라도 차리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수백 살 먹은 나무 아래서 이름 적힌 천을 태우는 식으로 간소히 치르는데, 아버지는 불참석인 데다가, 홀로 배를 타고 멀리까지 나가곤 한다는 소식을 영수네 아저씨께 들었다. 영수네 아저씨는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자경이 네가 말려 보라고 넌지시 말을 흘리고 떠나갔다.
그 말을 듣고 벌인 짓은 아니지만, 나는 열이 펄펄 끓었다가 눈곱만큼 괜찮아지고를 반복했다. 덕분에 남의 밭에서 소일거리를 하고 작물을 꿔오던 아버지는 그마저도 때려치우고 말았다. 이러다가 나까지 잃으면 어찌할까 싶으신 것이겠지.
하나 눈물로 배를 채울 것도 아닐 테고. 쌀독도 비었고, 엽전도 떨어졌고. 꼼짝없이 부녀가 부둥켜안고 굶어 죽으려나 했는데. 인정 많은 이웃 몇이 들러 죽 한 사발이나 나물 무친 것을 끼니마다 전해 주고 갔다. 우리는 그것으로 연명하며 하루를 보릿고개처럼 넘었다. 간혹 우리 집에 오는 사람마다 어머니가 가니까 딸이 뒤따라가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염려 섞인 말을 아버지께 두고 갔다.
그럴 리 없다는 아버지께 면구스러운 이야기였다. 나는 남몰래 저승길에 발을 디디길 바랐다. 내 되도 않는 고집을 들어주던 어머니가 그리웠고, 몰라보게 몸과 마음이 야위어져 갔다. 죽으면 죽는 것이지. 아무런 방책 없는 체념만 빈번해졌다.
불효막심한 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는 죽을 둥 살 둥 병을 물리칠 방도를 찾다가, 염치없이 놀고먹는 퇴치사까지 내 앞에 데려왔다. 차라리 저승 문턱을 밟고 말지. 나는 오든 말든 뒤돌아 누워 기침을 삭였다. 애타는 건 아버지뿐이었다.
“제법 큰 신이구나.”
나는 풍채 좋고 낯짝도 멀끔한 퇴치사를 볼 때마다 옹졸해졌다. 겨울이 오면 지주는 불도 때지 않는 얼음장에다가 수십 명을 재우고 부려먹을 것이었다. 한데도 지주의 집에 몰려가 엽전을 빌려주십사 울어댄 것을 무어라 여기는가.
궁색하고 못 배웠다 한들 그 의지까지 값싼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너희는 나 같은 퇴치사가 최선이니 이백 냥을 낼 수 없음 말라는, 그 야멸찬 태도를 떠올리면 당장 똥 밭에 던져도 속이 풀리지 않을 성싶었다. 골골대지만 않았어도 저 철면피를 걷어차 주는 것인데. 이가 박박 갈렸다.
“저기, 저기, 우리 자경이한테 뭔 큰일이 난 것인지요.”
“가끔 요수의 기운에 예민한 자들이 있는데. 이렇게 요수가 근방에 있으면 앓고 그만인 사람이 있는 반면, 운이 좋으면 신이 깃드는 이들이 더러 있다. 자네 딸이 후자인 게지.”
그의 말은 닭 울음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나약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상태였고 가엾은 목은 가래로 잠겼다. 물러터진 마음은 깨진 장독이었다. 어머니를 저승으로 물고 간 것은 분명 요수였으나, 싹수없는 퇴치사에 대한 원망은 별개였다.
“어쩌겠느냐.”
나는 곱지 않은 눈길로 퇴치사를 돌아보았다. 어디 내 앞에서 맘껏 같잖은 소리를 해 보라는 뜻이었다.
“내게 그 신을 넘기면 백 냥을 주마.”
“예?”
아버지는 저녁에 먹은 뭇국을 토해낼 것 같은 얼굴이었다. 백 냥 소리에 냉하던 초가삼간이 후텁지근해졌다. 백 냥이면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거니와, 우리 부녀가 겨우내 일하지 않아도 될 만한 값이었다.
평소라면 옳다구나 퇴치사에게 떠넘기고 말 것을. 어쩐지 백 냥을 주는데도 네가 못 참기고 배길 것 같으냐, 하는 퇴치사의 기색은 심히 거슬렸다. 차라리 백 냥을 모른 체하고 말지. 신인지 산인지 무언지. 저자가 흥정하는 것이라면 쌀 한 되도 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목소리가 두꺼비 울음 마냥 낮고 가라앉았다. 나는 따가운 목을 누르며 말을 이었다.
“그게 무엇이든. 내가 짊어질 터이니. 신경 쓰지 마시오.”
퇴치사는 딱하다는 눈치였다. 그는 타이르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나는 매스꺼운 나머지 몸을 홱 돌려 누웠다. 소심한 홀대였다. 일부러 눈 감으며 배를 긁었다. 퇴치사는 의외로 질타 대신 몸을 일으켰다.
“며칠 뒤에 떠나는데, 그전에 한 번 찾아올 것이다. 내일이나 모레면 신병도 차츰 나아질 것이니. 그간 잘 생각하고 있어라.”
“아니, 이렇게 가시면…….”
딸의 병색이 짙어 모셔온 이가 아니던가. 아버지는 자리를 훌훌 박차고 떠난 퇴치사가 골때리는 모양이었다. 요수를 바다에 사는 범으로 아는 아버지가 신병이니 백 냥이니 하는 걸 귀담아들었을 리가. 실은 나 또한 무식을 친우로 둔 정도고, 아픈 건 아픈지라 한 귀로 흘려들은 게 많았다.
결국 되도 않는 옹고집으로 열과 엎치락뒤치락할 즈음, 낭설처럼 이틀이 지나자 열은 식어가고 정신은 말똥말똥해졌다. 꿈인지 생시인지. 저승 가는 문턱에서 나는 대번에 내팽개쳐졌다.
마을 사람들 말로는 그랬다. 어미가 딸을 저세상 문간에서 밀친 것이라고. 하늘이 모녀를 어여쁘게 여긴 것이라고. 어머니와 친분이 있던 사람들은 단출하게나마 장례를 치러야 하지 않으냐 물었고, 데면데면하던 이웃들은 겨우내 내가 겪을 고난을 염려해 주기도 했다. 죽은 어머니가 극락으로 승천했다고 믿는 까닭이었다.
내가 골골거린 세월은 극히 짧지만, 마을은 커다란 기복을 겪는 듯싶었다. 우선 윗선에서 본체만체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엊저녁 군졸이 찾아와 죽은 사람의 명수를 적어갔다고 했다. 식구 잃은 노여움만 남은 사람들이 드디어 요수를 처단하는 것이냐며 물었지만, 침착히 기다리라는 말만 주야장천 해댔다고 했다.
기운 빠지는 답이었다. 하나 군졸이 신경 쓴다는 사실만으로 마을은 활기가 넘쳤다. 식구를 요수에게서 구해낼 방도는 송장 신세 된 지 오래고, 이제는 바닷속에 그 요수를 끄집어내 족치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몇몇 마을 사람들은 공연히 잠든 요수를 건드리는 게 아닌 것인가 했지만, 내일이라도 다시 깨어나 피해를 끼치면 어쩔 거냐는 말에는 답하지 못했다.
결국 자금을 모아서 그 염치없는 퇴치사에게 의뢰하자는 결론을, 그에게 거처를 내주고 있는 약방 영감이 넌지시 전달했다고 했다. 약방 영감은 이번 퇴치도 이백 냥으로 정하려고 했으나, 퇴치사는 양심을 감나무 위에 걸어 두었는지 오백 냥을 불렀다고 들었다. 사실상 이백 냥도 큰마음 먹은 것을, 하물며 오백 냥은 마을을 이 잡듯 털어도 낼 수 없었다. 노비 문서에 냉큼 이름을 적는다면 또 모를까.
외출을 삼가던 내 목구멍이 근질거리게 만든 것은 그 빌어먹을 오백 냥이었다. 아무리 거지발싸개 같은 놈이라며, 잊는 게 속 편하다고 했어도 그렇지. 빤히 마을 사정 아는데도 제 욕심 채우기 급급한 퇴치사 놈을 발 뻗고 자게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자경아!”
아버지는 말린 북어를 들고 가는 나를 말리려 애썼다. 혹여 돈푼깨나 있는 퇴치사가 나를 고발해 잘못될까 싶은 눈치였다. 하나 나는 설령 그놈이 나를 고발한다 하더라도 속 시원할 만치 패줄 수만 있다면 족했다. 양팔을 걷어붙이고 뛰어가는 나를 본 아낙들이 수군거렸지만 나는 따가운 눈총을 뒤로하고 약방 영감의 마당으로 달려갔다.
마을 아이들은 쓴 내가 나는 약방을 질색하며 기피하고. 간혹 허리가 아프거나 손목이 으스러질 것 같다며 오는 아낙들이 마당귀에 앉아 수다 떠는 경우도 있었지만, 퇴치사가 머문 후부터는 그마저도 줄어 약방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이보시오.”
문짝이 부서져라 두들겨도 나와 보는 이가 없었다. 나는 손으로 두드림에 반응이 없자 발로 문간을 찼다. 안은 비었는지 코웃음 치는 소리조차 깜깜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약방 마당에 눌러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차에, 실바람에 밀려난 문짝이 사르르 열리고 있었다. 맹세코 주인 없는 방을 들여다볼 파렴치는 아니나, 그 넘실거리는 기이함에 이목이 끌려가고 말았다.
안에는 약방 영감이 애지중지하던 약재는 간데없고, 새까만 먹으로 그린 족자가 사방에 걸려 있었다. 그것은 돼지의 형상을 한 것이 있기도 하고, 소담한 미인을 그려둔 것도 있었으며,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괴상한 것도 있었다. 나는 이것이 퇴치사의 솜씨라는 것을 단박에 알았다. 방구석 한편, 어머니를 삼킨 요수의 그림도 걸려 있었으니까.
방바닥에는 붓과 먹이 늘어져 있었고 미처 선만 그어진 종이도 있었다. 나는 발에 채는 족자들을 뒷짐 지고 구경하다가 문득 느껴진 기척에 뒤를 돌았다. 문밖에서 내 등을 찍어 내리는 날카로운 시선의 주인. 푸르른 비단으로 몸을 감싼 퇴치사가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재밌었느냐.”
그는 내가 올 것을 알기라도 한 듯 능청스러운 몸짓이었다. 퇴청에 걸터앉아 바람을 느끼는 양 눈 감고 있는데 그 자태가 꼴불견이었다.
“백 냥을 받으러 온 것이겠지.”
퇴치사는 옥색 술병을 제 입에 가져다 댔다. 꿀꺽꿀꺽 술 넘어가는 소리에 열불이 터졌다. 나는 악다구니를 퍼붓듯 소리쳤다.
“왜 그 요수를 죽이지 않는 거요?”
“그 요수?”
“내 어머니를 죽인. 바닷속에서 호의호식하고 있는 그놈.”
퇴치사는 술로 입 안을 헹구며 뜸을 들이다가 부드러이 삼켰다.
“한 번에 많이 잡아먹고 들어갔으니 십 년은 깨어나지 않을 것이고. 지금 괜히 들쑤시다가는 화가 난 놈이 더 많은…….”
“잡을 자신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요?”
“응?”
“이상한 그림 그려주고 이백 냥 받아 가면서 밤에 두 다리를 뻗고 잠은 잘 자시나 보오. 나는 어머니를 죽인 그놈을 회 처먹을까 생살을 도려내 뜰까 그 생각밖에 없는데 그쪽은 배가 부른 요수 사정도 다 헤아려주면서 말이오.”
나는 그 경박한 낯짝을 북어로 내리치고 싶었다. 퇴치사는 고개를 기우뚱하고 술병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내 손에 들린 북어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그건 네 몽둥이냐?”
“왜. 무섭소?”
퇴치사는 우스워 죽겠다는 듯이 양 미간을 모았다. 그러고선 입을 횡렬로 크게 찢더니, 이윽고 박장대소하며 툇마루를 굴러다녔다.
“하하하하!”
퇴치사는 십 리 밖에서 걷던 이도 경탄할 정도의 큰소리를 내고는, 가증스러운 눈물을 훔치며 몸을 바로 세웠다.
“계집으로 태어난 게 안타까울 지경이구나.”
계집이 때릴 수나 있겠냐는, 교만한 사내의 비꼼으로 들렸다. 복수도 어영부영한 계집이 앙탈을 부리러 온 것처럼, 퇴치사는 그따위 건방진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어금니가 갈릴 만큼 분한 마음에 북어를 치켜든 순간, 퇴치사는 웃음기 빠진 얼굴로 나를 보았다.
“어미의 복수를 하고 싶거든 무녀청을 찾아가 보거라.”
무녀청. 요수를 없앨 힘을 가진 여인들만 받는 곳이었다. 간혹 집안 위신을 세우고자 하는 부가에서 무녀를 부르지 않는 이상 그 귀하신 얼굴은 구경도 힘들었다. 우리네처럼 궁색한 어촌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이따금 자신이 무녀 출신이라며 아낙들 뒷돈 뜯어가는 모리배야 한둘 보긴 하였어도, 무녀청 무녀는 언감생심 넘볼 자리가 아니었다.
“나보고 무녀가 되라는 거요?”
대놓고 귀가 솔깃한 제안이었다. 무녀가 무엇인가. 무녀청 패를 걸고 다니는 자라면 설령 개똥밭을 구르다가 왔더라도 지주가 맨발로 뛰쳐나올 정도의 위세를 가지지 않았던가.
요수가 날뛰는 통에 군의 위신은 땅으로 떨어졌고, 신묘한 힘을 가진 무녀나 도인들의 위신은 하늘이 만만한 정도였다. 퇴치사만 되어도 귀인 대접을 해 주는데, 백성의 존경을 받는 무녀라면 어떠한가. 떠들 입만 아팠다.
무엇보다 무녀가 되면 우리 부녀는 포근한 아랫목에서 겨울을 날 수 있었다. 퇴치사의 말은 빠짐없이 잡소리로 치부하였거늘, 무녀청에 가보라는 한마디에 껌뻑 넘어간 가슴팍이 벌떡벌떡 뛰었다. 무녀라면 어머니의 복수도 죽 쑤는 일만큼 쉬울 터고, 소쿠리를 짜는 것보다야 앞날이 창창하지 않던가.
“무녀는 어려울 게다. 아마 그 밑에 하수인으로 요긴히 쓰겠지. 하다 보면 너를 안쓰럽게 여긴 무녀가 네 어미의 원수를 갚아줄 날도 올지 모르고. 사실 그것도 네겐 감지덕지 아니냐.”
신이 깃들었다는 둥. 무녀청으로 가보라는 둥. 사람을 비단 강보 위에 앉혀두고 먹이는 말은 딴판이었다. 하면 무슨 연유로 무녀청으로 가라는 건지. 깃들었다는 신을 퇴치라도 하라는 건지. 내가 불민한 눈으로 묻자, 퇴치사는 마뜩잖은 듯 입을 벌렸다.
“무녀가 되려면 나라에 바칠 상납전이 필요하다. 무려 이천 냥이고. 그럴 일은 없겠으나 네가 어찌어찌 모아서 무녀청에 바친다 하여도 그곳은 열아홉이 넘는 여인은 샛무녀(무녀 일을 한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여자)로 받아주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한테 들으니 네 나이가 열다섯이라 하던데. 시골에 사는 어린 계집이 사 년 안에 이천 냥이라.”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나의 뱀 구덩이 같던 앞날이 가까스로 기지개를 켜는가 했더니. 삽시에 눈 뜨고 못 봐줄 수렁으로 굴러가는 중이었다. 신이 깃들은 게 무언가 했더니 무녀가 될 수 있다고 하였고, 그러하면 나도 힘을 부려 요수를 퇴치하는 것인가 했더니 이천 냥이 없으면 불가라고 하고. 세상인심이 나에게만 각박한 것인지 각박한 땅에 내가 살고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러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요?”
결국 억울함뿐이었다. 대관절 나보고 혀 깨물고 죽으라는 것인가. 바다 밑에 원수를 꺼내주겠다는 놈은 오백 냥을 말하고, 내가 나설까 하였더니 이천 냥을 말하고. 사지를 뽑아다가 팔아도 그만치 값을 벌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인데. 이 퇴치사 놈은 나를 극락으로 띄웠다가 땅으로 처박았다가 하며 농락하고 있었다.
“말했지 않느냐. 나에게 팔 거라.”
또 그 헛소리였다. 내 몸에 깃든 신을 백 냥에 팔아넘기라는. 내가 시세를 모르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이것이 팔고 싶다고 팔리기는 할는지 의문이었다.
“팔면 어디에다 쓸 거요. 댁이 쓸 거요?”
“내가 잘 가지고 있다가 자격이 될 만한 다른 사내에게 넘겨주겠지.”
“다른 사내.”
일순 말문이 막혔다. 허구한 날 계집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귀에 딱지가 앉게 들은 나도 이만큼 복받친 적은 없었다. 이천 냥만 있으면 무녀가 될 물건을 가져다가 생판 모르는 사내에게 바치라는 것 아닌가. 내 귀가 어두운 게 아니었는지 퇴치사는 마지막 말로 쐐기를 박았다.
“네가 가져봐야 무녀청에도 못 들어가는 팔자를 원망만 하다가 죽을 것이 뻔하고. 잘 풀려봐야 이런 답도 없는 마을에서 어부들에게 비 올지 말지, 아낙들이 아들을 낳을지 말지 그따위 점이나 봐주면서 허송세월할 게다.”
“내가… 내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러한데. 하나만 묻겠소.”
“말해라.”
“다른 사내한테 준다는 것이. 그러니까 그 신이라는 것을 나한테 가져갔다가 다른 사내한테 줘서, 댁 같은 퇴치사를 만든다는 말 아니오?”
“그렇다면?”
“왜 나는 안 되는 거요.”
“뭐?”
“왜 나를 퇴치사로 만들 생각은 안 하냐, 그 말이오.”
누울 듯 반쯤 엎어져 있던 퇴치사는 또 한 번 배꼽을 잡았다.
“너, 시집은 안 갈 생각이냐?”
“그게 이유요?”
“무녀들처럼 처녀로 남을 것도 아니고. 시집 가버리면 그만인 여인들을 데려다가 내가 무엇 하러. 낳은 새끼들 옆구리에 끼고 요수를 잡으려고?”
“내가 먼젓번에 저 건너 건넛마을에 소쿠리를 팔려고 가다가 그 마을에서 요수를 잡는다기에 구경을 했소만. 그 마을에 온 퇴치사는 장가도 가고 애가 다섯이라 하던데. 그처럼 사내한테는 내 몸에서 신도 뽑아다가 꽂아주고 장가도 보내주고 하면서, 나한테는 고작 백 냥 먹고 떨어져라 이거요?”
“오호. 이백 냥을 주랴?”
“이천 냥.”
“무어라?”
“댁이 이천 냥 주면 그 길로 무녀청에 들어갈 작정이고, 그 밑이라면 속이 뒤틀려서라도 못 주겠소.”
“네 안에 든 게 뭔지는 알고 하는 소리인 게냐?”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겠소? 알면 진즉에 무녀청 앞에 엎드려 사정사정이라도 하였겠지.”
사정사정한다고 들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나, 난생처음으로 나는 삶에 한 떨기 꽃이 피었다고 여겼다. 비단 어린잎만 움튼 상태이긴 하지만, 하나뿐인 아버지가 떵떵거리며 살 수 있고, 더는 험한 소리 들을 필요 또한 없으며, 계집을 키워 무엇 하냐는 소리마저 쓸어버릴 기회였다.
신에 대해 운운하는 소리를, 저 퇴치사가 엽전 뜯어내려고 작정을 하는구나 싶었는데. 백 냥 운운하는 걸 보니 거짓이라 치기에는 저자가 너무 진지했다. 그의 말대로 이 어촌바닥에 눌러앉아 점쟁이 신세가 된다 하더라도 애먼 사내에게 내 것을 주어, 그 사내가 퇴치사가 됐답시고 또 이백 냥이나 뜯어내는 꼴을 볼 수는 없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보수는 되놈이 받는다더니. 이게 딱 그 짝이었다.
“댁도 어느 시골구석에 박혀 사는 가련한 여인의 것을 뜯어다가 퇴치사가 된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으나, 내가 댁 같은 퇴치사라면 짠 바닷물에 쪼글쪼글해진 손에서 이백 냥을 뜯지는 않을 것이요.”
“하나 말해 두자면.”
퇴치사는 무릎을 짚고 일어서 나와 눈을 맞추었다. 움츠러들어 물러섰으나 퇴치사는 한 발 내 앞으로 가까이 붙었다. 일어서서 보니 범처럼 부리부리한 눈에 신장은 군졸보다 월등하고 어깨는 떡 벌어져 있었다. 사위 삼고 싶다고 가창하며 다니는 약방 영감이나 순진한 여인네들 꾀기 딱 좋은 용모였다.
“나는 굉장히 의리가 있는, 도의적인 퇴치사란 것이다.”
“도의의 의미를 잘못 배우셨나 보오.”
“계집을 제자로 두지 않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나라를 다 뒤져도 계집을 제자로 둔 퇴치사는 없느니라. 하물며 백 냥에 네 신을 사겠다는 것도 나뿐일 터.”
퇴치사는 손을 뻗어 내 뒤의 문고리를 잡아 쭈욱 잡아당겼다. 열린 문으로 구릿한 먹 냄새가 풍겨왔다. 퇴치사는 가만히 웃더니 나의 옆을 지나쳐가고, 허리 숙여 문을 통과하자마자 나를 끌어내었다.
“나는 모레에 이곳을 떠날 예정이다. 네 인생에 더 없을 기회이니 그때까지 내가 한 말을 잘 생각해 보거라.”
나는 닫힌 문에 대고 입술만 뻐끔거렸다. 약방 마당에 버려진 내 처지가 저문 하늘에 도는 옻빛 같았다. 그곳 장독과 나란히 서서 나는 방문만 바라보았다. 그가 걸어 나와 달래주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곳에, 아니, 이 무심한 땅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눈보라 같은 슬픔이 어깨를 타고 넘어올 적에, 나는 외로운 걸음으로 약방을 빠져나갈 수밖에 없었다.
지나치는 아낙마다 내 손에 든 북어를 파는 것이냐 물었고, 나는 그건 아니라 하며 집으로 왔다. 밭일을 마치고 와 꼴이 말이 아닌 아버지는 갸우뚱거렸다. 기세등등하여 나간 딸의 낯빛이 거무죽죽하니, 아버지는 어서 들어가 몸을 추스르라는 말만 하였다.
소세할 기운도 없었다. 말린 북어를 옆에 두고 꼬질꼬질한 채로 누웠다. 의기양양한 나는 장터에 팔아버린 듯하자, 아버지는 퇴치사에게 된통 혼났구나 짐작한 모양이었다. 부러 내 기운을 복 돋아준다고 해 준 아버지의 이야기는 어머니의 장례를 마을에서 치러주기로 했다는 것과 살림이 힘들 것을 생각해 마을 아낙들이 돌아가면서 반찬거리를 나누어준다는 것, 그리고 내일부터 다시 바닷가로 나가도 좋다는 군의 허락이 떨어진 것이었다.
“군졸들이 한 게 뭐 있다고 와서 생선을 잡으라 말라 하는 건데?”
“요수는 퇴치사가 십 년은 괜찮다 하고, 아무리 요수가 나타났더라도 나라에 제때 세수를 내야 한다고…….”
“몇 년 얌전하다는 소리에 다들 왜 그렇게 안심하는지 모르겠네. 그게 지나면 배고파진 그놈이 다시 올라와 우리 어머니 같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데……!”
“아야. 자경아.”
섧게 울지 않으려고 했다. 울면 금세 배고파진다고, 우는 애를 때리면서 키우는 어른은 수두룩하며, 강경하신 내 어머니도 개중 하나였다. 울면 등짝을 때리는 통에 눈물보다 화를 배웠고, 덕분에 더러운 성질머리라며, 어디 가서 굶어 죽지는 않겠다고 질색하는 어른이 몇몇 있었다. 듣기 싫기보단 도리어 칭찬 같았다. 이 모양 이 꼴로 태어났어도 제 몫은 악바리처럼 할 것만 같아서.
한데 작금의 나를 보라지. 글줄 읽자고 어머니를 사지로 몰아넣은 것도 모자라, 몸에 깃들었다는 신이라는 것도 백 냥에 팔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 계집애일 뿐이었다. 들고 간 북어로 흠씬 두들겨 패주지도 못하고 엉뚱한 이에게 화풀이라니. 아버지는 엉엉 우는 나를 보고 허둥거렸고, 나는 뜨뜻한 눈물을 바닥에 쏟아버렸다.
“아부지. 사는 게 왜 이리 힘에 부칠까.”
아버지는 꼭 삶에 볕들 날이 온다고, 오기로 버티다 보면 그날이 온다고 했지만 막상 심금을 울릴 위로는 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상처받은 것을 알면서도 물었다. 그래서 아버지 인생에 볕 들 날은 있었냐고. 하나 뱉자마자 후회스러웠다. 이만하면 살만하다고 자부했던 지난날이 깡그리 무색해질 말이었으나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웃어주었다.
“자경이 네가 내 인생에 볕이여.”
어른스러운 어제라면 넉살 떨 수 있었겠지만, 빗장이 풀려버린 오늘은 목 놓아 울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그런 나를 끌어안자 더 서러워서 옆집 사람이 잠에서 깨 찾아올 정도로 울어댔다.
아버지는 그랬다. 어렸을 적에 울지 말라며 때리는 어머니를 말릴 수 없는 당신이 미웠고, 글방에 보내주겠다고 호언장담할 수 없는 처지도 미웠고, 그럼에도 씩씩한 나를 보며 인생 헛살지는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고.
그날 밤은 우리 부녀의 말이 바닷속 물고기처럼 무수한 밤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엄하게 군 이유는 형제 많은 집의 딸로 태어나 못 먹고 못 입고 그렇게 살다가, 혼인해서 귀한 나를 낳고 잘 키우자는 생각에 틀어박혀 그랬다고. 항상 내 종아리를 때리고 나면 어머니가 뒤에서 몰래 눈물을 훔치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나는 그랬냐며 맞장구칠 수 없었다. 내게 엄히 따져 묻고선, 한편 나를 글방에 보내 주려던 어머니가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자경아.”
“응.”
“하고 싶은 거 있으면 참지 말고 살어.”
아버지처럼 후회하지 말고.
형에게 치여 글방 근처에도 못 간 아버지는 너도 배우고 싶냐는 할아버지의 물음에 아니라고 대답한 것, 그것이 일생을 통틀어 후회스럽다고 했다.
가난한 살림에 눈치가 보여 아니라고 답하였지만 항상 생선 내장을 바르는 일을 마치자마자 큰아버지 글방 근처로 뛰어가 서성거렸다고 했다. 장터에 가서 서책을 끼고 다니는 아이들을 부러워하던 내가 그 시절의 자신 같았다며. 단지에 모아둔 스무 냥으로 일단 글방을 다니고, 겨울은 지주의 땅에 가서 일해야 하니 참으라고 했다.
“아부지.”
“오냐.”
“내가 퇴치사가 되면 어떠해?”
“퇴치사?”
“응.”
내 머리 밑에 팔을 놓이고 있던 아버지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어떻기는.”
“좋아?”
“아무렴 좋다마다.”
“난 우리 마을 같은 마을이면 이백 냥은 안 받을 거고. 한데 부잣집이라면 이백 냥보다 더 받고. 그래서 아부지 고래 등 같은 기와집 지어주려고.”
나는 잠이 들기 전까지 수다스러웠다. 하인은 몇을 둘 거고, 고기반찬은 하루에 한 번 해 먹을 것이며, 어머니 제사상은 죄 눈꼴 시릴 정도로 차려줄 것이고, 마을에서 아버지를 성심껏 도와준 홍임이네는 배를 새로 해 주겠다고 줄줄이 장담했다. 반 농담, 반 심심풀이로 한 것이었으나 가면 갈수록 간절한 진심이 녹아들었다.
마침내 아버지가 잠에 빠진 새벽이 가까워 올 즈음, 나는 눈을 말똥하게 뜨고 여태껏 한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신이 술인지 메주인지도 모르는 내가 용을 써 봐도 퇴치사는 될 수 없을 것이고, 하물며 나를 가르칠 퇴치사도 없단 말을 어제저녁에 들은 참이었다.
하면 손가락만 쪽쪽 빨쏘냐. 나는 모처럼 음전하게 머리를 빗고 약방으로 향하였다. 약방 영감은 산으로 들로 약초를 캐기 위해 쏘다니느라 벌써 낫을 들고 나가버린 모양이었다. 바지런한 어부나 모심는 농부만 바쁜 이 새벽. 나는 약방 영감 집 대문을 마구 두들겼다.
“이보시오!”
아주 나올 때까지 두들기거나 앉아서 곡을 불러야 하나 그러고 있었는데, 의외로 잠기운 없는 퇴치사가 몸소 나를 맞이하였다. 열린 문틈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민 그는 나를 보자마자 사내가 부끄러운 것도 없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내가 백 냥을 받으러 온 것인 줄 아는지 몹시 반가워하는 기색이었다.
“마음을 정했구나.”
“아니요.”
하나 내 대답이 실망스러운 것인지 곧바로 인상을 썼다. 안 그래도 산적을 맨손으로 때려잡을 것 같이 생긴 사내가 그러하니 마음이 덜커덕하였지마는, 그리해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내 용건을 똑바로 전했다.
“나를 제자로 받아주시오.”
“무어?”
퇴치사는 적잖이 당황했는지 혀를 느리게 꼬았다. 어차피 순탄치 않을 것을 알고, 이 자는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싹수없는 사내이지만, 내가 가랑이 붙잡듯 매달릴 동아줄이 달리 없었다.
무녀청을 가려면 한 달을 꼬박 걸어서 거지꼴이 되어 당도할 터였고 더군다나 이천 냥은 내게 터무니없는 값이었다. 무녀청까지 가는 여비며 이것저것을 생각했을 때, 내게 떨어질 동아줄은 하나였다. 다른 퇴치사를 찾을 재간도 없었다. 오로지 눈앞에 이 자뿐이었다.
“부탁드립니다.”
“이보시오, 저보시오, 할 때는 언제고?”
문간에 기대 나를 내려다보는 눈빛이 나쁘지 않았다. 사실 나는 험악한 것을 예상한 터였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며 나를 내쫓거나 마을 사람을 불러다가 망신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한데 퇴치사는 그것도 하지 않았다. 곤한 듯 하품만 쩍쩍했다.
“말했듯이 너를 제자로 받을 생각이 없다. 신을 팔 생각이 없음 이만 돌아가 잠이나 자거라.”
“스승님이라 부르오리까?”
“허, 이 되바라진 것 좀 보게.”
“스승님. 마을에서 저를 뭐라 부르는지 아시는지요.”
“글쎄다. 어부의 딸이던가.”
“묵묵히 밭 갈던 황소도 뒤돌아 침 뱉고 도망갈 년이라고 했습니다.”
한 번은 밤새 짠 소쿠리를 열 개나 가져간 아낙이 소쿠리를 써보니 영 마땅치 않다면서 반값으로 퉁 치려고 한 적이 있었다. 마을이 시끄러워질까 봐 잠자코 그 값을 받아온 어머니는 넘어가자는 입장이었지만, 나는 열불이 터져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걸 짜내려면 고개를 빳빳이 숙이고 며칠을 고생해야 하는데. 낳은 애가 많다는 이유로, 가난하여 세수를 낼 것이 없다는 이유로, 알음알음 이 마을에서 값을 후려치며 다니기로 이름난 아낙이었다.
그 길로 나는 그 아낙의 마당에 드러누워 나머지 반값을 내라고 떼를 썼다. 당연히 아낙은 코웃음 치며 어디 백날을 누워 있어 보라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을 고대로 지켜서 그 집 부엌이나 안방을 내 집처럼 쓰고 살았다.
낯 한 번 안 변하고 그 집 아이들과 같은 밥상머리에 앉은 게 열두 번. 그러거나 말거나 제 자식만 끼고돌던 아낙도 마당에 드러누워 마른 멸치를 씹어 먹는 나를 보고 질리는 얼굴을 했다. 결국 내가 그 집 아이의 젖까지 뺏을 마음을 먹은 걸 알고 나서는 가지고 가라면서 나머지 반값을 손에 쥐여주었다.
그 뒤로 얻은 별칭이었다. 대개 어른들이 제값을 내놓으라며 으름장 놓는 나를 두고 뒤에서 쑥덕거리는 말이었지만, 반푼이처럼 안 떼여 먹는 게 나한테는 체면보다 중한 일이었다.
“어쩌다가 그런 별칭이 붙었는지는 스승님이 끝까지 모르셨으면 합니다.”
“내 말을 아침밥하고 같이 삼켰느냐? 퇴치사는 계…….”
“다들 그런다고 왜 스승님도 그러해야 합니까?”
“뭐?”
“남들이 죄다 어디서 그런 제자를 얻었냐고 물어올 만큼 걸출한 퇴치사가 될 자신이 있습니다. 스승님 매일 고기반찬 드실 수 있게 두둑이 벌어올 자신도 있고 말구요.”
“네가 무엇으로. 아니, 아니, 아니다.”
퇴치사는, 아니, 스승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내쫓으려 하였다.
“계속 듣다 보니까 내가 휘말린다. 가라. 그것이 용건이면 내일까지는 근처도 오지 말 거라.”
“스승님.”
“가래도.”
“받아주셔야 하는 연유. 하나 더 있습니다.”
박정하게 돌아서던 스승은 어디 무슨 말을 하는지 보자 하는 낯으로 문고리를 놓았다. 아침부터 어디서 닭이 우는지 마는지 하는 것처럼 관심 없는 얼굴이었다.
“용서해드릴 생각입니다.”
보자보자 했던 스승의 얼굴이 기가 찬다는 것으로 변해갔다.
“대관절 무엇을.”
“제가 이번 겨울에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돼지보다 더 윤기 나는 지주의 땅에서 일해야 함을 아시면서도 이백 냥을, 그보다 더한 오백 냥을 요구하셨지요.”
“한데?”
“스승님은 가족 잃은 사람의 무엇이든 하겠다는, 그 절박한 마음을 이용하신 것입니다. 이 마을 사람들이 지주가 앉은 땅은 지나갈 때도 빙 돌아서 가는 것을 아신다면 절대 그리 말하지 못하셨을 것이고요.”
“하여.”
“저는 스승님처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궁핍한 자보다 돼지 같이 살찐 자들의 곳간을 먼지 하나 안 나올 때까지 털 것이고, 그리하여 민중의 피고름 짜인 엽전을 탐한 스승님 대신 속죄하고, 제 어머니의 원수를 버려둔 퇴치사를 스승으로 받든 저 자신에게 속죄할 터니까요.”
스승은 나를 말하는 잉꼬 보듯 보다가, 어제의 나처럼 뻐끔뻐끔 입술만 오므렸다. 이립은 먹은 것처럼 보이는 풍채 좋은 사내가 아침부터 그러고 있으니 볼만은 하였다. 스승은 골 아픈 듯 머리를 짚고서 물었다.
“네 이름이, 이름이 무어라고.”
“자경입니다.”
“자경아. 잘 들어라.”
“예.”
어질어질 중심을 잡지 못했던 스승은 이내 허리를 곧게 펴고 나를 응시했다.
“퇴치사가 누구네 집 개 이름인 줄 아느냐? 너 민중의 피고름이라 하였지. 한데 퇴치사란 사람도 누구 못지않게 피고름 짜이는 업 중의 하나다. 내가 이백 냥을 받은 것에 너는 퍽 불만이 많은 모양인데. 그건 내 목숨값이다. 내 목숨값에 이백 냥이 과하다는 말이냐?”
털끝도 다치지 않았으면서, 싸우기는커녕 유유자적 바다 경치를 즐겼으면서, 나는 어떤 목숨값을 운운하는지 모르겠다. 하면 풍랑이 치는 바다에서 잡은 생선은 어부의 목숨값을 더해 세 배로 팔아도 될는지. 아마 장터에서는 재수 없다며 버릴 것이고, 아버지는 광증에 좋은 약을 지어다 줄 것이었다. 하나 나는 옳은 말을 꾹 참고 스승을 달래었다.
“그런 사정이 있는지 몰랐는데요.”
“아니… 다른 것보다 그 말투가. 그게 어디서 배운 말투더냐?”
격조 높은 말씨에 대해 생무지인 터라, 그나마 아는 부잣집 점순이네 종을 따라 했다. 고명딸로 자란 점순이 말투는 나랑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내가 들은 것 중에 가장 공손한 말투를 따라 한 것인데, 스승은 별 해괴한 걸 다 들었다는 얼굴이었다.
“되었고. 네가 하루아침에 사내라도 되지 않는 이상 너한테는 관심 없으니 이만 가거라. 골이 아파서 더는 못 듣겠다.”
쿵. 또 눈앞에서 문이 닫혔다. 스승은 문 앞에서 버티고 앉아 있어도 소용없다고 하고, 약초를 캐고 돌아온 약방 영감은 어르신 심기를 거스르지 말고 썩 돌아가라 혼을 내었다. 정 없는 스승은 떠나는 내 등에 대고 아직 백 냥은 유효하니 이 밤 동안 진지하게, 참말 둘도 없이 진지하게 고심해 보라고 소리 질러댔다.
그리 탐이 나면 나를 받으면 될 일이지. 구태여 나한테서 뽑아내 보관하다가, 적당한 상대를 찾아 넣어주는 수고까지 할 일이 무어란 말인가. 시집은 어쩔 수 없으나 벌어 먹고살 수만 있다면 그까짓 게 대수인가. 대가 끊기는 일은 걱정 없었다. 나중에 제자를 들여 내 제사상을 차리게 하면 될 일이 아닌가. 하여 이 말을 스승에게 전했더니 나를 미치광이 대하듯 쫓아냈다.
내가 진종일 약방에 달라붙어 산다는 소문이 퍼지고 퍼져 아버지의 귀에 들어갈 때 즈음, 내 말이 씨알도 안 먹히는 스승에게 뿔이 난 내가 귀가하였다. 어째 남녀가 붙어 있으면 정분에 관한 소문만 나는지, 나는 이제 막 열다섯이고 저쪽은 서른이 넘는 남자인데 염문이 일고 말았다. 생선을 요수가 쓸어 먹었는지 너덧 마리만 겨우 손에 쥔 아버지가 하얗게 질려 나를 기다리고 있음은 일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었다.
“아야.”
“아부지.”
“너 시집가고 잡아서 그러냐?”
잡은 생선을 고르게 펴두는 일보다 나는 우선 아버지에게 사정을 설명하였다. 스승이 내게 퇴치사의 싹이 보였다고 했다는 둥, 가능한 두루뭉술하게 돌려서 말하였다. 일생 내가 퇴치사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그러하냐면서 얼굴을 풀고, 먼젓번 요수를 잡는 것을 보니 별것 아닌데도 이백 냥을 받아 가는 업이라며, 멋모르는 오해를 내게 전했다.
“한데 퇴치사 어른은 내일이면 떠난다 하더만…….”
“그것이.”
그것은 나도 생각지 못한 변수였다. 저 뻔질대는 퇴치사를, 아니, 스승을 어떻게든 붙잡아야 할 터인데. 여인에게는 흥미 없다고 하니 나로서도 답답할 노릇이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사내여야만 한대. 내가 싹은 보이는데 꼬옥 사내여야 한다고.”
“아야…….”
아버지는 그제야 어림도 없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는지 한숨을 폭 내쉬었다. 고추 없이 태어난 죄를 어찌 갚아야 할까. 우리 부녀의 한숨이 담장을 넘어가는데, 아버지는 자조 섞인 혼잣말을 했다.
“우리 자경이 머리 올려 묶고 쌀가루 뭉쳐서 아랫도리에 채울 수도 없고…….”
“그렇지.”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지.”
쌀을 씹다가 혀를 팍 깨문 것처럼 정신이 들었다. 머리 올려 묶고 쌀가루 뭉쳐서 아랫도리에 채우고. 그 앙버티는 스승은 사내가 아니면 되었다고, 하루아침에 사내로 탈바꿈될 것이 아니면 오지 말라 하였다. 내일 동이 트자마자 떠나니 그 길에 팔 것이 아니면 오지 말라는, 그 씁쓰레한 말이 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얌치 빠지는 가정이지만, 또 그 가정이 아니라면 나는 이 어촌에서 헤어날 길이 없어 보였다.
“아부지.”
“오냐.”
“나 몇 달만 퇴치사 어른 좀 따라갔다가 올게.”
“아니 그게 무슨…….”
“그리고 아부지 옷 한 벌만 빌려줘.”
아버지는 설마 설마 하며 나를 보다가 내가 생선 배를 가르는 칼을 집어 들자 사달이 났다는 얼굴을 했다. 간혹 퇴치사를 자처하는 사람 중에 두발이 어깨에 닿도록 자르는 이가 있었다. 여인은 머리칼에 손을 대는 게 금기시되었다. 그 간극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나는 비린내 나는 칼로 내 머리카락을 무 썰 듯이 썰었다. 아버지는 행여나 들킬까 내 등을 떠밀었으나, 나는 좁디좁은 방에 머리칼을 둘 수 없어 부엌으로 나왔다.
“아이고, 자경아…….”
아버지의 앓는 목소리가 부엌을 떠다녔다. 아버지는 그건 사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풍우가 몰아치는 내 앞날에 가릴 게 있을 성싶었다. 꼭 사내로 태어나야 사내가 되는 것인가. 사내처럼 하면 다들 사내라고 볼 터인데. 막다른 길에 막힌 나는 이판사판이었다. 며칠의 말미만 있었어도 스승을 어르고 달랬을 테지만, 당장 내일 결판난다고 하니 별수가 없는 것이었다.
하여 못나게 댕강 잘린 나의 머리칼을 보고 아버지는 조바심 냈으나, 나는 물에 비친 모습이 그런대로 흡족하였다. 마치 글방 다닌다고 까부는 사내애들과 동류로 보였다. 여기에 아버지 말대로 쌀가루라도 뭉쳐서 아랫도리를 채우고 다닐까 고심하였는데, 참다못한 아버지가 눈물을 보여 그만두었다.
“네가 이제 곧 시집을 갈 나이인데… 이 꼴을, 이걸 어쩌냐는 말이야.”
“어쩌긴 뭘 어째. 내가 이 모양이 됐는데 저가 퇴치사 안 시켜주고 배겨?”
양순한 성품인 아버지는 밭뙈기라도 있는 집 아들들은 다 물 건너갔으니 차라리 몇 달 동안 퇴치사를 쫓아다니면서 머리칼이라도 기르라는 심보셨다. 나를 건실한 사내에게 시집보내야 한다는, 그 낡은 고견 또한 우직한 모양이었다. 하나 만약 스승이 나를 제자로 받아들인다면 그는 내가 혼인의 ‘혼’자만 꺼내도 옳다구나 쫓아낼 위인이었다.
“돌아오는 건 돌아오는 게지? 정말 몇 달인 게지?”
벼락처럼 벌어진 일 앞에 아버지는 갈팡질팡했다. 아내를 잃고 하고픈 거 다 하라고 말했지만 갈수록 아니올시다라는 얼굴이었다.
하나 그물은 던져졌다. 나는 봇짐에 새참으로 얻어온 육포와 새 짚신을 챙겨 넣고 동틀 때를 기다렸다. 간밤에 콩 볶아먹듯 결정한 일임에도 들뜨는 것이, 이것이야말로 온당한 내 삶인가 싶었다. 스승 문제도 그렇다. 아무리 내가 싫어도 오리 마냥 쫓아다니면 별수 있으랴. 어머니 잡아먹은 요수를 내버려 둔 값을 이리 치르는 것이지. 십 년 뒤에 그 요수 놈이 바다 위로 기어오르면 꼭 내 손으로 저밀 작정이었다.
아버지는 밤새 뒤척거리다가 내 봇짐에 그간 꿍쳐왔던 종잣돈을 말없이 넣어 두셨다. 아버지는 어미를 잃어 딱한 딸인 데다가, 길어야 석 달인 충동이라고 치부한 눈이었다. 하고픈 거 하라고 했음에도 사내만 퇴치사가 될 수 있다는 말에 그것은 단념한 듯 보였고, 내 고집이 풀릴 때까지는 지켜볼 작정인 것 같았다.
“거 도착하면 아부지한테 생선 그림 하나 그려 보내줘. 알았지?”
아버지는 새벽 배를 타러 나가기 전에 한마디를 해 두었다. 가다가 며칠 만에 돌아와도 암 소리 안 할 테니까 창피해 말라는, 마치 그리될 것을 장담한다는 투로 그랬다. 갈까 말까. 손바닥 뒤집듯 뒤집히던 마음이 그쯤 잡혔다. 가야겠다. 가야만 하겠다, 로.
배울 만큼 배운 다음에 돌아올 것이다. 가서 글도 배우고 퇴치도 배우고. 사내로 누릴 건 다 누리면서. 정 스승이 받아주지 않으면 글이라도 익히고 내려오리라. 것도 아니면 겨울이 되기 전에 이백 냥이라도 벌어와 마을을 도우리라. 그리 굳게 다짐했다.
동이 트자마자 나는 봇짐을 어깨에 이고 마당을 나섰다. 바람 부는 마당이 꼭 어머니가 배웅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정성을 다해 절한 연후에 집을 떠나왔다.
하나 떳떳한 마음은 마음이었고, 혹여 아는 얼굴을 마주칠까 고개를 수그리고 걸었다. 나는 이곳을 떠나지만 아버지는 남아서 살아야 하는 입장이니까. 괜한 소리로 아버지의 속을 시끄럽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를 조롱할 시커먼 눈초리가 유쾌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나 내가 과도하게 신경 쓴 탓일까. 오다가다 마주치는 마을 사람들은 내게 별반 관심 두지 않았다. 어엿한 사내로 보기만 하는지, 누구네 아들내미인데 고개를 떨구고 다니냐는 말만 들었을 뿐이었다. 용기를 얻은 나는 약방으로 향하는 걸음을 빨리했다. 영감은 벌써 산으로 떠났을 시각에, 때마침 개나리처럼 노오란 비단옷을 걸친 스승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봇짐을 내려놓고 스승의 앞으로 걸어갔다.
“기침하셨습니까.”
“누구…….”
대강 내 꼴만 훑던 스승의 눈이 내 얼굴에서 멈추었다. 순간 스승은 사레가 들렸는지 기침을 멈추지 못하였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내가 본 모습 중에 가장 흐트러진 것이었다. 항상 오만하기 짝이 없는 눈으로 나를 누르던 스승의 얼굴이 귀신을 본 양 아주 우스꽝스러웠다.
“자갱인지 자경인지. 네가…….”
“하루아침에 사내가 되었으니. 이게 바로 스승님이 원하신 바 아니었는지요.”
“말장난을 하자는 거냐? 내가 원하는 것은 제대로 된 사내 구실을 하는, 그런 진실된 사내를 말한 것이다!”
“하면 어쩔까요. 지나가던 여인이라도 꾀어내면 됩니까?”
“아주 제대로 돌았구나!”
스승은 누가 이 촌극을 볼까 전전긍긍하다가 주변에 개미 한 마리 없는 때를 노려 도망쳤다. 나는 바닥에 둔 봇짐을 재빨리 들어 안고 그 뒤를 쫓았다. 제아무리 사내이고 힘이 장사라 하더라도 이 마을 뒷동산이나 골목을 손바닥 위에 둔 나보다는 느릴 터였다.
“쫓지 마라. 원 이상한 거한테 잘못 걸려…….”
“편히 자경이라 불러주십쇼.”
스승은 질린 기색으로 마을의 뒷산을 탔다. 건넛마을로 가려면 마땅히 그리해야겠으나, 이곳은 산세가 험한 돌산이라 꽤 위험했다. 까딱하다가는 저승에 꼬꾸라지기 십상이니. 다만 나는 산삼이라도 발견할까 자주 드나든 덕에 지리는 훤하였다. 스승은 무리 없이 따라오는 나를 보고 헛웃음을 쳤고, 나는 묵묵히 스승의 뒤꽁무니를 따랐다.
영영 바닷바람 맡으며 살아갈 줄 알던 나는 새로운 물살을 타게 되었다. 스승은 따로 주막에 묵어 나를 떼어놓으려고 술도 먹여 보고, 만물이 잠자는 늦저녁에 몰래 도망도 쳐보았으나, 내게 주어진 운명인지 스승에게 떨어진 불운인지, 그때마다 귀신같이 닭이 울고 말이 발소리를 내어 나는 잠이 깨었다. 하면 옆자리가 빈 것을 알아채자마자 뒤를 쫓아 달렸고, 잡힌 스승은 거머리가 따로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 일이 한 일곱 번 반복됐을 때였다. 독해지고자 마음먹은 나도 스승도 눈 밑이 거뭇해질 무렵, 지금까지 고만고만한 시골만 보던 내 앞에 휘황찬란한 땅이 펼쳐져 있었다. 몸이 옆으로 퍼진 강 건너 지주가 아는 이들 중에 제일 부자였는데, 이곳은 진주를 신발 끝에 매단 시동을 여럿 끌고 다니며, 노비가 든 백색 가마에 다소곳이 앉은 도령도 있었다.
그 도령의 머리띠는 백 리 밖에서도 보일 만큼 영롱한 자줏빛이었는데, 하물며 주먹만 한 비취까지 가운데 박아둔 것이었다. 보는 내가 그 호사스러움에 겁이 날 지경인데 방정맞은 건 나뿐이었다.
스승은 내게 그간 정이라도 든 모양인지, 이곳은 수도인 송덕 근방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하도 촌에서 갓 상경한 얼뜨기처럼 보였나 보다. 주위 몇몇이 내 차림새를 보고 시시덕거리자, 스승은 창피하다며 포목전을 데려가 무상으로 옷을 해 입혔다.
그전까지 코흘리개 시골 사내애 같았는데. 포목전에서 제대로 갖춰 입자 나는 어엿한 스승의 시동 같았다. 짧아서 끝이 삐쭉삐쭉한 머리칼은 스승이 보다 못하여 정리를 도와주었고, 봇짐에서 새 짚신까지 꺼내 신으니 어디 가서 여인이라고 하면 뺨 맞을 꼴이 되었다.
스승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나를 지나쳐 또 제 갈 길을 갔다. 하나 내가 따라갈 수 있는 느린 걸음이었고, 성가시다며 화내는 횟수도 확연히 줄었다.
나는 동행하는 동안 스승이 총각이라는 것과 유명세 있는 퇴치사란 걸 알았다. 어떻게 알았느냐 하면 시골길에서는 눈만 마주쳐도 알아서 피하기 일쑤였는데, 송덕 근방으로 오자마자 스승에게 꾸벅 인사하는 치들이 제법 있는 것이었다.
스승은 내게 밥도 꼬박꼬박 사주었고, 송덕에 와서는 증명할 신분이 없는 나를 위하여 자신의 이름을 팔아 들어가게 해 주었고, 어찔한 별천지에서 길을 잃으려고 치면 팔을 붙잡아주기까지 해 주었다. 차츰차츰 뻣뻣하던 스승의 변화가 익숙해질 무렵, 스승은 송덕 중심가에서 떨어진 뒷산으로 올라가며 말했다.
“오백 냥에 관한 것은 네가 적잖이 오해한 바가 있다. 당장 그 요수를 바다에서 꺼내려면 그 정도이고, 십 년 뒤에 그 요수가 깨어날 때 즈음 내려가 처치할 생각이었다.”
나를 돌려보내고자 꾸며낸 말인가 하였는데. 스승의 눈은 보았던 것 중에 가장 진지하였다.
“네 어미의 복수는 속 시원할 만치 내가 해 주겠다. 보다가 박장대소를 해도 모자랄 만큼 해 주마. 꼭 여인인 네 손으로, 지아비의 손을 잡아보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모르는 그 손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그간 내게 닿지도 않았던 스승의 손이 내 어깨에 얹혔다.
“무녀청에 가고 싶으면 내 소개장을 써주마. 꼴은 이래도 여인이라고. 내 이천 냥을 내서 너를 무녀로 만들 수는 없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변변치 않은 아랫것들과 다르게 너를 대우해달라고 청을 넣을 것이다. 이것도 싫으냐.”
무작정 밀어내던 태도를 벗어던지고 내게 건넨 물음은 다디단 것이었다. 그즈음 나는 퉁퉁 부은 다리가 말이 아니었고, 수도는 눈은 즐거우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서둘러 떠나오느라 어머니 제사상에 술 한 잔 못 올린 것도 내내 걸렸다.
하나 싫었다. 무능하게 누군가 요수를 해치워주길, 그리하며 기다릴 십 년의 세월이 진절머리 났다. 굴곡 없는 삶에 안주하며 나를 외면하는 것도 싫었다. 무녀청은 솔깃했지만 무녀가 아니라면 싫었다. 철없다고 닦달할지 모르겠다. 애초에 지아비를 가지고 싶지도 않았다. 사내처럼 나아가 쟁취하고 싶었다. 코앞에 두고서 주저앉을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원래는 무시하려 하였다. 한데 그 꼴로 나를 여기까지 따라온 것이 기특하여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는 것이다.”
“무슨 기회를 말씀입니까.”
“마지막으로. 여인으로 살 기회 말이다.”
스승은 선심 쓰듯, 내가 숨긴 한 치의 거짓을 솎아 낼 듯 나를 보았다. 하나 나는 진심으로 답할 수 있었다. 여염의 여인보다 방랑하는 퇴치사가 되고 싶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여인으로 살 수 없어도 후회치 않겠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래.”
스승은 더 말하지 않았다. 마저 산을 오르며 내게 발밑을 조심하라고 일러뒀을 뿐이다. 산세는 그리 험하지 않았다. 다만 갈수록 부적 같은 것이 눈에 띄는 통에, 휘어진 나무마다 음산한 분위기가 널뛰었다. 내가 으스스해 몸을 떨자 스승은 차분히 말했다.
“첫 번째 배움이다.”
“예?”
“멍청한 요수는 봉인을 망설일 필요가 없으나, 어느 정도 잔뼈가 굵은 요수를 처단할 때는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소문이나 말로만 퇴치를 들었지. 막상 요수가 어쩌니저쩌니 듣자 실감이 났다. 두려움보다는 기쁨이 일었다. 마을 사람들이 동경하던 퇴치사. 그 퇴치사가 되어 요수를 처단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면요? 어떻게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데요?”
“복수하지 않게 하는 것.”
“복수요.”
“신기한 것은 말이다. 사람 내장 갉아 먹고 피를 해골에 받아다가 들이켜는 놈들인데도.”
스승은 제 앞에 놓인 삐뚤어진 부적을 바로 하고 나를 돌아보았다.
“같잖은 희로애락이 있다는 거지.”
희로애락. 간사한 악귀처럼 사람을 못살게 구는 놈들인데도. 스승은 요수들도 혼인을 하고 새끼를 치고, 이따금 살려달라며 비는 요수도 있다고 하였다. 나는 요수가 말할 줄 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며, 사람 형상을 띈 수준 높은 요수에 관해서는 까무러칠 뻔하였다.
“하여 저들도 제 암컷을 죽이거나 새끼를 죽이거나 하면 수십 년에 걸쳐 반드시 보복을 해온다. 사람보다 더 오래 살기에 우리네 같은 퇴치사는 한 번 원한을 사면 일생을 신경을 쓰며 살아야 하는데. 그게 어찌나 피곤한 일인지.”
“그럼… 요수의 사정도 다 봐주면서 처치해야 한다는 소리십니까?”
“그래서 내가 말했지 않느냐. 퇴치사가 누구네 개 이름인 줄 아느냐고. 무녀들이야 애초에 고귀한 귀족들만 상대하니 골 아픈 일에 걸릴 일이 별로 없는 데다가 무녀청은 원체 신성한 곳이라 요수들은 근처에만 가도 구역질을 한다더군. 무녀들이야 일이 잘못돼도 무녀청 안에 틀어박혀 살면 된다지만, 이제 퇴치사가 된 너는 네 몸뚱어리 네가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
실은 마지막 말이 하고픈 말일 터였다. 나는 그 말을 대대로 새겨듣겠다고 다짐했다. 내 목이 간당간당해도 스승이 도와줄지는 미지수고, 아버지한테 때가 될 때마다 들르려면 내 몸은 흠 없이 멀끔해야 했다. 하여 걸출한 퇴치사로 거듭나 내 몸을 보란 듯이 지키고 싶었으나, 스승과 내 앞에 떨어진 과제는 다른 것이었다.
나는 글을 몰랐다. 한데 퇴치사는 읽어야 할 서책이 수백이란다. 스승은 예상한 바였다는 듯이 내게 글 선생 하나를 붙여주었다. 스승의 거처라고 하긴 뭣한, 오래된 절간 같은 곳을 퇴치소라 칭하고, 나는 그곳에 머물며 글 선생과 둘이 지냈다. 많은 이들이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의뢰를 위해 찾아왔다. 개중에는 나처럼 제자로 받아달라며 오는 이도 더러 있었다.
하면 스승은 나를 가리켜 이미 제자가 있다고 말한 뒤 홀연히 사라지고는,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의뢰가 있냐며 글 선생에게 묻고는 하였다. 알고 보니 내게 글을 가르치는 노인은 글 선생이 아니라 퇴치사로, 지금은 감을 잃었지만 스승의 밑에서 의뢰받는 일 정도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사계가 흘렀다. 열여섯이 막 되었을 무렵, 도통 나를 가르칠 생각이 없어 뵈는 스승 덕분에 이대로 절간에서 글이나 익히다가 죽겠거니 하던 차였다. 갑자기 일어나 먼지를 훔치던 내게 잠시 고향을 다녀오라 하였다. 올해부터 다사다난하게 될 테니 아버지께 인사나 하고 오라는 것이었다.
하여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가 아버지를 만났다. 일 년 만의 재회였다. 견문을 쌓기 바빠 서신 한 통 보내질 못했다. 내가 팔려나간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는 실성하기 직전이었고, 나는 감회에 젖어 같이 울다가, 가장 궁금해하던, 겨우내 지주에게 가서 일하기로 한 것은 어찌 됐냐고 물었다.
“약방 어른이 겨울 되기 전에 다 갚아주셨지.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한시름을 놓았어.”
그날 나는 수백 살 먹은 나무 밑에 차려진 사당에 제를 올리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송덕으로 돌아갔다. 한데 내내 의문이 들었다. 약방 영감은 인심이 후하기는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도 내에서지, 빌린 엽전을 대신 갚아줄 만큼 인자한 노인네는 아니었다. 해가 서쪽에서 떴나. 내일모레 죽을병에 걸렸나. 그리해도 어쨌거나. 가부간에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고향 냄새가 빠지기도 전 부랴부랴 퇴치소로 돌아왔다. 한데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스승은 내 또래 사내애를 제자로 받아들인 후였다. 나와 동무로 지내라며 인사시킨 그 사내애의 이름은 경운이었다. 삐쩍 말랐고 구김살이 없는 애였다.
하여 경운이와 나까지 제자는 둘이었고 앞서 출가한 제자는 셋이었다. 그들은 간간이 주전부리를 싸 들고 들러 스승에게 생사를 알려왔고 나와 경운이를 형제처럼 친근히 대해 주었다.
경운이는 토끼 신이 깃든 아이였다. 소리를 사냥개처럼 들으며 매처럼 앞을 본다. 경운이는 홀로 그 힘을 수련하면서 나와 봉인술도 배웠다. 봉인술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고 하였는데, 스승님의 경우는 족자에 가두는 것이었고, 경운이의 경우는 약초와 부적을 따로 챙기고 다녀야 했다.
글을 떼고 나서야 봉인술을 배우기 시작한 나는 경운이보다 한참 뒤처졌다. 거북이처럼 느린 내가 자랑할 거리라고는 내 봉인술을 스승이 흡족해한다는 것이었다. 퇴치사든 무녀든 봉인만 잘하면 그만이라며, 내가 가진 봉인술은 더할 나위 없이 으뜸이라고 했다. 하여 촌구석에 눌러앉아 흥정할 만큼 탐이 났다며.
나는 불새의 신이 깃들어 있었다. 신을 느끼라는 스승의 말이 긴가민가하였는데 체력을 단련하자 얼핏 알 것도 같았다. 보송보송한 연노란 털을 가졌고 눈매는 날카로우나 기운은 따듯하였다.
스승은 신께서 제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몸을 열어야 한다고 했다. 반 정도만 열려도 자유로워진 신이 휘젓고 다니는데, 전부 열린다면 상당히 버거울 것이었다. 하나 스승은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신과 한 몸이 되는 일이었다. 거북하다고 수련을 게을리할 수 없었다.
나는 아둔하고 어리숙한 제자였다. 그 감각을 깨우치는 데만 무려 두 해를 넘겼다. 금세 익힌 경운이는 어느덧 의뢰를 받기까지 하였는데 나는 여태 수련만 하는 신세였다. 스승은 꾸중보다 위로로 나를 달래었다. 기세 꺾어지도록 성낼 줄 알았더니, 원체 큰 신은 시일이 걸린다고 말해 주는 게 아닌가.
이게 된 건지 안 된 건지 아리송한 어느 날. 머리 위를 노닐던 신께서 가슴으로 옮겨오심을 느낀 그 날. 스승은 송아지를 닮은 요수를 잡아다가 내 앞에 두었다. 나는 요수를 대할 방도가 까마득한지라 멀뚱히 스승만 보았다. 스승은 눈을 번뜩이며 일언반구 없이 서 있었다.
내 다리 밑에서 뻗대는 갈색 요수가 난감했다. 스승처럼 붓이라도 저을까 싶어 자리에서 일어난 찰나였다. 훗훗한 기운이 차오르더니 내 목구멍에서 말을 튕겨냈다.
[그건 아직 새끼로구나. 놓아주어.]내 의지를 배반한 목소리에 놀랐으나 스승은 나보다 더한 기색이었다. 째진 눈으로 유심히 나를 관찰한 스승이 요수를 풀어주었다. 당황은 잠시였다. 기다린 듯 열린 입술이 고운 가락을 보냈다.
[저 요수의 어미가 새끼를 찾는 듯하니. 내 어디에 있는지 길만 일러주는 것이다.]평소 마음잡고 노래를 가창한 적은 없었다. 격조 없는 콧노래만 흥얼거릴 줄 알았지. 한데 멋대로 꼬부라진 혀는 애통한 가사를 뱉었다. 어미가 자식을 낡은 툇마루 위에 재우고 밭일하러 떠나는 심정. 곤히 자는 자식의 얼굴까지 떠올라 당황스러웠다. 여름 소낙비같이 울 수밖에. 스승은 멍하니 앉아 나를 구경했다.
구슬픈 노랫가락은 새끼를 찾기 위해 방방곡곡 헤매는 어미의 발을 연상시켰다. 살가죽 벗겨진 여린 발을. 나는 노래가 끝난 것도 몰랐다. 꺼이꺼이 울기 바빴다. 스승은 울상인 나를 쓰다듬었다.
“그래. 네 말대로 아주 걸출한 퇴치사가 되겠구나.”
“이게 요수를 퇴치할 수 있습니까? 오히려…….”
“네게 깃든 신께서는 마음씨가 아주 고우신 분인 게다. 신이라 하여도 형상이 모두 다르고 성격이 급하신 분, 사나우신 분, 마음이 여리신 분, 네 생각보다 다양하다.”
가창이 트인 날부터 나는 시시때때로 나타나려는 신과 자주 다투었다. 스승은 필히 이겨야 하는 싸움이라 하였다. 문제는 나나 신이나 고집이 도긴개긴이었다. 일 년을 헛되이 보냈다. 열받은 신은 사정사정해야 얼굴을 보이고, 때로는 썩은 채로 살라며 으름장을 놓아야지 겨우 수다스러웠다.
내가 수련으로 방황하는 세월, 동무인 경운이는 항시 곁에 있어 줬다. 근 삼 년간 동고동락하며 자란 경운이는 내게 형제였다. 이따금 이 엉뚱한 녀석은 나를 제 어머니에 비유하곤 했는데.
“어머니?”
“응.”
“어째서?”
“자경아.”
“응.”
“네 어머니. 요수에게 잡아먹혔다 하셨지? 그 흉측한 일이 있고 나서 네가 신을 얻은 것이고.”
하며 수련하다 지친 내게 말을 걸었다. 한창 신과 줄다리기를 하고 난 후였다. 질문의 의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다만 경운이는 샛말갛게 웃었다.
“네 돌아가신 어머니가 신이 되신 게 아닐까.”
코를 후비며 흘려듣던 나는 멍해졌다. 별안간 코끝이 찡했다. 경운이는 내 등을 토닥거렸다.
“그러니 힘을 내. 넌 할 수 있으니.”
이후로 나는 신이 전보다 소중했다. 기든 아니든. 내게 어머니의 분신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경운이에게 미안쩍었다. 나를 영락없는 사내로 아는 터였다. 형제와 같은 경운이라면 진실을 전해도 되지 않을까. 하나 속사정을 안 스승이 질색했다. 들키면 모를까 나서서 일러주지는 말라는 것이었다.
겸연쩍게도 걱정은 필요 없었다. 경운이는 달마다 머리를 짧게 치는 나를 저잣거리 여인과 연관 짓지 못했다. 사내보다 작은 몸집. 걸걸하지 못한 목소리. 단지 경운이는 내가 여타 사내보다 느린 것인가 했다.
그러다가 밝혀진 계기는 객쩍었다. 백기를 든 신께서 내 몸에 온전히 깃드셨고, 나는 원할 때 노래를 가창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 외에도 스승은 요수를 퇴치하는 약초나 부적 쓰는 법에 대해 가르치며, 마침내 내가 의뢰를 맡을 정도라고 여긴 모양이었다.
첫 의뢰였다. 나는 곳간에 쌀가마가 가득한 부호를 바랐다. 하나 스승은 시골 장터를 어지럽힌 요수 건을 맡겼고, 만약을 대비해 경운이까지 붙여줬다. 한데 경운이는 첫 의뢰이니만큼 혼자 해결하라며 물러났다. 내가 요수에게 얕잡아 보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홀로 내려간 나는 처음으로 개의 형상을 한 요수를 잠재웠다. 허접한 요수이니 복수는 겁낼 것 없었고, 그대로 부적을 붙여 몸을 불사르자 의뢰한 마을에서 삼백 냥을 내 손에 건네주었다.
스승은 백 냥을 제한 이백 냥이 내 몫이라고 하였다. 처음 퇴치 일로 엽전을 벌었다. 첩첩산중에서 덩실덩실 춤출 만큼 기쁘다가도, 이 엽전을 벌기 위해서 허리뼈 부러져라 일한 부모님을 떠올리다가, 기분이 뒤숭숭해져서 경운이와 술잔을 나눈 게 화근이었다.
“네가, 하, 네가 여인이라고?”
“친한 널 속인다는 게 매번 찜찜하여서.”
멱살잡이해도 좋고, 침을 뱉어도 좋다고. 경운이는 농치지 말랬으나 심각한 나를 보고 혼란스러워했다. 녀석이 먼저 침묵을 깼다. 그 조잘대는 입으로 감언이설을 뱉었다. 그런 참담한 사정이 있었냐며. 마음고생 했겠다며. 참으로 다정한 대처였다. 술기운이 오르자 얼싸 안고 한바탕 울기까지 하였는데. 나는 어리석었다. 내 한 맺힌 실수였다.
그날 이후로 경운이는 묘하게 달라졌다. 나는 번듯한 퇴치사가 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의뢰를 받는 중이었다. 한데 이상하리만치 경운이와 사소한 것부터 어긋나는 것이었다. 이전이라면 넘어갔을 일을 넘어가지 않는 게 늘어갔고, 종국에는 둘만 있는 자리에서 이런 말까지 했다.
“왜 이리 욕심이 많아.”
“욕심?”
“자경아. 내가 여기서 명성을 쌓아야 스승님 밑에서 나가 퇴치소를 차릴 때 도움이 될 것 아니겠어?”
“공평하게 내가 두 개를 하고 너도 두 개를 하고. 이게 불만이란 말이야?”
“가끔 잊는 것 같지만. 너는 아무리 그래도 여인이잖아. 체력적으로 나한테 되질 못 해. 그렇게 욕심부리다가 요수한테 당하면 뒷감당은 누가 하지? 내가 셋을 할 테니 네가 오늘은 하나만 하고 와.”
이전이라면 내 것도 부탁한다며 놀렸을 녀석이었다. 점점 경운이는 내가 맡은 의뢰의 개수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경쟁이었다. 형제 같던 녀석이 불편해진 건 당연지사. 또 경운이는 나를 제 앞길 막는 요수쯤으로 여겼다.
결국 보다 못한 스승이 우리의 다툼을 중재하려고 나서자, 경운이는 그만 출가하겠다며 떠나고 말았다. 불편한 대치는 일단락이 되었다. 스승은 아직 경운에게 배움이 부족하다고 했으나, 녀석은 여인과 같이 가르침을 받을 수 없다며 떠나간 것이었다.
“저는 경운이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나는 이해가 간다.”
“어째서요?”
“네가 이룬 것이 얼마나 대단하든, 네가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이든, 일단 사람들은 여인인 걸 안 후부터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부정하려 들 게다.”
형, 아우하며 따르던 경운이 떠나갔다. 거기에 스승의 말까지 더해져, 나는 혹여나 여인인 게 들킬까 말수를 아꼈다. 어디서든 묵묵히 의뢰만 해내자 되레 강인한 인상을 준 모양이었다. 스승이 아닌 나를 찾는 자가 많아지고, 요수에게 죽을까 잠을 설치던 나는 이 땅에서 점차 옅어져 갔다. 요수는 두렵지 않았다. 그보다 시선이, 시선보다 사람이 두려워졌다.
그간 번 엽전은 계속 아버지에게 부치고 있었으나 찾아가는 것은 몇 달 만인 날이었다. 소박한 짐을 꾸려 고향으로 돌아왔을 적에, 아버지는 내가 준 엽전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고이 모셔놓았다고 했다. 내가 돌아왔을 때 같이 집을 지어서 살자며. 꿀잠 같은 말이었다. 사내 복장에 버무려진 내가 온전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사람. 터놓고 아버지뿐이었다. 아버지 앞에서만 숨통이 트였다.
열다섯에 집을 뛰쳐나간 내 나이가 약관을 넘긴 지 두 해일 때, 여인이 무어냐고 호언장담한 나는 거짓이 풍긴 비린내가 몸에 뱄다. 스승은 내 웃음과 말수가 줄었다고 했다. 누군가 나를 치켜세워도,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도, 갈증 난 입술에 떨어진 기쁨은 잠시였다. 내가 여인인 것을 알면 누구보다 야멸차게 돌아서겠지. 하여 부담은 두 배로 가슴에 얹혔다.
스승은 내가 어지간한 퇴치사 두 명 분을 한다고, 가르친 제자 중에 네가 제일 낫다며, 보통 이즈음 제자는 제 발로 나가서 퇴치소를 차렸겠지만. 나는 그저 스승의 퇴치소에 찰거머리처럼 붙어 있었고, 딱히 나가 살라는 스승의 재촉도 없었다.
여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살고 싶었는데, 이제는 허를 치고 나를 찌른 창에 꿰인 느낌이었다. 퇴치사가 되겠다고 출가한 지 칠 년을 넘어 팔 년이 가까워진 날. 불면은 일상이요, 입맛은 죽을 날 받아놓은 노인보다 없었다.
결국 나는 결정했다. 아버지가 모아놓은 엽전하고 내가 올해 모을 엽전을 합쳐 기와집을 지은 다음, 가끔씩 스승의 요수 퇴치나 도와주면서 살자고.
하여 한꺼번에 두둑이 챙길만한 의뢰를 알아보던 중이었다. 어둑한 얼굴의 스승이 돌아오더니 내게 서신을 건네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경운이가 보내온 것이다.”
한동안 기피하던 이름이었다. 그 이름은 불현듯 살아나 나를 불길에 떨어트려 놓았다. 서신을 찢고 싶었지만 스승이 준 연유가 있겠거니 했다. 펼쳐 들었다. 구구절절한 말은 없었다. 서신은 간략한 소식만 전하고 있었다.
“죽었다니요.”
나는 경운이를 쭉 미워하고 있었다. 한순간에 형, 아우 하던 녀석이 기습하는 야차처럼 돌변할 수 있는지. 네가 나한테 준 상처는 다독여지지 않는다. 그걸 아냐고 매번 잠에서 깨어나 소리쳤다. 한데도 경운이의 부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생각만큼 통쾌하지도 않았다.
“요수에게 죽은 겁니까?”
스승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것을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것이, 스승은 이미 경운의 죽음에 대해 알긴 아는 듯하였다.
“스승님.”
“네가 알면 좋아할 소식이라 말하지는 않았는데…….”
“제가 알면 좋아할 소식이요?”
“동쪽 수하라 지역 대지주의 동생께서 원인 모를 병으로 앓고 있다는군. 무녀든 퇴치사든 의원이든 상관없으니 고치기만 하면 이제껏 경험 못 할 부를 누리게 해 준다는 거야.”
내가 엽전 뜯어내길 망설일 민중도 아니고. 대지주에다가. 원인 모를 병이라. 내 구미를 잡아당기는 진수성찬이었다.
“한데요. 경운이가 거기서 죽었단 말입니까?”
“경운이뿐만이 아니다. 무슨 요수가 설치는지, 전염병이 도는지 나도 모르겠으나, 한 번 들어간 사람은 멀쩡히 나오는 법이 없다는 풍문이야.”
“경운이가 그리로 가서…….”
“자경아.”
“예.”
“가지 마라.”
나는 가려는 마음이 대들보 같았지만 스승을 안심시켜야 했다.
“아직 간다는 말도 안 했습니다.”
“갈 거면서.”
“안 갑니다.”
“갈 거면서.”
“저를 시험하십니까?”
“내 신께서 그리 말씀하고 계신다. 네가 곧 멀리 떠날 것만 같다고.”
예전에 나는 스승이 나를 어쩔 수 없이, 내 고집에 못 이겨 받아준 줄 알았다. 한데 스승은 나를 제자로 맞이한 후부터 단 한 번도 내게 못된 말을 한 적이 없고, 또 부모처럼 나를 지지해 준 사람이었다. 내가 여인임을 알면서도.
“가지 마라, 자경아.”
스승을 놈팡이라고 부른 적도 있었다. 하나 내가 떠난 그해 겨울, 아버지가 지주의 밑에서 혹독한 부림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한 그때. 아무리 따져도 빚을 대신 갚아줄 호인은 스승밖에 없었다. 지켜보니 자연스레 알았다. 스승은 표현이 서툴러 그렇지 악한 이는 아니었다. 나는 더는 스승을 원망하지 않았다. 은인이라면 은인이니까. 스승의 말을 거역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한데 그날 꿈에 경운이가 나왔다. 피 칠갑을 한 경운이는 네가 나를 쫓아냈기 때문이라고, 하여 내가 이 꼴이 됐다고 원망하다가도, 부디 옛 동무를 구해달라며 울부짖곤 하였다. 사나운 꿈자리는 며칠을 이어갔다. 신께서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셨다. 어차피 한탕 뛸 것 거기서 저지르고, 고향으로 내려가 아버지를 모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유혹에 무릎까지 빠졌다.
해괴한 소문은 무섭지 않았다. 한 번 들어가면 종적을 감춘다는, 그따위 허무맹랑한 소문 말이다. 믿는 구석도 있었다. 내 실력에 물이 올라서였다. 얼마 전 악의가 센 요수를 만났음에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요수를 만난 사람들의 호들갑에는 익숙했다. 팔 척이 넘고 이빨이 수천 개는 된다고 법석을 떨어도, 막상 왈왈대는 것은 순해 빠진 하룻강아지였다.
겁에 질린 자는 뻘밭을 늪지로 착각하곤 한다. 모르긴 몰라도 경운의 죽음은 요사스러운 소문과 거리가 멀 터였다. 사인은 따로 있을 것이다. 차라리 그런 큰 곳에 가서 해치우고 왕창 뜯어낼까. 생각에 그치지 않고 마음까지 혹했다. 실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경운이가 그곳에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나는 꼭 그곳에 들려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풀벌레가 목쉬도록 왱왱 우는 새벽. 봇짐을 싸서 살금살금 걸어 나오는데 스승이 떡갈나무 문 앞에 버티고 서있었다. 스승의 예리한 감은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나는 순순히 자백했다. 스승은 몰래 걸어 나오는 나를 보고 한숨을 내쉬고는 변명할 기회를 주었다.
“제 신께서 궁금하여 미치겠다고 합니다.”
“자경아. 그리 신을 두고 거짓말을 하면 벌을 받는다.”
“저도 경운이가 죽은 연유가 궁금하기도 하고…….”
스승은 말없이 발끝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지그시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던 스승은 이윽고 눈을 뜨고 나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너무 자만하지 말거라.”
“예.”
“이 땅에는 네가 모르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요수도 있으니.”
“예.”
“진정 알아들은 것이냐?”
“물론이지요.”
잔소리를 끝내지 않는 스승은 산 아래까지 나를 배웅해 주며 혹시 이상한 낌새가 보이거든 냅다 줄행랑을 치라고 하였다. 이상하게 내가 그곳에 가는 게 영 꺼림칙하다며. 나는 누구보다 잘 뛰어나올 수 있다고 신신당부를 하였고. 스승은 말이나 못 하면 밉지 않다고 내 등을 치고선 곧장 미련 없이 스승의 퇴치소로 올라갔다.
나는 혼자가 되어서야 한숨을 깊게 쉬었다. 이상하게 나를 자꾸 부르는 듯한 그 묘한 꿈을 스승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말하는 게 좋았을까. 나는 스승이 떠나간 자리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무거운 발을 동쪽으로 옮겼다.
무엇이 있든. 왠지 떠나는 내 걸음이 열다섯 적 출가한 그때와 똑같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