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10
9화. 통밀 식빵(2)
***
“아, 배고파. 어째 요즘 배고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네.”
눈 뜨자마자 허기를 느낀 해준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생각했다.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느냐 아니면 법원 근처 식당가에 가서 끼니를 때우느냐.
“아, 달걀!”
고민하던 해준은 문득 농장의 암탉이 떠올랐다. 작물이 빨리 자라는 만큼 가축의 생산성도 빠를 터. 어쩌면 지금쯤 알을 낳았을지도 모른다. 대충 씻고 나온 해준은 복장을 챙겨 입고, 서둘러 농장으로 향했다.
밭에는 밀과 양배추, 오이가 무르익어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다. 손수 키운 농작물을 보고 있자니 든든해졌다. 뿌듯하게 밭을 둘러본 해준은 이내 닭장으로 달려가 둥지를 살폈다.
“있다!”
고개를 까딱거리며 모이를 쪼아먹는 암탉 옆으로 달걀이 보였다. 그것도 무려 3개나.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달걀 위에 손을 얹었다. 조금 전까지 어미가 품고 있었는지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해준은 둥지에 있던 달걀 중 2개를 조심스레 꺼냈다. 알을 모조리 빼앗으면 닭이 알을 낳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달걀이 깨지지 않도록 한쪽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밭으로 걸음을 옮겼다.
잘 익은 양배추와 오이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맛 좀 볼까?”
미리 심어둔 나무 기둥을 타고 올라온 오이 넝쿨에서 잘 익은 오이 하나를 따 옷에 쓱쓱 문질러 그대로 입에 넣었다.
아삭-
오이 특유의 상큼하고 상쾌한 향기가 입안 가득 퍼졌다.
사 먹는 것과 비견되지도 않을 만큼 강력한 향과 풍부한 수분. 마치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어느 여름날 더위와 땀에 찌든 몸에 찬물을 한 바가지 끼얹은듯한 시원함이 혈관을 타고 전신에 퍼졌다.
평소 똥입(?)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고작 평범한 오이 한입에 이런 쾌감을 느끼다니···.
놀라운 경험이었다.
“맛있다.”
단순히 맛있다는 표현이 오이에게 미안함이 느껴질 정도로 맛이 좋았다.
씹을 때마다 폭죽처럼 터지는 과즙이 입술 사이로 마구 흘러나왔다. 팔뚝으로 입을 닦은 해준은 콧노래를 부르며 오이와 양배추를 수확했다. 밀까지 수확을 끝낸 해준은 이번엔 4개의 밭에 밀을 2곳에만 심고, 각 한곳씩 양배추와 오이를 심었다.
“흠···.”
갓 수확한 양배추와 오이 그리고 달걀 2개를 앞에 두고 해준은 작은 고민에 빠졌다.
“뭘 해먹을 수 있지?”
주머니에서 아버지의 노트를 꺼내 뒤적거렸다.
“양배추 샐러드?··· 재료는 양배추랑 오이 그리고 당근? 아, 당근은 없는데. 어쨌든. 채소를 가늘게 썰어 토마토케첩과 마요네즈에 버무려··· 뭐야. 케첩도 없고, 마요네즈도 없는데 그럼 못 만드는 거잖아. 다른 건 뭐 없나?”
가진 재료가 워낙 적다 보니 딱히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없었다.
재료를 현실 세계로 옮겨갈 수 있다면 시판 소스를 써서 여러 가지 음식을 해 먹을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니 신선한 식재료가 그저 그림의 떡이었다.
“어쩔 수 없이 생으로 먹어야 하나?”
지금 막 수확한 재료들이라 맛은 좋지만, 그냥 먹으려니 어쩐지 아쉬웠다.
한참 앉아 고민하던 해준은 달걀과 오이, 양배추를 들고 어제 발견한 오두막으로 향했다. 그나마 간단한 조리가 가능한 곳은 그곳뿐.
오두막에 들어가 천천히 살펴보니 구석에서 무쇠로 만든 프라이팬과 냄비, 그리고 몇 가지 조리도구들을 발견했다.
그 옆으로 보이는 갈색 자루와 먼지가 수북이 쌓인 투명한 병. 살펴보니 자루 안에는 싹이 난 감자가 몇 알 들어있었고, 병에는 말고 투명한 노란색 액체가 담겨있었다. 해준은 뚜껑을 열어 손등 위로 액체를 조금 흘렸다. 끈적하고 미끄덩한 촉감이 꼭,
“식용유?··· 먹어도 되는 걸까?”
눈을 가늘게 뜨고 병을 쳐다보다가 밑바닥에 작게 쓰인 글씨를 발견했다.
<해바라기씨유>
“엇. 진짜 기름이잖아.”
의도하지 않게 식용유까지 얻은 해준이 미소를 지었다.
달걀과 식용유가 있으면 프라이를 해 먹으면 된다.
해준은 미리 패 놓은 장작을 한 아름 가져와 화덕에 불을 붙였다.
화르륵-
무쇠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달걀을 깨 팬 위에 떨어트렸다. 촤르륵 소리와 함께 고소한 튀김 향기가 피어올랐다.
조리도구 사이에서 나무 주걱을 찾아온 해준은 하얗게 익어가는 흰자를 살살 어루만지며 모양을 잡았다. 노른자가 터지지 않도록 최대한 신중하게.
“반숙으로 먹어야지.”
반숙으로 결정한 이유는 아버지의 노트에서 봤던 구절이 생각났기 때문.
<···신선한 달걀이라면 노른자의 고소함을 즐길 수 있는 반숙이 최고의 조리법이라 할 수 있다. 또, 한쪽 면만 익힌 반숙은 함박스테이크와 잘 어울리기에 잘 구운 스테이크 위에 얹어 노른자를 반으로 갈라 소스처럼 흘려 먹으면 최고의 맛을 즐길 수 있다.>
노트를 읽을 때 가장 힘든 건 맛에 대한 상세한 묘사 부분이다.
가만히 읽다 보면 입안 가득 군침이 돌고, 허기가 진다.
어쩌면 요즘 부쩍 허기를 느끼는 것이 그 때문일지도.
금세 달걀 프라이가 완성됐다.
얇게 썬 양배추와 손가락 마디 크기로 썬 오이 그리고 달걀 프라이만으로 간단하게 한 끼 식사를 만들었다.
요리랄 것도 없는 간단한 밥상이지만, 어쩐지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건 아마도 밭을 일구고, 모종을 옮겨 심어 직접 수확한 작물이기 때문이리라.
“잘 먹겠습니다.”
후르릅-
먼저 샛노란 노른자를 흡입하듯 먹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고소한 향기. 편의점이나 고시원의 달걀로 했던 프라이와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자연의 맛이 그대로 느껴진달까.
‘하긴, 이건 엄밀히 따지면 유기농 달걀인 셈이니까. 당연한 건가?’
인터넷을 뒤져보면 자연에서 사료가 아닌 벌레와 풀을 먹여 키운 닭이 낳는 유기농 달걀은 부르는 게 값이다.
한 알에 천 원 이상을 받아도 없어서 못 파는 게 항생제 없이 키운 닭이 낳은 달걀. 건강한 음식이니 당연히 맛도 뛰어날 터. 소금이 없어 간을 하지 못했지만, 어디에 내놔도 훌륭한 맛이었다.
양배추와 오이도 마찬가지였다. 수분을 가득 머금은 채소들은 씹을수록 달큰한 맛과 향이 입안을 기분 좋게 만들어줬다.
“캬아, 너무 맛있잖아! 당분간 끼니는 여기서 때워야겠다.”
기분 좋은 식사에 만족한 해준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맛도 맛이지만, 여기서 식사를 해결한다면 식비를 줄일 수도 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배불리 먹었으니 이제 몸을 움직일 차례. 해준은 조금 전 발견한 싹 난 감자 자루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밭이 부족한 것 같아 더 만들기로 했다. 5번째 밭을 일구고, 새로 만든 거름을 뿌렸다. 거름을 흡수한 대지는 금세 비옥한 토지로 바뀌었고, 해준은 그곳에 감자를 심었다.
<모종삽으로 작은 구멍을 내고, 감자의 눈이 위로 올라오게 심는다. 30cm 간격으로 심어 흙을 덮어주고, 거름을 뿌려주면 잘 자란다.>
노트에 적힌 대로 감자를 심었다.
감자를 다 심어갈 즈음, 닭장에서 뭔가 푸닥거리는 기운을 느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닭장으로 향한 해준.
“허. 또 있잖아?”
달걀을 수확한 지 고작 1시간이 흘렀는데, 또 달걀이 3개나 있었다.
해준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달걀을 꺼냈다.
그리고 또 한 시간 후.
“또?”
암탉은 한 시간마다 최대 3개까지 알을 낳는 것 같았다.
단순한 계산법이지만 틀리지 않을 것 같았고, 그로부터 한 시간 후. 닭장을 확인한 해준은 자신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달걀을 두 번 수확하니 오이가 다 자랐다.
그다음엔 양배추가 수확 가능한 상태로 자랐다.
밀은 다 자라는데 농장 시간으로 약 24시간이 걸리고, 양배추는 3시간, 오이는 2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달걀은 한 시간마다 3알씩 생기니···.
‘수탉 한 마리만 더 있으면 닭 개체 수를 금방 늘릴 수 있을 텐데.’
삶아 먹거나 프라이, 말이, 찜, 탕 등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해 먹을 수 있으니 달걀만 있어도 먹는 문제는 충분히 해결된다. 게다가 나중엔 닭을 잡아먹어도 되니 그야말로 닭은 인류에게 신이 주신 선물과도 같은 존재.
[해준 님, 뭘 그렇게 고민하고 계십니까?]“왔구나, 포테. 어떻게 하면 닭의 숫자를 늘릴 수 있을까 생각했어.”
[수풀을 뒤져보는 게 어떨까요? 운이 좋다면 저번처럼 포획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근데, 제가 없는 사이 농장이 많이 넓어졌네요. ]“응. 어제 저쪽이 한꺼번에 열렸어.”
[오, 베이커리다! 다행히 사라지지 않았네.]화덕이 있더니 역시나 베이커리의 용도로 사용하던 곳이다.
[한때는 달콤하고, 고소한 빵 향기로 가득했던 곳인데···. 크으, 추억 돋네요.]한껏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포테가 말했다.
[찰스 님의 식빵은 통밀로 만들었는데도 식감이 거칠지 않고, 보들보들하면서 구수한 풍미가 일품이었다니까요. 크루아상이랑 단팥빵, 소보로 그리고 카스텔라까지. 아아, 먹고 싶다.]꿀꺽-
해준의 목울대가 아래위로 심하게 꿀렁였다.
포테의 황홀한 표정만으로도 어쩐지 그 맛이 상상됐기 때문이다.
“맛있겠다.”
[찰스 님의 솜씨는 언제나 최고였죠. 후훗···.]노트에서 고소한 풍미가 일품인 통밀 식빵 레시피를 본 기억이 있던 해준은 노트를 꺼내 들었다.
채소 샐러드, 감자 수프, 돈가스 같은 레시피들. 처음 그 노트를 봤을 땐 그냥 가게 메뉴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라 생각했는데, 이곳에서 만들던 메뉴임이 분명했다.
“여기 있다.”
*
<통밀 식빵>
-재료 : 통밀가루 360g, 이스트 5g, 소금 5g, 식용유 15g, 우유 80g, 물 150mL, 메이플 시럽 35g
-조리 순서
1. 볼에 재료를 넣고 반죽한다.
2. 1시간 정도 1차 발효를 한다.
3. 둥글게 만들어 30분간 2차 발효를 한다.
4. 180도 예열된 화덕에서 35분 구워준다.
*
간단한 설명과 함께 그림으로 만드는 방법을 자세히 그려놓았다.
마치 요리책을 보는 것 같달까.
‘흠··· 어려워 보이지 않는데. 도전해볼까?’
몇 가지 재료가 없긴 했지만, 있는 거로 만들어도 맛은 흉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라면을 끓일 때처럼 정해진 재료를 조리 순서대로 만들면 된다.
어차피 망해도 먹어 치우면 그만. 스스로 똥입이라 자처하는 입맛이니까 실패한 음식을 먹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좋아. 만들어보자.”
[네? 뭘요?]“빵.”
[빵?]“어. 마침 베이커리도 생겼잖아. 부서진 곳만 좀 수리하면 쓸만할 것 같으니 도전해보지.”
[오, 기대됩니다.]팔을 걷어붙인 해준이 울타리 너머의 큰 나무 앞에 섰다.
울타리를 수리했을 때처럼 판자를 만들어 베이커리의 벽을 메울 생각이었다.
쿠앙- 쾅-
나무를 베 쓰러트리고, 톱으로 잘랐다.
작업을 끝낸 해준은 창고 뒤에 놓아둔 손수레를 끌고 와 나무를 실었다.
[해, 해준 님! 그거 어디서 났어요?]곁에서 작업을 지켜보던 포테가 느닷없이 소리를 질렀다.
“뭐가?”
[그거요. 그 손수레.]“아, 이거? 어제 안개가 걷힌 자리에서 발견했어. 마침 거름이랑 이것저것 옮길 게 많았는데, 운이 좋았지.”
[그거예요. 그거.]“그거라니? 뭐가?”
포테가 갑자기 호들갑을 떨자 해준은 의아해하며 정령을 바라보았다.
[제가 말한 마법의 운반 도구. 그 손수레가 저쪽 차원으로 물건을 옮겨주는 도구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