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107
106화. 커피차(1)
***
“휴··· 오늘도 덥네.”
며칠 비가 내리더니 다시 찌는듯한 더위가 이어졌다.
어쩌면 더 잘된 일일지도 몰랐다.
오늘은 해준이 윤여진의 촬영장에 커피차를 쏘기로 한 날이니까.
커피, 에이드, 차, 과일주스, 스무디 등··· 다양한 종류의 음료를 준비하려다 생각을 고쳐먹고 딱 하나로 메뉴를 좁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 섭취 후, 8시간 동안 피부 표면의 온도를 서늘하게 식혀준다.커피의 버프 지속 효과는 동치미 메밀국수보다 더 강력했다.
‘10시쯤 도착해서 나눠주면 종일 시원하게 촬영할 수 있겠어.’
애초 커피차의 목적이 윤여진과 스태프들의 무더위를 식혀주는 것.
대신 쓴맛의 커피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달콤한 디저트를 만들기로 했다.
“함께 먹을 디저트를 듬뿍 만들자. 그럼 좋아할 거야.”
촬영장의 스태프와 연기자들은 고된 일에 시달린다.
주 2회 방영되는 80분 편성의 주말 드라마를 제작하려면 일주일을 꼬박 매달려야 한다.
요즘은 일부 분량을 사전 제작한다고 하지만, 밤샘 촬영을 하는 건 마찬가지.
더위도 더위지만, 체력을 끌어올려 줄 음식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달리우스 레시피를 참고해볼까?’
얼마 전 백골 상태로 발견된 달리우스에게서 얻은 레시피에는 왕궁의 특별한 디저트 레시피들이 꽤 있었다.
요즘 빵 굽기에 심취한 클로에에게 도움이 될만한 레시피를 몇 가지 나눠줬다.
레시피를 얻은 그녀는 너무 기뻐했다.
그녀 덕분에 일꾼들 식사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돼 편리했다.
가끔은 제임스 아저씨가 삼겹살 파티를 열라고 은근히 압박하지만, 그 정도는 어렵지 않은 일이기에 자주 열어줬다.
‘이건 너무 어려운데? 내 수준에서 만들 수 있을까?’
달리우스 레시피 노트 속 디저트들은 만들기 상당히 까다로웠다.
레시피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으나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수준이랄까.
“내가 아는 건 그냥 마카롱, 마들렌, 브라우니 따위가 전부였는데. 이건 완전히 신세계네.”
똑같은 마카롱이라 하더라도 레시피가 완전히 달랐다.
단순히 꼬끄(coque, 껍질)라는 명칭의 햄버거 모양의 머랭 쿠키 사이에 가나슈, 크림 같은 속을 채워 넣는 일반적인 모양이 아니었다.
첨가된 그림을 보면 꼬끄 사이를 산딸기와 딸기 크림으로 채운다던가, 팥과 버터의 조합으로 필링을 가득 채운 마카롱도 있었다.
다른 디저트도 독특한 모양과 화려한 색상의 레시피로 가득했다. 단순한 디저트가 아닌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처럼 느껴질 정도.
“쉽게 만들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
차해준은 어렵고 복잡한 레시피 중 가장 쉬워 보이는 디저트를 선택했다.
“제일 쉬워 보이는 것도 꽤 복잡하네.”
파트 사블레, 파트 아 슈, 콩포트··· 등등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용어들이 많았다.
한식과 경양식에 익숙한 해준에게는 꽤 낯선 요리.
*
-재료 : 우유, 달걀, 박력분, 서양배, 라임 제스트, 꿀, 감자 전분, 소금.
-조리 순서
1. 파트 사블레(pate sablee) 만들기 : 버터, 아몬드파우더, 감자전분, 박력분, 소금, 슈가 파우더, 달걀을 넣고 섞어 반죽하고, 냉동고에서 휴지시킨다. 이후 지름 6cm 잘라 170℃ 오븐에 20분간 굽는다.
2. 파트 아 슈(pate a choux) : 냄비에 우유를 넣고···
*디저트는 몇 개의 요리를 조립해 만드는 느낌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서양배 타르트는 바삭한 과자 틀을 만들어 그 안에 조린 서양배를 예쁘게 채워 넣는 느낌의 디저트였다.
‘일단 재료부터 조달하자.’
커피 맛을 돋워줄 첫 번째 디저트인 서양배 타르트를 만들기 위해 포테에게서 서양배 씨앗을 구매해 밭에 심었다.
“잘 자랐다.”
조롱박 모양의 서양배는 생김새부터 차해준이 알고 있는 배와 너무 달랐고, 심지어 약간 불그스름한 색을 띠었다.
‘맛도 다르네.’
먹어보니 우리 배에서 느껴지는 아삭함은 없었지만,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인상적이었다.
레시피 노트에 의하면 서양배는 열을 가하면 더 물렁해지고, 풍미도 풍부해져 더 맛있어진다고 했다.
“와~ 진짜 달콤하다.”
별다른 조리 없이 굽는 것만으로도 맛이 한층 더 살아났다.
어쩐지 디저트의 맛이 기대됐다.
베이커리에 틀어박힌 채 서양배 타르트 조리에 들어갔다.
레시피대로 반죽해 모양을 성형하고, 오븐에 구웠다.
바삭한 식감의 파트 사블레는 슈가 파우더가 듬뿍 들어갔음에도 과하게 달지 않았다.
다음으로 한식의 배꿀 찜과 비슷한 서양배 콩포트(compote)를 만들었다. 꿀과 라임 제스트를 넣고 뭉근하게 가열했더니 과육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콩포트가 완성됐다.
이제 조립이 단계.
틀에 시럽과 콩포트를 꽃처럼 예쁘게 쌓아 올리고, 마법 가루를 장식처럼 뿌려 완성했다.
[서양배 타르트] – 환상적인 달콤함. 섭취 후, 3시간 동안 불쾌지수가 50% 하락. 상쾌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맛있겠다.’
뿐만 아니라 좋은 버프도 붙었다.
커피와 함께 마시면 좋을 디저트다.
자신의 첫 디저트를 기념하며 커피와 함께 시식했다.
서양배 타르트의 겉면은 바삭하면서도 모래처럼 바스러지는 식감이 일품이었고, 씹는 순간 쓰나미처럼 밀려 들어오는 향긋한 서양배의 풍미가 황홀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커피와 함께 마시니 커피의 맛이 더 풍부하게 느껴지며, 타르트의 달콤함은 배가 됐다.
서로가 서로의 장점을 더 극대화해준달까.
“환상적이야.”
디저트라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배를 채우는 음식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었다.
꼭 버프의 효과 때문은 아니다. 디저트의 달콤함이 주는 기분 좋은 여유로움이랄까?
“다른 것도 도전해봐야겠어.”
자신감이 붙은 해준은 이내 두 번째 디저트 만들기에 돌입했고, 이내 베이커리 내부는 고소하고 달콤한 향기로 가득 찼다.
…차원에 농장에서 나오니 어느새 현실은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농장 시간으로 꼬박 이틀을 디저트 만드는데 할애한 셈이다.
푸드 트럭을 빌려온 해준은 정성스럽게 만든 디저트를 쇼케이스에 담고, 원두를 비롯한 필수 재료를 싣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늦겠다. 빨리 가자.”
해준은 윤여진의 드라마 촬영장으로 트럭을 몰았다.
***
“이놈아. 허황된 꿈 좀 그만 꿔. 주식은 무슨 주식이야. 그저 한푼 두푼 성실하게 모아서 집 살 생각을 해야지.”
“엄마. 한푼 두푼 모아서 무슨 집을 사? 허, 허리띠 졸라매고. 졸라매고···.”
“컷!”
엄마 역할의 윤여진과 대사를 주고받던 김재민이 대사를 씹자 모니터를 지켜보던 감독이 인상을 쓰며 컷을 외쳤다.
신인 김재민은 윤여진과 감독, 스태프들을 향해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괜찮아. 그럴 수 있지. 다시 해보자.”
“네. 선생님.”
베테랑 윤여진이 후배를 다독였다.
드문드문 날아오는 쪽대본에 촬영은 계속 지연됐고, 빠르게 찍어내지 않으면 당장 내일 방송에 차질이 생길 수 있기에 제작진의 신경은 날카로웠다.
“다시 갈게요. 한 번에 끝냅시다. 레디 액션!”
감독이 큐 사인을 다시 보냈다.
윤여진은 조금 전 상황을 다시 연기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대사를 거침없이 뱉어냈다.
30분 전에 도착한 쪽대본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감정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며 연기했다.
그녀에게서는 50년 경력의 노련미가 느껴진달까.
그래서 재민은 더 긴장했다.
“한푼 두푼 모아서 무슨 집을 사? 허리띠 졸라매고, 십 년을 모아도 안 돼. 음··· 그, 그러니까 내 말은··· 죄송합니다.”
대사를 읊조리던 재민이 잔뜩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했다.
아직 현장 분위기는 초조했지만, 심각해지지는 않았다.
다만 김재민 배우의 실수가 늘어갈수록 점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재민은 대사를 한번 씹자 마치 블랙홀에 빠진 것처럼 똑같은 지점을 계속 틀리게 됐다.
머릿속은 하얘졌고,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날은 덥고, 촬영은 늦춰졌다. 밤샘 촬영으로 피곤한 가운데 배우가 자꾸 대사를 씹으니 짜증이 극도에 달했다.
급기야 모니터를 보면 감독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죽을 둥 살 둥 모아봐야 안 된다고. 티끌은 모아봤자 티끌이야. 엄마 나 이 모양 이 꼴로 살다가 죽고 싶지 않아. 크게 주식 한탕 해서 남 부럽지 않게 떵떵거리며 살고 싶다고! 이게 그렇게 안 되냐?”
“죄, 죄송합니다.”
“왜 자꾸 대사를 씹어.”
“죄송합니다.”
“김 감독. 우리 5분만 쉬었다 가자.”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윤여진이 중재를 하며 나섰다.
대선배인 여진의 말에 감독인 잠깐 쉬었다 가자며 입에 담배를 물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주눅 들지 마. 처음에는 원래 다 그런 거야. 우리 커피나 한잔 마시자.”
여진의 독려에도 신인배우 김재민은 자꾸만 작아져 갔다.
***
“날씨가 좋다고 해야 하나? 나쁘다고 해야 하나.”
오늘도 때 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날이 더우니 사람들은 자연히 그늘을 찾아 숨어들었고, 어쩔 수 없이 태양 아래 선 사람들은 손풍기를 켠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이런 날 더위를 식혀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실은 트럭을 끌고 나왔으니 해준의 입장에서는 좋은 날을 제대로 잡은 격이다.
촬영장 앞에 자리를 잡은 해준은 서둘러 커피차를 열었다.
손수 제작한 현수막과 엑스 배너도 걸고, 윤여진의 커피차임을 어필했다.
“하. 덥다. 커피 한잔 마시자.”
트럭 오픈 준비를 마친 해준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려 마셨다.
피부 온도를 낮춰주는 커피는 즉시 효과를 발휘했고, 이내 몸이 시원해졌다. 비처럼 흐르던 땀이 어느새 사라지고, 등골이 서늘할 지경이었다.
“하하. 효과 좋네.”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는 트럭 안에서 선풍기를 틀지 않아도 시원했다.
…“아~ 짜증 나. 도대체 촬영이 왜 계속 딜레이 되는 거야? 몇 시간째 대기 타냐고.”
여배우 신혜미가 인상을 찡그리며 짜증을 냈다.
더운 날씨에 겨울 회상 장면을 찍기 위해 두꺼운 스웨터를 입고 촬영을 기다리는지 벌써 두 시간. 그녀의 인내심은 그야말로 바닥을 뚫고 지하 100m까지 내려간 상황.
“언니 자꾸 찡그리지 말아요. 메이크업 번져요.”
더운 날씨에 화장이 지워진다며 혜미의 메이크업 담당이 호들갑 떨었다.
“어머, 진짜?”
“네.”
“수정할까?”
“지금 하면 뭐해요. 또 땀 흘려서 번질 거. 이따 슛 들어가기 전에 고쳐줄게요.”
“알았어.”
“선풍기 바람이라도 쐬고 있어요. 아니면 차에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 놓고 대기하시던가.”
“목 아파서 싫어.”
“그럼 자꾸 땀을 흘리는데 어쩌지.”
“시원하게 아아나 한잔할까?”
“내가 사 올까요?”
“아냐. 같이 가.”
두 사람은 종종걸음으로 커피숍을 찾아 나섰다.
그 와중에도 땀을 흘리지 않으려는 혜미의 노력은 계속됐다.
“어?! 저게 뭐지? 커피차네. 누구한테 온 거지?”
그때 혜미의 눈에 띈 커피차.
“윤여진 쌤한테 왔네.”
커피차에 장식된 문구를 읽어 내려가던 혜미는 뜻밖의 낯익은 얼굴에 놀랐다.
“차해준 셰프님?!”
트럭 안에는 요즘 핫한 셰프 차해준이 앉아있었다.
“안녕하세요.”
“맞네. 차 셰프님. 오~ 윤 쌤이랑 예능같이 한다고 직접 커피차 조공 나오신 거예요?”
“네. 맞습니다.”
“대박.”
“그럼 직접 음료 만들어주시는 거예요?”
“네. 근데,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있어요.”
“괜찮아요. 딱 아아가 마시고 싶었거든요. 두 잔만 부탁드려요.”
“네. 잠시만요.”
포터 필터에 분쇄된 커피를 담고, 에스프레소를 추출했다.
커피가 추출되는 사이 해준은 조금 전 들려왔던 둘의 대화를 기억해냈다.
‘촬영 딜레이되고, 더워서 짜증 난다고 했지? 그럼···.’
“디저트 하나 드실래요?”
“네? 디저트요?”
“음료는 커피만 하는 대신 디저트를 좀 만들어왔거든요. 혜미 씨한테는 이 서양배 타르트가 딱 어울릴 것 같은데.”
신혜미는 쇼케이스 안의 작고 앙증맞은 타르트를 보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 예쁘다. 주세요.”
“여기요.”
해준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과 타르트를 꺼내 혜미에게 건넸다.
“잘 먹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