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109
108화. 찌워야 산다(1)
***
“시간 괜찮으시면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네. 그러시죠.”
해준과 곽두식은 커피차로 자리를 옮겼다.
촬영이 재개된 현장에 잉여 인력은 없었다. 당연히 커피차에는 개미 한 마리 없었고, 은밀한 대화를 나누기 딱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더우시죠? 커피 한잔 드세요.”
한 조각 남은 티라미수를 커피와 함께 대접했다.
100% 마스카포네 크림치즈를 듬뿍 넣어 만든 티라미수.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아버리는 촉촉한 맛이 일품이지만, 한 조각을 다 먹으면 12시간 동안 시간당 1,000칼로리씩 축적되는 부작용이 있는 음식이다.
‘음··· 부작용이 아닌가? 어쩌면 식량도 없는 무인도 같은 곳에 낙오됐을 때 먹으면 아사를 면할 수도 있는 좋은 아이템이 될지도.’
어쨌든 부작용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꼭 나눠 먹어야 한다고 당부했지만, 곽두식은 예외다.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건 벌크업이니까.
“단 거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거 드시면 살 엄청 쪄요.”
“앗,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사양 않고.”
살찐다는 말에 곽두식은 건더기를 다 건져 먹고 남은 해장국 국물을 뚝배기째 들고 마시듯 접시를 들어 티라미수를 흡입해버렸다.
“으··· 달다.”
가볍게 인상을 찡그리는 걸 보니 정말로 단 걸 싫어하는 모양이다.
‘사약처럼 드시네.’
“커피도 드세요. 그럼 단맛이 좀 중화될 겁니다.”
험악한 인상의 곽두식은 마치 유치원생처럼 차해준이 시키는 대로 잘 먹었다.
“셰프님 말처럼 커피를 마시니 낫네요.”
냅킨으로 입 주변을 닦으며 말했다.
“서준이한테 들으니까 음식 처방으로 전립선 문제까지 해결해주셨다고요.”
어떻게 가능했냐는 물음에 토마토의 성분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조리법을 사용했다며 운이 좋았다고 대충 둘러댔다.
“그래서 말인데요. 저한테도 도움을 좀 주실 수 있을까요?”
곽두식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해준에게 부탁했다.
뭘 해도 찌지 않은 살을 찌워달라니.
얼토당토않은 부탁이지만, 그가 지금 매달릴 곳은 여기뿐이다.
“돈은 얼마든지 드릴게요. 그러니 제발 부탁드립니다. 아시다시피 두 달여 동안 20kg을 찌워야 하는 상황입니다.”
너무나 간절한 눈빛. 차해준은 도저히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세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식빵에 땅콩버터 듬뿍 발라서 달걀, 과일, 주스랑 함께 먹습니다. 그리고 곧장 헬스장에 가는데, 절대 유산소는 안하고요. 고단백 고탄수화물 식단으로 점심도 먹고, 틈틈이 감자로 칼로리 보충도 해주고. 저녁엔 피자, 스파게티, 탕수육, 라면··· 살 좀 찐다는 음식들은 몽땅 챙겨 먹죠.”
전문 트레이너에게 체계적인 관리를 받으니 살찌우기에 최적화된 식단을 하는 건 당연했다.
그렇게 해도 살이 찌지 않으니 고민이 큰 거고.
“살이 하도 안 붙어서 자다 일어나서 라면까지 끓여 먹는다니까요.”
“음···.”
먹방 너튜버들은 한 끼에 라면 10봉지에 밥까지 말아 먹는 건 기본이고, 소고기 3kg, 햄버거 세트 10개, 닭갈비 20인분 등등··· 경이로운 기록을 뽐내며 먹는다.
그렇게 먹어도 뚱뚱하기는커녕 평범하다 못해 날씬하고 여리여리한 체형의 너튜버도 있다.
언뜻 먹어도 살 안 찌는 축복받은 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건 신체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방송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엔 음식물 섭취를 하지 않고 운동을 통해 칼로리를 소모하는 BJ도 있지만,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은 ‘흡수 장애 증후군’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먹어도 소화 흡수를 제대로 시키지 못해 빠르게 몸을 통과해 배출되는 경우.
해준은 곽두식이 무리한 감량을 하는 바람에 신체에 문제가 생겨 흡수 장애 증후군에 걸린 게 아닐까 의심했다.
‘일단 내장기관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겠어.’
서준의 부탁을 받은 해준은 나름대로 자료를 살펴보며 공부했다.
자신이 비록 의사는 아니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으리라.
“일단 한식 뷔페로 오세요. 위치는 아시죠?”
“망원동 JH 옆에 있는 거기요?”
“네.”
“감사합니다.”
두식은 몇 번이나 고개 숙여 인사하고, 희망적인 웃음을 보이며 돌아갔다.
해준도 커피차를 정리하고, 썬플라워로 돌아왔다.
큰소리쳤으니 빨리 그에게 맞는 음식을 만들어야 할 터.
방문을 걸어 잠그고, 차원의 농장으로 향했다.
***
“음···.”
또 실패다.
이번에도 원하는 버프를 가진 음식은 나오지 않았다.
[폭탄 달걀찜] – 부드럽고, 촉촉하다. 흰쌀밥에 비벼 먹으면 섭취 후, 24시간 동안 포만감이 유지된다. [바삭바삭 녹두빈대떡] – 섭취 후, 2시간 동안 강력한 해독작용으로 어떤 독이든 중화시킨다. [당근 김밥] – 섭취 후, 2시간 동안 몽골 유목민에게 버금가는 시력을 갖게 된다. 좋아진 시력으로 뭐든 관찰할 수 있다. 다만, 보기 싫은 걸 보게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 [송이버섯 소 갈비찜] – 야들야들 잘 삶아진 소 갈비찜. 섭취 후, 6시간 동안 후각이 민감해진다. 음식 속에 숨겨진 향기를 찾아낼 수 있다.소갈비 찜은 지속시간이 30분이었던 뭉치의 간식 닭가슴살 육포에 비해 월등히 강력해진 효과를 냈다.
신기한 버프가 붙은 요리가 많았지만, 그럴듯한 한식 한 상이 차려질 동안 해준이 원하는 버프는 나오지 않았다.
꼬르륵-
“아. 배고파.”
몇 시간째 먹지도 않고, 요리만 만들었더니 배가 고팠다.
보통 요리를 만들다 보면 헛배가 불러 식욕이 없게 마련인 데, 푸짐한 한식 한 상을 보니 배가 고팠다.
“먹어 치우자.”
마침 식사 시간이었다.
해준은 농장 일꾼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이곳 주민들은 중세 유럽 사람들과 비슷한 식사를 즐겼으나, 해준 덕분에 한식에 눈을 떠버렸다.
빵과 스프 대신 하얀 쌀밥과 국을 즐겼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쌈장을 듬뿍 찍어 쌈에 싸 먹는 삼겹살, 갈비찜, 불고기 그리고 양념 치킨 정도였다.
가끔 100% 한식 스타일로 마늘을 듬뿍 넣어 만든 요리는 거부감을 드러냈지만, 김치와 마늘장아찌는 곧잘 먹기도 했다.
얼음 동굴에서 잘 익은 배추김치와 총각김치까지 꺼내 푸짐한 한식 한 상을 차렸다.
“우와~ 이건 뭐야?”
하스 아저씨가 화산처럼 뜨거운 김을 날카롭게 뿜어내는 폭탄 달걀찜을 보며 물었다.
“달걀찜이요. 밥에 비벼 먹으면 맛있어요. 뜨거울 때 드세요.”
“비주얼이 어마어마하군요.”
“맛은 더 죽여요.”
“잘 먹을게.”
클로에와 하스 부녀, 제임스 아저씨까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달걀찜을 퍼갔다.
해준의 팁대로 밥에 쓱쓱 비벼 한입.
“엄청 맛있다.”
“달걀찜이라는 요리··· 마치 카스텔라처럼 부드럽군요. 어쩜 이렇게 부드럽고 촉촉한지.”
“다른 것도 드셔보세요.”
해준은 미아의 밥 위에 소 갈비찜 한 덩이를 올려주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한식에 심취한 차원의 농장 주민들.
해준은 그들과 순식간에 음식을 먹어 치웠다.
폭탄 달걀찜의 효과 때문인지 해준의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잘 먹었다. 소화도 시킬 겸 섬에 다녀오자.”
마법 재료 채집을 위해 숨겨진 섬 동굴을 향해 출발했다.
현재 그가 구할 수 있는 건 재생 풀, 독성 중화 열매, 생명 뿌리 3종류.
버프의 영향으로 시력이 좋아져 바위틈 사이에 꼭꼭 숨어있는 식물까지 채집에 성공했다.
‘조만간 더 안쪽으로 들어가 봐야겠어.’
해준은 아직 탐험하지 않은 통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채집한 마법 재료를 배낭에 넣고 돌아 나왔다.
폭탄 달걀찜의 영향 때문인지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너무 배부르다. 좀 쉬었다 갈까?”
“냐앙~!”
“저기 앉자.”
해준은 뭉치와 함께 통로에 주저앉았다.
시력이 좋아지니 평소 보이지 않았던 작은 것들까지 보였다.
예를 들자면 떼 지어 이동하는 개미나 쇠똥구리도 선명하게 보였고, 또 10m 앞 바위틈에 작은 양피지 조각도 보였···.
“어?!”
“냥?”
“저게 뭐지?”
바위틈 사이로 삐져나온 작은 양피지 조각.
누군가 몰래 숨겨둔 것 같았다.
해준은 양피지가 찢어지지 않도록 손가락 끝으로 살살 잡아당겼다.
“레시피잖아.”
글씨의 주인은 아버지 차철수였다.
고블린 녀석들이 숨겨 놓았거나 어쩌면 이곳을 지나다니다 흘렸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버지가?’
어떤 경로로 바위틈 사이에 꽂혀 있게 됐는지 모르지만, 아버지의 흔적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뭔가 위안이 됐다.
*
-재료 : 버터 100g, 올리고당 20g, 박력분 150g, 설탕 50g, 달걀 1개, 코코아 가루 15g, 어둠의 카카오 조각 30g, 독성 중화 열매 15g
-조리 순서
1. 실온 상태의 버터를 풀어준다.
2. 재료를 차례대로 넣으며 뭉쳐지지 않을 때까지 섞어준다.
3. 어둠의 카카오 조각과 독성 중화 열매를 넣고, 30분간 숙성시킨다.
4. 170℃ 오븐에 12분간 구워준다.
*독성 중화 열매가 첨가되는 것으로 미루어 특별한 효과가 붙은 음식 레시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못 보던 재료들이 있다.
‘어둠의 카카오 조각?··· 이건 뭐지?’
양피지에는 초코칩 쿠키 레시피 외에도 ‘빛나는 설탕 결정’이라는 재료가 필요한 나 , 의 조리법이 적혀있었다.
‘못 보던 재료들이다.’
레시피 노트에 적힌 어둠의 카카오 조각과 빛나는 설탕 결정. 이 두 가지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재료들이다.
“마지막에 대략적인 설명이 적혀있네.”
레시피 하단에는 쿠키들의 효과가 쓰여있었다.
[어둠의~]라는 작명이 붙은 레시피는 공통 설명으로 ‘먹어선 안 될 재료가 들어있다. 부작용으로 신체의 기초대사량을 50% 낮아진다.’라고 적혀있고, [빛나는~]은 반대로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음식. 먹는 즉시 소화 흡수력을 100% 높여준다.’라고 적혀있었다.기다렸다는 듯 해준에게 모습을 드러낸 레시피.
레시피대로 쿠키를 구우면 곽두식에게 도움이 될 음식이 분명했다.
기초대사량이 낮아지면 칼로리 소모가 적어진다는 뜻이니 당연히 살이 빠지지 않을 테고, 소화 흡수력이 높아지면 먹는 대로 쭉쭉 살로 갈 것이다.
‘실수로라도 다이어트를 하는 누군가가 먹는다면 큰일이겠군.’
레시피를 얻었으니 이제 더이상 맨땅에 헤딩하지 않아도 된다.
씨앗을 밭에 심고 수확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
부족한 재료는 포테에게 구매하면 된다.
해준은 서둘러 농장으로 돌아가 포테를 만났다.
[어둠의 카카오 조각과 빛나는 설탕 결정이요?]“응. 몇 포인트야?”
[음··· 없는데요?]“없어? 왜?”
포테의 말을 못 믿겠다는 듯 해준은 씨앗, 소모품, 장비 탭을 모조리 뒤져봤다.
스크롤을 아무리 내려봐도 찾을 수 없었다.
‘어쩐지 일이 쉽게 풀린다 했어.’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알아?”
[글쎄요. 그건 저도 잘···.]포테의 말에 해준은 잔뜩 풀이 죽었다.
[아! 어디서 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있을 만한 장소는 생각났습니다.]“어디?”
[영주의 식자재 보관소.]“영주라니? 어디의?···”
[당연히 여기죠.]차해준이 철광석을 구하기 위해 마을 북쪽 숲길의 늑대 무리를 토벌한 덕에 끊어졌던 길이 복구됐다.
덕분에 마을 주민들은 바닷길이 아닌 육로를 통해 영주의 성에 갈 수 있게 되었고, 그 때문에 교역이 더욱 활발해졌다.
[소문에 의하면 영주는 왕국의 국왕께 드릴 진상품으로 진귀한 재료를 모은다고 했습니다. 국왕이 소문난 미식가거든요.]“그래서?”
[우리 마을뿐 아니라 여러 마을과 도시에서 나는 특산품과 진귀한 재료들이 모이니, 영주의 성에 가면 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일리가 있는 말이다.
마침 소지한 골드도 여유가 있으니,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구할 수 있다면 사는 게 좋다.
‘영주가 사는 성으로 가자.’
결심이 선 해준은 지체없이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