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110
109화. 찌워야 산다(2)
***
평소 한산했던 마을 북쪽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차해준의 활약 덕분에 숲길을 지나 성과 맞닿아있는 길이 뚫렸기 때문이다.
“엇!? 스승님.”
해준은 마을 북쪽 새로 생긴 관문에서 카일을 만났다.
스승님은 정식으로 갑옷을 차려입고, 허리에는 훈련할 때 쓰던 검을 찼다.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보다시피 임무 수행 중이지. 관문을 지키는 경비대장이 되었다.”
카일은 마을 촌장의 부탁으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늑대의 습격을 감시하는 경비대의 대장 역할을 맡게 되었다.
용병 교관 출신인 그만큼 이 일에 적임자가 없기에 촌장이 특별히 부탁했다.
“넌 어딜 가는 게냐?”
“영주의 성이요.”
“영주의 성?”
“필요한 물건이 있는데, 혹시 거기라면 있을지 몰라서요.”
“대도시에는 없는 게 없지. 실제로 보면 깜짝 놀랄 거다. 그렇다고 너무 촌티는 내지 말고, 신기하다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면 소매치기의 표적이 될지도 모르니까.”
카일이 걱정하는 투로 말했다.
농장 일꾼을 포함한 마을 대부분의 주민들은 차해준을 비범하게 생각하지만, 그만은 아니었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해준을 늘 꼬마 취급했다.
“소매치기나 뒷골목 불량배는 사정을 봐주지 않지.”
“그렇다면 상대를 잘못 고른 거겠죠. 이래 봬도 제 검술은 수준급입니다.”
해준이 허리에 찬 검을 두드리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자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늑대 우두머리를 처치했던 짧은 전투가 기억났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아. 방심은 금물.”
“알겠습니다.”
“참. 도성에 가는 길이면 내 부탁도 하나 들어줄 수 있겠나?”
느닷없이 이벤트가 발생했다.
“늑대 가죽 손질에 필요한 재료 좀 구해다 주게. 마을 안에서는 마땅히 구할 곳이 없어서. 여기 적힌 곳으로 가면 구할 수 있을 거야.”
카일이 작은 쪽지를 건넸다.
어차피 해준의 목적지도 도성이었으니 겸사겸사 대리 구매 부탁을 수락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사다 드릴게요.”
“고맙다.”
“그리고 이거.”
해준은 스승님에게 작은 주머니를 내밀었다.
지구력이 높아지고, 체력이 유지되는 육포. 도성까지 걷는 거리가 만만찮아 준비한 간식이다.
‘종일 여기를 지키려면 피곤하시겠지?’
체력 소모가 많은 업무니 육포를 섭취하면 꽤 도움이 될 것이다.
“드시면 체력 유지에 보탬이 될 겁니다.”
“오, 설마?”
카일이 제자의 손에 든 음식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해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흥미로운 얼굴로 주머니를 받아들었다. 이미 그는 늑대 토벌 당시 마법 요리의 효과를 톡톡히 본 상태.
“잘 먹으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 전 이만.”
“조심해서 다녀오너라.”
해준은 영주의 성을 향해 길을 나섰다.
마을에서 도성까지 거리는 꽤 멀었다.
출발 전 민첩성과 달리기가 빨라지는 버프가 달린 음식을 섭취하고, 중간중간 육포까지 먹으며 달렸으나 꼬박 3시간이나 걸렸다.
일반인이었다면 10시간 이상 걸릴 먼 거리였다.
‘엄청 멀다.’
저 멀리 성벽이 보이자 잠시 걸음을 멈춘 해준이 땀을 닦았다.
돌로 쌓은 중세 유럽 스타일의 거대한 성벽. 영주의 성은 딱 판타지 세계에서 등장할만한 그런 모습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성문을 지키고 서 있는 경비병들이 보였다.
교역이 활발한 도시인만큼 간단한 방문 목적을 알리는 것만으로 쉽게 성에 진입할 수 있었다.
차원의 농장이 위치한 마을이 시골 읍내 수준이라면 이곳은 마치 주말의 이태원 한복판 같았다.
‘대도시는 다르구나.’
카일의 충고를 잊은 해준은 신기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성문에서 마을 끝 영주의 성까지 연결된 대로(大路).
길은 보도블록 대신 돌로 매끈하게 포장되어 있었으며, 그 위로 마차와 사람들이 다녔다.
“검 팝니다. 단검, 대검, 창 종류별로 다 있으니 보고 가세요.”
“식사하고 가세요. 어떤 음식이든 10 실버!”
“푹신한 침대가 있는 방이 아침 식사 포함 단돈 55 실버입니다.”
무기, 방어구를 파는 상점부터 가벼운 식사를 파는 노점상까지 다양한 상점이 있었다.
해준은 노점에서 파는 꼬치 하나를 사서 오물거리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오~ 여기서 이런 게 파네?”
도자기로 빚은 물병과 항아리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조리 도구들.
마을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디자인이다.
“예쁘죠? 바른 왕국에서 직수입한 신상입니다. 세트로 구매하면 99 골드 99 실버의 아주 합리적이고, 저렴한 가격에···.”
해준이 관심을 보이자 득달같이 달려드는 상인.
화려한 언변에 하마터면 필요도 없는 그릇 세트를 100골드나 주고 살 뻔했다.
여기나 저기나 장사꾼들 스킬은 정말 대단했다.
정신을 차리고 가죽 공방으로 향했다. 카일이 부탁한 물건을 사서 가게 밖으로 나왔을 때.
“꺄악! 소매치기야.”
멀지 않은 곳에서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웬 덩치 좋은 대머리 사내가 차해준이 서 있는 방향으로 무지막지하게 돌진해 왔다.
“저리 비켜!”
사내는 마치 한 마리의 멧돼지 같았다.
몸통 박치기로 주변 사람들을 넘어뜨리며 마구잡이로 달려왔고, 눈 깜짝할 사이에 해준의 지척까지 다다랐다.
‘부딪히겠다.’
해준이 슬쩍 몸을 비틀어 남자가 달릴 공간을 마련해줬고, 도둑은 기다렸다는 듯 그곳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회피했지만, 애초에 해준은 남자를 곱게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자기 앞을 스쳐 지나가는 도둑의 발을 걸어 그대로 자빠트렸다.
우당탕-
거대한 덩치가 쓰러지자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바닥에 나뒹군 덩치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왼쪽 골목으로 사라졌고, 해준이 민첩하게 그 뒤를 쫓았다.
골목 안쪽은 번화가와 다르게 어딘지 음침했다.
인적이 끊기고, 죽어라 도망치던 덩치가 걸음을 멈췄다.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
어쩐지 촉이 좋지 않았다.
“배짱 좋구나. 여기까지 따라온 걸 보면.”
대머리 사내가 훔친 가방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런 그의 배후에 3명의 인영이 추가됐다.
그리고 해준의 뒤에도.
‘이런.’
해준은 순식간에 5명의 덩치들에게 둘러싸였다.
“아이고, 어깨, 허리야. 형씨 덕분에 보기 좋게 땅바닥에 굴렀어. 세탁비에 치료비까지 줘야겠는데.”
“가진 거 몽땅 내려놓으면 순순히 돌려보내 주지. 으흐흐···.”
“남의 일에 끼어든 대가다.”
덩치들은 품에서 번뜩이는 나이프를 꺼내며 차해준을 협박했다.
준비된 상태였다면 해볼 만한 싸움이지만, 현재는 전적으로 해준이 불리했다.
‘음···.’
잠시 고민하던 해준은 항복의 의미로 손을 들어 보였다.
“알겠습니다.”
“좋아. 상황 판단이 빠른 걸 보니 머리가 나쁘진 않나 보군.”
“소지품은 먼지 한 톨 남기지 말고 싹 놓고 꺼져라.”
일단은 그들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물건들을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상점에서 산 물건과 골드 주머니, 그리고 허리에 찬 검까지.
그리고 최대한 불쌍하고 억울한 표정으로 덩치들을 향해 애원하듯 말했다.
“이게 답니다. 근데, 하루는 꼬박 걸어가야 제가 온 마을로 돌아갈 수 있는데, 이거 하나만 가져가도 될까요?”
배낭에서 먹음직스러운 양파 치즈 빵을 꺼내 보였다.
잘게 채 썬 양파와 마요네즈, 크림치즈를 섞어 오븐에 구운 빵.
노르스름하게 잘 익어 먹음직스럽게 생겼다.
“요리사냐?”
“저희 마을에선 제법 유명합니다. 직접 심어 수확한 재료로 요리를 만들거든요.”
“호오··· 그래?”
“향 좀 맡아보세요. 끝내주죠?”
해준이 빵을 덩치의 코끝으로 가져갔다.
치즈와 양파가 한데 어우러져 기막힌 향기를 풍겼다.
꿀꺽-
덩치들의 목울대가 아래위로 심하게 출렁거렸다.
그리고는 이내.
“안 돼.”
“네?”
“그거까지 놓고 꺼져.”
“맛있겠는데? 먹어볼까?”
“출출하던 차에 마침 잘됐군.”
이미 해준은 관심도 없고, 자기들끼리 양파 치즈 빵을 사이에 놓고 동그랗게 서서 나눠 먹기 시작했다.
“오~! 맛있어.”
“살짝 그을려서 풍미가 더 좋은데.”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 죽인다. 먹어본 적 없는 맛이야.”
“우유 없냐? 딱 우유 생각이 나는 맛이야.”
양파 치즈 빵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소매치기 일당을 보며 해준이 오묘한 미소를 지었다.
“뭘 웃고 있어? 소지품 다 내려놨으면 꺼져. 혼나기 전에.”
“제가 온 곳에는 이런 말이 있어요. 외국을 나가면 낯선 현지인이나 여행객이 주는 음식은 절대 먹지 마라. 뭐, 이 경우에는 낯선 현지인은 그쪽들이지만. 뭐, 암튼. 그 이유가 뭔지 아세요?”
“꺼지라니까 뭔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덩치들이 다시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차해준은 능글능글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말을 이었다.
“뭐가 들었는지 모르니까요. 의심 없이 먹었다가 자기도 모르게 기절하고, 깨어나다 보니 빈털터리가 됐다. 그런 경우가 흔하거든요. 그러니까 절.대.로. 낯선 사람이 주는 음식은 먹지 말자.”
“뭔··· 소리야?”
“지금 졸리죠?”
대머리 사내가 눈을 꿈뻑였다.
어쩐지 눈앞의 녀석 말처럼 졸음이 몰려왔다.
“그야 새벽부터 일어났으니까 좀 피곤해서···.”
쿵-
해준의 말이 끝나자, 무리 중 한 명이 바닥에 쓰러져 코를 골았다.
뒤이어 또 한 명.
혼자 남은 사내도 혀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웅얼거렸다.
“이··· 이게 무스···이으···.”
마지막까지 감기는 눈꺼풀을 애써 부릅뜨던 대머리 사내마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쿵-
“쉽네.”
불한당 5명을 상대로 싸우지 않고 이겼다.
사실 양파 치즈 빵은 ‘양 조절에 실패한 양파 스프’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양 조절에 실패한 양파 치즈 빵] – 이번에도 비율 조절에 실패했다! 넣어도 너무너무 많이 넣었다. 먹는 순간 기절. 적어도 12시간은 꿀잠에 빠질 수 있으니 시험 전날 먹는다면 낭패.혹시라도 위험한 상황이 생길 때를 대비해 준비했는데, 요긴하게 잘 쓰였다.
“찬 데서 자면 입 돌아가는데.”
해준은 덩치들을 끌어다 한데 모았다.
신문이라도 덮어주고 싶었으나 구할 수 없으니 서로의 체온이라도 느끼게 해줬다.
밤새 뒷골목에서 자야 하니 최소한의 배려(?)를 한 셈이다.
덩치들을 정리하고 빼앗긴 소지품과 가방을 정리하고 있으니 타이밍 좋게 소매치기를 당했던 여자가 도착했다.
“오셨네요.”
여자는 해준 뒤에 샌드위치처럼 겹쳐져 있는 덩치들을 보며 놀랐다.
“이게 무슨?··· 다치지 않으셨어요?”
“보다시피 전 멀쩡합니다. 여기 가방이요. 없어진 게 있나 확인해보세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인은 기품있는 목소리로 고마움을 표했다.
“중요한 물건이었는데, 큰일 날 뻔했어요. 어떻게 사례를 해야 할지.”
“찾았으면 된 거죠. 다친 사람도 없고. 그럼 전 바빠서 이만.”
사건에 휘말려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해준은 고마워하는 여자를 뒤로하고, 영주의 성으로 향했다.
대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니 영주의 성이 보였다.
성 입구에는 진상품을 운반하는 상인들로 상당히 붐볐다.
성문에서처럼 영주에게 고용된 경비병들이 오가는 사람들을 체크했다.
차해준은 행렬의 끝에서 순서를 기다렸고, 마침내.
“다음.”
차해준의 차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