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129
128화. 미슐랭 가이드(4)
***
“뭐야? 주작이었어?”
“당연하지. 여기 사장님이 얼마나 위생에 신경 쓰는데.”
부부가 경찰에 연행되자, 식사하던 손님들이 수군거렸다.
“하긴. 말도 안 되지.”
이 식당 단골 중 그 누구도 음식에서 이물질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차해준의 한식 뷔페는 그냥 싸기만 한 가성비 식당이 아니다.
매일 신선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며 그마저도 남는 음식은 모두 푸드뱅크라는 곳을 통해 기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음식 기부는 소혜, 동구 남매를 보며 해준이 한 결정이었다.
“이 식당. 재미있네요.”
“동감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와보고 싶어요.”
바스티앙의 말에 승훈이 눈을 반짝였다.
그의 말뜻은 인스펙터로서 이 식당을 관찰하고 싶다는 의미였으니까.
“썬플라워라는 곳도 가보는 게 좋겠죠?”
“네. 어쩌면 빕 구르망에 선정할만한 좋은 식당을 찾을지도 모르니까요.”
몇 가지 메인 요리에 후식으로 준비된 떡과 수정과까지 먹은 두 사람이 눈빛을 교환했다.
식사를 마친 리즈와 바스티앙, 승훈이 밖으로 나왔다.
“맛있다. 어쩜 이렇게 맛있지? 한식이 원래 이렇게 매력적인 음식이었어?”
두 번째 방문한 한국.
어디까지나 목적은 태오였기에 음식은 배고프지 않을 정도로 대충 때웠다.
남편을 따라 프랑스 현지의 한식당을 몇 번 경험해봤지만, 조금 전 그 식당의 1/10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나도 좀 놀랐어.”
진심이었다.
승훈 역시 바스티앙의 옆에 서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삼시 세끼 중 두 끼를 고가의 레스토랑에서 먹는 그조차 경험해보지 못한 맛이었다.
‘반반한 얼굴 믿고 경험도 없이 셰프 소리나 듣는 장사꾼인 줄 알았더니, 실력이 대단해.’
세 사람 모두 만족해하며 식당을 나왔다.
“바스티앙. 당신은 이제 일하러 갈 거죠?”
“그래야지. 당신은?”
“나? 난 신경 쓰지 말아요. 굿즈 샵에서 케이크 먹고, 태오 동선 따라 움직이려면 바쁘니까. 저녁에 호텔에서 만나요.”
식당, 소속사 그리고 저녁에 있을 예능 프로그램 촬영까지, 세븐키즈 스케줄대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아쉽게도 이번에도 태오는 못 봤지만, 재밌는 구경 했네. 그거로 만족.”
리즈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아내를 보며 의아해하는 바스티앙.
“그게 무슨 소리야?”
KPOP 열혈팬인 리즈 덕분에 바스티앙도 한국의 아이돌 세븐키즈 태오의 얼굴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확실히 봤다.
이물질 사건이 있던 식당에서.
“못 봤어?”
“뭘?”
“그 남자. 아까 다녀갔는데.”
“뭐?!”
“사람들 CCTV 확인할 때 반대편 가림막에서 나와 밖으로 나가던데?”
가림막 안쪽이라면 JH의 아티스트만 출입이 가능한 공간이다.
연예인들이 개방되지 않은 곳에서 조금이라도 편안한 식사를 하기 위해 마련한 공간.
주작 부부가 경찰에 끌려가던 순간, 바스티앙의 눈에 제법 잘생긴 남자가 배경처럼 지나가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What the Fu···.”
“당신도 본 줄 알았는데.”
리즈가 이마를 짚으며 크게 좌절했다.
며칠을 따라다니는 자신은 만나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남편이 보다니.
“봤으면 말을 해줘야 할 거 아냐!”
“미안.”
리즈가 화를 내자 바스티앙이 주눅 들었다.
당시 그의 관심은 온통 차해준이라는 오너 셰프에게 향해있었다. 그 뒤로 유령처럼 사샥- 지나가는 남자가 아내의 최애 아이돌 태오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이미 그가 사라지고 한참이 지나서였고.
“오 마이 갓!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다니.”
리즈는 거의 울먹이며 말했다.
그런 아내를 토닥이며,
“포기해. 태오랑 당신은 인연이 아닌 거야.”
라고 위로했지만, 돌아오는 건 따가운 눈초리뿐.
맞지 않은 게 다행이다.
“하아···.”
“미안.”
표정을 보아하니 며칠 아니, 몇 년은 시달릴 것 같았다.
비록 망언으로 저승사자와 하이파이브를 할뻔했지만, 그래도 아내 덕분에 아주 좋은 식당을 찾았다.
.
그 후에도 바스티앙과 승훈은 점심시간, 주말, 평일 낮에 한식 뷔페와 썬플라워를 찾았다. 물론, 일반 손님이 아닌 암행하는 미슐랭 인스펙터의 자격으로서였다.
다른 인스펙터에게도 정보를 공유했고, 그들은 차해준과 직원들이 모르게 썬플라워와 한식뷔페를 찾았다.
“괜찮죠?”
접시 위에 남은 마지막 돈가스 조각을 먹은 바스티앙이 물었다.
이번이 썬플라워 3번째 방문.
식사를 마친 다른 인스펙터들이 바스티앙의 물음에 긍정적으로 반응을 보였다.
“이 정도라면 별 두 개도 아깝지 않겠어요.”
“음식도 깔끔하고, 지난 3번의 방문 동안 늘 한결같았어요.”
서비스, 음식의 맛과 재료의 신선도 역시 최고 수준이었다.
“이 커피도 정말 훌륭해요. 은근슬쩍 알아보니 여기 셰프 바리스타가 아닌데도, 아주 훌륭한 블렌딩 원두를 쓰더군요.”
“다른 음식도 마찬가지예요.”
“들리는 소문으로 정식으로 요리 교육도 안 받았다던데, 실력이 아주 뛰어나군요.”
“정말요?”
뜻밖의 정보에 모두가 놀랐다.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셰프의 식당 두 곳이 미슐랭 빕 구르망 후보에 올랐으니 말이다.
“재능이 대단한 건가?”
“그보다는 좋은 재료와 기본에 충실한 레시피가 차 셰프 식당의 특징 같더군요.”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썬플라워 말고 한식 뷔페는 어떻습니까?”
“그 식당 역시 빕 구르망에 선정되기에 손색없죠.”
“동의합니다.”
“저도. 모든 평가에서 최상위 클래스예요.”
“그럼 둘 다 선정하는 건 어떨까요?”
“음···.”
조금은 파격적인 결정이기에 평가원들이 잠시 고민했으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동의합니다.”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으니 그래야겠죠.”
6인의 인스펙터 의견이 만장일치로 모였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한국인 인스펙터 승훈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브레이크 타임 직전의 레스토랑은 조금 여유가 있었다.
그들은 일부러 한가한 시간을 택해 방문했다.
만약 만장일치로 미슐랭에 선정되면, 오너에게 사실을 통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 사장님?”
승훈은 바닥난 소스를 만들고 있는 차해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네? 뭐 필요한 거라도 있으신가요?”
승훈은 대답 대신 명함을 내밀었다.
“제 소개를 먼저 드리죠. 미슐랭 가이드 인스펙터입니다.”
“미슐랭이요?”
해준은 남자가 내민 명함을 받아들었다.
독특하게도 명함에는 이름이 적혀있지 않았다. 대신 미슐랭 가이드 회사명만 심플하게 인쇄되어 있을 뿐.
차해준은 어떤 영화에서 봤던 장면을 떠올렸다. 미슐랭 인스펙터가 평가하는 식당에 들어가 와인 반병과 생수 2잔을 주문하고, 바닥에 포크를 살짝 내려놓고 종업원의 반응을 살피던 장면.
“이런 거 원래 몰래 왔다 가는 거 아닌가요? 일부러 포크도 떨어트리고, 트집도 잡고.”
“아직도 그런 헛소문이 도는군요. 물론 처음엔 가명으로 예약하고 몰래 왔다 가죠. 하지만, 세 번 방문하면 이렇게 신분을 드러냅니다.”
물론 승훈이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다.
정체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비밀이기에.
“그래서 하고 싶은 말씀이 뭔가요?”
해준은 미슐랭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미슐랭이라는 말에 고동식과 강훈 그리고 주방의 권은정까지 호기심을 보였다.
“썬플라워를 가이드에 올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차 셰프가 운영하는 한식 뷔페도.”
“!!??···”
“헐, 대박.”
“미슐랭?”
직원들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해준은 그들을 진정시키며 침착하게 물었다.
“미슐랭은 비싼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선정하는 거 아닌가요? 제 식당은 그냥 돈가스랑 한식 뷔페인데···.”
“맞아. 미슐랭 스타는 고급 레스토랑이나 받는 거 아냐?”
“나도 그렇게 알고 있는데.”
동식과 강훈이 해준의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많은 분이 오해하고 계시죠. 그런데, 미슐랭은 단순히 비싼 레스토랑만 선정하지 않습니다.”
상황을 지켜보던 바스티앙이 나서서 오해를 풀어줬다.
그의 말처럼 미슐랭 가이드에는 빕 구르망(bib gourmand)이라는 하나의 리스트가 더 존재한다. 미슐랭이 고급 식당만 선정한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실속형 맛집을 따로 분류해 선정했고, 이것이 바로 빕 구르망이다.
평가 기준도 까다롭다.
사용하는 재료의 수준과 조리 방법과 완성된 요리의 창의성, 가격 등 다양한 요소를 평가해 인스펙터 전원 만장일치로 결정된다.
“저희는 오로지 음식만을 평가하지 그 외적인 부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음식만 훌륭하다면 길거리에서 쭈그려 앉아 먹는 음식도 저희 가이드북에 오를 수 있죠.”
“오~ 그렇구나.”
“몰랐네. 그럼 이제 우리도 미슐랭 식당이 되는 건가? 동식 형님은 미슐랭 식당 주방장?”
동식과 강훈이 잔뜩 들떠 설레발쳤다.
“강훈이 넌 부주방장이고? 어감 쩐다.”
“크큭, 순식간에 신분 상승이네요.”
“그러게.”
오히려 당사자인 차해준만 침착했다.
“그럼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미슐랭 가이드에 오른다는 건 요리사로서의 명예가 한 단계 올라간다는 의미. 지금 하는 일과 방송, 더 나아가 JH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기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사실 그간 몇 번이나 저희들이 방문했었죠. 남은 관문은 면담입니다.”
“면담이요?”
“네. 잠시만 이리로.”
미슐랭 인스펙터들은 차해준을 조용한 공간으로 데려갔다.
***
전 세계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미슐랭 가이드 웹사이트.
대한민국 서울의 빕 구르망 편에는 새롭게 선정된 레스토랑들이 업데이트되었다.
150년 전통의 노포인 곰탕집을 비롯해 프렌치 레스토랑, 중식당 등 다양한 업종의 식당 10곳이 추가로 빕 구르망에 선정됐으며, 특별히 차해준이 운영하는 경양식당 ‘썬플라워’와 한식당 ‘차해준 한식 뷔페’는 동시에 선정돼 이슈가 되었다.
[··· 품질 좋은 식재료와 정성으로 만든 소스. 평범한 음식으로 내는 비범한 맛. 완벽하게 한국 스타일로 변한 돈가스를 맛보고 싶다면 적극 추천한다. 언제 방문해도 웨이팅은 기본이니, 넉넉한 시간 여유를 갖고 방문하길 추천한다.]“이런, 젠장.”
사이트에 적힌 인스펙터의 추천 글을 읽던 이재영의 이마에 핏대가 솟았다.
“허, 고작 돈가스에 한식 뷔페 따위가 빕 구르망에 선정됐다니. 이게 말이야 방구야. 평가원들 미각이 마비된 거 아냐? 뒷돈 먹었거나.”
말도 안 되는 억측을 뱉어내며 신경질적으로 사이트를 닫아버렸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지난 일 년간 빕 구르망에 선정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으니까.
“끄응···.”
재영은 흔히 말하는 금수저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기업의 상속자나 재벌 2세는 아니다. 농부였던 아버지가 농사를 목적으로 조금씩 사 모은 땅이 개발되어 도시가 형성되었고, 그게 현재의 목동이다.
개발과 동시에 재영의 아버지는 일대에서 유명한 졸부가 되었다. 땅은 팔지 않고, 대출을 받아 건물을 올렸다. 그 결과, 목동의 빌딩 3채 중 1채는 재영의 것··· 아니, 재영 아버지의 건물이었다.
물려받기만 한다면 숨만 쉬고 있어도 임대료 수익에 깔려 죽을 만큼 부자로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세상 돈 많은 게 다가 아니더라. 나보다 돈도 없는 놈들이 날 무시해. 졸부라고. 그래서 결심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해지는 놈 딱 한 놈에게 내 재산 모두 물려주기로.
재영의 아버지가 칠순 잔치에서 5남매를 불러 모아놓고 폭탄선언을 해버렸다.
형제들은 각자 나름의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TV를 보던 재영은 백 선생을 보며 유명 셰프의 길을 선택했다.
‘요즘은 셰프가 대세지.’
아버지 건물 중 가장 목 좋은 1층 자리를 비워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열었다.
처음부터 미슐랭에 도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 상대적으로 허들이 낮은 빕 구르망에 도전했다.
미슐랭 2스타의 최고급식당 레스토랑 수셰프(sous chef)까지 거액의 돈을 주고 스카우트했다.
전략적으로 가격도 3만 5천 원 이하로 맞추고, 이익이 나지 않더라도 무작정 팔았다. 어차피 푼돈이나 벌자고 오픈한 식당이 아니니까.
재영이 원한 건 미슐랭 가이드에 등재된 식당. 그 명성을 발판으로 유명인이 되는 게 목표다.
계획대로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별스타를 통해 입소문도 퍼졌고, 2호점을 오픈도 준비하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미슐랭 인스펙터가 방문한다는 정보도 사전에 입수했는데···.
‘이게 다 차해준인지 뭔지 하는 녀석 때문이야.’
재영은 화살을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메뉴를 팔던 차해준에게 돌렸다.
‘어떻게 복수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