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13
12화. 통밀 식빵(5)
***
염소가 바닥에 누워 고통스럽게 울고 있었다.
“메에에···.”
출산의 고통이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많이 아파하는데.”
“어떡하지?”
“짚을 좀 깔아줄까?”
“그게 좋겠다. 난 배를 좀 만져줄게.”
클로에가 염소의 배를 쓰다듬어주는 사이 해준이 짚을 한 아름 가져와 푹신하게 깔아줬다.
약 한 시간을 신음하던 염소가 마침내 출산에 성공했다.
그것도 2마리나.
“꺄악~ 귀엽다.”
갓 태어나 앙증맞은 다리를 바들거리며 일어서는 염소를 보며 클로에가 말했다.
하얀 솜털이 난 새끼염소는 귀여움 그 자체였다. 어미 염소는 새끼의 몸에 묻은 이물질을 핥아줬고, 제 어미를 알아본 새끼들이 어미 옆으로 가 젖을 빨았다. 어쩐지 성스러운 장면이었다.
‘아, 넋 놓고 보고 있을 게 아니라 먹이라도 줘야겠다.’
새끼를 낳느라 고생한 어미 염소를 위해 신선한 양배추를 먹이로 줬다.
농장의 경사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암탉이 품고 있던 달걀에서도 병아리 6마리가 태어났다.
“메에에에···.”
“삐약삐약.”
“꼬끼오~!”
농장이 동물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수고한 암탉에게도 보상으로 밀을 줬다.
그 사이에도 클로에는 어미 젖을 빠는 염소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얘들 젖 먹는 것 봐. 귀엽지.”
“그러게. 잘 먹네.”
“엄마 젖이 그렇게 맛있을까?”
“그렇겠지. 염소젖이 양은 적어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래. 치즈나 버터를 만들어도 맛이 훌륭하고. 우유랑은 또 다른 풍미가 있다던데.”
“그런 건 어디서 들었어?”
“아버지가 남긴 노트에서 읽었어.”
“아버지의 노트? 아버지가 농부셨어?”
“그 비슷한 거셨나 봐. 나도 자세히는 몰라. 아까 하던 일이나 마저 끝내야겠다.”
해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멍하게 앉아 새끼 염소의 젖먹이만 보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열심히 밭을 늘려 작물 생산량을 늘려야 한다. 그래야 레벨도 올리고, 안개에 감춰진 대지를 열 수 있으니까.
.
.
.
“휴, 끝났다.”
일을 끝냄과 동시에 레벨이 올라갔다.
이로써 해준의 레벨은 5에 도달했다.
체력은 25까지 올라갔고, 기술은 17, 명성은··· 아직까지 제로다.
쿠우웅-
안개가 걷혔다.
해준은 좌에서 우로 둘러보며 안개가 물러난 지형을 확인했다.
이번에 드러난 곳은 돌과 나무만 가득한 곳.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다. 그때,
“야아옹···.”
발아래서 뭉실뭉실한 촉감과 함께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하얀색 털을 가진 고양이 한 마리가 해준의 발목에 자신의 몸을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고양이?”
영롱한 에메랄드빛 눈동자에 어쩐지 새침한 표정을 지닌 녀석은 뭔가 바라는 게 있는 것처럼 혀를 할짝이며 해준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왜? 뭐 필요해?”
“야아옹.”
“배고파?”
“야아옹.”
“배가 고프구나.”
해준의 말이 맞았는지 자리에 앉아 앞발을 혀로 할짝였다.
“고양이가 뭘 좋아하지?”
노트를 찾아봐도 고양이 먹이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아버지의 노트가 만능은 아니었다.
“흠··· 고양이라면 역시 생선이나 우유일 텐데.”
개울이 없으니 생선을 잡아줄 수도 없고, 젖소가 없으니 우유를 짤 수도 없다.
현실이라면 편의점에서 참치캔, 우유를 사다 줬을 텐데, 여기엔 그 흔한 편의점 하나 없으니 뭐든 해준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야옹아, 넌 뭘 좋아하냐?”
해준이 고양이를 번쩍 들어 올려 시선을 맞추며 물었다.
가까이 관찰하니 제법 잘생긴 얼굴이었다.
“양배추?”
“···.”
“밀?”
“···.”
“오이?”
“···.”
“감자?”
“···.”
당장 줄 수 있는 것들만 읊어보았다.
그러나 고양이는 어떤 것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식성 까다로운 녀석이네. 그럼 삶은 달걀은?”
“야아옹.”
드디어 녀석이 반응을 보였다.
“달걀 좋아?”
“야아옹.”
“좋아하는구나.”
“야아옹.”
“잠깐만 기다려. 삶아줄게.”
해준은 고양이를 내려놓고, 닭장으로 걸어갔다.
암탉과 병아리가 밀을 맛있게 쪼아먹고 있었고, 수탉은 나무 위에 늠름하게 서 있다. 닭장에 조심스럽게 들어가 밀을 한주먹 더 놔주고, 달걀을 가져왔다.
클로에는 여전히 눈을 반짝이며 염소 우리 앞에 앉아있었고, 어디로 사라졌는지 포테는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조금 전 만난 고양이는 해준만 졸졸 따라다녔다.
“귀엽네. 사람을 잘 따라. 고양이가 아니라 개냐?”
생긴 것만 도도하게 생겼지 하는 짓은 꼭 강아지였다.
화덕에 불을 피운 해준은 달걀을 2개 삶아 고양이에게 까줬다.
“야아옹.”
잘 먹겠다는 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달걀을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어쩐지 고양이가 귀여워진 해준은 녀석이 밥을 먹는 동안 머리와 등을 쓰다듬어줬다.
그리고 노트를 펼쳐 고양이에 대해 기록했다.
<고양이 : 삶은 달걀을 좋아한다. 혹시 생선을 주면 더 좋아할지도 모름. 나중에 더 실험을 해봐야겠다. 원하는 걸 맞추면 야아옹~ 이라고 운다.>
발목 근처에서 놀던 고양이가 폴짝 뛰어 해준의 무릎 위에 올라타더니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해준은 노트에 추가로 ‘사람을 잘 따른다’라고 적어 넣었다.
***
하루가 지났다.
해준이 돌아오자 달걀을 수확하던 클로에가 반겼다. 그가 없을 땐 클로에가 수확 시기가 짧은 작물과 달걀 수확을 도와줬다.
뒤따라 해가 잘 드는 곳에 몸을 둥글게 말고 누워있던 고양이도 해준의 발아래로 느긋하게 기어와 친한 척을 했다.
“쟤는 너만 오면 친한척하더라.”
“너한테는?”
“본 척도 안 해.”
“왜 그러지?”
“너만 좋은가 보지.”
“야아옹~.”
클로에의 말이 맞는다는 듯 타이밍 좋게 울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해준은 고양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진짜냐?”
“야아옹.”
“거봐. 내가 뭐 물어보면 울지도 않는다니까. 너한테만 그래.”
“신기하네.”
“치사한 놈. 내가 준 우유까지 먹고는 친한 척은 너한테만 하고. 흥, 칫. 뿡이다. 너 다음부터 우유 없어.”
클로에가 고양이에게 경고하듯 말했다.
우유라는 단어에 해준이 귀가 솔깃했다. 우유는 빵을 만드는 재료이며, 농장에서는 구할 수 없는 음식이다. 그런데, 우유라니?
“우유? 우유는 어디서 났는데?”
“음··· 엄밀히 따지면 우유는 아닌가? 어미 염소에게서 짰으니까. 네가 알려줬잖아. 고소하고 맛있다며.”
“아, 그랬지.”
우유를 어떻게 구할지만 생각하다가 간단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당장 젖소나 우유를 구하기 힘들다면 산양유로 대체하면 빵을 구울 수 있게 된다.
‘그나저나 염소젖 짜는 방법은 어떻게 알았지?’
해준이 클로에를 신기한 듯 쳐다봤다.
“왜?”
“그냥. 니가 젖 짜는 방법을 아는 게 신기해서.”
“응? 그러게.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
클로에가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기억상실증에 걸린 그녀가 기억을 떠올리긴 힘들었다.
대신 해준에게 염소젖 짜는 방법을 가르쳐줬다. 서툰 해준의 동작과 달리 클로에의 손길은 아주 능숙하고, 섬세했다. 분명 초보자는 아니었다.
“혹시 목동이었나? 방목하던 염소를 잃어버려 찾으러 왔다가 안개에 갇혔다든지. 뭐 그런 거.”
신빙성 없는 추측은 아니었다.
애초에 염소를 발견한 것도 그 숲이었으니까.
“뭐, 천천히 기억나겠지. 그때까지는 여유롭게 있을래. 난 여기가 마음에 드니까.”
클로에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해준 역시 그녀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근데 그 고양이, 이름은 정했어?”
“이름? 아니.”
“그렇게 너만 따르는데 이름이라도 지어줘야지.”
그 말에 해준이 잠시 고민했다.
“이름?··· 음, 뭉치 어때?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으면 딱 솜뭉치 같던데.”
“야아옹~.”
이번에도 고양이가 울었다.
“마음에 드나 보네.”
“그러게. 좋아! 네 이름은 지금부터 뭉치다.”
“야아옹.”
해준은 뭉치를 내려놓고, 어제 만들어 놓은 효모를 확인하기 위해 베이커리로 향했다.
색깔이 좀 변한 것 말고는 아직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그가 참고한 자료에도 비슷하게 쓰여 있었으니 걱정할 건 없었다. 그래도 해준은 꼭 성공하길 바라며 효모 반죽에 동량의 재료를 더 넣고, 천으로 덮었다.
‘효모만 제대로 만들어지면 빵을 구울 수 있겠어.’
클로에에게 염소젖을 짜달라고 미리 부탁했으니 효모만 제대로 완성되면 빵을 구울 수 있게 된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맛있는 빵을 만들어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열의에 불타올랐다.
[해준 니이임~!]막 작업을 끝냈을 때, 포테가 날아왔다.
녀석은 뭐가 바쁜지 자기가 필요할 때만 나타났다.
“어?! 너 모습이 좀 바뀌었다.”
포테의 외형이 미묘하게 바뀌어있었다.
머리에 이고 있는 나무가 더 풍성해지고, 몸도 조금 커진 것 같았다.
[하하. 눈치채셨군요. 이게 다 해준 님 덕분입니다.]“나?”
[넵! 해준 님이 열심히 레벨업을 해주신 덕에 조금이나마 힘을 되찾았어요.]“오, 진짜?”
[여전히 할 수 있는 건 많이 없지만요.]“뭘 할 수 있는데?”
[음··· 아! 해준 님 그동안 찰스 님의 노트를 가지고 다니느라 불편하셨죠?]라고 말하며 포테가 허공에서 손가락을 탁하고 튕겼다.
그러자 아버지의 노트가 두둥실 떠오르며 안에서부터 황금색 빛이 화악 쏟아져나왔다. 빛의 물결은 공중에서 회오리치다 그대로 해준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흐흐흐··· 됐다.]“되긴 뭐가 돼? 노트는 또 어떻게 된 거고?”
허둥대는 해준의 시야에 왼쪽에 새롭게 생겨난 점.
첫 번째 파란색 점이 정보창인데, 그 옆으로 못 보던 점이 추가되었다.
불러들이는 방법은 아마 처음과 비슷할 것이다. 해준은 속으로 노트라고 외쳤다.
<농업><축산><요리법>
예상대로 3개의 탭으로 이루어진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다.
먼저 농업 창을 활성화하자 그 아래로 리스트가 주르륵 생성되었다.
[밀] – 가루로 빻아 만들어 빵, 쿠키, 면 등을 만들 수 있다.*닭이 좋아하는 먹이.
[양배추] – 여러 음식의 재료로 쓰인다.*염소가 좋아하는 먹이.
···
축산 창에도 닭과 염소에 대한 설명과 그림이 자세하게 쓰여있었고, 마지막으로 요리법 창도 아버지의 노트에 있던 정보들이 그대로 옮겨져 있었다.
의기양양하게 웃던 포테가 무지개 깃털이 달린 펜을 해준에게 건넸다.
시험 삼아 적다만 고양이의 정보를 더 적어 넣었더니 정말 마법처럼 내용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하나 더.]“또 있어?”
포테가 해준의 손바닥 위에 연한 갈색의 씨앗 몇 개를 떨어트렸다.
“이게 무슨 씨ㅇ···어?”
[헤헤헤, 어떻습니까?]“이, 이게 뭐야? 포테, 네가 이렇게 한 거야?”
[넵!]변화는 추가된 홀로그램 창만이 아니었다.
해준의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이 더 보였다.
<방울토마토의 씨앗>
씨앗 옆으로 둥둥 떠다니는 글자들.
분명 이 씨앗의 정체이리라.
[멋지죠?]“죽이네. 다른 것도 볼 수 있어?”
[이쪽 차원에서 키운 것들이라면 뭐든 가능할 겁니다.]포테의 말처럼 해준이 키워왔던 작물에 이름이 표시됐다.
<밀>, <양배추>, <오이>···
심지어 암탉과 수탉, 병아리까지.
꽤 유용한 기능이라 생각됐다.
레몬 나무를 발견했을 때 라임이라 착각했던 것처럼 처음 발견한 농작물의 종류를 판가름하기 좋은 능력이었다.
“고마워, 포테.”
[별말씀을. 이 능력으로 농장을 더 크게 키워주세요!]***
효모를 만들기 시작한 지 3일째.
반죽에 변화가 생겼다.
꾸덕꾸덕한 반죽에 기포가 생겨 공기층이 형성되었다.
“오!”
“뭐야, 뭐야? 이제 빵 먹을 수 있는 거야?”
해준이 뱉은 감탄사에 클로에가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아직. 이제 하루만 더 지나면 될 것 같아.”
“내일?··· 어쩐지 기대된다.”
“말했잖아. 기대라 하고.”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해준이 말했다.
이제 효모 만들기의 마지막 단계. 600g의 밀가루와 600ml의 물을 넣고 골고루 섞어주었다.
“내일은 맛있는 식빵을 먹게 해줄 테니까 기대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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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고대하던 4일째 아침.
해준은 서둘러 농장 베이커리로 향했다.
기대감 서린 눈빛으로 서늘한 곳에 12시간 동안 두었던 효모 반죽을 꺼내왔다.
“오!”
“와~!”
“야아옹!”
[신기하다. 기포가 생겼어요!]걸쭉한 반죽에 보글보글 기포가 생겨났다.
발효가 아주 잘 됐다는 증거다.
주걱으로 들어보니 효모 종이 치즈처럼 쭉 늘어났다.
반을 덜어놓고, 나머지 반에 물과 밀가루를 추가로 넣었다. 이렇게 해두면 효모 종을 계속 만들 수 있다.
제대로 된 빵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모두의 눈빛이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