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130
129화. 언더커버(1)
***
혹시 그 녀석이 아버지가 보유한 수많은 건물 중 한 명의 세입자가 아닌지 조사부터 했다.
만약 그렇다면 리모델링이든 뭐든 핑계를 대고, 쫓아내면 되니까.
알아보니 차해준은 본인 소유의 구옥을 개조해 영업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쩝, 아쉽네.’
녀석을 괴롭힐 두 번째 플랜을 구상했다.
근처 건물에 녀석의 가게보다 더 힙한 돈가스 가게를 오픈하는 것.
적자 나더라도 무조건 싸게만 판다면 제아무리 미슐랭 빕 구르망에 선정된 매장이라도 버틸 재간이 없을 것이다.
‘어떻게든 레시피를 알아내는 게 먼저인데···.’
인스펙터의 평가를 보면 핵심은 좋은 식재료와 소스.
재료는 무조건 비싸고 좋은 걸 쓰면 되니 문제는 소스 레시피였다.
비법 소스라면 아마도 직원이 모두 퇴근한 시간에 몰래 작은 방에서 소스를 만들 것이다.
‘일단 맛이나 보러 가자.’
얼마나 맛이 대단하길래 미슐랭에 선정되었는지 직접 먹어봐야 가늠할 수 있을 터. 또, 자신이 고용한 강 셰프라면 비밀의 레시피를 최대한 비슷하게 구현해낼지도 몰랐다.
“강종혁 수셰프.”
재영이 주방에 있던 강종혁을 불렀다.
그는 세계 3대 요리학교 중 한 곳인 이탈리아 ICIF를 졸업하고, 미슐랭 레스토랑의 수셰프 자리까지 오른 인재였다.
비록 미슐랭 빕 구르망에는 오르지 못했어도, 그 덕분에 이재영의 식당은 꽤 인지도 있는 식당이 되었다.
“네, 사장님. 뭐 시키실 일이라도···.”
“매장에서는 셰프님으로 부르라니까.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알겠습니다.”
이재영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보통의 식당과 운영방식이 달랐다.
어디까지나 이재영 본인이 유명해지는 게 목표였기에 겉으로는 오너 셰프의 형태로 운영되었다.
당연하게도 대외적으로는 강종혁은 수셰프였고, 주방 책임자는 이재영 본인이었다. 셰프라고는 하지만, 영업시간에는 주방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게 전부. 요리와 주방 총괄은 강종혁이 하니 특별히 할 일은 없었다.
유명세를 타기 위해 뒷돈까지 줘가서 직접 저녁 생방송 프로그램에 두 번 출연하기는 했지만, 반응이 썩 좋지는 않았다.
-셰프 맞나? 색감도 별로고 맛도 없어 보임.
-어떻게 셰프 됐는지 궁금. 칼질도 서툴고, 플레이팅 솜씨도 별로.
-식당에 가봤는데, 엄청 맛있음.
-그게 미스터리임.
댓글도 별로고.
물타기를 위해 새로 판 아이디로 좋은 댓글을 달았지만,
-이재영 셰프. 실력 좋습니다. 방송은 악마의 편집을 당했든지 아니면 컨디션이 안 좋았겠죠. 너무 마녀사냥 하지 맙시다.
ㄴ팩트만 얘기했는데 무슨 마녀사냥?
ㄴ셰프님 여기서 이러지 마세요.
ㄴ추하다.
괜히 정체만 들통났다.
“밥 먹으러 갑시다.”
“밥이요? 장사 준비하려면 시간 빠듯한데요? 배고프시면 제가 요리를···.”
“거참. 가자면 가요. 점심 장사는 애들한테 맡기고.”
기분 좋을 리 없는 재영이 인상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고, 이재영을 따라나선 강종혁. 그들이 도착한 곳은 남부 법원 근처의 작은 골목이었다.
“여기는?··· 올해 빕 구르망에 선정된 썬플라워잖아요.”
“잘 알고 계시네요.”
“네. 공부 좀 했습니다.”
“그 열정으로 우리 식당을 빕 구르망에 올려놓으셨어야죠. 남의 식당 잘되는 꼴 보려고, 강 셰프님 스카우트한 게 아닌데.”
“······.”
느닷없는 팩폭에 강종혁이 함구했다.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생긴 강 셰프가 인상을 찡그렸다.
‘누군 하기 싫어서 안 하나?’
미슐랭 가이드에 오르는 일이 그토록 쉽다면 사람들이 미슐랭에 열광하겠는가.
미슐랭은 고유의 독창적인 레시피를 가진 오래된 전통의 맛집이나, 특유의 개성이 묻어나는 창의적인 메뉴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물론, 차해준 셰프가 아주 평범한 음식으로 동시에 빕 구르망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엄청난 특별 케이스에 해당했다.
“염병, 뭔 사람이 이렇게 많아?”
입구에 다다르기도 전에 썬플라워를 방문하려는 손님들의 인파에 혀를 내둘렀다.
평소에도 사람이 많았지만, 미슐랭 빕 구르망에 선정됐다는 소문이 퍼지자 평소보다 두 배는 많은 손님이 몰렸다.
번호표를 받은 손님들은 웨이팅을 하며 러블리엔젤 김민주가 그려서 더 유명해진 해바라기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재영은 입구의 미슐랭 가이드 선정 입간판을 괜히 발로 툭 건드리고, 번호표를 받아왔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다 마지막 손님으로 간신히 매장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가이드에도 소개된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 뚱드위치와 돈가스, 베이컨 토마토 파스타를 주문했다.
“감자 스프와 식전 빵 먼저 드리겠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비주얼의 스프와 빵.
기대 없이 빵을 작게 잘라 스프에 찍어 입에 넣는 순간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
“뭐 이렇게 맛있어?”
감자 스프의 맛은 깊었다.
고소하고, 담백하면서 속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맛.
“뭐지? 왜 감자 스프 따위가 맛있는 거야? 너무 부드럽잖아.”
이재영이 감탄하는 동안 강종혁도 오감을 총동원해 맛의 정체를 파헤쳤다.
“재료들이 모두 최상품이에요. 재료는 단순한데, 맛이 깊어요. 우유 말고 다른 뭔가가 들어갔고, 설마 버터도 수제로 만든 건가?”
고작 식전에 공짜로 제공되는 감자 스프와 빵의 맛이 이 정도라니.
“5성급 호텔에서도 이런 맛은 구경하기 힘듭니다.”
그렇게 감탄하는 사이 주문한 음식이 도착했다.
이번에도 담음새는 지극히 평범했지만, 맛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돈가스는 입에 넣는 순간 바삭한 튀김옷 안에서 돼지고기의 육즙이 팡팡 터져 나왔고, 파스타 역시 토마토소스 특유의 진한 감칠맛이 그대로 느껴졌다.
‘미쳤다.’
같은 요리사로서 존경심이 느껴질 정도의 맛.
접시 위의 음식이 사라지는 게 아까울 정도로 훌륭했다. 종혁은 가능하다면 메뉴판에 있는 요리 전부를 먹어보고 싶었다.
종혁이 황홀해하는 사이, 맞은 편에 앉은 이재영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다.
***
“6번 테이블 모둠 가스, 햄버그스테이크 나왔습니다.”
해준이 하얀 접시에 먹음직스럽게 담긴 요리를 내며 말했다.
미슐랭 가이드에 식당이 올라가며 손님이 급증했다.
노련한 이모님 3인방이 계신 한식 뷔페 주방보다 썬플라워 쪽의 일손이 더 부족해 해준은 당분간 썬플라워 주방에 있기로 했다.
“라스트 오더까지 다 뺐지?”
“네. 고생하셨어요. 사장님.”
“나보다 동식 형님이랑 니가 고생 많았지. 고생하셨어요, 형님.”
해준이 앞치마를 풀며 고생한 동식과 강훈의 등을 토닥였다.
설거지와 잡일을 도와줄 주방 인원을 충원했음에도 일손이 많이 부족했다. 이 모든 게 다 미슐랭 때문(?)이었다.
“미슐랭 여파가 장난 아니네요.”
“그러게. 며칠 반짝할 줄 알았더니. 끝이 안나.”
“어떡해요. 사장님?”
동식과 강훈이 차해준을 쳐다봤다.
주방 동선을 생각한다면 최소 한 명은 더 필요했다.
“한 명 더 충원해야겠지?”
“당장이요. 이대로는 며칠도 버티기 힘들 거예요.”
“구인 글 올리자.”
‘구인 글을 올린다고?’
압도적인 맛 차이에 위축되어 돌아가려던 이재영이 주방에서 들리는 대화 소리에 발을 멈췄다.
어쩌면 손쉽게 환상적인 맛을 내는 요리 레시피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가게에서 나온 재영이 강 셰프를 불러 세웠다.
“뭐 하실 말씀이라도?···”
“당분간 주방에 저 없어도 되겠죠?”
“뭐, 그야.”
어차피 재영이 주방에서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가 있어 동선이 꼬일 때도 있었으니, 주방 직원들은 은근히 그가 주방에서 나가길 바랐다.
“근데 왜요?”
“저 여기 취직하려고요.”
“여기라뇨? 썬플라워 말씀하시는 겁니까?”
눈을 가늘게 뜬 재영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이 왜요?”
“여기 레시피 좀 훔쳐 오게요.”
위장 취업을 해서 레시피를 훔쳐 바로 앞에 똑같은 가게를 차릴 생각이다.
같은 레시피로 100원이라도 더 싸게 팔면 제아무리 미슐랭이라도 매출에 타격을 입을 터.
“경쟁 업체의 비밀을 캐내는 산업 스파이로 위장 취업하는 거죠.”
말은 근사했지만, 그냥 레시피를 빼 오겠다는 심산이다.
종혁은 사장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근데 사장님.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 썬플라워 차해준 셰프 때문에 우리가 미슐랭에 오르지 못한 건 아니잖아요.”
“음··· 그냥. 기분 나빠서?”
유명 셰프 따위는 금방 될 줄 알았다.
요리가 뭐 별거 있는가. 그냥 좋은 재료 사다가 마진 남기지 않고 팔면 되는 거지. 그렇게 쉽게 생각하고, 돈을 쏟아부었다.
셰프와 주방 직원들도 모두 A급으로 뽑았고, 재료도 시장에서 가장 비싼 것들로만 냉장고에 채워 넣었다.
그렇게 돈을 쏟아부어도 얻지 못한 걸 가졌으니, 차해준에게 질투가 났다.
그냥 열 받아서 녀석이 잘되는 꼴은 못 보겠다.
“암튼 그렇게 알고 계세요.”
***
얼마 후.
“오늘부터 함께 일하게 될 이재영 씨라고 합니다. 서로 인사하세요.”
썬플라워 식구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이재영을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재영이라고 합니다.”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한 이재영.
태어나서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이렇게 인사를 해본 게 처음이다. 늘 뒷짐 지고 세입자들의 인사만 받던 그였기에.
‘어쩔 수 없지.’
현재 그는 요리에 관심이 많은 열정남 컨셉으로 주방 보조 자리에 지원했다.
해준은 이재영이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요리에 대한 열정이 마음에 든다며 선뜻 뽑아줬다.
‘멍청한 놈. 조만간 레시피 쪽쪽 빨아먹고, 바로 앞에 똑같은 매장을 오픈해주마.’
이재영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씰룩였다.
“반가워요. 고동식입니다.”
“이강훈입니다.”
“나머지 직원들은 강훈이 네가 소개해줘. 난 망원동에 다녀올게.”
“맡겨두세요, 사장님.”
해준이 식재료를 가득 실은 픽업트럭에 올라타며 말했다. 그가 떠나고, 강훈이 썬플라워 곳곳을 소개해줬다.
“대충 이 정도고, 저기 햇볕 쬐는 고양이는 우리 썬플라워 마스코트 뭉치. 여성 고객들한테 인기 짱이에요. 모르는 거 있으면 또 물어보세요.”
“고마워요.”
재영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정보를 수집하고, 레시피를 알아내기 전까지는 이들을 모두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했으니까.
“참, 저기 보이는 방은 출입금지예요.”
강훈이 주방 옆 작은 문을 가리키며 말하자, 이재영의 눈이 번뜩였다.
“출입금지? 왜요?”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사장님 지내는 숙소예요.”
“사장님이 저기서 지낸다고요?”
“네.”
“왜요?”
“왜라니요?”
“그건 저도 잘···.”
잠시 생각하던 강훈이 차해준 사장은 처음부터 그곳에서 지냈다고 했다.
자신 소유의 매장을 3개나 운영하며, TV에도 출연하는 유명 셰프가 식당에 딸린 작은 방에서 지낸다니···.
아주 수상했다.
‘저 방에서 뭔가 냄새가 나는데?’
“가시죠. 이제 재료 준비해야 하니까.”
“아!··· 네.”
주방 업무에 투입된 재영의 첫 업무는 샐러드 채소 다듬기였다. 양배추와 양상추 썰고, 그 밖의 신선 채소를 씻고 분류했다.
‘이런 채소는 도대체 어디서 구해오는 거야? 엄청 신선하네.’
이재영의 매장도 매일 가락시장에서 공수한 특A급 신선 채소만 사용한다. 그런데, 여긴 그것보다 훨씬 신선했다. 마치, 지금 막 밭에서 수확한 것처럼.
다른 재료도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평균 7천 원 가격대에 판매되는 요리의 재료로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새끼는 정체가 뭐지? 정말 한 푼도 안 남기고 파는 자선 사업가인가?’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도 수익이 날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처럼 특별한 목적이 있어 식당을 운영하는 것일 수도.
“재영 씨 이리 와봐요.”
그때 차해준 부재 시 주방을 책임지는 고동식이 재영을 불렀다.
“넵!”
“감자 스프 만드는 법 가르쳐줄게요.”
“감자 스프요?”
생각보다 빨리 기회가 왔기에 흠칫 놀랐다.
“어렵지 않으니까 긴장 안 해도 돼요.”
그런 이재영의 모습을 고동식은 요리에 대한 부담감으로 해석했다.
“잘 봐요. 일단 팬에 버터를 넣고, 양파랑 감자를 볶다가 우유를 넣으면 돼요. 뭉근하게 끓여주면 끝. 쉽죠?”
“레시피가 그게 다예요?”
“당연히 아니죠. 마무리로 소금 간 해야 하는데 그건 제가 할 거예요.”
“!!??”
초록창이나 구굴에 검색하면 금세 찾을 정도로 소름 끼치도록 단순한 레시피다.
그렇다는 건 역시나.
‘핵심 레시피는 아무도 안 가르쳐주는 거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