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131
130화. 언더커버(2)
***
직원들이 알지 못하게 버터나 우유에 미리 뭔가를 첨가해놨을 것이다. 핵심이 되는 비법 레시피는 모두 자신이 손에 쥐고, 놓지 않는 타입.
그러니 주방 직원이라 한들 그 비밀을 알 리 없었다.
주방에서 조리하는 다른 레시피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극히 간단하고, 쉬웠다.
그렇다는 건 수제 소스와 몇 가지 액체 재료들에 차해준이 뭔가 수를 써놨다는 이야기.
이재영의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생각보다 치밀한 놈이군. 쉽지 않겠어.’
레시피를 훔치는 작업이 생각보다 어려울 것임을 직감했다.
창업 직후부터 함께 일한 주방 직원들도 레시피를 모르는 걸 보니, 아무리 신뢰를 얻어도 차해준은 자신의 레시피를 공개하지 않을 것이다.
‘저 방에 들어가면 분명 뭔가를 얻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이재영의 시선이 출입금지 표시가 붙은 문을 향했다.
썬플라워에서 유일하게 차해준 본인만 출입이 가능한 공간.
대외적으로는 숙소라고 하지만, 그 안에서 비밀스럽게 뭔가를 만드는 게 분명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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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이재영의 관심은 차해준에 쏠렸다.
아주 은밀하게 그의 동선과 썬플라워에서의 일들을 파악해나갔다.
출근 시간인 오전 6시. 어김없이 그날 쓸 재료들이 배달되어있다. 업체 관리는 모두 차해준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재료를 납품하는 업체조차 공개하지 않겠다?!’
차해준의 치밀함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다른 매장을 오픈할 것을 염려해 최상급 재료를 가져오는 업체조차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재료뿐만이 아니다. 그날 쓸 소스들까지 직접 만든 해준은 곧장 망원동으로 향했다.
재영은 짐꾼을 자처하며 그의 동선을 따라 움직였다.
차해준은 한식 뷔페에 들러 아침 장사에 필요한 재료를 내려놓고, 주방 찬모들과 함께 요리에 들어간다.
그렇게 오전 장사가 끝나면 JH 굿즈 샵으로. 다시 한식 뷔페와 썬플라워로 복귀한다.
‘이 자식. 뭐지? 하루 종일 일만 하잖아.’
소문에는 하루 매출이 천만 단위는 우습게 넘는다고 했다. 가만히 뒷짐 지고 있어도 통장에 돈이 쌓일 텐데 뭐하러?!
‘별종이네.’
게다가 출입금지 지역의 관리는 아주 철저했고.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이제 포기하고 돌아가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 때쯤.
“재영 씨 퇴근 안 하세요?”
“아직 일이 덜 끝나서요.”
“열심이네요.”
차해준이 흐뭇한 표정으로 재영을 보며 말했다.
“남은 건 내가 할 테니까 그만 들어가세요.”
말투와 표정에서 차해준이 출입금지 방에 들어가려는 속셈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돌아가는 척 밖에서 기다리자.’
그 방에서 뭘 하는지 알아낼 절호의 기회였다.
재영은 퇴근하는 척 해준에게 인사를 하고, 마당으로 나왔다. 조금 어두운 곳에 몸을 숨기고, 기다리기를 몇 분.
“여보세요? 응. 가게 앞에 왔다고? 잠깐만 내가 나갈게.”
차해준이 전화 통화를 하며 밖으로 나갔고, 재영은 스페어 현관 키로 몰래 가게에 침입했다.
어두컴컴한 홀을 지나 주방 맞은 편 출입이 금지된 방까지 더듬거리며 나아갔다.
“냐아앙!”
“으이씨, 깜짝이야.”
느닷없는 인기척에 놀란 재영.
어둠 속에 나타난 건 커다란 고양이 뭉치였다.
“훠이~ 저리 가.”
“냥!!”
뭉치가 털을 곤두세우며 이재영의 앞길을 막아섰다.
녀석의 공격력은 고블린 한 마리는 혼자서도 거뜬히 해치우고도 남을 정도. 그러나, 사람은 절대 공격하면 안 된다는 차해준의 명령이 있었기에 재영을 막아서기만 했다.
“크아앙.”
털을 곤두세우며 하악질로 재영을 위협했다.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 그러나 재영은 이를 가볍게 무시하며 발로 슥- 밀어버렸다.
“저리 꺼지라고.”
자신을 맛집 오너 셰프로 만들어줄 비장의 레시피가 저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고작 고양이 따위 때문에 포기할 리 없었다.
미세하게 불빛이 새어 나오는 출입금지 방.
손잡이를 잡고 조심스럽게 돌렸더니 쉽게 문이 열렸다.
‘나이스~!’
작은 책상과 침대, 옷장이 전부인 아주 평범한 방.
몰래 비법 소스를 만드는 공간은 아닌듯했다.
그렇다면, 비법 소스가 적힌 레시피를 보관했을 터.
책상을 뒤져보니 이재영의 예상대로 낡은 레시피 노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았다.”
내용을 확인하는 건 다음 일.
재영은 서둘러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카메라 앱을 켜 은밀하고, 신속하게 페이지를 넘기며 사진을 찍었다.
신속하게 마지막 페이지까지 촬영한 재영은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
“이, 이게 뭡니까?”
퇴근 후, 집에서 쉬고 있던 강종혁을 콜한 이재영이 그의 얼굴 앞으로 폰을 들이밀었다.
“뭐라뇨. 당연히 레시피지. 그것도 무려 썬플라워 비법 레시피. 으하하!”
레시피를 훔쳐 오겠다고 위장 취업을 했지만, 정말 훔쳐 올 줄 생각도 못 했다.
이재영은 강종혁의 생각보다 더 상도덕도 없고 양심도 없는 인물이었다.
‘완전 쓰레기네.’
그렇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고용주에게 속마음을 완전히 드러낼 수는 없는 일.
게다가 그는 고액의 연봉도 주지 않았는가.
“빨리 만들어봅시다.”
“네? 뭘 만들어요?”
“당연히 돈가스죠. 우리도 내일부터 당장 만들어 팝시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인데. 파인 다이닝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고퀄리티를 추구하는 메뉴에 돈가스를 추가하는 건 좀···.”
“하기 싫다고요? 세상에 셰프는 많습니다.”
이재영이 경고하듯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끄으응···.”
오너의 명령은 절대적.
무엇보다 식당을 떠나고 싶지 않은 종혁은 이재영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종혁은 돈가스에 필요한 레시피를 차분히 읽어내려갔다.
-재료 : 오이, 식초, 설탕, 소금, 물
-조리 순서
1. 오이를 깨끗이 세척하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2. 유리병을···.
‘응?! 이거 뭐지.’
묘한 이질감을 느낀 강종혁이 서둘러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재료 : 빵가루, 달걀, 밀가루, 돼지고기, 소금, 후추
-조리 순서
1. 돼지고기 등심을 망치로 두드리며 찢어지지 않게 얇고 넓게 편다.
2.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한다.
3. 밀가루 – 달걀 물 – 빵가루 순서로 묻혀 기름에 넣고 튀긴다.
-재료 : 밀가루, 버터, 케첩, 설탕, 산양유, 와인, 물
···
‘너무 간단하잖아.’
완전 기초적인 레시피였다.
셰프만의 독창적인 비법 따위는 없었다.
작물 키우는 방법과 비법이라기에는 아주 기초적인 단순한 레시피가 전부였다. 특별한 팁도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비장의 조리법도 없다.
“사장님···.”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필요한 재료가 있으면 말해요. 내일 당장 주문 넣을 테니.”
“그게 아니라··· 이거 정말 차해준 셰프의 레시피 노트 맞나요?”
“당연하죠. 제가 몰래 출입금지 방에서 훔쳐 온 거라고요.”
“이것 좀 보시죠.”
종혁이 레시피를 보여줬다.
“레시피가 너무 평범해요.”
과연 요리 초보인 이재영의 눈에도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레시피.
그러나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말이 있듯 복잡한 조리법이 아닌, 단순함에서 끌어낸 맛의 극의 일지도 모른다.
“일단 만들어보세요. 맛부터 보자고.”
이재영의 독촉에 종혁은 앞치마를 두르고, 조리대 앞에 섰다.
레시피를 꼼꼼하게 읽어내려가며 즉석에서 돈가스와 소스를 조리.
사정상 시간이 며칠 걸리는 수제 피클을 제외하고는 노트에 적힌 레시피대로 음식을 만들었다. 이미 한번 먹어본 음식이기에 플레이팅과 모양은 90% 흡사하게 재현했다.
“드셔보세요.”
“오!~”
플레이팅은 일단 합격.
썬플라워 돈가스와 아주 비슷했다.
‘제법 그럴싸한데?’
잔뜩 기대한 재영이 포크와 나이프로 돈가스를 큼지막하게 잘라 입에 욱여넣었다.
우적우적-
어쩐지 씹을수록 조금씩 굳어져 가는 그의 표정.
마침내 입안의 음식물을 삼킨 그가 실망한 얼굴로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았다.
“윽, 이게 뭐야. 평범하잖아.”
식당에서 먹었던 돈가스와 전혀 다른 맛.
“당연하죠. 레시피가 평범하니까요.”
“그럼 내가 레시피를 잘못 가져왔다 이 말이에요?”
“그건 저도 모르죠.”
끊임없이 미식을 추구하고, 요리를 만들다 보면 레시피만 봐도 어떤 맛인지 대충 그려진다.
경양식당 썬플라워. 차해준의 돈가스는 재료의 숨겨진 맛 하나하나를 모두 끌어낸 환상적인 레시피.
마치 격투에 타고난 재능을 가진 소년이 싸움이 싫어 일진에게 두들겨 맞다가 어느 날 좋은 선생님을 만나 자신의 재능을 깨우쳐 복수하는 것처럼. 차해준의 레시피는 재료의 본연의 숨겨진 맛을 모두 끌어내 입안에서 춤추게 만든다.
그 환상적인 맛은 절대 이런 레시피로는 나올 수 없다.
강종혁은 자신의 요리 인생을 걸고 확신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먹은 그날의 돈가스는 이런 맛이 아니에요.”
‘설마 함정?’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텅 빈 책상 서랍에 마치 ‘이게 레시피야!’라고 말하듯 낡은 노트만 들어있었다.
‘젠장, 그때 눈치 챘어야 했는데. 용의주도한 놈.’
어쩐지 너무 쉬웠다.
애초에 모든 게 연기였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시험하려는 게 목적이었을지도.
차해준이 쳐 놓은 악랄한(?) 덫에 보기 좋게 걸려든 셈이다.
내일 아침이면 자신을 비웃으며 몰래 설치해둔 카메라를 꺼낼 게 분명했다.
‘레시피 도둑이라며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겠지.’
차해준이라는 인물이 소름 끼치도록 치밀하고, 계획적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 재영은 분노가 폭발했다.
‘어떻게든 반드시 무너뜨린다.’
빠득-
이를 갈았다.
***
“으흑, 소름이야.”
마치 상태 이상 공포라도 걸린 것처럼 해준의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뭐지? 누가 날 욕하나?’
어찌나 강력한 오한이 드는지, 자신이 전투 중이라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해준이 잠시 멈칫한 사이.
타이밍을 재던 고블린 무리가 해준에게 일제 공격을 퍼부었다.
“이크.”
간신히 몸을 회전시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한 해준.
곧장 반격을 감행했다.
“뭉치야, 방패 고블린 발목 물어.”
“냥!”
뭉치가 날렵하게 달려 방패 고블린의 발아래로 파고들며 발목을 문 사이, 해준은 옆으로 구르며 활시위를 당겼다.
피이잉-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날아간 화살이 도끼를 들고 달려 고블린 선두의 미간을 관통했다.
“꾸에엑.”
쾅-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쓰러졌고.
두 번째 화살이 연이어 날아와 활시위를 당기는 고블린의 손등에 명중.
“됐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활 대신 장검을 들고 무장이 해제된 녀석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탄력을 받아 검을 위에서 아래로.
휙-
빠각-
“꾸에엑.”
“꾸르륵.”
연이어 뭉치가 탱킹하고 있던 마지막 녀석까지 처리했다.
뭉치와의 호흡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오늘 정도의 전투력이라면 고블린 10마리쯤은 피해 없이 토벌 가능했다.
“수고했어.”
“냥냥!”
해준은 서둘러 전리품을 확인했다.
오늘 공략 지역은 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던 고블린 경작지. 녀석들은 이곳에서 재생 풀, 독성 중화 열매와 생명 뿌리를 재배하고 있었다.
가방에 재료들을 차곡차곡 넣고 있을 때.
‘근데 이건 뭐지?’
보지 못했던 신비한 약초를 새롭게 발견했다.
섭취 가능한 만드라고라의 잔뿌리.
효능이 궁금했다.
“만드라고라라면 산삼 같은 거잖아. 그럼 술로 담가볼까?”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운 좋게 건강과 관련된 좋은 버프가 붙을 수도 있고.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잔뿌리까지 배낭에 넣은 해준은 자리에 앉아 숨을 골랐다.
“뭉치야, 잠깐 쉬자.”
“냥.”
고생한 뭉치에게 체력 회복용 육포를 나눠주고, 자신의 입에도 하나 넣고 오물거렸다.
“맛있네.”
오늘 경작지를 공략한 덕분에 당분간 마법 재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매장이 점점 늘어나고, 해야 할 요리가 많아지면서 재료가 늘 부족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차원의 농장 생산성이 좋아져 일반 재료는 수급이 넘친다는 점.
“당분간 걱정은 끝이다. 짬이 났으니 민주도 좀 만나고, 쉬어야지.”
민주와 해준은 서로 너무 바빠 만날 틈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톡과 통화뿐. 그마저도 통화는 멤버들의 눈치를 봐야 해서 강제로 장거리 연애 커플이 되어버렸다.
“냐아앙. 냥냥!”
“그래. 너도 당분간 쉬어.”
해준이 뭉치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녀석이 뭔가 생각난 듯 해준에게 울어댔다.
“냐아양~ 냥~ 냥냥!”
“뭐라고?!”
뭉치의 울음소리를 알아들은 해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내 방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