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134
133화. 언더커버(5)
***
“사장님, 보셨어요?”
동식과 함께 밖에 다녀온 강훈이 잔뜩 화난 목소리로 해준에게 말했다.
동식도 표현은 안 했지만,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뭘?”
“골목 입구에 경양식당 새로 생긴 거.”
“한두 개도 아닌데, 뭐.”
차해준과 썬플라워가 유명해지면서, 골목 주변으로 가게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소셜 네트워크와 미디어를 통해 입소문이 날 대로 난, 게다가 미슐랭 가이드에 선정될 정도의 맛집이 생겼으니 썬플라워에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받아먹으려는 식당이 생기는 것도 인지상정.
해준은 그런 것들을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도 이재영 그 자식은 너무 하잖아요. 블로그랑 SNS 보니까 맛도 완전 똑같다는데, 우리 레시피 베껴간 거잖아요.”
“맞습니다. 이름도 써니 레스토랑이 뭡니까. 완전 우리 썬플라워 연상되게 지어놓고. 아, 열 받네.”
덩달아 동식까지 폭발했다.
“아오, 레시피 가짜로 가르쳐줄걸.”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게. 뭐라도 걸면 걸리는 거 아닌가?”
“괜찮아.”
“괜찮긴요. 사장님이 그렇게 물렁물렁하게 나오니까 그 자식이 뻔뻔하게 나오는 겁니다.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사장님.”
혼났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흥분해서.”
“괜찮아요.”
동식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의도했던 바다.
대어를 낚기 위해 미끼도 던져놓고, 입질이 와도 꾹 참는 중이다.
사정을 모르는 강훈과 동식은 열폭했지만.
“어차피 돈가스를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조금만 연구하면 누구나 금방 따라 할 수 있어요.”
“보살이네. 보살. 아니, 생불이다.”
“저 기독교예요, 형님.”
“아멘. 지저스 크라이스트.”
“뻥입니다. 무교.”
“홀리 쉿!”
해준은 농담으로 분위기를 무마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조금 더 묵혔다가 녀석이 더 높이 날아오르면 그때가 찬스다.
가장 높은 곳에 올랐을 때 떨어트려야 가장 아프니까.
***
“이 검사님. 식사 어떻게 하시겠어요?”
서류에 얼굴을 묻은 채 열일하던 이강식 검사에게 조사관이 다가와 물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요?”
“저희는 구내식당 질려서 수제버거 먹기로 했는데, 검사님도 함께 가실래요?”
“먼저 드세요. 전 연수원 동기랑 약속이 있어서.”
“그럼 저희 먼저.”
“네, 식사 맛있게 하세요.”
마저 서류를 훑어보던 강식은 약속 시각이 다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향한 곳은 검찰청 앞 법조 건물. 때마침 동기인 김인철 변호사가 건물에서 걸어 나왔다.
“김변! 여기.”
“이검 오랜만이야.”
김인철은 오랜만에 만난 동기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서로 일이 바빠 오늘처럼 약속을 정하지 않으면 보기 힘들었다.
“잘 지내지?”
“나야 늘 똑같지.”
“이번에 제법 큰 사건 맡았다면서.”
“그래서 맨날 야근이다. 다른 검사들은 골프며 접대며 잘 다니는데, 난 왜 일복만 터져서 쯧.”
“큭, 불쌍한 놈. 내가 오늘 시원하게 쏠게.”
“김영란법 걸린다 이놈아.”
“걱정하지 마. 거기 싸.”
“오~ 뭐 사줄 건데?”
“돈가스.”
“돈가스? 으이구, 누가 초딩 입맛 아니랄까 봐 돈가스는.”
“모르는 소리 하지 마. 거기가 얼마나 유명한데. 이번에 미슐랭에도 선정됐다고.”
“돈가스가 미슐랭 가이드에 선정됐다고? 왜 아주 7천 원짜리 한식 뷔페도 됐다고 하지 그러냐?”
“응 거기도 됐음.”
“웃기시네.”
“일단 가. 배고프다.”
김인철과 이강식이 법원 건물 뒤편의 주택가 골목으로 향했다.
조용할 것 같았던 골목은 의외로 사람이 많았다.
심플하고, 모던한 느낌의 간판 아래 카페, 디저트 샵, 경양식당이 자리했다.
인철이 동기를 끌고 간 곳은 골목의 가장 끝.
해바라기 그림이 인상적인 작은 마당이 딸린 주택을 개조한 식당이었다.
“여기야.”
“오 진짜네.”
입구에 자랑스럽게 놓여있는 미슐랭 빕 구르망 선정 기념 입간판을 보며 중얼거렸다.
“맞다니까. 속아서만 살았어?”
“응. 자꾸 범죄자들이 구라를 쳐. 그래서 내가 웬만하면 사람 안 믿잖아.”
“크으~ 직업병.”
“어서 오세요~!!”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은정이 두 사람을 반갑게 맞았다.
“어머, 변호사님. 또 오셨어요?”
“은정 씨. 안녕?”
“또라니? 인마, 너 언제 왔길래 이런 반응이냐?”
“응. 오늘 아침.”
“미친놈.”
“니가 몰라서 그래. 여기 모닝 정식이 얼마 맛있는데.”
마누라 밥보다 낫다.
요즘은 일찍 일이 있는 날이면 무조건 여기서 아침을 때운다.
‘그래도 하루에 두 번은 심했나?’
상관없다.
맛있으면 그만이니까.
“이쪽으로 앉으세요.”
“고마워. 강식아, 저기로 가자. 은정 씨 우리 돈가스 2인분 부탁해.”
“넵!”
“근데, 오늘따라 손님이 많이 없네.”
“뭔 소리야? 빈 테이블이 하나도 없는데.”
김인철의 말에 강식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소송 서류만 들여다보더니 저 녀석 눈에 이 많은 손님이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그러니까 없는 거지. 여긴 30분 웨이팅 기본이야.”
썬플라워에서 손님이 별로 없다는 건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
이곳에서 줄을 서지 않는 경우는 없다.
예약을 받지 않으니 웨이팅은 기본. 조금만 타이밍이 어긋나면 한 시간은 꼬박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웨이팅 없이 바로 들어왔으니 퇴근길에 로또를 사도 될 행운이다.
“그 정도야?”
“그럼.”
“에이, 요즘은 안 그래요. 근처에 식당들이 많이 생겨서.”
주방에 있던 해준이 빵과 감자 스프를 들고나오며 말했다.
“차 셰프.”
“돈가스, 가장 두툼한 놈으로 튀김기에 넣었습니다.”
“땡큐. 인사해. 여긴 내 연수원 동기 이강식 검사.”
둘은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하긴 골목에 못 보던 식당들이 꽤 생겼어. 차 셰프 타격 있는 거 아냐?”
“타격은요. 찾아주시는 단골이 이렇게 많은데. 덕분에 좀 쉬고 좋죠. 그동안 돈가스 튀기느라 직원들이 엄청 고생했어요.”
해준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말처럼 다른 가게들은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지만, 적어도 이재영의 ‘써니’ 레스토랑만큼은 영향을 끼쳤다.
당연했다.
레시피와 재료 모두 차해준의 것이었으니까.
100% 같은 맛에 더 싸니 누구라도 그곳에 걸음을 할 것이다.
“그래도 난 배신 안 해요.”
“감사합니다. 하하하. 충성의 대가로 와인 한 잔씩 서비스하죠.”
해준이 와인 냉장고에서 와인을 한 병 꺼내왔다.
오늘 아침 농장 저장고에서 꺼내온 레드 와인.
이번에 숙성한 와인은 특별히 맛이 더 좋았다. 주당 제임스 아저씨도 극찬한 맛.
역시나 둘의 반응은 뜨거웠다.
“크으~ 역시 차 셰프 솜씨는 일품이야.”
“이걸 직접 담갔다고요?”
“그냥 취미입니다.”
“그런 수준이 아닌 거 같은데···.”
“이 검. 저기 봐. 저 사진. 차 셰프 와인은 와인 애호가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도 극찬했다고.”
도대체 이렇게 대단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왜 법원 뒷골목에서 돈가스를 튀겨 팔고 있는 거지?
차해준의 이력을 들은 이강식이 처음 든 의문이었다.
와인도 와인이지만, 돈가스의 맛도 훌륭했다.
입에 넣는 순간 폭죽처럼 터지는 육즙.
돼지고기의 부드러운 식감과 튀김옷의 바삭한 식감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졌다.
‘미쳤네.’
고작 돈가스라고 깎아내렸던 자신을 책망했다.
김인철이 왜 삼시 세끼를 여기서 해결하려는지 그 이유도.
‘나도 내일부터 여기 출근 도장 찍는다.’
없던 식탐도 생기던 그때.
캠핑과 불멍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던 김인철과 해준의 입에서 흥미로운 단어가 튀어나왔다.
“멀리 갈 거 있나요. 언제 놀러 오세요. 마당에 불 피우고, 삼겹살 구워드릴게요.”
미끼를 덥석 문 김인철이 눈을 반짝였다.
“언제? 언제?!”
차마 묻지는 못했지만, 이강식은 자신도 끼면 안 되냐고 눈으로 묻고 있었다.
“조만 간요. 검사님도.”
‘나이스!’
강식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약속 꼭 지켜.”
“넵!”
***
며칠 후.
TV에서 익숙한 골목이 나왔다.
“오늘은 돈가스에 진심인 한 남자를 만나보겠습니다. 한 남자가 있어~♪ 돈가스를 사랑한~♬ 써니 레스토랑의 이재영 셰프!”
활기찬 목소리의 리포터가 주인공을 소개했고, 반듯하게 조리복을 차려입은 이재영이 등장했다.
뻔뻔하게도 재영은 돈가스에 딱 맞는 고기를 찾고, 소스를 연구하느라 5년을 쏟아부었다고 거짓말을 늘어놨다.
힘없는 임차인을 협박해 임대료를 몇 배나 올리는 주제에 저렴한 가격에 배불리 드시는 손님을 보면 뿌듯하다는 인터뷰까지.
“허허. 뻥이라는 뻥은 있는 대로 치는구만.”
TV를 보던 차해준이 헛웃음을 쳤다.
강훈이 보내준 링크를 확인해보니 광고성 블로그에 식당 광고를 엄청나게 때리고, 댓글 작업도 한 것 같았다.
-원조는 썬플라워 아닌가? 미슐랭도 받고.
└요즘은 써니가 대세지. 언제적 썬플라워 ㅋㅋ
└원조가 무슨 소용. 맛은 똑같고, 더 싼데. 소문에 미슐랭도 연줄이 있다던데.
-맛도 비슷함.
└ㅇㅇ 차해준 셰프가 레시피 훔친 거라던데. 관계자한테 들었는데 원래 이재영 비법이라고 함.
└헐! 대박.
└어쩐지!
줄줄이 말도 안 되는 악플이 달리는 걸 보면.
“흐음···.”
‘이제 때가 됐네.’
TV를 끄고, 썬플라워 직원들을 불러모았다.
“오랜만에 일찍 끝날 거 같은데, 오늘 저녁에 회식이나 할까요?”
“회식? 좋죠.”
“전 콜!”
“저두염~.”
선약이 있는 직원들은 빠지고 동식, 강훈, 은정이 함께하기로 했다.
“썰렁한가? 민주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보고 싶다. 김민주. 요즘 뭐하지?”
‘나도.’
해준도 강훈과 은정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럼 몇 명 더 부르지.”
“누구요?”
“있어. 내가 알아서 부를게.”
잠시 후,
‘사람 꽤 있네.’
써니 레스토랑은 썬플라워와 비슷한 수준의 손님이 있었다.
해준을 발견한 재영이 나와,
“바쁘실 텐데 여긴 어쩐 일?··· 아, 나 때문에 한가한가? 큭.”
라며 비아냥거렸다.
그럼에도 해준은 사람 좋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관둘 때 송별회도 못 했는데, 오늘 술이나 한잔하죠. 마감치고 오세요.”
속이 좋은 건가?
아니면, 일인자의 여유인가?
술이라니. 제정신으로 할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장사가 쪼그라들어 정신이 혼미해지셨나? 제가 누군지는 아시죠?”
“당연하죠. 그래도 한 골목에서 장사하는 처지에 얼굴 붉힐 수도 없고. 친하게 지내자는 의미에서.”
‘큭, 그 여유도 얼마 안 남았다.’
뒷돈까지 찔러줘 가며 방송 스케줄을 잡았다.
어제 이미 방송이 나갔고, 내일도 하나 잡혀있다.
게다가 파워 블로거에게 비싼 돈 주고 광고 글을 의뢰해놓은 상태. 댓글 알바까지 준비해놨으니 돈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들어간 돈이 한두 푼이 아니야.’
밤마다 배 아파할 녀석을 생각하니 통쾌했다.
게다가 일만 잘 해결되면 수천억 원의 재산이 자신의 것이 되니.
‘거절할 이유도 없지. 이 기회에 가서 분위기 염탐이나 하고 오자.’
혹시라도 자신이 놓친 뭔가를 더 얻어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회식이면 술도 먹고 할 테니, 기회도 충분했고.
“으흐흐··· 좋습니다.”
“이따 봐요. 바쁘더라도 꼭 오시고.”
“걱정하지 마세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가죠.”
이제 무대 세팅은 다 끝났다.
재영과 인사하고 돌아선 해준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재밌는 저녁이 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