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135
134화. 언더커버(6)
***
잔디밭 마당 한가운데 테이블을 깔았다.
고기 굽는 세팅을 하고, 주변으로 앵두 전구도 달아 분위기를 냈다.
“이렇게 꾸미니까 완전 캠핑장이 따로 없네.”
“캠프파이어도 하는 건가? 오랜만에 불멍하고 싶다.”
“난 삼겹살멍.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 보고 싶어.”
“오늘 삼겹살 안 구울 건데.”
“으에?!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회식에는 삼겹살이지.”
“오늘은 포갈비야.”
“흐헙, 포갈비라면 소 갈빗대에 붙은 살코기를 길게 포 뜬 소갈비의 진수. 너무 비싸서 성공한 사람들만 먹을 수 있다는 바로 그 부위?!!”
“으흐흐, 오랜만에 배에 기름칠 좀 하겠군.”
“전 회식한다는 말에 점심도 굶었어요.”
늘 고기에 진심인 세 사람.
강훈, 동식, 은정의 표정이 더없이 밝아졌다.
“배 터지게 먹고, 남은 거 싸줄 테니까 가져가서 가족들도 구워주세요.”
“나 진짜 썬플라워에 뼈를 묻을 거야.”
“오빠, 나도.”
월드컵 4강 신화에 버금가는 벅찬 감동에 서로 얼싸안고 있을 때.
“생각보다 분위기 좋네요? 요즘 손님도 많이 줄었을 텐데.”
이재영이 찬물을 끼얹으며 나타났다.
그의 등장에 일순 얼굴이 굳는 세 사람.
“아씨, 뭐야?”
“갑자기 밥맛 뚝 떨어지게.”
“니가 여길 어디라고 기어들어 오냐? 당장 안 꺼져?”
고동식이 인상을 구기며 험악한 말을 내뱉었다.
“어이구, 무서워라. 왜 이래요? 나도 엄연히 초대받고 온 사람인데.”
“초대? 누가 널 초대하냐?”
“누구긴. 아저씨네 사장이지.”
재영의 말에 동식이 몸을 돌려 고기를 들고나오는 해준을 바라보았다.
왜 초대했냐는 표정이다.
“회식은 왁자지껄한 게 좋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쳇, 술맛 떨어지게 생겼네.”
“강훈이 너도 술맛 좋게 생기지는 않았어.”
“뭐야?!”
“이 자식이.”
동식과 강훈 그리고 이재영이 서로 으르렁거렸다.
“자자. 즐겁게 먹고 놀자고 모인 자리니까 싸우지 마세요.”
차해준의 중재 몸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그대로 내버려 두면 언제든 충돌이 일어날 기세였다.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던 차에,
“우리 왔습니다.”
“저희가 너무 늦었나요?”
마지막 초대 손님인 김인철과 이강식이 도착했다.
둘의 등장에 죽일 듯 재영을 죽일 듯 노려보던 동식과 강훈이 눈에 힘을 풀었다.
해준이 특별 초대한 손님들 앞에서 직원이 폐를 끼칠 수는 없었으니까.
“아니에요. 딱 맞춰 오셨어요. 이제 오실 분 다 오셨으니까 슬슬 고기 구워볼까요?”
“아니, 그건 소고기?”
“네. 무려 소예요. 소.”
“으하하. 야근 째고 온 보람이 있네요.”
강식은 내일 아침 일찍 부장 검사에게 보고할 서류도 내팽개치고 달려왔다. 내일의 나에게는 미안했지만, 오늘의 난 꼭 차해준의 와인을 맛보고 싶었다.
거기에 덤으로 숯불에 구운 생갈비가 안주라니.
‘째길 잘했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지않아도 요즘 골치 아픈 사건들을 맡느라 조금은 힐링이 필요했으니까.
“두 분은 와인이죠?”
본격적으로 불 앞에 서기 전, 해준이 김인철과 이강식을 위해 특제 와인을 한 병 밀어 넣었다.
[쌉싸름한 레드 와인 – 스트레스로 잔뜩 경직된 육체 피로를 풀어준다. 적당량을 섭취하면 멘탈이 강해져 어떠한 말에도 내상을 입지 않는다.“아이고,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차 셰프. 역시 소고기에는 레드와인이지.”
“별말씀을요. 그럼 마지막까지 편안히 드세요.”
싱긋 웃어 보인 해준은 시뻘겋게 타오르는 숯 위에 마블링 탁월한 소갈비를 올렸다.
***
“으악! 이거 뭐야.”
다음날 새벽, 낚시 예능인 시골 어부 촬영을 위해 완도로 향하던 민주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어찌나 컸던지 운전을 하던 로드매니저의 핸들이 흔들릴 지경이었다. 이어폰을 끼고, 다시 보기를 시청하던 서아도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물어왔다.
“아, 아니야···.”
“아닌 게 아닌뎁쇼. 언니 뭔 일이야. 말해봐요.”
“그게··· 이, 이거 때문에.”
시무룩한 얼굴로 폰을 내민 민주.
익숙한 장소에서 해준과 안면 있는 사람들이 소갈비를 구워 먹는 사진이었다.
“여기 썬플라워잖아요.”
“응. 오늘 회식한대.”
“그게 그렇게 소리 지를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아, 언니 소갈비 먹고 싶어서? 맞아. 소갈비면 쌉인정이지. 놀랄만해. 음음.”
“아니. 그게···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놀란 건 소갈비 때문이 아니었으니까.
‘그게 아니라 나도 해준 오빠랑 놀고 싶다고.’
차마 속마음을 밝히진 못했다.
아직 둘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요즘 스케줄이 워낙 바빠 해준의 얼굴을 통 볼 수 없었다.
해준에게 어울릴 여자가 되기 위해 아이돌의 길을 선택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대박이 나는 바람에 더 못 만나게 되어버렸다.
‘좋은 거야, 나쁜 거야? 히잉···.’
“근데 넌 뭐 보고 있었어? 시골 어부 모니터?”
잠시 실망하던 민주가 화제를 돌렸다.
“아뇨. 복면셰프.”
“복면셰프? 그게 뭐야?”
“헐, 언니 몰라요? 이거 요즘 완전 핫한 프로그램인데.”
침샘 유발 위꼴 방송.
다이어트 방해 일등 공신.
복면을 쓰고 출연한 셰프들이 순수하게 음식 실력으로 겨루는 프로그램으로 방송이 시작되면 배달 어플 주문율이 폭증한다는 마성의 프로그램이다.
“그래? 그런 거면 우리 해준 오빠 나가면 바로 일등 먹겠네.”
“우리 해준 오빠?”
서아가 눈을 가늘게 뜨자, 민주가 당황했다.
“뭐, 뭐!”
“쓰읍~ 우리라니.”
“우리가 뭐 어때서. 우리. 그냥 우리라고! 우리 매니저. 우리 서아. 우리 멤버들.”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진 민주는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귀엽고 매력적이었다.
서아가 앞자리를 힐끗거렸다. 매니저는 작게 음악을 틀어놓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운전에 열중하고 있었다.
“언니 그거 알아요? 언니가 셰프님 볼 때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거?”
“내, 내가 뭘.”
“우리 다 알고 있어요.”
“우, 우리라니?”
멤버들은 둘이 주고받는 눈빛과 바쁜 스케줄에도 러블리엔젤의 식사를 꼭 챙기는 차해준의 행동에서 둘이 보통 사이가 아님을 짐작했다.
“다··· 알아?”
“네. 우린 언니편. 회사에 절대 들키지 말아요.”
당연하게도 연애 금지 조항이 붙어있다.
데뷔와 동시에 휴대전화도 빼앗기는 게 국룰이지만, 음방에서 1위를 하는 덕에 금세 되찾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스캔들 문제만큼은 사정이 달랐다.
김정훈 대표는 연애는 금지지만, 만약 하게 된다면 절대 회사와 파파라치에게 걸리지 말 것을 당부했다.
“고마워.”
“숙소에서 몰래 데이트해요. 자리 비켜줄 테니까. 크큭.”
“숙소에서?···”
서아의 은근한 말에 무슨 상상을 했는지 이번엔 얼굴이 폭발할 지경.
“어?! 언니 눈에 음란 마귀 꼈다.”
“아, 아니거든!”
“뉘에~ 뉘에~ 아니라고 치죠.”
“어쭈 이게.”
민주가 서아의 약점인 옆구리 간지럼 공격에 들어갔다.
“꺄앗~ 하지 마요.”
찰싹 달라붙어서.
***
“날도 더운데 거리 좀 두시죠? 제 옆에 꿀 발라 놨습니까?”
강훈의 비아냥에도 재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그가 여길 방문한 건 분위기 염탐과 더불어 커다란 똥을 뿌리기 위함이니까.
‘오늘 회식이면 내일 쓸 소스들을 미리 만들어놨겠지? 타이밍 좋게 거기에 장난만 칠 수 있다면 베스트인데···.’
슬슬 돈을 쓴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요즘은 써니가 더 낫다는 식의 댓글을 달고, 블로거를 통한 광고를 꾸준히 하니 사람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생겨났다.
50만 구독자의 맛집 너튜버도 한 명 섭외해놨다.
정직하게 썬플라워와 써니의 음식을 먹어보고, 평가해달라고.
그가 방문하는 게 내일이다.
여기서 장난질만 성공적으로 친다면?
손님들의 평가는 이재영의 써니 쪽으로 확 기울 것이다.
“흐음···.”
술을 홀짝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재영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자기들끼리 신난 사람들.
“게임 한번 할까요? 전주 듣고 노래 맞추기.”
“맞추면 뭐 주는데?”
“사장님이 정성으로 구운 생갈비?”
“그건 그냥 먹을 수 있는 거잖아.”
“그럼 상품은 내가 걸게.”
“뭔데요?”
“나중에 공개할게. 일단 해.”
“그럼 저부터 합니다.”
강훈이 자신의 플레이 리스트에서 심혈을 기울여 노래를 골랐다.
이내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 선율이 흘러나왔다.
“뭐지?”
“잘 모르겠는데.”
“그러게.”
그때 누군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아유린 손편지.”
이재영이었다.
그러자 강훈이 인상을 찡그리며,
“참~ 눈치 없네. 정답.”
“차암~ 문제 내는 센스가 없네.”
“그럼 직접 내보시죠.”
“싫은데요?”
“지금 시비 거는 거죠?”
“그만 투닥거리고 다음 문제 내요.”
이재영과 썬플라워의 관계를 제대로 모르는 이강식이 승부욕이 발동했다.
까칠하게 굴던 이재영도 은근 퀴즈에 적극적이었다.
돌아가며 문제를 냈고, 모두가 정답 맞히기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화장실이나 다녀와야겠다.”
은근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안으로 향하는 재영.
퀴즈를 구경하며 고기를 굽던 해준의 시선이 그를 쫓았다.
‘슬슬 준비해야겠다.’
.
.
.
화장실을 가는 척 주방에 잠입한 재영.
역시나 그의 예상처럼 내일 쓸 소스를 미리 만들어 한쪽에 잘 보관하고 있었다.
한 달 이상 일을 했으니 주방은 눈을 감고도 돌아다닐 수 있는 상황. 은밀하게 소스에 소금을 들이붓고, 자리로 돌아왔다.
“정답!”
“나이스~!!”
한창 전주 듣고, 노래 맞추기 퀴즈를 하며 놀고 있었다.
“이제 끝난 건가?”
“네.”
“그래서 누가 일등이야?”
동식의 물음에 은정이 스코어를 계산했다.
그러다 이내 한숨을 내쉬며.
“저 아저씨요.”
이재영이 일등을 했고, 해준이 약속대로 상품을 가지고 나왔다.
작은 투명 유리병에 담긴 액체.
수제 담금주가 확실했다.
“엇! 그거 무슨 술이에요?”
“산삼주. 남자한테 아주 좋은 거야.”
은정을 뺀 나머지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재영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
“특별히 담근 건데, 맛이 아주 좋아요. 효과도 끝내주고.”
“그렇게 귀한걸···.”
“쩝, 아깝다.”
“지금 한잔 드세요.”
이재영의 잔에 술을 따랐다.
잔 안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술.
해준의 주조(酒造) 실력은 이재영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럼 어디···.”
약초 특유의 향이 기분 좋게 코끝을 자극했다.
입에 머금으니, 과연 쌉싸름하면서도 진한 향기가 비강을 통해 목구멍으로 부드럽게 넘어갔고, 이내 단전에서부터 화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크으~ 좋다.”
“괜찮죠?”
즐겨 먹는 싱글몰트보다 더 풍부한 맛.
담금주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썬플라워가 망한다면 강종혁 대신 셰프로 채용해도 좋을 솜씨.
‘그 많은 건물을 다 받으면 뭘 하지? 으흐흣···’
재영은 혼자만의 망상에 빠졌다.
담금주를 마시고 한 5분쯤 흘렀을까 이재영의 동공이 묘하게 풀렸고,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자백 쇼를 시작해볼까?’
“재영 씨. 괜찮아요?”
“그럼요. 멀쩡합니다.”
고개를 번쩍 들어 올리며 즉답했다.
“근데, 조금 전에 어디 다녀오셨어요?”
“화장실··· 가는 척하면서 주방에요.”
“주방? 거긴 왜요?”
“그냥. 신경 쓰지 마세요. 다들 게임에 정신 팔렸길래 내일 쓸 소스에 소금을 들이붓고 왔으니까.”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섬뜩한 말을 태연하게 내뱉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네?!”
“뭐래? 미친놈.”
“응? 진짠데. 가봐. 주방에.”
과연 이재영의 말은 사실이었다.
“사장님. 진짜예요. 돈가스 소스가 소금 소태예요.”
“이 자식이 진짜.”
여기까지는 취중 실수로 치부할 수 있었다.
미운 놈이 꽐라가 되어 말도 안 되는 진상 짓을 했다고.
‘오! 효과 좋은데.’
그러나 이건 모두 해준이 의도한 바였다.
그가 건넨 산삼주의 정체는 바로,
[만드라고라의 고백주 – 알코올과 만드라고라의 기운이 융합되어 진실만을 말하게 된다. 용기가 없어 고백하지 못한 말들을 여과 없이 쏟아낸다.얼마 전 고블린을 토벌하며 얻은 만드라고라의 잔뿌리로 술을 담갔더니 생각지도 못한 효과가 생겨버렸다.
의도는 남녀관계를 썸에서 연인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음식처럼 보였지만, 해준은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
‘검사 앞에서 범죄 자백이라니.’
터져 나오는 웃음에 슬며시 입을 틀어막았다.
“쟤 무슨 약 먹었어?”
“그러게요. 아, 잠깐. 영상 찍어놔야지.”
강훈이 폰을 꺼내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재영은 고해성사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