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139
138회. 복면셰프(3)
***
“이건 당장 레시피 화해서 팔아도 될 것 같은데요?”
“덮밥왕님 쵝오.”
“럽둥이 서아 양은 양배추 덮밥 맛을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뭐랄까. 먹는 순간 오장육부에 기생하고 있던 숙변이 놀라 자빠져, 양배추와 함께 빠져나와 아름다운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한 거름이 될 것 같은 맛? 아주 퐌타스틱하고, 으메이징했어요!”
‘뭐지? 이 심사평은? 더러우면서도 참신해.’
여돌 입에서 숙변과 직접 언급은 없었지만, 응가를 형상화한 시식 평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맛있단 이야기죠?”
“그렇게도 표현할 수 있겠네요.”
MC의 포장에도 서아는 다시 한번 ‘오늘 밤. 쾌변. 성공적.’이라는 심사평을 추가로 남겼고, MC는 서둘러 마이크를 다음 패널에게 넘겼다.
“언니도 먹어봐. 맛있어.”
분량 한 컷 따먹었다며 흡족해하는 서아.
그렇지만, 덮밥왕의 요리를 극찬(?)한 서아가 내심 못마땅한 민주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얏! 왜요. 언니?”
“음?! 내가 뭘?”
“뭐긴. 옆구리 쿡쿡 찔렀잖아. 아, 덮밥 한 숟가락 달라고?”
“안 먹어.”
“왜? 맛있는데.”
‘칫. 계집애. 맨날 맛있는 밥 해주는 게 누군데. 오늘 아침에도 오빠 음식 진공청소기처럼 흡입하고선 여기선 딴소리네.’
전후 사정을 알 리 없는 서아는 어깨를 으쓱거리고, 시식을 이어갔다.
순수한 요리 실력이라면 차해준도 지지 않는다. 아니, 해준의 요리 실력은 축구로 치면 메시나 호날두급. 그러나 여긴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재치로 승부해야 하는 경쟁 무대다.
게다가 똥개도 자기 앞마당에서 6할은 먹고 들어가는데, 덮밥왕에게 이 무대는 홈그라운드와도 같은 곳. 아무래도 차해준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오빤 뭘 만들었지?’
그녀의 시선이 디쉬커버를 향했다.
서아 말처럼 덮밥왕의 양배추 덮밥은 과연 맛과 향이 끝내줬다. 적당히 볶아낸 양배추의 아삭한 식감과 소스의 완벽한 조화.
어쩌면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괜히 등 떠밀어 출연시켰나 후회가 됐다.
지금도 야밤 식당이다 미슐랭이다 연일 상한가를 치는데, 괜히 복면셰프에 출연해서 이미지를 구기면 좋을 게 없다.
복잡한 심경으로 남자친구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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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자 자격으로 덮밥왕의 요리를 시식한 해준은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질 자신이···.
‘자신감이 너무 오졌나?’
사실 덮밥왕의 요리는 훌륭했으나, 차해준의 요리는 지금껏 자신이 만든 요리 중 맛으로 톱10 안에 들 정도로 퀄리티가 훌륭했다.
마법 재료도 섞어 넣지 않고, 순수하게 실력과 차원의 농장 농산물을 이용한···.
‘아, 거기서부터 반칙인가? 암튼!’
자신의 핸디캡은 일주일간의 준비 기간이었으니, 이것으로 쌤쌤.
캐스팅되자마자 녹화를 위해 망원동으로 달려갔다.
점심 장사를 하고 남은 재료를 싹싹 긁어왔지만, 재료들끼리의 조합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도 메인 재료가 겹칠 줄이야.’
“덮밥왕님 각오처럼 7연승을 기대할 만할 맛이었습니다. 자, 그럼 이제 도전자 날으는 돈까스의 요리를 공개할 차례인데요. 어떻습니까? 엄청 떨릴 거 같은데?”
MC가 물어왔다.
“네, 떨리네요.”
대답과 달리 세상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음성변조 마이크를 통해 웃기게 나갔지만.
“요리를 공개하기 전에! 요리의 이름을 공개해줄 수 있겠습니까?”
“다 공개하면 김새니까 딱 한 단어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뭔가요?”
“양배추로 만든!···”
“양배추요?!”
“양배추?”
‘망했다. 덮밥왕과 같은 양배추라니!’
돈가스 가면을 쓴 차해준의 입에서 튀어나온 단어에 민주는 바짝 긴장했다.
선빵필승이라는 말이 있듯. 같은 재료라면 먼저 공개된 덮밥왕 쪽이 유리했다.
평가도 좋고, 맛도 괜찮았으니 패널들의 머릿속에는 양배추 덮밥이 깊게 각인되어있을 터. 갓 태어난 새끼오리가 처음 마주친 움직이는 대상을 어미로 생각하듯, 메인 재료가 같은 양배추라면 덮밥왕의 요리가 더 맛있다고 느낄 것이다.
양배추의 바리에이션은 어차피 고기서 고기.
같은 재료로 드라마틱한 변화를 주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쓰읍··· 우리 오빠 이러다 지는 거 아냐?’
생각해본 적 없는 결말이다. 그렇기에 당당히 작가에게 추천했고.
고민 끝에 도달한 결론.
‘요리가 공개되면 무조건 오바한다.’
각인을 깨부수기 위해 과감한 여론몰이가 필요했다.
시식도 먼저하고, 호들갑을 떨며 해준에게 최대한 유리한 심사평을 남발한다면 여론이 날으는 돈까스로 기울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 싸움··· 해볼 만했다.
민주는 머릿속으로 멘트를 고르고 골랐다.
‘뭐라고 하지? 존맛탱? JMT? 소울 푸드? 임팩트 쩌는 심사평 없나? 서아가 아까 뭐라고 했더라. 숙변이 어쩌고 했던 거 같은데.’
서아야 럽둥이 예능캐 포지션이고 4차원 발언으로 명성을 쌓는 중이지만, 민주는 달랐다.
천사보다 더 천사 같은 러블리엔젤의 비주얼 센터.
그런 그녀가 대장내시경과 관련된 단어들 뱉어낸다면 카메라 뒤에서 흐뭇하게 녹화를 지켜보는 매니저 실장님이 실성할지도 몰랐다.
‘그래도 해야만 한다. 내 남자는 내가 지키겠어.’
날으는 돈까스의 요리가 공개되기 직전, 민주가 슬금슬금 앞으로 치고 나왔다.
뚜껑이 열리는 순간, 일본 대단해! 라고 외치며 이마를 ‘탁’ 치는 칠레 아저씨처럼 호들갑을 떨기 위함이다.
마침내 디쉬커버가 열렸고.
“양배추 대단··· 어?! 양배추가 없네.”
고니와 아귀의 마지막 대결에서 장짜리 대신 사쿠라가 튀어나온 것보다 더 서프라이즈한 상황.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양배추 요리라면서요.”
“네. 양배추 요리 맞는데요?”
“제 눈이 삥다리 핫바지로 보입니다. 여기 양배추가 어디 있습니까?”
김구진이 선글라스를 벗으며 특유의 톤으로 버럭 화를 냈다.
요리 어디에도 양배추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신선한 쌈 채소와 쌈장, 밥 그리고 당당히 수육이 자리 잡고 있었다.
“수육 쌈밥 한 상 뚝딱하면 온몸이 탱탱 부을 것 같습니다만.”
나트륨이 잔뜩 들어 있는 쌈장과 탄수화물이 주성분인 밥이라니!
채소를 제외하고는 전부 살찌는 것들뿐이다.
상황이 이쯤 되니 혹시 날으는 돈까스가 요리 주제를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일었고, 과격한 오버액션을 보여주겠다던 민주 역시 입술도 떼지 못했다.
카메라 뒤에서 녹화를 지켜보는 작가진과 PD 역시 진땀을 흘렸다.
(김해나. 너 주제 제대로 전달한 거 맞아?)
(네?!··· 아마도?··· 마, 맞을 거예요.)
(만약 잘못 전달한 거면 잘릴 각오 해라.)
재차 찾아온 해직 위기.
차해준의 등장으로 녹화 무산 위기를 극복하며, 서브 작가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김해나에게 새로운 위기가 찾아왔다.
‘젠장 위기 뒤에 기회라던데, 난 왜 위기 뒤에 절망이냐!’
12개월 할부로 신형 노트북을 질렀다.
얼마 전 의욕적으로 원룸 월셋집도 계약했으니.
‘짤리면 죽는다.’
김해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차해준이 엄청난 요리를 내놨기를.
“일단 드셔보시죠. 한 쌈 푸짐하게 싸 먹으면 제가 말한 의미를 아실 겁니다.”
평소라면 진정성 느껴졌을 테지만, 가면과 음성변조 덕분에 아주 방정맞게 들렸다.
이번에야말로 민주가 나설 차례.
상추, 깻잎, 당귀 쌈 3종의 물기를 탈탈 털어 밥, 수육, 쌈장을 정성스레 올리고 그대로 입에 넣었다.
오물오물-
진실의 미간이 드러나고, 눈썹이 씰룩였다.
덤으로 코 평수까지 넓어지니 서아가 어어?! 하며 손가락질을 한다.
“나왔다. 진실의 미간.”
“진실의 미간이요?”
“민주 언니가 엄청 맛있는 거 먹을 때 늘 저런 표정이거든요. 우리끼리는 진실의 미간이라고 부르죠. 저게 안 나타나면 대부분 인사치레로 맛있다고 하는 거예요.”
서아의 말에 흥미가 생긴 패널들이 취향껏 쌈을 싸 먹었다.
“음? 쌈장이 왜 이렇게 안 짜지?”
“짜지도 않고, 식감도 독특한데? 원래 쌈장이 이런 맛이었나?”
“고기도 엄청 담백해. 그냥 수육이 아닌 거 같은데?”
“밥도.”
“이 세상 맛이 아닌데요?!”
“오~ 진짜 맛 죽인다.”
“그럼 저승 마··· 아니 저세상 맛?”
“찾았다. 양배추!”
호평 속에서 누군가 금맥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소리 질렀다.
“범인은 쌈장이었구만.”
해준은 양배추를 쌈장 속에 잘게 다져서 숨겨놨다.
“하하. 맞습니다. 직접 담근 된장에 양파, 버섯, 양배추를 듬뿍 갈아 넣고 만든 쌈장입니다.”
“어쩐지.”
“그래서 짠맛이 없었구나.”
“네. 밥에 비벼 먹어도 괜찮습니다.”
“수육도 좀 특별한 거 같은데요?”
“밥도. 가만히 보니까 그냥 쌀밥이 아니네.”
말처럼 해준은 물 대신 무, 배추, 대파를 깔고 돼지고기를 삶았다. 이른바 저수분 수육. 일반적인 수육보다 칼로리는 절반이고, 영양가는 더 높다.
마지막으로 밥 역시 백미에 곤약, 콜리플라워를 섞어 칼로리를 줄였다.
“콜리플라워?”
“왜 있잖아. 색 빠진 브로콜리같이 생긴 거.”
“아! 그거. 근데, 고작 그런 거 섞어서 이런 맛을 낸다고?”
“미쳤다. 이런 고수가 어디 숨어있다가 지금에서야 나타난 거야.”
분위기가 날으는 돈까스 쪽으로 쏠렸다.
덮밥왕의 요리가 그냥 커피라면 이건 T.O.P.
물론 덮밥왕의 요리가 나쁜 건 아니었다. 하지만, 클래스가 달랐다. 날돈의 요리가 성인 A대표팀 수준이라면 덮밥왕은 U17 유소년 대표랄까.
패널들은 마치 가을 들녘에 나타난 메뚜기떼처럼 음식을 먹어 치웠다.
“배 터지겠어요.”
“저 지금 허리띠 풀었습니다.”
“전 허리띠 받고, 마이크도 풀었슴돠. 어쩌면 단추 튕겨 나갈지 모르니까 코디 언니 실이랑 바늘 준비해줘요.”
서아가 카메라 밖을 보며 말했다.
녀석은 실제로 무선 마이크 밴드를 허벅지에 두른 상태였다.
‘큭, 미친.’
해준은 저세상 텐션의 서아를 보며 고개를 흔들었고. 미스터 덮밥왕과의 대결은 평가만 남긴 채 후반부로 달려갔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승부! 과연 오늘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지. 미스터 덮밥왕의 7연승이냐, 아니면 새로운 요리왕의 탄생이냐! 복면셰프! 오늘의 승자는~~ 바로!”
이상주 특유의 호흡으로 프로그램의 긴장감을 더했다.
***
“김 피디.”
“국장님. 안녕하세요.”
“응. 근데 누가 이겼냐? 오늘도 미스터 덮밥왕이야?”
녹화를 마치고, 스튜디오에서 나오는 길에 마주친 예능국장이 대뜸 물어왔다.
주변을 살핀 김영찬 피디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뇨. 새로운 요리왕 탄생했습니다.”
“오오~! 진짜?”
“쉿!”
“그래서 미스터 덮밥왕 정체는?”
복면셰프 정체는 제작진 중에서도 일부만 알았기에 국장도 늘 덮밥왕의 정체가 궁금했었다.
“다음 주 본방에서 확인하세요. 아, 시사 때 보시면 되겠구나.”
“인마, 넌 나한테도 못 가르쳐주냐?”
“국장님 SNS 끊으면 말씀드릴게요.”
국장은 주책바가지 스포 요정이다.
한번은 잠깐 가면을 벗고 대기 중인 15대 요리왕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어 올려 말도 안 되는 스포일러를 한 전적도 있다.
그러니 김영찬이 비밀 유지 서약서도 쓰지 않은 국장을 경계하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새로운 요리왕 탄생한 것도 절대 새 나가면 안 됩니다. 바로 소송 들어갈 거예요.”
김영찬 피디가 엄포를 놓자, 국장이 머쓱한 표정을 짓고 사라졌다.
제작팀은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늘 녹화 쩔었다.”
“시청률 좀 오르겠어. 해나가 수고했다.”
메인 작가가 급하게 빵구 난 자리를 훌륭하게 메꾼 김해나를 칭찬했다.
“감사합니다. 저도 막판에는 완전 손에 땀을 쥐었다니까요.”
“잘릴까 봐 그런 건 아니고?”
“아, 아니거든요.”
“암튼 운 좋았어. 차해준을 섭외하다니.”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왔죠. 흐흐흐.”
“앞으로 몇 주는 흥미진진하겠어.”
새로운 요리왕의 탄생.
날으는 돈까스의 정체는 무려 차해준 셰프니 당분간 연승은 유지될 것이고, 가면의 벗을 때의 파장도 대단할 것이다.
즉, 당분간은 시청률이 떨어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
벌써부터 본방 날이 기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