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152
151화. 연애타운(3)
***
연애타운.
1박 2일간 함께 지내며 생기는 에피소드를 여과 없이 방송하는 관찰 예능의 형식을 지닌,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
대망의 첫 촬영을 위해 민주와 해준은 약속된 촬영장소로 향했다.
“오~ 여긴가?”
“좋다. 신혼집을 여기로 잡을 생각은 어떻게 했어요?”
연애타운 촬영장소 겸 해준과 민주의 공식적인(?) 신혼집에 도착한 민주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도시 전경.
보기만 해도 가슴이 탁 트였다.
“좋네. 오랜만에 미세먼지도 없고.”
옥상 끄트머리 담벼락에 상체를 기댄 민주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좋아하며 말했다.
제작진은 해준과의 사전미팅에서 리얼 연애를 할 동거 장소를 고를 수 있게 했다.
도심 오피스텔, 소형 아파트, 단독주택 그리고 교외의 전원주택 등 다양한 형태의 옵션을 제공했으나 선뜻 마음에 드는 선택지는 없었다.
고민하던 해준은 언젠가 민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중에 나도 근사한 루프탑 있는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
그의 결정은 남산타워가 보이는 이태원 빌라의 옥탑방.
전경도 전경이지만, 무엇보다 숙소에 감금되다시피 한 생활을 하는 민주에게 이곳은 누구의 시선도 받지 않는 쾌적한 야외공간이었다.
“크으, 여기 완전 뷰 맛집이네. 완전 맘에 들어요. 오빠.”
“지금보다 밤이 더 볼만하데.”
“오~ 진짜요?”
“응. 일몰이 기막히다던데. 야경도 좋고.”
“아, 빨리 밤이 왔으면 좋겠다.”
“일단 집구경부터 해요.”
민주가 앞장서서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넓은 옥상 공간과 원룸 스타일의 작고 아담한 방. 요리가 가능한 주방과 거실이 있는 전형적인 옥탑방이었다.
구석마다 CCTV 형태의 거치 카메라가 달려있고, 멀찌감치 떨어져 촬영하는 카메라가 또 있었다. 관찰예능인만큼 두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겠다는 제작진의 의지가 엿보이는 세팅.
“좋다. 딱 이런 집에 살아보고 싶었어.”
“에이, 마당 딸린 집에서 살면서.”
“그건 가게고. 내 공간은 구석 쪽방뿐이잖아.”
“헤헤. 그런가? 근데, 우리 여기서 이틀 동안 지내는 거잖아요. 옥상이 너무 휑한 거 아니에요? 기왕 지내는 거 좀 예쁘게 꾸미면 좋을 거 같은데.”
민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작진에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열어보니 진지한 궁서체로.
[옥상을 취향껏 꾸며주세요.]라고 쓰여있었다.
아마도 둘이 함께할 공간을 꾸미라는 의미로 옥상 공간을 비워놓은 듯했다.
“아, 어떻게 꾸미지?”
민주가 엄지와 검지로 턱을 v로 감싸고 고민에 빠졌다.
눈을 요리조리 굴리며 한참을 생각하더니.
“오빠. 우리 여기 캠핑장처럼 꾸며요.”
“캠핑장?”
“네. 이쪽에 인조 잔디 깔고 텐트도 세워요. 지붕 뾰족한 거 있잖아요.”
“인디언 텐트?”
“네! 그거. 불 피워서 불멍도 하고, 고기도 구워먹고. 또···.”
민주가 수학여행 전날 밤의 여고생처럼 잔뜩 상기된 얼굴로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그래. 민주 하고 싶은 거 다 해.’
옥상 꾸미기 계획을 세운 주차 커플은 곧장 근처 캠핑용품 매장으로 향했다.
나무로 만든 감성 폴딩 체어와 우드 테이블, 화로와 텐트까지 구매하고 옥탑까지 낑낑거리며 날랐다.
해준과 민주는 땀을 뻘뻘 흘려가며 옥상을 꾸몄다.
계획대로 잔디도 깔고, 텐트도 치고, 알전구도 달고. 각종 감성 소품들로 옥상을 가득 채웠다.
오후부터 시작한 일은 석양이 질 때쯤 끝났다.
“알전구 불 좀 켜줘요. 오빠.”
“응.”
반짝반짝-
“그럴듯한데?”
“헤헤. 예쁘다. 밤 되면 더 예쁘겠다.”
자신이 꾸민 옥상을 보며 만족해하는 민주.
그때.
꼬르륵-
그녀의 배에서 민망한 소리가 들렸다.
“배고파?”
“헤헤. 종일 굶었더니.”
“고기 구워줄게.”
“돼지? 소?”
“당근 소지.”
“아싸!”
“일단 불부터 피우자.”
화롯대에 숯을 넣고, 불을 피웠다.
스테이크나 바비큐가 아니니 불만 있으면 고기를 굽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특별한 요리를 하나 더 준비했다.
“그건 뭐예요?”
해준이 해산물을 꺼내자 민주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걸그룹 활동기가 끝난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먹부림이 폭발했다.
“고기만 굽기 뭐해서 하나 더 준비했어.”
“뭐요? 뭐요?!”
“파피요트.”
파피요트(Papillote)는 사과 봉지를 의미하는 프랑스어다.
해산물을 각종 채소와 레몬, 올리브, 허브 등을 넣고 종이에 싸서 오븐에 굽는 프랑스식 찜 요리.
해산물만 신선하다면 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기에 선택했다.
“해산물 듬뿍 넣고 쪄 먹는 요리야.”
“오오~ 해산물.”
육해공 모두를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민주는 바다 쪽을 선호한다.
특별한 양념을 가미하기보다 재료 본연의 맛을 이끌어내는 조리법을 좋아하는 그녀에게 안성맞춤의 요리.
해준은 싱긋 웃어 보이며 종이 포일에 올리브유를 뿌렸다.
손질한 호박과 가지를 깔고, 차원의 농장 해안가에서 잡아 올린 광어를 두툼하게 썰어 올렸다. 새우, 조개, 가리비에 레몬, 아스파라거스, 타임, 로즈마리 등 허브를 흩뿌렸다.
꿀꺽-
해준 옆에 찰싹 달라붙어 요리 과정을 지켜보는 민주가 군침을 삼켰다.
“오~ 광어. 광어! 새우도 듬뿍. 가리비 더 넣어주세요. 꽉꽉 눌러서.”
“크큭, 알았어.”
요청대로 가리비를 듬뿍 넣고, 마무리로 올리브오일과 화이트와인을 넣은 후 소금과 후추로 밑간해주고 포일을 밀봉했다.
원래는 이 상태로 오븐에 넣어야 하지만, 오늘은 오븐이 없으니 무쇠솥에 넣고 뚜껑을 닫은 채 숯불 위에 그대로 올렸다.
“오~ 느낌 있다. 우리 고기는 언제 구워요?”
“파피요트 완성되는 타이밍이랑 맞춰서 구워줄게.”
“그럼 난 그사이에 맥주를 냉장고에 으흐흐···.”
민주는 따로 준비한 캔맥주를 냉동실에 넣어두겠다며 집으로 호다닥 달려들어 갔다.
어느덧 해가 완전히 저물었다.
건물마다 불이 켜지고, 마지막으로 남산타워에 조명이 켜지자 도시의 야경이 완성되었다.
“하아, 야경 쩐다.”
“그러게. 분위기 좋네.”
썬플라워 마당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그곳에 아늑한 숲속 느낌이라면 옥탑은 도심 속 휴식공간처럼 느껴졌다.
‘완성이다.’
시티뷰를 감상하는 사이 음식이 완성됐다.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고 했다.
‘일단 배부터 채우자. 민주 배고프겠다.’
숯불 위에 최고급 새우살을 올렸다.
지글지글-
고기를 구우며, 무쇠솥에서 종이 포일을 꺼냈다.
뜨끈뜨끈한 포일의 배를 가르자 푸짐한 해산물이 자태를 드러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신선한 해산물의 향기.
냄새만으로도 지중해의 이름 모를 휴양지의 레스토랑에 온 듯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크으~ 여기가 프랑스구나.”
“프랑스 가봤어?”
“아뇨. 말이 그렇다는 거죠. 아직 일본도 못 가봤는데. 헤헤···.”
민주가 혀를 빼꼼 내밀며 먹음직스럽게 입을 벌린 가리비 속살을 쏙 집어 입에 넣었다.
“!!??”
“어때?”
“흐으응~ 맛있다.”
진실의 미간과 함께 하이톤 콧소리가 터져 나오며, 맛을 인증했다.
솥에서 속에서 굽듯이 익혀진 해산물은 특유의 수분이 가득해 촉촉했고, 함께 넣은 부재료들이 맛과 향을 더했다.
“어떻게 이렇게 부드럽고 쫄깃하지? 혼자 먹기 너~무 아깝다. 오빠도 한입 해요.”
민주가 오동통한 조갯살 하나를 집어 해준의 입술로 잽싸게 배달했다.
“배달의 민주, 주문! 조개 배달 왔습니다. 자, 아아~ 해요.”
“내, 내가 먹을게.”
“창피해하긴. 뭐, 어때요. 우리 둘뿐인데. 아아~ 하라니까. 나 팔 떨어져요.”
배시시 웃으며 넉살 좋게 젓가락을 들이밀었다.
아무리 제작진이라지만, 사람들이 지켜보는데 입에 음식을 넣어주는 닭살 행위가 어색했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는 게 이런 건가?’
민주는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해준과 단둘이 이 공간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행동했다. 반면, 이런 종류의 리얼리티 관찰 예능 출연이 처음인 해준은 중간중간 피디와 작가를 곁눈질로 살폈다.
그러자.
[저희 신경 쓰지 마세요.] [분위기 좋으니까 그냥 편하게 하세요!!]메인 작가가 스케치북에 급히 휘갈겨 쓴 글씨를 해준에게 들어 보였다.
받아먹어서 그림을 만들라는 의미다.
잠시 고민하던 해준이 입을 벌리자, 입안으로 바다가 밀려 들어왔다.
둘만 먹기 아까운 환상적인 맛.
어쩐지 스태프들에게 미안해졌다.
“아이구, 잘 먹는다. 내가 주니까 더 맛있죠? 헤헷.”
“그래. 맛있다.”
“우리 짠해요.”
“오케이.”
주차 커플은 다정하고, 리얼한 연애 장면을 카메라 앞에서 고스란히 보여줬다.
공개 연애를 시작하고, 리얼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까지 하니 숨길 게 없었다.
농담도 하고, 가벼운 스킨십도 하며 음식을 먹었다.
술이 조금 들어가니 분위기도 말랑말랑해지고, 어깨의 긴장도 많이 풀렸다.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다.
“후아, 맛있게 잘 먹었다.”
“그러게. 오랜만에 배불리 먹었어.”
“음··· 오빠. 우리 이제 뭐 하고 놀까요?”
“글쎄? 음악 들으면서 불멍할까?”
“그런 거 말고. 뭐 재밌는 거 없나. 오빠. 우리 웃참 할래요?”
“웃참? 웃참이 뭐야?”
“웃음 참기.”
서로 웃긴 분장을 하고, 먼저 웃음이 터지는 쪽이 지는 단순한 게임.
예전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봤던 기억이 있다.
“그걸 하자고?”
“해요. 해요. 재미있을 거 같은데.”
“뭐 걸고?”
“이긴 사람 소원 들어주기.”
“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민주와 해준은 각각 몸을 돌리고, 각자에게 주어진 3분이라는 시간 동안 정성을 다해 분장했다.
.
.
.
승부욕이 발동한 해준은 진지하게 게임에 임했다.
매직으로 그린 선글라스에 나름대로 매직으로 콧수염도 그리고, 치약으로 흩날리는 콧물도 표현했다.
최대한 동네 바보에 근접한 분장.
‘이 정도면 빵 터지겠지?’
웃참을 위해 심호흡을 하는 해준의 시야에 등을 돌린 채 몸을 웅크리고 있는 민주가 보였다.
수건으로 히잡처럼 얼굴 부분을 가렸는데, 어쩐지 묘한 아우라가 풍겼다.
“준비됐어?”
“네. 전 완벽해요. 오빠는요?”
“나도. 자신 있어.”
“그럼 하나, 둘, 셋에 도는 거예요. 시선 내리깔기 없고, 이빨 보이거나 소리 내서 웃으면 탈락.”
“알았어.”
각자의 얼굴을 최대한 가리고, 마주 보고 앉았다.
얼굴 공개 전. 자연스럽게 스포를 당한 카메라 감독과 스태프들이 어금니를 꽉 깨물며 어깨를 들썩였다. 강도 9.5의 어깨춤 진동에 카메라마저 흔들릴 정도.
“자, 갑니다. 하나. 두울. 셋!”
셋과 동시에 해준과 민주가 얼굴을 공개했다.
!!??···
해준은 민주의 모습에 볼살을 깨물며 웃음을 참았다.
눈을 피할 수 없기에 볼 수밖에 없는 민주의 분장은 실로 대단했다.
속알머리 없는 머머리 가발에 서울대 안경을 쓰고, 볼은 펭귄처럼 빨갛게 칠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셀로판테이프로 고정한 들창코를 벌름거리는 순간 참았던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웁!”
해준이 터지자, 카메라 뒤에서 지켜보던 제작진들이 끝내 육성을 터트리며 웃었다.
편집 때, ‘얼굴 그렇게 쓸 거면 차라리 저 주세요~’ 라는 자막을 넣을 것 같은 분위기다.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분량 뽑아주니 제작진으로서는 감사할 따름.
“아싸 이겼다.”
신나서 방방 뛰는 민주.
‘악! 귀여워.’
그 와중에 귀엽다.
엽기 분장을 했어도 미모는 온전히 가릴 수 없었다.
그래도 웃긴 건 웃긴 거다.
광대뼈 아래가 찌르르- 전기가 올 정도로 웃던 해준은 간신히 웃음을 멈추고 물었다.
“너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재밌잖아요. 캬캬캭.”
“오케이. 패배 인정. 소원 말해. 들어줄게.”
“일단 킵. 나중에 생기면 말할게요. 모른척하면 안 돼요.”
“응. 알았어.”
-컷!
분위기가 일단락되자, 피디가 촬영을 잠시 멈췄다.
즐거운 하루가 마무리됐으니, 이제는 잠자리에 들 시간.
프로그램의 콘셉트 상 잠자리에 들고, 함께 아침에 눈을 뜨는 것까지 여과 없이 보여줘야 한다. -물론, 앞뒤로 한 시간씩만 촬영해 편집하는 것이지만-
마지막 촬영을 위해 거치형 캠만 남기고, 제작진은 모두 퇴장했다.
천장을 보고 나란히 누우니 분위기가 묘해졌다.
두근두근-
‘어머. 나 왜 이러지? 술 마셔서 그런가?’
갑자기 민주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