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156
155화. 전설의 약초(3)
***
드르륵-
병실 문이 열리고, 민주의 눈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러블리엔젤 매니저 임나영. 그녀는 양손 가득 선물꾸러미를 들고, 병실을 찾았다.
“언니잇!”
“민주야, 오늘은 컨디션 어때?”
“괜찮아요. 너무 좋은뎁! 지금이라도 무대 위에 올라가서 5곡은 뛸 수 있을 듯.”
“치이, 오바는.”
“진짠데. 근데, 그건 다 뭐예요?”
싱글벙글 민주의 시선이 쇼핑백을 향했다.
억지 텐션인걸 알지만, 그래도 밝은 것 같아 안심하며 나영이 쇼핑백을 열었다.
“오~ 팬들이 보내준 거예요?”
“응.”
이미 병실은 인형, 꽃바구니, 과일 등 선물로 포화 상태지만, 팬들의 성의도 있고, 또 민주가 기운을 차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빠짐없이 챙겨 가져다줬다.
“이 꽃 너~무 예쁘다. 손편지도 있네. 인형도 엄청 들어왔다. 진심 인형 가게 차려도 될 듯. 크큭.”
민주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선물을 진열했다.
인형들은 머리맡에 꽃은 화병에 꽂아 화사하게 꾸몄고, 손편지도 꼼꼼하게 읽었다. 종일 병실에 누워있으니 팬들의 편지는 상당한 위로가 되었다.
“오~ 요건 또 뭐야. 킁킁? 뭐 맛있는 거라도 싸 왔어요?”
작은 도시락통을 발견한 민주가 장난스럽게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아니. VIP 병실 전담 간호사 언니가 주던데?”
“그래요?···”
뚜껑을 열어보니 주먹 크기의 연잎밥과 산약초 샐러드가 담겨있었다.
정갈한 만듦새를 보아하니 해준의 요리였다.
나영 역시 민주의 생각과 같아 보였다.
“해준 씨가 도시락 놓고 갔구나? 근데 왜 병실에 안 들어오고, 밖에 맡겼지?”
매니저가 고개를 갸웃했다.
면회가 금지된 기자나 일반인도 아니고, 남자친구인 차해준이 병실 앞까지 왔다가 그냥 돌아간 이유가 궁금했다.
“헤어졌어요.”
“뭐?! 헤어져? 왜?”
“그냥.”
이별을 고한 건 그녀였지만, 그렇다고 아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녀 자신이 누구보다 슬프고, 고통스러웠다.
이내 민주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나영이 혹시 볼까 얼른 눈물을 훔친 민주가 애써 멤버들 근황으로 화제를 돌렸다.
“참, 애들이랑 태린 언니는요?”
“태린이는 연우랑 라디오 스케줄 갔고, 하린이는 방에 틀어박혀서 음악 작업. 서아는 예능 촬영 갔고.”
“아, 맞다. 산촌 탐구생활 이번 주부터 촬영 간다고 했지? 산에서 3일 동안 자급자족하면서 살면 되게 재미있겠다. 나도 그런 거 해보고 싶은데.”
산촌 탐구생활은 스타 피디 나상구의 신작으로 답답한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며 노는 힐링 예능 프로그램이다.
해준과 연애타운 동반 출연만 아니었어도 서아와 동반 출연할 예정이었던 작품.
잔뜩 부러운 눈빛이다.
탁 트인 자연에서 가마솥에 지은 밥에 두툼한 삼겹살과 산나물을 쌈 싸 먹는 상상에 배가 고파졌다.
꼬르륵-
“에잇, 밥이나 먹자.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곱다는데.”
아직도 은근한 온기가 남아있는 연잎을 펼쳐 밥 한술을 크게 떠 입에 넣었다.
***
그 시각.
해준은 축 처진 어깨로 석구의 가게를 찾았다.
소주 한잔 생각이 간절한 것도 있지만, 재료 수급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석구 형. 저 소주 한 잔 주세요.”
해준의 등장에 석구는 말없이 술과 안주를 준비했다.
지글지글-
화력 좋은 비장탄 숯 위에서 먹음직스럽게 익어가는 삼겹살. 그러나 해준은 안주에 손조차 대지 않았고, 육즙 가득한 고기는 불판 위에서 숯댕이로 변해갔다.
멍하니 일렁이는 불 어딘가를 응시하던 해준이 소주를 들이켰다.
쪼르르-
좌절의 이유를 알기에 석구는 말없이 해준의 빈 잔을 소주로 채웠다.
이럴 땐 진탕 먹고 취하는 것도 방법이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잠시라도 잊어야 하니까.
안주도 먹지 않고 소주 한 병을 비운 해준은,
“고기랑 채소는 당분간 형님이 썬플라워로 직접 가지러 오세요. 직원들한테 얘기해놓을게요.”
라고 말하며 마지막 잔을 비웠다.
“알았어. 뭘 그런 거까지 신경을 써.”
“에이, 그래도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죠.”
“고맙다. 신경 쓸 것도 많을 텐데.”
“휴··· 저 갈게요.”
“택시 불러줄까?”
“괜찮아요. 걸어갈게요.”
“그래. 조심히 가.”
비틀거리며 가게를 나서 썬플라워로 돌아왔다.
동식을 비롯한 직원들이 걱정하는 눈빛으로 해준을 바라보았지만, 선뜻 다가갈 수 없었다.
해준은 만취 상태로 농장에 들어갔다.
그의 작업실은 만들다 만 요리와 남은 식재료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진짜 방법이 없는 건가.”
실패한 결과물들을 -이로운 버프가 잔뜩 붙은 요리지만, 해준에게 필요 없는- 보자 왈칵 화가 치밀어 올랐다.
며칠을 잠도 안 자고 레시피 연구에 매달린 결과가 고작 이거라니.
깊은 좌절감과 패배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해준을 지배했다.
“으아악!”
해준의 눈동자는 분노로 이글이글 타올랐다.
조리대 위의 물건을 닥치는 대로 집어 던졌다.
와장창-
쾅-
분노에 폭주해 작업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뭐든 부숴버리지 않으면 자신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몇 분간의 폭주 후,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은 해준의 손 위로 쪽지 한 장이 떨어졌다.
일전에 고블린을 퇴치하고 발견한 달리우스의 일지였다.
-전설의 약초에 대한 단서를 마침내 찾았다. 단서에 의하면 그 약초는 혹한의 기후에서 자란다고 한다. 너무나도 강력한 추위에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그런 곳에서···. 그러니 그 생명력이 얼마나 대단할까?
“전설의 약초?··· 그래. 내가 왜 이걸 잊고 있었지?!”
달리우스가 일지에서 언급한 전설의 약초.
한영수 노인의 죽음은 막지 못했지만, 이번만큼은 어떻게든 약초를 찾아내야만 한다.
그래서 반드시.
“민주를 살리겠어.”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자 의욕이 솟아났다.
정신이 맑아지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설의 약초를 손에 넣어야 한다. 비록 당장은 서식지도 모양도 알 수 없지만.
“일단 단서부터 얻자.”
지금 가진 정보로는 전설의 약초를 절대 구할 수 없다.
약초에 대한 언급은 달리우스의 일지가 유일하니 고블린 소굴에 들어가 토벌을 하며 혹시 있을지 모를 일지 조각을 더 얻어야 했다.
전투 장비와 마법 요리, 비상용 식재료를 가방에 챙겨 넣었다.
“냐아앙~.”
오랜만에 기운 차린 해준을 보자 뭉치가 다리 사이로 기어들어 와 애교를 부렸다.
녀석은 그사이 몰라보게 덩치가 커졌다. 대형묘 중에서도 큰 축에 속했고, 썬플라워 잔디 마당은 녀석의 존재 때문에 마치 사바나 초원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래. 그동안 걱정 많이 했지? 미안.”
“냥.”
“사냥 같이 가자.”
“냥냥.”
해준은 뭉치의 등과 턱을 쓰다듬어주고, 가방을 둘러맸다.
전투 장비를 챙겨 숨겨진 숨의 고블린 동굴로 향했다.
그동안 클리어한 고블린 영지를 샅샅이 수색하며 놓쳤을 지모를 단서를 수집했다.
하지만, 결과는 꽝.
포기하지 않고, 몇십 분을 걸어 들어가 새로운 고블린 경작지를 발견했다.
전투에 앞서 오랜만에 풀도핑을 했다.
근육 생성량 UP, 체력 회복량 UP, 무릎 관절 강화, 시력과 청력 강화, 근력 민첩성 강화···. 각종 음식물 섭취로 신체 능력을 3배 이상 끌어올렸다.
현재 몸 상태라면 고블린 무리를 한칼에 썰어버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오늘의 전략은··· 없어. 그냥 닥치는 대로 썰어버리자.”
“냥냥!”
“달려.”
20여 마리의 고블린 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뭉치는 무리의 좌측으로 해준은 무리의 오른쪽으로 파고들어 앞발과 검을 호쾌하게 휘둘렀다.
탁탁탁-
퍽퍽퍽-
휘익-
서걱-
“끄르륵···.”
쿵-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진 고블린.
둘은 바로 다음 타깃을 공격했다.
달려들어 베고, 쓰러트리고, 바로 다음 타깃에게 또 달려들고. 해준과 뭉치는 삽시간에 고블린 기지를 초토화시켰다.
“꾸에엑··· 잡아라··· 저··· 놈.”
“후퇴··· 감당할 수 없다··· 우리가···,”
“대피··· 대피··· 위급상황···.”
“도망··· 본진에··· 전파··· 하라···.”
동료들이 쓰러지자 무리 중 우두머리가 지시를 내렸고, 가장 뒤에서 화살을 날리던 녀석이 무리 뒤로 도망쳤다.
“튀었네.”
상관없다.
될 수 있는 한 많은 고블린을 토벌해야 하니, 만약 저 녀석이 동료를 끌고 온다면 또 사냥하면 그만이다.
오히려 찾아가야 하는 수고를 덜어준 셈.
토벌을 마친 해준은 빠르게 고블린 영지를 수색했다.
아쉽게도 달리우스의 일지나 전설의 약초에 관련된 무언가는 발견되지 않았다.
“여긴 별것 없네. 뭉치야.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냐아앙!”
마지막 고블린이 도망친 방향으로 빠르게 내달렸다.
어쩐지 평소보다 많은 땀이 흘러내렸다. 전투 후 쉬지도 않고 바로 달려서 그런 줄 알았는데,
“허, 용암이잖아?”
이글이글 끓어오르는 용암이 해준의 발목을 잡았다.
연못 크기의 용암에서 뿜어져 나오는 악마의 열기는 엄청났다.
중간중간 발을 디딜 수 있는 돌이 있었지만, 방화복의 도움 없이 맨몸으로 지나가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 고블린 녀석. 도대체 여길 어떻게 지나간 거지?”
갈림길이 없었으니 녀석도 여길 통과했을 터.
화속성 저항이라도 있던 걸까? 어쨌든 여기까지 와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잠시 망설이던 해준은 배낭을 내려놓고, 요리를 시작했다.
“냐앙?”
“뭐 만드냐고? 동치미 메밀국수”
동치미 국물이 있으니 면만 있으면 라면보다 쉬운 요리다.
메밀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반죽부터 시작해 금세 면을 뽑아냈다.
[동치미 메밀국수] – 섭취 후, 4시간 동안 피부 표면의 온도를 서늘하게 식혀준다.메밀국수는 피부의 서늘함을 유지해주는 버프가 음식이다. 이를테면 화염저항력 강화 도핑인 셈. 둥둥 가루를 듬뿍 첨가해 중력 저항력을 50%까지 끌어올렸다.
후르릅-
후륵-
“크으, 시원하다.”
뜨거운 용암 옆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 동치미 메밀국수의 맛은 훌륭했다.
살얼음을 목으로 넘기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지며, 땀을 식혀줬다.
버프의 효과도 효과지만, 시원한 음식이 주는 쾌감도 일품이었다.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모두 마신 해준은 만족하며 그릇을 내려놨다. 뭉치도 어느새 한 그릇 뚝딱.
“배도 채웠으니까 또 달려볼까?”
“냥.”
몸이 가벼워졌고, 비처럼 흐르던 땀도 더는 흐르지 않았다.
뒤에서부터 도움닫기로 크게 달려온 해준은 그대로 용암을 향해서 점프!
탁- 탁- 탁- 탁-
돌을 밟으며 용암을 무사히 건넜다.
열기가 어찌나 뜨거운지 입고 있던 옷 일부가 녹아내렸지만, 다행히도 피부는 멀쩡했다.
“뭉치야, 너도 괜찮지?”
“냥!”
“좋아. 이대로 쭉 전진이다.”
“냥냥!”
용암지대를 벗어나 조금 달리니 제법 큰 규모의 고블린 영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게 도대체 몇 마리야?”
바위 뒤로 몸을 숨긴 해준은 고블린 진영을 염탐했다.
그 숫자는 어림잡아 300 이상. 고블린 부대에는 여단급 소규모 대대 정도의 병력이 진을 치고 있었다.
아무리 신체 강화 도핑을 한 상태라도 저 많은 숫자를 상대하는 건 힘들다.
그렇다고 이대로 아무런 수확도 없이 돌아갈 수 없는 노릇.
해준은 일단 몸을 숨겨 정찰을 계속하기로 했다.
“그르륵··· 나타났다··· 침입자···.”
“집결하라··· 병력··· 모두··· 연병장으로.”
도망쳤던 고블린이 가장 우두머리에게 보고했고, 우두머리가 전 병력을 연병장에 집합시켰다.
열외한 고블린은 셋. 취사병 역할인지 그 녀석들은 부지런히 솥단지를 휘젓고 있었다.
대화를 엿들어보니 식사를 마치고, 해준이 습격했던 곳으로 전원 출정을 할 모양이다.
300 고블린과 전면전은 무리다.
최대한 숫자를 줄여놓고 싸워야 조금의 승산이라도 있다.
좋은 수를 생각하던 해준은.
“이걸 이렇게 쓰네.”
가방에서 진한 갈색 액체가 담긴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액체의 정체는 정체불명의 건강차. 다량 섭취하면 사망에 이르는 독성이 강한 음료다.
때마침 운 좋게 취사병 고블린이 자리를 비웠고, 기도비닉을 유지하며 거대한 솥단지에 건강차를 뿌리는 데 성공했다.
예정대로 식사를 시작한 고블린들.
허겁지겁 음식을 삼키더니 기괴한 소리를 내며 하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꾸에엑···.”
“그르륵··· 독을··· 음식에··· 누가?···”
털썩-
쿵-
정체불명 건강차의 효능(?)은 실로 대단했다.
삼 할은 그 자리에 쓰러져 죽음을 맞이했고, 오 할은 사색이 된 얼굴로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뭉치야, 출동하자!”
“냐아앙~!!”
해준과 뭉치가 고블린 무리를 향해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