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157
156화. 전설의 약초(4)
***
순식간에 대대급 규모의 고블린 부대를 전멸시켰다.
“이 정도 실력이면 카일 스승님보다도 내가 더 위인가?”
그의 발아래 쓰러진 300의 고블린.
치열한 전투였던 만큼 해준과 뭉치도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배낭에서 외상 치료 연고를 꺼내 간단한 응급처치를 끝내고, 지휘관 숙소로 추정되는 막사로 향했다.
흔한 고블린 우두머리의 막사.
한쪽 벽면에 돌로 만든 침대가 있었고, 그 옆으로 정체불명의 실험용 유리병이 어지럽게 놓인 탁자가 있었다. 해독하기 어려운 문자로 쓰인 양피지 책과 문서들.
해준은 종이 더미를 뒤져가며 단서를 찾았다.
‘있다!’
낡고 찢어진 아주 오래된 일지의 한 조각.
꼬부랑 글씨 사이로 익숙한 휴먼체가 보였다. 분명 달리우스가 생전에 남긴 일지였다.
-전설의 약초를 찾아다닌 지 벌써 5년째. 혹한의 기후라는 단서 하나로 북쪽 지방을 이 잡듯 뒤졌지만, 약초를 찾을 수는 없었다. 어쩌면 약초는 단순히 추운 극지방에서 자라는 게 아닐지도···.
-폭풍으로 배가 난파됐다. 선원들은 대부분 죽었지만, 난 운이 좋게 살아남았다.
-국경 근처 마을에서 정령을 다룰 줄 아는 실력 좋은 마법 요리사를 만났다. 그는 실로 대단한 효과를 가진 요리들의 레시피를 갖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웠다.
‘정령을 다룰 줄 아는 실력 좋은 마법 요리사?’
세 번째 일지 조각이 해준의 관심을 끌었다.
그것은 어쩌면 아버지에 관한 기록일지도 몰랐다.
다급한 손놀림으로 페이지를 넘겼고, 마침내 아버지를 언급한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찰스에게 전설의 약초에 관해 물었다. 혹시 그라면 알고 있지 않을까 했지만, 그도 모르는 눈치였다.
-오늘은 찰스가 날 찾아왔다. 다짜고짜 목소리로 전설의 약초에 대해 아는 것을 모조리 말하라고 다그쳤다. 어쩐지 슬퍼 보이는 눈. 어이없게도 난 그에게 내가 아는 정보를 다 말해줬다.
“다, 다음 장이?···”
아쉽게도 그게 일지의 마지막 장이었다.
달리우스가 남긴 일지 기록을 종합해보면 전설의 약초를 찾던 그가 우연히 이 마을에 흘러들어와 아버지와 만났고, 아버지에게 전설의 약초에 대해 말해준 셈이다.
‘어쩌면 아버지가 우릴 떠난 건?···’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시기가 맞지 않잖아.’
어머니는 아버지가 사라지고 몇 년이 지나서야 돌아가셨다.
당시의 어렸던 해준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가출로 인한 충격이 어머니의 사망원인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어쩐지 슬퍼 보이는 눈’이라는 대목에서 해준은 강한 인과관계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어린 자신에게만 어머니의 병환을 비밀로 했다면?
자신에게는 숨긴 채 두 분만이 진실을 알고 계셨고,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단서가 차원의 농장에 있다는 걸 안 아버지가 약초를 찾아 떠난 거라면?
나름 합리적인 추론이다.
그토록 자상하던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도 이해가 되고, 실종되기 직전, 마치 자신이 사라질 거라는 걸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유언장까지 남겼으니 말이다.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졌다.
‘진짜 두 분만 알고 계셨던 비밀인가?’
어머니는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를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온화한 미소로 늘 웃고 계셨을 뿐 원망을 한 건 해준이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런데 그의 추론이 사실이라면.
‘아버지···.’
아버지를 오해하며 살아온 지난 세월을 후회했다.
잠시 자리에 서서 감정을 추스른 해준은 달리우스의 일지를 모조리 챙겨 밖으로 나왔다.
혹시 있을지 모를 일지를 찾기 위해 고블린 소굴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쉽게도 달리우스의 일지를 더는 발견하지 못했다.
“뭉치야 가자.”
“냐아앙!”
돌아가려는 해준의 바짓가랑이를 물어뜯는 뭉치.
“냥냥.”
“막사 뒤쪽에 뭐가 있다고? 그게 뭔데?”
뭉치와 함께 막사 뒤편으로 걸어갔다.
고블린 경작지였지만, 지금까지 봤던 것과 조금 달랐다.
지금까지 거쳐온 경작지가 대규모 생산을 위한 밭이라면, 여기는 농촌진흥청에서 만든 연구용 밭처럼 다양한 작물이 소량으로 심겨 있었다.
‘고블린들은 이곳에서 베일에 싸인 전설의 약초를 연구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어쩐지 찾을 수 없다면 직접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일단 캐 가자.’
해준은 배낭에서 작은 삽을 꺼내 연구용 약초를 캐냈다.
<황홀한 송로버섯 – B등급 : 특유의 몽환적인 아로마 향이 진하게 풍긴다. 적당량 섭취하면, 후각이 예민해진다.
···
땅속에는 특이한 작물들이 보물처럼 묻혀있었다.
해준은 그것들을 아이 다루듯 아주 조심스럽게 캐내어 배낭에 넣었다.
비록 전설의 약초는 묻혀있지 않았지만, 기대할 만할 만한 요리를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휴, 힘들다. 이제 남은 건 저거 한뿌리인가?”
해준은 막 캐낸 버섯을 배낭에 넣고, 한숨을 돌렸다.
체력 회복 음료를 마시며 잠시 쉬고 있을 때.
띠링-
알림음이 들렸다.
‘뭐지?’
정보창을 확인해보니 직업에 변화가 생겼다.
조금 전까지는 차원이 다른 농사꾼이었던 직업이 어느새 전설의 농사꾼이 되어있었다.
고블린 무리의 연구용 밭작물을 캤기 때문이리라.
“흠. 뭐··· 그렇군.”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동안 직업의 명칭이 바뀐다고 해서 특별한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았기에 해준은 시큰둥하게 정보창을 닫았다.
“얼른 캐고 돌아가자 뭉치야.”
“냐아앙~.”
밭 가장자리에 따로 격리되듯 심겨 있는 식물.
자세히 살펴보니 생김새가 제법 신비로웠다. 초록색 잎사귀 위에 구슬처럼 파란 열매들이 달려있고, 투명한 구슬 열매의 내부에는 마치 안개 같은 것이 요동치고 있었다.
“독특하게 생겼네. 잎이랑 열매가 다치지 않게 조심히 캐야겠다.”
전보다 더 신중하게 흙을 파냈다.
뿌리가 다치지 않게 흙을 살살 털어가며 캐냈고, 마침내 녀석이 웅장한 자태를 세상에 드러냈다.
띠리링-
“응?!”
“허, 이게 뭐야.”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을 끔뻑였다.
황홀함 그 자체. 조금 전까지는 평범하던 녀석의 뿌리에서 황금색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아주 특별한 모양을 가진 S등급 작물.
‘혹시 이게 바로 그 전설의 약초?···’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S급 작물을 보자 과거 포테와 했던 대화가 기억났다.
-작물 등급은 F~A 등급까지 존재하고, 아주 가끔이지만, S급 작물을 생산해낼 수도 있습니다.
‘아, 왜 잊고 있었지?’
분명 녀석은 아주 가끔은 S급 작물을 생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가끔’이 바로 지금이고.
전설의 약초는 그냥 S등급 작물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민주를 고칠 수 있을지 몰라.’
행복회로를 돌리던 해준은 마치 전 재산을 올인하고, 그것도 모자라 손목까지 건 마지막 판에서 패를 쪼는 타짜처럼 신중하게 조금 전 캔 작물을 살폈다.
“제발 전설의 약초이길.”
***
썬플라워.
“강훈아. 냉장고에서 돈가스 고기 좀 꺼내주라.”
주방에 들어선 동식이 팔을 걷어붙이며 말했다.
경양식 돈가스는 두툼한 일본식 돈카츠와 다르게 고기를 얇고 넓게 펴야 한다.
재료를 아끼지 않는 해준의 성격 탓에 다른 곳보다 두툼하게 제공되지만, 고기를 펴는 과정을 건너뛸 수는 없다.
“넵!”
“왼쪽 구석에 삼겹살은 석구 줄 거니까 헷갈리지 말고.”
“에이, 알아요. 장사 하루 이틀 하나요.”
강훈이 대답을 하며, 대형 냉장고를 열었다.
그곳엔 늘 그렇듯 신선한 채소와 고기, 다양한 식재료로 가득 차 있었다.
“암튼 우리 사장님 대단하시다니까. 이 와중에서 장은 꼬박꼬박 보시고, 그냥 쉬시지.”
“그러게나 말이다. 근데, 강훈이 너 요즘 사장님 본 적 있냐?”
“아뇨. 형은요?”
“방에 계신 건 맞아?”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해준은 벌써 열흘도 넘게 두문불출이다.
“나도. 걱정돼 미치겠네. 힘들 때 도움을 드려야 하는데.”
“그래도 식재료 계속 채워 넣으시는 거 보면 우리 퇴근하면 나와서 볼일도 보고하는 거 아닐까요?”
“그렇겠지?”
해준에게 그간 많은 도움을 받아온 동식은 어쩐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사장과 직원의 관계가 아닌, 이럴 때만큼은 인생 선배로서 도움을 주고 싶었다.
“동식 형님.”
“석구 왔구나? 강훈아, 고기랑 쌈 채소 좀 내줘라.”
“넵! 잠시만 기다리세요, 형님.”
“천천히 해요.”
강훈이 석구에게 줄 식자재를 챙기는 동안 동식은 두문불출 사장님에 관해 석구에게 물었다.
군대 선·후임 사이니 어쩌면 힘든 속내를 털어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식의 바람과 다르게 석구도 해준의 근황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아무도 모르는 건가?”
“그런가 봐요.”
“어떻게든 빨리 털고 나오셨으면 좋겠네.”
동식의 말에 강훈과 석구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라도 정신 차려서 열심히 일하자. 아무리 생각해도 사장님 도울 길은 그거밖에 없는 것 같다.”
“네, 형님.”
“석구도 만약 사장님 소식 듣는 거 있으면 알려주라.”
“알겠습니다.”
직접적인 위로는 못 해주지만, 힘들 때 차해준의 전부인 가게만큼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다짐한 동식이다.
***
“하아··· 꽝이네.”
미간에 주름을 잔뜩 만들며 긴장했던 해준의 얼굴이 실망감으로 가득 찼다.
S등급 식재료 정체를 확인한 해준의 어깨가 축 처졌다.
기대감이 컸던 만큼 실망감도 몇 배로 크게 다가왔다.
현질 100만 원을 해서 겨우 레전더리 카드를 뽑았는데, 그중에서 꽝이 뽑힌 느낌이랄까?
아무짝에 쓸모없는 게 뽑혀버렸다.
게다가 이미 재료 설명에서 치유와 관련된 효과가 없다고 못을 박아버렸다.
실낱같은 희망을 잔인하게 꺾어버렸다.
“해준아. 민초 케이크 이 정도만 구우면 될까?”
좌절의 순간에 클로에가 케이크를 한 아름 들고 나타났다.
해준이 부탁한 굿즈 샵 판매용 케이크 외에도 다양한 쿠키를 구워왔다.
“뭘 이렇게 많이 만들었어?”
“나도 모르게 그만. 헤헤헤, 케이크를 만들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진다니까. 익숙하기도 하고. 계속 만들다 보면 어쩌면 잃어버린 기억을 찾을지도 모르고.”
‘아!···’
클로에의 자조 섞인 말에 해준이 머리가 띵해졌다.
민주를 살릴 수 없다는 건 아쉬움으로 다가왔으나, 약초가 꽝이라는 말은 취소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약초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 있었으니.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겠구나···.’
“클로에. 거기 잠깐 서봐.”
“응? 왜?”
클로에를 불러 세운 해준은 전설의 기억 줄기를 뿌리째 갈아 시드르 꿀, 산양유와 섞어 쉐이크를 만들었다.
[달콤 기억 줄기 셰이크] – S등급 기억 줄기를 뿌리째 갈아 만든 셰이크. 마시면 잊고 지낸 달콤했던 과거 기억의 한 장면을 기억해낸다.예상대로의 마법 효과가 붙은 음료가 완성됐다.
“이거 마셔.”
“오~ 맛있겠다.”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쭈욱.”
“잘먹겠습니다아~!”
클로에가 셰이크를 단숨에 비워냈다.
그리고.
“어?! 뭔가 이상해.”
동공이 풀린 클로에가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