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158
157화. 전설의 약초(5)
***
제노 왕국 수도 할베르.
서쪽 대륙에 위치한 제노 왕국은 주변국과의 활발한 교역으로 진귀한 음식 재료가 많이 모이는 곳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양한 요리법이 발달했고, 자연스레 각지의 요리사들이 모여들었다.
타일러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고의 파티시에를 꿈꾸며, 수도에 올라왔다. 비록 지금은 외곽 변두리에서 작은 빵집을 운영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요리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어 궁중 요리사 자리에 오르길 소망하고 있다.
조만간 있을 왕국 요리대회 예선.
참가 자격을 얻지 못한 타일러는 예선 통과부터가 난항이었다.
“음. 역시 뭔가 부족해. 임팩트가 없어.”
대회에 출품할 요리를 앞에 두고 고민에 빠진 타일러.
그의 요리는 페이스트리를 아주 얇게 펴 겹겹이 쌓아 올리며 사이에 생크림을 얇게 펴 바른 케이크다.
부드럽고 푹신한 식감은 자신 있었지만, 문제는 비주얼과 디저트 특유의 향이 부족하다는 것.
“끄응···.”
왕국 요리대회는 전국의 난다긴다하는 요리사들이 모두 참여한다.
본선 참가자들 외에도 예선부터 거쳐야 하는 수천 명의 요리사들.
수천 가지의 요리가 출품되니 심사위원의 눈에 띄기 위해서는 시각적 화려함이나 향기, 독특한 맛이나 식감이 독특해야 한다. 기억에 남지 않는 요리는 그저 묻힐 뿐.
자신의 디저트를 완성해줄 마지막 화룡점정이 필요했다.
고민하던 타일러는 베이지색 케이크 위에 슈거 파우더를 눈꽃처럼 흩뿌리고, 들판에서 채취한 베리들을 얹었지만 2% 아쉬웠다.
여전히 허전해 보였다.
화려하고 강렬한 색감으로 심사위원의 눈을 집중시킬 마지막 한 방이 부족해 보였다.
“평범하잖아. 이런 디저트로는 예선에 통과할 수 없다고.”
.
며칠을 연구에 매달렸다.
수십 가지의 가니쉬를 만들어 올렸지만, 모두 그저 그런 평범한 모양. 100%의 케이크는 여전히 완성할 수는 없었다.
“아빠!”
“이것 좀 봐요.”
고민을 거듭하던 그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딸이 작은 오븐 팬을 들고, 그에게 다가왔다.
“아빠. 이것 좀 보세요.”
“언니랑 내가 만든 거예요.”
자랑하듯 아빠 앞에 내민 오븐 팬. 그 안에는 막 구워낸 달, 별, 해 모양의 앙증맞은 쿠키가 놓여있었다.
“이야, 예쁜데.”
“헤헤. 그렇죠? 이건 클로에가 만든 거고, 이건 제가 만든 거예요.”
“아빠. 이거 먹어봐.”
잔뜩 기대한 눈의 클로에가 아빠 입에 쿠키를 밀어 넣었다.
평가를 기대하며 반짝이는 눈빛. 쿠키를 씹어 넘긴 타일러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엄청 맛있는데? 맛있는 쿠키를 줬으니까 아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자.”
타일러가 케이크 조각을 잘라 두 딸에게 나눠줬다.
“우와, 아빠가 만든 케이크다.”
“헤헤. 맛있겠다. 난 세상에서 아빠가 만든 케이크가 제일 좋아. 그치 언니?”
“응. 아빠 케이크가 최고.”
얼굴에 잔뜩 밀가루를 묻힌 작은 꼬마들이 케이크를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면서도 타일러의 얼굴에는 작은 그늘이 졌다.
하루라도 빨리 파티시에로 성공해 딸에게 당당하고 멋진 아빠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딸랑-
그때, 식재료 납품업자 라스라이가 밀가루 포대를 짊어지고 가게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라스라이 씨.”
“아저씨.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입가에 잔뜩 생크림을 묻힌 자매도 해맑게 인사했다.
“오, 너희들도 있었구나. 근데, 뭘 그렇게 맛있게 먹고 있냐?”
“아빠가 만든 케이크요.”
“라스라이 씨도 한 조각 드세요.”
“출출하던 차에 잘됐군.”
라스라이도 자매들 옆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타일러의 케이크를 먹었다.
그의 가게에서는 팔지 않는 종류의 디저트였다.
신메뉴냐는 질문에 타일러는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식자재를 납품하는 그라면 혹시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요리대회에 출품할 케이크라···.”
“어때요? 라스라이 씨 보기에도 좀 부족하죠?”
“맛은 훌륭해. 다만 자네 말처럼 뭔가 임팩트가 부족하군.”
케이크를 맛본 라스라이 역시 심사위원의 혀가 아닌, 눈과 코를 사로잡을 뭔가가 부족하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어울릴만한 식재료가 있을까요?”
“음, 이런 모양이라면···. 설산 딸기 한 송이 올리면 딱 맞겠는데 말이야.”
케이크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들이민 라스라이가 말했다.
설산 딸기.
왕국 수도 북쪽의 만년 설산에서만 자라는 특별한 과일이다.
매혹적인 붉은빛과 100미터 밖에서 풍기는 강렬하고 매혹적인 향기. 게다가 씹는 순간 달콤한 과즙이 폭죽처럼 터진다는 최고급 과일. 구하기도 쉽지 않지만, 있어도 부르는 게 값이라 돈 많은 귀족이나 먹을 수 있는 아주 귀한 음식 재료다.
당연하게도 타일러의 주머니 사정으로는 절대 구할 수 없었다.
“그 비싼 걸 어떻게 써요? 제 주머니 사정으로는 무리입니다.”
“음, 그럼 케이크값 좀 해볼까? 내가 얼마 전에 들었는데 말이야···.”
라스라이가 은밀한 얘기라는 듯 타일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최근 어떤 약초꾼이 설산에 갔다가 그 귀한 설산 딸기를 따왔다는 내용이었다.
“거긴 큰뿔버팔로 서식지잖아요.”
설산에 서식하는 흉폭한 몬스터 큰뿔버팔로.
자신의 영역에 접근하는 건 뭐든 들이받아 버리는 호전적인 몬스터다. 그러다 보니 몬스터들의 서식지에는 진귀한 식재료와 약초들이 보물처럼 묻혀있다.
거기까지는 누구나 아는 정보였고, 진짜는 그다음이었다.
“그 친구 말이 버팔로 서식지까지 들어갈 필요도 없다는군. 입구 근처에 평소에 못 보던 길이 있어서 갔는데, 그 절벽 아래로도 딸기가 몇 송이 더 있었다더군. 캐지는 못했지만 말이야.”
입구라면 큰뿔버팔로는 살지 않는다. 이따금 나타나는 큰엄니토끼가 있지만, 워낙 성격이 온순한 초식 몬스터였기에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몬스터는 몬스터. 소문에 큰엄니토끼는 아이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고, 용병도 모험가도 아닌 타일러가 도전하기엔 무리였다.
“도전해볼 가치는 있지.”
“···.”
타일러도 설산 딸기는 탐이 났지만, 그렇다고 목숨을 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에게는 아내와 두 딸이 있으니 말이다.
결국,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기로 얘기가 마무리됐다.
.
그리고 그날 밤.
클로에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눈을 떠보니 가방을 둘러맨 언니가 방을 나서고 있었다.
“언니 어디가?”
“쉬잇~ 조용.”
“어디 가는데?”
“몰라도 돼.”
“라스라이 아저씨가 말한 설산 입구에 가려는 거지?”
클로에는 아까 어른들의 대화를 유심히 듣던 언니의 얼굴을 상기하며 말했다.
“나, 나도 따라갈래.”
“안 돼.”
“나도 할 수 있다고!”
“꼬마는 그냥 자던 잠이나 주무시지.”
“치이, 언니도 아직 꼬마 주제에. 나 안 데려가면 지금 당장 아빠한테 달려가서 이를 거야. 아ㅃ···”
언니의 손이 다급하게 클로에의 입을 틀어막았다.
만약 지금 들킨다면 설산 딸기를 캐 아빠를 도와주겠다는 자신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게 뻔했다.
“끄응··· 좋아. 대신 언니 뒤에 바짝 따라붙어 와야 해.”
“응. 알았어.”
그렇게 두 소녀는 몰래 집에서 빠져나와 성문 밖 설산으로 향했다.
산 입구에 다다르자 마을과는 다른 한기가 불어닥쳤다. 소녀들은 준비해온 겉옷을 걸쳐 입고, 만년 설산의 입구로 들어섰다.
라스라이 아저씨 말처럼 흉악한 몬스터도 없었고, 이따금 보이는 큰엄니토끼는 어린 자매가 관심 없다는 듯 웅크린 자세로 쿨쿨 잠만 잤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내 막다른 절벽이 보였고, 아래를 내려다보자 라스라이 아저씨가 말했던 설산 딸기 한 송이가 보였다.
“저, 저기. 설산 딸기 아냐?”
“맞는 거 같은데? 잠깐만.”
“근데 어쩌지 언니? 손을 뻗어도 안 닿을 것 같은데.”
언니가 한눈을 판 사이 클로에는 겁도 없이 절벽에 몸을 기대 아래로 손을 뻗었다. 가방에서 나무에 묶을 끈을 찾던 언니는 동생의 돌발 행동을 뒤늦게 발견했고.
“클로에 위허···ㅁ!”
미끌-
“꺄아악, 언니.”
클로에는 절벽 아래로 그대로 추락해버렸다.
***
“언니···.”
멍하던 클로에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손수건을 건넨 해준은 클로에가 감정을 추스를 때까지 잠시 기다려주었다.
“뭐 기억 난 거라도 있어?”
“응.”
기쁜 미소를 지으며 눈물을 닦았다.
“생각났어. 전부.”
반응을 보아하니 셰이크의 효과는 확실했던 것 같다.
예전에 만들었던 ‘소스 듬뿍 미트볼 파스타’의 강화판이라고나 할까.
당시 해준의 요리를 먹었던 클로에는 자신에게 언니가 있고, 파티시에였던 아버지처럼 자신과 언니 모두 최고의 파티시에가 되고 싶다는 기억을 떠올린 바 있다.
아쉽게도 가족 이름이나 기억 등을 되찾을만한 결정적 단서는 떠올리지 못했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클로에는 언니와 헤어졌던 기억을 해준에게 털어놨다.
“그럼 떨어진 절벽이 우리 농장 뒤편이었던 거야? 기억도 잃고?”
“그건 아니야.”
“그럼?”
“···.”
클로에가 잠시 말을 아꼈다.
아마도 잃어버렸던 기억들이 마구 떠오르기 때문이리라. 해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역시 S등급 식재료라 효과가 엄청나네.’
파스타가 아주 작은 기억 일부를 떠오르게 했다면 셰이크는 클로에가 잃어버린 기억 전부를 떠올리게 했다. 만약 전설의 약초를 찾았고, 그 약초가 S등급이라면 어쩌면 강화된 효과로 민주의 불치병도 고칠 수 있을 것이다.
해준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일단 클로에의 잃어버린 언니를 찾아주고, 다음은 민주의 병을 낫게 해 줄 전설을 약초를 찾기로 했다.
“일어나.”
“응? 왜?”
“기억을 되찾았으니까 빨리 가족도 찾아야지. 아버지랑 언니가 애타게 찾고 있을 거 아냐.”
“아··· 응!”
클로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던 곳이 어디였어?”
“할베르. 아버지 이름은 타일러 그리고 언니는 리사.”
“리사.”
“리사?”
“응. 리사.”
‘설마?···’
리사라는 이름은 해준도 알고 있다.
토튼성 주방의 파티시에 리사.
그러고 보니 둘 다 금발에 생긴 모습도 비슷했고, 성격이나 취향도 친자매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래도 리사는 이미 클로에를 만나지 않았나? 클로에는 기억을 잃었다 하더라도 리사는 알아봤어야 하지 않?··· 아!’
생각해보니 리사와 클로에가 직접 대면한 적은 없다.
함께 토튼성에 갔을 때 스치듯 뒷모습을 본 게 전부. 그러니 헤어진 지 몇 년이나 된 동생이라도 알아볼 수 없었을 터.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비록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둘은 몇 번이고 스쳐 지나갔었다.
“일단 수도로 가야 할까? 기억을 더듬어보면 예전에 살던 집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허. 그럴 필요 없겠어.”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니 언니. 내가 아는 사람 같아.”
“어떻게?”
해준이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클로에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렇게 가까이 있었는데, 찾지도 못하고.”
“이제라도 찾았으니 다행이지. 빨리 가자.”
“잠깐, 그 전에.”
클로에는 팔을 잡아당기는 해준의 손목을 잡으며 그를 진정시켰다.
어린 시절 기억이 되살아나며 떠오른 또 하나의 기억 때문이다.
“왜? 빨리 언니 만나러 가야지.”
“할 말이 있어.”
“뭔데?”
“아까 미처 하지 못한 말이 있어.”
“급한 거 아니면 나중에 하지. 지금은 언니를 만나야 하잖아.”
“아니. 이것도 급해.”
클로에의 손을 잡아끌던 해준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이 순간 몇 년 동안 헤어졌던 언니를 찾아가는 것만큼이나 급한 일이라니.
“나 찰스 아저씨 알아. 니 아버지.”
“네, 네가? 어떻게?”
클로에 입에서 뜻밖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해준이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