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161
160화. 왕을 위한 요리(2)
***
해준이 선보인 반찬은 조미김과 오징어 진미채.
나름으로 랭킹 1위라고 생각하는 스팸 구이는 이곳에서는 구할 수 없는 음식이니, 아쉬운 대로 반숙 프라이와 버터를 한 조각 올린 달걀간장밥까지 3가지를 메뉴를 준비했다.
“죄다 처음 보는 요리들뿐이군.”
“드셔보세요.”
해준의 말에 요리사들이 반신반의하며 반찬들을 맛봤다.
“맵군.”
“이건 좀 짭니다.”
“이것도 간이 세요.”
“그냥 드시니까 그렇죠. 말씀드렸잖아요. 이건 밥과 함께 먹는 요리들입니다. 이렇게 한번 드셔보세요.”
해준이 밥 한 숟갈을 조미김 위에 덜어놓고 진미채를 올려 오르두의 입에 넣어줬다.
오물오물-
“!!??···”
“아까랑 다르죠?”
“오오, 씹을수록 나오는 쌀의 단맛에 매콤한 양념의 맛이 어우러졌어.”
게다가 쫀득하게 씹히는 진미채의 식감은 일품이었다.
총주방장의 반응에 아메스와 요리사들도 해준에게 배운 방식대로 음식을 맛봤다.
“과연.”
“먹는 방법에 따라 맛 차이가 확연하네.”
애피타이저와 메인, 디저트로 이어지는 코스 요리만을 만들던 요리사들에게 해준의 방식은 생경했다.
그들이 내는 요리는 하나하나가 완성품이라면 해준의 음식은 제공된 요리를 취향껏 조합해 먹는 것으로 전혀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쌀밥을 지었으니 본격적으로 국왕의 후각을 찾아줄 요리를 해야 할 차례.
“그래서 무슨 요리를 하려고?”
“설명해도 모르실 테니 완성되면 말씀드리죠.”
배낭에서 추가로 몇 가지 재료를 더 꺼냈다.
“그 배낭은 정체가 도대체 뭐야?”
“끝도 없이 나오네.”
“고블린을 사냥하고 얻은 전리품입니다. 뭐든 신선한 상태로 많이 보관할 수 있죠.”
“호오~ 신기하군.”
가방도 신기했지만, 안에서 나오는 재료들도 특별했다.
<황홀한 송로버섯 – B등급 : 특유의 몽환적인 아로마 향이 진하게 풍긴다. 적당량 섭취하면, 후각이 예민해진다.
얼마 전 고블린과 300대 1 전투를 벌일 때 얻은 전리품들.
이것들로 조리한다면 충분히 국왕에게 도움이 될 버프가 붙은 요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도 소고기, 돼지고기 해안가에서 잡아 손질한 문어와 홍게를 꺼냈고, 오늘의 메인 재료인 콩을 꺼내 들었다.
“두부군!”
콩을 갈고 삶아서 면보에 걸러내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던 아메스 왕자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아는 척을 했다.
요리사들의 고개가 일제히 자신을 향하자 가소롭다는 얼굴로 설명을 덧붙였다.
“콩으로 만드는 요리야. 김치라는 매콤하고 아삭한 샐러드와 곁들여 먹으면 술안주로 일품이지. 막걸리라는 쌀로 빚은 술과 찰떡궁합이야. 또 부부를 기름에 튀기듯 구워내면···.”
꿀꺽-
음식을 설명하던 아메스가 군침을 삼켰다.
토튼성의 연회에서 경험했던, 그때의 그 맛이 기억난 모양이다.
갓 만든 두부 자체도 극강의 고소함으로 무장한 훌륭한 요리. 그렇지만, 그날 부쳤던 두부 부침과 모둠전은 기름 요리 특유의 고소함이 더해져 시각, 청각, 후각을 자극해 아메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요리다.
“하하. 맞습니다.”
“과연! 향기로운 술과 안주로 형님의 후각을 고치겠다는 뜻이구만.”
해준의 의중을 파악했다는 듯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아뇨.”
“으잉!? 그럼?”
“이번엔 전 두부를 또 다르게 요리할 생각입니다.”
“다른 조리법?”
아메스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판돈을 모두 잃고 플레이어 뒤에서 포커 게임을 구경하는 구경꾼처럼 서 있던 요리사들의 호기심도 더욱 커졌다.
“오늘 만들 건 술안주가 아닙니다. 메인 요리로 내도 손색없는 든든한 한 끼 식사예요. 간단하지만, 소풍용 도시락 메뉴로도 괜찮습니다.”
알쏭달쏭한 말을 남긴 해준은 갤러리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요리를 이어나갔다.
해준은 이미 완성된 상태의 두부에 마른 면포를 덮고, 넓고 무거운 무쇠솥을 슬며시 올려놨다.
두부의 수분을 빼내는 과정이다.
물기를 제거하는 이유는 두부를 기름에 튀기기 위해서다.
그렇다. 해준이 만드는 요리는 기름에 튀긴 두부, 유부(油腐)다.
“그걸 다시 튀긴다고? 그게 두부 부침과 뭐가 다르지?”
“맛과 모양이 완전 달라져요.”
기름에 튀기면 두부 사이의 공기층에 지방이 스며들어 맛은 더 고소해지고 식감은 더욱 풍부해지는 장점이 있다.
해준의 설명에 재차 고개를 끄덕이는 아메스. 이내 해준의 손동작에 집중했다.
해준은 수분이 완벽하게 제거된 두부를 얇게 썰어 약 110℃의 저온에서 1차로 튀기고, 다시 180℃의 고온에서 2차로 튀겼다.
그러자.
“어?! 커진다.”
“처음보다 커졌어.”
“고온에 두 번 튀기면 처음에 튀길 때 생기는 막 때문에 수증기가 가둬져서 부풀어 오르는 겁니다.”
“호오~ 그렇군.”
뽀글뽀글 기포가 생기고.
두부의 표면이 아름다운 황금색으로 점차 변해갔다.
세상 가장 완벽한 색깔인 치킨 브라운색이 나타날 때쯤 해준은 유부 상태의 두부를 기름에서 꺼냈다.
‘됐다.’
“이렇게 튀기면 독특한 식감을 즐길 수 있죠. 하나씩 드셔보세요.”
갓 튀겨낸 유부를 한 조각씩 맛봤다.
“과연! 식감이 특이한데? 아주 재밌어.”
“쫀득하다.”
“고소하면서도 씹는 맛이 좋아.”
“그런데 어딘지 허전하군. 이것대로 맛이 훌륭하지만, 이런 요리로 국왕님의 잃어버린 입맛을 찾을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하지만, 걱정할 건 없다.
진짜 요리는 지금부터니까.
“성격들 급하시네. 아직 요리는 절반도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유부는 그 자체로도 먹을 수 있고 조림이나 어묵탕에 첨가해 맛을 끌어올리는 감초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초밥으로 만들어 먹을 때야말로 완벽한 식감을 뽐낼 수 있다.
해준은 유부초밥을 만들 셈이었다.
‘촛물부터 만들자.’
유부는 완성되었으니 초밥의 기본이 되는 촛물을 만들 차례.
식초와 설탕, 소금의 황금 비율은 4:2:1
이렇게 만든 촛물을 꼬들꼬들하게 지은 밥에 고루 섞이도록 저어주면 된다. 밥 알갱이가 부서지지 않게 조심히 저어주는 게 포인트.
‘여기에 후각이 예민해지는 효과 있는 송로 버섯 오일을 한 방울 떨어트리고.’
맛과 성능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마법 재료까지 넣었다.
해준은 완성된 촛물 일부를 덜어내 유부를 절이는 데 사용하고, 나머지는 초밥을 만드는 데 썼다.
유부가 새콤달콤하게 절여지는 사이.
재빠르게 토핑을 조리했다.
지글지글-
촤아아-
해준의 손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직장인 남자들이 환장한다는 제육볶음과 돈가스를 기본으로 깔고, 소불고기, 문어숙회, 삶은 홍게살까지 준비했다.
국왕도 남자라면 절대 맛없다고 투정할 수 없는 메뉴들.
‘다됐다. 이제 조립만 하면 돼.’
“다 된 거야?”
기다림에 지친 아메스가 고픈 배를 움켜쥐며 물었다.
평소라면 우아하게 테이블에 앉아 입맛을 돋울 전채요리를 먹으며 기다렸을 테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요리 과정을 지켜보는 건 그에게는 고문과도 같았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먹을 수 없었으니까.
“거의요. 이제 조립만 하면 되는데, 왕자님께서도 밖에서 함께 기다리시죠.”
“그, 그럴까?”
아메스는 침을 꼴깍 삼키고, 국왕이 있는 곳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해준은 심혈을 기울여 마지막 과정에 돌입했다.
촛물을 꽉 짠 유부에 밥을 적당히 채워 넣고, 그 위에 고추냉이를 듬뿍. 마지막으로 소불고기 토핑을 얹었다.
먹음직스러운 1호 유부초밥.
과연 결과는?!
[양 조절에 실패한 벌칙용 유부초밥] – 고추냉이를 너무 많이 넣었다. 유부초밥의 황홀한 풍미는 사라지고, 강렬한 매운맛만 남았다. 섭취하면 부작용으로 3시간 동안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헛. 고추냉이가 과했나? 이건 한쪽으로 빼놓자.’
아무래도 고추냉이를 너무 많이 넣은듯했다.
이번에는 양을 줄여 새끼손톱만큼 덜어내 초밥과 토핑 사이에 살짝 끼워 넣었다.
고소함과 새콤달콤한 매력을 동시에 지닌 유부초밥.
그 위에 어떤 토핑을 얹느냐에 따라 맛의 바리에이션은 끝이 없다.
유부초밥 본연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오리지널 초밥부터 만들어 접시에 차곡차곡 담았다.
그렇게 각각의 토핑을 얹어 모둠 유부초밥을 완성했다.
[모둠 유부초밥] – 남자라면 반할 수밖에 없는 맛. 송로버섯과 고추냉이 효과로 인해 지독한 만성 비염 환자라도 코가 뻥 뚫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한 접시를 모두 섭취하면, 후각이 되살아난다.해준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
“흐음···.”
국정 운영과 관련된 서류를 읽던 국왕이 옅은 침음을 흘렸다.
어쩐지 머리가 아파져 왔다.
요리를 해오라고는 했지만, 막상 먹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후각을 상실하니 음식을 먹는 일이 고역에 가까웠다.
뭐든지 고무 씹는 느낌이고, 입안에서는 모래알이 굴러다니는 퍽퍽한 느낌뿐이었다.
먹는 즐거움으로 살아온 베르티오의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려버렸다.
미식가였던 그가 어느새 요리를 혐오하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덩달아 살도 빠졌고, 입술이 부르트는 등 신체 영양이 불균형한 상태가 되었다.
“형님.”
차해준과 사라졌던 아메스가 돌아왔다.
마치 국경일 전날 두둑한 보너스와 월급을 받은 노동자 같은 표정이다.
“이제 요리가 거의 다 됐답니다.”
“응. 그래.”
“안 기쁘십니까?”
“내 사정 알잖아.”
“이번엔 다를 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장담하지?”
“해준 그 자는 국경지대 일대에서 손꼽히는 요리사입니다. 마법도 다룰 줄 알고, 보지도 듣지도 못한 요리들을 뚝딱해내는 뛰어난 실력자죠.”
토톤성에게 해준이 만들어준 환상적인 요리.
또, 그곳 항구 마을을 거쳐 가는 수많은 교역상들이 해준의 요리를 먹기 위해 도시락을 신청한다는 일화도 빼놓지 않았다.
얘기만으로도 배가 고파졌다.
그러나 맛있게 먹으리라는 기대는 없었다.
적어도 해준이 요리를 들고 나타나기 전까지.
.
.
.
베르티오 국왕은 자신 앞에 놓인 요리를 지그시 내려다봤다.
흡사 디저트와 비슷한 생김새.
난생 처음 보는 요리였다.
“이게 무엇인가?”
“유부초밥입니다.”
해준은 콩에서 두부를 만들어 다시 튀기는 과정과 함께 베르티오가 생소해 할만한 식자재의 사용 설명까지 곁들여 친절하게 설명했다.
평소라면 강한 호기심을 드러내며 음식을 맛봤을 테지만, 지금은.
“흐음··· 그렇군. 그럼 그냥 한입에 넣으면 되는 것인가?”
“네. 드시는 순서는 상관없으나 담백한 것부터 양념이 강한 초밥 순서대로 드시면 됩니다.”
베르티오의 첫 번째 선택은 홍게살을 얹은 초밥이었다.
해준은 국왕의 꽤 괜찮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다.
홍게살에 마요네즈와 몇 가지 소스를 섞어 풍부한 맛이 나게끔 조리했기 때문이다.
잠시 망설이던 국왕이 초밥을 입에 넣고 턱관절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물오물-
‘이것 봐. 역시 그냥 모래알 씹···!!??’
국왕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나듯 심하게 요동쳤다.
“이럴 수가! 마, 맛이 느껴져?”
후각이 완벽하게 살아나지 않았지만, 놀랍게도 혀끝의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아··· 입안 가득히 퍼지는 고소하면서도 새콤달콤한 맛! 유부의 표면은 튀김 특유의 거칠면서도 쫄깃하게 씹히는 식감이 훌륭하고, 유부가 찢어지면서 싱그러운 봄 향기처럼 톡톡 터지는 밥 알갱이가 혀를 즐겁게 하잖아!!’
홍게살 유부초밥을 먹어 치운 베르티오가 두 번째 조각을 집어 들었다.
“어디··· 이건.”
오물오물-
문어는 쫄깃하면서도 담백한 식감을.
돈가스는 기분 좋은 바삭함을.
제육볶음과 소불고기는 단짠단짠의 교묘한 조화를 느끼게 해 줬다.
“허, 맛있어.”
뿐만 아니다.
유부초밥 위에 올려진 토핑은 저마다 다른 개성을 뽐냈다.
마치 하나의 요리이면서도 전혀 다른 요리처럼 느껴지는 완벽하게 다른 맛.
‘맛있어! 너무 맛있어!··· 이게 얼마 만에 느껴보는 음식 맛이냐!!’
비강을 타고 흘러넘치는 다양한 식재료의 냄새들.
‘아아··· 냄새가 느껴진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황홀한 향기.
때로는 흙냄새가 진동하는 숲의 한가운데에 있었다가 곧장 바닷속으로 풍덩 뛰어드는 기분이 들었다.
‘저마다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며 강렬하게 후각을 강타하고 있어!’
쩝쩝쩝-
‘이건 마치 하나의 거대한 교향곡. 식재료들이 개성을 뽐내며, 마침내 한데 어우러져 그야말로 완벽한 하모니를 들려준다.’
눈을 지그시 감은 베르티오 국왕의 입꼬리가 심하게 말려 올라갔다.
감출 수 없는 환희.
완벽한 맛의 쓰나미.
순식간에 접시가 비워졌고, 식사를 마친 베르티오는 후각을 되찾았다.
“실로 완벽한 요리였네.”
“감사합니다.”
“덕분에 잃어버렸던 후각까지 되찾고, 전에 먹어보지 못했던 환상적인 요리까지 먹게 됐어. 보답을 좀 하고 싶은데.”
비로소 베르티오 국왕의 입에서 해준이 원하던 단어가 튀어나왔다.
예의상 잠시 고민하는 척 뜸을 들인 해준은 뭐든 괜찮으니 말해보라는 국왕의 다그침에 입을 열었다.
“그게··· 꼭 보고 싶은 장소가 있습니다.”
“그래. 그게 어딘가?”
“국왕님의 비밀 서고요.”
그러자 베르티오의 미간이 깊은 주름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