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166
165화.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3)
***
메뉴가 찐 감자뿐인 단출한 식사가 끝났다.
밖으로 나온 블라파는 단검 한 자루를 손에 쥐고 악어가죽을 벗기는 작업에 열중했다. 어른들이 몬스터 사냥에 동행해 부산물을 수집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더니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슥슥슥-
등판의 가죽을 크게 떼어내고, 나머지 부위에서도 최대한 손실 없이 가죽을 도려냈다.
“솜씨 좋네.”
한참을 지켜보던 해준이 말했다.
“이거라도 잘하지 않으면 사냥에 안 데려가니까요.”
“그거 하면 돈은 많이 벌어?”
“사실 엄마 약값에 보태고 나면 남는 것도 별로 없어요. 그래도 오늘은 형을 만나서 다행이에요.”
가죽과 독침을 팔아 번 돈이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 된다.
한 달은 족히 사냥을 따라다녀야 벌 수 있을 만큼의 큰 금액.
이것으로 당분간 엄마 약값은 해결됐으니 블라파 입장에서도 숨통이 트인 셈이다.
꼬르륵-
작업 중인 블라파의 배에서 민망한 소리가 났다.
막 저녁을 먹었지만, 식사라고 해봐야 감자 한 알. 한창 많이 먹을 나이인 블라파에게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아직 배고프구나?”
“헤헤. 어쩔 수 없죠. 엄마 약값을 대는 것도 벅차서 배불리 먹는 건 꿈도 못 꿔요. 그래도 내일은 돈이 좀 생기니 꼭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드릴게요.”
블라파의 마을은 사막 한가운데 있어 식료품이 다른 지역보다 비싸다.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는 건 양과 약간의 채소뿐. 닭이나 돼지, 소 같은 가축은 꿈도 못 꾸고, 양을 키워 얻을 수 있는 유제품과 고기가 식량의 전부라고 했다. 게다가 이 마을은 요리 문화도 발달하지 못해 불에 직화로 구워 먹거나, 구할 수 있는 채소를 넣고 찜 요리를 해 먹는 게 전부.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가난한 블라파 모자의 식량은 감자가 최선. 그마저도 배불리 먹을 수 없는 상황이다.
“난 괜찮은데.”
“제가 안 괜찮아요. 엄마가 은혜는 꼭 갚아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부담 갖지 마세요.”
블라파의 마음이 고마웠다.
‘음··· 내가 뭐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을까?’
해준은 블라파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했다.
당장에라도 배낭에서 최고급 식재료를 꺼내 상다리 휘어지게 음식을 차려주고 싶었으나, 해준이 떠난 이후에는 또 어쩐단 말인가.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식재료가 부족한 이곳에서 스스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다됐다.”
가죽 벗기는 작업을 끝낸 블라파가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내며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형이 악어의 배를 찌른 덕분에 가죽의 품질이 아주 좋아요. 꽤 좋은 값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다행이네. 그런데 그건?”
해체하고 남은 악어 고기를 보며 물었다.
“이건 버려야죠. 질겨서 못 먹어요.”
“아깝네.”
“어쩔 수 없죠. 악어 고기 먹으려다가 이빨이 몽땅 부러질걸요? 크큭. 냄새도 심하고.”
전갈은 독성이 있어 먹지 못하고, 악어는 마땅한 조리법이 없어 먹지 못했다.
“그런 문제라면 내가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은데.”
“형이요?”
“실은 내 직업이 요리사야.”
“네?! 모험가가 아니라요?”
“사정이 있어서 잠시 여행을 다니는 중이야.”
해준이 손질하고 남은 악어 고기를 면밀히 살피며 대답했다.
악어 고기도 조리만 제대로 하면 그럴듯한 식재료가 될 수 있다.
실제로 현실 세계에서도 몇몇 국가에서는 악어를 재료로 한 음식도 존재했다.
‘어떻게 만들까?···’
냉장고가 없는 사막에서는 뭐든 쉽게 상해버린다.
악어 사냥에 성공했을 때 한 번에 대량으로 만들어놓고 오랫동안 두고 먹을 수 있는 조리법이 필요했다.
‘지방이 적고 살코기만 있는 부위는 육포로 만들고, 나머지는 훈제를 하자.’
두 가지 조리법으로 요리를 계획했다.
육포는 사냥을 나갔을 때 먹기 편하고, 훈제 고기는 장기간 보관해 먹기 좋다.
제대로 만들기만 한다면 찐 감자보다야 훨씬 배도 부르고, 영양도 풍부하다.
“지금부터 형이 만들 테니까 잘 보고 배워.”
“전 요리는 할 줄 모르는데요.”
“아주 간단해.”
“정말요?”
블라파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럼. 한번 보면 금방 따라 만들 수 있어.”
조리법이 간단한 육포를 먼저 만들었다.
원래대로라면 핏물 뺀 살코기를 간장과 향신료 베이스의 양념에 버무려 재워두고, 건조하는 방법. 향신료도 간장도 구하기 힘든 사막에 맞춰 레시피를 변형했다.
‘간단하게 소금과 후추만 뿌려주자.’
얇게 포 뜬 악어 고기에 소금과 후추를 뿌렸다.
두 가지 향신료는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조미료.
핏물을 충분히 빼주고, 후추를 뿌리는 것만으로 잡내는 어느 정도 제거할 수 있다.
간장을 쓰면 맛이 훨씬 풍부해지겠지만, 소금으로 간만 맞췄다.
이제 그늘에서 바짝 마를 때까지 건조만 하면 끝.
뒤에서 해준을 지켜보던 블라파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게 끝이에요?”
“응. 어때 쉽지?”
“정말 간단하네요.”
“이건 비상식량이야. 사냥 나갈 때 챙겨가서 하나씩 씹어 먹으면 허기를 없앨 수 있어.”
“오!~ 그렇구나.”
육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군인들의 전투식량으로 많이 쓰였다.
맛은 좀 떨어지지만, 몬스터 사냥을 따라나설 때 먹기 편할 터.
블라파에게 딱 필요한 맞춤 요리다.
“따라 할 수 있겠지?”
“넵.”
“그럼 다음 요리도 해볼까?”
“또 있어요?”
“당연하지. 지금 만드는 게 진짜야.”
해준은 블라파의 뒷마당으로 돌아가 아무렇게나 놓여있던 벽돌을 쌓기 시작했다.
사막 지역인만큼 흙으로 만든 진흙 벽돌은 발에 차일만큼 많았다.
블라파가 궁금한 눈으로 바라보자,
“화덕이라는 조리 기구를 만드는 거야.”
훈제를 하기 위해서는 열과 연기를 가둘 화덕이 필요했다.
한번 만들어두면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으니, 심혈을 기울여 벽돌을 쌓았다.
배낭에서 철판을 꺼내 문과 그릴도 만들어 달았다.
‘됐다.’
완성된 화덕 맨 아래 칸에 불을 피우고, 악어 고기를 두툼하게 손질했다.
“이제 소금과 후추만 뿌려주면 돼. 만약 향신료를 구할 수 있으면 더 첨가해도 좋고.”
해준은 바질, 파프리카, 로즈마리, 강황 등 가지고 있는 재료들로 럽(rub)을 만들어 블라파에게 줬다.
일 년은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양이었다.
“일단 이거 쓰고.”
“감사합니다.”
“고기에 럽을 충분히 발라주고, 여기에 올리면 돼.”
훈제는 음식에 연기를 쐬는 조리 방식이다.
약 40℃ 온도에서 6시간 정도 혹은 하루 이상 연기를 쐬어 주면서 익히는 조리법이기에 불이 닿지 않게 조심히 고기를 올렸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슬슬 고기 익어가는 냄새가 피어올랐다.
꿀꺽-
아래위로 심하게 요동치는 블라파의 목울대.
“으, 맛있는 냄새. 아직 멀었어요?”
“시간이 좀 걸려.”
“아~ 먹고 싶다.”
“이게 무슨 냄새예요?”
집에 있던 에넬까지 구수한 냄새에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엄마. 형이 요리를 만들고 있어.”
“요리?”
주변을 둘러보니 아들 말처럼 처마 밑 그늘에 선홍빛 고기가 매달려 있고, 못 보던 조리 기구 안에서 불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블라파가 조금 전까지의 일을 자랑하듯 늘어놓자, 에넬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들을 몬스터에게서 구해주고, 요리까지 수준급이라니.
‘못하는 게 뭐지?’
“이제 거의 다 됐으니까 잠깐 앉아 계세요.”
“냄새 끝내준다. 형!”
“그러게요. 맛있는 냄새가 나네요.”
어느새 화덕 앞에 옹기종기 앉은 모자.
기대감에 가득 찬 눈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화덕을 바라보았다.
해준은 회심의 요리가 완성되기 직전 배낭에서 꺼낸 마법 재료를 몰래 톡톡 뿌렸다.
[악어 훈제 바비큐] – 은은한 화력에 오랫동안 구워 쫄깃한 식감이 살아있다. 섭취 후, 1시간 동안 피부가 경화돼 물리 공격에 내성이 생긴다.실험 삼아 뿌렸더니, 일종의 방어력 버프가 붙었다.
‘사막에서 떠나기 전에 한 마리 잡아서 고기를 챙겨놔야겠다.’
몬스터와의 전투에 요긴하게 쓰일만한 레시피였다.
“다 됐어요.”
화덕에서 막 꺼낸 고기를 잘랐다.
칼을 대자 육즙이 터져 나오며 잘 익은 고기 단면이 보였다.
“오오.”
“침 고인다.”
환상적인 비주얼에 절로 터져 나오는 탄성.
“드시죠.”
먹기 좋게 썬 고기를 접시에 올려줬다.
“엄마 먼저 드세요.”
“아냐, 아들 먼저 먹어.”
에넬과 블라파가 훈훈한 광경을 연출했다.
어쩐지 그 모습을 보니 오래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났다.
“자자, 고기는 많으니까 빨리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요.”
오물오물-
“!!??”
쫄깃하면서도 부드럽게 씹히는 고기의 식감.
잡내도 전혀 없고, 스모키한 향이 입안에서 기분 좋게 맴돌았다.
이 근방에서 먹을 수 있는 늙은 양으로 만든 요리는 잡내도 심하고, 질겼다. (그마저도 몇 달에 한 번 먹을 수 있는 귀한 요리였지만)
그에 비하면 이 요리는.
“엄청 맛있어요. 형!”
“쫄깃해. 예전에 먹어봤던 닭고기 맛이랑 비슷해요.”
해준의 입에는 닭보다 오히려 탱글탱글한 새우살이나 아귀의 식감과 비슷했다. 사막에 사는 에넬이 바다 음식인 새우를 먹어본 적이 없을 테니, 닭고기를 떠올렸을 것이다.
‘어쨌든 식감은 꽤 괜찮은데?’
무시무시한 생김새와 달리 부드럽고 촉촉한 속살.
오랜 조리 시간에도 육즙이 충분해 식감이 즐거웠다.
스스로도 반할 만큼 꽤 훌륭한 요리였다.
오랜만에 먹는 고기 요리에 블라파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와구와구-
“이거 너무 맛있어.”
“아들, 천천히 먹어. 체하겠다.”
“그치만 너무 맛있어서 멈출 수가 없어요!”
블라파는 엄청난 양의 고기를 먹어 치우고서야 식사를 끝냈다.
잔뜩 배부른 블라파가 반쯤 뒤로 누운 상태에서 개구리처럼 튀어나온 배를 만지며 미소 지었다.
오랜만의 푸짐한 식사.
“오늘 진짜 형 덕분에 행복 하루를 보내네요.”
죽을뻔한 위기에서 살아났고, 귀한 악어가죽과 전갈 독침도 얻었고,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겠는가.
에넬도 아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어떻게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은혜라뇨. 서로 돕는 거죠. 사실 블라파를 보면서 저희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어요.”
해준은 지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일을 에넬에게 털어놨다.
어찌 보면 그때의 해준과 블라파는 상황이 아주 비슷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하늘나라에 계실 어머니가 흐뭇해하시겠어요. 이렇게 훌륭하게 컸으니까.”
잠시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에넬의 말에 여러 가지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해준이 애써 밝은 목소리로 블라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화제를 돌렸다.
“블라파. 어때? 할 수 있겠지?”
“네! 불 조절만 잘하면 되잖아요.”
“맞아. 온도만 잘 맞추고, 중간중간 수분만 보충해주면 돼.”
“알겠습니다.”
“육포는 바짝 마르면 먹고.”
노파심에 레시피를 몇 번이고 반복해 말해줬다.
“기억해. 바위 악어는 배가 약점이야. 모래 속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검을 쥐고 아래에서 위로 푹 찌르면 쉽게 사냥할 수 있어.”
“고맙습니다.”
바위 악어의 사냥법까지 알려줬으니, 이것으로 식량 걱정은 없다.
가죽을 내다 팔면 아픈 홀어머니의 약값에 보탤 수도 있고.
그렇게 하루가 저물고.
.
다음 날이 밝았다.
아침 일찍 일어난 해준은 길을 떠날 준비를 했다.
“형. 벌써 가시게요?”
“가야지.”
전설의 약초를 찾기 위한 여정.
한시라도 지체할 수 없다.
블라파는 기어코 가죽 판 돈으로 보답을 하겠다고 했지만, 해준은 어머니 약값에 보태라고 했다.
“감사합니다. 형. 뭉치 너도.”
“냐아앙.”
블라파가 뭉치의 등을 쓰다듬었다.
“근데 형은 어디로 가는 거예요?”
“서쪽으로.”
“서쪽이요?”
“꼭 찾아야 할 귀한 약초가 있거든.”
“그 약초. 꼭 찾길 바랄게요.”
“고마워.”
“아, 그래도 이렇게 보내기는 너무 미안한데. 잠시만요!”
블라파가 집 안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갔다.
잠시 후.
“이거요.”
천으로 감싼 물건을 내밀었다.
“제가 드릴 거라고는 이것밖에 없네요.”
“이게 뭐야?”
“어제 사막에서 캔 약초예요. 마을 어른들은 먹지 못하는 독초라고 했는데, 혹시 형이라면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아무도 먹지 않는 악어를 완벽하게 요리해낸 해준이다.
그러니 어쩌면 이 독초도 먹을 수 있게 하지 않을까?
블라파는 그렇게 생각했다.
해준은 천을 조심스럽게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허! S등급?!’
블라파의 말처럼 먹으면 사망할 수 있지만, 독성을 빼내면 사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 붙어있다.
아직 독성을 제거하는 방법을 모르지만 언젠가 요긴하게 쓰일듯했다.
“고맙다.”
해준은 블라파가 준 식재료를 배낭에 챙겨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