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167
166화.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4)
***
블라파는 한사코 어제 처음 만났던 곳까지 배웅을 나왔다.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 갈게.”
“조심히 가세요, 형!”
“내가 가르쳐준 거 잊지 말고.”
“악어는 배가 약점. 고기는 불에 직접 닿지 않게 은근한 온도에서 굽기!”
“크큭, 잘 아네.”
“나중에 꼭 한 번 더 들러주세요.”
“기회 되면.”
“찾는다는 약초는 꼭 찾으시고요.”
“안녕.”
해준과 뭉치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사막을 향해 걸어 나갔다.
블라파는 해준이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서 서서 손을 흔들었다.
해준은 나침반의 바늘이 가리키는 서쪽으로 향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사막 지대가 끝나고, 다시 수풀이 우거진 숲이 나왔다.
“휴~ 이제야 좀 살만하네.”
땀에 흠뻑 젖은 해준이 수분을 보충했다.
곁에서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뭉치에게도 물을 줬다. 장모종인 녀석은 해준보다 더 지쳐 보였다.
“냐아앙.”
“너도 힘들지? 좀 쉬었다 가자.”
배낭을 내려놓고 나무에 기대앉았다.
나침반은 여전히 서쪽만을 가리켰다.
“협곡을 지나가야 하네.”
꼬불꼬불 이어진 길 양옆으로 가파른 석회암 절벽이 우뚝 솟아있었다.
통과하려면 하루는 꼬박 걸어야 할 것 같은 끝이 보이지 않는 협곡.
‘저 안에서 야영을 하는 것보다는 입구에서 하는 게 낫겠지?’
협곡 중간에 어떤 몬스터나 위험이 숨어있을지 모른다.
초행길이니 낮에 빠르게 돌파하는 게 보이지 않는 위협을 피하는 최선의 길.
“뭉치야. 오늘은 여기서 야영할까?”
“냥!”
“오늘은 뭘 먹지?”
배낭을 뒤적거리며 중얼거리자 뭉치가 낮게 그르렁거리며 메뉴를 추천했다.
“돈가스?”
“냐앙~.”
“간만에 솜씨 좀 발휘해볼까?”
돈가스는 지금의 해준을 있게 만들어준 요리.
아버지가 남겨준 썬플라워 경양식당의 메인요리이자, 현여친인 민주와 만나고 사귀게 만들어준 메뉴다.
‘······.’
아픈 민주 생각에 해준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곳에 넘어온 지 벌써 몇 주가 흘렀다.
현실 시간으로 일주일 남짓한 시간.
약초를 찾는 데 시간이 많이 소모됐고, 그 사이 혹시나 민주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앞섰다.
‘연락할 방법이라도 있었으면 좋을 텐데.’
민주를 만나는 길은 한시라도 빨리 전설의 약초를 구해 현실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뿐이다.
“냐아앙.”
해준의 얼굴을 살피던 뭉치가 다리 사이로 다가와 기운 내라는 듯 몸을 비빈다.
“냐아앙.”
“고마워. 뭉치야. 힘낼게. 아자, 아자!”
기합과 함께 의지를 다졌다.
의기소침해 있을 시간이 없다.
“먹고 힘내자.”
“냥!”
배낭을 열어 재료를 살폈다.
잘 숙성된 흑돼지 등심을 한 덩이 꺼냈다.
그 옆으로 보이는 S등급의 사막 태양초. 해준은 블라파에게 받은 S등급 사막 태양초를 꺼냈다.
생긴 건 딱 고추처럼 생겼고, 독버섯처럼 화려한 붉은색을 띠고 있다.
‘독성을 어떻게 빼내는 걸까?’
비밀 서고에서 읽었던 내용엔 그저 독성이 강한 약초일수록 잘 다스리면 명약이 된다고만 기술되어 있었다.
‘빨리 알아내야 할 텐데···.’
비단 사막 태양초뿐만 아니라, 전설의 약초를 얻게 된다면 독성을 빼낼 방법이 필요했다.
해준은 사막 태양초를 배낭 깊숙한 곳에 잘 넣어두고, 등심 손질을 시작했다.
두툼한 돼지고기 등심이 쪼개지지 않게 절반 정도만 반으로 자르고, 망치로 내리쳐 얇고 넓게 펴줬다.
얼굴 정도는 너끈히 가리고도 남을 것 같은 거대 크기의 등심에 소금과 후추를 솔솔 뿌려 밑간을 하고, 밀가루 – 달걀 물 – 빵가루 옷을 뭉치지 않게 입혔다.
튀기기 딱 좋은 온도의 기름에 튀김옷 입힌 고기를 넣고 튀겼다.
촤르르-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퍼지는 고소한 향기.
역시 튀김은 언제나 옳다.
이 황홀한 향기 덕분에 튀김은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는 이야기가 생겨났다.
튀김이 노릇노릇 익어가는 사이, 신선한 양배추를 얇게 썰어 접시에 담고, 마카로니 샐러드와 백미 밥 한 덩이를 먹음직스럽게 담아냈다.
‘여기에 마법 재료로 만든 소스만 뿌려주면.’
[원기회복 옛날 돈가스] – 소스가 일품인 경양식당 스타일의 옛날 돈가스. 배불리 먹고 잠들면 체력 회복 속도가 50% 증가한다.“완성이다!”
“냥냥!”
완벽한 경양식 돈가스 한 접시가 완성됐다.
모닥불 위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감자 수프까지 곁들이니 오랜만에 썬플라워로 돌아간 느낌을 받았다.
잠시 감상에 잠겼던 해준은 뭉치의 몫을 덜어주고 식사를 시작했다.
사각-
슥슥슥-
갈색 튀김옷에 나이프를 대자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렸다.
크게 잘라 소스를 듬뿍 찍어 입에 넣자, 바삭한 튀김옷과 소스가 어우러진 기분 좋은 식감이 느껴졌다.
“맛있어!”
기름의 고소한 풍미와 돼지고기 등심이 조화롭게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맛.
돈가스 조각을 정신없이 밀어 넣다 보니 볼이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우걱우걱-
해준은 커다란 돈가스를 빠르게 먹어 치웠다.
이내 버프 효과 때문인지 피곤이 몰려왔다.
“으음··· 졸려.”
식사를 마친 해준은 평소보다 일찍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사두 협곡을 거점으로 하는 알리 도적단.
그들은 협곡을 지나는 상단이나 마차를 공격해 빼앗은 귀중품을 장물아비에게 팔아 생활하는 흔하디흔한 도적단이다.
“염병. 어떻게 한 달이 넘도록 개미 새끼 한 마리 안 지나가냐?”
“이게 다 국왕 때문이잖아.”
“국왕? 국왕이 왜?”
“인마, 3년 전 기억 안 나?”
그때가 알리 도적단의 황금기였다.
수도에서 열리는 요리 대회에 참가하려는 요리사와 각 영지의 특산물을 구매해 수도로 향하던 상단들을 습격해 양손 묵직하게 약탈을 했으니 말이다.
“아! 그러게. 올해도 열리는 거 아닌가?”
“국왕이 돌연 취소해버렸잖아.”
“그래서 지나는 사람이 없는 거로군!”
“그걸 이제야 알다니. 멍청한 놈.”
때로는 고급 용병단을 고용한 녀석들에게 죽임을 당할 뻔도 했지만, 나름 목숨 걸고 일한 보람(?)이 느껴질 정도로 수익이 높았다.
이제는 그마저도 다 팔아버리고 남은 건 낡은 책 몇 권이 전부였지만.
꼬르륵-
신세 한탄을 하던 5인조 알리 도적단의 배에서 민망한 소리가 났다.
며칠 동안 제대로 된 식사도 못 하고, 협곡 주변의 산에서 나는 약초나 캐 먹고 살았으니 당연했다.
“배고파.”
“나도. 매일 풀뿌리나 뜯어 먹으니까 힘도 안 난다.”
“이렇게 기운이 빠져서야 상단을 만나도 힘이나 제대로 쓸지 모르겠다.”
“대장. 배고파요.”
단원들이 원망 섞인 눈으로 두목인 알리를 쳐다봤다.
“어쩔 수 없잖아. 있는 거라도 먹고 버?···”
킁킁?-
말을 하던 알리가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고소하면서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냄새.
“이게 무슨 냄새지?”
“몰라. 엄청 고소한데?”
“으윽, 더 배고프다. 아주 격렬하게 배고파”
“나도. 못 참겠어.”
“퉤! 이런 맛없는 건 못 먹겠다고.”
질겅질겅 씹고 있던 나무뿌리를 뱉어냈다.
며칠째 이런 거나 먹고 있으니 화장실에 가서도 곤욕이었다.
맛도 없고, 뒤는 아프고.
그런데 이건 무슨 그윽한 향기란 말인가!?
“저쪽에서 나는 거 같은데?”
“가보자.”
“오케이!”
알리 도적단이 은밀하게 움직였다.
그들이 다다른 곳은 협곡 초입의 평원.
모험가 한 명이 모닥불을 피우고, 요리에 한창이었다.
꿀꺽-
먹음직스럽게 튀겨낸 고기를 기름에서 꺼낸 장면에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군침을 삼켰다.
“오! 요리사인가?”
“그런 것 같아요.”
“근데, 저 가방 마법 배낭 같지?”
“어? 진짜. 재료들이 마구 나오는데?!”
소문으로만 듣던 진귀한 물건이다.
배낭만 가져다 팔아도 일 년은 충분히 먹고 놀 수 있는 가치가 있을 정도.
“지금 덮칠까요?”
“좀만 기다려.”
수적으로 우세하지만, 혹시나 주변에 동료가 있을지 몰랐다.
알리 도적단은 몸을 숨긴 채 숨죽여 모험가를 지켜봤다.
‘염병. 드럽게 맛있게 먹네.’
며칠을 굶주린 상태에서 푸짐하게 차린 요리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꽤나 힘든 일이었다.
배고픔을 참아내며 지켜본 결과 녀석은 혼자다.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포박하고, 배낭을 빼앗아 달아나면.
‘최소 몇 달은 놀고먹을 수 있어.’
알리가 자신의 계획을 단원들에게 설명했다.
“알겠수. 두목. 그렇게 합시다.”
“아아, 빨리 잠들어라. 짜식아.”
“쉿! 조용히 해.”
수풀 뒤에 몸을 숨기고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모험가가 잠이 들었고, 알리 도적단이 행동에 나섰다.
“가방만 훔쳐서 최대한 빠르게 도망치자고.”
기도비닉을 유지한 채 야영지에 접근해서 배낭을 몰래 빼내는 데 성공했다.
‘크큭, 배낭은 잘 쓰마.’
그대로 도망가려는데.
‘오? 이건 뭐지?’
알리의 눈에 모험가가 목에 걸고 있는 신비한 펜던트가 보였다.
‘값 좀 나가겠는데?’
마법 배낭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니, 이것 또한 값비싼 것이리라.
펜던트까지 훔치기로 결심한 알리는 단원들이 조금 떨어진 곳까지 도망친 것을 확인하고, 모험가의 목에 걸린 펜던트를 잡아챘다.
툭-
동시에 잠들었던 모험가가 눈을 부릅떴고.
“젠장, 튀어!”
알리 도적단은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
습격이다!!
평소라면 금세 인기척을 느꼈겠지만, 버프 효과 때문인지 깊은 잠에 빠져 듣지 못했다.
“뭉치야, 일어나.”
“냥?”
“도적 떼야.”
5인조 도적 떼의 습격을 받은 해준은 빠르게 주변을 살피며 없어진 물건을 찾았다.
녀석들이 훔쳐 간 건 배낭과 나침반. 배낭이야 없어져도 그만이지만, 나침반은 어떻게 해서든 되찾아야 했다.
“뭉치야. 넌 배낭 든 놈들 따라가!”
“냥냥!!”
재빠르게 몸을 일으킨 해준은 검을 손에 쥐고 몸을 앞으로 튕겼다.
“거거 서!”
“너 같으면서겠냐? 흐흐흐. 이건 팔아서 좋은데 써주마.”
거리가 조금 벌어진 상태였기에 알리는 해준을 농락하며 도망쳤다.
협곡은 자신의 앞마당 같은 곳이니, 안으로 들어가기만 한다면 추격하는 해준을 쉽게 따돌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왜냐하면.
“뭐, 뭐야. 왜 이렇게 빨라?”
해준과 뭉치는 이동 속도 증가 버프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냥 서지. 도망치다 잡혀서 맞지 말고.”
알리는 미친 듯이 내달렸다.
그러나 멀었던 거리는 금세 좁혀졌고.
마침내 해준은 나침반 도둑과 마주 섰다.
“쳇!”
“거봐. 이렇게 금방 잡힐 거면서 도망은 왜 쳐?”
“이렇게 된 이상 피를 볼 수밖에 없군.”
“피는 니가 볼 거 같은데.”
“훗. 난 이 협곡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몸이라고. 으헙!”
알리가 칼을 휘둘렀다.
사내의 칼이 어찌나 느린지 해준의 눈에는 칼날에 난 흠집의 숫자까지 고스란히 보였다.
“느려!”
깡-
일격을 여유롭게 받아내자, 흠칫 놀라는 도적.
“헙?!”
“느리다니까.”
“얘들아!”
두목의 신호에 도망치던 도적단이 방향을 틀어 알리에게 돌아왔다.
어차피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뭉치에게 잡혔을 테지만.
“겁도 없이 우리랑 싸우겠다고?”
“흥. 가소롭군.”
대치한 해준과 뭉치 그리고 알리 도적단.
2대 5의 싸움이었다.
숫자가 많은 도적단은 자신들이 유리할 거로 생각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들만의 착각.
“정신 차릴 때까지 흠씬 두들겨 패주라고.”
두목의 명령에 도적단이 달려들었다.
“뭉치야, 넌 왼쪽.”
해준이 오른쪽으로 몸을 날리며 외쳤다.
수많은 몬스터를 물리친 뭉치와 해준. 둘은 각자의 전투력도 훌륭했지만, 합도 잘 맞았다.
당연히 오합지졸 도적단과 상대가 되지 않았고.
팍-
딱-
“으윽.”
그들은 해준의 칼에 속절없이 당했다.
사람은 해칠 수 없었기에 해준은 칼등으로 손목을 내리치고 급소를 가격했다.
퍽-
“으악!”
“두, 두목. 나 좀 도와.”
“인마. 나도 위험ㅎ···.”
쿵-
2대5의 전투는 그 어느 때보다 싱겁게 끝났다.
알리 도적단은 배를 깔고 엎드려 목숨을 구걸했다.
.
.
.
“으으··· 죄송합니다. 너무 배고파서 그랬어요.”
“훔쳐 간 물건은 모두 돌려드릴 테니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착하게 살겠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꼬르륵-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도적단의 배에서 난 소리에 해준이 피식 웃어 보였다.
“풉. 너희들 배고프냐?”
“죄송합니다.”
배고파서 물건을 훔쳤다는 녀석들의 말은 진심인 것 같았다.
배낭과 펜던트도 되찾았으니 해준 입장에서는 딱히 피해를 본 것도 없고.
“웃기는 놈들이네.”
통 크게 도적단을 용서하기로 했다.
“기분이다. 뭐가 먹고 싶냐?”
“뭐든 아무거나 좋습니다.”
해준의 말에 알리 도적단이 눈을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