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169
168화.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6)
***
알리 일행과 헤어진 해준은 빠르게 협곡을 빠져나왔다.
손에 꼭 쥐고 있던 독초학 서적을 떨리는 마음으로 펼쳤다.
국왕의 비밀 서고에서 읽었던 내용이다.
그때는 거기서 내용이 끝났지만, 이 책은 달랐다. 가볍게 숨을 고른 해준이 책장을 넘겼다.
역시나 다음 장에는 독성을 빼는 방법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구증구포인가?’
불을 사용해 약재의 성미를 다스리는 방법.
일설에 의하면 조선 시대 왕실에서도 구증구포를 불로장생 영약을 만드는 필수 과정으로 여겼었다.
‘지금부터 시작하자.’
마침 해가 머리 위에 위치해있었다.
독초인 S등급 사막 태양초를 꺼내 정성스럽게 말렸다.
구증구포는 나침반을 따라 걷는 내내 잊지 않고 실행했다.
처음엔 독버섯처럼 화려했던 사막 태양초의 빛깔이 그윽한 검붉은 색으로 점차 변해갔다.
그리고 거의 한 달째 되던 날.
마침내 노력의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섭취 시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 문구가 사라졌다.
독초학에 기술된 독성 제거 방법이 먹힌 것이다.
이대로라면 전설의 약초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독성을 제거하는 것도 가능할 터.
해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잘됐어.”
독성이 제거된 사막 태양초를 잘 빻아 가루로 만들어 양념통에 보관했다.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흠··· 몇 번은 충분히 사용할 수 있겠어.’
독성이 완벽하게 제거되었는지, 조리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기는지 실험해야 했다.
어차피 끼니 때워야 했다.
메뉴를 고민하던 해준은 모닥불을 피우고, 웍을 꺼내 들었다.
뜨겁게 달군 웍에 식용유와 대파, 다진 마늘을 넣고 기름을 냈다.
고기와 양파, 배추, 버섯, 애호박을 순서대로 넣고, 간장과 고춧가루도 첨가.
불맛을 입히기 위해 화려하게 웍질을 해줬다.
휙휙-
‘여기에 태양초 가루를 살짝 뿌려주고.’
가루를 뿌리자 양념의 색이 아주 붉게 변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가는 빨간색. 한국인이라면 참을 수 없을 매혹적인 색이다.
꼴꼴꼴-
숨이 적당히 죽은 재료들 위로 물을 넣었다.
소금과 굴 소스로 적당히 간을 맞추고, 해산물도 듬뿍 넣었다.
해준이 만든 요리는 짬뽕.
‘크으, 냄새 죽이네.’
커다란 그릇에 미리 삶아둔 면을 담고, 완성된 국물을 부었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불짬뽕 완성.
[불짬뽕] – 세상에서 가장 매운 고추로 만든 짬뽕. 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추의 열기로 인해 섭취 후, 12시간 동안 신체가 매우 뜨거워진다.*어떤 열기도 능히 버텨낼 수 있다.
“됐다. 다행히 부작용도 없어.”
버프 효과는 무려 12시간 지속 화염 저항.
‘가만··· 이러면?’
해준은 얼마 전 만년 설산에서 얻은 설빙을 떠올렸다.
만년 설빙을 갈아 만든 팥빙수를 섭취하면 어떤 추위도 버텨낼 수 있다.
당연하게도 두 가지 음식을 한꺼번에 먹는다면?!
해준은 빠르게 디저트인 눈꽃 빙수를 만들었다.
불짬뽕 한 그릇을 완뽕하고, 디저트로 만년설 눈꽃 빙수를 해치웠다.
두 가지 음식을 모두 섭취했더니 추위와 더위 그 어느 것도 느끼지 못했다.
말하자면 화염 저항과 냉기 저항 버프가 생긴 셈이다.
“좋은데?”
전설의 약초가 자라는 곳은 화기와 냉기가 공존하는 곳이라고 했으니, 두 가지 요리는 해준에게 요긴한 도움이 될 것이다.
‘잘 보관해 놓자.’
“슬슬 출발할까?”
해준이 일어서며 말하자, 식빵을 굽고 있던 뭉치가 몸을 일으켰다.
둘은 나침반 바늘이 가리키는 서쪽으로 걸었다.
몇 개의 도시를 거쳐 계속 서쪽으로 이동.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근데 어째 이 길 익숙하지 않냐?”
“냐아앙!”
수도 할베르로 가며 해준이 지나왔던 도시들이다.
출발할 때는 몰랐는데, 걷다 보니 제법 익숙한 풍경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대로 쭉 가면 토튼성이 나오겠군.”
“냥!”
어느새 토튼성 근처까지 다다랐다.
“어쩌다 보니 다시 여기까지 돌아왔네.”
“냐아앙.”
“그래. 나도 보고 싶어.”
토튼성의 총주방장 이든과 클로에 자매 그리고 농장 사람들까지.
“포테 녀석 잘 있겠지?”
“냥냥!”
“그런가? 뭉치, 네 말처럼 어쩌면 이 대륙에는 전설의 약초가 없는 것일까?”
차원의 농장은 대륙의 끝에 위치했다.
그 말은 즉, 전설의 약초를 구하기 위해 드넓은 바다를 건너 미지의 대륙으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전설의 약초는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할 물건이니까.
“가자.”
“냥!”
***
“이 선반 위로 차곡차곡 쌓아주세요.”
차원의 농장 하스는 일꾼들과 함께 밭에서 수확한 작물을 창고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밭에서 자란 수확물을 창고로 옮기고, 다시 작물을 심고.
해준이 자리를 비운 동안 하스에게 부탁한 업무였다.
“자, 이번에 심어야 할 작물은 옥수수랑 양배추, 감자예요. 구역을 나눠서 심죠.”
하스의 지시대로 일꾼들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적당량의 퇴비를 주며 관리했다.
“이것 좀 드시고 하세요.”
기억을 되찾은 후 더욱 밝아진 클로에가 빵을 잔뜩 구워 갓 짠 산양유와 함께 내왔다.
그녀는 요즘 틈나는 대로 토튼성을 찾아 언니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던 만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매우 소중했다.
“잘됐네. 마침 출출하던 참인데.”
모처럼 나무 그늘 아래 빙 둘러앉아 새참을 먹었다.
“솜씨가 더 좋아졌는데?”
“헤헤, 언니한테 많이 배웠거든요.”
“영주님의 주방에서 파티시에로 일한다는 그 언니?”
“네.”
한창 담소를 나눌 때 한껏 인상을 찡그린 제임스가 다가왔다.
“아저씨. 빨리 와서 빵 드세요.”
“휴, 덥다. 새참은 빵이야?”
“싫으세요?”
“싫은 건 아니지만, 이런 날씨는 치킨에 시원한 맥주 한잔이 딱인데.”
하스의 부탁으로 새로운 저장고를 짓던 목수 제임스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치킨?”
“응. 치킨.”
꿀꺽-
치킨이라는 말에 여기저기서 군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차해준이 만들어준 닭튀김. 단순히 튀기는 데 그치지 않고, 새콤달콤한 양념에 버무려주거나 혹은 치즈 가루를 뿌려주기도 했는데 그 맛은 환상 그 자체였다.
특히나 맥주와 어찌나 잘 어울리던지 목수인 제임스가 사랑하는 메뉴 중 하나였다.
클로에도 해준 특제 치킨을 사랑했다.
그래도 역시나 그녀의 입맛에는.
“난 소주가 더 땡기는데.”
상추와 깻잎을 얹고 특제 쌈장 소스에 노릇노릇 구운 도톰한 삼겹살을 얹어서 준비하고, 맑고 투명한 소주를 한입에 털어 넣으면.
“캬아~!”
“크으, 진짜 땡긴다.”
“역시 소주에는 삼겹살이 진리지?”
“해준은 도대체 언제 돌아오는 거야?”
“그러게. 빨리 돌아와서 치맥도 만들어주고, 쏘삼도 해주지.”
“먹고 싶다.”
해준이 마을에 온 뒤로 주식이었던 빵이나 스튜보다는 밥과 국, 찌개 그리고 삼겹살과 치킨이 최애 메뉴가 되었다.
그들도 모르게 어느새 한식에 중독되었다고나 할까.
모두가 아련한 표정으로 빵을 씹으며 저마다 최애 메뉴를 떠올리고 있을 때.
“응?! 해준?”
농장 저 멀리를 응시하던 클로에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제임스가 피식 웃으며.
“뭐야. 클로에. 너 설마 쏘삼이 먹고 싶어서 헛것이라도 본 거야? 해준이라니? 그 녀석 지금 여행 중이잖아.”
“그게 아니고. 저기 봐봐요.”
클로에의 손끝이 가리는 곳.
아지랑이 넘어 저 멀리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진짠가?”
“해준이야?”
“옆에 뭉치도 있는 거 같은데?”
“해준? 해준이 돌아왔어?”
“그런가 봐요.”
해준의 귀환에 사람들이 한달음에 달려 나갔다.
“여~ 다들 잘 있었어요?”
“찾는다는 건?”
클로에의 물음에 해준이 아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런···.”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정작 꼭 필요한 약초는 얻지 못했다.
아직 나침반이 서쪽을 가리키고 있으니, 농장에서 필요한 물품을 보충한 뒤 떠나기로 했다.
“그동안 저 때문에 고생 많으셨죠?”
“고생은 무슨. 그보다 긴 여행에 지쳤을 텐데 좀 쉬지 그래?”
하스가 걱정하는 눈으로 해준에게 말했다.
“그래야겠어요.”
해준은 자신의 숙소에서 짐을 풀고 잠을 청했다.
***
다음날.
아침 일찍 눈을 뜬 해준은 밤새 자란 작물을 부지런히 수확했다.
슥슥-
단순 노동으로 고민과 잡념이 조금은 사그라들었다.
한창 땀을 흘리며 낫질을 하고 있을 때 포테가 날아왔다.
[해준 님이 돌아오셨군요.]“포테. 그사이 또 성장했구나?”
이제 포테의 머리의 나무는 풍성한 잎과 함께 작은 열매도 맺혀있었다.
아쉽게도 열매는 아직 영글지 않았다.
만약 열매가 익는다면 어떤 맛일지 궁금했다.
[농장 전체에 대지의 생명 에너지가 흘러넘치기 때문이죠. 제힘도 이제 거의 다 회복되었답니다.]“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전설의 약초는 찾으셨나요?]“아니. 아직.”
[저런···.]“그래서 당분간 또 못 돌아올지 몰라.”
해준의 말에 포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농장의 저번 주인이었던 찰스 역시 그 말을 남기고 사라졌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번엔 정말로 긴 여행이 될지도.’
라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옥수수를 베었다.
그때.
그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진동이 느껴졌다.
농장 어딘가의 미지의 지역 안개가 걷힌 듯했다.
그리고.
“어?! 이게 왜?”
동시에 미동도 없이 서쪽만을 가리키던 나침반 바늘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서쪽으로 고정되어 있던 전설의 약초가 있는 곳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움직인다.
그렇다는 건 근처에 약초가 나타났다는 의미.
‘일단 가보자.’
배낭과 무기를 챙겨 빠르게 달렸고.
[해준 님! 저도 함께 가요.]“냥냥!!”
포테와 뭉치도 해준의 뒤를 따라나섰다.
“너희도?”
“냥!”
[넵!]“뒤쳐지지 않게 따라와.”
어쩌면 아주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포털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곳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찾지 못했으니까.
그렇기에 최대한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야 했다.
목초지를 지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곳을 향해 달렸다.
안개가 대부분 걷힌 농장 지역의 끝.
“어? 이게 뭐지?”
[글쎄요. 제 데이터에도 없는 공간입니다.]그곳에서 전에 보지 못했던 거대한 문을 발견했다.
통로와 현실 세계를 잇는 결계보다 더 크고 웅장한 크기.
끼이익-
문을 열고 그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안쪽은 습하고 짙은 안개로 가득했다.
‘안개?’
동시에 비밀 서고에서 읽었던 일지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를 뚫고 나간 우리는 놀라운 광경을 목도했다. 살을 베는 듯한 한기와 용암이 솟아오르는 화염이 공존하는 땅. 냉기와 열기가 만나 피어오르는 수증기 속에서 고고하게 피어난 매혹적인 꽃.>
‘설마?’
[해준 님. 전진하실 건가요?]“물론.”
[앞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데.]“내가 찾는 게 있을 거야. 분명히.”
배낭에서 돼지기름을 꺼내 간이 횃불을 만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주변을 분간하기는 어려웠다.
나침반의 바늘은 아까보다 더 심하게 요동쳤고, 해준은 나침반에 의지한 채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으니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점점 더 격렬히 요동치는 나침반의 바늘을 보며 어쩌면 이번엔 진짜 뭔가를 발견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을 뿐.
얼마나 걸었을까.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났다.
“춥다.”
“냐아앙~.”
장모종인 뭉치조차 추위를 느낄 정도의. 만년 설산보다 더 혹독하고, 강력한 한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더위도.
눈앞에 피어오르는 수증기와 살을 태우고, 동시에 뼛속까지 얼려 버릴듯한 강력한 열기와 냉기.
그 너머로 보이는 매혹적인 꽃.
“찾았다.”
전설의 약초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