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175
174화. 차원의 농장
***
“오빠. 저랑 결혼해줘요.”
민주가 느닷없이 프러포즈를 해왔다.
“겨, 결혼?”
순간 현타가 밀려온 민주는 부끄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럽둥이들은 꺅꺅거리며 환호했고.
댓글 창은 폭발을 넘어 다운될 지경.
해준의 정신도 혼미해졌다.
“네. 저 오빠 많이 사랑해요.”
민주를 사랑하는 해준도 거절할 이유는 없다.
그녀가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다.
그렇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전설의 약초를 구해왔다.
다만.
‘프러포즈는 내가 먼저 하고 싶었는데.’
먼저 받았으니 수락하는 수밖에.
“조··· 좋아.”
“오또케. 좋대.”
“꺄악~ 키스해”
짝-
“키스해!”
짝-
“ㅅ···스해!!”
해준과 민주가 카메라 앞에서 가볍게 서로의 입술을 맞췄다.
뭔가 이상한 시옷 발음이 겹쳐 들렸으나, 그건 어디까지 긴장 상태에서 들린 환청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바쁜 일과가 끝났다.
얼마 전 러블리엔젤의 라방 이후, 썬플라워는 그야말로 팬들의 성지가 되었다.
그리고 방문하는 손님들마다.
-결혼 축하드려요.
-행복하세요.
축하 인사를 남겼다.
‘어쩌나 민망하던지.’
해준은 민주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왜요?”
눈이 마주친 민주가 물었다.
“보기만 해도 좋아요?”
공개 프러포즈를 하더니 한층 과감해졌다.
“큭, 그래. 좋다.”
민주의 썬플라워 컴백은 마치 축신 메시가 이름도 없는 조기축구회에서 볼을 차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당연히 매장은 바빴다.
덕분에 재료가 일찍 소진돼 마감 시간보다 1시간 이상 일찍 끝난다는 장점도 있었다.
“내일 푹 쉬고, 모레 봅시다.”
“넵!”
동식은 기쁜 소식을 가족과 직접 만나 전하겠다며 바로 부산으로 내려갔고, 강훈과 은정은 심야 영화 한 편 때린다며 근처 멀티플렉스로 향했다.
썬플라워에 해준과 철수 그리고 민주만 남았다.
“우리 불멍해요.”
“불멍? 너 요즘 불멍에 완전 꽂혔네?”
“네. 가만히 앉아서 불 보는 게 너무 좋아요. 일렁일렁~.”
짱구 엉덩이 댄스가 연상되는 춤사위.
민주는 숯으로 변한 장작이 빨갛게 일렁이는 순간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불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요즘에는 감성 충만한 이소 가스 랜턴과 등유 랜턴 수집에 푹 빠졌다.
“난 먼저 집에 가 있으마. 천천히 놀다 오거라.”
아들의 데이트를 직감한 차철수가 빠졌다.
해준은 최근 아버지와 함께 지낼 작은 아파트를 구했다.
아버지가 돌아온 이상 언제까지 작은 쪽방에서 지낼 수는 없었으니까.
“먼저 가시게요?”
“나도 눈치가 있으니까.”
“아잉, 괜찮은데. 같이 놀아요. 아버님.”
“나 신경 쓰지 말아요. 나도 집이 편하니까. 아빠 먼저 간다. 아들. 너무 늦지는 말고.”
“들어가세요.”
그렇게 해준 커플만 남았다.
불멍을 좋아하는 민주를 위해 마당 구석에 새롭게 꾸민 파이어 피트에 불을 피웠다.
와인을 마시며 즐기는 불멍 타임.
“아~ 좋다. 언제 제대로 자연으로 캠핑하러 가야겠어요. 노지 캠핑 재밌다던데.”
민주가 말했다.
“막 장작도 패고, 야외에서 취침하고.”
“그런 곳이라면 좋은 데 알고 있는데.”
전설의 약초를 구하기 위해 저쪽 시간으로 몇 달을 노숙하며 모험을 했다.
“생각보다 막 재밌지는 않아.”
“해봤어요?”
“응. 어쩌다 보니.”
“와~ 완전 부럽다. 다음에 꼭 같이 가요.”
“그러지 말고, 갈까?”
“지금이요?”
해준은 민주의 손을 잡고 작은 쪽방으로 향했다.
그러자 얼굴을 붉히는 민주.
“뭐야. 왜 여기로 와. 응큼하긴. 자.”
무슨 음란한 상상을 했는지 눈을 감고 입술을 지그시 내미는 민주.
그녀의 기대(?)를 깨긴 싫었지만, 민주를 지나쳐서 옷장을 밀어 통로를 열었다.
“우와, 이거 뭐야?”
“들어가자.”
“여기 뭔데?”
“가보면 알아.”
민주는 해준의 손에 이끌려 어두운 통로를 걸었다.
그리고.
“뭐야? 여기 왜 해가 떠 있어? 오빠. 이거 뭐예요?”
마주한 낯선··· 아니 이질적인 공간.
꿈을 꾸는 것도 아니고 조금 전까지 한밤중이었는데, 느닷없이 해가 떠 있다니.
게다가 서울 한복판이라 생각되지 않는 울창한 숲까지.
“뭐지? 나 최면 걸린 건가?”
민주가 눈을 비비며 주변을 훑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감자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해준니임~!]무려 말을 하면서.
“저, 저건 또 뭐 흐으응···.”
충격적인 광경에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
.
.
따스한 햇볕.
코끝을 기분 좋게 스치는 바람.
몸의 긴장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푹신한 잔디.
“으음···.”
민주가 몸을 뒤척이자 뺨 위로 남친의 튼튼한 허벅지가 느껴졌다.
‘좋다.’
꿈결에 느껴지는 편안함.
이게 그토록 꿈꾸던 삶이··· 여기가 어디지?
그때.
해준이 자신의 뺨을 톡톡 두드리는 느낌이 났다.
“민주야. 일어나.”
‘아··· 꿈이었구나.’
악몽을 꾸었다.
아니, 악몽은 아닌가?
어쨌든 해준과 가게에서 불멍을 하다가 어디론가 왔더니 말하는 감자가 날아다니고, 전혀 다른 세상에 와 있었다.
“나 많이 잤어요?”
눈을 떴다.
해준의 실루엣이 보였다.
남자친구의 싱그러운 미소.
그 뒤로.
“어? 감자다. 아직 꿈인가?”
[꿈 아닙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 소개를 하자면 전 말하는 감자가 아니라 포테입니다. 차원의 농장을 지키는 수호 정령이죠.]“포테? 수호 정령?”
“큭.”
어리둥절한 말을 내뱉는 민주를 보며 해준이 웃었다.
처음 자신의 행동과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
“꿈이 아니었어?!”
“침착하고 내 얘길 들어봐.”
해준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단어를 고르고 골라 민주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털어놨다.
처음 농장에 와서 작물을 키우고, 그걸 가져다 팔아 썬플라워를 일으키고 사람들을 도운 이야기까지.
“그러니까 내 병도 오진이 아니라 오빠가 낫게 해준 거라고요?”
“응.”
“아버지도 알고 계시고?”
“원래는 아버지가 발견한 곳이지.”
“어쩐지.”
어쩐지 쉽게 수긍이 됐다.
사실 다이어트 식단이라며 살찌는 요리만 해줬을 때부터 의심은 들었다.
해준이 해준 요리를 먹으면 힘이 나기도 했고,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다.
“나한테 여길 왜 보여주는 거예요?”
“비밀로 하기 싫어서.”
“고마워요. 말해줘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터.
중대한 비밀을 털어놨다는 건 그만큼 자신을 믿는다는 뜻.
“고마워요.”
“앞으로 행복하자.”
“근데 우리 노지 캠핑 때문에 여기 온 거 아니에요?”
“그렇지?”
“그럼 가요.”
민주가 해준의 손을 잡아당겼다.
둘은 이 세계 주민이 없는 곳으로 몰래 여행을 떠났다.
***
얼마 후.
해준은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가 계신 납골당을 찾기로 했다.
“아버지 늦겠어요.”
“다 했어.”
철수는 아내 지은이 좋아했던 빵을 직접 구웠다.
“네 엄마가 좋아할까?”
“아버지가 돌아오신 것만으로도 기뻐하실 거예요.”
아내에게 갈 생각을 하니 떨렸다.
함께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는데.
“어?! 민주야.”
차분한 의상을 차려입은 민주가 아파트 입구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긴 어쩐 일이야?”
“어머니 산소에 두 분만 가시는 건 반칙이죠. 저도 함께 가요.”
부자의 스케줄을 어떻게 알았을까.
미안하면서 한편으로는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민주야···.”
“가요. 늦겠어요. 가요. 아버님.”
어머니를 모신 납골당으로 향했다.
늘 이곳에 오는 길이 외로웠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 그리고 어머니를 가장 사랑한 아버지까지 함께였으니까.
“어머니. 잘 계셨죠? 오늘은 혼자가 아니에요.”
“처음 뵙겠습니다. 어머니. 오빠 여자친구예요.”
해준과 민주가 인사를 했고.
“···여보.”
차철수는 몇 년 만에 만난 아내 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조금만 더 운이 좋았더라면 어쩌면 지은은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그게 의미 없는 가정일지라도.
해준은 아버지와 어머니만의 오붓한 시간을 위해 잠시 자리를 피해줬다.
다시 돌아왔을 때, 오열하던 차철수의 입가에 아련한 미소가 걸렸다.
“이제 돌아갈까?”
“잠시만요. 저 이거 넣어두고 싶은데.”
민주가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경양식당 썬플라워를 배경으로 차철수, 해준, 민주 그리고 직원들이 함께한 사진이다.
납골당 안에 사진을 곱게 집어넣은 민주는 다짐하듯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어머니. 두 남자는 제가 잘 지킬게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편히 쉬세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어느 때보다 햇볕이 따스했다.
***
그리고 1년 후.
썬플라워 경양식당은 여전히 문전성시였다.
고동식은 직영점 형태로 썬플라워 2호점을 오픈했고, 한식뷔페와 JH 굿즈샵도 바쁘게 돌아갔다.
얼마 전에는 강훈과 은정도 카페를 창업해 독립시켜줬다.
썬플라워는 차철수와 해준 그리고 민주가 운영했다.
뭉치는 여전히 느긋하게 이쪽과 저쪽을 오가며 식빵을 구웠고, 차원의 농장도 손대지 않아도 될 만큼 안정화되었다.
해준은 식당 경영은 물론 자신의 이름을 내건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셰프가 되었다.
그리고 해준과 결혼해 평범한 신혼 생활을 즐기는 민주.
“오빠. 요즘 너무한 거 아냐?”
새벽까지 촬영을 끝마치고 가게로 돌아온 해준을 향해 눈을 흘겼다.
“미안.”
남자친구를 만나지도 못하는 바쁜 삶이 싫어 은퇴했더니 이젠 상대가 바빠졌다.
그것도 방송 때문에.
“어떻게 신혼인데 집에를 안 들어와? 이럴 거면 나도 은퇴 안 했지.”
귀여운 질투가 섞인 투정이다.
이럴 땐 민주가 좋아하는 걸 해줘야 한다.
“우리 캠핑가자.”
“치이. 오후에 또 나가야 한다면서.”
“뭐 어때. 차원의 농장으로 가면 되지.”
그곳의 시간은 현실과 다르게 흐른다.
반나절의 시간이면 1박 캠핑은 충분하다.
“그래도 안 돼.”
“왜?”
“그게···.”
잠시 뜸을 들이더니 몸을 꽈배기처럼 꼬며.
“오빠. 나··· 요즘 막 소화도 안 되고, 속도 메슥거려.”
“뭐? 왜?! 설마 또 몸이 안 좋은 거야? 어디 병원··· 아니, 전설의 약초라도 하나 더 캐와서 달여 먹어야···.”
“아니 그게 아니고.”
호들갑 떠는 남편을 급하게 제지시켰다.
민주가 속이 메슥거리는 건 아파서가 아니다.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이거.”
플라스틱 막대기를 내밀었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기는 했지만, 막대기의 의미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이게 뭐야?”
물음표 500개가 생성되던 그때.
“···나 임신한 거 같아요.”
“임신?!”
맙소사.
플라스틱 막대기는 임신테스트기였다.
이렇게 기쁠 수가.
임신이라니!
해준은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출 수 없었다.
“그럼 나 이제 아빠 되는 거야?”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뽀샤시 필터를 한 겹 낀 것처럼.
사랑스러운 아내를 꽉 껴안고, 번쩍 들어 올렸다.
“오빠. 아기. 아기!”
“어! 아, 그래. 아기.”
너무나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먹고 싶은 거 있어?”
“음··· 새콤한 딸기랑 귤? 포도도 맛있겠다.”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금방 가져다줄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거로.”
“오케이!”
해준은 해맑게 웃으며 통로를 개방해 차원의 농장으로 향했다.
인생 최고의 행운과 행복이 가득한 공간으로.
-fin
*그동안 슬기로운 셰프생활을 애독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