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18
17화. 달걀 샌드위치(4)
***
“으윽···.”
추락하며 잠깐 정신을 잃었던 해준이 신음하며 눈을 떴다.
운 좋게도 3미터쯤 추락하다 평평한 바위에 몸이 걸려 아래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팔과 다리를 움직여보니 다치거나 부러지지는 않은 모양. 상태를 확인한 해준은 몸을 일으켜 흙먼지를 털었다.
목숨을 걸고 구한 포도 넝쿨을 가방에 챙겨 넣고, 위를 올려다봤다.
높이 점프를 뛰면 닿을 듯한 거리에 밧줄이 매달려있었다.
“휴, 큰일 날뻔했네.”
상황 파악을 끝낸 해준이 큰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골랐다. 하마터면 큰일 날뻔한 상황. 다리에 힘이 풀려 바위에 기대 주저앉았다.
“야아옹~!”
뭉치가 튀어나온 돌을 밟고 내려와 해준의 손등을 핥았다.
“응. 괜찮아. 걱정했지?”
“야아옹.”
“나도 놀랐어. 십 년 감수했다.”
“야아옹~.”
자신을 걱정하는 뭉치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가만히 녀석을 쓰다듬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일어나려 엉덩이 쪽으로 손을 뻗었을 때.
“응? 이게 뭐지?”
살구색 투명한 돌이 만져졌다.
황토색과 회색 바윗돌 사이에 꽃처럼 돋아난 투명한 돌.
뭔가 독특해 보였다.
“꼭 보석 같네.”
해준은 보석처럼 반짝이며 투명한 색을 띠는 돌을 유심히 관찰했다.
뭉치도 그 돌이 궁금했는지 다가와 혀를 할짝거렸다.
“크읏··· 야아옹!”
얼굴을 잔뜩 찡그린 뭉치가 결정을 향해 하악질을 해댔다.
“왜 그래?”
“야아옹~!”
“돌이 짜다고?”
“야아옹.”
“돌이 짜다니··· 아, 설마?”
해준은 돌 결정의 일부를 떼어 혀에 가져다 댔다.
“윽, 짜.”
반짝이는 돌 결정의 정체는 짠맛을 내는 돌. 즉, 암염이다.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이 있었다. 지각 변동을 거치며 땅속에 갇힌 바닷물이 오랜 시간 굳어지며 만들어진 소금이 있다는 사실을.
“잘됐다. 챙겨 가자.”
클로에의 양념 가방에 있던 소금의 양으로는 불안하던 터였다.
해준은 암염을 몇 덩이 캐 가방에 넣었다. 올리브와 포도나무를 넣었을 때와 차원이 다른 묵직함이 느껴졌다.
‘욕심내지 말자.’
지천에 암염이 널렸으니, 필요할 때 가지러 오면 된다.
다만 다음엔 준비를 더 철저히 해야겠다.
소금을 구하러 왔다가 죽으면 안 되니까.
***
“읏차!”
새벽 6시 26분.
일찍 출근하는 날도 아니고, 알람도 울리지 않았지만, 소은의 눈이 저절로 떠졌다. 이유는 단 하나. 빨리 씻고 나가서 그 맛있는 샌드위치를 사야 했기 때문이다.
첫날엔 자신이 개시 손님이었으나, 어제 비슷한 시간에 갔을 때 절반가량이 팔려있었다.
자칫 여유를 부렸다간 오늘은 못 먹을지도 모른다.
부랴부랴 세수하고, 집을 나섰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어둑한 새벽. 8번 출구에 다다른 소은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서성이는 20대의 젊은 남자 발견했다. 직감적으로 해준의 샌드위치를 기다리는 손님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소은은 그의 뒤로 가 자리를 잡았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대기 줄.
가볍게 눈을 마주친 둘은 목을 쭉 빼고, 해준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5분쯤 지나자,
“어? 왔다.”
길 건너 횡단보도에 해준이 웨건을 끌고 나타났다.
.
.
.
8번 출구 앞 해준의 자리에 사람이 두 명 서 있었다.
둘 다 익숙한 얼굴이다.
‘변호사 사무실 직원이랑 어제 못 사고 돌아간 손님이네. 설마 날 기다리는 건가?’
해준이 다가가자 목을 쭉 빼고 있던 사람들이 반갑게 그를 맞았다.
“나오셨네.”
“절 기다리신 거예요?”
“당연하죠. 30분이나 기다렸어요. 오늘은 꼭 먹어보고 싶어서요.”
어제 사지도 못하고 돌아간 남자 손님이 말했다.
“하하. 죄송합니다. 몇 개 드릴까요?”
“세트 2개요. 여기서 파는 산양유가 그렇게 고소하다면서요.”
“어디서 들으셨어요?”
“여기요.”
남자는 자신의 폰을 보여줬다.
그는 민주의 별스타그램 팔로워였다.
“저, 사장님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어도 되죠?”
“아, 네.”
남자는 해준을 배경으로 샌드위치가 잘 보이게 사진을 찍어 자신의 별스타에 업로드했다.
#드디어 # 나도 겟! #맛 좀 보자 #뚱뚱한 #달걀 샌드위치 #두근두근 #기대된다
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해준은 남자가 별스타 게시물을 올리는 사이 준비한 브로셔를 꺼내 남자에게 건네줬다.
“저, 그리고 이거.”
“이게 뭐예요?”
“저희 가게 약도요.”
그리고 다음 손님인 소은에게도.
“아, 역시. 홍보 판촉 나오신 거였구나. 그냥 노점상 맛은 아니다 했어요.”
브로셔를 읽은 소은이 그러면 그렇지 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제야 궁금증이 해소된 표정.
“가게가 우리 사무실 근처네요.”
“네. 상속받은 그 건물. 가까우니까 자주 드시러 오세요.”
“당연하죠. 우리 변호사님 완전 좋아하겠네.”
“변호사님?”
“그때 봤던 김인철 변호사님이요.”
“아!···”
유산 상속 절차를 진행해준 변호사를 말하는 거였다.
“우리 변호사님이 해준 씨 샌드위치 완전 팬 됐거든요.”
“그러시구나. 그렇지 않아도 한번 찾아뵈려고 했는데.”
“사무실에요?”
“네. 식당을 재단장해서 오픈하려고 하는데, 법적인 부분을 전혀 몰라서요.”
“낮에 찾아오세요. 오늘은 한가하니까.”
“그러죠. 주문은 세트로 2개 포장이죠?”
“ㄴ··· 아니요. 3개요.”
앞의 남자가 맛있게 먹는 걸 보니 소은은 도저히 식욕을 참을 수 없었다.
3세트를 주문, 하나는 이 자리에서 먹기로 했다.
‘변호사님, 미안해요.’
샌드위치를 받자마자 그대로 하나를 까서 입에 넣었다.
우걱-
“음? 오늘은 더 맛있는데요. 뭐랄까, 속 재료의 풍미가 더 좋아졌어요.”
예리하게 맛의 변화를 캐치했다.
시판 소금 대신 차원의 농장에서 캔 암염 소금을 넣었더니 생긴 맛의 변화다.
마요네즈에 암염 소금을 갈아 넣었더니 짭짤한 맛의 풍미가 더 좋아졌다.
덜 짜면서도 짠맛 외의 여러 가지 맛이 풍부하게 느껴진달까?
“그런가요? 소금을 좀 바꿔봤는데.”
“소금? 소금 하나 바꿨다고 이렇게 맛이 달라져요? 엄청 비싼 소금 쓰시나 봐요?”
“하하. 뭐, 그냥 그렇습니다.”
해준은 대답을 얼버무렸다.
차원의 농장 절벽에서 캔 암염 소금이라고 진실을 말해봐야 미친놈 취급을 당할 테니까.
게다가 질문을 던진 소은도 답은 별로 궁금해하진 않았다.
샌드위치를 먹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아, 맛있다. 맛있어!”
민주 별스타 팔로워 남과 소은이 다녀간 후에도 손님이 줄을 이었다.
20 분만에 새벽 내내 준비한 30인분의 샌드위치를 모두 팔아치웠다.
***
가게로 돌아온 해준은 서둘러 가게 청소를 시작했다. 내일부터는 여기서 장사를 하기로 했으니, 마당과 가게 내부를 말끔히 치워야만 했다.
오전 내내 부지런히 움직여 구석구석을 깨끗이 치웠다.
잠시 짬을 내 김인철에게 찾아가 장사를 하는 데 있어 법적인 문제들의 자문을 구했다.
이미 영업장으로 사용했던 곳이라 절차상 까다로운 부분은 없었다.
“다 끝난 건가?”
의외로 손쉽게 준비가 끝났다.
남은 건 메뉴에 대한 고민. 아침 장사에 달걀 샌드위치, 산양유 세트만 팔기로 했어도 명색이 식당인데 덜렁 그것만 낼 수는 없었다.
게다가,
“어쩐지 허전해.”
하얀 접시 위에 샌드위치만 덩그러니. 어쩐지 허전했다. 연습 삼아 플레이팅한 샌드위치는 그야말로 볼품이 없어 보였다. 미적인 감각이 떨어지는 자신이 봐도 성의 없어 보이는 접시였다.
물론, 맛은 뛰어나지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했다. 좀 더 맛있게 보일 무언가가 필요했다.
잠시 고민한 해준은 별스타그램 앱을 깔고, 게시물을 찾았다.
#맛집
#플레이팅
#샌드위치
“화려하네.”
맛은 어떨지 몰라도 화려한 플레이팅의 음식 게시물이 수백만 개나 검색됐다.
해준의 접시에 부족한 건 색감이었다. 하얀 접시 위에 있는 색깔이라고는 노란색과 하얀색이 전부. 반면, 사진 속 음식들은 딸기나 샐러드 채소 같은 것들을 듬뿍 올려 보기 좋게 플레이팅했다.
“빨간색이랑 녹색이 부족하네.”
문제를 파악한 해준은 자신이 쓸 수 있는 재료를 확인했다.
양배추, 오이, 방울토마토···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음식은 샐러드였다.
양배추를 얇게 썰어 그 위에 케첩과 마요네즈를 뿌리고, 주변에 오이와 방울토마토를 올려놓고, 가운데 샌드위치를 놨더니 제법 그럴듯하게 접시가 완성됐다.
“그럴듯하네.”
해준이 접시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영업 준비는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차원의 농장으로 넘어가 재료를 수확하는 일뿐.
***
이른 새벽.
5년 만에 경양식당 ‘썬플라워’의 간판에 불이 켜졌다.
이내 골목 가득 퍼지는 매혹적인 빵 굽는 냄새.
“준비 끝.”
부지런히 몇 시간을 움직인 끝에 샌드위치를 만들 준비를 끝냈다.
식빵도 맛있게 구워졌고, 샌드위치 속 재료로 쓸 달걀 샐러드를 완성했으며, 접시에 플레이팅할 채소도 모두 썰어놨다. 이제 문을 열기만 하면 된다.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시간을 확인했다.
7시 55분. 오픈까지 딱 5분 남았다.
마당에 나온 해준은 대문을 열고, OPEN이라고 쓴 팻말을 내걸었다.
그리고 잠시 후.
“가게 열었나요?”
첫 번째 손님이 들이닥쳤다.
“네, 저쪽으로 앉으세요.”
여성 손님을 향해 싱긋 웃어주고, 자리를 안내했다.
밤새 몇 번이고 연습한 손님 접대다.
“메뉴는 샌드위치 하나뿐인가요?”
“네. 세트로 하시면 산양유도 함께 드립니다.”
“그럼 그렇게 주세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첫 주문을 받은 해준이 주방으로 돌아갔다.
하얀 접시를 꺼내 연습한 대로 양배추 샐러드를 담고, 속을 넉넉히 채워 넣은 달걀 샌드위치를 잘라 예쁘게 담았다.
여기까지는 연습한 대로 무난하게 흘러갔다. 그러나 해준이 음식을 만드는 사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그것은 바로.
딸랑-
딸랑-
문에 달린 종이 시끄럽게 울어댔다.
‘이런. 손님들이 밀려오네.’
조리를 하는 동안 손님이 계속 들어왔다.
가게에 들어온 손님들은 빈자리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나오지 않자,
“여기요!”
“주문 안 받으세요?”
“사장님, 안 계시나?”
라며 저마다 외쳤다.
‘윽, 큰일이다.’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한꺼번에 손님이 들이닥치는 건 예상한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왜 생각을 못 했을까 자책하며 당황하던 찰나, 뜻밖의 구세주가 나타났다.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금방 주문 도와드릴게요.”
민주였다.
손님을 진정(?)시킨 그녀가 주방으로 들어왔다.
“오빠, 물부터 주세요.”
“물? 없는데.”
“손님이 오면 물부터 내야죠. 오빠, 식당 아르바이트도 안 해봤어요?”
“어?··· 어.”
“헐!”
놀람도 잠시, 페인트가 묻은 앞치마를 벗어던진 민주가 손을 깨끗이 씻고, 머리를 질끈 동여맸다.
그릇장과 냉장고를 빠르게 훑더니 물병을 찾아냈다.
“레몬 좀 쓸게요.”
레몬을 2개 가져와 5mm 두께로 썰어 그릇장에서 꺼낸 투명 물병에 하나씩 넣고, 물을 담았다. 일전에 클로에도 만들었던 레몬수였다.
“메뉴판은요?”
“아직 없어. 단일 메뉴라서.”
“달걀 샌드위치?”
“어. 산양유랑 세트로.”
“오케이. 주문받아옵니다.”
능숙하게 유리컵과 물병을 가지고 나간 민주는 생글생글 웃는 표정으로 주문을 받아왔다.
“뚱드위치 세트 6개요.”
“뚱드위치?”
“뚱뚱이 달걀 샌드위치. 줄여서 뚱드위치.”
“아!···”
짧은 시간에 메뉴 이름까지 지어줬다.
“빨리요. 이것 첫 번째 손님 거죠?”
“응.”
“빨리 오더 빼세요. 이건 제가 서빙할게요.”
민주가 막 완성된 샌드위치 접시를 들고 나갔다.
덕분에 해준은 음식을 만드는 데만 집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