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19
18화. 달걀 샌드위치(5)
***
“힘들다.”
“하얗게 불태웠어.”
오픈 한 시간 만에 준비한 50세트를 모조리 팔아치웠다.
민주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녀는 홀과 주방을 오가며 효율적으로 조율을 해줬고, 덕분에 그 많은 손님을 응대할 수 있었다.
“고마워. 너 아니었음 아직도 혼자서 허둥지둥 댔을 거야.”
“헤헤, 뭘요.”
과찬이 아니다.
음식을 만드는 틈틈이 해준은 민주가 일하는 걸 관찰했다.
밀려드는 손님을 일일이 친절하게 응대하며 주문을 받아냈고, 기다리는 손님들을 케어하며 불만이 나오지 않도록 홀을 관리했다.
“근데 오빠. 오늘 음식 얼마나 준비한 거예요?”
“50세트.”
“내일은 좀 더 준비해야겠어요. 돌아간 손님도 꽤 된다고요.”
“아니 50세트만 할래. 오늘은 네가 도와줘서 가능했지만, 혼자선 도저히 못 할 것 같아.”
50세트 이상은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미리 만들어놓을까 생각도 했지만, 노트에 따르면 미리 만들어놓으면 빵이 수분을 흡수해 눅눅하고 맛이 저하된다고 했기에 주문을 받는 즉시 만드는 방법을 고수했다.
게다가,
‘하루에 50세트씩만 팔아도 한 달이면 450만 원이야.’
재룟값도 임대료도 들지 않으니 모든 수입은 오롯이 해준의 몫. 이대로라면 웬만한 직장인 월급보다 훨씬 많은 돈을 손에 쥘 수 있다.
그 이상 팔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만 팔아도 수익이 엄청나니 욕심은 부리지 않기로 했다.
“지금이 딱 좋아.”
“혼자 하기 버거워서요?”
“어.”
“그럼 제가 도와드리면요?”
“니가?”
“엄밀히 말하자면 절 알바로 쓰시라고요.”
마침 운동 삼아 하던 새벽 우유 배달 알바가 사업소 폐점으로 더이상 못하게 됐다.
벽화 과제도 오늘이면 마무리되고, 학교 수업은 오전 10시부터니 오전 알바로 딱 적당하다.
“나야 좋은데, 너 학교 가야 하는 거 아냐?”
“어차피 수업 10시부터예요. 그리고 저도 새벽 알바 찾던 중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해준의 샌드위치는 너무 맛있다.
하루에 한 개씩 먹고 싶을 만큼.
“최저 시급에 맞춰줘도 돼요. 대신 매일 아침 식사로 뚱드위치 하나씩. 콜?”
“콜!”
매일 새벽 6시부터 9시까지 3시간 동안 알바를 도와주기로 했다.
시급은 1만 원에 매일 아침 식사를 책임지기로 합의했다. 마침 민주는 알바 자리가 필요했고, 해준은 그녀처럼 능숙한 서버가 필요했으니, 윈윈이 셈이다.
“아침 먹을래?”
“속 뚱뚱하게 채워서 부탁해요. 곱빼기로.”
“하하.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해준이 주방으로 사라지고,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민주가 가방을 열었다. 종이와 펜을 꺼낸 민주는 가만히 종이를 내려다보다가 쓱쓱 글씨를 써 내려갔다.
“뭘 쓰는 거야?”
뚱뚱하게 속을 채워 넣은 샌드위치와 산양유를 내 온 해준이 민주를 보며 물었다.
“아, 이거요? 메뉴판. 아무리 단일 메뉴라도 메뉴판이 없으면 좀 그렇잖아요.”
+
[SunFlower]Morning Menu
뚱드위치 ···2.5
산양유 ···1.0
세트 ···3.0
*TAKE OUT 가능!!
+
솜씨가 훌륭했다.
썬플라워라는 가게 이름 옆에는 귀엽게 해바라기도 그려 넣고, 손글씨도 가독성 좋고 예뻤다.
“우와 예쁘네.”
“헤헤. 캘러그라피도 배웠거든요.”
“어쩐지. 근데 가게에 메뉴가 하나뿐인데, 메뉴판이 꼭 필요한가?”
“당연하죠. 손님 접대에 중요한 부분이라고요. 이 오빠 요리만 잘하지 진짜 아무것도 모르네.”
“말했잖아. 식당이 처음이라서.”
“이건 저한테 맡기세요. 음··· 또 필요한 게 뭐가 있나?”
뚱드위치를 한입 크게 문 민주가 홀을 둘러보며 가게에 필요한 것들을 생각했다.
‘앤틱한 분위기니까 감성적인 느낌을 살려볼까?’
가게 분위기는 낡았지만, 특별히 손 볼 곳은 없었다.
레트로가 유행하는 탓에 이 가게에 장식된 소품들은 돈 주고도 구하기 힘든 것들.
인테리어 톤에 맞춰 메뉴판도 우드 클립보드로 만들어주고, 가게 정문 옆에 나무로 만든 입간판만 세워주면 될 것 같았다.
계획을 세운 민주는 폰으로 검색해 해준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보여주며 사 놓으라고 했다.
“고마워. 진짜로 너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그런데, 벽화는 다 그린 거야?”
“네. 나가서 구경할래요?”
민주가 해준의 손을 잡아끌어 밖으로 나갔다.
“오!?”
벽화를 보자마자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어때요? 죽이죠?”
칙칙했던 회색 벽이 몰라보게 바뀌었다.
해바라기가 끝없이 펼쳐진 초록 들판. 그리고 반대쪽 모서리에는 천사의 날개를 그려 넣어 사진 찍기 딱 좋은 포인트를 만들어놓았다.
“너무 좋다. 너 진짜 금손이구나.”
“헤헤. 제가 좀 해요.”
민주가 해준의 칭찬에 쑥스럽게 웃었다.
“앗, 늦었다. 제가 말한 거 준비해놓으세요. 전 내일 올게요.”
“조심히 가.”
.
.
.
민주가 돌아간 후.
해준은 가게 재료 창고를 확인했다.
뚱드위치 재료가 거의 소진되고, 남은 건 감자뿐.
‘흠··· 감자가 많이 남네.’
농장에서 수확한 재료들 가운데 사용하지 않는 식재료는 감자뿐이다. 배를 채우기에는 감자만 한 녀석이 없어 초기에 많이 심었는데, 막상 쓰임새가 적다 보니 창고에 쌓여만 갔다.
“다른 메뉴를 연구해볼까?”
노트를 열어 감자를 재료로 한 레시피를 검색했다.
삶은 감자를 으깨어 만드는 감자 샐러드, 버터를 발라서 굽는 통감자 버터구이, 오븐에서 노릇노릇 구워내는 웨지 감자, 그 밖에도 프렌치프라이, 그라탱 등 다양한 양식 레시피가 있었다.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만들어봤다.
첫 번째로 만들어 본 건 감자 샐러드.
감자를 잘게 썰어 삶아주고, 으깬 다음 잘게 썬 오이와 암염 소금, 설탕, 마요네즈를 넣고 섞어줬다.
레시피에는 당근과 옥수수를 넣어야 색감도 예쁘고, 식감이 좋다고 나와 있는데,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재료들이니 패스.
그래도 맛은 훌륭했다.
“오?! 기막힌데.”
씹는 맛은 부족했지만, 농장에서 재배한 감자 맛이 너무나 탁월했다.
당근, 옥수수를 재배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맛을 낼 것 같은 음식.
‘아직 미완성이니까 손님에게 팔 수는 없어도 클로에 녀석들에게 해주면 아주 좋아하겠어.’
다음으로 도전해본 건 버터를 발라 구운 통감자 버터구이와 웨지 감자.
두 가지 음식은 들어가는 재료가 비슷한 함께 만들어봤다.
우선 통감자 버터구이는 작은 알감자를 껍질을 벗겨 삶아낸 후 프라이팬에 버터와 설탕, 소금을 넣고 구워주면 끝. 웨지 감자는 감자를 반달 모양으로 썰어 녹인 버터를 발라 230도 오븐에서 구워준다.
재료도 간단하고, 조리법도 간단하지만, 그 맛은.
“이건 맥주 한잔이 생각나는 맛이네.”
시원한 맥주 한잔을 곁들이면 좋을 환상적인 맛이었다.
간절한 맥주 생각에 해준은 편의점으로 달려가 만 원에 4캔짜리 맥주를 사 왔다.
“크으~ 맛있다.”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차가운 맥주 한 모금과 뜨끈한 알감자의 환상적인 콜라보레이션. 이렇게 만들어 팔면 근처 직장인들에게 인기 있는 2차 메뉴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쉽게도 해준은 저녁 장사를 할 생각이 없으니, 이번 메뉴도 패스.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샐러드나 통감자 구이는 농장 녀석들도 분명히 좋아할 테니까.
요리 연구를 끝낸 해준은 내일 쓸 재료를 가져오기 위해 차원의 농장으로 향했다.
***
[오셨습니까, 해준 님!]“야아옹~!”
포테와 뭉치가 해준을 반겼다.
“별일 없었지? 클로에는?”
[염소 목장에 젖 짜러 갔어요.]산양유를 짜는 일은 그녀가 전담했다.
3마리뿐이었던 염소의 개체 수가 늘어나 젖을 짤 수 있는 염소가 5마리로 늘어났고, 덕분에 가게에서 파는 산양유의 공급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닭장도 마찬가지. 암탉이 10마리나 되는 덕에 달걀의 수급도 충분했다.
밭의 규모도 전보다 2배나 커져 이제 해준 혼자서 감당하기에 버거울 정도였다.
클로에가 없었다면 이 큰 농장을 관리하는 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목장은 클로에한테 맡기고, 난 밭을 먼저 확인해볼까.’
해준은 밭으로 걸음을 옮겨 올리브와 포도의 상태를 먼저 확인했다.
‘아직이네.’
포도와 올리브가 열매를 맺긴 했지만, 수확하기엔 일렀다.
차원의 농장 시간의 흐름으로 밀이 24시간 만에 다 자랐는데, 올리브와 포도는 아직 반밖에 자라지 않았다. 수확하려면 하루는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빨리 수확해서 맛을 보고 싶은데.’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 자란 작물들을 수확하고, 새롭게 씨앗을 심었다.
처음엔 농사가 영 어색했으나 이젠 몸이 먼저 움직였다.
일을 마친 해준은 새롭게 연구한 감자 요리를 클로에들에게 선보였다. 언제나처럼 반응은 좋았다. 차원의 농장에서 재배한 식재료는 모두 최상의 맛을 자랑했으니까.
농장에서 돌아온 해준은 수레에 담아온 재료를 주방에 차곡차곡 쌓았다.
달걀, 양배추, 오이, 방울토마토, 산양유와 밀가루 등··· 오늘 준비했던 재료를 두 배만큼 더 준비했다.
처음엔 30인분을 준비하는 것도 버거웠는데, 마치 농장일처럼 요리도 손에 익으니 그럭저럭할만했다.
재료 정리를 끝내고 주방에서 나왔을 때,
“야아옹~.”
가게 구석에서 아주 익숙한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뭐지? 설마···”
“야아옹~.”
“무, 뭉치?”
순백의 하얀 털 뭉치에 도도한 걸음.
분명 뭉치였다.
차원의 통로를 드나들 수 있는 건 오로지 자신뿐.
포테나 클로에도 알 수 없는 힘에 막혀 통과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통로를 지나 자신의 방에 있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너, 어떻게 여길 온 거야?”
“야아옹~.”
“날 따라왔다고?”
“야아옹.”
“통로를 지나서?”
“야아옹.”
뭉치가 차원을 넘어오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혼자 있기 심심했었는데, 잘됐다.”
해준이 뭉치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하자 녀석이 기분 좋다는 듯 발에 제 몸을 비벼댔다.
“그래, 그래. 앞으로 같이 다니자. 나도 이 큰 가게에서 혼자 지내는 게 쓸쓸했거든.”
“야아옹.”
“그 대신 주방에는 들어오면 안 돼.”
“야아옹!”
음식을 만드는 공간인 만큼 동물이 드나들면 싫어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 그러니 주방엔 절대 출입금지.
다행히 뭉치는 해준과 의사소통이 되니 말썽을 피우진 않을 것이다. 게다가 녀석은 해준 외의 사람에겐 관심도 없고.
해준은 가게 구석 창가에 뭉치가 쉴 수 있게 자리를 마련했다. 녀석도 그 자리가 마음에 드는지 몸을 둥글게 말고, 기분 좋게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