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21
20화. 제임스의 부탁(2)
***
“어, 얼마요?”
“테이블이랑 의자랑 다해서 견적이··· 250만 원입니다.”
오전 장사 후.
근처 공방을 방문한 해준은 가게 마당에 놓을 테이블 세트 견적을 듣고 깜짝 놀랐다. 가격이 좀 나가겠다고 생각은 했으나, 이렇게 비쌀 줄이야.
“더 싸게는 안 될까요?”
“죄송합니다. 저희는 다 수제 제작이라서 가격을 빼 드리기 힘들어요.”
“네, 알겠습니다.”
한두 곳을 더 찾아갔지만, 다른 곳도 견적은 비슷했다.
당장 손님이 불편하더라도 수중에 그만한 돈이 없기에 구매 불가능.
‘한 달 이상은 기다려야겠네.’
아쉬운 마음을 다잡고 가게로 돌아온 해준은 곧장 농장으로 향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사탕수수와 사과나무가 수확이 가능할 정도로 자랐을 것이다. 1차 수확을 하고, 2차로 심은 올리브와 포도도 마찬가지.
“역시.”
탐스러운 빨간색의 사과가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렸다.
어른 주먹만 한 사이즈의 엄청난 크기.
그중 하나를 따 옷에 슥슥 문지르고 그대로 한입 베어 물었다.
와삭-
입안 가득 터지는 상큼한 과즙.
어찌나 풍부한지 입술 사이로 과즙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포테와 클로에도 하나씩 따먹더니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 맛있다.]“엄청 달아. 과육은 단단하고, 과즙은 팡팡 터져!”
“야아옹~.”
차해준 껌딱지 뭉치도 사과의 과육을 열심히 핥아먹었다.
포도도 달콤 상큼한 맛이 일품이었는데, 사과는 더욱더 맛있다.
맛을 본 해준과 클로에는 부지런히 과일을 수확해 창고로 옮겼다.
올리브, 포도, 사탕수수, 사과. 신선한 작물이 창고 가득 넘쳐났다.
“으, 창고가 가득 차서 더이상 넣을 수 없어.”
필요해서 많이 심기는 했는데, 보관이 문제였다.
작은 창고 하나로는 밭에서 나는 수확물을 모두 감당할 수 없었다.
특히나 포도는 시간이 지나면 금세 물러져 보관이 특히나 중요하다.
‘어쩌지···.’
여기 있는 재료들은 모두 2차 가공을 거쳐야 하기에 내다 팔 수도 없고, 현실 세계로 운반하기도 힘들었다.
사탕수수는 줄기만 따로 모아 액을 추출해 솥에 끓여 만들어야 했고, 그렇게 설탕을 얻어야 사과와 배합해 식초를 발효시킬 수 있다. 당장 소모할 수 있는 건 올리브였지만, 그것 역시 압착할 수 있는 거대한 맷돌 기계가 있어야만 가능하기에 전부 보관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흠···.”
“해준, 어떻게 하지?”
“마을 목공소에 가볼까? 거기 의뢰해서 창고를 하나 더 짓자.”
가능하다면 올리브 압착이 가능한 장비까지 의뢰할 생각이었다. 해준에게는 그런 기술력은 없었으니까. 그때,
“크~ 여긴 여전하군.”
기다렸다는 듯 제임스 아저씨가 농장에 나타났다.
“아저씨.”
“해준, 잘 있었냐?”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말했잖아. 찰스랑 친했다니까. 여기 농장 건물도 다 내가 지어준 건데?”
“역시, 그러셨군요.”
마을에 하나뿐인 목공소 주인이 제임스 아저씨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어쩌면 이곳 시설을 그가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마침 목공소에 가려던 참이었는데.”
“우리 가게엘? 왜?”
“의뢰할 게 좀 있어서요.”
“흠···.”
어쩐지 제임스가 흥미를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대신 그의 관심을 끈 것은,
“근데 그건 뭐냐?”
수레에 가득 쌓인 포도였다.
“갓 수확한 포도예요. 드셔보세요.”
“오~ 포도.”
해준이 내민 포도송이의 절반을 한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어먹었다.
그 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야생 곰?
“맛있구나. 와인을 만들면 딱 좋겠어.”
제임스의 모든 대화 흐름은 ‘기승전-술’이었다.
“하하··· 와인을 만들지는 않을 거예요. 포도 씨로 기름을 짤 거거든요.”
“훗, 애송이. 뭘 모르는군. 포도씨유는 와인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 씨를 모아 압착해 만드는 거라고! 애초에 포도씨로 식용유를 만들게 된 이유가 그거다. 와인을 만들고 남은 쓸모없는 씨의 재활용. 으하하, 역시 술이 최고지.”
의기양양하게 지식을 뽐냈다.
해준도 미처 몰랐던 사실이다.
포도씨유를 만들기 위해 많은 양의 포도를 생산하긴 했지만, 어떻게 소진할지 계획이 딱히 없었다. 일부는 먹고, 나머지는 아깝지만 버리려고도 생각했었다.
‘아저씨 덕분에 한 수 배웠네.’
그러다 문득.
얘기를 듣던 해준의 머리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가만, 와인으로 아저씨를 꼬셔볼까?’
당장 포도로 와인을 만들던, 식용유를 만들던 시설이 필요했다. 또 넘쳐나는 수확물을 저장해둘 창고도 필요하고.
‘제임스 아저씨는 솜씨 좋은 목수니 와인을 대가로 창고와 시설 건축을 의뢰하면?···’
해준은 지체없이 자신의 생각을 제임스에게 말했다.
“아저씨.”
“응? 왜?”
“저랑 일 하나 같이 하시죠.”
“일? 무슨?”
제임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
.
.
농장 창고 옆에 새로운 창고가 하나 더 지어졌다.
해준의 의뢰를 받은 제임스가 만든 것이다.
“와, 정말 대단하시네요. 창고를 하루 만에 뚝딱 만들어내시다니.”
“훗! 이깟 창고야 우습지. 나처럼 숙련된 목수라면 눈 감고도 만든다고. 으하하!”
해준은 제임스와 딜을 했다.
농장에서 갓 수확한 최상급 와인을 전부 줄 테니 그 대신 창고와 와인을 만들 시설을 지어달라고 말이다.
알아보니 와인과 포도씨유를 만드는 과정은 비슷한 게 많아 시설만 제대로 갖춰져 있으면 올리브유까지 함께 만들 수 있었다.
“그럼 와인 시설은 얼마나 걸릴까요?”
“음··· 나흘이면 거뜬하지.”
나흘이면 현실의 시간으로 계산하면 대략 24시간이다.
대가는 커다란 오크통 2개를 와인으로 가득 채워주는 조건. 현재까지 수확한 포도 양이면 충분히 가능한 양이었다.
“그런데 와인은 제대로 만들 줄 아는 거야?”
“아버지의 비법 노트가 있어요.”
“오, 찰스의? 기대되는걸.”
제임스는 말을 하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그가 있을 땐 종종 와인을 얻어먹었었는데, 못 먹은 지 벌써 5년도 넘었기 때문이다.
“그럼 슬슬 움직여볼까.”
와인이라는 말에 제임스가 서둘러 움직였다.
그가 와인 공장을 지을 동안 해준도 부지런히 농장을 돌봤다. 농작물을 수확하고, 새로운 작물을 심고. 오늘 안에 끝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밭일을 끝낸 해준은 창고로 가서 사탕수수를 몽땅 밖으로 꺼냈다.
산양유를 운반해오던 클로에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 놀라 물었다.
“그걸 왜 다 꺼내?”
“설탕을 만들려고.”
설탕을 만든다면 케첩과 마요네즈의 맛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 식초를 만드는 데 필수 재료기도 하고, 식초를 만들어야 치즈를 만들 수도 있다.
치즈와 버터만 있다면 뚱드위치의 맛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다.
사실 그동안 해준은 아버지의 레시피 외에도 다른 조리법을 찾아보며 맛을 끌어올릴 연구를 했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빵 안쪽에 버터나 치즈를 발라 코팅해주면 샌드위치의 풍미가 더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설탕? 어떻게 만드는 건데?”
“간단해. 가늘게 잘라서 끓여주기만 하면 돼.”
그때는 몰랐다.
그 말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줄.
.
.
.
“하아하아··· 미친··· 이거 전혀 간단하지가 않잖아.”
아버지의 노트엔 조리법이 아주 간단하게 적혀있었다.
깨끗이 씻어 껍질을 벗기고, 삶아주면 된다고 말이다.
그런데, 벌써 몇 시간째 사탕수수 껍질만 벗기고 있다. 사탕수수 자체가 워낙 크고, 껍질이 단단했다. 나물 다듬듯 손으로 톡 벗기는 게 아니라 칼을 사용해 온 힘을 다해 벗겨야 했다.
“설탕은 그냥 사서 써야 하나. 너무 힘들다.”
땀이 뻘뻘 흘렀다.
오른팔을 아래위로 몇 시간이나 흔들었더니 근육에 경련이 올 지경.
인고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다 벗겨냈지만, 더 큰 시련은 그다음이었다.
잘게 잘라 즙을 낸 사탕수수 원액을 큰솥에 넣고 끓여주는 내내 정성 들여 저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고생한다. 오른손아.’
온도가 올라 보글보글 끓는 중에도 탁한 거품이 끓어오르면 모두 제거해줬다.
그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하다 보니 점점 투명하고 맑은 갈색으로 변했다. 그렇게 계속 끓여주다 보니 어느 순간 급격하게 물이 졸아들며 마치 달고나와 비슷하게 변해버렸다.
“오!”
끈적한 농도의 짙은 갈색 용액.
식혀서 결정화를 시켜주니 비로소 비정제 설탕이 만들어졌다.
그 촉감은 마치 사 놓은 걸 깜빡하고, 방구석에 던져 놓은 사탕이 온돌 온기에 녹아버린 그런 느낌이다. 흑설탕처럼 꾸덕하고 끈적한 촉감.
그러나 그 맛은,
“달다.”
옆에서 버터를 열심히 만들던 클로에에게도 설탕 맛을 보여줬다.
언제나 처음 뭔가를 만들면 그녀가 먼저 시식을 했다.
“어때?”
“너무 달콤하다.”
“그치? 성공한 것 같지?”
“응.”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뽑아냈으니 바로 식초를 만드는 과정에 들어갔다.
식초 만드는 건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였다. 소독한 유리병에 사과와 설탕 한 숟가락, 그리고 물을 넣어주고 서늘한 곳에 놓아두면 끝.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나머진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일을 끝내고 나니 허기가 졌다.
“뭘 좀 먹을까?”
“응. 배고파. 제임스 아저씨도 그럴걸?”
“그치?”
해준이 실력 발휘를 했다.
평소 만들던 뚱드위치에 클로에가 정성껏 만든 버터를 발라 버전 업을 시켰다.
현실 세계에서 요리를 자주 해서 그런지 실력이 차츰 좋아졌다.
최상급 재료에 실력까지 좋아졌으니 맛을 말할 것도 없으리라.
제임스 아저씨와 농장 식구들이 그늘진 곳에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뚱드위치 ver. 2의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버터가 첨가되어 처음보다 맛이 풍부해졌다고 모두 좋아했다. 그리고 제임스도.
“으하하. 맛이 좋구나. 아버지 솜씨를 그대로 빼다 박았어. 이거 어떤 와인이 생산될지 기대되는걸?”
샌드위치 맛을 칭찬하던 제임스의 끝맺음은 역시나 술이었다.
“아저씨는 모든 말이 술로 끝나네요.”
“그럼 술이 최고지. 껄껄.”
“하하하.”
웃고 즐기다 보니 어느새 현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
해준은 샌드위치 재료를 수레에 가득 싣고, 현실로 복귀했다.
***
“오빠, 대기 손님들 앉을 의자랑 테이블은 아직 멀었어요?”
오전 장사가 마무리되고, 민주가 물었다.
“웨이팅이 길어지니까 오늘도 어떤 손님이 투덜거리더라고요. 빨리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거예요.”
“알았어.”
해준이 생각한 바가 있다.
차원의 농장에 와인 공장 건축이 끝나면 제임스에게 제작 의뢰를 맡길 생각이다.
제임스는 솜씨도 좋고, 돈 대신 노동력의 맞교환으로 물건을 가져올 수 있으니까 일석이조다.
“그보다 오늘 손님들 반응은 어땠어?”
“단골들한테 물어봤는데, 더 맛있어졌대요.”
“다행이네.”
오늘 오전부터 농장에서 생산한 버터를 빵 안쪽에 발라 팔기 시작했다.
뚱드위치 레시피를 조금 업그레이드했고, 마요네즈와 케첩 역시 순수하게 농장에서 가져온 재료로만 새롭게 만들었다.
반응은 농장에서처럼 호의적이었다.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