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25
24화. 세상에 맛있는 샐러드는 없다?(2)
***
“흠··· 역시 쌀 때문인가?”
샌드위치나 감자 스프를 먹었을 때처럼 강렬한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가장 기본이 되는 주재료 쌀의 풍미가 떨어지니 맛이 확 죽었다. 새롭게 재배한 식재료의 향과 맛은 뛰어났으나, 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느낌.
실험 삼아 여러 가지 품종의 쌀을 사다가 만들어봤지만, 결과는 모두 비슷했다.
쌀을 직접 재배하기 전까지 메뉴에 올려 팔기는 힘들 것 같았다.
‘아쉽네. 뭘 만들어야 하나.’
신메뉴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아, 늦겠다. 루나 축제!”
클로에와의 약속이 기억났다.
해준은 서둘러 차원의 농장으로 넘어갔다.
한껏 꾸미고 기다리던 클로에가 입술을 삐죽였다.
“왜 이렇게 늦었어? 하도 안 와서 나 혼자 가려고 했다고.”
“하하. 미안. 새로운 메뉴를 연구하다가.”
“메뉴?”
“어. 근데, 너···.”
“나? 뭐?”
해준은 클로에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예쁘다.
지금껏 몰랐는데 예쁘게 차려입고, 꾸미니 몰라보게 예뻐졌다.
처음에 만났을 때도, 줄곧 밭일을 함께할 때 몰랐던 사실이다.
역시 여자는 꾸미기 나름인 건가?
물끄러미 쳐다보자 클로에가 얼굴을 크게 들이밀었다.
“왜 그래?”
어쩐지 얼굴이 화끈 달아오는 기분. 해준은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아, 아냐. 흠흠, 포테는?”
“그 녀석이야 늘 바쁘잖아. 온종일 농장을 돌아다니면서 춤을 춰대더니 어디로 사라졌어. 늦었어. 빨리 가자.”
“야아옹~!”
클로에가 해준을 잡아당겼다.
평소엔 시크하게 몸을 말고 있는 뭉치도 뒤를 따랐고, 셋은 함께 마을로 내려갔다.
축제가 한창인 마을은 사람들의 노랫소리로 시끌벅적했다.
‘축제라···.’
아련한 추억 한 조각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모님 손을 잡고, 놀이공원에 갔던 일. 봄꽃 축제 야간 개장에 밤까지 신나게 뛰어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 먹었던 게 뭐였더라?··· 아주 달콤한 사탕 같은 거였는데.’
엄마가 사줬던 달콤한 사탕 맛이 기억났다.
생과일이었는데도, 엄청 달고 맛있었다.
“해준, 저기 봐. 저기!”
클로에가 상기된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동그란 연등에 뭔가를 써서 하늘에 날리고 있었다. 아마도 소원을 적어 올리는 것 같았다.
“우리도 하자!”
1실버를 내고 연등 2개를 샀다.
해준은 아버지의 흔적을 찾게 해달라는 간절한 소원을 적어 연등을 하늘로 띄웠다.
밤하늘을 수 놓는 형형색색의 연등들은 마치 수백 개의 보름달이 뜬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해준, 넌 무슨 소원 적었어?”
“비밀.”
“비밀? 쳇, 그런 게 어딨어.”
“그러는 너는 뭘 적었는데?”
“나도 비밀. 헤헤.”
광장을 지나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축제를 즐겼다.
게임도 하고, 상품도 타고.
그때,
해준은 다급히 곁을 지나가는 잡화점 윌리엄을 발견했다.
“안녕하세··· 응? 어딜 저렇게 급히 가시지?”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글쎄.”
클로에와 해준은 윌리엄을 따라갔다.
그제야 두 사람을 발견한 윌리엄.
“오, 그래. 너희들이구나.”
“아저씨 무슨 일 있어요?”
“아, 하스 씨네 딸 미아가 사라졌다는구나.”
하스는 마을의 유일한 약초꾼이다.
약에 쓰이는 약초를 캐오기도 하지만, 산속 깊은 곳에 난 야생 식물을 캐와서 팔기도 한다.
해준과는 잡화점에서 가볍게 인사도 나눈 사이.
“딸이 사라져요?”
“친구들끼리 숨바꼭질을 했다는데,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못 찾고 있어. 그럼 난 바빠서 이만.”
“잠깐만요, 아저씨.”
다급히 뛰어가려는 윌리엄을 해준이 불러세웠다.
“저희도 함께 찾아볼게요. 미아가 어떻게 생겼어요?”
“너희가?”
하스 씨와 친분이 많은 건 아니지만, 어떻게든 사라진 딸 미아를 찾는데 손을 보태고 싶었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찾아다닌다면 없어진 아이를 찾는데 더 유리할 것이다.
윌리엄은 고맙다는 말과 함께 미아의 인상착의를 설명했다. 갈색 머리를 양 갈래로 따고, 하얀 피부에 콧잔등에는 주근깨가 있는 여섯 살 소녀.
“저흰 저쪽을 찾아볼게요.”
“그래. 만약 찾는다면 저 골목 끝 집으로 데려오면 된단다.”
“네, 아저씨.”
해준과 클로에는 윌리엄과 반대쪽으로 뛰어갔다.
달의 여신 루나를 기리는 축제인 만큼 마을의 모든 사람이 거리에 나와 있어 아이를 찾기에 쉽지 않았다.
아이가 숨을만한 곳을 여기저기 찾아다니던 해준과 클로에. 그러나 쉽게 아를 찾을 수 없었다.
“저쪽으로 올라가 볼까?”
잠시 숨을 고르며 해준이 자신의 농장으로 향하는 오솔길을 가리켰다.
“저런 곳까지 갔을까?”
“혹시 모르잖아. 꼭꼭 숨으려고 모르는 곳까지 갔을지도.”
농장으로 향하는 오솔길은 숲이 우거져 보름달의 밝은 빛조차 닿지 않았다.
해준은 ‘미아’의 이름을 크게 외치며 풀숲 사이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이미 찾은 거 아닐까?”
“그럼 다행인데···.”
“난 농장 쪽을 더 뒤져볼게.”
“응. 그럼 난 뒷골목을 더 찾아볼게.”
“20분 후에 만나자.”
클로에와 헤어져 농장 근처를 수색했다.
이곳은 마을 사람들은 오지 않는 곳이지만, 숨바꼭질하다 숨었으면 어쩌면 이런 곳에 숨어있을지도 모를 노릇.
그렇게 울타리 옆 덤불 사이를 찾던 도중.
바스락-
어딘가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가만히 멈춰서서 귀를 기울이니 아이가 훌쩍이는 듯한 소리도 들렸다.
해준은 수풀 사이를 해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찾았다.”
윌리엄 아저씨가 말한 인상착의의 소녀가 쭈그리고 앉아 훌쩍거리고 있었다.
소녀는 해준을 발견하자 꾹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렸다.
“으아앙~.”
아마도 너무 무서워서 제대로 울지도 못했던 것 같다.
밤은 어둡고, 숲은 너무 무서운 곳이니까.
해준은 소녀를 꼭 안아줬다.
“괜찮아. 울지마. 아빠한테 데려다줄게.”
“으아앙~ 숨바꼭질하다가 길을 잃었어요. 너무 무서워서···.”
“그만 울어. 뚝.”
“으아앙~.”
해준의 토닥임에도 꼬마의 울음은 그칠 줄 몰랐다.
일단 아이를 진정시키고, 마을에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달래줘야 할지 난감한 그의 머릿속에 스친 아이디어.
“미아. 울지마. 아저씨가 사탕 만들어줄게. 뚝!”
“흐으응··· 사탕?”
눈물 콧물이 뒤범벅된 꼬마 소녀가 사탕이라는 말에 울음을 그쳤다.
역시 아이들에겐 달콤한 사탕이 먹힌다.
어렸을 때 자신처럼.
.
.
.
“우와, 이게 뭐예요?”
해준의 옆에 서서 까치발을 들고, 조리대 선반을 올려다본 미아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물었다.
어린 꼬마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신기해 보였다.
“과일 꼬치 사탕.”
“꼬치 사탕?”
“응.”
해준이 만들 사탕은 탕후루라는 과일 꼬치 사탕이다. 레시피 노트에는 없지만, 어렸을 때 해준이 울면 엄마가 해주던 간식.
방법은 간단하다.
어떤 과일이든 꼬치에 꽂고, 약불에 녹인 설탕 시럽을 코팅해주면 끝.
해준은 나뭇가지를 꺾어와 얇게 깎았다. 포도를 깨끗이 씻어 꼬치에 꽂아주고, 시럽을 만들었다.
미아는 잔뜩 기대한 얼굴로 침을 꼴깍 삼켰다.
“히히. 맛있겠다.”
“잠깐만 기다려.”
포도에 충분히 시럽을 발라주고, 잠시 식혔다.
이내 투명한 설탕 코팅이 입혀진 과일 꼬치가 완성되었다.
“자, 먹어봐.”
“감사합니다.”
조금 전까지 아빠가 보고 싶다며 엉엉 울던 꼬마가 사탕 하나에 해맑게 웃었다.
해준은 그런 꼬마의 표정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역시 요리란 하면 할수록 흥미가 생긴다.
단순히 먹을 것 하나만으로 울던 아이가 울음을 뚝 그치고, 웃는다.
현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 가끔 주방 너머로 보이는 손님들의 환하게 웃는 모습에 요 며칠 해준은 보람과 뿌듯함을 느꼈다.
실종된 아버지의 흔적을 쫓아 이곳까지 왔지만, 어느새 아버지를 찾는 일보다 땀 흘려 작물을 키우고, 그 농작물로 만든 음식을 사람들에게 대접하며 느끼는 만족감에 심취해있었다.
‘즐겁다···.’
해준은 희미하게 웃었다.
***
“고맙습니다.”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저씨.”
하스 씨와 미아가 감사 인사를 했다.
명성이 순식간에 3이나 올랐다. 아마, 윌리엄 아저씨의 부탁과 하스 씨 부녀를 만나게 해 줬기 때문이리라.
축제는 즐기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성과가 있는 밤이었다.
“별말씀을요. 미아, 다음부터는 길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해.”
“네, 아저씨. 근데, 다음에 또 사탕 먹고 싶으면 놀러 가도 돼요?”
“사탕?”
하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사탕을 만들어줬거든요.”
“엄청 맛있었어요, 아빠. 히히···.”
“제 딸이 신세를 많이 졌네요. 찾아주신 것도 고마운데, 사탕까지.”
“아닙니다. 어렵지 않았어요.”
“밖에서 이럴 게 아니라 안에 들어오셔서 차라도 한잔하고 가시죠.”
“괜찮습니다.”
“제가 너무 미안해서 그래요.”
호의를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 생각한 해준은 하스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희미하게 번지는 약초의 은은한 향기. 해준은 왠지 마음이 차분해지는 향기를 맡으며 집안을 둘러보았다.
한쪽 벽면 가득 형형색색의 꽃들이 투명한 유리병에 담겨 진열되어 있었다.
하스가 주황색 꽃이 그득 담긴 병을 꺼냈다.
“꽃차입니다. 이건 메리골드를 말린 건데, 비타민이 풍부하게 들어있죠.”
“향기가 좋네요.”
뜨거운 물을 붓자 찻잔 속에서 은은한 향과 함께 메리골드가 피어났다.
한 모금 마시니 달고 감미로운 향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다.
차를 대접한 하스는 해준에게 집 구경을 시켜줬다.
그는 꽃차와 약초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다. 그리고,
“여긴 뭔가요?”
“산에서 캐온 식용 채소들을 따로 재배하는 겁니다.”
샐러드에 쓰이는 채소들이다.
양상추, 로메인, 적채, 루꼴라 등 종류도 다양했다.
“아, 해준 씨도 마을 북쪽에서 농장을 하신다고 하셨죠?”
“네. 몇 가지 작물과 닭, 염소를 키웁니다.”
“그럼 이 채소들도 가져다가 심어보세요. 맛이 꽤 훌륭하답니다.”
하스는 탐스럽게 익은 빨간 파프리카를 따서 해준에게 건넸다.
“드셔보세요.”
아삭-
기분 좋은 식감과 함께 향긋한 과일 향기가 입안 가득 퍼졌다.
계속 씹다 보니 달콤한 맛도 느껴졌다.
“맛있네요. 달아요.”
“파프리카는 달콤한 맛을 내는 채소입니다. 비타민이 많이 들어있어 피로 해소에도 좋고요.”
“채소마다 맛이 다른가요?”
“그럼요. 파프리카처럼 단맛이 나는 것도 있지만, 쓴맛이나 매운맛이 나는 채소도 있죠.”
채소는 그저 다 똑같은 맛이라고 생각했던 해준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버렸다.
담백한 맛을 내는 양상추와 로메인. 그리고 케일과 치커리는 쌉싸름한 맛이 인상적이었고, 루꼴라는 씁쓸한 맛과 매콤함이 적절히 섞여 있었다.
해준은 하스에게 많은 걸 배웠다.
“정말 가져가도 될까요?”
“당연하죠. 그리고 이것도.”
하스는 기꺼이 채소들을 내주었다.
작은 알갱이가 든 유리병과 함께.
“이건?···”
유리병에 든 작은 알갱이의 정체는 후추였다.
“후추라는 향신료인데, 약재로도 쓰이는 거죠. 채소에 곁들여 먹으면 맛이 좋더군요.”
이 정도면 나름대로의 성과가 아니라 대박 난 밤이다.
길 잃은 꼬마를 찾아주고, 대가로 샐러드 채소 모종을 얻다니.
‘어떻게 조합하면 좋을까?···’
해준은 레시피 북을 뒤졌다.
닭가슴살, 새우, 두부, 치즈, 연어와 같은 토핑과 조합할 수 있는 다양한 샐러드와 소스의 조합을 찾았다.
필요한 채소는 비타민, 로메인, 케일, 라디치오, 루꼴라 정도.
조심스럽게 흙에서 캐 뿌리가 상하지 않도록 챙겼다.
“그거면 되겠어요?”
“네, 충분합니다.”
“모자라면 또 오세요. 저흰 언제나 환영이니까요.”
“네, 안녕히 계세요.”
해준은 하스 부녀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