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3
2화. 아버지의 유산(2)
***
“저···.”
“무슨 일로 찾아오셨죠?”
인포데스크에 앉아 있던 깔끔한 정장 차림의 여성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해준을 발견하고 밝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이런 우편물을 받아서요···.”
“아, 소파에 앉아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해준이 건넨 서류를 확인한 직원이 어디로 사라졌다.
잠시 후.
“반갑습니다. 김인철 변호사입니다.”
단정한 수트에 깔끔한 헤어스타일의 중년 남성이 나타나 명함을 내밀며 인사했다.
“차해준입니다. 보내주신 우편물 때문에···.”
“잘 찾아오셨습니다.”
변호사가 옆구리에 끼고 있던 유언장과 몇가지 법원 서류를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상속자가 나타났으니 절차에따라 재산 상속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잠시만요. 서류들이 좀 복잡해서요.”
“네, 천천히 하세요. 보내주신 서류를 읽어봤는데 아버지가 실종되셨다고···.”
“맞습니다. 실종되신지 5년이 넘어 법원에서 사망 처리를 한거죠.”
“사실 그보다 훨씬 전에 집을 나가셨거든요.”
“그러시군요.”
“그런데 갑자기 사망이니 유산 상속이니 하는 말을 들으니 이상하네요.”
“아··· 네.”
변호사는 개인사에는 흥미 없다는 듯 서류를 살피며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유산도 유산이지만, 여기 오면 아버지의 행적에 대해 알 수 있을까해서 찾아왔습니다. 혹시 저희 아버지에 대해 잘알고 계십니까?”
“아뇨. 저희도 의뢰인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변호사는 해준의 아버지가 실종되기 얼마전 자신의 사무실을 찾아 유언장을 작성했고, 그저 의뢰받은 범위 내에서 업무를 수행할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서류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아버님께서 실종된지 5년이 지나 법적 절차를 받게 된 거고요.”
“그렇군요. 그럼 누구도 시신을 본 건 아니네요?”
“뭐. 일단은 그렇습니다만, 이런 경우라면 사망했을 확률이 크죠. 빚을 지고 종적을 감춘 게 아니라 유산을 남기셨으니까. 아, 신분증 좀 볼 수 있을까요? 절차상 본인 확인이 필요해서요.”
변호사의 요구에 해준이 지갑을 열어 주민등록증을 꺼내 건넸다.
신분증 뒤에 넣어놨던 10년도 더 된 낡은 사진이 보였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과 어디 유원지에 놀러가 찍은 가족 사진이었다. 비록 아버지 자리는 접어서 안보이게 해놨지만 말이다.
잠시 머뭇거리던 해준은 사진을 꺼내 접혀있던 부분을 펼쳤다.
아버지와 해준 사이에는 떨어져 지낸 세월만큼이나 진한 실선이 그어져 있었다.
“확인 됐습니다. 그럼 의뢰인의 유언에따라 유산을 아들 차해준 씨에게 상속하는 절차를 밟겠습니다. 상속 물품은 이것들입니다.”
변호사는 두툼한 서류봉투와 종이를 내밀었다.
“이게 뭐죠?”
“봉인된 상태로 받아 보관하던 거라 저희도 내용물이 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건 유산으로 남기신 건물의 건축물대장이고요. 음, 주소를 보니 이 근처네요. 대지 면적이 200제곱미터에 단층 건물이 있네요. 아마 주택일 겁니다. 이동네에 그정도 부동산이면 싯가가 10억에서 15억쯤은 할텐데. 이런 말씀은 좀 그렇지만, 횡재하셨네요.”
로또 1등 당첨금에 준하는 큰 액수. 생각지도 못한 큰 금액에 다소 놀라긴 했어도 이곳을 찾은 이유는 아버지의 행적을 찾기 위함이라는 걸 잊지 않았다.
해준은 봉인된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 안에는 낡은 노트 한 권과 열쇠가 들어있었다.
‘뭐지?’
손글씨로 빼곡하게 쓴 노트엔 농작물 키우는 방법과 음식 레시피 따위의 쓸데없는 것들이 적혀있었으며, 열쇠도 요즘 사용하는 열쇠가 아닌 골동품 가게에서나 봄직한 오래된 청동 열쇠였다.
“아, 그런데 특이한 조건이 하나 붙어있네요.”
“조건이요?”
“네.”
부러운 표정으로 횡재했다는 말을 할때와 달리 난감한 표정이었다.
“상속한 대지를 포함한 건물을 절대 팔아서도 안되고, 허물어서도 안된다?··· 이런 조건이 붙어있네요.”
“알겠습니다.”
해준으로서는 전혀 상관 없는 내용.
어차피 그의 관심사는 건물이 아닌 아버지의 행방이었다.
‘어쨌뜬 그곳에 가보면 작은 힌트라도 얻을 수 있겠지.’
해준은 변호사가 내민 서류에 서둘러 사인을 했다.
“이제 다 된건가요?”
“네. 서류 관련된 것들은 처리가 완료되면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혹시 궁금한 점 있으십니까?”
“아뇨. 일단은.”
“문의할 일이 생기시면 명함의 번호로 전화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변호사 사무실을 빠져나온 해준은 핸드폰 지도 앱을 켰다.
목적지는 사무실에서 400미터 쯤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었다.
해준은 지도가 가르키는 방향을 따라 빌딩숲 옆 작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아까와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대형 상가와 아파트, 왕복 10차로 도로 대신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만한 좁은 골목과 야트막한 고옥(古屋)이 보였으며, 그곳은 이따금 사람의 왕래만 있을뿐 아주 조용한 골목이었다.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가며 5분쯤 걷자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기구나.”
좁은 골목끝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단층 빨간 벽돌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해준은 선뜻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만 건물을 살폈다.
낡은 문과 녹슨 손잡이. 한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는지 울타리 안 마당엔 잡초가 무성했고, 담쟁이 덩굴이 빨간 벽돌과 출입문에 휘휘 감겨있었다. 얼핏보면 폐가나 재개발을 앞두고 원주민이 떠나버린 주택 분위기도 풍겼다.
“땅값 비싼 동네라더니 관리는 전혀 안되어 있네. 하긴 아버지가 물려준 주택이라면 주인이 아버지라는 이야기인데, 실종된지 5년이 넘었으니··· 여기도 5년 동안 방치되어 있던 건가?”
5년동안 방치된 만큼 상태는 최악이었다.
끼이익-
잠시 머뭇거리던 해준은 용기 내어 벽돌담 사이로 난 작은 나무문을 밀고 들어갔다. 무릎까지 자란 잡초가 푹신하게 느껴졌다.
해준은 뭔가 오묘한 기운이 느끼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건물쪽으로 다가가자 아까는 보지 못했던 간판이 보였다.
“경양식 썬플라워?”
영문 필기체로 쓴 [Sunflower] 글씨 옆에 서툴게 그린 해바라기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촌스러운 파란 바탕의 간판은 지지대 한쪽 귀퉁이가 녹슬어 떨어져나간 상태였다.
아마도 주택은 주거 용도가 아닌 식당으로 사용된 것 같았다.
“그나저나 요즘 시대에 경양식라니···.”
경양식(輕洋式).
말 그대로 ‘가벼운 서양 요리’를 뜻하며, 오므라이스나 돈가스, 함박스테이크같은 걸 파는 식당이다. 짜장면과 함께 가족 외식의 양대 산맥이었으나 패밀리 레스토랑의 등장으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오랜만이네.”
경양식당이라면 아주 어릴 때 부모님 손을 잡고 몇번이나 가본 경험이 있다.
해준이 짜장면보다 돈가스를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돈가스를 주문하면 우유 맛이 진하게 나는 양송이 스프가 먼저 나왔다. 시판용 스프를 대량으로 끓여낸 것이지만, 특유의 감칠맛이 좋아 늘 한번 더 추가 주문을 해 두그릇씩 먹었었다. 그렇게 스프로 입가심을 하고 나면 단무지와 콩, 피클, 마카로니 샐러드가 듬뿍 담긴 커다란 옛날 돈가스가 나왔다. 막 튀긴 돈가스에 소스를 얹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돈가스. 어머니가 썰어준 돈가스를 포크로 푹 찍어 한입 넣으면 그 맛은 가히 천국이었다. 어린 해준이 먹기엔 상당히 많은 양이었으나 자주 먹을 수 없는 음식이기에 해준은 기어코 접시를 비워냈던 기억이 있다.
‘맛있었는데···.’
옛 추억을 떠올리던 해준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그동안 해준은 먹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그에게 음식이란 단순히 생을 연명해주는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혼자 먹는 음식이 맛있을리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쩐지 오늘은 유난히 입맛이 당겼다.
경양식당에 대한 작은 추억을 떠올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식당을 아버지가 운영한 건가? 직접?···”
기억 속 아버지는 요리와 거리가 멀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한 특별식을 만들겠다며 이따금 일요일 아침에 주방에 서는 걸 제외하고는 한번도 아버지가 음식을 만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 식당은 분명 아버지가 남긴 유산. 어떻게든 썬플라워라는 경양식당이 아버지와 관계가 있을것이란 생각에 해준은 정원을 지나 건물 앞으로 향했다.
‘꽤 넓네.’
마당은 꽤나 넓었다.
현재는 잡초만 무성하지만, 풀을 뽑아주고 정리만 잘 해준다면 꽤 그럴듯한 정원으로 탈바꿈할 것 같았다.
입구에 도착한 해준은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덩굴과 거미줄을 대충 치워내고, 서류 봉투 속 열쇠를 꺼냈다.
“흠··· 뭐지?”
열쇠를 꺼낸 해준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가 남긴 열쇠는 RPG 게임의 아이템처럼 엔티크한 디자인이었지만, 현관의 열쇠 구멍은 너무나도 현대적인 모양. 누가봐도 맞지 않는 열쇠였다.
“현관 열쇠가 아닌가?”
고개를 갸웃한 해준이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돌렸다. 다행히 잠기지는 않은 모양. 끼리릭-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을 열자 아주 오랫동안 묵은 케케한 공기와 먼지 냄새가 해준을 맞았다.
“휴우, 냄새.”
가볍게 미간을 찡그린 해준이 허공으로 손을 휘휘 저으며 가게 내부를 살폈다.
외부와 달리 내부는 제법 깔끔했다. 뭔가 올드하면서도 촌스럽지 않은 모습.
홀에는 동그랗고 네모난 원목 테이블과 의자가 대여섯개 정도 있었고, 한쪽벽면 장식장에는 낡은 LP와 턴테이블이 놓여 있었으며 그 밖에도 아기자기하고, 오래된 소품들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먼지가 수북하게 쌓였지만, 먼지를 털어내고 조금만 손보면 바로 영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관리가 제대로 되어 있었다.
해준은 혹시나 있을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가게 이곳 저곳을 꼼꼼이 살폈다. 그러나 이곳은 평범한 경양식당일뿐 이곳에는 아버지의 흔적같은 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한참을 내부 이곳저곳을 살피던 해준이 포기하고, 의자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어쩌지?”
아버지가 남긴 흔적같은 건 없었다.
절망하며 비관하던 해준의 해준의 시야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작은 쪽문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문에는 [Staff Only] 팻말이 작게 붙어있었다.
해준은 조심스레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끼이익-
역시나 잠겨 있지 않은 문.
이쯤되니 아버지가 남긴 열쇠의 쓰임이 궁금해졌다.
“이런 공간이 있었네?”
두평 남짓한 지내던 고시원과 비슷한 크기의 방. 누군가 이곳에서 생활을 했는지 싱글 사이즈 침대와 작은 책상 그리고 나무로 짠 낡은 옷장이 있었다.
방안을 둘러보던 해준의 눈에 아주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아,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