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33
32화. 돼지의 맛(3)
***
“오, 역시!”
해준의 예상대로 동굴 숙성 하루 만에 하얀 곰팡이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이틀째 되던 날.
네리의 가게에서 봤던 것 같은 색깔의 하몽이 완성되었다.
칼을 가져와 넓적한 부위를 잘라 맛을 봤다.
솜씨가 없어 울퉁불퉁 두껍게 잘렸지만, 맛만큼은···.
“훨씬 맛있어.”
성공이다.
뒷다리를 가져와 대량으로 소금에 절여 숙성하면 교역상이 마을을 방문하기 전까지 약속된 물량을 생산해낼 수 있다.
그길로 마을로 향한 해준은 네리를 끌고 농장으로 돌아왔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탄식만 흘리는 네리.
“너··· 너··· 혹시 마법사냐?”
하스 씨와 똑같은 반응이다.
“아니요.”
[해준 님은 그저 성실한 농부일 뿐입니다. 동시에 솜씨 좋은 요리사이기도 하고요. 요즘 만들어주시는 샐러드랑 스프는 아주 일품입니다.]포테가 날아와 말했다.
느닷없는 정령의 등장에 네리가 화들짝 놀랐다.
“그럼 저, 정령사?”
“그것도 아니에요. 포테 말처럼 그냥 아버지께 농장을 물려받았을 뿐입니다.”
“근데 어떻게 이틀 만에 이렇게··· 게다가 정령까지 부리고.”
엄밀히 말하면 부리는 건 아니다.
포테는 자유롭게 나타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하니까.
하지만, 지금 중요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침착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현실 세계였다면 미친놈 소리를 들었겠지만, 이곳 세계는 마법이니 정령이니 하는 것 따위가 통용되는 곳. 네리를 설득하는 건 쉬웠다.
“일단 하몽 맛을 좀 봐주시겠어요?”
잘 숙성된 하몽에 칼을 찔러 넣으려는데,
해준의 행동을 지켜보던 네리가 다급히 소리 질렀다.
“으악~ 아, 안 돼!”
“네? 왜요?”
“하몽을 그렇게 자르다니.”
“방법이 틀렸나요?”
“어! 그것도 아주 많이. 자르는 것도 기술이야. 그냥 칼날만 넣는다고 되는 건 아니다.”
칼을 빼앗아 든 네리는 조심스럽게 천장에 매달려 있는 하몽을 내렸다.
그리고는 마치 톱질을 하듯 슥삭슥삭- 움직이며 잘라냈다.
아주 얇게.
해준은 숨죽여 그 과정을 자세히 지켜봤다.
처음 시식을 할 때는 하몽의 맛에 집중하느라 카빙 하는 방법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이제서야 왜 그렇게 두껍게 썰렸는지 이해가 됐다.
‘어쩐지 내가 썬 거는 엄청 두껍더라니. 저렇게 하는 거였구나.’
어느새 접시 가득 시식용 하몽이 쌓였다.
고개 숙여 향을 맡던 네리는 하몽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맛을 음미하더니,
“굉장해. 내가 만든 것보다 훠··· 훨씬 맛있어.”
감탄사를 내뱉었다.
하몽 특유의 감칠맛과 적당히 짭조름하면서도 잡내가 없는 풍미가 일품이었다.
이 정도의 하몽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최상품이다.
‘돼지도 훌륭하고, 숙성도 완벽하다. 도저히 이틀 만에 만든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맛. 하지만, 무엇보다 대단한 건···.’
“도대체 무슨 소금을 쓴 거냐?”
네리의 질문을 들은 해준은 흠칫 놀랐다.
시식을 한 것만으로도 뭐가 다른지 단번에 알아챈 것이다.
“농장 뒤쪽 절벽 위에 저만 갈 수 있는 암염 광산이 있어요. 거기서 캐온 겁니다.”
“오··· 암염 광산? 어쩐지.”
맛이 깊으면서도 오묘했다.
단순한 짠맛이 아니라, 짠맛 그 이상의 맛이 숨겨져 있는 느낌. 마치 다양한 향신료를 섞어 넣은 것처럼 복합적인 맛이다.
‘소금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맛이 업그레이드됐어. 게다가···.’
해준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교역상이 오기 전 계약된 하몽 물량을 맞추는 게 가능해진다.
더 좋은 품질의 하몽이니 웃돈을 받을지도 모를 노릇.
꼼짝없이 물량을 맞추지 못한 위약금을 물어야 할 판이었지만, 해준에게 부탁하면 모든 게 잘 해결되리라 생각했다.
“해준. 부탁이 있다.”
자세를 고쳐잡은 네리가 공손하게 말했다.
해준은 이미 그가 어떤 부탁을 할지 알고 있었기에 부탁을 듣기도 전에 수락했다.
“좋아요. 만들어드릴게요.”
“고, 고맙다!”
“몇 덩어리나 만들어야 하나요?”
“지금 모자라는 건 정확하게 스무 개다.”
돼지 10마리 분량이다.
그리 크지 않은 동굴이지만, 그 정도 양은 숙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해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네리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 후, 잠시 머뭇거리는 네리.
“그리고 하나 더.”
“또 뭐가 있나요?”
“소금을 내게도 나눠줄··· 아니 팔 수 있겠냐?”
네리에게 하몽 숙성 의뢰와 소금 판매 제의를 받았다.
소금을 구해오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절벽을 넘어가면 지천으로 쌓여있으니.
“나중에 가져다드릴게요.”
“값은 후하게 쳐줄···.”
“돈 이야기는 그때 하시죠. 지금은 하몽부터 만들어야죠.”
네리의 작업장으로 달려가 소금에 절이기 시작한 뒷다리 중 20개를 동굴로 가져왔다.
기존 소금을 모두 닦아내고, 절벽에서 캐온 암염 소금에 새롭게 절였다.
일련의 과정을 마치고 나니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그래도 일을 끝내면 명성은 쭉쭉 오르겠지?’
해준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농장에서의 일은 마무리해야 했지만, 아직 중요한 한 가지가 남았다.
그것은 바로.
“오늘 저녁은 삼겹살 파티다!”
삼겹살을 무시했던 게리에게 진짜 삼겹살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비록 쌈장이나 채소, 마늘과 같은 필수 쌈 재료가 없었으나 소금과 후추 그리고 질 좋은 삼겹살만으로 충분하리라 생각됐다.
잡화점에서 무쇠 판을 샀다.
돌아오는 길에 게리, 네리 형제와 하스 씨 부녀, 제임스 아저씨에게 들러 저녁을 먹지 말고 농장에 오라고 일러뒀다.
제대로 된 흑돼지 삼겹살이 있으니 이곳 사람들에게도 그 맛을 보여줄 차례.
창고 옆 공터에 돌을 적당히 쌓고, 그 위에 1센티미터 두께의 철판을 올렸다.
그 사이 해준이 초대한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이게 다 뭐야?”
클로에가 신기해하며 물었다.
“철판에 고기를 구워 먹을 거야.”
“고기? 소고기? 히히, 맛있겠다.”
“아니. 돼지고기 삼겹살.”
“삼겹살?···”
“삼겹살은 맛없다니까. 아까 말했잖냐.”
게리가 투덜거렸다.
고작 기름 덩어리 뱃살이나 구워주려고, 자신을 불렀냐며 타박까지.
더 오기가 생긴 해준은 지방과 살코기가 완벽하게 삼겹 모양인 고기만 엄선해 준비했다.
“난 뭐든 상관없으니까 와이너리에 있는 와인이나 한 병 줘라.”
“제임스 아저씨가 가져다 드세요. 전 이제부터 삼겹살을 구워야 하니까.”
“야아옹~!”
“포테 너 나중에 더 달라고 하기만 해봐. 뭉치 너도!”
집게를 쥔 손을 움켜쥔 해준이 결연한 표정으로 불판 앞에 섰다.
손바닥을 뻗어보니 두꺼운 철판 위로 열기가 느껴졌다.
삼겹살을 올려야 할 타이밍.
소금과 후추를 톡톡- 뿌려주고, 주저 없이 준비한 삼겹살을 올렸다.
치이이-
치이이익-
일렬로 줄을 세워 올리자 금세 연기와 함께 맛있는 소리가 들렸다.
얇게 썰지 않고, 일부러 두툼하게 사각형 모양으로 썰었다.
고기가 익으며 기름이 옆으로 조금씩 흘러내렸다.
성급하게 뒤집지 않고, 타이밍을 기다리다가 적당한 때에 고기를 뒤집었다. 바닥 면에 있던 삼겹살에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 연한 갈색으로 변했다.
두툼한 고기를 사면으로 구워 육즙을 가뒀다.
불판이 두꺼운 만큼 열 손실이 적어 전체가 고르게 갈색을 띠었다.
‘제대로 익고 있어.’
다른 건 몰라도 고기 굽는 것만큼은 자신 있었다.
군 복무 시절, 정육식당을 하던 동기 녀석의 집에 휴가 때마다 찾아가 신세를 지며 구웠던 고기만 수백 판이 넘는다. 밥값을 하겠다며 휴가 내내 알바까지 했으니, 해준의 고기 굽는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사람들이 진한 육향이 퍼지자 불판 위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자, 니가 먼저 먹어봐.”
소금을 치지 않고 따로 구워둔 고기 조각을 뭉치에게 던져줬다.
녀석이 제일 기대하는 눈으로 불판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야아옹~!”
“나도. 나도 좀 줘봐.”
“자, 먹어봐. 삼겹살에 맛 들이면 소고기는 생각도 안 날걸? 아저씨도요. 고기가 기름지고, 고소해서 와인에 딱 어울릴 겁니다.”
클로에, 제임스 그리고 네리 형제와 하스 부녀에게도 각각 잘 익은 고기를 한 점씩 놔줬다.
“근데 이 소금은 왜 준 거야?”
“살짝 찍어 먹으면 더 맛있어. 한번 먹어봐.”
쌈 재료의 부재가 아쉬웠지만, 경험상 충분히 가능할 거로 생각했다.
정말 맛있는 고기는 소금으로도 충분히 맛있으니까.
“우와, 미친. 뭐가 이렇게 맛있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데?”
“와인이랑 딱이다. 이거 하몽보다 더 맛있는데? 이봐. 해준! 여기 고기 좀 몇 점 더 놔줘.”
“고소해. 씹는 맛도 좋고. 지방이 야들야들 부드러워. 삼겹살 구이는 참 멋진 음식이구나.”
맛을 본 사람들이 열광했다.
해준의 시선은 게리를 향했다.
지방이 많은 삼겹살은 맛이 별로라던 그였다.
그런 그가.
“더··· 더 줘.”
삼겹살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는 빈 접시를 내밀었다.
“대체 이렇게 맛있게 굽는 비결이 뭐냐?”
“고기가 좋은 거죠.”
“단순히 그것만은 아닌 거 같은데?”
“조금 숙성을 시켜줬어요.”
“또?”
“또요? 음··· 이 손?”
해준은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삼겹살은 좋은 고기만큼이나 굽는 스킬이 중요하다.
일단 불판은 230~260도의 온도를 유지해야 하며, 고기가 불판에 닿았을 때 생기는 열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두꺼울수록 좋다. 동기 녀석의 식당은 두꺼운 불판에 적외선 온도기를 쏴가며 260도에 반드시 고기를 올렸었다.
굽기 적당한 최적 온도까지 올렸으면 마이야르 반응이 나도록 충분히 구워주는 것이 좋다.
이때 나뉘는 방법이 뒤집는 횟수. 한번 뒤집기 파와 여러 번 뒤집어도 좋다는 파의 의견이 분분하지만, 뭐가 됐든 좋다. 다만, 타지 않게 고기에 집중만 하면 된다. 대화를 하면서도 시선은 고기에 집중! 한다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육즙 가득 삼겹살을 구워낼 수 있다.
“과연! 그렇군. 어딘지 심오해.”
해준의 설명을 들은 게리가 무릎을 내리쳤다.
삼겹살 구이는 하몽과 비슷한 점이 있다. 과정은 단순하지만, 숙련된 기술과 정성이 필요하다.
감탄한 게리는 삼겹살을 연신 집어 먹으며 놀라운 맛에 재차 감탄사를 뱉어냈다.
모두가 신난 듯 고기 먹는 모습을 보니 괜히 흐뭇해졌다.
다 함께 모여 저녁을 먹는다는 게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즐거우면서도 뿌듯하고, 또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이런 게 식구인 건가?’
식구(食口).
함께 끼니를 먹는 사람들.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함께 생활하며 먹는 것을 나누니 전에 없던 끈끈한 유대감이 생겼다. 가족이 없는 해준에게는 생경한 감정이다.
그때, 묵묵히 고기를 먹던 네리가 해준에게 말했다.
“고맙다. 덕분에 하몽 문제도 잘 해결될 거 같고, 이렇게 맛있는 음식까지 해주니 말이다.”
담담하지만, 진심이 담긴 인사였다.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듣자 하니, 아버지를 찾고 있다고?”
제임스에게 해준의 사정을 들은 모양이다.
“네. 살아계실지는 모르지만, 찾아보는 데까지 찾아보려고요.”
“도움이 될만한 게 있으면 말해주마.”
“부탁드릴게요.”
“흠흠··· 그런 의미로 나도 삼겹살 좀 몇 점 더···.”
민망한 얼굴로 빈 접시를 내밀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빈 접시를 동시에 내밀었다.
“나도.”
“저도요. 오빠!”
[해준 님. 저 먼저!]“야아옹~!!”
“하하. 삼겹살은 많으니까 천천히 많이들 드세요.”
그렇게 밤새도록 고기 파티가 이어졌다.
***
하몽 숙성의 핵심은 온도와 습도 조절.
그렇기에 차원의 농장의 시간 흐름으로 이틀 동안 해준은 틈만 나면 동굴을 찾았다.
그 결과 최상급 하몽이 완성되었고,
“완벽해.”
하몽을 시식한 네리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네요. 일정을 맞출 수 있어서.”
“고맙다. 다 네 덕분이야.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보답은 벌써 다 하셨잖아요.”
네리 형제에게 도움을 준 대가로 앞으로 흑돼지를 비롯한 모든 가축의 도축 비용을 모두 공짜로 해주기로 했다.
덤으로 넓적다리를 마리당 40실버에 구매한다는 약속까지 받아냈고, 암염도 판매하기로 했다.
해준으로서는 어마어마한 수익이었다.
“참, 네리 아저씨. 혹시 마늘이나 생강, 고추 같은 작물을 구할 수 있을까요?”
윌리엄의 작은 잡화점에서는 모두 취급하지 않는 물품들이었다.
삼겹살을 먹다 보니 여기서 쌈 채소와 쌈장의 부재가 너무도 아쉬웠다.
만약 여기서 재료들을 구해 만들 수만 있다면, 이곳에서 삼겹살 붐을 일으킬지도 모를 일. 꼭 돈을 벌겠다는 목적보다 농장 식구들에게 삼겹살의 100%를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그런 거라면 잡화점 윌리엄을 찾아가 보지 그러냐?”
“일전에 물어봤더니 취급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음··· 하긴. 그런 재료는 동쪽 대륙의 어딘가의 성에서는 먹는다고 했지만, 우리는 잘 먹지 않지. 그래서 구하기 어려운 걸 거야.”
저번처럼 포테가 가져다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물었지만, 포테도 그런 씨앗은 구하기 힘들다고 했다.
‘포테 녀석. 은근히 안되는 게 많단 말이야. 쩝···.’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아, 그러면 되겠구나!”
“어떻게요?”
“교역상이 올 때 같이 가자. 그들이라면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 물품을 의뢰해놓으면 다음번 방문 때 가져다줄 수도 있고.”
“좋은 생각이네요.”
“교역상은 3일 후에 오니, 그때 보자꾸나.”
수레에 하몽을 가득 실은 네리가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