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42
41화. 승격(2)
***
‘어쩌지?···’
고민하던 해준의 눈에 동식이 보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셨어요.”
새벽 일찍 출근한 동식, 조리복을 갈아입는 그의 손에 보이는 작은 흉터와 화상은 모두 재료 손질과 연습을 하다 생긴 것들이다.
평생 칼 한번 잡아보지 못했다던 동식은 이 주방에서 성실하게 일했다.
처음엔 서툴렀던 칼질도 이젠 수준급이고, 직원들 식사로 내는 음식 맛도 상당했다. 비록 소스를 포함한 기본적인 재료는 모두 해준의 손에서 탄생한 것이지만 말이다.
“샐러드 채소부터 준비하겠습니다.”
차원의 농장에서 가져온 재료를 깨끗이 씻는 동식을 유심히 쳐다봤다.
능숙하게 재료를 손질하고, 해준이 구운 빵을 가져다가 샌드위치 크기에 맞게 썰었다.
‘가능할까? 아직 오므라이스를 해본 적은 없으실 텐데.’
라는 고민도 잠시.
동식이라면 분명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점심 장사가 끝나면 퇴근하지 않고, 가게에 남아 팬 돌리는 연습을 매일 2시간씩 해온 걸 알기 때문이다.
“형님. 오늘 팬 잡아주세요. 제 어깨가 아직 안 나아서.”
“네? 저더러 팬을 잡으라고요?”
당황한 동식이 되물었다.
“네. 잡아주세요.”
“직원 식사라면 모를까 손님용 오므라이스를 어떻게···.”
“연습 열심히 하셨잖아요.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
동식이 잠시 머뭇거렸다.
괜히 하겠다고 나서서 피해를 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소스는 다 만들어져 있잖아요. 밥만 볶고, 오믈렛을 만들기만 하면 돼요.”
걱정을 덜어주려고 일부러 간단하게 말했지만, 실은 숙련된 스킬이 필요한 아주 까다로운 과정이었다.
그래도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어려워도 잘 이겨낸다면 동식의 실력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테니까.
“일단 오전 영업 준비부터 하시죠.”
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준비했다.
오픈 시간에 맞춰 손님들이 들이닥쳤고, 정신없이 손님 응대를 하다 보니 훌쩍 오전 타임이 끝나버렸다.
해준은 동식에게 직원 식사용 오므라이스 3인분을 주문했다.
평소 프라이팬 돌리는 연습을 꾸준히 해왔기에 밥을 볶는 과정은 수월하게 넘어갔다.
이제 밥 위에 올린 달걀 오믈렛만 만들어내면 된다.
오므라이스의 핵심이자 가장 어려운 단계다.
“한번 해보세요.”
“네, 사장님.”
심호흡을 한 동식이 화구 앞에 섰다.
프라이팬을 충분히 달궈주고, 그 위에 식용유를 두 바퀴 둘렀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식용유를 다 쓰지 않는다는 점. 동식은 팬에 기름기만 남겨주고, 나머지를 키친 타월로 닦아냈다.
얇은 기름막만 남은 프라이팬 위에 달걀 물을 많다 싶을 정도로 부었다.
“이제 젓가락으로 휙휙 저어주세요. 시계방향으로.”
“네. 시계방향으로.”
달걀 가장자리가 하얗게 굳어갈 때쯤 해준의 지시대로 팬을 돌리며 나무젓가락으로 휘휘 젓기 시작했다.
서서히 열이 가해지며 달걀이 마치 순두부처럼 몽글몽글 뭉쳐졌다.
반쯤 굳었을 때쯤, 가장자리를 살살 떼어내 반으로 휙 접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어려운 스킬이 요구된다.
반으로 접은 상태에서 프라이팬을 톡톡 튀겨주며 모양을 잡으면 럭비공처럼 모양을 잡을 수 있는데,
“앗, 터졌습니다.”
너무 힘을 줬는지 가운데가 푹 터져버렸다.
“괜찮아요. 너무 스냅을 적게 줘서 그래요. 다시 처음부터 해보죠.”
“네.”
실패한 것은 옆으로 빼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이번엔 럭비공 모양으로 만드는 것까지 성공했으나,
“어쩌죠? 겉면이 타버렸어요.”
너무 소심하게 뒤집은 탓일까?
오믈렛의 겉이 갈색으로 변해버렸다.
흔들어보니 푸딩처럼 흔들리지 않고, 딱딱했다. 그 말은 내부가 너무 푹 익어버렸다는 뜻.
“다시 해볼까요?”
“네.”
그렇게 몇 번의 시도 끝에.
“됐다. 성공했습니다.”
“모양은 그럴듯하네요.”
완벽한 럭비공 모양의 푸딩처럼 찰랑찰랑거리는 오믈렛을 완성할 수 있었다.
동식은 완성된 오믈렛을 밥 위에 얹고, 밥 가장자리에 소스를 뿌렸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완성된 오므라이스.
칼로 오믈렛을 가르니 완벽하게 반숙으로 익은 달걀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과 함께 풍기는 고소한 풍미.
밥, 소스와 함께 섞어 먹어보니.
“맛있다.”
“저도 먹어보고 싶어요.”
주방과 홀 사이에 난 작은 창문에 기대 연습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가 참지 못하고, 주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숟가락을 가져와 잘 비벼진 오므라이스를 푹 떠먹더니.
“음~ 맛있다. 아저씨 진짜 맛있어요. 사장님이 만든 거랑 똑같아요!”
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제야 동식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시식 겸 식사를 마친 해준은 동식에게 오므라이스를 맡겼다.
11시 30분.
런치 타임이 시작됐다.
민주가 순서대로 손님을 받았다.
“돈가스 둘, 치즈 가스 둘, 오므라이스 둘이요!”
주방에 주문 전표를 붙이며, 크게 외쳤다.
“동식 형님. 오므라이스 두 개 맡아주세요.”
“네, 사장님.”
각자 접시는 알아서 준비하기로 했다.
해준은 튀김기에 돈가스와 치즈 가스를 넣고, 남는 시간에 접시 플레이팅을 하고, 동식은 접시부터 준비하고, 음식 조리에 들어갔다.
촤르르르-
지글지글-
해준과 동식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둘이 함께 음식을 만드니 속도가 빨라졌다.
손님께 음식을 내는 시간이 빨라지니, 테이블 회전 속도도 빨라졌고, 평소보다 더 많은 손님을 받을 수 있었다.
다만,
“휴, 힘들다.”
“오늘 유난히 빡쎘어요.”
그만큼 더 힘들었다.
민주와 동식이 더위에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처럼 테이블 위에 퍼져버렸다.
“테이블 회전이 너무 빨라서 그랬나 봐요.”
“오므라이스 반응은 어땠어?”
“어떻긴요. 다들 맛있다고 난리지. 칼로 오믈렛 가르면서 툭 터지는 거 찍어서 별스타에 올리고. 평소랑 아주 똑같았어요. 고생 많았어요, 아저씨.”
“다행이네.”
그제야 안심인 표정이다.
혹시라도 평소와 맛이 다르다는 컴플레인이 들어올까 봐 만드는 내내 노심초사했었다.
“다들 고생하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사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앞으로 오므라이스는 형님이 담당해주세요.”
“제, 제가요?”
“그리고, 홀이랑 주방에 직원 한 명씩 더 뽑죠.”
“그럼 동식 아저씨. 주방 보조에서 오므라이스 담당 부주방장으로 승격한 건가? 승진 축하해요. 아저씨. 사이트에 구인 글은 제가 올릴게요. 가게 앞에 공고도 붙여놓고.”
“하하. 고마워.”
민주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말했고, 동식은 그저 이 모든 상황이 얼떨떨하고, 쑥스럽기만 한지 머리만 긁적였다.
“말로만 이럴 게 아니라 축배라도 들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녁에 회식이라도 할까?”
“나 저녁에 친구 만나러 가야 하는데.”
“저도 대리운전 알바 때문에 술은 좀 힘듭니다.”
“그럼 지금 할까요?”
“지금?”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민주가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주방으로 호다닥 달려갔다.
***
‘음. 주방에 재료가 뭐 뭐 있지?’
민주가 채소 칸을 열어 재료를 살폈다.
감자, 각종 샐러드 채소, 오이, 당근, 방울토마토, 레몬 그리고 직원들 간식으로 먹으라고 한 포도가 있었다.
재료를 확인한 민주는 믹서를 가져와 이것저것 넣고, 갈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뭐 하는 걸까요?”
“글쎄요.”
한참을 분주하게 주방에서 움직이던 민주는 쟁반에 음료 석 잔을 올려 내왔다.
“그게 다 뭐야?”
해준의 물음에 민주가 레몬 슬라이스가 듬뿍 담긴 잔을 들어 보였다.
평소 그녀가 만드는 레몬수보다 훨씬 탁한 연노란색 음료였다.
“이건 레모네이드요.”
“레모네이드?”
“에이드가 뭐야?”
“탄산수에 레몬 넣어서 만든 음료예요.”
민주가 가방에서 꺼내 간 물건의 정체는 편의점에서 투 플러스 원으로 산 탄산수.
레몬 하나를 반으로 쪼개 슬라이스로 썰고, 남은 반은 즙을 짜 얼음과 함께 넣었다. 적당량의 탄산수와 설탕을 넣고, 보기 좋게 레몬 슬라이스를 넣어주면 손쉽게 완성되는 음료.
“그 옆에 보라색 음료는?”
“이건 포도 에이드.”
“만드는 건 레모네이드랑 비슷해요.”
투명한 컵의 바닥은 와인처럼 진하고, 위쪽은 옅은 색의 그라데이션이 인상적이었다.
“예쁘네. 여자들이 좋아하겠어.”
“그럼요. 여기에 애플민트 넣으면 더 예뻐요. 그리고 이건 방울토마토를 갈아서 만든 생과일주스.”
“그것도 탄산수를 넣어 만든 거야?”
“아뇨. 이건 토마토에 얼음, 설탕만 넣고 간 거예요.”
토마토 한주먹에 얼음과 설탕을 넣고 갈았다.
만들기는 간단하지만, 자칫 잘못 만들면 케첩처럼 걸쭉해져서 주스인지 케첩인지 모를 경우가 있다. 민주가 만든 건 적당한 농도의 완벽한 주스.
“술은 아니지만, 아쉬운 대로 이걸로 건배해요.”
동식은 토마토 주스, 해준은 레모네이드를 남은 포도 에이드는 민주가 들었다.
허공에서 잔을 부딪치고, 한 모금씩 마셨다.
“어때요?”
“맛있다. 진짜 카페에서 먹는 맛인데?”
동식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얘기 안 했었나요? 저 카페에서 알바 했었어요. 헤헤.”
“기억난다. 별명이 뭐랬지?”
“알바몬이요.”
“풉, 알바몬?”
동식이 마시던 음료를 뿜을뻔했다.
“네. 하루에 알바를 몇 탕씩 뛴다고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에요. 패밀리 레스토랑, 카페, 디저트 가게 안 해본 게 없다니까요.”
민주가 자신의 알바 경력을 읊었다.
세계 바리스타 대회 3등을 수상한 커피전문점에서 알바도 했었고, 개인 카페 알바 경력도 많아서 만들 줄 아는 음료 레시피가 20가지도 넘는다고 자랑했다.
“이게 그때 배운 레시피예요.”
“그렇구나. 어쩐지···.”
“맛이 남다르죠?”
“응.”
“헤헤··· 감사합니다.”
민주는 수줍게 웃더니, 뭔가 떠오른 듯 소리쳤다.
“아! 근데 사장님. 우리는 왜 음료 안 팔아요?”
“음료?”
“그 흔한 콜라나 사이다도 없고. 레스토랑에서 음료수 안 파는 건 처음 봐요.”
민주의 말에 동식이 동의한다는 듯 말했다.
“그건 저도 동감입니다. 뚱드위치는 산양유랑 함께 먹으면 꿀맛인데, 음식과 잘 어울리는 음료가 없어서 깜짝 놀랐어요.”
“그쵸? 손님들이 음료수 없냐고 엄청 물어봐요. 레몬수밖에 없다면 좀 실망하는 눈빛이랄까.”
해준은 음식에 너무 신경 쓰다 보니 음료수는 생각도 못 했다.
하긴 돈가스나 오므라이스 같은 음식을 먹고 나면 깔끔한 음료가 생각나기 마련인데.
“생각을 못 했네.”
딱히 도매업자에게 재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차원의 농장에서 콜라나 사이다 따위의 음료수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니 전혀 생각 못 한 부분이다.
“이 기회에 만들어 팔까요? 급한 대로 레모네이드랑 포도 에이드만 만들어 팔아도 괜찮을 텐데.”
“말 나온 김에 민주 네가 음료까지 홀 전체 조율이랑 음료도 담당해줄래?”
“제가요?”
사실 말이 알바생이지, 민주가 홀과 매장 운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었다.
홀을 혼자 감당한다면 말도 안 되는 부탁이겠지만, 홀 직원을 한 명 더 뽑을 예정이니 민주는 전체적인 홀 조율과 음료를 담당해도 좋을 것 같았다.
“어때?”
“음··· 좋아요.”
딱 5초 동안 고민하더니 쿨하게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럼 민주 씨도 승격한 건가? 음료 담당 겸 홀 매니저로?”
“엇!? 얘기가 그렇게 되나요?”
“승진 축하해.”
“아저씨도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홀 담당 매니저와 부주방장이 서로를 축하하며 잔을 부딪쳤다.
***
며칠 후.
“오늘부터 주방에서 함께 일할 이강훈 씨. 그리고 여긴 홀을 담당할···.”
“권은정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은정이 밝고 씩씩하게 인사했다.
그녀를 뽑을 때 민주도 함께 면접에 참관했다.
홀 직원을 누구를 뽑느냐에 따라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며 외모와 인성을 꼼꼼하게 심사해 선발했다.
나이는 민주와 동갑인 스무 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전 이강훈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소은 언니 동생이라는?”
이강훈은 썬플라워 단골인 변호사 사무실 직원 소은의 동생이다.
한 달 전 육군 병장 만기 전역을 하고 직장을 찾다가 누나의 권유로 지원했다가 함께 일하게 됐다.
“이 친구 취사병 출신이래.”
“오~ 취사병.”
“네. 시켜만 주시면 뭐든 열심히 하겠습니다.”
마치 갓 전입한 신병처럼 군기가 바짝 들었다.
“편하게 해.”
“넵!”
“다들 친하게 지내고.”
“당연하죠.”
민주, 은정, 강훈 그리고 동식은 서로 인사를 나눴다.
“자, 이제 그럼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