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45
44화. 완벽한 커피(1)
***
“해준은 아까부터 뭘 저렇게 열심인 거야?”
하스가 클로에에게 다가와 물었다.
“글쎄요. 어제부터 계속 저렇게 삽질만 하고 있던데요.”
“뭐 한다고?”
“몰라요. 배수로라도 파는 건가? 포테. 너도 몰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뭉치야 너는 아냐? 해준 님이 왜 저러는지?]“야아옹~.”
농장 식구들이 모두 모여 열심히 삽질 중인 해준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해준은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묵묵히 삽질만 해댔다. 한군데만 파는 게 아니라 발목 정도 깊이로 길게 배수로 파듯 팠다.
“홍수를 대비하는 건가?”
[제가 있는 한 이 농장에 자연재해는 일어나지 않아요. 늘 농작물들이 자라기 좋은 최적의 환경을 유지하죠.]사실 그게 포테가 이유 없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이유였다.
노는 것 같지만, 사실 이 특수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었다.
“흠··· 그럼 왜 저러지?”
.
.
.
팍- 팍- 팍- 팍-
삽질을 하던 해준이 잠시 고개를 들어 차원의 통로 입구를 바라보았다.
‘거의 다 팠어. 이제 한 10미터쯤?’
탄산 샘물은 차원의 통로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땅에서 마구 솟아 나오는 샘물. 게다가 탄산을 함유하고 있어 그런지 분수처럼 치고 올라오는 압력이 상당했다.
샘물을 본 해준은 묘안을 생각해냈다.
바로 호스로 샘물과 차원의 통로를 연결해 썬플라워에 탄산수를 공급하는 계획이다.
현재 하루에 쓰는 탄산수의 양이 200mL 캔으로 100개가 넘는다. 즉, 20ℓ 생수통 하나 크기보다 많은 양을 쓴다는 얘기.
매번 실어 나르기도 곤욕이고, 또 허술하게 보관하면 탄산이 빠져나갈지도 몰랐다.
그길로 마을 잡화점에 간 해준은 가장 긴 호스를 구해달라 의뢰했다.
되든 안 되든 일단 연결해보기로 했다.
기초 공사를 끝낸 해준은 부지런히 호스를 땅에 묻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수확한 농작물은 마법의 운반 도구인 수레에 실어서만 운반할 수 있다는 법칙이 있지만, 탄산수는 엄밀히 따지면 농장에서 생산한 수확물이 아니다. 그러니 될 수도 있다.
1%의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이틀 동안 공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어?! 된다. 돼!”
다행스럽게도 샘물은 수레에 따로 운반해나가지 않아도 통과할 수 있었다.
해준은 호스를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주방으로 연결했다.
굵은 자갈, 모래, 숯가루를 사용해 원시 형태의 정수 과정까지 거쳐 그야말로 친환경 천연 탄산수를 끌어올 수 있게 되었다.
이번 공사에 너뷰브가 많은 참고가 됐다.
역시 요즘은 너튜브가 대세다. 주작 사건 이후로도 조회 수에 목마른 너튜버들이 여럿 다녀갔고, 그냥 검색만 해봐도 썬플라워와 차해준에 대한 꽤 많은 정보가 검색됐다.
본론으로 돌아와 해준은 탄산수 제조기 매장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형태의 시스템을 만들어냈고,
쏴아아-
“시원하게 나온다. 작동은 잘 되네.”
시험 삼아 담아본 투명 유리컵의 내부에 기포가 맺히는 게 보였다.
일단 한 모금.
“크아아~!”
적당한 온도로 냉각한 탄산수는 입안에서 톡 쏘는 맛이 일품이었다.
약간은 시큼하면서도 마시는 순간 가슴이 뻥 뚫리는 맛. 매장에서 마셨던 인공적인 탄산수보다 훨씬 깊은 감칠맛이 있었다.
공사를 마친 해준은 기억을 더듬어 민주의 레시피대로 레모네이드를 한잔 탔다.
“맛있어.”
레몬의 상큼함과 톡톡 터지는 탄산의 맛.
그냥 탄산수만 마셨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맛이었다.
“이번에도 대박 나겠네.”
***
천연 탄산수로 만든 에이드는 썬플라워의 인기 음료 메뉴로 자리매김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주문 가능한 음료가 에이드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에이드를 팔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음료에 대한 요구가 손님들 사이에서 한층 더 강하게 흘러나왔다.
그래서 민주의 제안대로 매장에 에스프레소 머신을 한 대 구입했다.
주방과 홀 사이의 작은 바 형태의 공간에 커피 추출기와 탄산수 제조에 필요한 재료들, 얼음과 잔을 진열해 놓으니 제법 그럴듯하게 구색이 맞춰졌다.
“정말 이것만 있으면 되는 거야?”
“네. 에스프레소 1 샷에 물을 넣은 게 아메리카노고, 우유 거품을 얹으면 카푸치노. 그리고 스팀밀크를 넣으면 라떼예요. 이 기계 하나면 여러 종류의 커피를 만들 수 있어요.”
민주가 직접 인터넷을 뒤져 평이 좋은 블렌딩 원두를 구매했다.
우유는 필요할 때마다 근처 소매점에서 구입하기로 했는데, 썬플라워에서 판매하는 산양유는 특유의 향기 때문에 라떼를 만드는데 부적합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일단 한잔 타드릴게요.”
에스프레소 머신 앞에 선 민주가 능숙하게 기계를 조작했다.
원두를 분쇄해 도장처럼 생긴 탬퍼로 꾹꾹 눌러 추출기에 끼워 넣었다. 추출 버튼을 누르자 쉬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커피가 추출됐다.
금세 누룽지 끓이는 듯한 구수한 향기가 피어올랐다.
민주가 내린 커피의 향은 훌륭했다.
“오~ 향기 죽인다.”
“따아? 아아?”
“난 아아.”
“나도.”
민주가 묻자 은정과 강훈이 순서대로 대답했다.
그러자 줄임말에 취약한 썬플라워 최연장자 동식이 물었다.
“따아? 아아? 그게 뭐야?”
“따뜻한 아메리카노랑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아저씨는 어떤 거로 드실 거예요?”
“난 그냥 믹스가 좋은데. 막심 없나?”
“헐.”
“큭.”
“왜? 커피는 막심이지.”
“그렇죠, 사장님?”
개인적으로 해준의 취향도 믹스 커피다.
달달한 게 스트레스받을 때 먹으면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쩐지 다들 노땅 취급이다. 민주와 은정이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짬 냄새 풀풀 나는 강훈이 녀석까지 그러는 건 좀···.
“그럼 두분은 라떼로 내려드릴게요. 시럽 듬뿍 넣어서.”
“땡큐~.”
“고마워.”
금세 다섯 잔의 커피가 만들어졌다.
알바몬 민주의 커피 내리는 솜씨는 전문가 못지않았다. 특히 라떼 위에는 하트 모양의 라떼아트까지 그려 넣은 걸 보니, 예사로운 솜씨가 아니었다.
라떼아트를 본 권은정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오~ 역시 미대 다니는 여자야. 이건 어떻게 그렸어?”
“쉬워. 천천히 우유만 부어주면 돼. 내가 시간이 없어서 바리스타 자격증은 안 땄는데, 맛은 보장하니까 드셔보세요.”
맛이 꽤 괜찮았다.
어떤 곳은 커피인지 커피가 발을 담갔다가 뺀 맛인지 모를 커피들이 많았는데, 민주가 추출한 커피는 진하면서도 커피 특유의 향기가 인상적이었다.
해준은 강훈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메리카노도 한 모금 마셨다.
“맛있다.”
“그래요? 은정아, 넌?”
“딱이야. 맛도 풍부하고, 괜찮아.”
“일부러 좀 진하게 내렸거든. 강훈 오빠는요?”
“음··· 나는 시럽을 좀 너, 넣을까?”
“자식. 도시 남자처럼 아메리카노 시키더니. 너도 결국은 믹스파 아니냐?”
“하하. 커피는 역시 자판기 커피가 짱이죠. 그냥 있어 보이고 싶어서 주문한 건데, 전 역시 멀었나 봐요.”
결국, 강훈도 시럽 두 펌프를 넣고야 흡족해야 하며 커피를 마셨다.
그의 행동에 직원들 모두 웃음이 터졌다. 해준 역시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라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맛있어.’
지금도 이렇게 맛있는데, 만약 차원의 농장에서 커피콩을 생산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몇 배는 더 풍미가 뛰어난 커피를 내릴 수 있지 않을까.
***
안토니오는 예열을 위해 아주 작은 데미타세(Demitasse) 잔에 90℃의 뜨거운 물에 부었다. 잔의 온도와 내려지는 커피 온도가 다르면 커피의 풍미가 떨어지기 때문에 동일한 온도의 물로 예열을 하는 것이다.
동시에 이 대륙에서 재배한 커피를 나름의 조합으로 블렌딩(서로 다른 원두를 배합해 맛을 내는 과정)해 로스팅(원두를 볶는 과정)한 커피를 융에 넣고, 핸드드립을 했다.
천천히 뜸을 들이고, 물을 방울방울 떨어트리며 심혈을 기울여 커피를 내렸다.
똑- 똑- 똑-
마치 눈물처럼 한 방울씩 떨어지는 검은 액체. 원하는 양만큼 추출한 안토니오는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커피를 입에 가져갔다.
일단 프레그런스(분쇄한 커피의 향)은 나쁘지 않았다. 상큼한 과일, 꽃의 향기가 은은하게 피어올랐으니까.
문제는 마실 때 올라오는 향기와 입안으로 퍼지면서 느껴지는 풍미.
혀끝을 통해 신맛, 단맛, 쓴맛 그리고 구수한 맛이 복합적으로 전해졌다.
“음···.”
뭔가 미묘하게 약하면서 밸런스가 무너진 맛이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밀도. 즉, 바디감은 묵직했으나, 이번에도 역시.
“으!··· 또 망했어.”
이곳에서 수개월을 보내며 직접 심고 수확한 커피콩이지만, 안토니오의 마음에 전혀 들지 않았다.
이곳 역시 커피를 재배하기 적합한 환경이 아니었다.
커피나무는 제대로 키우기 까다로운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일 년 내내 섭씨 20℃ 안팎의 온도를 유지해야 하며, 일조량과 강수량이 적당해야 한다. 땅은 배수가 잘되는 비옥한 토양이어야 하며, 일교차가 큰 고지대에서 생산해야 향과 맛이 풍부한 커피가 된다. 그러면서도 강한 햇빛과 열에 약하고, 5도 이하로 내려가서도 안 된다.
‘도대체 그런 곳을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그곳이 어디에 있든 여기는 아니었다.
안토니오는 아무런 고민 없이 짐을 챙겼다. 커피나무에서 수확한 열매를 유리병에 조심스럽게 담아 깨지지 않도록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음 행선지로 가면 새롭게 나무를 키워야 했으니까.
짐을 챙겨 나온 안토니오는 곧장 항구로 향했다.
마침 다음 도시로 향하는 교역상의 배가 정박해있었다.
안토니오는 한참 하역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에게 다가가 목적지를 물었다.
“이 배 어디로 갑니까?”
“서쪽 대륙이요.”
“서쪽 대륙?”
“그렇소. 서쪽 대륙의 토튼 마을에 잠시 정박했다가 대륙을 따라 아래로 계속 내려갈 예정이오.”
“저도 함께 가도 되겠습니까?”
“뱃삯만 두둑이 내면이야 안될 것도 없지.”
가격 흥정을 마친 안토니오는 교역 상단의 배에 올라탔다.
다음 마을에서는 완벽한 커피 재배에 성공할 땅을 찾길 바라며.
***
해준은 요즘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푹 빠져버렸다.
처음엔 쓰기만 해서 별로였지만, 마시다 보니 그 안에 숨겨진 여러 가지 맛들이 느껴졌다.
커피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탄 맛이나, 목 넘김 단계에서 혀에 남는 산미와 구수한 감칠맛까지.
커피의 맛에 반해버린 해준은 최근에는 민주를 졸라 커피 추출하는 방법까지 익혔다.
-아셨죠? 커피 원두를 분쇄해서 포타필터에 수북하게 담고, 템포로 두 번 꾹꾹. 평평하게 편 상태에서 더블샷 추출 버튼 누르면 돼요.
머신으로 추출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이렇게 내린 에스프레소에 얼음과 물을 넣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든다.
따로 공부해보니 그 밖에 손으로 직접 내리는 방식이나 찬물을 사용해 한 방울씩 추출하는 방식 등 다양한 방법이 있었다.
‘어려운 방식은 일단 패스.’
커피를 추출한 해준은 작은 보온병에 담아 주머니에 넣었다.
차원의 농장에 넘어가서 마시기 위해서다.
“뭉치야, 가자.”
“야아옹~.”
해준과 뭉치는 통로를 지나 차원의 농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탄산수 샘물에 들러 정수 장치를 확인하고, 동굴에 들러 숙성 중인 음식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농장과 썬플라워의 규모가 점점 커지다 보니 관리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사용하는 식자재의 양에 따라 농장에서 재배하는 품목의 관리도 신경 써야 했고, 신선도와 저장 기간에 구애를 받는 식품들은 계획적으로 키워야 했다.
‘저번에 만든 토마토 홀을 어떻게 처분하지?’
해준은 동굴의 반을 가득 채운 병조림을 보며 고민에 잠겼다.
클로에가 만든 종류별로 만든 치즈도 계속 쌓였고, 이대로 내버려 뒀다간 동굴이 토마토 홀과 치즈로 가득 찰지 몰랐다.
빠른 시일 내에 토마토 홀과 치즈를 유용하게 쓸 조리법을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