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46
45화. 완벽한 커피(2)
***
토요일이 공휴일인 관계로 이번 주는 특별 휴가를 줬다.
이럴 때라도 휴식을 부여하지 않으면, 직원들의 피로도가 상당할 것이다. 썬플라워의 업무 강도는 보통 식당의 서너 배에 달하니까.
농장 베이커리에 틀어박힌 해준은 본격적인 요리 연구를 시작했다.
차원의 농장은 현실과의 시간의 흐름이 4배 정도 차이가 난다. 이곳에서 이틀 내내 연구에 매달려도 현실의 시간으로는 고작 12시간 정도. 농장이 일종의 정신과 시간의 방인 셈이다. 어쨌든 이것으로 현실의 시간으로 이틀. 농장의 시간으로 무려 8일에 해당하는 시간을 레시피 연구에 매달릴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주말은 완전 특훈이다.’
요 몇 달 식당을 운영하며 깨달은 바가 있다.
아무리 좋은 재료가 있어도 재료를 제대로 다룰 줄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
동식이 처음 튀겼던 돈가스의 튀김 옷과 고기가 분리되는 현상이나, 오므라이스 위에 올릴 오믈렛이 갈변하고, 완숙으로 익어버린 건 서툰 숙련도 때문이다.
최고의 재료에서 최상의 맛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해준은 그동안 틈나는 대로 농장 베이커리에 틀어박혀 요리 연구에 매달렸다. 그 결과 지금과 같은 수준의 요리 실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고.
부단한 노력 끝에 해준은 아버지 차철수의 레시피 노트에 있는 레시피들을 거의 숙지한 상태다.
레시피 북에 등록된 레시피들은 정통 방식의 조리법이 대부분. 최신 방식의 조리법을 익히기 위해 해준은 너트브의 유명 셰프들 요리를 따라 만들며 독자적인 레시피 연구에 매달렸다.
다행히도 차원의 농장 안에서라면 며칠 밤을 새워도 끄떡없었기에 잠을 자지 않아도 됐다.
연구에 앞서 해준은 현재 농장에서 생산하는 재료 중 남아도는 것들의 목록을 만들었다.
1. 삼겹살.
2. 토마토 홀 소스.
3. 여러 종류의 치즈.
이 가운데 삼겹살은 베이컨을 만들어 저장하기로 했다.
베이컨을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삼겹살에 소금, 설탕과 잡내 제거용 향신료를 듬뿍 발라주고, 일주일간 숙성해주면 된다. 숙성이 끝난 고기를 적당한 온도에서 훈연해주면 끝. 현실 세계라면 이미 일주일 정도의 숙성 과정에서 대부분 사람이 만들기를 포기할 테지만, 해준에게는 숙성용 얼음 동굴이 있으니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기본 염지를 끝낸 베이컨을 얼음 동굴에 숙성시켜둔 해준은 다음 연구를 이어나갔다.
“기본 파스타를 만들어볼까?”
토마토 홀과 치즈를 유용하게 쓸 조리법을 찾아 헤매던 해준은 이탈리아 가정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가벼운 서양식을 표방하는 썬플라워에 어울리는 메뉴기도 했고, 우리나라 사람에게 친숙하며, 만들기 어렵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반투명한 정보창으로 된 레시피 북을 열었다.
그동안 너튜브를 참고하며 정리한 레시피들이 주르륵 나열되었다.
“일단 면부터.”
파스타의 면 종류는 300가지도 넘는다고 한다.
모양에 따라 롱, 숏, 스터프드로 분류되는데,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 롱, 숏 파스타 면이다.
롱 파스타는 굵기에 따라 탈리아텔레, 스파게티 등으로 나뉜다. 과거 파스타라는 이름 대신 스파게티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이유도 우리나라에서 많이 사용된 면이 스파게티였기 때문이다. 또, 숏 파스타 면 종류로 펜네, 푸실리, 나비넥타이처럼 생긴 파르팔레, 마요네즈와 버무려 샐러드로 만들면 맛이 기가 막힌 마카로니 등이 있다.
그중에서 오늘 연습할 건 파스타 면의 기초적인 생면이다.
손을 깨끗이 씻은 해준은 곱게 빻은 밀가루와 달걀을 가져왔다.
다른 재료는 일절 들어가지 않고, 오로지 밀가루에 달걀노른자만을 넣어 섞어준다. 뻑뻑하지만, 손으로 꾹꾹 눌러가며 반죽해주면 덩어리지게 된다.
팔뚝에 파란 핏줄이 올라서고, 손이 아려올 때쯤이면 반들반들한 덩어리 반죽이 완성된다.
그 상태로 얼음 동굴에서 30분간 휴지, 이 과정을 거치면 비로소 야들야들 부드러운 반죽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밀대로 수십 번 얇게 밀어 칼국수처럼 자르면 약 5mm 두께의 탈리아텔레가, 라면처럼 얇게 자르면 스파게티가 완성된다.
“오, 이게 되네.”
영상으로만 공부했고, 실전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맛은 어떨지 모르지만, 영상 속 면을 그대로 재현해냈다.
흡족한 미소를 지은 해준은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팬에 올리브유를 두 바퀴 둘러주고, 얇게 썬 양파를 넣어 들들 볶았다. 소금을 한 꼬집 넣고, 불을 약하게 줄였다.
보통 여기서 마늘을 넣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건 대한민국 한정이다. 기본적인 파스타는 토마토와 양파, 소금 세 가지로 만들어도 충분하다. 마늘이 꼭 필수 재료는 아니라는 뜻.
‘그래도 마늘이 있으면 좋을 텐데.’
멀비어 상단의 선장님께 약속을 받았지만, 그들이 언제 다시 이곳에 올지는 알 수 없었다.
조만간이라고 했지만, 바다의 사정을 해준이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편마늘을 넣지 않고, 곧장 토마토 홀을 팬에 듬뿍 넣었다.
자글자글-
거품이 퐁퐁 터지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때쯤 불을 끄고, 고운 채에 한 번 걸러준다.
이제 소스는 완성. 조금 전 만들어 둔 스파게티 면을 삶아 함께 볶아주면 끝.
‘정말 쉽네.’
만들 줄만 안다면 라면보다 쉬운 게 파스타라고 했다.
해준이 갓 만든 토마토소스 파스타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첫 뽀모도르(Pomodoro, 토마토를 사용한 파스타의 총칭). 여기에 매운 고추를 넣으면 아라비아타, 다진 고기를 첨가하면 볼로네제, 생크림을 섞으면 요즘 유행하는 로제 파스타가 된다.
그 밖에도 소스, 면의 종류,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수십, 수백 가지의 변화가 가능한 것이 파스타다.
해준은 만들어 놓은 토마토소스로 여러 가지 토마토 파스타를 연구했다.
일주일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만들면 만들수록 맛이 더욱 좋아졌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몇 가지 재료가 부족한 것뿐.
‘소고기나 해물을 구할 수 있으면 더 여러 가지 음식에 도전해볼 수 있을 텐데.’
재료가 한정적이다 보니 연습하고, 만들 수 있는 요리에 제한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아라비아타나 미트볼 파스타, 혹은 크림 파스타 같은 메뉴들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훌륭하지.”
해준은 막 완성한 파스타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빨간 토마토소스에 흰 눈꽃처럼 치즈 가루를 뿌렸더니 비주얼이 끝장이었다.
<요리의 수준이 급격하게 상승하였습니다.>
<’하급 요리사’에서 ‘중급 요리사’로 직업이 변경되었습니다.>
순간, 하급 요리사였던 직업이 중급으로 한 단계 올라갔다.
이제 해준의 직업은 중급 농사꾼 그리고 요리사였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생긴다는 것에 뿌듯함이 느껴졌다.
“킁킁?··· 이게 무슨 냄새지.”
“네리 아저씨.”
하몽 가게의 네리가 해준을 찾아 베이커리로 들어왔다.
“어쩐 일로 오셨어요?”
“그보다, 이게 무슨 냄새야?”
“토마토 파스타요.”
“고작 파스타가 이런 황홀한 향기를 풍긴다고?”
네리는 연신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황홀한 냄새를 맡았다.
토마토 특유의 향긋한 냄새와 함께 꼬릿하면서도 식욕을 당기는 구수한 향기가 식욕을 자극했다.
“오! 이건 베이컨이잖아. 직접 만든 거냐?”
조리대에 놔둔 베이컨 덩어리를 보며 물었다.
그의 추측대로 해준이 만든 건 단순한 토마토 파스타가 아니었다.
동굴에서 숙성시킨 베이컨과 치즈를 넣어 만든 토마토 베이컨 파스타였다.
“나 이것 좀 먹어도 되냐?”
볼일이 있어 농장을 찾았지만, 후각을 유혹하는 감미로운 향기에 목적 따윈 까맣게 잊어버렸다.
“당연하죠. 대신 맛 평가는 냉정하게 해주세요.”
“걱정 마.”
빼앗듯 접시를 가져간 네리는 파스타를 돌돌 말아 입에 넣었다.
후르릅-
우걱우걱-
냉정한 평가를 해주겠다던 네리는 말없이 파스타를 흡입했다.
며칠은 굶은 사람처럼 게걸스럽게 접시를 비워낸 네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 주변을 닦았다.
“어땠어요?”
“어떠냐니? 이 빈 접시를 보고라고. 당연히 환상적이었지. 이렇게 맛있는 파스타는 난생처음이다. 너 농장 때려치우고, 식당을 해보는 게 어떠냐?”
식당은 이미 현실 세계에서도 하고 있다.
요리는 즐거운 일이지만, 현실에서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다.
“전 농장을 하는 게 더 좋습니다. 하하.”
정중하게 사양한 해준은 네리에게 이곳에 방문한 목적을 물었다.
“근데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
“아!···”
그제야 네리는 자신이 여길 온 목적이 떠올랐다.
“설마 벌써 소금이 떨어진 건 아니실 테고.”
“당연하지. 저번에 산 것도 많이 남았다. 내가 여기 찾아온 건 바로 이것 때문이야.”
뒷주머니에 꽂혀있던 작은 종이를 내밀었다.
“멀비어 상단에서 전서구가 도착했어. 며칠 전에 왔는데 하몽을 만드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지 뭐냐.”
멀비어 상단의 기트 씨로부터 온 전갈이다.
내일 도착할 테니 예의 점심 메뉴를 한 번 더 부탁한다는 내용이었으며, 말미에 멀어비 선장과 교역상단의 일꾼들이 돈가스 때문에 잔뜩 기대한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편지를 읽은 해준은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재료가 부족한데.’
농장에서 생산하는 흑돼지의 등심 부위는 모두 현실로 가져가 돈가스와 치즈 가스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 최근에는 썬플라워에서의 소비량이 늘어 흑돼지 등심의 공급이 아슬아슬한 상황. 동굴에도 딱 50인분 정도의 비축분만 있어 상단 전체가 먹기엔 다소 부족했다.
해준은 머리를 굴렸다.
‘워낙 많이 먹으니 50인분을 준비하면 양이 턱없이 부족할 텐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 흠··· 등심 대신 다른 부위로 튀기면? 예를 들면 삼겹살이라든지···.’
생각을 하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떻게 튀겨도 느끼할 것이다.
괜히 돈가스를 튀기는데 등심 부위를 사용하는 게 아니다.
삼겹살의 지방은 잘 사용하면 구수한 풍미와 맛을 뽑아낼 수 있지만,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 비릿한 비계의 맛만 느끼게 될 뿐이다.
선장과 일꾼들의 입맛을 사로잡을만한 추가 메뉴를 더 준비해야 했다.
‘그렇다면 역시 파스타가 답이겠지?’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멀비어 상단 일꾼을 대상으로 정식 메뉴 등록 전 테스트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면 내일 메뉴는 파스타와 돈가스 정식이다.
***
멀비어 상단의 배.
누군가 갑판의 선수 난간에 기댄 채 속을 게워내고 있다.
“우웩, 우웁! 으으윽···.”
안쓰럽게 구토를 하는 건 다름 아닌 안토니오였다.
커피를 재배하기 최적의 땅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배에 올랐지만, 자신이 뱃멀미가 있다는 사실은 미처 몰랐다.
“저 양반 집어 제대로 해주네. 낚싯대나 걸어볼까? 물고기 엄청 잡히겠어.”
갑판 정리를 하던 일꾼들이 안토니오를 보며 키득거렸다.
그래도 불쌍하긴 했는지 입을 헹굴 물은 가져다줬지만, 놀림은 멈추지 않았다.
“크큭, 놀리지 마. 저 양반은 얼마나 힘들겠어.”
“그러게. 배가 처음인가? 벌써 며칠째야.”
“바다를 우습게 본 거지. 그러게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따라나서.”
“저러다 쓰러지는 거 아냐?”
“물은 마시니까 괜찮겠지. 그리고 내일이면 도착하니까.”
“흠··· 그렇군. 내일이면 그 녀석의 돈가스를 먹을 수 있겠어.”
일꾼들이 눈빛이 멍해졌다.
“으흐흐, 그러니까. 벌써부터 기대돼.”
“난 두 접시 먹을 거야.”
“난 세 접시. 내가 교역상 짬밥만 5년째지만, 그 녀석처럼 맛있는 음식은 내는 녀석은 처음이라니까.”
“그 녀석 식당은 어디야? 따로 찾아가 봐야겠어.”
“요리사가 아니라 농부라던데?”
“농부? 거짓말 하지 마. 무슨 농부가 그렇게 요리를 잘해?”
“나야 모르지. 하지만, 농부라는 말은 사실이야.”
“하긴, 그러니 선장이 그 멀리서 어렵게 그런 허브들을 구해왔겠지.”
“그런가? 그때 만든 돈가스도 다 그 녀석이 직접 키워 만든 음식이라더군.”
안토니오는 열심히(?) 구토를 하는 와중에도 귀를 쫑긋 세워 일꾼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그들은 뭐든 맛있게 키워 내는 농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쩐지 안토니오는 그 농부에 대해 흥미가 생겼다.
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우우웩~!”
속을 비워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