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47
46화. 완벽한 커피(3)
***
쏴아아아-
촤르르르-
“비가 내리나?”
마을 남쪽의 바닷가에 사는 줄리아는 빗줄기 소리에 놀라 밖으로 나왔다.
햇살이 좋아 널어놓은 이불 빨래가 젖을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어? 아니잖아.”
비는커녕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쏴아아아- 하는 빗소리가 바람에 실려 왔다. 고소한 향기와 함께.
“어디서 나는 거람?”
바람에 실려 오는 고소한 향기에 줄리아는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는 고소한 냄새의 근원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항구에 정박한 멀비어 상단의 배, 그 근처 어딘가에서 시작된 향기였다.
.
.
.
저번처럼 양으로 승부하긴 힘들었기에 해준은 직접 항구에 나와 돈가스를 조리하기로 했다.
일종의 출장 요리나 푸드 트럭의 개념이다. 아무래도 튀김 요리는 튀긴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특유의 바삭한 식감과 고소한 풍기가 반감되기 마련이기에.
상단이 도착하기도 전 새벽같이 나와 흙벽돌로 화구를 만들어 그 위에 무쇠 가마솥을 얹었다.
농장에서 생산한 신선한 포도씨유를 들이붓고, 불을 지폈다. 기름 온도가 오르는 사이 능숙하게 돈가스와 따로 준비한 치즈 가스에 튀김옷을 묻히고, 바로 기름에 넣었다.
촤아아아-
지글지글-
180도의 기름은 기분 좋은 소나기 같은 ASMR을 들려줬다.
한쪽에서 튀김이 또 다른 화구에서는 파스타를 동시에 조리했다.
해야 할 요리가 많았다. 오늘 메뉴는 식전 빵과 감자 스프 그리고 메인 접시에 돈가스와 치즈 가스를 담아내고, 두 번째 메인으로 베이컨 파스타를 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후식은 포도와 레모네이드였다.
‘풀코스로 대접해주겠어. 후훗···.’
돈가스의 하얀 표면이 노르스름하게 익어갈 때쯤, 배가 항구에 정박했다.
선장과 기트를 포함한 50여 명의 일꾼이 고소한 향기에 이끌려 좀비 떼처럼 몰려들었다.
“여~ 이거 뭐야? 오늘은 여기서 직접 만드는 거야?”
“더 맛있게 만들어드리려고요.”
대답하며 튀김기에서 돈가스를 건져 올려, 쇠망 위에 올려놨다.
군침을 줄줄 흘리던 우락부락한 사내 하나가 손을 뻗었으나,
“안 돼요.”
해준이 사내의 손을 탁 내리쳤다.
사내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손등을 어루만지며 해준에게 애원했다.
“하나만. 너무 배고파서 그래.”
“조금만 참으세요. 갓 튀긴 돈가스를 바로 먹으면 느끼해요.”
“느끼하다고?”
바로 건진 튀김은 기름을 잔뜩 머금고 있어 그대로 먹으면 느끼하다. 적어도 1~2분은 기름을 빼줘야 튀김옷도 더 바삭해지고, 느끼함도 사라지게 된다.
“일단 스프 먼저 드시고 계세요. 클로에.”
“응! 자, 아저씨들 제 앞으로 줄 서서 스프 받아 가세요.”
1일 보조를 자청한 클로에가 감자 스프와 빵을 담은 쟁반을 들어 올리자, 그 앞으로 험상궂은 인상의 아저씨들이 급식실 앞 고등학생처럼 일렬로 늘어섰다.
“으하하. 내가 일등이다.”
“인마, 저리 비켜. 새치기하지 말라고.”
“무슨 소리야. 내가 먼저 왔거든?”
“어쭈. 이 자식이!”
“하나씩 돌아가니까 싸우지들 마세요. 부족하면 또 오시고요.”
스프를 나눠주자 시끄러웠던 항구가 이내 조용해졌다.
입은 음식을 먹기 위해 존재하는 도구처럼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해준은 돈가스와 치즈 가스를 접시에 담고 소스를 얹었다.
“아저씨. 이거 좀 나눠주세요.”
“알았어.”
“오빠, 저도 도와드릴게요.”
“고마워. 미아.”
“헤헤. 그 대신 오늘도 사탕 만들어줘요.”
“응.”
서빙은 하스와 딸 미아가 도와줬다.
“흐윽, 이 맛이야. 몇 달 동안 기다려왔던 차해준의 돈가스!”
갓 튀긴 돈가스의 아삭한 식감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입에 머금은 순간 고소한 튀김유가 입안 가득 퍼지며 혈관을 타고 온몸에 스며들었다.
배에서 먹은 음식들이라 봐야 맛없는 육포나 염장 고기가 전부였다. 이토록 신선한 돼지고기를 갓 짠 기름에 튀겨 먹는 건 사치 중의 사치랄까.
몇 달 만에 땅을 밟은 보람이 느껴지는 맛이다.
우걱우걱-
“바로 튀겨서 먹으니까 더 맛있다.”
“환상적이야. 도대체 음식에 무슨 짓을 한 거야?”
“그 옆에 돈가스 먹어봐. 고기 안에 쫀득한 게 들어있어.”
“쫀득한 거?”
두 번째 돈가스 조각을 집어 한입 크게 베어 물자 안에서 쭈우욱~ 하고 뭔가 흘러나왔다.
그것의 정체는 치즈였다.
“오~ 말랑말랑하고 쫀득한데?”
“맛있다. 맛있어!”
“파스타도 끝내줘. 향긋한 토마토 맛이 일품이라니까.”
토마토 파스타는 오랜 항해로 신선한 채소를 먹지 못했던 일꾼들에게 최고의 음식이었다.
상단의 모두가 칭찬 세례를 늘어놓으며 음식을 먹어 치웠다.
미식가 선장인 멀비어 조차도.
“선장님. 음료도 좀 드세요.”
해준이 멀비어에게 붉은 와인색 음료를 가져다줬다.
“이게 뭔가?”
“포도에 탄산수를 섞은 음료입니다. 입가심으로 좋아요.”
“어디···.”
꿀꺽꿀꺽-
“!!!??···”
포도 에이드를 마신 멀비어의 눈이 동그래졌다.
“입안에서 톡톡 쏘는군.”
“탄산이에요.”
“탄산?”
탄산이라면 멀비어도 마셔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가 먹었던 탄산은 톡 쏘는 맛은 있어도 이것처럼 달콤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포도와 설탕을 섞어 단맛을 낸 것 같다.
“함께 먹으니 이런 맛을 내는군.”
“괜찮죠?”
멀비어는 남은 에이드의 잔을 비우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거 받아라. 해준.”
빈 잔과 함께 자루 하나를 내밀었다.
아마도 저번에 구해다 주기로 약속한 마늘일 것이다.
“마늘 말고도 이것저것 필요할 것 같은 동쪽 대륙의 향신료들을 챙겨왔지.”
과연 자루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향신료가 들어있었다.
해준은 하나씩 씨앗을 확인했다. 포테가 부여해준 능력 덕분에 어떤 씨앗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로즈마리의 씨앗] [오레가노의 씨앗] [타임의 씨앗]파스타와 잘 어울리는 상쾌한 향의 바질과 다르게 로즈마리와 타임은 육류에 잘 어울리는 허브다. 신선한 허브 한줄기를 올려두면 그 자체로 풍미가 한층 더 강해지는 향신료.
“감사합니다. 선장님.”
“고맙긴. 아!··· 그리고 이것도. 향이 특별한 향신료란다.”
별도로 작은 유리병 2개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납작하고 노란 씨앗들이 가득 담겨있었다.
‘향이 특별하다고?’
호기심이 동한 해준은 이름도 확인하지 않고, 씨앗을 꺼내 향을 맡았다.
“으악~!”
“크크큭. 맵지?”
머리가 띵할 정도로 매콤하고 강렬한 향이 후각을 마비시켰다. 청양고추보다 맵다는 페페론치노와 할라피뇨였다.
“선장님!”
멀비어의 장난에 당한 해준이 소리를 질렀다.
선장과 상단의 일꾼들이 그런 해준을 보며 껄껄 웃었다.
“껄껄 미안하네. 대신 사과의 의미로 이것도 주지.”
한참을 웃던 멀비어가 다른 자루도 해준에게 건넸다.
그 안에는 하스 아저씨도 구하지 못한 커민, 정향, 계피, 고수 같은 향신료도 듬뿍 담겨있었다. 그가 말하길 이런 향신료는 구하기도 어려워 부르는 게 값이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부러 해준을 위해 멀비어 선장이 비싼 값을 치르고 구한 귀한 향신료라고 했다.
‘귀한 거라니 일단 잘 보관해놔야겠다. 당장엔 쓸모가 없지만, 조만간 쓸 일이 있겠지.’
멀비어 선장의 선물을 소중히 챙긴 해준은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나중에 또 말하거라. 해준, 네 부탁이라면 대륙 끝까지 가서라도 구해다 주지.”
“네.”
***
‘저 사람인가? 뭐든 맛있게 키워 낸다는 농부가?···’
엉겁결에 배식 줄 가장 끝에 선 안토니오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요리에 열중하고 있는 청년을 유심히 관찰했다.
겉보기엔 농사의 ㄴ자도 모르게 생긴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의 요리 실력은 진짜였다.
‘맛있다. 속이 따뜻해져.’
입맛을 돋우기 위해 먹은 감자 스프가 위를 따뜻하게 어루만지듯 감싸줬다.
신선한 채소로 버무린 샐러드와 씹을 때마다 육즙이 터져 나오는 돈가스와 치즈 가스. 그리고 토마토의 맛과 향이 깊은 파스타까지. 한 달 내내 배를 타며 먹은 것도 없이 토악질만 해댄 안토니오의 만신창이가 된 위장이 오랜만에 호강했다.
‘농사 실력은 모르겠지만, 음식 솜씨는 일품이군.’
음식을 먹으며 사람들 대화를 엿들어보니, 해준은 마을 북쪽에서 농장은 일군다고 했다. 오늘 음식도 모두 거기서 손수 키운 작물로 만든 것이고.
어쨌든 음식을 먹어보니 차해준이라는 남자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돈가스의 맛이 훌륭한 건 수준급의 요리 실력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안에 담긴 재료들의 맛과 향이 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자면, 그가 가져온 파스타에는 정성 들여 키운 최상급 바질에 최적의 환경에서 자란 토마토를 넣어 만들었기에 나올 수 있는 맛이었다.
그리고 토마토 역시 커피만큼이나 기르기 까다로운 작물. 추위에 노출되면 열매가 적게 맺히고, 성숙이 덜되며 고온에 노출되면 이토록 영롱한 붉은빛을 내지 못하고, 물러져서 맛이 없게 된다.
‘까다로운 작물을 이렇게 훌륭하게 키운 걸 보면 농사에도 일가견이 있겠어.’
드디어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다.
키우기 어려운 작물들을 완벽하게 키워내는 저 남자의 솜씨라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커피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발, 이번에는 꼭 성공하길··· 빌고 또 빌었다.
“뭘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 있어?”
이번 항해에서 친해진 사내가 안토니오에게 말을 걸었다.
해준의 돈가스를 제일 먼저 먹겠다며 일등으로 줄은 선 남자다.
그는 요리하는 농부와도 제법 친분이 있어 보였다.
“자네. 저 요리사랑 친해?”
“해준? 그냥 안면이나 있는 사이지. 친한 건 우리 선장이 친하고. 그런 건 왜 물어?”
“그냥. 음식을 하도 맛있게 만들어서.”
“괜찮은 친구야. 착하고, 음식도 잘 만들지.”
“나 좀 소개해 주겠나?”
“소개? 어려울 것 없지. 그렇지 않아도 한 그릇 더 먹으러 갈 생각이었거든.”
남자가 안토니오를 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나 돈가스 좀 더 주겠나?”
멀비어 상단에서도 가장 먹성이 좋은 베닌이 세 번째 빈 접시를 들이밀었다.
안타깝게도 남은 돈가스는 없었다.
“돈가스는 다 떨어졌어요. 대신 파스타를 더 드릴까요?”
“으잉? 벌써? 누, 누가 다 먹은 거야?”
“글쎄요. 베닌 아저씨가 두 접시를 드신 건 기억이 나는데. 크큭···.”
“이런, 범인이 나였어?”
해준은 금세 파스타를 새로 볶아 뻘쭘하게 웃는 베닌의 접시에 푸짐하게 담아줬다.
그리고 뒤의 남자에게 더 먹을 거냐는 눈빛을 보냈다.
“맞다. 인사해. 이 사람은 우리 배를 타고 온 안토니오야.”
베닌이 안토니오와 해준을 인사시켰다.
“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해준은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토니오라는 남자는 어쩐지 기름 안 빠진 돈가스보다 더 느끼하게 생긴 얼굴에, 화룡점정으로 올리브유를 부은 듯 느끼한 수염까지 갖춘 그런 남자였다.
‘어렸을 때 본 코미디 프로그램의 느끼한 남자처럼 생겼어.’
이곳 사람들의 차림새나 생김이 중세 유럽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안토니오는 그중에서 더 느끼하게 생겼다.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을 때, 느끼한 안토니오가 절박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 좀 도와주십시오.”
“네? 무슨 일이죠?”
“뭐든지 잘 키워내는 농부라고 들었습니다.”
“예? 아, 뭐.”
‘그런 소문은 어디서 들었지?’
해준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혹시, 이것 좀 키워 주실 수 있나요?”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바닥 위에는 체리 모양의 열매가 있었다.
‘커피체리?··· 커피면 커피고, 체리면 체리지 커피체리는 뭐야?’
호기심에 고개를 갸웃거릴 때 안토니오가 열매의 정체에 대해 가르쳐줬다.
“이건 커피체리입니다. 이렇게 외피를 벗겨내면 생두가 나오죠.”
말을 하며 열매를 짓이기자 안에서 익숙한 콩 모양의 생두가 모습을 드러냈다.
“커피?”
“네. 그렇습니다. 커피예요.”
민주가 구매한 로스팅된 까만 커피콩만 보다가 볶지 않은 상태의 생두를 처음 접했다.
모양은 비슷했지만, 색이 완전 달랐다. 로스팅된 콩은 검은색에 가까운 갈색이지만, 생두는 연두색이었다.
“꼭 부탁드립니다. 커피를 키워주세요.”
어쩐지 거절하기 힘든 간절한 부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