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52
51화. 혼내줘야겠어(3)
***
어쩐지 새벽 일찍 눈이 떠졌다.
공기 좋은 곳에서 잠을 청해서 그런지 몸이 가볍고 피로감도 없었다.
통발로 달려가 보니 밤사이 무려 돌돔 2마리와 대하가 가득 담겨있었다. 질 수 없다는 듯 제법 사이즈 좋은 돌돔을 한 마리 더 사냥해오는 뭉치.
“너 대단하다.”
“냥! 냥!!”
이로써 부력망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D급 돌돔 3마리와 대하 C~D급 24마리로 가득 찼다.
첫날 한 모험 치고는 수확이 좋았다.
“자주 와야겠다. 다음에 올 땐 통발도 몇 개 더 준비하고.”
통발 포인트 몇 군데를 더 봐뒀다. 낚시하는 방법만 제대로 익혀도 통발과 낚시로 꽤 많은 해산물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닷가 탐험을 마치고 서둘러 썬플라워로 돌아왔다.
현실은 어느새 일요일 저녁.
“야아옹~.”
“뭉치 졸려? 피곤하면 가서 쉬어.”
“냥.”
차원의 농장 바닷가에서 신나게 뛰놀며 사냥한 뭉치가 피곤했는지, 창가로 가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이 들었다.
조금 출출해진 해준은 뭔가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막 바다에서 건져 올린 돌돔과 대하, 그렇다면 정답은 돌돔 회에 대하 소금구이 그리고 소주 한 잔일 터. 생각만으로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혼자 먹을 생각을 하니 조금 쓸쓸하네.”
공시 공부를 하며 고시원 생활을 할 때는 혼밥이 익숙했다. 아침, 저녁은 고시원에서 라면으로 대충 때우고, 점심은 학원 근처 한식뷔페에서 정기권을 끊어놓고 먹었다. 묵언 수행하는 스님처럼 한마디도 하지 않은 날이 허다할 정도.
그러나, 차원의 농장이 열리고, 썬플라워를 운영하는 지금, 해준의 생활은 180도 바뀌었다. 늘 주변에 사람이 북적이고, 식사도 함께 모여 왁자지껄 먹는 일이 많았다.
‘낯설다.’
어느새 이런 쓸쓸함이 낯설어졌다.
딱히 친척도 없고, 가족도 없는데 말이다.
“참··· 그 녀석들 밥은 제대로 먹고 있는 걸까?”
문득 옆집 사는 소혜 남매가 떠올랐다.
해준 역시 아버지가 갑자기 사라진 이후, 그리 사정이 녹록지 않아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머니는 일하느라 바빴고, 학교에서 급식이 나오긴 했지만, 성장기 청소년에게 급식은 늘 양이 부족했다.
소혜 남매도 그런 것 같았다.
무슨 사정이 있어 제대로 끼니를 못 챙기는 상황.
혹시라도 상처를 받을까 봐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여유가 있는 보통의 평범한 가정은 아닌 것 같았다.
“같이 먹자고 하자. 저번처럼 신메뉴 테스트라고 둘러대고, 먹자고 하지 뭐.”
고급 횟감과 새우가 있으니 대하 소금구이를 하고, 돌돔은 제대로 회를 쳐서 초장과 와사비 간장에 찍어 먹으면 좋을 것 같았···.
“음, 너무 어른 입맛의 메뉴 선정인가?”
해준이 머리를 긁적였다.
소주 한잔을 위한 메뉴 구성이니, 아이들 입맛엔 별로 일터.
소혜 남매에게는 회나 소금구이보다 튀김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그럼 생선가스를 튀겨볼까?”
횟감으로 먹기에도 비싼 자연산 돌돔을 튀김으로 먹을 생각을 하다니, 어쩐지 실소가 터져 나왔다.
동식 형님이 봤다면 ‘사장님! 미치셨어요?’라고 할 게 뻔했다.
“뭐··· 나도 어젯밤에 구이로 먹었잖아. 입맛에 맞게 먹는 거지 뭐. 돌돔도 애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편이 덜 억울할 거야.”
메뉴를 정한 해준은 아이들에게 슬쩍 찾아갔다.
그의 생각대로 소혜 남매는 밥을 먹지 않은 상태. 또 한 번의 신메뉴 테스트를 할 생각이니 한 시간 후에 와서 도와달라고 말한 후 가게로 돌아왔다.
***
돌돔 손질은 낚시 너튜버의 횟감 뜨는 법을 참고했다.
우선 대가리와 내장을 떼어내고, 영상과 최대한 비슷하게 배 쪽에 칼을 넣어 포를 떴다. 세 마리를 모두 뜨니 두툼하게 12조각의 포가 나왔다.
‘대가리랑 내장, 뼈는 잘 뒀다가 밤에 맑은탕을 끓여 먹자.’
아이들을 위해 튀김으로 메뉴를 바꿨지만, 일요일 저녁 느긋한 소주 한 잔의 여유는 포기하지 않았다.
돌돔 국물만 있어도 소주 두어 병은 뚝딱 해치울 수 있을 터.
생선 손질을 끝내고, 빠르게 대하 손질을 시작했다.
먼저 흐르는 물에 새우를 깨끗하게 씻어 다리를 제거했다.
이쑤시개를 새우 등 쪽 옆구리에 꽂아 위로 당기니 실처럼 내장이 쏙 빠져나왔다. 내장은 쓴맛을 내는 원인이니 빼주는 게 좋다.
새우튀김 레시피는 여러 가지가 있다.
얼음물과 튀김가루를 1:1 비율로 섞어 바삭하게 튀기는 일식 스타일과 돈가스처럼 물, 달걀, 빵가루 순서의 튀김옷을 입혀 튀겨내는 방법. 해준은 경양식에 어울리는 두 번째 방법으로 새우를 튀기기로 했다.
‘일단 손질부터 마무리하자.’
내장을 빼낸 새우의 몸통 껍질을 제거했다.
튀길 때 등이 굽지 않고 일자로 튀겨내기 위해 배에 칼집을 내주고, 수분이 많이 머금고 있는 꼬리 부분의 삼각형 모양 물주머니를 잘라내 손질을 끝냈다.
돌돔과 손질 대하에 밑간 후 튀김옷을 입히고, 온도를 올린 해바라기씨유에 퐁당.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튀김 ASMR.
촤르르르-
지글지글-
동구 손바닥 크기만 한 생선가스 12조각. 그리고, 손가락 마디만 한 시판용 냉동 새우와는 확연히 다른 크고 두툼한 사이즈의 거대 새우튀김이 완성되었다.
‘생선가스에는 역시 타르타르 소스겠지?’
기름받이에서 튀김 기름을 빼는 동안 소스를 만들었다.
타르타르 소스는 있는 재료로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 잘게 썬 양파, 피클, 올리브, 삶은 달걀에 마요네즈와 레몬즙, 소금, 후추를 넣어 잘 섞어주면 된다.
소스의 상큼한 향기에 침이 고였다.
‘이제 예쁘게 담기만 하면 된다.’
접시 위에 심혈을 기울여 음식을 세팅했다.
많이 먹는 동구는 돌돔과 대하 튀김 각각 4조각씩 놓고, 샐러드와 밥을 푸짐하게 담았고, 채소를 좋아하는 소혜는 튀김 2조각씩에 다양한 채소 샐러드와 빵을 예쁘게 플레이팅했다.
“오! 진짜로 그럴듯한데? 메뉴로 내도 괜찮겠어.”
그럴듯한 비주얼에 해준이 만족해하며 미소를 지었다.
모두가 외식하는 일요일 저녁,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을 아이들을 위해 급하게 만든 메뉴치고는 퀄리티가 상당했다.
조금 수정해서 정식 메뉴로 내도 좋을 만큼.
‘일단 돌돔과 대하 수급하는 게 문제지만···.’
골치 아픈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은 홀에서 음식을 기다릴 꼬마 손님들에게 서빙이 먼저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생선가스 접시를 가지고 나갔다.
“우와~! 엄청 맛있겠다.”
리액션 최고인 동구가 화끈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새우튀김이 내 팔뚝만 해요. 아저씨.”
“새우 머리는 날카로우니까 조심히 먹어.”
“네~!”
동구의 첫 번째 선택은 대하 튀김이었다.
아삭-
와사삭-
“우와~!”
한입에 커다란 대하 튀김의 절반을 먹어 치운 동구의 콧구멍이 벌름거렸다.
씹었는지도 모르게 입안에서 사라지는 새우. 야들야들한 식감과 씹어 넘길 때 혀뿌리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달큰한 풍미가 일품이었다.
“맛있어요.”
일곱 살 꼬마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꼬리만 남기고 모조리 씹어먹은 동구는 이내 돌돔 가스 조각을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포슬포슬한 식감 사이로 흰살생선 특유의 탱글탱글함이 느껴졌다.
튀김옷의 바삭함과 속살의 탱글한 조화는 그야말로 일품.
7살 인생 최초로 느껴보는 맛.
이번에도 동구의 평가는,
“맛있어요!”
쌍 따봉과 함께 맛있어요! 의 연발.
아이의 표정을 보면 해준의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해준은 흐뭇한 표정으로 동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오물오물 입을 움직이는 소혜를 바라보았다.
“소혜야, 넌?”
“저도요. 너무 맛있어요.”
생선의 감칠맛이 너무나 좋았다.
입안에서 살이 파앗- 부서지며, 씹을수록 생선 고유의 고소한 기름이 흘러나와 혀에 감겼다.
‘맛있어.’
동구는 기억 못 할지 모르지만, 소혜는 어렴풋한 기억이 떠올랐다.
낚시가 취미였던 아빠를 따라가면 가끔 먹었던 생선가스. 아빠는 회를 썰어 소주와 함께 드셨고, 어린 동구와 소혜는 생선가스를 튀겨주셨었다.
-소혜야, 맛있지?
-응, 너무 맛있어. 아빠.
-이거 돈 주고도 못 사 먹는 거야.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엄청 비싼 거. 하하하. 이걸 튀겨먹었다고 하면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할걸? 맛있지?
-또 줘. 너무 맛있어.
-조금만 기다려. 우리 딸. 아빠가 금방 잡아서 또 튀겨줄게.
그때는 정말 행복했었다.
언제부터인지 엄마, 아빠의 다툼이 부쩍 잦아졌고, 크게 다투신 다음 날부터 엄마는 집에 돌아오지 않으셨다.
네 식구가 함께 살던 아파트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왔고, 아빠는 일하신다며 지방으로 가셨다.
아빠는 1~2주에 한 번씩 집에 돌아왔고, 그렇게 동구와 소혜는 집에 남게 되었다.
***
“맛있게 먹었니?”
“네.”
“어때? 메뉴로 팔면 잘 팔릴까?”
소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기요.”
식사를 마친 동구가 뭉치를 쫓아 마당으로 나간 사이 소혜가 해준에게 쭈뼛쭈뼛 다가가 수줍게 카드를 내밀었다.
카드를 본 해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응? 이게 뭐야?”
“꿈나무 카드요.”
꿈나무 카드는 경제적으로 빈곤한 상태에 있는 가정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급식을 먹지 못할 때 밖에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카드다.
해준도 그 카드가 뭔지는 잘 알고 있지만, 소혜가 카드를 내민 이유는 알지 못했다.
“아저씨한테 이걸 왜 주는 거야?”
“테스트라고 거짓말하고, 밥 챙겨주신 거 알아요. 5천 원밖에 못 긁지만, 그거라도 받아주세요.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거짓말이 들통나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홉 살 꼬마라고 대충 둘러대면 믿을 줄 알았는데, 세상이 해준의 생각보다 조금 더 빨리 소혜를 어른으로 만든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던 해준이 카드를 받아들었다.
어설픈 동정은 오히려 소혜의 마음에 큰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알기에.
오히려 돈을 받는 게 소혜의 마음속 불편함을 없애는 일이라 생각했다.
“들켰어? 좋아. 받을게.”
해준은 카드 단말기에서 1만 원을 긁고, 영수증과 함께 카드를 돌려줬다.
이제 소혜 남매는 1인당 5천 원씩 정당하게 대가를 지불한 셈이다.
동네 불쌍한 아이들에게 동정을 베푼 것이 아닌 게 되었다.
그렇기에 해준은 소혜에게 제안을 할 수 있었다.
“대신 우리 밥 친구 할까?”
“밥 친구요?”
“사실 밥을 혼자 먹는 건 상당히 외로운 일이거든. 아저씬 혼자 있으면 밥을 잘 안 먹어. 그러니까 앞으로 일요일 저녁은 아저씨랑 같이 먹자. 오늘처럼.”
친구끼리니 돈은 내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일요일이 아닌 날에도 아이들이 자유롭게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평일에도 아저씨 돈가스 먹고 싶으면 언제든 와도 좋아. 그때는 밥값 받을게. 원래는 조금 더 비싸지만, 밥 친구 할인해서 특별히 싸게 해줄게. 어때?”
“조, 좋아요.”
“좋아. 그럼 그렇게 하는 거다.”
“네.”
소혜가 수줍게 웃었다.
아이의 맑은 미소를 보니 해준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
다음날.
해준은 민주에게 공지글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꿈나무 카드 소지 고객 80% 할인이요?”
민주는 생소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전에 왔던 어린이 남매 손님 기억해?”
“아, 어린이 메뉴 테스트했던 귀염둥이들이요?”
“응. 사실 말이야.”
해준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민주에게 설명해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민주의 눈동자가 촉촉해졌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럼 당장 쓸게요!”
“그래. 고마워.”
미대 감성을 듬뿍 실은 예쁜 글씨체로 해준이 부탁한 내용을 칠판에 적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점심 장사가 시작됐다.
언제나 그렇듯 손님으로 북적였다.
사람들은 가게 여기저기를 찍으며 돌아다녔고, 당연히 <꿈나무 카드 소지 고객 80% 할인!!> 문구도 함께 찍혔다.
“여기 사장님 좋은 일도 많이 하네. 찍어서 올려야지.”
가게 전경과 음식 사진을 찍은 손님은 해준이 써 놓은 문구도 함께 별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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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장사 잘되는 이유가 있는 건가?
-재료도 안 아끼고, 인심도 안 아끼네. 이러니 맛집이지.
-이런 가게 사장님은 혼 좀 나야 하는 거 아닙니까?
-혼내주러 갑시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