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53
52화. 밥차(1)
***
“어쩐지 요즘 꼬마 손님들이 많아진 거 같은데?”
“다 저거 때문이잖아.”
일행 중 한 명이 턱짓으로 계산대를 가리켰다. 그 아래로 <꿈나무 카드 소지 고객 80% 할인!!>이라고 쓴 문구가 보였다.
“꿈나무 카드가 뭐야?”
“저소득층 아이들 급식 못 먹을 때 먹으라고 주는 카드 있잖아.”
“아!··· 여기 사장님 좋은 일 많이 하네.”
“그러게. 장사 잘돼서 팔 것도 부족할 텐데 말이야.”
“마인드가 좋아.”
“그러니까 맛집이겠지.”
“응응.”
처음엔 죄라도 지은 것처럼 쭈뼛대며 들어와 조용히 먹고 가던 아이들이 점차 뭉치랑 인사도 하고, 맑게 웃으며 꾸벅 인사까지 하고 돌아갔다.
소혜 남매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썬플라워에 들려 돈가스를 먹었다.
아이들의 밝은 미소를 보니 해준까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번 일을 계기로 결식아동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다.
해준은 이를 계기로 주 1회 근처 봉사 단체와 연계해 아이들에게 무료로 도시락을 나눠주는 봉사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째서인지 요즘 손님이 부쩍 더 늘었다.
“왜 그럴까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별스타를 하지 않는 해준과 동식이 다시 한번 썬플라워가 SNS에서 화제가 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꿈나무 카드 결제 시 80% 할인된 가격으로 음식을 제공한다는 글 때문에 썬플라워와 사장 차해준은 너튜브 주작 사건 이후 또 이슈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마감 시간 전에 재료 소진으로 일찍 가게 문을 닫는 일이 많아졌고, 토요일인 오늘도 평소보다 일찍 영업을 종료했다.
“이번 주도 고생 많으셨어요. 일요일 푹 쉬고, 월요일에 뵙죠.”
“넵!”
“수고 많았어요.”
“월요일에 봐.”
“안녕.”
내일 아침 가족과 놀이공원에 가기로 한 고동식이 제일 먼저 퇴근했고, 강훈과 민주, 은정도 뒤따라 가게를 나섰다.
썬플라워 문을 걸어 잠근 해준도 농장으로 향했다.
***
톱스타 한소율.
그녀는 차해준의 샐러드 덕분에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과 계약한 몸무게만큼 체중 감량을 할 수 있었고, 무사히 배역을 따내 촬영에 돌입했다.
할리우드의 유명 스튜디오에서 성공리에 촬영을 마쳤고, 남은 분량은 해외 로케이션뿐.
잭슨 감독은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여러 나라를 돌며 나머지 촬영을 하겠다는 구상을 세웠고, 덕분에 한소율의 소속사는 아주 바빠졌다.
“잭슨 감독이 한국에서 체류하는 동안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잖아?”
매니저 실장 동수의 형이자 소속사 대표인 마동철이 말했다.
영화 제작사의 한국 지사가 체류와 촬영 관련한 모든 사항을 처리하지만, 명색이 주연배우의 소속사에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잭슨 감독이 뭘 좋아하지?”
“와인에 아주 환장하던데요.”
몇 달간 소율과 함께 미국에서 체류한 동수가 말했다.
미식가로도 유명한 잭슨은 저녁 촬영이 없는 날이면 친구들과 모여 최고급 와인을 즐겨 마셨다.
그가 주로 찾는 식당은 미슐랭 스타를 받은 유명 식당이며, 와인도 병당 5천 달러는 족히 되는 고가의 와인만 마셨다.
“5, 5천 달러?”
한화 600만 원에 육박하는 거액이다.
고작 와인 한 병이 600만 원이라니, 포도 대신 금가루라도 넣어 만들었단 말인가! 라고 생각했지만, 몸값 비싸기로 유명한 잭슨 감독이니 그 정도 호사는 당연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드럽게 비싸네. 한국에서 구할 수는 있고?”
“알아봐야죠. 없으면 일본에서라도 공수해오고.”
“꼭 구해와서 잭슨 감독 호텔 방에 하루에 한 병씩 넣어줘. 한소율 체면이 있지. 그 정도는 우리가 해야 하지 않겠어?”
“네, 대표님.”
“소율아, 그리고 네가 잭슨 감독님한테 잘 말해서 마지막 날에 저녁 약속 잡고.”
“식사? 좋지. 식사는 어디서 할건데요?”
“한국에 왔으니까 아무래도 한식으로 대접해야겠지. 입맛 까다롭다니까 미슐랭 쓰리스타로 예약 잡을게.”
“한식? 한식 말고 뭐 특별한 거 없나?”
“특별한 게 어딨어? 외국 사람 오면 무조건 한식이지. 비빔밥, 불고기, 갈비 한 상 푸짐하게.”
“맞습니다. 대표님.”
동수가 형의 의견에 힘을 보태자, 한소율이 ‘그래도 한식은 너무 뻔하지 않나.’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암튼 그렇게 하는 거로 결정하자고.”
“네.”
“알았어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소율은 입술을 삐죽였다.
그녀 역시 마동철 대표만큼이나 잭슨 감독에게 한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어필하고 싶었다.
‘한식은 미국에서도 먹을 수 있잖아.’
우리나라는 외국인한테 김치, 불고기, 비빔밥 같은 한식을 너무 강요한다.
그런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터. 게다가 한식은 미국에서도 충분히 먹을 수 있기에 소율은 꼭 한식이 아니어도 한국에서밖에 못 먹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다.
미식가인 잭슨 감독도 좋아할 만한 꼭 한국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
그래서 한국과 한소율을 영원히 기억할만한 그런 음식.
‘뭐가 있을까?···’
문득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육식파인 자신에게 샐러드의 맛을 알게 해 준 썬플라워.
요즘은 뚱드위치뿐아니라 돈가스, 치즈 가스, 오므라이스 같은 걸 팔아서 별스타에서 더 난리 난 바로 그 식당. 차해준, 그 사람 음식 솜씨라면 크리스토퍼 잭슨의 기억에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오랫동안 기억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잭슨 식사 대접을 썬플라워에서 하자면 반대하겠지?’
한소율은 식당에 편견은 없지만, 마동철 대표가 절대 썬플라워에서 저녁을 대접하는 걸 찬성할 리 없었다.
귀한 손님을 고작 돈가스나 먹여서 보내자는 거냐며 펄쩍 뛸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율은 어떻게든 잭슨에게 썬플라워 차해준 셰프의 요리를 먹게 하고 싶었다.
분명 잭슨 감독도 차해준의 음식에 반할 테니까.
‘우리가 못 가면 그가 오게 하면 되잖아. 그런데 어떻게 부르지?’
고민하던 소율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차해준을 촬영장으로 오게 만들면 된다.
“좋아요. 그럼 내가 밥차 준비할게요.”
“밥차? 무슨 밥차?”
“잭슨 감독 촬영 때. 밥차 쏘겠다고요.”
“제작사에서 특급 호텔 한식 뷔페로 세팅하겠다잖아.”
“그거 말고 별도로요. 간식이라고 생각해도 좋고. 내 사진이랑 이름 걸고 하면 좋잖아요. 내 사비로 알아서 준비할게요.”
“뭐, 마음대로 해.”
굳이 소율이 직접 준비하겠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었다.
소율은 바로 별스타 검색으로 썬플라워 메뉴를 검색했다.
지금의 썬플라워를 있게 해 준 뚱드위치, 요즘 핫한 돈가스와 콜드브루 커피까지 크리스토퍼 잭슨의 까다로운 입맛을 충족시켜줄 메뉴는 충분했다.
‘흐흐··· 맛있겠다.’
소율은 썬플라워 매장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신호가 끊기도록 전화를 받는 사람은 없었다.
***
그 시각.
농장에 들어온 해준은 곧장 제임스의 목공방을 찾았다.
“아저씨.”
“어쩐 일이냐?”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부탁이라니? 혹시 와인 재고가 넘쳐나서 대신 먹어달라는 부탁이냐?”
“대충 비슷하네요.”
해준이 제임스를 찾은 건 새로운 와인 저장고를 짓기 위해서다.
포도씨유를 만들다 보니 계속 와인이 생산되는데, 그 레드 와인을 보관할 장소가 부족해졌다.
해준이 와인을 즐겨 마시지도 않고, 쓸데라고는 제임스 아저씨에게 목공 의뢰를 부탁할 때나 돈가스 소스의 재료로 쓸 뿐이었다.
“와인! 내 와인 어디 있어?”
이성이 마비된 제임스가 해준의 뒤를 힐끔거리며 와인을 찾았다.
“진정하세요, 아저씨. 와인은 숙성창고에 있죠.”
“안 가져왔어?”
“네.”
“이런.”
잔뜩 실망한 표정의 제임스에게 해준이 희망적인 소식을 전했다.
“최근에 포도씨유 생산량을 늘리다 보니 와인을 너무 많이 만들어서요. 아저씨가 저장고 하나만 만들어주시면 와인은 원하는 만큼 드시게 해드릴게요. ”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창고는 어디에 지을까? 마침 질 좋은 오크 나무가 들어왔거든. 와인 저장고라니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의뢰군. 특별히 심혈을 기울여 지어주마. 으하하!”
술에 있어서만큼은 언제나 진심이었다.
해준이 최근에 만든 품질 좋은 하몽과 클로에가 만든 치즈까지 안주로 준다고 하자, 제임스의 기분이 더 좋아졌다.
당장 지으러 가겠다는 걸 겨우 뜯어말렸다.
“빨리 짓고, 와인을 마셔야 하는데 말이야.”
“그 와인이 그렇게 맛있나요?”
“그걸 말이라고 하냐? 아주 최고지. 안 마셔봤어?”
마셔보긴 했으나, 소주를 즐겨 마시는 해준에게 와인은 너무 어려웠다. 특유의 쌉싸름한 맛과 향에 적응이 안 될 달까.
그래서 늘 요리 재료로만 와인을 소진했다.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맡겨 둬.”
와인 저장고 건설 의뢰를 마친 해준은 잡화점에 들러 통발 2개를 추가 구매해 바닷가로 향했다.
이번에도 뭉치와 함께였다.
해준은 일전에 뭉치에게 쓰라린 패배(?)를 당한 적이 있다.
심심풀이 사냥으로도 돌돔을 척척 잡아내던 녀석과 다르게 갯바위에서 6시간 이상 낚시를 했음에도 아무것도 낚지 못한 해준. 그날의 치욕을 갚고자 쉬는 시간 틈틈이 너튜브 영상을 보며 낚시를 배웠다.
돌돔이 좋아하는 미끼는 성게, 전복, 소라 같은 비싼 해산물이고, 서식하는 곳도 조류가 부딪히는 곳이다.
비록 현대식 낚시채비가 있는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챔질 방법이나 타이밍을 영상을 통해 연구했다.
요즘은 너튜브가 있어, 뭐든 쉽게 배울 수 있었다.
“두고 봐. 이번엔 내가 이걸 거야.”
“야아옹.”
처음의 낚시 대결에선 참패했지만, 이번엔 이기고 싶었다.
자존심 문제도 있지만, 돌돔으로 튀긴 생선가스의 맛이 너무 좋았다.
어떻게든 안정적으로 돌돔만 수급한다면 하루에 10인분이라도 만들어 팔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해준의 낚시 실력. 심심풀이 사냥을 하는 뭉치 녀석보다 조과가 별로니, 돌돔 생선가스는 팔고 싶어도 팔 수가 없는 메뉴였다.
“일단 미끼부터 구하자.”
바닷가에 도착한 해준은 옷부터 벗어 던지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와아···.’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동남아풍의 에메랄드빛 바다. 그 속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산호초와 기암괴석들. 그 사이로 헤엄치는 물고기 떼 그리고 바닥이나 돌 틈 사이를 기어 다니는 전복, 소라 같은 생명체도 눈에 띄었다.
‘예상대로야.’
돌돔이나 대하가 있다는 건 다른 생명체도 있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했다.
녀석들도 먹이 활동을 해야 하니, 바닷속에 먹이가 될만한 것들이 풍부하게 자라고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
해준의 예상대로 돌돔이 좋아하는 먹이인 전복, 소라가 풍부했다.
그리고,
‘성게도 있네.’
돌돔 미끼를 잡으러 들어온 물속인데,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려버렸다.
수면 위를 몇 번이나 오가며 스노클링 하듯 물속 풍경을 감상하고 나서야 잊고 있던 미끼 채취에 나섰다.
‘엇! 저건.’
해산물을 잡던 해준의 시야에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전복이 보였다.
그것도 무려 B급 전복이다.
차원의 농장에서 본 최초의 B급 식재료.
숨을 참고 헤엄쳐 간신히 B급 전복을 캐왔다.
이건 돌돔 먹이로 쓰기는 아깝고, 부력망에 넣어 놨다가 썬플라워로 가져가 회를 쳐서 소주 안주로 먹기로 했다.
“푸아~! 다 됐다.”
해준은 꽤 많은 양의 미끼를 모아 갯바위로 올라왔다.
이제 본격적으로 낚시를 할 차례. 통발 3개를 띄엄띄엄 설치하고, 낚시하기 좋은 포인트에 자리를 잡았다.
“냥!”
뭉치 녀석이 보란 듯이 돌돔 한 마리를 사냥해왔다.
“어쭈? 해보자는 거야?”
“냥! 냥!”
“좋아. 이번엔 절대 안 진다.”
“냐아앙.”
해준이 낚싯대를 드리우자, 뭉치 녀석이 또 저쪽으로 후다닥 달려가 사냥을 시작했다.
“······.”
가만히 앉아 입질을 기다렸다.
미끼는 돌돔이 가장 좋아한다는 성게와 소라.
톡-
토독!
입질이 느껴졌다.
너튜브에서 프로 낚시꾼이 말한 바로 그 돌돔 입질이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 6시간 동안 한 번도 없던 입질이 불과 낚시 시작 15분 만에 왔으니 말이다.
해준은 성급하게 챔질을 하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쿠욱-!
초릿대가 크게 휘며 아래로 처박혔다.
“물었다!”
휙-
챔질과 함께 손을 타고 묵직한 감각이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