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65
64화. 숨겨진 섬(2)
***
소를 발견하는 건 역시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최근 오픈된 들판을 샅샅이 뒤졌으나, 소 비슷한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휴, 힘들다. 잠시 쉬었다 가자.”
자리에 앉은 해준은 배낭에서 삶은 달걀과 닭가슴살을 꺼내 뭉치에게 간식으로 주고, 자신은 뚱드위치를 먹었다.
‘그래도 수확은 있었어.’
해준은 배낭에서 빨갛게 익은 딸기와 설익은 수박 한 덩이를 꺼냈다.
소를 찾아 헤매던 중 발견한 과일이다.
“맛있겠다.”
근처 샘물에서 깨끗이 씻어 먹었다.
“크으~ 달다.”
입안 가득 팡팡 터지는 과즙 덕분에 갈증이 한방에 해소됐다.
과육은 먹고, 씨앗은 심으면 딸기와 수박을 재배할 수 있을 터. 여름엔 특별하게 생과일주스를 만들어 팔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냥!”
“너도 달라고? 자.”
딸기와 수박을 손으로 적당히 으깨주니 뭉치가 과육을 핥아먹었다.
“맛있어?”
“냐아앙~.”
“더 줄까?”
“냥! 냥!!”
해준은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히며 뭉치랑 과일을 나눠 먹었다.
그리고 또, 이동. 좀처럼 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쩌면 농장에 귀속된 땅에는 소가 존재하지 않을지도.
걷다 보니 안개가 걷힌 지역을 모두 탐험했다.
이제 남은 건···.
“저기뿐인가?”
돌돔 낚시와 해산물을 캐는 갯바위 근처 해안가.
최근 레벨 업을 하면서 바다 한가운데의 안개도 조금 뒤로 밀려났다.
연안에서도 충분히 수렵 행위를 할 수 있기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곳.
“그런데, 저게 뭐지?”
유심히 살피니 바다 가운데 평소 보지 못했던 작은 섬 하나를 발견했다.
거리가 있어 헤엄쳐 넘어가기는 힘들어 보였고, 배가 있다면 10분 정도면 도달할 거리 정도로 보였다.
‘가보자.’
해안가 근처 숲에서 뗏목을 만들기 적당한 굵기의 나를 베어 밧줄로 엮었다.
그렇게 완성된 작은 뗏목. 돛도 없고 모양이 어설펐지만, 바다 건너 섬으로 가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뗏목에 올라탄 해준이 뭉치를 보며 물었다.
“너도 함께 갈 거지?”
“야아옹~.”
대답과 함께 뗏목 위로 폴짝 뛰어오른 뭉치.
혼자라면 조금 무서웠을 테지만, 뭉치가 함께 있어 안심이었다.
노를 저어 바다로 나갔다.
파도가 잔잔해 수월하게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해안에 배를 댄 해준은 근처 바위에 단단히 뗏목을 고정시키고, 섬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덥다.”
섬에 도착하니 온도와 습도가 한층 더 올라갔다.
동남아시아의 섬처럼 습하고, 푹푹 쪘다.
“그러고 보니 나무가 키도 크고, 잎도 넓적하네. 완전 열대우림이야.”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환경이다.
해준의 삶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있었다.
현실은 도시에서 썬플라워라는 식당을 경영하면서, 차원의 통로를 넘어 농장에 가면 바로 힐링 농촌 라이프의 시작이다. 땅을 일구고, 밭에 작물을 심고, 때론 해안가까지 나와 낚시도 하고 스노클링도 하면서 야생 라이프를 즐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섬은···.
“동남아 여행인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습하고, 덥지만 난생처음 맞닥뜨린 천혜의 자연환경.
뭐가 나타날지 모르니 탐험 자체로 뭔가 재밌고, 흥미진진했다.
조심조심 걷던 해준은 알로에나 선인장처럼 삐쭉삐쭉 날카로운 잎을 가진 식물을 발견했다. 그 사이로 보이는 열매의 이름.
<야생 파인애플 – C급>
“헐. 파인애플이 땅에서 나는 거였어?”
파인애플이다.
열매 자체가 야자나무랑 비슷하게 생겨 나무에서 자라는 게 아닐까 했었는데, 의외로 땅에서 자라고 있었다.
땅에서 올라온 줄기가 옆으로 퍼지고, 그사이에 수줍게 자리 잡은 파인애플.
다 자란 파인애플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옆으로 누웠다.
“재밌네.”
노랗게 익은 파인애플 하나를 배낭에 넣고, 탐험을 이어갔다.
한 100m쯤 걸었을까?
“냥!”
앞서 걷던 뭉치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며 울어댔다.
그러더니 휙- 나무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뭉치야. 어디가?”
탁- 탁- 타탓-
꼭 원숭이처럼 날렵하게 나무를 타오르는 뭉치.
고양이가 나무를 저렇게 잘 타는 동물인가? 라는 생각을 하며 뭉치를 지켜보고 있을 때, 나무 꼭대기까지 오른 뭉치가 특유의 스킬 냥냥펀치를 휙- 날렸다.
그리고.
툭-
<야생 바나나 – D급>
“바나나!?”
해준의 발 앞에 떨어진 건 바나나 한송이였다.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니 나무 위로 연두색 바나나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뿐만 아니다. 그 옆으로 TV에서만 보던 다양한 열대과일들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야생 애플 망고 – C급>
<야생 아보카도 – E급>
<야생 코코넛 열매 – D급>
“우와~! 저게 다 뭐야.”
“야아옹!”
“올라오라고?”
“냥!”
“가능할까?”
태어나서 나무를 타본 적은 없다.
비슷한 경험이라면 초등학교 다닐 때 운동장에 있던 봉 타기를 했던 정도.
노량진에서 공부만 했을 때라면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만, 왠지 지금이라면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다.
해준은 배낭을 내려놓고, 팔을 휘휘 돌렸다.
“냥!”
“알았어. 기다려.”
몸을 푼 해준은 허벅지 두께만 한 굵기의 나무에 매달려 올랐다.
‘되네.’
팔과 다리로 지탱하며 성큼성큼 야자수를 올라타 코코넛 열매를 땄다.
“하하··· 이러고 있으니까 꼭 정글의 규칙에 출연한 것 같다.”
야생 정글에서 잠자리도 만들고, 음식도 직접 구해 만들어 먹는 정글 생존 예능 프로그램.
족장 역할을 맡은 김영만이 나무를 탈 땐 저게 돼? 했는데 막상 해보니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해준은 몰랐다. 그동안 농장을 오가며 자신의 체력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또 B급 식재료 몇 가지에서 어떤 힘을 얻었는지 말이다.
차해준은 뭉치와 함께 나무를 타고 오르며 열매를 수확했다.
“목마르다.”
“냥.”
한바탕 땀을 흘리고,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파인애플과 바나나, 애플 망고, 아보카도, 코코넛.
수확이 꽤 좋았다. 모두 현실 세계에서는 값비싼 열대과일들이니까.
그냥 먹어도 맛있겠지만, 파인애플이나 애플 망고는 주스나 에이드로 만들어 먹어도 맛있을 것 같았다. 아보카도는 샐러드에 토핑으로 얹을 수도 있고, 기름을 짤 수도 있어 쓸모가 많다.
‘아보카도는 다이어트하는 사람들한테 인기가 좋으니까.’
새로운 식재료를 발견했으니 해준의 요리가 한층 풍성해질 것이다.
“농장으로 가져가서 키워볼까?··· 아니면 여기서 키워?”
땅을 개간해 아예 여기에 심는 것도 좋을 듯했다.
모두 열대과일이니 고온다습한 동남이 기후인 이 섬에서 키우는 게 품질 좋은 열매를 수확할 최선의 방법이지 않을까.
“그나저나 배낭이 꽤 묵직하네.”
섬에 넘어오기 전 발견한 수박, 딸기. 그리고 섬에서 발견한 파인애플, 바나나, 코코넛, 아보카도까지.
배낭이 과일로 가득 찼다.
“따느라 고생했는데 맛 좀 볼래?”
“냥. 냥!”
“여기에 밭을 일굴지 아니면 농장에서 키울지 나중에 정하고, 일단 맛이나 보자. 근데, 뭐부터 먹어야 하지?”
바나나, 아보카도, 애플 망고 같은 과일들은 먹더라도 후숙이 중요하다.
우리가 보는 바나나는 보통 노란색이지만, 수확은 녹색일 때 하게 된다.
녹색에서 노란색, 갈색으로 변하면서 당이 많아진다. 그렇기에 달콤한 바나나를 먹고 싶다면 노란색에서 갈색으로 변하는 시점에 먹는 게 제일 좋다.
아보카도도 마찬가지. 연녹색의 단단한 껍질 상태의 아보카도를 먹기보다는 껍질이 말랑해지고, 갈색으로 변했을 때가 맛이 가장 좋고, 애플 망고는 빨강과 녹색의 그라데이션이 노랗게 변했을 때가 맛있다.
“다 후숙이 필요한 과일들이니 배낭에 넣어가고, 코코넛을 먹자.”
“야아옹.”
과일들은 배낭에 챙겨 넣고, 코코넛만 꺼냈다.
크기는 배구공보다 약간 작았고, 검은 줄이 없는 수박 같은 녹색이었다.
‘어디를 잘라야 하나?’
코코넛은 껍질이 단단하기에 해준은 코코넛의 윗부분을 칼로 다듬듯 깎았다.
두꺼운 껍질을 파 내려가니 가운데 깊은 곳에 투명한 막이 보였다.
칼끝으로 조심스럽게.
톡-
“됐다.”
“냥.”
뭉치 몫으로 움푹한 야자수잎에 코코넛 워터를 넉넉히 따라주고, 해준도 한 모금 마셨다.
꿀꺽- 꿀꺽-
“크으~.”
갓 딴 코코넛 워터는 별미였다.
마트에서 파는 걸 먹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먹었던 맛은 마치 뜨거운 여름 차 안에 넣어두었던 포카리스웨*를 바로 따서 먹은 맛이랄까. 미지근하면서도 밍밍한··· 토할 맛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건 달랐다. 단맛과 풍미도 강렬했고, 갈증까지 싹 씻어주는 개운한 맛이 일품이었다.
정신없이 먹다 보니 코코넛 한 통을 다 먹어버렸다.
코코넛 워터를 다 먹고, 감싸고 있던 하얀 과육 부분까지.
과육도 별미였다. 젤리같이 말랑말랑한 식감이 묘하게 중독성이 있었다.
“잘 먹었다. 엄청 맛있는데?”
“냐아옹.”
뭉치도 동의했다.
“갈증도 해소됐는데 슬슬 정상으로 올라가 볼까?”
애초 섬으로 온 목적은 탐험이다.
물론 부수적인 수입(?)이 짭짤했지만, 어디까지 목적은 소!
혹시나 섬 반대편에서 유유히 돌아다니며 풀을 뜯고 있을 소를 발견하기 위해 섬의 높은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섬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오니 섬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섬의 반대편도 해준이 올라온 곳과 비슷한 생김이었다. 백사장과 에메랄드빛 바다, 그리고 열대우림. 그 옆으로···.
“저건 또 뭐지?”
숲 안쪽으로 작은 동굴이 보였다.
흡사 해준이 현실과 농장을 오가는 통로와 비슷하게 생긴 동굴 입구.
“뭉치야. 가보자.”
“야아옹.”
내리막길을 빠르게 달려갔다.
동굴 입구엔 자신이 드나드는 통로처럼 읽을 수 없는 문자가 쓰여있었다.
‘역시 또 다른 통로인가?’
뭔가 미묘하게 분위기는 달랐다.
‘현실 차원과 연결된 다른 통로. 이 통로를 통해 누군가가 여길 드나든다면?···’
억지스러운 추측은 아니었다.
차해준이 썬플라워 구석의 차원의 통로를 통해 농장을 오가는 것처럼 다른 지역의 누군가도 이 통로를 통해 이 섬을 오갈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 누군가의 영역에 침범한 건가?’
호기심이 증폭됐다.
만약 다른 누군가와 조우하게 된다면 실종된 아버지에 대한 단서를 얻을지도 모르고, 차원의 농장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알게 될지도 모른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 봐야겠어. 뭉치 넌 그냥 여기서 기다려.”
“야아옹~.”
“싫다고?”
“냥.”
“좋아. 대신 조용해야 해.”
“야아옹.”
해준은 뭉치와 함께 조심스럽게 통로를 걸어 들어갔다.
‘음. 확실히 분위기는 다르군.’
자신이 넘나드는 통로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통로. 반면에 이곳은 자연적으로 생성된 동굴을 누군가가 필요에 의해 사용하는 듯했다.
통로를 따라 깊숙하게 들어갔을 때.
음메에~
“!!??”
음머어~
‘소다.’
소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곰이나 호랑이도 아니고, 동굴 안에 소라니. 뭔가 이상하다.’
해준은 인기척을 죽여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몸을 옮겼다.
얼마쯤 걸어가니 좁은 통로 끝나고, 조금 넓은 홀이 나왔다.
‘야영지!?···’
천막과 나무로 만든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불을 피운 흔적이 보였고, 한쪽 구석에 줄에 묶인 검은 소가 보였다.
음메에~
검은 소가 한차례 울자, 반대편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아군인지 적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 상황에서 해준은 가만히 숨죽여 상황이 흘러가는 걸 지켜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나타난 3명. 아니, 3마리의 몬스터?!
‘고, 고블린이다!···’
1m가 조금 넘는 키에 땅에 닿을듯한 긴 팔. 눈은 외계인처럼 크고, 피부는 녹색이었다.
RPG 게임에서 흔히 보던 고블린이었다.
그것도 3마리나.
‘이런··· 이 섬. 동남아 휴양지가 아니라 던전이었어?!’
해준은 마른 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