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69
68화. 첫 번째 전투(3)
***
“어떻습니까? 제 딸 예쁘죠? 으하하.”
첫 번째 손님은 사진첩의 딸 사진을 보여주며 호탕하게 웃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기러기 아빠였다. 벌써 떨어져 지낸 지 7년도 넘었고, 못 만나지 일 년이 다 돼간다고 했다.
“따님 예쁘네.”
“아저씨, 완전 딸바보시다.”
혜리와 여진이 사진을 보며 칭찬했다.
“딸이 이렇게 예쁘면 딸바보 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많이 보고 싶겠어요.”
“가끔 영상통화 하는데, 쩝··· 아쉽죠.”
“그럼 혼자 사는 거예요?”
“예. 노량진 고시원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
노량진 고시원이라면 해준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곳이다.
사람들이 많은 곳이지만, 누구 하나 서로에게 관심을 주지 않은 외로운 곳이 바로 노량진이다.
“저도 노량진 고시원에 살아봐서 아는데, 거기 참 외롭죠?”
“셰프님도 거기 사셨어요?”
“네, 얼마 전까지요.”
해준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얘기를 꺼냈다.
차원의 농장에 관련한 부분만 빼고.
“그런 사연이 있으셨구나.”
“난 차 셰프가 아주 밝아서 그런 사연이 있는 줄 몰랐네.”
“짜식. 형이 앞으로 더 잘해줄게.”
출연진들이 해준의 스토리에 조금 놀란 눈치다.
항상 밝게 웃는 그에게 그런 속사정이 있을 줄이야.
잠시 삼천포로 빠졌던 얘기는 다시 기러기 아빠 손님에게 포커스가 맞춰졌다.
직장인의 비애에 관한 이야기를 듣던 해준은 아저씨의 빈 접시를 보며 다른 음식 레시피를 생각해냈다.
“기운 내시라고, 식사 만들어드릴게요.”
“식사요? 마침 속이 허하던 참인데 잘됐네요.”
“한 끼 드시면 속이 든든하실 겁니다.”
해준이 선택한 메뉴는 전복 솥 밥.
외로운 아저씨니 기운 내라고, 무려 B급 전복을 사용하기로 했다.
돌솥 냄비에 참기름 한 숟가락을 두르고, 전복 내장과 함께 볶아준다. 적당히 볶은 내장에 쌀을 안치고, 맛술과 간장을 넣어준다. 밥이 다 될 때쯤, 먹기 좋게 자른 전복을 버터와 함께 살짝 볶아 밥 위에 얹어주고, 마지막으로 뜸을 들이면 완성.
“음~ 밥 짓는 냄새 오랜만이네요.”
“고소하죠?”
해준의 물음에 아저씨는 말없이 미소를 빙긋 지었다.
사각 트레이에 돌솥 밥을 올리고 옆으로 손수 만든 마늘, 고추 장아찌를 반찬으로 냈다.
“장아찌는 아저씨가 처음 드셔보는 거예요. 제가 직접 만든 건데, 요즘 한식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서.”
“하하. 이거 영광입니다.”
뚜껑을 열자 피어오르는 전복 솥 밥 특유의 고소한 풍미.
숟가락으로 쓱쓱 저으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군침을 삼키던 남자는 크게 전복과 밥을 크게 한 숟갈 떠 입에 넣었다.
“크으~ 맛있습니다.”
“천천히 오래 드세요.”
남자는 조개 술 찜과 전복 솥 밥을 싹싹 비우고서야 만족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식보다도 오랜만에 누군가와 마음 따뜻한 대화를 나눴다는데, 더 마음의 공허함이 채워지지 않았을까?
“잘 먹고 갑니다.”
“네. 앞으로 행복한 일만 가득하세요.”
“감사합니다.”
기분 좋게 웃으며 사라지는 남자.
해준은 남자가 어떻게든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해피엔딩으로 끝내길 빌었다.
이후에도 다양한 부류의 손님이 계속 야밤 식당을 찾았다.
썬플라워에서 만들지 않는 메뉴를 중심으로 만들었다.
손님의 취향과 현재 심리 상태를 고려한 해준의 음식 선정은 그야말로 탁월했다.
방문하는 손님과 대화도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여진, 서준, 혜리와의 케미도 상당했다.
상황실에서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모니터링을 하는 장일수 피디와 작가들. 어쩐지 이번 프로그램은 역대급 히트를 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첫 촬영이 무사히 끝났다.
***
“음··· 이제 제법 쓸만하군.”
해준의 검술 연습을 지켜보던 카일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썬플라워에서의 업무를 끝내면 재빨리 농장으로 들어와 검술 연마에 매달렸다.
어설펐던 자세가 점점 교정되며 칼끝에 힘이 느껴졌다. 활 솜씨도 마찬가지. 처음엔 과녁도 제대로 맞히지 못했는데, 이젠 열 발에 한 발 정도만 빗나갈 뿐 대부분 과녁에 적중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덕분이에요.”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그럼요?”
“우린 그냥 계약관계일 뿐이야. 넌 날 고용한 거고, 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제공하는 거지.”
카일은 늘 해준과의 관계에 선을 그었다.
‘왜지?’
해준이 궁금해서 몇 번 물었으나, 이유에 대한 답은 듣지 못했다.
그저 검술과 궁술에 대한 지도뿐.
“근데, 농장 주인이 왜 검술을 배우는 거냐?”
“가끔 야생 동물을 만날 때가 있거든요. 그때 쓰려고요.”
“음, 그렇군. 지금 네 실력이라면 늑대까지는 상대할 수 있을 거다. 만약 곰을 만나거든 꽁지 빠지게 도망치고.”
“스승님은 곰이랑 싸워본 적 있으세요?”
“당연하지. 이 어깨 흉터 보이냐? 이게 2m도 넘는 거대한 곰이랑 싸우다 생긴 흉터야. 물론 녀석은 이 흉터를 남기고, 카펫 신세가 되었지만.”
“몬스터는요?”
“용병 시절 토벌 의뢰를 자주 받았었지.”
카일은 자신이 경험했던 몬스터와의 전투를 늘어놨다.
코볼트, 오크, 트롤··· 그중에는 고블린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어떨 땐 고블린이 제일 까다로워. 한 마리씩의 공격력은 별거 아닌데, 녀석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거든. 파도처럼 끝도 없이 밀려들지.”
“동시에 몇 마리까지 싸워보셨어요?”
“글쎄 일일이 세보지는 않아서. 한 2~30마리?”
“!···”
아버지보다도 월등한 전투력이다.
하긴, 아버지는 농부 겸 요리사였고, 카일은 용병 교관이었으니 당연한 건가?
‘어쨌든 3마리를 최대한 떨어트려 놓고, 전투에 임하는 게 유리하겠구나.’
훈련을 끝낸 해준은 뗏목을 타고, 섬으로 향했다.
‘제임스 아저씨한테 작은 배를 만들어달라고 해야겠어. 언제까지 뗏목을 타고 다닐 수는 없잖아.’
밭을 일구고, 열대 과일을 재배하면 오갈 일이 많은 곳이다.
뗏목으로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으니 제대로 된 배를 만드는 게 좋을 터.
‘최근에 골드 쓸 일이 많네.’
일꾼 고용과 각종 의뢰에 골드가 꽤 많이 소모된다.
현재는 아슬아슬하게 균형이 맞지만, 농장 규모가 더 커지면 골드가 부족할지도 몰랐다.
예산 문제를 뒤로하고, 해준은 동굴로 향했다.
혹시 있는지 모를 변화를 체크했지만, 섬은 그대로였다.
“뭉치야, 이제부터 조용히 따라와야 한다.”
“야아옹.”
동굴에 들어가기 전 무기를 다시 확인했다.
양손 대검 대신 새롭게 구입한 장검을 옆구리에 차고, 등에 활을 멨다.
“가자!”
“냥.”
스르륵-
동굴 결계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저번과 같은 길을 통과해 예의 홀에 다다랐다.
‘흠···.’
1번 고블린이 해준이 있는 통로 쪽을 경계하며 서 있고, 나머지 고블린이 솥단지 안에서 뭔가를 넣고 끓이고 있었다.
‘뭘 만드는 거지?’
식사를 만드는 건 아닌 거 같았다.
과 를 잔뜩 넣고, 조심스럽게 젓는 걸 보니 중요한 뭔가를 만드는 것 같았다.
해준은 은밀하게 숨어 고블린의 행동을 관찰했다.
‘하필이면 세 마리가 똘똘 뭉쳐있네. 경계도 서고.’
배낭 탈취 사건 이후로 고블린 녀석들의 경계가 한층 강화된 것 같다.
그때였다.
“끄륵··· 모자라다··· 풀.”
“캐와라···.”
“지켜라··· 솥을.”
고블린 두 마리가 몽둥이를 들고, 통로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혼자 남은 고블린은 주변을 경계하며 솥을 계속 휘젓고 있었다.
기회가 찾아왔다.
‘지금이라면 붙어볼 만하다.’
“뭉치야. 네가 시선 좀 끌어줘야겠다. 저쪽 구석으로 가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줘.”
“냥!”
뭉치가 고블린의 시선의 피해 살금살금 기어갔다.
해준이 신호를 보내자 테이블 위의 그릇을 떨어트렸다.
탁-
“그륵?···”
고블린이 등을 돌린 사이 해준은 녀석을 향해 돌진해 위에서 아래로 검을 휘둘렀다.
서걱-
“끼이익.”
비명과 함께 쓰러진 고블린.
일격을 당한 녀석이 일어나 목에 달린 피리를 입으로 가져갔다.
‘못 불게 만들어야 해.’
자세를 정비하지 못하고, 검을 휘둘렀다.
타격이 목적이 아닌 손을 묶기 위한 공격.
예상대로 고블린은 몽둥이를 들어 해준의 공격을 막았다. 그 틈에 해준은 손을 뻗어 목걸이를 잡아 뜯었다.
“!?··· 그르륵···.”
“일대일로 붙어보자고.”
화가 난 고블린이 몽둥이를 고쳐잡고, 해준에게 달려들었다.
어디라도 맞아라! 라는 식으로 무분별하게 휘두르는 몽둥이.
카일에게 훈련받지 않았다면 그대로 가격당했겠지만, 해준은 몽둥이 피하는 법을 알았다.
“쉽지는 않을 거다.”
“끄어억!”
해준의 세 번째 공격이 고블린의 왼팔에 그대로 먹혀들었고, 녀석은 공격 의지를 상실한 채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일단 한 마리.”
자신의 야영지에서 들리는 전투 소리에 나머지 고블린이 달려왔다.
“으어?!···”
“소란이냐··· 무슨?”
해준은 활시위를 당겨 고블린을 조준했다.
앞에 녀석이든 뒤에 녀석이든 한 놈만 맞춰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겠다는 전략이다.
휘리릭-
날카로운 파열음을 내며 날아가는 화살은 그대로 앞 녀석을 지나쳐 뒤따라오던 고블린의 발목을 꿰뚫었다.
“나이스!”
생각지도 못한 크리티컬 히트.
어디든 맞아 속도를 늦추는 게 목표였지만, 운 좋게 발목에 명중.
힘이 풀린 녀석은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뱉어냈다.
“끄어억··· 잡아라··· 저놈.”
동료가 쓰러진 모습에 흥분한 2번 고블린이 해준에게 달려들었다.
해준은 침착하게 녀석의 공격을 기다렸다.
몸통을 노리고 들어온 몽둥이를 뒷걸음질 치며 피하고, 다시 앞으로 뛰어들며 찌르기 공격을 시도했다.
푸욱-
“끼이익!”
그대로 가슴을 관통한 검.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고블린이 푹 쓰러졌다.
검이 어찌나 깊숙하게 박혔는지 힘을 줘도 빠지지 않았다.
해준은 검을 놓고, 재차 활시위를 당겼다.
마지막 고블린과의 거리가 있으니 심호흡을 하고, 차분히 화살을 쐈다.
휘리릭-
총 다섯 발의 화살이 고블린의 몸통을 관통했다.
“끄어억···”
털썩-
마지막 고블린이 쓰러졌다.
해준은 고블린 무리를 성공적으로 소탕했다.
“흐헙!···”
긴장이 풀린 해준도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뭉치가 달려와 해준의 손등을 핥았다.
“냥~.”
“뭉치 너도 고생 많았어.”
뭉치를 쓰다듬으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을 때.
라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직업이 추가됐다.”
현재 해준이 가진 직업은 능숙한 농사꾼과 중급 요리사.
거기에 사냥꾼이라는 직업이 하나 더 추가됐다.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해준이 당황한 건 두 번째 메시지.
“여기가 전초기지면 본거지도 있다는 뜻이잖아?!”
이 동굴 안에 더 많은 고블린이 있다는 의미.
어쩌면 동굴을 지나 반대편엔 고블린 마을이 있을지도 몰랐다.
고블린은 무리 지어 생활하는 습성이 있다고 했으니, 이 부분은 해준이 염두에 두어야 할 터.
“훈련을 게을리하면 안 되겠네.”
“냐앙~.”
충분히 휴식을 취한 해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야영지를 살폈다.
몬스터를 때려잡았으니 아이템을 챙길 차례.
2번 고블린의 옆구리에서 작은 주머니를 획득했다. 그 안에는 무려.
“허. 골드가 있네?”
3골드나 들어있었다.
대장간에서 산 무깃값은 뽑았다.
루팅을 끝내자, 놀랍게도 고블린 시체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해준은 솥단지로 다가가 고블린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던 것의 정체를 확인했다.
불 꺼진 솥단지는 투명하고 끈적한 뭔가가 가득 담겨 있었다.
“외상 치료 연고?”
포테가 발라줬던 그것이다.
해준은 배낭에서 유리병을 꺼내 연고를 담았다.
주변을 더 뒤졌지만, 연고의 제조법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대신 물음표로 가려진 정체를 알 수 없는 풀과 열매를 배낭에 담아 농장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