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71
70화. 요리연구(2)
***
“그 남자가 누군지 기억하시나요?”
“전혀. 난 그때 며칠 동안 깨어나지 못했거든.”
‘저런 무지막지한 상처를 입었으면, 누구라도 며칠은 기절해있었겠다.’
해준은 카일의 어깨를 보며 생각했다.
어쩐지 지금 당장은 그도 인간처럼 보였다.
그야말로 살아난 것이 기적. 아니 죽음의 문턱에서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난 게 기적이다. 그가 만든 요리를 먹고, 상처를 치유했으니.
그리고 그 남자는 어쩌면 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아찔해. 내가 훈련을 게을리할 수 없는 이유기도 하지.”
“그렇군요. 갑자기 궁금한데, 그런 비상 상황을 대비한 약 같은 건 없나요?”
“힐링 포션 말이냐?”
카일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게 한 병에 얼마인지 알아? 비싸서 못 사. 돈이 있다고 해서 쉽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마법을 사용하는 자들은 그걸 우리 용병들에게 팔지도 않지.”
만들기도 어렵고, 만들어도 소수의 사람끼리 공유한다.
카일은 정확히 그렇게 말했다. 마법 부여 방어구나 무기, 포션 제조는 신에게 선택된 특별한 소수만이 할 수 있는 거라고.
‘내가 이런 걸 만드는 것도 여기선 당분간 비밀로 해야겠어.’
카일의 말에 따르면 해준도 선택된 소수다.
처음 클로에나 하스 아저씨가 해준과 포테를 보며 정령사냐고 물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첫 만남에서는 누구나 해준을 경외감 깃든 시선으로 바라본다.
비정상적인 속도로 자라는 농장의 주인이기에.
‘거기에 치료 효과가 있는 요리를 연구하고 있다면 더 이상하게 보겠어.’
아직 농장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카일은 해준이 그저 평범한 농장을 경영하며, 취미로 검술은 연마하는 신기한 놈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외상을 치유하는 스프라···.’
아버지나 고블린이 만들었던 연고와 같은 효과를 내는 음식이다.
상처에 직접 바르는 연고든지 스프든지 빵이든지 그게 중요한 포인트가 아닌 것 같았다.
핵심은.
‘설마 B급 이상 품질의 식재료를 넣고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걸까?’
애초에 고블린에게서 빼앗아 온 풀과 열매는 이름부터가 특이했다.
재생 풀과 독성 중화 열매. 즉, 마법 효과가 있는 식물이라는 뜻. 그러니 함께 섞는 다른 재료도 마법 효과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예를 들자면 특별한 효과가 있는 B급 식재료처럼.’
비록 효과가 일시적이긴 하지만, 서준은 토마토를 먹고 전립선 문제에서 벗어났다.
레오나르도 피트는 전복죽 덕분에 영화 촬영을 무사히 마쳤고, 레몬은 피부 트러블을 완화해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코코넛은 탈수 증상에서 회복을 도와주고, 바나나는 근력을 향상시켜준다. 아직 실험 중이긴 하지만, 산양유나 달걀, 아보카도도 나름의 효과가 있을 터.
‘첨가한 식재료에 마법 효과가 있어야 풀과 열매가 제 기능을 발휘한다?···’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가설이다.
요리연구에 희귀한 B급 재료를 넣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 해준이 연습한 요리의 재료들은 모두 C~E등급의 재료들.
‘그 자체로도 여러 효과를 내는 식재료와 섞인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그거였어!’
해준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스승님, 전 바쁜 일이 생겨서 이만 돌아가 봐야겠어요.”
“스승님이라 부르지 말라고. 그리고 지금 왔으면서 가겠다고? 그럼 오늘 훈련은?!”
“오늘은 날씨도 좋은데, 땡땡이치죠.”
“이 자식이. 훈련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고!”
“오늘만 봐주세요. 너무 급해요.”
“막무가내인 녀석이야.”
카일은 잔뜩 신난 표정으로 달려가는 차해준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성공이다.”
나름대로 효과를 생각해 재료를 조합해 만든 전복 삼계탕.
밀만 먹어 키운 B급 닭에 전복과 풀, 열매를 넣고 한 시간 동안 고아서 만든 요리다.
[특별한 전복 삼계탕] – 외상 치유에 효과적인 음식. 심각한 부상에는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동시에 떠오른 메시지들.
요리에 부여된 버프 효과가 보였으며, 직업이 변경됐다.
일반 중급 요리사에서 초급 마법 요리사로.
일종의 전직인 셈이다.
‘음식 효과가 어떤지 보자.’
큼지막한 전복 속살을 껍데기에서 떼어내 통째로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었다.
다음으로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허벅지살을 뜯었다.
풀과 열매를 넣었음에도 쓰고 아린 맛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푹 익으며 닭의 풍미와 쫄깃한 식감을 더 살려줘 맛을 한층 끌어올린 느낌.
땀을 뻘뻘 흘리며 한 그릇을 뚝딱 먹어 치웠다.
섬에서 생긴 상처가 모조리 회복됐다.
음식 설명대로였다.
“효과 좋네.”
다음으로 해준이 주목한 건 직업 변경과 관련된 메시지 중 ‘식재료 설명에 효능이 추가됩니다.’라는 부분.
지금까지는 경험을 통해 추측만 했던 식재료의 효능이 제대로 적혀있었다.
···
B급 식재료들의 효과를 제대로 알게 됐다.
설명에 따르면 B급 이상은 또 다른 효과가 숨어있는 듯하다.
‘대단한 발견이다.’
해준은 호기심에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었다.
[바나나팬케이크] – 섭취 후, 12시간 동안 근력이 두 배 강화된다. 피로가 누적될 수 있으니, 자주 섭취하는 건 주의하자. [닭가슴살 샌드위치] – 섭취 후, 2시간 동안 근육 생성이 활발히 된다. ‘산양유 셰이크’와 함께 섭취하면 부러진 뼈도 금방 붙을 정도로 강력한 효과가 있다. [토마토 가스파초] – 맛이 쓰다. 하지만, 꾸준히 30일간 섭취하면 전립선에 영구적으로 탁월한 효능이 있다. [레몬 머랭 파이] – 단 한 조각만으로 30일간 매끈한 아기 피부를 유지할 수 있다.‘오~! 재밌네.’
토마토 가스파초는 토원결의를 맺은 서준에게 주면 해준에게 큰절을 할지도 모를 정도의 강력한 효능을 가지고 있었다.
가스파초 자체가 냉장고에 넣어두고 차갑게 마시는 음식이니, 보관도 용이할 터.
‘다음에 만날 땐 한 달 치 만들어서 줘야겠어.’
B급 토마토 생산량 전체를 서준에게 주는데도 양이 아슬아슬했었다.
한 달만 섭취하면 영구적으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니 서로에게 윈윈이다.
생각난 김에 아예 한 달 치 토마토 가스파초를 만들었다.
“벌써 절반이나 써버렸네.”
요리연구를 하다 보니, 재생 풀과 독성 중화 열매를 절반이나 사용했다.
‘아껴 쓰자.’
실험 삼아 밭에 심어봤지만, 풀과 열매 모두 꽃도 피우지 않고 죽어버렸다. 섬의 토양과 환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일반적인 재배 방법으로는 키우기 어려울지도.
현재로서 재생 풀과 독성 중화 열매를 얻을 방법은 고블린 토벌밖에 없는 셈이다.
“오늘은 일단 썬플라워로 돌아가자.”
현실 세계로 돌아간 해준은 가게 문을 열었다.
***
“네? 시사 초대요?”
오지은 작가에게 뜻밖의 전화를 받은 해준.
“그게 뭔가요?”
-시사라는 게 방송 전에 국장님이랑 제작팀이 모여서 잘 만들어졌나 확인하는 과정이거든요. 장 피디님이 출연진도 모여서 함께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셔서요.
시사에 참여해달라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평일이라면 가게 영업 때문에 시간을 많이 뺄 수 없다.
“오래 걸리나요?”
-아뇨. 내일 오후쯤에 한 시간 반 정도요.
“그 정도면 가능할 거 같습니다.”
-그럼 다른 출연자분들 스케줄 조율해서 최종 연락 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통화를 엿듣던 강훈이 놀라 물었다.
“사장님, 내일 방송국 가요?”
“저번에 촬영한 걸 같이 보자네.”
“와, 부럽다.”
“부럽긴 뭐가 부러워?”
“핑키데이 혜리도 있고, 방송국 가면 연예인도 많이 볼 거 아니에요. 배우 이서준이랑 친하니까 막 나중에 연예인이랑 소개팅하는 거 아니에요?”
“소개팅? 누가 소개팅을 해요?”
소개팅이라는 말에 홀과 연결된 창으로 불쑥 얼굴을 들이미는 민주.
눈에서 레이저가 뿜어져 나왔다.
“오빠, 소개팅해요?!”
“아, 안 해.”
해준은 괜히 말까지 더듬었다.
“하지 마요. 소개팅.”
“알았어.”
“지켜볼 거예요.”
“···.”
‘근데, 내가 왜 당황하는 거지?’
…다음날.
시사에 빈손으로 가기 뭣해 간단히 간식을 준비했다.
사람들을 위한 레몬 머랭 파이와 이서준에게 줄 토마토 가스파초.
다행히 목동에서 상암 DMC 센터까지 한꺼번에 가는 버스가 있어 해준은 버스를 이용했다.
‘차를 한 대 사긴 해야겠어.’
오늘은 편하게 왔지만, 촬영 때에도 불편하고 외부 활동이 조금씩 생기면서 차량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그때, 미국 포*의 풀사이즈 픽업트럭이 짐승 같은 배기음을 내며 해준의 곁을 지나갔다.
오프로드 튜닝이 된 차해준의 드림카.
“어? 랩터다. 실물로 보니까 더 멋있네.”
언젠가 로또에 당첨되면 꼭 사겠다고 다짐한 차였다.
아직 로또에 당첨되지 않아 실구매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근데 지금이라면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잖아.’
마침 자동차도 필요한 상황.
해준은 폰을 열어 차량 가격을 검색하며 걸어갔다.
“야! 차해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낯익은 연예인 밴이 보였다.
이서준의 차다.
“형.”
“타. 아니다. 내가 내릴게. 경식아, 주차하고 와. 나 걸어 올라갈게.”
서준은 차에서 내려 그에게 걸어왔다.
‘마침 잘됐다. 둘만 있을 때 주려 했는데.’
“형. 이거요. 토마토 가스파초예요. 가지고 다니면서 드세요.”
“가스파초?”
“시원하게 먹는 스페인식 토마토 스프예요.”
유리병을 소독해서 가스파초를 나눠 담았다.
스케줄이 많아도 간편하게 휴대하며 먹기 편하도록 제작한 것이다.
“토마토? 설마 그거로 만든 거야?”
“네.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지지 말고 드세요. 그럼 효과 보실 거예요.”
“너 이 자식!”
서준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그 귀한 토마토를 그냥 주는 것도 고마운데, 이렇게 먹기 편하게 조리까지 해주다니.
감정이 격해진 서준이 해준의 목을 격렬하게 끌어안았다.
“켁.”
“내가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았길래 널 만났을까.”
“아파요. 이것 좀 놓고 말해요.”
“어? 아! 미안. 내가 진짜 나중에 이 은혜 꼭 갚는다.”
“알았어요.”
두 사람은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예능국으로 올라갔다.
장일수 피디와 작가들, 그리고 예능국장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윤여진과 마지막으로 온 혜리.
“아, 오늘도 내가 꼴찌네. 그래도 방송국엔 새벽에 왔으니까 봐주세요. 헤헷.”
“!!??···”
음방 리허설을 하다 온 혜리는 무대 의상을 입은 채였다.
핫팬츠에 배꼽이 드러난 탱크톱 상의를 입어 괜히 눈을 마주치기 부끄러웠다. 제작진이나 다른 출연자들은 익숙한 상황인지, 자연스럽게 인사했다.
“흠흠··· 이, 이것 좀 한 조각씩 드세요.”
민망함에 간식으로 싸 온 레몬 머랭 파이를 내밀었다.
카메라 앞에 설 일이 많은 사람들이니 피부에 좋은 간식을 준비했다.
한 조각씩 맛본 사람들이 저마다 감탄했다.
“어머, 해준아. 이거 너무 달콤하고 맛있다. 난 단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건 맛있네.”
연장자인 윤여진 배우가 극찬했다.
“푹신하다. 꼭 구름 먹는 거 같아.”
“으음~ 이거 진짜 맛있네.”
“우리 방송할 때도 만들어주세요. 여자 손님 오면 너무 좋아할 거 같은데요?”
“셰프님. 짱짱맨.”
작가들이 황홀한 표정을 지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희미하게 웃은 해준은 혜리에게도 한 조각을 권했다.
“혜리 누나. 아, 누나라고 불러도 되죠? 누나도 하나 드세요.”
“편한 대로. 그럼 나도 말 놓을까요?”
“네.”
“고마워. 잘 먹을게.”
파이를 먹은 혜리가 놀라 입을 가리며 해준을 바라봤다.
“진짜 맛있다. 상큼하고 부드러운데, 끝 맛은 쌉싸름하네. 매력 있는 맛이다.”
김혜리가 날카롭게 시식 평을 말했다.
소량의 재생 풀 맛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래도 그 풀 덕분에 30일은 아기 피부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걸그룹인 혜리에게 가장 쓸모있는 음식이다.
“나 이거 3조각만 가져가도 돼? 우리 애들 좀 가져다주게.”
“그건 따로 가져왔어요. 이따 나눠 드세요.”
해준이 따로 포장한 작은 박스를 내밀자, 혜리가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마워!”
“봤지? 우리 해준이가 이정도야.”
서준은 괜히 자기가 우쭐해 하며 말했다.
“싸 온 건 해준인데, 왜 오빠가 생색이에요?”
“우리 의형제라니까.”
“그럼 저도 끼워줘요. 해준아. 우리도 의남매 할까?”
“좋죠.”
잠깐의 담소가 끝나고, 바로 시사를 시작했다.
‘재밌다.’
재미없으면 어쩌나 걱정하며 촬영했는데, 결과물을 보니 꽤 재미있었다.
장일수 피디의 능력에 새삼 놀랐다.
괜히 스타 피디가 아니었다.
“좋네. 아주 재밌어. 시청률 기대되는데?”
국장도 만족해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국장님.”
“차 셰프는 이슈 좀 되겠다.”
“그러게. 해준이 너무 잘 나왔다.”
“여윽시, 내 동생. 피디님, 앞으로 편집 우리 해준이 위주로 많이 해줘요.”
이번에도 서준이 나섰다.
“이미 차 셰프님 위주로 했는데요?”
“더. 더! 난 안 나와도 좋으니까 우리 해준이 멋지게 나오게. 알았죠?”
서준의 차해준 사랑은 끝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