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72
71화. 뜻밖의 부상(1)
***
“동구야!”
“어? 해준 삼촌~!!”
해준은 등교하는 소혜, 동구 남매를 불러세웠다.
오랜만에 만난 동구는 그사이 키가 훌쩍 자랐다.
‘역시 산양유가 효과가 있구나.’
B등급 산양유는 뼈 성장에 특별한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 붙은 식재료다.
성인이나 성장판이 닫힌 청소년에게는 효과가 미미했지만, 동구처럼 한창 클 나이의 어린이에게는 효과가 엄청났다.
마찬가지로 풀과 열매를 넣어 만든 닭가슴살 샌드위치는 운동 후 섭취하면 근육 성장에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매일 검술 훈련을 마치고, 식사로 먹었더니 부쩍 몸에 근육이 붙었다. 어깨도 더 넓어지고, 광배와 복근이 보기 좋게 갈라졌다.
조리복을 입었을 땐 티가 안 났지만, 샤워하고 거울 앞에 서면 해준 스스로도 감탄할 때가 많았다.
“산양유는 잘 먹고 있어?”
“네! 누나가 아침마다 챙겨줘요.”
“그렇구나. 소혜야, 동구만 챙겨주지 말고, 너도 꾸준히 마셔. 떨어지면 말하고.”
소혜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 학교 끝나고 잠깐 들러. 삼촌이 반찬 줄게.”
“반찬이요?”
동구가 눈을 반짝였다.
해준은 요즘 소고기 식재료를 이용한 다양한 레시피를 연구 중이다.
썬플라워에서 팔 함박스테이크나 햄버거를 연구 중인데, 아직 메뉴에 올릴 만큼의 완성도는 아니었다. 별도로 야밤 식당에서 보여줄 한식 메뉴도 연구하고 있어, 처치 곤란의 음식들이 한가득이었다.
“동구 좋아하는 거 잔뜩 있으니까 가져가.”
“히힛. 감사합니다, 삼촌.”
“학교 늦겠다. 빨리 가.”
“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이따 올게요, 삼촌. 안녕~!”
해준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이 멀어지는 걸 지켜보았다.
잠시 후.
강훈이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마당 의자에 앉았다.
눈이 퀭한 걸 보니 불면증이 다시 도진 모양이다.
“어제도 못 잤어?”
“네. 몸도 피곤하고, 졸린 데 잠이 안 와요.”
“괜찮아졌다면서?”
“그때 잠깐 그랬나 봐요.”
해준은 강훈이 오랜만에 꿀잠을 잤다며 좋아했던 당시의 일을 회상했다.
‘그날이지? 회식하고, 양파 카레 싸준 날.’
B등급 양파는 신경 안정에 도움이 된다.
그러니 양파 카레를 먹은 날은 푹 잠이 들 수 있었을 터.
‘양파 요리를 좀 해줘야겠네.’
***
SBC 방송국 공개홀.
녹화 중임을 알리는 ‘ON AIR’ 팻말의 빨간불을 지친 눈으로 쳐다보던 천수는 크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흐아암~ 졸려. 녹화 늘어지네. 저거 언제까지 하는 거예요?”
“저녁에 들어갔으니까 자정은 지나야겠지.”
도면을 살피던 세트 팀 반장 흥국이 대답하자, 입이 잔뜩 튀어나온 천수가 볼멘소리를 해댔다.
“벌써 새벽 한 신데. 퇴근하기는 다 틀렸네.”
“우리 하는 일이 그렇지, 인마.”
세트 팀이 맡은 역할은 무대 설치와 철거.
스튜디오 녹화가 끝나길 기다렸다 사용한 세트를 철거하고, 이어질 프로그램의 세트를 설치한다.
보통 심야에 늦게 끝나는 프로그램은 다음 날 새벽에 일찍 나와 철거하는데, 스튜디오 사정상 스케줄이 겹치면 끝나길 기다렸다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야근이나 철야가 많은 직종이다.
“그냥 몇 시간 자고 나와서 하면 안 돼요?”
“늦어. 저 녹화 끝나면 바로 세트 철거하고, 생방송 음악 카운트다운 세트 세워야 해. 새벽부터 리허설 있어.”
“완전 꼴딱 새는 거예요?”
“어쩌냐. 스케줄 잡힌 거 보니까 아침 7시에 사전 녹화하는 팀도 있다는데.”
“염병.”
“저기 소파에서 쪽잠이나 자둬. 나중에 졸지 말고.”
“눼에~.”
건성으로 대답한 천수는 다리를 덜덜 떨며 폰을 만지작거렸다.
결국, 앞 팀 녹화는 새벽 2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흥국은 인부들을 바로 투입해 신속하게 스튜디오를 설치했다.
“김 씨 팀이 저 안쪽부터 철거하고, 박 씨네가 기둥부터 세워.”
“네.”
“알겠수.”
“자자, 시간 없으니까 빨리 끝내자고. 천수. 넌 나 따라와.”
인부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작업하는 사이, 흥국은 천수에게 주의 사항을 일러줬다.
“핑키데이 다음 무대에 리프트가 한 번 있어서 왼쪽 바닥 아래 공간 비울 거야. 그러니까 여기 바닥 공사 제대로 해놔야 한다. 사람 서넛 올라가도 안 무너지게.”
“······.”
“인마, 자냐?”
대기 시간 내내 폰질을 하던 천수는 꾸벅꾸벅 조느라 흥국의 작업지시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다.
“들었어요. 바닥 공사 제대로 하라면서요.”
“똑바로 해.”
“네에.”
흥국은 반대쪽 상황을 보기 위해 떠났고.
그제야 잠에서 깬 천수는 머리를 긁적였다.
“어디라고 했지? 왼쪽? 오른쪽? 아, 몰라. 대충하지 뭐. 어차피 무너지지도 않을 텐데.”
***
핑키데이는 신곡 발표 후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음원 사이트에서는 여전히 스트리밍 1위를 유지했고, 음반 판매량, 너튜브 조회수도 압도적이었다.
앨범 자체도 지금까지 낸 5개의 싱글과 3장의 정규 앨범 중 가장 완성도 높다는 평가를 받아 리더 혜리와 주희, 하영, 유정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들지만 보람차게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제 2주 후면 첫 단독 콘서트다. 잘하자. 다치지 말고.’
혜리는 무대에 집중하면서도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밀려왔다.
요즘처럼 행복한 날이 없었다.
컨디션도 좋고, 일도 술술 잘 풀린다.
땀 흘린 만큼 보상처럼 돌아오는 완벽한 무대.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사전 녹화 무대가 끝나고, 핑키데이가 빠르게 퇴장했다.
그때였다.
“꺄아악~!!”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혜리가 무대 아래로 추락한 것은.
…[핑키데이 리더 김혜리. 생방송 무대 도중 추락!] [2m 무대 아래로 추락! 혜리, 병원으로 이송. 현재 상태는?]
혜리의 추락 사건과 관련된 기사들이 연이어 올라왔다.
생방송에는 당연히 핑키데이가 퇴장하는 장면이 편집되었지만, 현장에 있던 관객들에 의해 추락 영상은 삽시간에 퍼졌다.
초록 창 실시간검색도 온통 혜리 추락과 관련된 검색어가 상위권을 차지했다.
“선생님. 상태가 어떤가요?”
핑키데이 스케줄을 관리하는 매니저 실장 강호철이 의사에게 물었다.
X-ray 사진을 유심히 지켜보던 의사는 혜리의 발목에 작은 실금이 갔고, 2주는 반깁스를 해야 한다고 했다.
“2, 2주 나요?”
“최소 깁스만 2주입니다. 빨리 아물어서 깁스 풀어도 물리치료까지 병행하려면 최소 3주예요. 그나마 그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이 정도면 운 좋은 겁니다.”
“더 빨리는 안됩니까?”
의사가 신은 아니다.
미세한 골절을 당한 발목을 고치는 건 붙을 때까지 깁스로 고정하고, 움직이지 않는 방법뿐.
개인마다 차이는 있지만, 성장기 어린이가 아니라면 무조건 최소 2주.
침대에 누워 침통한 표정으로 매니저와 의사의 얘기를 듣던 혜리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언니.”
“언니, 울지 말아요.”
“언니 우니까 나도 눈물 나잖아요.”
“얘들아··· 흑흑.”
주희, 하영, 유정이 혜리의 손을 꼭 잡고 위로했지만, 눈물이 멈추지는 않았다.
누구보다 리더 혜리의 열정을 아는 세 사람이었기에 더 슬펐다.
혜리는 4명 중 가장 바쁜 스케줄에도 항상 동생들을 챙기고, 스케줄 사이에 잠잘 시간까지 쪼개가며 안무와 보컬 트레이닝에 참여했다.
모든 건 첫 단독 콘서트를 위한 노력.
단 한 순간에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사골이라도 끓여 먹어야 하나? 그런 거 먹으면 빨리 나을까요?”
“칼슘이나 비타민D를 섭취하면 도움이 되긴 하지만, 의미 없어요. 그냥 붙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금 간 상태로 무리하게 움직이다가 상태 악화되면 저희도 책임 못 집니다. 안무 연습은 절대 안 돼요.”
분명 자신의 진단을 무시하고, 발목을 쓸 게 뻔히 보였기에 의사는 엄중하게 경고했다.
간혹 재생능력이 탁월한 운동선수들은 일반인보다 빠르게 회복한다지만, 혜리가 그런 케이스도 아니었기에 기대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아··· 망했다.”
“어떡해요? 실장님. 콘서트를 취소할 수도 없고, 깁스라도 하고 올라갈까요?”
“니가 센터잖아. 어떻게 그래.”
“그럼 어떡해요.”
딱히 방법이 없어 모두 침묵하고 있는 사이.
의사가 입을 열었다.
“일단 퇴원은 하셔도 좋습니다. 목발을 사용하시는 게 하루라도 더 빨리 낫는 길이니까 그렇게 하시고요. 병원은 일주일 후에 다시 오세요.”
…숙소로 돌아온 혜리와 멤버들.
방 분위기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
적막을 깨고, 혜리가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자, 자. 너희들 여기서 포기할 거야?”
“언니···.”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나 신경 쓰지 말고, 너희들은 안무 연습해. 나도 영상 돌려보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이라도 할 테니까. 기합 넣고, 파이팅!”
“파이···팅.”
***
차원의 농장.
해준은 강훈을 위한 음식 만들기에 돌입했다.
메인 재료는 재생 풀과 독성 중화 열매. 그리고, 양파.
“음··· 뭘 만들면 좋을까?”
카레는 너무 과하다.
밤에 잠기들 전, 가볍게 먹고 푹 잘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홀로그램 창을 열어 레시피를 확인하던 해준의 눈에 들어온 음식.
‘양파 스프?···’
조리법이 어렵지 않았다.
버터와 양파를 넣고, 갈색이 충분히 날 때까지 볶다가 와인을 넣고 졸여주면 된다.
‘풀과 열매는 처음부터 함께 넣고 볶자.’
조리에 들어갔다.
뭉근하게 30분 이상 졸인 양파 스프. 위에 치즈를 살살 뿌려주고 마무리했다.
[양 조절에 실패한 양파 스프] – 비율 조절 실패! 넣어도 너무 많이 넣었다. 불면증에 아주 효과적이지만, 자칫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으니 주의하자.“윽, 실패했잖아.”
양파를 너무 많이 넣은 게 원인인 것 같았다.
기존 조리법과 마법 식물을 함께 넣고 조리하는 건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버릴까 하다가 혹시 몰라 숙성 동굴에 넣어뒀다.
이곳이라면 상할 염려는 없으니까.
‘재료 아깝다.’
재생 풀과 독성 중화 열매는 현재로서 고블린 동굴에서만 얻을 수 있는 귀한 재료다.
토마토 가스파초를 만드느라 거의 써버린 풀과 열매.
어느새 재고가 바닥이다.
“내일은 고블린 동굴을 더 깊숙이 탐험해야겠어.”
해준은 서둘러 양파 스프를 재조리했다.
다행히도 이번엔 ‘불면증에 효과가 좋다!’라는 버프가 쓰인 양파 스프를 완성했다.
휴식 시간에 자리를 비우고 나온 터라 해준은 곧장 썬플라워로 돌아갔다.
옷장으로 통로를 잘 가리고, 홀로 나왔을 때.
“사장님, 큰일 났어요. 기사 좀 보세요.”
강훈이 해준의 얼굴에 폰을 들이밀며 다급히 말했다.
“왜? 무슨 일인데.”
“핑키데이 혜리가 발목에 금이 갔대요.”
폰을 넘겨받은 해준은 천천히 기사를 읽어내려갔다.
[생명에 지장 없으나, 다리 미세 골절. 10년 만의 단독 콘서트 어쩌나?]··· 현장에는 제대로 된 안전장치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핑키데이의 추락 사고로 안전불감증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한편, 핑키데이 혜리는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어 데뷔 첫 단독 콘서트가 무산 위기에 처했다.
‘이런. 큰일이네.’